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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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의 『수면 아래』를 읽다가 잠들었고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서류를 찾아야 했다. 서류가 든 캐비닛은 비가 오는 길거리에 있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캐비닛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면서도 더는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를 한참이나 찾는데 여자 두 명이 다가와서 서류가 젖지 않도록 캐비닛 문을 잡아 주었다. 그 순간 그들이 보인 친절에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잠에서 깨어난 나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게 다 이주란의 소설을 읽다가 잠들어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해버리자. 며칠 전 나는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었고(전임자와 나를 비교하는 말, 책임은 누가 지느냐, 회사의 이익을 생각해서 행동해야 된다 같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해도 무의식에 박혀 있었고 실제 나는 서류를 찾느라 허둥대면서 깊은 빡침과 현타가 한꺼번에 몰려와 힘이 들었다. 


『수면 아래』의 인물들 해인과 우경, 장미, 유진, 우재, 성규를 생각한다. 그들이 소설 안에서 나누는 대화와 살아가는 모습이 이후에도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소설은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간다. 해동중고에서 전화를 받고 물품을 세척하고 물건 파는 일을 하는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 해인. 회식 자리에서 부장님이 우는 장면에 마음이 쓰이는 우경. 독서실에서 일하는 장미. 오래전 모임에서 만났다가 다시 만나 해인과 관계를 이어가는 유진. 우경의 동생 우재. 해인과 우경의 친구 전직 마술사 성규.


소설의 제목처럼 수면 아래에 사는 듯 말을 하지만 들리지 않고 겨우 입만 벙긋대면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이 한가득 나온다. 어찌어찌 숨은 쉬지만 물속이라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지 않지만 최선의 몸짓을 한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착한 인물들. 해인과 우경은 부부였지만 지금은 이혼했고 그래도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는다. 그들이 왜 이별을 했는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심심한 소설이다. 만나면 잘 잤냐고 어제는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묻고는 국물이 있거나 온기가 있는 음식을 먹으러 간다. 그들이 주고받는 질문과 답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중요한 건 이게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잘 잤고 무슨 꿈을 꾸었는지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처 난 마음의 면적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소설은 조금 갑작스럽게 끝난다. 정말 끝일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면서. 그래서 마지막 문단을 읽고 또 읽었다. 해인의 당부와 부탁이 내게도 닿길 원하면서.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면서. 아침에 눈 뜨고 몸을 씻고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기, 『수면 아래』는 그런 일들이 괜찮은 마음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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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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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 실린 네 번째 단편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주인공 유정은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자기의 현재에 살아야지'라고. 이 말은 유정의 입버릇이기도 하다. 그녀는 팔십이 넘었지만 활동적이다. 환갑이 넘어서 운전면허를 땄고 불교대학에서 컴퓨터를 익혔다. 시니어 요가 대회에 나가 본선까지 올라갔다. 혼자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소설집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 속 배경은 뉴욕이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팀원들의 커피를 사러 나왔다가 친구 민영이 올린 언제든 환영이라는 글에 응답한 승아의 뉴욕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규직 채용이 불분명한 상태인지라 승아는 열흘의 휴가를 연차까지 붙여 충동적으로 뉴욕으로 날아간다. 승아는 민영이 올린 게시글과는 상황이 다른 현실에 당황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는 마흔여섯이 된 '나'가 잠시 세계에서 이탈하는 기분으로 어학연수를 온다. 그곳에서 마마두를 만나 우정 비슷한 감정에 사로잡히지만 한시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기분이라는 걸 깨닫는다. 누군갈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은 여행자들이 느끼는 고유의 권한이라는 것도. 변화와 변화하지 않음에 지친 '나'는 연수에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을 시도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라면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뭐라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 현주는 희곡을 쓰기 위해 사촌 언니의 소개로 만난 로언이 있는 곳에서 머물지만 귀의 염증만 심해질 뿐이다. 미묘하게 느끼는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 로언과의 만남은 이후로 예정되지 못한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의 유정이 말한 대로 사람은 현재에 살아야 하지만 『장미의 이름은 장미』속 인물들은 과거에 매몰되어 있는 상태로 지낸다. 


