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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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가다 뒷자리에 아무도 없는걸 확인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셀카를 찍기 위해서다. 지쳤고 심심했고 몰골이 어떤지 궁금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있다는 그 앱, 스노우카메라를 켰다. 다양한 모드의 필터가 있어서 잠시 고민했다. 인기 필터로 찍어보았다. 결과는 대실패. 보정이 심각하게 들어간 얼굴은 수상하고 무서웠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나는 내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내 사진은커녕 사람이 나오는 사진 자체를 올리지 않는다. 그건 뭐랄까. 나를 비롯하여 사람을 싫어하는 인류애 없는 소심하고 고독한 현대인의 표상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겠지. 버스에서 찍은 셀카를 지우지는 않고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못생김을 자랑하고 있구나. 


외모도 경쟁력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 번 기억을 더듬어보자. 못생긴 얼굴 때문에 피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있는지. 있다, 있어. 일자리를 구하러 갔을 때나. 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묘하게 나만 혼이 났던 적이(기분 탓이려니. 자격지심이려니 여기라고 하겠지만 쎄함은 과학이라고 못생겨서 더 혼난 거 맞는 것 같다.)


김지효는 자신이 쓴 논문을 보충하여 『인생샷 뒤의 여자들』이라는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인생샷이라는 용어를 자각하게 된 건 핑크 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인생샷을 위해 갈대밭 한가운데로 직진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 어느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인생샷이 대체 무엇이길래. 


인스타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한 번 해볼까 했지만 피곤했다. 해킹도 당했고.)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신기방기 동방신기 하다. 피드가 스토리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왜 여성들이 인생샷에 그토록 진심인지. 인스타를 큰 틀로 여성, 인생샷, 탈코르셋, 페미니즘을 핵심어로 놓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현상을 응시한다. 


한 장의 인생샷을 찍기 위해 드는 수고는 어마어마했다. 셀카는 본인이 찍지만 인생샷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사회적인 관계성이 주목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인생샷 찍기는 노동이었다. 그 중심에 여성이 있다. 외모 가꾸기, 꾸밈 노동은 유독 여성에게만 부여되는 것인지 『인생샷 뒤의 여자들』은 고민한다. 


인스타의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치열한 생존기였다.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셀카와 인생샷을 찍는다. 김지효는 책의 시작에 '사진첩에 비슷한 사진이 수십 장씩 담겨 있는 여자들에게'라고 쓴다. 스노우앱의 필터를 지우면 푸석하고 주름 많고 대칭이 맞지 않아 비뚤어진 얼굴이 두둥 등장한다. 그냥 보통 오늘의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된 건 나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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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코와 쿄지
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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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제가 쓴 편지를 읽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 편지를 씁니다. 시간이, 있겠지요. 편지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시간쯤은 마련해 놓고 살았으면 합니다. 나도 당신도. 올겨울에는 비가 많이도 내렸습니다.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냐면 제가 일하는 곳의 누수가 발생했어요. 지붕이 삭아서 그런 것이라고 애초에 공사를 잘못 지은 것이라고 수리공은 말했습니다. 


CCTV의 구멍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에 복사기가 흥건히 젖었습니다. 일찍 출근을 하여 물을 닦아냈습니다. 복사기야 미안해. 물을 맞게 해서. 다행히 전기 쪽은 이상이 없었고 곧 지붕 수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곳은 어떤지요?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기도 겨울이면 그곳도 겨울입니까. 아니면 남반구의 계절처럼 반대입니까. 소식 전해주세요. 


