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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친구 중에 그 친구가 있다. 나는 다른 친구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 친구를 이렇게 평했다.

“얘야말로 춘천의 유흥가 경기를 진작시키는 인물이 아닌가!

다른 친구들이 박장대소하면서 긍정했다. 내가 그 친구를 그리 평하는 것은 그의 생활 모습 때문이다. 늘 술자리, 당구 치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 그의 생활이다. 사실 술자리라고야 해야,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자리다. 비싼 양주나 맥주를 마시는 자리가 못된다. 내가 그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워낙 그가 서민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가 집안 사정으로 하는 수 없이 춘천을 떠나 먼 타지로 나가 있는 3년 반 동안, 이상하게도 춘천의 불경기가 더 심화된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분석해 봤다. ‘춘천의 유흥가를 누비던 친구가 외지로 나가 있으니 춘천 경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그런 분석을 다른 친구들 앞에서 발표도 했다. 친구들이 또다시 박장대소했다.

그런데 그가 한 달여 전 집안 사정이 풀려 춘천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춘천의 유흥가 경기가 나아지고 전체적으로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을까?

솔직히 만화 같은 분석이다. 비록 만화 같더라도 이 무거운 춘천의 불경기가 서서히 호전되어 웃는 얼굴들을 많이 보는 시절이 되기를 정말 소망한다. 그 친구가 귀환했다. () 경기가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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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기만큼 기능에 철저한 기계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칼날을 회전시켜 풀을 깎는 기능에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달리 보탠 게 없다. 칼날을 강하게 회전시키려면 엔진이 있어야 한다. 엔진을 가동하려면 휘발유가 있어야 한다. 휘발유를 담으려면 휘발유 통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삼자(三者) 연동()에 가감(加減) 없는 기계, 예초기. 사진으로 올린 춘심산촌의 예초기를 보면‘살과 내장이 다 빠진, 뼈만 남은 인체 해부도’가 연상된다. 아아 예초기,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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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비행기들이 날지 못하고 공항에 있다. 태풍 때문이다. 최첨단 장치의 비행기들조차 태풍을 어쩌지 못한다.

춘심산촌 농장의 모기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심상치 않은 바람의 징조를 감지하고 수풀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모기들 또한 하늘을 나는 비행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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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은 트롯 가수로는 드물게 자기 노래의 곡은 물론 노랫말도 짓는‘싱어송라이터’다. 그녀 노래 중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들어보면 그대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주인공 심정이 애절하다. 그 노랫말 중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주세요.’라는 대목이 있다. 무심은 이 대목을 접할 때마다 그 표현의 아름답고 깊은 맛에 매료된다.

 

남녀 간의 사랑이 확인되는 시점은 포옹이 이뤄지는 시점이 아닐까. 포옹은 상대의 몸을 껴안는다는 외형적 의미 이상으로 상대의 마음까지 껴안는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기에‘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라는 표현이 가능하다. 그대를 알기 전부터 살아온 세월이 그저 서럽기만 했다는 그녀의 토로. 그 서러움을 삭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방법은 그대가 나를 꼭 껴안아주는 거란다. 아아 이런 속삭임 앞에서 근엄하게 거리를 두거나 외면할 장사가 이 세상에 있을까.

‘서러운’이란 형용사는 눈물이 떠오르는 단어다. 따라서‘서러운 세월’은 눈물 젖은 세월이다. 축축한 눈물을 부드럽게 증발시킬 수 있는 장소는 따듯한 체온의 가슴이다. ‘안아 주세요’란 말이 ‘서러운 세월’말 뒤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까닭이다.

그냥 안아 달라고 하지 않는다. ‘서러운 세월만큼’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긴 시간 안아 달라고 한다.  

심수봉 그녀가 노래 부른다. ‘그 눈빛이 좋으며, 기대고 싶을 만큼 커다란 어깨’의 그대를 향해.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무심히 버려진 날 위해

울어주던 단 한 사람

커다란 어깨 위에 기대고 싶은 꿈을

당신은 깨지 말아요

이 날을 언제나 기다려 왔어요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

그리운 바람처럼 사라질까봐

사랑하다 헤어지면 다시 보고 싶고

당신이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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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춘심산촌이, 살고 있는 집에서 20여 리 떨어져 있다. 오늘 아내를 태우고 춘심산촌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문득 깨달은 일이다. 얼마나 많은 엔진들이 우리 주위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당장 내가 모는 차부터 엔진의 힘으로 가고 있었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들, 그러다가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가는 차들, 어디 그뿐인가. 맞은편 도로에서 오는 차들 모두 엔진으로 작동한다. 경유니 휘발유니 연료는 제각각이지만 엔진을 작동하기 위함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무수한 차들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차에 쓰이는 엔진이 커다란 솥 크기라면 오토바이는 도시락만한 엔진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사람이 작은 엔진 하나 품고 달려가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어느덧 춘심산촌이 가까워지면서 밭들이 널려 있는 농촌 풍경이다. 어떤 농부는 예초기를 돌리고 어떤 농부는 농약 분무기를 돌린다. 오토바이 엔진보다 더 작은 엔진들로 일하는 모습들이다.

춘심산촌에 왔다. 아래 밭의 김씨가 경운기로 밭을 갈고 있다.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가는 경운기이지만 그 또한 차 엔진보다 조금 작은 엔진의 힘이다.

세상은 어느덧 엔진들의 천지였다. 우리는 우리 가슴 속 심장을 빼닮은 인조 심장엔진으로 쉼 없이 살고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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