여기가 아닌 거기, 그곳에서라면 이곳의 구질구질함과 실패를 벗어던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모호한 기대는 무참히 깨진다. 소설은 실패를 극복하기가 아닌 들여다보기를 통해서 아픔을 방치한 채 내일로 나아가는 이상한 씩씩함을 보여준다.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불안감인지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도약 내지 멈춤의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인물들은 은근한 차별과 멸시가 존재하는 뉴욕에서의 경험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돌아올 준비를 한다. 무얼 시작하기도 포기하기도 애매한 자신의 현재를 안고서 말이다. 포기가 답이라면 포기를 하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시작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삶의 비극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오랜만에 읽은 은희경의 문장은 술술 잘도 읽히고 여전히 은희경은 그때의 은희경이라서 안심이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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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살인사건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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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살인사건』에 담긴 네 편의 단편 소설은 추리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장점만을 모아 놓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따라가서 범인을 색출하는 일련의 과정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한 집 안에 흐르는 비감함과 맞물려 「겨우살이 살인사건」의 이야기 전모가 밝혀지는 순간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P.D 제임스 소설의 특징은 사건의 범인이 밝혀져도 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거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하기도 전에 범인은 사라진다. 


추리 소설 좀 읽었다고는 하지만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명민한 독자 다운 포즈를 취한 적은 없다. 사건이 일어나면 누가 범인일지 고민하기보다는 작가가 써 주는 대로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가 결말에 가서야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정신 차려봐. 「아주 흔한 살인사건」도 그런 식이었다. 인기 없는 문서 정리 담당자 게이브리얼은 우연히 죽은 대표의 서랍에서 포르노 수집품을 발견한다. 매주 금요일 밤 은밀한 외출을 한다.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손전등 불빛으로 책을 읽는다. 그러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고 한 여자를 보게 된다. 게이브리얼은 포르노 읽기를 중단하고 여자와 여자를 찾아오는 남자를 지켜본다. 게이브리얼은 자신이 관찰하던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다. 그날 자신이 본 걸 증언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여자와 남자는 부적절한 만남을 가진 것이었고 그걸 지켜보던 게이브리얼 역시 회사의 명예에 실추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애덤 달글리시가 등장하는 두 편의 소설, 「박스데일의 유산」과 「크리스마스의 열두 가지 단서」 역시 결말로 나아갈수록 흥미를 자아낸다. 전반부에 깔아 놓은 단서를 주워 담느라 마지막을 읽고 나서도 한 번 더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누가 범인일까. 고민하게 놔두지 않고 결말에 가서 친절하게 정리해 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인 부정한 마음과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겨우살이 살인사건』은 다룬다. 


네 편의 이야기 전부 재미있지만 결말이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아주 흔한 살인사건」이다. 제목처럼 내용 역시 아주 흔한 이야기이지만 결말은 아주 흔한 결말이 아니다. 애덤 달글리시의 총명함과 재치가 빛나는 「크리스마스의 열두 가지 단서」는 유머까지 있는 작품이다. 복잡하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 열린 결말이라고 독자를 난감하게 하지도 않는다. P.D 제임스의 소설은. 장편에 비해 단편에서는 배경 묘사가 적고 바로 이야기로 직진하면서 깔끔한 결말로 인도한다. 『겨우살이 살인사건』은. 책 읽기의 흥미가 떨어졌다 싶을 때 추천한다. 몰입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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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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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여름의 시간을 지나왔다. 호의가 아닌 줄도 알면서도 호의라고 믿으며 누군가의 호의를 간절하게 기대했던 시간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제목을 무한정 읊조리는 나날이었다. 내가 누군가가 된다면 기꺼이 언제든 전화하라고 언제든 전화해도 응답해 줄 수 있는 상태가 돼 있어야지 했다. 


'여름, 이 계절의 소설'의 부제로 『소설 보다 : 여름 2022』 속 첫 번째 소설에는 한없이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나온다. 김지연의 「포기」는 오직 신의로만 돈을 빌려준 호두와 빚쟁이들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민재,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나'의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재에게 빌려준 돈만 받으면 호두는 언제든지 친척 집에서 나와 방을 마련할 예정이다. 예정은 늦어지고 민재는 자신이 고동에 있다고만 말하지 정확히 어디에 있다고 알려오지 않는다. 제목처럼 포기를 해야 예정은 이뤄질까.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라는 네모네모 한 소설에서 이미상은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의 서사를 들려준다. 집 안에 한두 명쯤 존재하는 잉여 인력인 고모와 자매는 사냥을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불쾌한 남성들과의 시간을 통해 왜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지 슬프고도 암담한 어조로 이유를 말해준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하기는 싫다. 그래도 해야 한다.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 할 수 있어서 하지만 하기 싫다. 


「강가/Ganga」에는 자신의 이름을 '강가'라고 부르는 여성이 나온다. 공장에서 일해 모은 돈으로 여행을 온 나는 도시에 내리자마자 자신을 '강가'라고 지칭한다. 남자를 사기 위해 이곳에 왔노라고.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일을 했고 그들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자세한 서사는 나오지 않는다. 타인의 어려움에 도움을 줄 수 없었고 도망치듯 여행을 왔을 뿐이다. '유 쎄이브 마이 라이프.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어요'라는 말을 듣기 위해 온 것일까. 소설은 살면서 겪는 알 수 없는 근원의 죄책감을 이야기한다. 


