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쁜 페미니스트 - 개정 완역판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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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먼저 말해주고 싶다. 사실과 정보보다는 느낌과 단상 정도는 써 낼 수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소진이라는 걸 겪어 내고 있을 때 틈틈이 조금씩 겨우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어 나갔다. 주말과 빨간 날은 쉴 수 있다. 다른 게 아닌 이 정도가 행운이라고 느낀다. 


남들 다 쉴 때 쉬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니까. 쉬어야 할 때는 쉰다. 단순한 명제에도 쉬는 것에 왜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겠지. 알고리즘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갓생과 미라클 모닝에 대한 영상만을 보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열망에서. 한 번 해보고 해 봤으니까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으로 쉬고 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책에서 소개해 주는 영화들을 봤다. 《나를 찾아줘》와 《헬프》. 《헝거게임》은 너무 긴 시리즈라 유튜브에 올라온 요약본으로(바쁘다 바빠 집순이 사회). 《오스카 그랜튼의 어떤 하루》는 좀 더 있다가 보자. 록산 게이는 다정하고 쉬운 언어로 페미니스트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고자 한다. 책에서 표현한 대로 '페미니스트란 개똥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일 뿐'이라는 의미 말이다. 


여성이라 함은 날씬하고 외모를 가꾸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그럼에도 경력을 이어 간다는 것.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면 왜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여성들은.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 나이가 있는 여성들을(이건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고쳐질 기미가 없다. 미디어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록산 게이는 영화, 드라마, 뉴스, 잡지에 실린 기사의 예를 소개하며 잘못된 점을 이야기한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그동안 인종 문제에 무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지는 않다.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의 사례는 좋아지기는커녕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든 것이겠지만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안다. 인종, 성별, 계급, 나이, 학력을 근거로 일어나고 있는 차별. 우리는 차별 사회에 살고 있다. 


록산 게이는 말한다. 자신은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페미니스트의 본질에서 한참을 벗어난 나쁜 페미니스트.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공부하고 강의하고 글을 쓰지만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면 좋겠고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에 신경을 쓰며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나쁜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남성 임금의 77퍼센트만을 받고 꾸밈 노동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좋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쁘고 좋다고 두 갈래로 분류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걸로 한 시대를 지탱한 모양인데 이제는 어림없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건 이제 한 물 갔고 좋고 나쁘고 이상하고 기묘하고 독특한 세상이 찾아왔다. 나쁜 척하면서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섞이다 보면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외모와 살 이야기를 하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사과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면 좋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록산 게이의 말을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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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여서 다행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주란 지음, 임수연 그림 / 마음산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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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에 나오는 문장을 빌려 오자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임한 사람들과 읽기와 문서 작성 관련 일을 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배급량이 지급되었단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버금가는 게 읽기와 문서 작성 관련 일이라니. 그러니까 내가 요즘 왜 머리와 등이 아픈지 이해를 받은 느낌이다. 병렬 독서가 주는 힘이다. 


안 그래도 저질인데 더 한 저질 체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중력은 조각조각 흩어져 날아가 버려 한 권의 책을 꾸준히 읽지 못하는 요즘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한 달째 읽고 있는 거 실화임?) 그래도 기특한 건 책을 꾸준히 사는 거다. 꾸준히 읽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사는 나 자신 칭찬해. 다양한 책을 읽으려고 시도는 해보지만 결국엔.


나는 한국문학으로 돌아온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읽었던 하성란, 전경린, 박완서, 이청준, 조세희를 잊지 못한다. 마음의 고향은 한국. 내내 닦이고만 돌아오는(닦인다는 표현을 아시는지 이 표현은 현장 언어로서 주로 직급이 높은 이들에게 혼난다는 뭐 그런 뜻) 4월과 5월에 읽은 소중한 책은 이주란의 짧은 소설을 모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이주란의 소설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책의 표지가 상큼 발랄해서 당장에 꾸준히 책 사는 사람으로서 구매했다. 한동안 밥 먹는 식탁에 『좋아 보여서 다행』을 올려두었다. 극효율주의자(나쁘게 말하면 자린고비)로서 생화는 사서 꽂아두진 못하지만 꽃이 그려진 책은 놓아둘 수 있으니 기부니가 좋아져라 하면서. 


우리가 헤어졌을 때 인우의 친구들은 인우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내게 전한 것은 인우였고 나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다시는 그를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버트를 3주만 돌봐달란 부탁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버트가 집에서 지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이주란, 「1년 후」中에서, 『좋아 보여서 다행』)


그러니까 말들이 돈다. 워낙 이해력도 떨어지고 인간사에도 관심이 없는지라 누군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도 그러려니 한다. 그 말을 듣고 누군가에게 전달해 줄 능력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입이 무겁다는데 그건 아니고 기억력이 나쁜 거다. 헤헤. 바보 이미지 지키자. 이주란의 『좋아 보여서 다행』의 첫 소설인 「1년 후」는 헤어진 연인의 부탁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가 반려견을 돌봐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문장이 아찔하다. 헤어진 연인에게 잘 헤어졌다는 친구들의 말을 전하는 인간의 인성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왜 그들이 헤어졌는지 단박에 알겠다. 어떤 말들이 있고 그냥 그 말들을 놔두면 될 것을 굳이 옮기고 부풀린다. 전 연인의 집에 가 반려견을 보살피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 일이 괜찮아지기를 바란다. 