묵직한 책 한 권을 읽었습니다. 한정현의 소설집 『쿄코와 쿄지』에는 당신의 어느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열 편의 소설은 열 사람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모두 다른 얼굴이지만 모두 같은 얼굴이기도 한. 슬프거나 기쁘거나 맑거나 흐리거나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힘들고 아프고 어두운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오르던 기억들 때문에 자주 멈칫해야 했습니다. 그저 살아갔을 뿐인데 역사의 한 장면을 지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호명하는 역사 4·3의 시간과 5·18과 부마항쟁의 시간들은 어쩌면 자주 바쁘고 정신 없는 탓에 쉽게 잊곤 했습니다. 혐오의 시절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규명 되지 않은 진실을 묻어두고 지금은 혐오의 시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잘못이라고 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쿄코와 쿄지』의 소설들은 앞으로의 사명은 포용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럴 수 있어를 넘어 그것 또한 괜찮다고 알려줍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이해와 받아들임의 세계로 데려가 줍니다. 뜬장에서 구조해온 자자의 이야기를 읽고는 길에 누워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무섭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닌 쉬고 있는 중이니 내가 조심히 걸어갈게,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중입니다. 소설은 문학은 이토록 다정하고 귀함의 감정을 선사해 줍니다. 그런 날이 있습니다. 마음이 뾰족해지는 날. 농담으로 흘려들으면 되는 말인데도 가슴에 오래 꽂아둡니다.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쿄코와 쿄지』의 한 장면. 좋은 나도 나쁜 나도 아닌 그저 나로서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나로 비치는 걸 신경 쓰기 보다 나로서 살아가기. 계절에는 제철 과일을 마음껏 먹고 덜 아픈 언어로 말하며 살아가기. 사랑은 나를 보살피면서 당신에게로 완성됩니다. 망설임 없이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 수리공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오후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두려움 없이 나를 업고 철길을 건너던. 죽기 전에도 죽음 후에도 사랑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토록 오래 사랑이 있는 나로 나는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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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 - 마스다 미리 에세이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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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신작 에세이 『작은 나』를 받아들고는 작은 나는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했다. 최애의 색 노란색과 쥐기 좋은 감촉의 책 『작은 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작은 나들이 쓴 일기장 같은 책이다. 그 시절 그 시간을 살아간 우리들은 큰 나가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작은 나의 기억은 소중하다. 사계절에 맞춰 쓰인 작은 나 시절의 마스다 미리의 기억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추억 속으로 데려간다.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에 내 가방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크진 않을지 걱정하고 모르는 어른에게 집안의 화장실을 빌려주는 건 삼가야 한다는 것 피아노 학원에서 건반을 치기 전에 높은 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를 반복해서 그렸던 것 잘 가라는 말이 담긴 노래는 딸과 헤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 아빠는 싫어한다는 것. 『작은 나』의 이야기는 열쇠가 달린 일기장을 봉인 해제해 준 느낌이다. 


지금의 나는 일기를 쓴다. 일지 같은 일기를. 내용증명이나 알리바이 느낌으로다가 쓴다. 파워 무계획형인 내가 일기를 쓴다는 게 나조차도 놀랍지만 꾸준히 쓰고 있다. 『작은 나』의 순수함이나 발랄함은 없다. 큰 나는 그날 있었던 억울한 일이나 화나고 열받은 일(같은 의미네 화가 나고 열받는 건)을 쓴다. 대나무숲. 바람이 불면 솨아솨아 큰 나인 누구누구는 개빡쳤대 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어지럽다. 걱정도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애플티비 시리즈 《단절》에 나오는 것처럼 일과 생활이 분리될 수 있게 시술을 받을 수 있다면 하고 상상도 해본다. 괜찮고 멀쩡한 척 집에 와서 유튜브를 틀어 놓고 핸드폰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낮에 있었던 일이 무한 재생된다. 작은 나 시절에도 일기를 썼다. 꿈을 잃지 말자, 꿈을 향해 달려가자, 꿈을 꾸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 같은 오직 꿈에 미친 자아를 늘어놓곤 했는데 지금은 기절하듯 잘 때 꾸는 꿈만이 소중하다. 


『작은 나』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책에 나온 문장처럼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장은 없다. 그 시절에 내가 썼을 것 같은 단문과 감상이 있을 뿐이다. 친구와 놀다가 싸우고 화해하고 엄마의 말에 수긍하고 어른에게는 착하게 군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순수해져야 한다가 아니다. 착하고 어린 내가 있었다.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작은 나를 잊지 말기를. 손을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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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다카세 준코 지음, 허하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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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다들 월요병 치료의 일환으로 일하는 곳의 좋은 점을 떠올려 보시라. 아, 없겠죠. 물론 없겠죠.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아도 되었다는 서사이다. 처음에는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서 이런저런 이야기(정말 쓸모없는)를 하면서 먹다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자리에서 먹게 되었다. 정말 정말 무지무지 좋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화제를 쥐어 짜내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는데 모니터를 보면서 먹는다는 건 최고의 고독이다. 


간혹 같이 밥을 먹게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서랍에 넣어둔 소화제를 먹는다. 167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품 다카세 준코의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표지에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요즘의 나의 머릿속을 사찰한 듯한 문장인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이에 꼭 같이 밥을 먹어야 하나요?'가 박혀 있다. 순간 감동받아서 사진을 찍고 카폭 프로필 배경으로 바꿨다.(법으로 지정하면 안 될까요? 점심시간에는 각자 밥을 먹는 걸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어떻게 같이 밥을 먹었던 걸까. 혼자 먹는 점심은 일하는 순간의 구원 같다.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첫 장면은 사무실에 남은 니타니와 후지 씨의 점심 풍경이다. 지점장의 호령 비슷한 구령으로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으러 갔고 둘은 컵라면과 도시락을 각자 자리에서 먹는다. 얼마나 바람직한 광경인지. 이 책을 추천해 준 이에게 경배를.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장면들은 어머 이건 내 얘기야 하면서 심장이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체력이 약하다고 모두가 철야 작업을 하는데도 정시 퇴근을 하는 이가 있다. 사람들은 대놓고 그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티를 냈다가는 오히려 인류애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몸이 아픈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 여기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 일을 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 말을 한 사람이 전근을 가게 된다. 매번 정시 퇴근을 하는 이는 다음날 구운 과자나 디저트를 가지고 오후 세시의 간식 타임을 연다. 


