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 가까이조그만 철쭉나무 가지 사이에 멧새 둥지가 있었다.

땅에서 높이 30cm쯤 되는 곳에사람 주먹만한 크기의 멧새 둥지이런 높이와 크기라면 뱀 같은 흉측한 짐승들로부터 눈에도 안 띄며 안전했던 것일까.

문득 우리 사람의 주택을 생각해 본다사람의 주택은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해서 갖가지 갈등을 야기하는데 이 멧새 둥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멧새 어미가 알을 낳아 부화돼 나온 새끼와 웬만큼 같이 살다가 어느 날 훌훌 멀리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아무 미련도 없었다.

나는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그대로 맞으며 오직 자기 새끼들을 따듯하게 품는 데 전력을 다한 어미 멧새의 마음을 찾느라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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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밭은 산골짜기에 있는 돌투성이 밭이다

그래도 컨테이너 농막을 갖다 놓고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할 때는 적잖이 흥분됐던 것 같다. 비좁은 농막에 냉장고 하나 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농사짓다가 쉴 때 음악 감상을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에 라디오까지 한 대 갖다 놓았으니.

나중에는 폐() 내비게이션으로 kbs티브를 볼 욕심까지 냈다. 부근에서 우리처럼 농사짓는 분이 그렇게 폐 내비게이션을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의 농막이 있는 곳보다 우리 농막이 있는 곳이 지형적으로 전파가 날아들기 힘든지, 폐 내비게이션은 구해서 갖다놓았지만 티브 화면이 잡히지 않았다. 티브 전파를 잡으려면 산에 올라가 안테나라도 설치해야 될 듯싶은데과연 그렇게 해서도 전파가 안 잡힌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결국은 포기했다.

그렇게 7,8년이 흘렀다.

어럽쇼, 그나마 잘 나오던 라디오도 얼마 전 고장 나버리니 이제는 농막 주위가 적막강산이다. 아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 등이 찾아온다.

뒤늦게 깨달았다. 농막은 본래 문명의 이기를 갖다 놓는 곳이 아님을. 불편한 대로 그냥 쉬면서 딱따구리와 산새들의 지저귐에 내 귀를 맡기는 곳임을.

라디오니 폐 내비게이션이니 같은 문명의 이기를 갖다 놓고 쉬려면, 그냥 온의동 집에 있을 것이지 뭐 하러 산골짜기 농막에 와 있는가?’

내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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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風光) 좋은 춘천이라 해서 불경기가 그냥 지나가는 건 아니다.

전국을 휩쓴 무거운 불경기 속에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춘천의 나날들.

그래도 손흥민이 활짝 웃고 있는 벽의 그림을 보면삶의 욕구를 흔들어 깨우게 되는 것을!

그는 춘천의 아들이며 자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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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의동에 있는 우리 집에서동면의 춘심산촌 농장까지 거리가 10km쯤이다지름길로 가려면 도심을 거쳐야 하므로 수시로 받아야 하는 교통신호에다가긴 대기 차량들 때문에 30분 가까이 걸릴 때도 있다.

그 때문에 아내와 나는 춘심산촌 농장을 자주 가지 못한다하긴 척박한 돌투성이 밭이 춘심산촌 농장의 정체이므로 자주 가지 못한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없다그저 몸 건강을 위해서 가끔씩 바람 쐬는 겸 다니는 거니까.

그래도 춘심산촌 농장의 초기에는 자주 갔었다고추 농사에 옥수수 농사까지 짓느라 제법 바빴기 때문이다그럴 때농사일을 마치고 귀갓길에 샘밭에 있는 콩이랑 두부랑’ 식당에서 사 먹는 얼큰 순두부는 얼마나 맛있었던가.

 

그 콩이랑 두부랑 식당이 우두동으로 이전해서아주 쾌적하고 넓은 식당으로 탈바꿈했다벌써 3년이 지났단다.

3월 7일 오늘한 해의 농사를 가늠하기 위해 아내와 춘심산촌 농장에 와서 일하다가 귀갓길에 우두동에 있는 콩이랑 두부랑에 들렀다여전히 순박한 반찬에맛있는 얼큰 순두부순두부를 먹다 보면 나타나는 바지락조개들의 풍미까지!

주인장인 허태웅 씨가 페친인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해서나는 황송하기 그지없었다그가 다녀간 뒤 아내가 내게 소리 죽여 말했다.

당신이 알게 모르게 유명인사가 되어가는 거라고.”

글쎄.

그냥 춘천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뤄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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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영어가 들린다. 물론 쉬운 초보 영어다.

혼자 텔레비전의 외국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이 떠나가는 상대한테 이렇게 말했다.

“I will miss you."

그 순간 내게 나는 당신이 늘 보고 싶을 거야.’하는 말뜻이 생생하게 전해지질 않던가!

 

영화가 끝난 뒤 나는 ‘miss’란 말의 묘한 어의(語義)에 빠져들었다. miss의 일반적인 뜻은 ‘(무엇을)잃어버림이다. 그런데 영어권 사람들이 그리워하다란 뜻으로 전용(轉用)하는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그렇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누군가를 곁에서 잃어버린 거라는 사실을. 곁에 두고 싶은 누군가의 부재(不在)는 곧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일 수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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