『좋아 보여서 다행』의 착하고 묵묵한 사람들은. 


긴 산책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가 변하지 않음에 기뻐한다. 그런 시간과 나날과 오늘이 『좋아 보여서 다행』에 존재해서 다행이다. 자꾸 내일,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제 내가 믿지 않는 건 그런 거다, 내일과 미래의 일들에 대한. 부자가 되는 일보다 내일, 미래를 가진다는 게 현실성이 없다, 내게는. 어느 곳에서든 우리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과 변했어도 변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런 게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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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헝거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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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나는 출근하기 전 잠깐 앉아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런 한갓진 틈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튜브의 위대한 알고리즘은 EBS의 <위대한 수업-록산 게이>편을 띄워주었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록산 게이는 근사하고 멋져 보였다. 웃진 않았지만 그 내면에서는 환한 미소가 느껴졌다. 짧게 축약된 요약본이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영상에서 자신의 책 『헝거』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자신은 운동을 싫어하지만 헬스장에 가야 했고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갔지만 폭력적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일화였다. 책을 사서 읽고 싶었지만 품절이었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책이 출간되었다.  『헝거』는 슬픔으로 압도했다가 작은 낙관으로 끝을 맺는 책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로 시작하는 『헝거』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도 체중 감량의 성공 사례도 다루지 않는다고 밝힌다. 자신이 가장 살이 쪘을 때가 키 196센티미터에 몸무게 216킬로그램이었다고도. 여러 종류의 몸에 관한 에세이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루는 에세이를 읽어보았지만 『헝거』처럼 무지막지하게 슬프고 진실한 책은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자기만의 이야기'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제부터 나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거짓말 어느 정도의 꾸밈 어느 정도의 가공된 편집이 있기 마련이다. 숨기고 가리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던 책들은 『헝거』에 사과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토록 거대한 몸이 되기까지 다시 말하면 상처받은 몸으로 자신을 몰아가기까지의 진실은 끔찍했다. 


나는 한 번도 나의 몸이 만족스럽거나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부족해서 채우고 싶고 과해서 비워내고 싶다. 이토록 잦은 불안과 불만 사이에서 내 몸을 바라본다. 살이 찔까 봐 먹고 싶은데도 음식을 깨작거리는 내가 싫다. 몸이 싫은 게 아니라 나를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 나 자신을 혐오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책을 찾아 읽는다. 작년보다 살이 찌고 있는 나에게 도저히 괜찮다고 해줄 수 없기에. 


『헝거』에서 록산 게이는 공간을 차지하는 자신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자신이 싫었다고 말한다. 다정한 부모님은 그녀가 살이 찌기 시작하자 걱정하고 온갖 다이어트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계단이 없는 행사 무대에 오르는 것 의자가 부서질까 봐 두 시간 넘게 스쿼트 자세를 유지했던 것. 비행기 비상구 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앉을 자격이 없다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단지 뚱뚱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다. 흑인 여성이라는 점도 추가된다. 사건이 있었고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음식을 먹어 몸을 요새화 했다. 감옥으로 만든 것이다. 트라우마에서 도망가고자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증거는 거대한 몸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번 도망가기만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처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자신도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적어도 나의 일부는 내 인생 최악의 날들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런 나를 바꾸고 싶지 않다. 

(록산 게이, 『헝거』中에서)



나는 이해가 더딘 편이라 쉽게 말하는 사람이 좋고 쉽게 쓰인 책이 좋다. 『헝거』는 두 가지를 다 갖춘 책이다. 쉽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쉽게 쓸 줄도 안다. 어떤 날의 아침에서 본 록산 게이의 편안한 목소리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이제부터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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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 이두온x서미애 안전가옥 쇼-트 11
이두온.서미애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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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의 특징은 보복주의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할 때 그 보복주의. 내가 당한 만큼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잔인한 법 적용 같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 조항이 필요 했으리라. 혹은 억울한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던 바람이 작용했을 수도. 뉴스를 보면 화가 난다. 비단 나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걸 아는데도 체념 대신 화가 난다. 이제는 그러려니 할 법만도 한데 마음의 기본값이 미움과 분노가 되었다. 차를 빼달라고 헤어지자고 했을 뿐인데 무차별 폭행을 하고 상대를 죽인다. 이게 말이 되냐? 그렇다면 법은? 노회찬 의원의 말씀대로 법은 만인이 아닌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는데 고작 집행 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난다. 


사적 복수는 그래서 픽션의 단골 소재가 된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실력 좋은 변호사를 구할 수 없어 범죄자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 봐야 한다면. 나의 가족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범죄 신고는 112이지만 가족이니까 사귀는 사이니까 잘 해결해 보라는 말을 듣는다면. 한 번쯤 아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복수를 소원한다. 


