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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어느 겨울에 생맥주 잔을 비우면서 늘어놓던 결혼얘기가 선하게 살아나더군. 그 얘기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생생한 거야. 여자가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할 때의 골목이지.

 


내가 예전에 시골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골목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거든.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들이 화사하게 피어서 꽃길을 이루는 골목이지. 좁아도 햇살들이 넘쳐나고 벌 나비들이 가득한 그 골목길을 천진난만한 여학생이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네. 그러자 멀리 골목 끝에 숫기 없는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거야. 여학생이 혼잣말로 그러지. ‘왜 날 따라오지? 정말 이상하네. 나는 하나도 안 이쁜데……

그렇게 둘이 꽃길 골목의 양끝에 서 있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꽃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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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맥주잔의 손잡이가 이렇게 어우러지기란 불가능하다. 논리적으로는 가능치 않은 상을 구현해낸 사진작가의 기술이 예술의 경지다. 하기는, 기술이나 예술은 영어로는  ART라고 포괄된다. 소설 '깊은 밤'의 남녀 어른이 보여주는 비논리적인 사랑의 모습이 이 생맥주잔들의 손잡이 어우러짐 모습과 어쩜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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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 장군이 역성혁명을 준비하면서---- 사기장 심룡에게 백자들을 만들라고 명했다. 그 모습이 백자 박물관 앞에 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늦가을 싸늘한 그늘 속에서 용이가 빚던 것은 백자라기보다는 담담한 숙명이 아니었을까?  

양구백자박물관에서 고려말 사기장 심룡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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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까지 4년간 농사지었다. 옥수수와 배추를 농사짓는 정도라 그리 힘들 것 없건만 해마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게 문제다. 과연 2017년 새해에 농사를 지을까 말까 갈등하다가, 작년 봄에 찍어둔 우리 밭 전경 사진을 보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새해에도 농사 짓기로 말이다. 밭을 갈고 비닐멀칭까지 한 것을 보니 4월말경이라 여겨지는데 가슴이 뛴다. 봄을 맞아 푸릇푸릇한 대지. 땀흘려 일하고 난 뒤에 앉아서 쉬는 저 나무의자. 이제 두어 달 지나면 다시 만날 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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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는 성적으로 대단한 과도기이다. 무심이 고등학교를 다닌 60년대 말, 그 때 겪은 사춘기의 모습 중 한 부분을 글로 써 남긴 게 승냥이.

명문고를 다닌다 해도 사춘기가 생략되는 게 아니었다. 잿빛 눈동자를 한 친구는 밤마다 공설운동장을 누비는 Lady killer였고 다른 한 친구는 사창가 출입을 일삼다가 결국은 몹쓸 병에 걸려 자퇴했다. 그런 병 정도는 치료가 되었을 텐데 자퇴까지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부모님이 너무나 실망이 커서이런 자식은 더 이상 공부시킬 필요가 없다!’면서 자퇴원을 내도록 했던 게 아닐까. 요즈음 같아서는 있을 수 없는 어르신들의 독단이지만 그러나 60년대는 극히 당연한 조치일 수 있었다.

밤마다 공설운동장을 누비던  Lady killer 친구얘기와 사창가 출입을 일삼다가 몹쓸 병에 걸려 자퇴한 친구얘기를 하나로 혼합해 완성한 작품이 무심의승냥이인 것이다.

 

정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쓰지 못했고 몇 년 지난 대학교 3학년 때 쓴 것이다. 그 때가, 박정희 대통령이토착적 민주주의라는 궤변으로 유신을 선포한 1972년 늦가을이었다. 대학가에 휴교령까지 내려져 하릴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글 쓰는 선배가 찾아왔다. 무심을 보고 싶다며 먼 시골에서 올라온 것이다. 하릴없던 무심은 그 선배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에서 가재나 잡아 삶아먹으며 며칠을 보내다가우리 이러지 말고 각자 작품을 씁시다하여 무심이 두어 시간 만에 완성한 게 승냥이였다. 200자 원고지로 50매쯤 되었다. 휴교령이 해제되고 이듬해, 무심은 교지에 이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 여학생들이 무심을 승냥이의 주인공으로 여기면서 접근 자체를 꺼리면서…… 정말 외로운 날들을 보내야 했다. 기가 막히다. 어떻게 작품을 쓴 사람과 작품 속 주인공을 혼동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시절, 70년대 초는 그러했다.

 

올해 생애처음으로 작품집을 내기로 했을 때 그런 박대를 받은 작품 승냥이를 복권시키기로 무심은 마음먹었다. 내용을 보완해서 200자 원고지로 70매 가량 되는 승냥이가 완성돼 활자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인간의 출발은 짐승이다. 어느 때가 되면 발정 난 짐승 같은 시기를 겪기 마련이다. ‘승냥이란 작품은 그런 측면에서 감상해야 한다. 내용 전개 상 거친 표현과 낯 뜨거운 묘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식한 어느 동창 놈이 대학 시절 교지에 실린승냥이를 읽고 난 뒤 말했다.

2의 방인근이 나타났구먼!”

당시에 방인근이란 음란소설 작가가 있었다. 무심은 그 때부터 그 동창 놈을 아주 무식한 놈으로 여긴다. 어떻게, 음란소설과 순수소설을 구별도 못하는 놈이 국문과를 나오고 나중에 국어선생까지 했는지 난해할 뿐이다.

 

한 편, 이 소설을 쓸 때 어울렸던 선배는 훗날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유명작가가 되었다.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 것이다. 지금은 소원해진 사이라 그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훗날 때가 되면 그 이름을 밝힐지 모른다.

 

작가에게 작품은 그의 자식이다. 비록 거칠고 낯 뜨거운 내용이 많지만 무심은 작품승냥이를 사랑한다. 몸으로 직접 낳은 자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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