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식력이 좋은 놈들끼리 만나 새끼들을 낳은 건가?

얼마 전부터 주방에 콩알처럼 작은 놈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아내가 두어 번 외마디 소리를 지를 때만 해도 나는 그런가 보다 하다가, 직접 여러 마리를 목격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방치했다가는 주방을 넘어 거실, 나아가서는 안방 건넛방까지 놈들이 득실거릴 것 같은 불안감과 공포.

한 때 식당 사장이었던 친구가 술자리에서 한 말이 기억났다.

때가 되면 식당에 바퀴벌레들이 들끓기 시작하는데 놈들을 단번에 말살시키는 방법이 있지. 하루 날을 잡아, 식당 문이란 문은 테이프로 단단히 붙여 철저히 밀폐시키고 나서 연기를 자욱하게 피우는 거야. 그런 연기만 피우는 물건을 문방구 같은 데에서 팔지. 연기를 매캐하게 피우면 구석구석 숨어 있던 놈들이 그 연기를 못 견뎌 밖으로 기어 나와서는 다 죽어 자빠지지. , 그런 날은 미리 소방서에연기를 피울 거라고 연락해 둬야 해. 그렇지 않으면 화재가 발생한 줄 알고 소방차가 달려오는 일이 생기거든.”

그렇게 나도 우리 집에 연기 한 번 피워볼까 생각했지만소방서에 신고하는 절차도 그렇고 조용한 동네에 괜한 소란을 피우는 듯싶어 단념했다. 대신 바퀴벌레 잡는 약을 사서 해 보기로 했다. 그런 약을 약국에서 판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았다. 약국에 갔더니 과연 그런 약을 팔았다. 한 갑에 7000원이다. 약사가 내게 말했다.

이 약, 아주 잘 듣습니다. 바퀴벌레들이 잘 다니는 길목을 찾아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주방 곳곳에 약을 놓고서 20여 일 지났다. 과연 놀랍게도 놈들이 씻은 둣이 사라졌다. 신통하다는 생각에 갑에 쓰인 설명을 찾아 읽어보았다. ‘특유의 냄새로 바퀴벌레들을 유인한다는 것. ‘약을 먹은 바퀴벌레가 그 약을 다른 바퀴벌레들과도 나눠먹음으로써 함께 죽는다는 설명이 있었다. 놀라운 구충약이었다. 다만 세 달에 한 번은 새로 약을 놓아야 한다는 당부가 첨부돼 있었다.

그렇다. 놈들을 완전히 없앤다는 건 무리였다. 한 번 없앤다 해도 새로 외부에서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놈들과 나는 평생 세 달에 한 번 새로 약을 놓아가며 사는 숙명의 고리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이 반갑지 않은 깨달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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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영악한 놈들인지 모른다.

그저께만 해도 그렇다거실 바닥에서 놈을 목격한 순간 나는 가까이 있는 걸레로 잽싸게 후려쳤다괜히 파리채 같은 것을 찾아 후려치려고 우물대다가는 놈을 놓치기 십상이다놈이 내 걸레에 맞아 단번에 죽어 자빠졌다.

나는 그걸 휴지를 찾아 싸서 버리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혹시 죽은 체하고 있는 줄도 모르니까 다시 한 번 걸레로 후려치자

내 생각이 맞았다다시 후려치려고 걸레를 쳐드는 순간 놈이 후다닥 달아나려 했기 때문이다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놈을 확실하게 때려잡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놈들은 이제 사람의 심리까지 파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한밤중에 갑자기 주방의 전등을 켜면 가까운 틈 같은 데로 쏜살같이 피하는 놈들도 있지만 그런 틈이 멀면 꼼짝도 않고 제 자리를 지킴으로써 마치 바닥에 떨어진 하찮은 물건처럼 보이는 술수를 부리기도 한다그럴 때 그것을 쓸어버리려고 방비를 찾는다든가 하면 그 순간 놈은 잽싸게 달아나는 것이다.

