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  내 새 자리가 어딜까?’하고 가슴 설레는 건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교사인 나도 가슴 설렌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침이다. 3월초 아침 특유의 싸늘한 기온 속에서 나는 내 새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교무실의 어느 자리일 텐데 이상하게도 금세 나타나지 않는다. 사무용구와 교재를 담은 간단한 짐 보따리를 들고서 쉽게 자기 자리를 찾아서 기뻐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혹은 무덤덤하거나 한 갖가지 표정들로 자리에 앉은 동료 교사들을 보며 나는 마음이 다급해진다. 좋든 싫든 어서 내 새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교무실이 운동장처럼 넓어서 한 30분은 내 새 자리를 찾아 헤매야 할 것 같은 거다.

순간 나는 눈치 챘다. 내가 잠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임을.

그러면 그냥 꿈을 깨면 되는 건데  내 새 자리가 어찌나 궁금한지 억지로 잠을 더 자면서 그 꿈을 유지했다.

그래도 쉬 나타나지 않는 내 새 자리.

결국 나는 꿈을 깨고 잠자리에서 눈을 떴다. 교직을 나온 지 17년째. 그 후 1년에 한두 번은 오늘 아침 같은 꿈을 꾼다. 꿈을 꾸면서 내가 꿈을 꾸고 있구나하고 눈치를 채는 꿈 말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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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예전에, 미국의 여성 보컬 3인조 The Three Degrees‘When will I see you again?’을 노래 부를 때마다 그녀는 늘 오른쪽(화면의 오른쪽)에 있었다. 보컬 3인조는 가운데 서서 노래 부르는 이가 주인공이다. 따라서 그녀는 주인공 가수를 돕는 보조역이었다. 내 짐작인데 주인공 가수를 정하는 기준은 얼굴의 예쁨인 것 같았다, 그녀는 보조역이라, 아무래도 주인공보다 얼굴이 덜 예뻐 보였다.

흑인 출신의 노래 잘 부르는 젊은 여성 셋으로 구성된 The Three Degrees. 팀 이름을 특이하게 붙인 까닭이 있었다. 셋 다 대학을 나온 학사였던 것이다. (Degree정도라는 뜻인데학위라는 뜻도 있다.) 그들이 가요계에 처음 나온 1973년경만 해도 흑인 여성으로서 학사 학위 소지자는 극히 드물었고 그 때문에 그런 팀 명을 붙인 것이다.

 

내 얘기는 다시 The Three Degrees에서 오른쪽에 있었던 그녀 얘기로 돌아간다.

그녀는 그렇게 1973년만 해도 보조역에 불과했는데 반세기 세월이 흐른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 속에서, 놀랍게도 가운데 서서 노래 부르는 주인공이 돼 있었다! 그냥 주인공이 아니었다. 좌우로 백인 여가수들을 거느린 주인공이었다.

도대체 The Three Degrees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다. 그 결과, 데뷔 초 주인공이던 얼굴 예쁜 여자가 암으로 세상을 뜬 것을 시작으로 숱하게 멤버들이 바뀌었는데도 그녀만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덕에 자연스레 가운데 서는 주인공이 된 것임을 알게 됐다. 반세기 세월 속에 그녀 또한 어쩔 수 없이 늙었지만 그러나 어엿하게도 주인공 가수가 됐다는 입지전적인 사실.

 

1973년에 When will I see you again?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뒤 45년이 지난 2018년에 재공연한 유튜브 장면으로 등장한 그녀.

역시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다. 그 옛날에 예뻤던 주인공 여자도 병으로 떠나고 이제 그 자리로 자연스레 옮긴 그녀가 주인공으로서 흥겹게 노래 부른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렵니까?(When will I see you again?)’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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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아이돌로 불리는이날치라는, 아주 흥겹고 재미난 보컬그룹이 있다. 그들의 대표작이범 내려온다이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별주부가 토선생(토끼)을 부른다는 게 힘이 빠져서 '호선생으로 부르자 산속의 범이 자기를 불렀다고 어슬렁어슬렁 내려온다는 무시무시한 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내용에서 범의 대가리를 누에머리로 표현한 기발함에 나는 반했다. 누에의 머리(대가리)는 몸체만큼 큰데다가몸체가 가로로 주름살진 꼴이 아니던가. 바로 범이 그렇다. 대가리가 몸체만큼 큰데다가 몸체 모양이 가로로 주름살(얼룩무늬)져 있으니.

누에가 그 큰 머리에 주름살진 몸으로 기어오는 꼴은 딱 범이 다가오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유튜브 동영상에 올렸더니 조회수 3억을 찍었단다.

코로나로 우울한 날들이다. 이 흥겹고 재미난 동영상이 조금은 살맛나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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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문이 막히는 풍경이었다.

오늘 춘천 mbc의 전망대에 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공지천 풍경에 나는 아무 말 못했다. 그냥 언 게 아니라 겨울바람이 언 것으로 보이는 기막힌 풍경이라니.

표현의 한계를 벗어난 풍경을 절경(絶景)이라 하는데오늘 공지천의 겨울바람이 언 풍경또한 절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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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속도제한을 지켰다. 그런데도 영월 주천에서 춘천의 집까지, 300리 길을 한 시간 30분밖에 안 걸려 왔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 이유를 한 번 정리해봤다.

첫째: 속도 내기 어려운 지방도(주천에서 신림까지)가 얼마 안 되고 대부분 중앙고속도로였다.

둘째: 코로나 때문인지 다니는 차들이 눈에 띄게 적었다.

셋째: 날씨가 좋았다. 장거리 운전에는 날씨가 결정적인데 눈이나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아 차를 운행하기 편했다.

 

직접 운전대를 잡은 나야 그렇다 치고, 뒷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던 아내의 놀라움은 더 컸다. ‘아니 벌써 우리 집이야?!’하며 놀라는 표정이다. 내가 집에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너무 빨리 집에 와서 실감나지 않지?”

 

집을 이틀간 비웠다 돌아온 거지만 별 일 없었다. 보일러나 냉장고나 모두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 이틀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집안 풍경. 그러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300리 먼 데에서 돌아온 게 맞아?’

그 먼 데에서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한 것 같은 비현실감. 결국 나는현실감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이 견딜 수 없는 비현실감을 이겨낼 것 같았다.

먼 길을 오가느라 온통 더러워진 자가용차를 몰고 동네 주차장에 간 건 그 때문이다. 직접 세차하다 보면 비현실감이 씻어지면서 현실감이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런데 웬걸. 다른 운전자들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이번 연휴 중에 한 걸까, 세차장에 차들이 줄지어 대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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