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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 출세욕 먼슬리에세이 2
이주윤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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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싸네,라는 욕이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 숫자와 된소리를 섞어서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기를 누를 수 있는 있다니. 그 말을 한 사람과 오래 친하고 싶었다. 한동안 친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잘 지내지? 나이 들어 보니 똥 싸네,라는 그 말은 욕이 아니었다. 일단 똥을 싸는 건 중요하다. 먹었는데 안 나오면 속이 더부룩하고 얼굴에 뾰루지가 난다. 변비가 심해지면 만사가 귀찮다. 똥을 싼다는 건 소화가 잘 된다는 증거이고 신진대사 활동이 원활해서 오늘도 내일도 무언갈 마구 때려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더러운 얘기로 시작해서 죄송.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냐면 나 아주 재미있고 웃긴 글쓰기 책을 읽었다. 그렇다. 글쓰기 책이다. 이주윤의 새 에세이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출세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엄연히 글쓰기 책이다. 내가 발견하고 좋아한 작가인 듯한데 이주윤은. 글이 술술 읽힌다. 난해하고 심각한 문장으로 딴 생각을 불러오지 않게 한다. 솔직함이 장점으로 이런 것까지 쓴단 말이지, 감탄하고야 마는 것이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자신의 글쓰기 노하우와 어쩌다 책을 쓰게 되었는지 깨 발랄하고 담백하고 웃긴 에피소드를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목차는 '이것은 신세한탄이 아니다'와 '이것은 노하우가 아니다'로 이루어져 있다. 읽어보면 신세한탄이고 노하우인데. 이주윤은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처음 썼던 일기의 내용은 이렇다.



2005년 7월 12일 오후 3시 16분

아, 슬프다. 누가 알까. 이 마음. 메롱 까꿍. 무지 슬프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끄적거리는 일기도 습작이 될까」中에서)


우와. 대박. 이 글을 시작으로 이주윤은 일기를 쓴다. 습작이라곤 일기밖에 없었다. 이후 고재귀한테도 칭찬을 받았다. 습작을 오래 한 사람 같다나 어쨌다나.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 나이 들면 알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의 이야기를 타인은 관심이 없다. 내 슬픔과 비통과 걱정을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아봐야 다른 이들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일기를 쓰라고 한다.


부담 없이 일기를 쓰면 쓸 거리가 넘쳐나니 자신을 믿고 쓰라고 한다. 손목과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건다네. 그리고 똥 이야기. 자신이 블로그에 쓴 글을 똥이라고 비유한다. 매일 같이 똥 같은 이야기를 블로그에 썼다. 누군가는 보고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염원에서. 실제 그 일이 일어났다. 조선일보 부장이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 아버지가 애독해 마지않는 신문에 연재를 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일에 대해서는 이주윤은 운이라고 말한다.


메롱 까꿍에서 출발한 글은 한 권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물론 운이 있어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출세를 하겠다는 뚜렷하고 강렬한 욕망도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글쓰기 책보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를 읽으며 내 생활 행태와 습관을 돌아보며 알맞은 글쓰기 노하우를 취사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매일 똥 싸기. 블로그에 매일까지는 아니지만 이틀에 한 번꼴로 리뷰를 쓴다. 누구 읽으라고 쓰는 게 아닌 나 좋으라고.