내일, 미래, 예정, 추후의 일, 약속, 선언. 이 같은 단어들이 실재하고 지켜지리라 믿었다. 말은 공허하고 문장이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2022년 여름의 약속은 휘발되고 그것은 잘못이라는 말만 남았다. 어린 내게 어른들의 말은 이를테면 먹고사는 건 힘든 일, 기술을 배워야 살 수 있다, 살만하면 죽는다 같은 소리는 그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해 하는 한심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오래 버티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야 하는 시간이다. 


중심부로 가지 못하고 주변부에만 머물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을 버리고 새로 지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을 꿈꾸는 삶. 누군가의 하기 싫은 일을 선뜻해버리는 삶. 『소설 보다 : 여름 2022』의 세계 속 삶의 모습은 그러했다. 내게 도착할 이야기였을까 의심하며 문장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미움이 산처럼 쌓였다. 흘러넘친 미움을 보고만 있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탓이었다. 전부 쓸려 가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 게 맞겠다는 결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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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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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내야 하는 일이 있을까. 참지 않을 순 없을까. 『소설 보다 : 봄 2022』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참아냄'이다. 자신이 성적 소수자임을 밝힐 수 없는 일상을 남편이 아닌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을 사실이 아닌 추문을 들으며 다니는 회사 생활을 모두 견디고 참아내는 인물이 『소설 보다 : 봄 2022』에 등장한다. 


봄에는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이한 사람들이 간혹 쓰러지고 쉽게 일어서지 못하던데. 세 이야기 속 인물들의 끝은 어떻게 될까. 소설이 아닌 다른 세계에 발을 담그려 해도 책장에 무심히 꽂혀 있는 책들 때문에 나는 다시 소설의 세계로 끌려온다. 그렇게 마주한 지나간 계절의 이야기. 가을이 성큼 왔다가 미련 많은 여름에게 은근슬쩍 자리를 내주는 9월에 도착한 늦은 봄의 이야기. 


김병운의 「윤광호」를 읽다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광수의 『무정』을 읽던 시절로. 영채라는 신식 이름을 가진 인물에게 매료되었으나 나중에 작가가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실망하고만 그때로. 소설은 게이 인권 단체 M에서 만난 윤광호라는 인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인다. 후에 그의 진짜 이름이 윤광호가 아니었음을 알고 그가 이야기해 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회는 변화할 것이라는 정언 명령이 실천되는 걸 확인한다. 


어떤 시간에는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굴자'라고 반복해서 적었다. 마음과 감정이 있어 내가 나를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위수정의 「아무도」에서 '나'는 남편과 별거를 한 채 혼자 나와 지낸다. 부모는 '나'에게 아무런 조언도 충고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게 있어 남편이 아닌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자신을 이해해 보려다가 실패한다. 


P. D. 제임스를 읽다가 알았다. 번역가 이주혜가 소설가 이주혜라는 것을. 『소설 보다 : 봄 2022』에 실린 마지막 소설은 이주혜의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였다. 마침 병렬 독서 중이라 P. D. 제임스의 「겨우살이 살인사건」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번역가의 약력을 읽었다. 옆에 놓인 『소설 보다 : 봄 2022』에도 같은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이주혜는 이 이주혜였다. 어쩐지 외국 소설인데도 잘 읽히더라.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지며 살아온 여성이 수술 후에 영혼이 분리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좀 살만하니까 아프거나 사고로 죽는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는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은정과 소희. 둘은 가구 회사의 사수와 부사수로 만나지만 언니, 동생으로 지낸다. 사장의 총아가 소희가 아닌 은정으로 드러나면서 사이는 소원해진다.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하던 은정은 영혼이 되어 30년 넘게 근무한 회사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나간 시절을 회상한다. 비밀스러운 일본 출장길과 끝내 오해를 풀지 못한 이후의 시간을.


견디지 않았으면 한다. 미래에 뭐가 있을 줄 알고 참고 견디면서 혹독한 시간을 살아내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마음을 던지는 식으로. 가시 돋친 말은 다시 돌려주는 식으로. 소설 속 인물의 삶을 참고삼아 현실의 나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나중을 걱정하느라 현재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살아낸 사람의 최후를 알고 있으므로. 언젠가 네가 쓰는 소설 속 인물들은 왜 다들 병들고 불행하기만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병들지 않고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있긴 하나요. 그간의 삶은 그랬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말이어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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