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동안 밤잠 설치며 고생한 결과 작품집 『K의 고개』가 발간되었다. 정말 내 새끼나 다름없는 책이다. 뿌듯함과 함께 그간의 고생에 대한 만감이 서렸다. 그런 나를 왠지 안 됐어 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아내. 나는 뒤늦게 눈치 챘다. ‘하필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책을 써낸 우리 남편. 참 딱하구나!’생각하는 게 아니겠나.

아내가 결국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내 눈에 어떻게 보이는 줄 알아? 무법자 영화의 크린트이스트우드 알지? 그가 권총 차고 멋진 모습으로 마을에 나타났는데 글쎄 마을 사람들 누구 하나 관심 없이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쁜 거야.나쁜 악당이 누구인지 일러주면 당장 해치울 텐데 전혀 관심들이 없다는 거지. 그럴 때  딱하게 된 크린트이스트우드를 내가 지금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 원, 소설가 마누라 생활 3년 만에 비유 한 번 절묘하게 하는구먼그래.’

 

 사진출처 : Ko diex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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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클린트이스트우드...괜히 마음이 짠합니다 ㅎㅎ

무심이병욱 2019-01-0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말 없습니다-------

쎄인트saint 2019-01-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나중에 크린트이스트우드가 완전 스타되죠....영화보다가..악당을 해치우러 나타나면..관객들이 모두 박수를 쳤지요..(참 순진했던 사람들)

무심이병욱 2019-01-09 18:05   좋아요 1 | URL
참 그런가요? 이제 기억이 납니다. 맞습니다. 무심은 님의 격려에 힘입어, 여하튼 열심히 글 쓸 겁니다.
감사합니다.
 

 

20167월의 일이다. 첫 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아는 후배에게 주고자 전화를 걸어 그 주소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제가 집에 없을 때가 많으니까봉의산 가는 길에 책을 두시면 됩니다.”

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책을 길에 두고 가라니, 그것도 봉의산 가는 길이라니 그 산을 올라가는 길이 여럿일 텐데 그게 말이 될 법한가? 짧은 순간이지만 이 후배가 책 받기가 귀찮아서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스쳤다. 화가 치미는 걸 인내하며 되물었다.

봉의산 올라가는 길이 여럿 아닌가? 어느 쪽에서 올라가는 길을 말하는 거야?”

그러자 후배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말씀 드린봉의산 가는 길은 카페 이름입니다. 소양 1교 부근의 봉의산 올라가는 길목에 있지요. 조용하고 창밖 경치도 좋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즐기는 명() 카페이지요.”

농사지을 때 외에는 두문불출하는 내 습성이 탄로 난 듯싶었다. 통화를 마쳤다. 후배가 말하는 봉의산 가는 길카페 위치를 알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소양 1교 부근에 갔더니 과연 그런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카페 주인 노정균씨를 만나게 되면서 나는 소스라쳤다. 강원대 교수 박기동씨와 얼굴이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혹시박기동 씨라고, 강대 교수를 아십니까?”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잘 알죠. 그러잖아도 그분과 친 형제간이 아니냐는 말을 듣곤 합니다. 박 교수님이 저희 카페에 자주 들르거든요.”

나는 박 교수와 젊은 시절그리고 문학회활동을 함께 했던 인연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19712월 말의 어느 날을 잊지 못한다. 시내 중앙로 로터리에 접한 지하다방도심에서 만났다. 강대에 합격해 춘천에 이제 막 올라온 신입생 박기동은 강릉 지방 억양으로 내게 인사하며 말했다.

3때 편지로만 오가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다니! 저는 그저 강대에서 선배님과 문학 활동을 함께 할 생각에 가슴이 벌써부터 뜁니다.”

 

이번에 내 두 번째 소설집 ‘K의 고개가 나왔다. 전상국 교수님, 시인 이무상 선배님, 소설가 최종남 선배님, 소설가 박계순 선배님, 최현순 시인, 조성림 시인, 이영진 음악평론가, 김금분 시인 등 아는 분들한테 책을 우선 전했다. 2차로 화천 감성마을의 외수 형, 정선의 신승근 시인, 동기 김두중 시인, 이흥모 시인, 이문일 작가, 이지평 시인 등에게 전할 일이 남았다. 책 표지화를 해 준 전태원 화백, 삽화 담당 서현종 화백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 박기동 교수한테 책을 전할 생각을 했다.

박 교수가 늘 바쁘니까, 봉의산 가는 길 카페에 내 책을 맡겨놓고 찾아가라는 문자를 보내면 되겠구나.’

그래서 오늘 봉의산 가는 길 카페를 찾아갔다. 박기동 교수, 아니 박기동 교수를 빼닮은 카페 주인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잔잔히 웃으며 나를 반겼다.