이런저런 책을 읽었는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에서는 나눌 수 없으니까. 쓰고 또 쓴다. 똥 같은 글인데. 쓴다. 다시 읽어보면 형편없다. 비유는 어색하고 문법은 엉망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서. 이주윤이 꼭 잘 나갔으면 좋겠다. 이미 잘나가고 있나?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서가 제목처럼 잘 팔려서 계속 쓰는 삶을 살아갔으면 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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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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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글 쓸 기분이 나지 않아도 헤리엇 마티노는 자리에 앉은 첫 25분 동안 무조건 쓰라고 한다. 억지로라도 글을 쓰면 쓸 수 있다고. 그 말에 의지해 지금 이 글을 쓴다.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을 읽고 알게 된 글쓰기 노하우다. 25분의 기적을 믿으며. 스타트. 요즘의 나는 유튜브에 빠져 있다. 오묘한 알고리즘은 결국 나를 책 읽기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영상 보고 싶은데 책을 읽는 결말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집 안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영상에서 『예술하는 습관』을 발견. 저 책을 읽으면 나도 예술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겠다는 아니고 제목이 근사해서 장바구니에 추가해 두었다. 장바구니에 넣어둔다고 해서 무조건 책을 사는 건 아니고. 스마트폰 중독이라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을 서점 장바구니에 넣고 도서관에 가서 빌려 온다. 도서관에 가서 청구기호를 보고 책을 찾았을 때의 희열이란.


『예술하는 습관』에 나오는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다. 메이슨 커리는 그전에 『리추얼』이라는 책에서 예술가들의 시간 관리법을 담았다. 똑같은 24시간인데 누구는 빨래 개는 시간도 없는데 누군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의문에 휩싸이자 조사를 하기 시작. 블로그에 예술가들의 작업 습관을 올렸다. 창작의 열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열광하고 블로그에 올린 글은 책으로 나왔다.


『리추얼』을 내고 보니 그 안에 담긴 예술가들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예술에 여성, 남성의 경계가 어디 있겠냐마는 메이슨 커리는 다시 조사 작업에 착수한다. 여성 예술가들이 대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들의 작업 환경이 궁금했다. 『예술하는 습관』을 읽다 보면 가사와 육아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것보다 그 시간을 껴안고 창작 활동을 위해 시간을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관리했던 예술가들의 많음에 놀란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며 일정 시간 작업을 한다. 때론 포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술을 위한다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 의식주를 간결하게 유지하며 영감을 기다리는 게 아닌 무조건 글을 쓰면서 영감을 찾는다.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글을 쓰는 버지니아 울프. 글쓰기 감옥에서 글을 쓰는 콜레트. 가족의 보모로 고용되면서 새벽에 글을 써야 했던 제이콥스.


나도 안다. 『예술하는 습관』을 읽는다고 해서 습관을 만들어 예술을 할 수 없음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나. 어른들이. 맨날 드러누워 있기만 하는데. 계획만 짜다 지쳐서 다시 드러누워 있는데. 책 한 권 읽는다고 해서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밥을 해 먹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예술을 위해 무절제와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고 앞으로 나아갔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번 생은 글렀어. 습관과 훈련이란 말은 내게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야. 할 수도 있지만 『예술하는 습관』에는 시대를 초월해 나만의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는 인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응원이 된다. 무엇을 선택해서 방법을 바꾸든 자유다. 전부 따라 할 순 없어도 내가 가진 일상의 리듬에 맞는 방법 한 가지를 얻어 실천하면 대성공. 『예술하는 습관』을 읽으며 꼭 읽어야지 하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추가한 것으로 대만족.


그리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25분 동안은 무조건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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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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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명 대학을 나오고 일류 기업에서 정년을 맞이한 쇼지 씨. 퇴직을 하면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웬걸.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아내는 자신을 피하고 같이 사는 딸은 자신에게 냉랭하다. 차 한 잔 가져달라고 했을 뿐인데. 가키야 미우의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은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신랄한 소설이다. 퇴직을 맞이한 쇼지 씨의 일상을 촘촘히 들여다본다.


장마가 끝나고 연일 폭염이다. 임시 공휴일에 드러누워(함부로 앉지 않는다) 책을 읽어 나갔다. 쇼지 씨의 신념은 이렇다. 여자와 남자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모성 본능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자식을 잘 길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있는데 일을 나가는 며느리를 이해할 수 없다. 아내가 임대하는 원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찾아가서 밥을 먹자고 한다.