언젠가는 욕조 바닥에서 놈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적도 있었다그 때 욕조 바닥에 작은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놈이 그것을 엄폐물로 삼아 피하기 시작했다놀랍게도내가 항아리 왼쪽으로 발을 옮기면 얼른 오른쪽으로 피하던 것이다사람과 바퀴벌레가 항아리 하나를 가운데 두고 술래잡기하듯 빙빙 돌던 그 기괴한 시간결국은 내가 돌기를 중단하고서 신은 슬리퍼를 하나 벗어서 항아리 너머 놈을 냅다 후려침으로써 일단락을 지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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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모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한 학생을 반 친구들이 이름 대신 에어(air)’라고 부르기에 기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이렇게들 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것이다.

쟤가 수시로 방구를 뀐다니까요.”

당사자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얼마나 재기 넘치는 별명인가. 친구가 방귀 뀌는 것을, 자동차 바퀴가 바람이 빠지는 현상에 빗댄 그 놀라운 언어감각.

그런 빛나는(?) 언어감각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춘기 때 즉 중고등학교 시절에나 가능할 듯싶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다.

같은 반에날그니라 불리는 아이가 있었다. 분명낡은이를 연음(連音)해 부르는 별명인데 암만 봐도 노인네처럼 생기지 않아 의아했다.

어쨌든 기발한 별명이었다. 늙은이도 아닌 낡은이라니. 늙다와 낡다는 사실 출발이 같은 말들이다. ‘오래되어 후줄근하게 된 모습을 뜻하는 어근ᄂᆞᆰ에서 분화되어 음성모음 쪽은 사람에게, 양성모음 쪽은 물건에게 쓰이게 된 거다. 이런 현상을 모음교체라 한다. ‘작다 적다’, ‘ ’, ‘마리 머리 등이 모음교체의 예다.

나는 날그니라 불리는 친구한테 한 번 다가가서애들이 왜 너를 날그니라고 부르니?’묻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졸업했다. 별명 같은 민감한 부분을 물어봐도 될 만큼 친한 사이가 못됐기 때문이다. 졸업 후에도 동창들 사이에서 그 친구는 항상 이름 대신 날그니란 별명으로 불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50년 세월이 흘렀다.

며칠 전 나는 마침내 날그니 친구한테 그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친구와 함께 새 아파트로 가던 늦은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 그에 앞서 어떻게 내가 날그니 친구와 가까워졌는지 밝혀두어야 한다. 4년 전 내가 첫 작품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낸 뒤 모교 운동장에서 동문 친선 체육대회가 있었다. 그 날 날그니 친구가 나를 보더니 이러던 것이다.

네가 책을 냈다는 소식에, 내가 서점에 가서 한 권 샀단다.”

그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잊지 않고 있다가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을 때 내 두 번째 작품집 ‘K의 고개를 한 권 선물했다. 그 바람에 가까운 사이가 된 거다.

 

나도 참 못 말리는 놈이다. 50년 지나 늦은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닷없이 날그니 친구한테 이렇게 물었으니.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왜 친구들이 너를 날그니라고 부르니?”

그러자 날그니 친구가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은, 늘 자기 별명을 해명하고 싶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게 말이다, 우리 동창 중에 안○○가 있잖니? 그 녀석이, 내가 학창시절에 늘 낡은 군화를 신고 다니는 걸 보고 별명 붙인 거야.”

그 간단한 해명이라니. 어쨌든 나는 50년 만에 궁금한 것 한 가지를 풀었다.

 

날그니.

얼마나 부르기 편하고 재밌는 별명인가. 날그니 친구가 학창시절에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노후에 접어들었으니 정말 명실상부한 날그니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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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사랑을 싣고란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등장인물들이 20여년 만에 혹은 30여 년 만에 만나는 장면이 대단한 것처럼 방영되는데나는 그럴 때마다 고작 2, 30년 갖고 뭐 그러나하는 저항감을 어쩔 수 없다. 2, 30년을 넘어 4, 50년 만에 지인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50년 만에 옛 친구이정규를 만났다. 50년만이라고 계산한 근거가 있다. 고등학교 때 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봤으니 말이다.

 

내가 그를 굳이옛 친구 이정규라 하는 까닭이 있다. 춘천에서 같은 초(부속초등학교) (춘천중학교) (춘고)를 다닌 데다가 특히 중학교 때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여태 생생한 추억은 중 2 때 시험공부 한답시고 정규네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일이다.