박기동 교수가 요즘도 잘 옵니까?”

그럼요. 일주일에 하루는 꼭 들르지요.”

제가 두 번째 작품집을 냈는데 박기동 교수한테 한 권 전하고자 여기 들렀습니다.”

아이고, 책 발간을 축하합니다.”

카페 주인이 커피를 끓이는 동안 나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창이 넓다. 가까이 있는 소양강이 얼지 않은, 푸른 모습으로 창을 가득 채웠다. 박기동 교수, 박기동 교수를 70% 이상 닮은 봉의산 가는 길 카페 주인, 그 주인이 끓이는 커피를 기다리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봉의산 가는 길 카페는 춘천의 명소다. 늘 잔잔한 음악과 창밖의 소양강 풍경과 시인인 강대 교수 박기동 씨를 빼닮은 주인과 어떤 상념(想念)이 기다리고 있다.

 

 

#서현종 그림날씨 맑음, 춘천』

춘천 <봉의산 가는 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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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9-01-0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인터넷 서점에도 올라왔겠죠? 꼭 사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 ^

무심이병욱 2019-01-06 20: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제 책을 낸 출판사가 아직 인터넷 서점에 올렸을 것 같지 않습니다. 며칠 지나야 될 듯싶네요. 이번 책의 처음 순서로 실린 ‘k의 고개‘ 작품은 작가 이외수씨가 극찬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 제목을 책 제목으로 삼았지요.
그 외의 작품도 제 나름대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소설책이 안 팔린다는 시대이지만, 찔레꽃 님 같은 분이 있어서 소설가는 힘을 냅니다. ^^
 

 

  그 날 춘천미술관 2층 전시관에 들어서자, 수많은 동물이 제각기 조각배를 타고 줄지어오는 광경부터 맞닥뜨렸다. 도자(陶瓷)로 구워낸 동물들의 행렬이다. 동물들은 놀랍게도 사람처럼 표정이 있었다.

 

 

 동물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 때 출입구 벽에 붙은등파고랑(登波鼓浪)이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물을 머금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는 푸른 배에 동물을 태웠다. 그전에 배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2014년부터 배는 나에게 절망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없이 배에 타고 있는 동물은 북을 치고, 횃불을 들고, 책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동물들을 어떠한 틀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돼지, , , , 염소, 토끼, 말 등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배를 탄 동물들은 웃으며 반란을 일으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옆으로는 너는 늙어봤느냐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도 있었다. 

     


우리가 먹는 동물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다. 계란 생산용 닭은 A4지 한 장 크기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 25천여만 마리는 매해 산 채로 폐기된다. 일주일에 100만 마리가 넘게 없어지는 돼지, , 소 등은 평생을 자유의지로 살아갈 수 없고 닭은 길게는 30, 돼지와 소는 15년이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에서 3년밖에 살지 못한다.

나는 수탉이 자신의 수평아리를 업고 있는 모습과 돼지와 소가 행복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최대한 동물과 닮게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최소한 동물들이 살고 싶은 만큼 살다가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Untitled 시리즈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각기 다른 자세로 요가를 하는 돼지의 모습을 표현 하였다.

 

 

정은혜' 작가가 도자 동물들을 통해 우리한테 말하려는 게 무언지 비로소 감이 잡혔다. 우리가 무심코 다루는(먹는) 동물들에 대해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었다.

그 행렬 작품 뒤로 다른 작품들이 이어졌다.

 

돼지가 사람처럼 요가 하는 갖가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다가동네 골목길에서 흔하게 보는몸이 불편한 노인네가 보행기에 기대어 간신히 걸음 걷는 모습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내 발걸음이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늙음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피할 길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질곡이라니.

 

 

근처에 있는 정은혜 작가한테 깊은 고뇌의 질문보다는 가벼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동물들한테 사람처럼 표정을 입힙니까!’하는 경탄의 말로 인사를 대신한 뒤 이렇게 질문했다.

여기 있는 작품들이 모두 도자라니, 그렇다면 우선 흙으로 이런 모습들을 빚은 뒤, 그것도 사람처럼 표정까지 담아 빚은 뒤붓으로 색칠하고서 그 위에 유약을 발라 가마 속에 넣어 불에 구워냈을 게 아닙니까?”

작가가 고개 끄덕여 긍정했다.

어느 곳에 있는 가마입니까?”

내가 지난 2016년 겨울에양구 백자박물관에 구경 갔다가, 도자기 하나 만들어내는 데에 드는 엄청난 노고와 그런 과정 중 필수적인 가마의 큰 규모에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집에 작은 가마가 있지요. 전기로 도자를 굽습니다.”