더운데 더 더워진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나가면. 제목을 다시 보자.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이니까. 쇼지 씨를 개조할 계획이구나. 더 읽어보자. 집에 있게 된 쇼지 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 퇴직하고 촉탁직으로 일을 했지만 회사가 도산해 버렸다.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보고 산책을 하지만 제일 많이 하는 건 텔레비전 보기다. 그마저도 재미없다.


아내는 후겐병이란다. 딸이 말해주었다. 후겐병은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다. 쇼지 씨는 그 말의 뜻을 몰랐었다. 딸의 비판이 섞인 이야기를 통해 아내의 병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아간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건실하게 일을 다니고 월급을 가져다주었다. 보증을 서서 집을 날리지 않았고 불륜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끝까지 회사에 다니며 가정을 지켰다.


그런 그가 왜 아내를 아프게 하는 것일까. 『정년 아저씨 개조계획』은 여성에게 가지는 신화 같은 고정관념을 쇼지 씨를 통해 탈피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손주를 돌보면서 쇼지 씨는 가사노동의 어려움을 알게 된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집.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사 노동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내가 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는지 본인에게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신념을 부수기란 알을 깨고 나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소설은 쇼지 씨가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꽉 막혀 있던 쇼지 씨. 과연 어떻게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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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오늘의 젊은 작가 27
은모든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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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잘 듣는 사람이 되었다. 그야말로 어쩌다. 심지어 누군가 내게 간증까지 했다. 나와 이야기하다 보면 없는 걱정까지도 만들어서 털어내고 싶다고. 훌륭한 청자라고 자랑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도 수다 떠는 거 좋아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지 어제 본 예능은 어땠고 영화 내용은 왜 그런지 주절주절 떠들고 싶다. 단 떠들고 싶은 상대가 없다는 것. 겨우 대화를 시도해도 영혼 없는 반응과 냉대에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경험이 깊어져 입을 닫고야 만다.


은모든의 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의 주인공 경진은 오묘한 사흘 동안의 휴가를 보낸다. 생물학을 전공한 경진은 과외로 생활비를 번다. 공기업을 뚫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며 날린 이십대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평범하고 아담한 생활을 이어 나간다. 과외 스케줄이 비는 사흘의 시간. 경진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쉴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벅차올라 나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낮잠을 잘 때쯤 친구 은주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 후부터 다소 이상한 시간을 보낸다. 경진을 만나는 모든 이들이 경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먼저 은주. 상견례 자리에서 불쾌함을 맛보았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는데도 어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 옆에서 남편 될 인간은 웃기만 해서 더 빡쳤다. 다이어트 중 보상 데이를 맞기도 한 은주와 흑돼지 두루치기를 먹으며 경진의 휴가가 지나간다.


이 년 동안 만나지 않은 엄마를 찾아가기로 불쑥 결심한다. 기차 안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여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들이 펼쳐지는 소설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를 이루는 감성은 따뜻한 연민이다. 대놓고 불쌍해라며 같잖은 위로를 하는 동정이 아닌 한 발자국 떨어져서 웃음을 보여주는 위로로써 소설은 흘러간다. 처음 만난 이에게 불쑥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덮어두었던 슬픔의 장면을 펼쳐 보인다. 그런 그들의 사연을 경진은 훌륭히 듣는다.


마주 앉아서 혹은 옆에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듣다 보면 모르고 지나친 시절의 비밀을 알게 되는 행운을 만난다. 경진은 그들의 이야기에 어설픈 위로나 공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한두 마디를 하다 보면 안다. 이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는지 대화할 의지가 있는 사람인지를. 대부분 그렇지 못해서 책을 읽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글로 표현되어 있을 때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이년 전 엄마가 느꼈던 감정과 경험에 대해 듣게 되는 경진. 사흘의 휴가는 누군가의 내밀한 속 사정을 듣는 것으로 시작해서 듣게 될 순간으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듣지 못해 서글펐던 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한테 한 번 말해 봐. 천천히 다 들어 줄게. 오늘 시간도 한 시간 더 있잖아"의 세계. 심장이 쫄깃해지는 사건이나 반전이 드러나는 구조의 소설이 아니라도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은모든의 소설 세계.