안전가옥에서 나온 쇼-트 시리즈 『짝꿍 : 이두온x서미애』은 사적 복수를 다룬다. 이두온, 서미애 작가의 소설적 특징은 과감하고도 날렵하게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진한다는 것이다. 독자를 감질나게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미친듯한 속도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인간사에 시달려 급피곤한 내가 무리 없이 소설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첫 번째 소설 이두온의 「더없이 중요한 시기」는 경쟁자를 나락으로 빠뜨리기 위해 펼친 술수 때문에 꿈이 망가진 소녀, 태이가 등장한다. 언니의 남자친구에게서 얻은 자동차를 타고 친구 예빈을 만나러 가는 격정적인 시작이다. 후에 자동차를 어떻게 얻었는지 전말이 밝혀지고 태빈과 예빈의 시기는 더없이 중요해진다. 복수는 좀처럼 완벽할 수 없다는 서글프고 흐린 결말로 진행된다. 


서미애의 소설 「이토록 자상한 복수」는 제목처럼 어쩌면 그렇게 자상하게 복수를 설계할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려는 한 남자의 파국의 과정이 속도에 미친 레이서의 뒷자리에 탄 것처럼 펼쳐진다. 과거 자신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느리고 다정하고 자상한 복수의 대상이 된다. 대체 어느 지점에서 복수를 당했는지 모르면. 


허구라는 장치를 빌려서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짝꿍 : 이두온x서미애』의 세계관은.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라고 말하는 푸석한 얼굴의 동은이를 응원해도 죄책감이 없는 이유는 그녀가 허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짝꿍 : 이두온x서미애』에서 미약한 쾌감과 안도감을 느끼는 나 반성해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분노를 풀어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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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4·16재단 엮음, 임진아 그림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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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년 5월 1일이다. 다행히 쉬었고 그게 또 기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눈을 뜨니 저녁 여섯시였다.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런 나를 미워하다니 노동은 가치가 없게 느껴진다. 미운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다른 어떤 이는 무진장 일을 하고 싶어 할 수 있으니까) 일하는 건 좋아지지 않는다. 


4월 다음에 5월. 시간과 계절은 근면 성실한 노동자의 모습이라 너희들에게 일을 맡겨야겠다. 주인도 아닌데 주인 의식을 가지라는 말을 들어도 너희들은 묵묵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해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파이팅 외쳐주겠다. 그러니 나 대신 내일 너희들이 일을 해. 오늘이 왔으니 어제도 있었겠지. 오늘과 내일보다는 어제에 마음이 쓰이는 요즘이다. 


그러니까 과거에.


어제는 오랜만에 어떤 한 단어를 묵음이 아닌 소리로 내보았다. 그 말은 언젠가부터 힘이 나는 대신 슬픔이 밀려들어와 속으로만 마음속으로만 내뱉었던 말이었다. 내내 골몰했던 말이기도 했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슬픔 없이도 일상어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대놓고 말을 해보기로 하지만 쉽진 않을 것 같아 가슴속 빈 방에 놓인 칠판에 빼곡히 적어보기만 하려고. 


4·16재단에서 엮은 『월간 십육일』을 사 놓고 한달음에 읽지 못했다. 다들 4월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의 경우 황당한 상황이 연이어 일어났고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중언부언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길고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받아들이고 이해해 보려다가 실패한 사례였다. 급기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속엣말을 입 밖으로 꺼내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놓인다. 그것에 비하면 말이다. 


『월간 십육일』의 모든 에세이가 잊히지 않는다. 매달 16일에 모인 글이기에. 단 하루였지만 평생의 하루가 되어 버린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시인 고명재는 『월간 십육일』에서 영수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슴지 말고 기억해요」에서 고명재는 '있음'과 '시'에 대한 여기의 자리를 만든다. 거기 있었으나 여기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영수 엄마는 영수를 잃고 반찬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는 시인과 동생의 모습을 보고 펑펑 운다. 


영수 엄마에게도 자식이 있었다. 과거시제 선어말 어미 '었' 때문에 이 문장은 서럽다. 엄마 일을 도와주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우는 영수 엄마에게 시인은 '수백 번 생각하다 눈을 감은 채 나는 영수를 위해 오래도록 기도를 했다. 너희 엄마가 너를 정말 보고 싶어 하셔. 온 힘을 다해 꿈에서라도 찾아뵙도록 해.'라는 그때의 심상을 들려준다. 


시간은 우리를 다만 슬프게 놔두지 않는다. 영수 엄마에게 영수의 친구들이 찾아와 '저희가 이제 스물세 살이에요.'라는 말로 엄마를 안아준다. 영수 아빠가 웃고 여기 없음은 시가 된다. 『월간 십육일』은 우리가 아직 살지 못한 시간 2024년 10월 16일까지 우리를 데리고 간다. 2020년 6월 16일에서 말이다. 자주 잊겠지만 매달 16일에 세월호 기억 에세이는 나와 당신의 분주한 시간 속으로 찾아올 예정이다. 


말해놓고 머쓱하거나 슬퍼지지 않을 테까지.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오래 숨죽이고 있었을 나와 당신의 말이 『월간 십육일』에 있다. 나는 오늘 이 글에서 그 말을 마음껏 써서 시로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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