 

당시 정규네 집은 2층 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층에서 2층으로, 실내 내부계단으로 올라갔다. 허름한 집들이 널린 산동네의 셋방살이 집 아이가,‘실내 계단이 있는, 2층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으니얼마나 놀랐을까. 1965년 당시 춘천은 초가집, 판잣집이 널려 있었고 기와집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런데 2층이나 되는 양옥집에 살던 친구 이정규.

처음에 정규를 뒤따라서 1층으로 들어섰을 때 거실에 정규 아버님이 안락의자에 앉아 계셨다. 정규가 아버님한테 나를 오늘 밤 같이 시험공부를 할 반 친구라고 말씀 드린 것 같다. 그러자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잖아도 엄숙한 실내 분위기에 나는 주눅이 들었는데 정규 아버님은 무섭게 생긴 얼굴이었다. 정규를 따라서 2층으로 오르는 나선형 실내 계단을 밟으면서 나는 얼마나 가슴이 벌벌 떨렸는지 모른다.

 

그런 정규를 며칠 전에 만난 것이다. 50년 만의 해후다. 우리가 반세기 만에 만나게 된 것은, 정규가 젊은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 갔기 때문이다. 나야 한국 땅을 벗어난 적 없이 한평생 살아왔으니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다.

겸사겸사 잠시 귀국했다는 옛 친구 이정규.

술자리에서 다른 친구들과 앉아 있다가, 연락 받고 나타난 나를 반가워하며 이런 말을 해서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미국에서 네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을 늘 보고 있어.”

그랬다고?! 그러면 진작 방문자로서 네 이름을 밝혀놓지 그랬어. 내가 얼른 답 글을 달았을 텐데.”

나야, 네 글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러면서 저 먼 러시아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동창김광준과 내가 페이스북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걸 봤다며 잔잔히 웃었다. 정말 대단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었다. 내가 정말 놀란 것은 정규의 이런 말이다.

요즈음 나라가 어지러워 보여 외국에 사는 교포들이 걱정 많아. 나도 그래.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는 건데 이런 때에 바르게 나아갈 길을 글로써 제시해주었으면 해. 다른 사람들은 못해. 작가들이 할 수 있지.”

무명작가한테 그런 대단한 부탁을 하다니 나는 두 번 소스라쳤다. 정규는 진지한 낯으로 덧붙였다.

정말이야.”

그러면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는 자정을 넘어 헤어졌다. 50년 세월의 강에서, 강가에서 모처럼 상면했는데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나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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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맞는다면, 1990년경 그 설렁탕집은 10평쯤 되는 작은 식당이었다. 위치도 동네 안쪽에 있어서 그다지 눈에 뜨이지 못했다. 하지만 맛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대로변의 유명한 설렁탕집이 된 거다.

맛이 있다는 소문은 설렁탕과 함께 실하게 나오는 깍두기 덕인 게 분명했다. 더러는 산지(産地)의 무값이 천정부지로 뛰어도, 손해를 무릅쓰고 손님상에 올랐다. 그 변함없는 손님 대접에 알아주는 유명 설렁탕집이 되었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1월 초순에 내리는 겨울비다. 이런 날 밤, 지인들과 그 설렁탕집에서 만나 식사하며, 반주로 시작된 술자리를 이으며 나눈 담소는 얼마나 즐거웠던가!

별의별 얘기가 다 상 위에 올랐다. 남을 헐뜯는 험담은 없었다. 술잔이 오가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험담 따위는 감히 기웃거릴 수가 없었다.

언어의 불연속성’ ‘언어에 대한 화가의 입장’ ‘우리나라의 진경산수와 서양의 입체파 그림이 상통하는 문제’ ‘종교와 본능의 문제등 철학적인 얘기부터 기획하고 있는 책의 내용’ ‘선배 작가와 선배 화가의 젊었을 적 일화’ ‘학창시절 있었던 일’ ‘좋아하는 유행가얘기 등 참 즐거웠다.

사람 사는 게 뭔가.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면,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설렁탕을 안주로 즐거운 담소의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 낙이 아니런가.

더구나, 건조한 날씨라 여기저기 잇따르던 화재들을 일시에 잠재우는 겨울비마저 내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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