이주란과 더불어 은모든은 2020년에 발견한 최애 작가로 나만의 리스트에 올랐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의 속삭임을 들려주다니. 바라던 꿈의 문턱에서 넘어진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다고 말해준다. 열렬히 꿈을 향해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고도. 눈을 맞추고 박수를 쳐주며 이야기를 보내는 한 시절을 살아도 우리의 미래는 밝아진다는 힌트를 건너며 소설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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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 물욕 먼슬리에세이 1
신예희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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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마트가 새로 생겼다. 아싸. 대용량 커피집도 찹쌀 꽈배기 집도 생겼다. 오예. 게다가 쭉 내려가면 쇼핑몰도 있다. 지화자. 지갑 하나만 들고나가면 내 세상이다. 돈이 없지 살 물건이 없냐. 밥을 과하게 먹은 오후에 동네 탐방을 나간다. 새로 생긴 가게를 어슬렁거리다가 최종 목적지는 쇼핑몰.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돌아간다. 화려한 조명 아래 신상 물건들이 가득한 곳. 에어컨은 어찌나 빵빵한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국이 따로 없다.


입구부터 시선을 압도한다. 이벤트 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 좀 데려가 달라는 듯이 옷과 신발, 가방이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드러누워 있다. 알았어. 천천히 봐줄게. 불과 얼마 전에 옷 정리, 신발 정리를 한 나는 어디로 간 건지. 정신을 잃고 옷을 구경하고 있다. 비우기를 해서 옷장이 여유가 생겼다는 같잖은 합리화를 하며 바지, 셔츠를 사고야 말았다. 못 살아.


신예희의 에세이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지랄인, 돈지랄의 오묘함을 다루고 있다. 내 돈 벌어 내가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쏘냐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선천적 꼼쟁이인 나는 신나게 돈을 써 놓고 이내 후회를 한다. 왜 샀을까부터 해서 다시 바꿀까까지. 쓸데없는 후회로 돈지랄 후의 기쁨을 슬픔으로 바꾼다. 신예희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시간을 아끼는 대신 돈을 쓰고 작은 적금을 들어 사랑하는 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선물을 사주고 저렴이 대신 고렴이를 사서 흡족한 마음을 자신에게 선물하자고 이야기한다. 싸다고 무료배송이라고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는 문구에 유혹 당하지 말고 원래 사고 싶었던 걸 사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물욕의 화신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의 물욕을 비하하지 말자고 당당히 외친다.


욜로가 아니다. 한 번뿐인 인생. 쓰다가 죽자가 아니다. 맘에 드는 물건이 있음에도 가격 때문에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내려놓는 당신의 손을 잡고 동작 그만, 하고 말한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읽다 보면 이 언니, 물건 좀 샀네 싶다. 당연한 거 아냐, 그러니 물욕에 관한 주제로 에세이를 쓴 거지. 좀 샀네의 기준은 많은 실패에서 비롯된 자신만의 쇼핑 노하우가 철학적이고 성찰적이라는 데에 있다.


나도 카카오 적금 들었다. 캐릭터가 귀여워서. 26주 적금을 들었는데 매주 돈을 넣으면 발랄하게 움직이는 카카오 캐릭터를 볼 수 있다. 라이언 좋아해서 들었고 만기 해지를 했다. 그다음은. 음. 돈 이란 거. 갑자기 왜 이래? 모으는 재미도 쏠쏠한데 쓰는 재미는 더 쏠쏠하고 신나고 즐겁다. 26주 후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필요하니까 화끈하게 깨서 썼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나면 적금 들어 놓고 중도 해지 한 나 자신을 등과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로 토퍼를 구경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는 바쁜 나 자신을 괜찮게 봐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나저나 새벽 배송이 그렇게 좋단 말이죠? 새벽에 물건이 도착한다니, 거 참 신기하고 방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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