간이 형태의 가마가 있는 줄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문외한임을 실감했다. 옆에 있는  내 아내가 어떤 염려를 말했다.

집에서 유약을 칠하고 굽는 과정이 간단치 않고 연기와 냄새도 많이 나서 힘들지요?

작가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전시한 작품들의 수도 많은데 작품마다 실감나는 사람 표정이라니, 나는 경탄할 뿐이었다. 문외한이라 정 작가의 작품 수준을 논할 위치는 못 되나 다만 이런 작품들을 창작해 낸 그 노고와 세심함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사실 먹고 살기 편한 시대가 되면서 우리 주변의 동물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고통 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동물 살육은 불가피하다는 담론(談論)이 확고한 현실이지만내 마음은 스산해졌다. 누구나 한 번은 우리 주변의 동물들에 대해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018년 한 해가 저무는 날 춘천미술관 2층 전시관에서 가져본 생각이다.

 

https://eunesine.blog.me/

‘동물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 때 출입구 벽에 붙은‘등파고랑(登波鼓浪)’이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물을 머금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는 푸른 배에 동물을 태웠다. 그전에 배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2014년부터 배는 나에게 절망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없이 배에 타고 있는 동물은 북을 치고, 횃불을 들고, 책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동물들을 어떠한 틀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돼지, 소, 닭, 양, 염소, 토끼, 말 등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배를 탄 동물들은 웃으며 반란을 일으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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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미술관이 크리스마스 날에도 문을 열 줄이야.

 

모처럼 아내와 함께11회 한복희 개인전을 보러갔다. 한복희씨는 충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한 분이다. ‘우리 민화협회 고문을 맡을 정도로 민화에 관한한 추종을 불허한 경지. 퇴직 후 본격적으로 민화에 전념하며 지내고 있다.

조선시대 이 고장 춘천을 그린 동화 느낌의 민화부터, 정말 다양한 민화들이 미술관에 전시돼 있었다. 그 중 무심은 병풍 그림에 눈길이 꽂혔다. 병풍 속 사물들이 원근법(遠近法)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크게, 멀리 있는 사물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이야말로 현대미술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런 원근법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병풍 그림(특히 바둑판 그림)에 무심 눈길이 꽂힌 까닭은현대미술의 첨단인 입체파 그림들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입체파는 1914년경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에 의해 생겨났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종래의 이론에 반발하여 원근법·단축법·모델링·명암법 등의 전통적 기법을 거부함으로써 화폭의 2차원적 평면성을 강조했다.

 

 

원근법 부정(否定)이라는 차원에서 서양의 입체파와 우리 민화가 상통할 줄이야!

원근법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를 부정함으로써 사물은 우리 시선을 벗어나 본래의 정체(正體)를 되찾는다. 하긴 사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물을 보는 우리 시선이 늘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춘천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뜻 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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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가 어떤 건물 뒤편에 적힌 이런 영문을 보았다.

‘NO WORK  NO BEER'

처음에는 무슨 표어 같아 어리둥절했으나 잠시 후 그 뜻이 선연하게 와 닿았다. ‘일하지 않으면 맥주 마시지 말라는 뜻이었다. 한 발 나아가서 열심히 일한 자만이 맥주 마실 자격이 있다는 뜻이며 더 한 발 나아가자면 우리 열심히 일하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자.’가 아니겠는가.

우리 삶에서 노동의 건강성을 일깨움과 동시에 슬그머니 맥주 판매를 노리는 기막힌 멋진 문구였다.

건물 앞면을 살폈더니 역시 맥주 파는 가게였다

   

 

이런 영문 표현을 본 게 처음은 아니다. 자메이카 출신의 레게 가수 밥 말리 노래 이름이 그랬다.

'NO WOMAN NO CRY’

그러나 해석은 앞의 맥주 집 광고와 딴판이다. 이런 해석이다.

여자여, 울지 말아요.’

여기 WOMAN 앞에 붙인 NO는 뒤의‘NO CRY’ 뜻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일 뿐이다. 물론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정상적인 영어 어법은 못된다. 핍박 받는 이들한테 현실을 이겨내라는 말뜻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당연히여자가 없으면 울 일도 없다라는 해석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맞지 않는 해석이 내 머리에서 쉬 사라지지 않는다. 순정(純情)파 사내들한테는 이 해석만큼 명언도 없을 것 같아서다. 더 실감나게 풀이한다면 이 세상에 여자가 없으면 사내가 눈물 흘릴 일이 없을 텐데.”

그렇다. 이 세상은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인데 만일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여자 때문일 듯싶다. 이런 견해도 페미니즘에 속할까? 글쎄.

 

https://www.youtube.com/watch?v=mcTKcMzem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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