책의 나온 에피소드를 읽는 내내 소름 돋았다. 지금의 여기, 이곳의 상황과 똑같지 않은가. 출근하자마자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어제 한숨도 못 잤다, 엎드려 있어도 되냐고 한다. 교묘하게도 상황을 연출한다. 그걸 보고서 어찌 안됩니다 할 수 있나 그냥 조퇴하시라고 한다. 어김없이 다음날 무언갈 가져온다. (심지어는 자기 컨디션이 안 좋으니 오늘 예민하게 굴 수도 있다고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 뭐지 했다가 집에 가면서 기분이 나빴다.)


작품에는 세 인물이 나온다. 혼자 살면서 먹는 것에 욕심도 의지도 없는 남자 니타니. 부모님과 살면서 먹는 것에 진심인 여자 아시카와. 누구랑 사는지 나오지는 않지만 일만은 최선을 다하는 여자 오시오. 세 남녀의 엇갈리면서도 기이한 직장 스릴러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의 장점은 탁월한 상황과 심리 묘사에 있다. 가끔 아니 자주 의문한다. 내가 예민한가. 그래서 내가 문제인가.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은 내가 못나고 한심해서 인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은 그렇지 않다고 다독인다. 어딜 가든 일보다는 처세로 버티고 미움받을 걸 알면서도 미운 짓을 하면서 자신을 미워하면 너의 인간성의 문제라고 암시를 주는 인간이 수두룩하다고 말해준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에 매번 관대하고 너그러운 인간과 함께 일하는 건 최악이다. 그리하여 함께 밥을 먹지 않을 수 있어서 기뻐 미치겠다. 책의 마지막은 서글프고 기괴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하는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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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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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러셨는지.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에 마음이 굳고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내일과 업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습습후후 하셨는지.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은 국가가 나서서 일주일로 공휴일을 지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속상해 하진 않았는지.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을 해야 괜찮을 것 같아서 괜찮은 척을 해보는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넷플과 디플과 티빙과 웨이브를 왔다 갔다 하다가 고른 책은 오쿠다 히데오의 『라디오 체조』였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무표정 간호사 마유미가 17년 만에 귀환했다는 책 표지 문구에 추가된 문장은 '초긴장 사회의 절대 인재, 닥터 이라부의 맞말 대잔치' 이다. 순간 잘못 읽어서 막말 대잔치라니 하면서 감명받아 이건 사야 해라면서 구매 완. 책을 사서 보니 막말이 아닌 '맞말'이었다. 또 감명받았다. 기가 막히게 말을 만들어 내는구나. 의사 이라부는 막 말하지만 잘 들으면 맞는 말만 하니까. 


괴짜 의사와 간호사가 주인공인 『라디오 체조』를 읽으며 긴장을 조금은 늦출 수 있었다. 왜 나의 마음이 아플까를 『라디오 체조』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통해 자가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열심과 노력과 최선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초조함과 긴장은 기본값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스트레스를 귀신처럼 어깨에 매달고 (그 괴담 아시는지. 어린아이가 어느 날 아빠를 보더니 아빠, 아빠는 왜 맨날 죽은 엄마를 업고 다녀 하던) 돌아다닌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라부 시리즈를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러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현대인들이 가지는 불안과 고달픔을 소설 속 인물을 통해서나마 달래주고 싶어 다시 이라부 시리즈를 완성했다. 『라디오 체조』는 읽는 내내 황당하고 웃겨서 피곤이 풀리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라부는 시청률 강박증, 광장 공포증, 사회 불안장애 등을 호소하는 환자 앞에서 킹 받는 말만 해준다. 


어째 환자들은 그런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는다. 다정하고 누구에게라도 권위 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그 앞에서 묘한 안도감과 평화를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심각해하지 않으며 환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비타민 주사를 처방하고 주사 맞는 걸 지켜본다. 약 처방은 하지 않고 환자가 원한다면 왕진료를 두둑이 받고 집에까지 찾아간다. 


두 번 세 번 읽게 만드는 문장은 없다, 『라디오 체조』에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자조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불안과 걱정이 많아 일어나지 않을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 의사 이라부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가와이 씨, 이제 급한 일 없지? 자, 모처럼 왔으니 커피라도 마시고 가. 어-이, 마유미 짱. 커피 두 잔 부탁해. " 또는 "뭐, 일단은 병원에 좀 다녀봐. 잘 듣는 주사를 놔줄 테니까." 혹은 "단순한 긴장이야. 자율신경 부전이지." 같은 딱딱해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말.


괜찮고 다 괜찮을 것. 걱정할 시간에 어제 보다 만 넷플릭스 시리즈 《아이 엠 낫 오케이》를 이어 볼 것. 두둥. 현대인의 심신이 안정되는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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