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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일이다. K가 산짐승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물론 K도 어린 시절에 짐승들이 사람처럼 말하는 만화영화를 본 적이 많았다. 그런 기억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만화영화 속의 짐승들은 자기네끼리, 혹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었지만 요즈음 K가 만난 산짐승들은 불쑥 말을 건네고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럴 만했다. 만났다기보다는 맞닥뜨린 짐승들이었기 때문이다. 뭣 하러 산짐승들이 K에게 다가오겠는가? 멸종당한 호랑이나 늑대라면 모를까, 현재 산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사람이라면 기겁해서 먼저 달아나는 종류들뿐이었다. 성질 사납다는 멧돼지 또한 사람 냄새를 맡으면 먼저 피한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산짐승들이 K와 만나는 경우란 불가피하게 맞닥뜨린 경우밖에 없었다.

맞닥뜨린 산짐승이 K에게 불쑥 말을 건네는 기괴한 사건들.

그 시작은 재수 없게도, 뱀이었다.

 

갑자기 무더워진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K는 땀에 젖어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하산하던 비탈길에서 웬 뱀과 동행하게 되었다.

뱀과의 거리는 이 미터쯤이었다. 끔찍한 대상이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색깔이 화려한 능사 같았다. 뱀이 평탄한 데가 아닌 비탈길을 내려가다니, K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먹이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었을까?

K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동시에 민망했다. 정상적인 여건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동행이었으니까.

뱀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평지였더라면 얼른 그 민망하고 부담스런 동행에서 벗어나련만 워낙 가파른 지형이라 감수하는 모양이었다.

K는 자기가 멈춰 섬으로써, 뱀을 먼저 내려가게 하려 하였다. 하지만 워낙 가파른 곳이라, 멈춰 섰어도 저절로 미끄러지니 딱한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K는 아기 걸음마 떼듯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며 뱀과 동행하는데…… 식은땀이 목덜미로 흘렀다.

우스운 일마저 벌어졌다. 워낙 비탈진 길이라, 내려가는 뱀의 체형이‘S’자나 ‘I'자가 되지 못하고 ''자 형태로 휘고 만 것이다. 꼬리마저 비탈길 아래쪽으로 휘어, 대가리와 함께 질질 미끄러져 내려가는 꼴이었다.

식은땀 나는 공포 속에서도 뱀의 그 꼴에 웃음이 터질 것 같던 K의 복잡한 심경이란.

약 이삼 분 동행하다가K가 하산한 뒤 추정해 본 시간이다. 실제로 느껴지던 시간은 몇 시간 같았다.뱀은 비탈길가의 풀무더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두 뼘 넓이의 좁은 풀무더기라서 꼬리부분은 노출된 딱한 꼴이었다. 꿩이 급히 숨을 때에는 땅에 대가리부터 박고 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꼴에 K가 머뭇거리자 뱀이 불쑥 말했다.

형씨, 나를 못 보았다 치고 어서 그냥 내려가슈.”

기겁한 K는 비탈길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경사도가 완만한 산길에 다다라,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데 방금 전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놀라 경황이 없었다. K는 여전히 정신없이 내달아, 두어 번이나 돌부리에 발이 걸려 고꾸라질 뻔하였다.

산 아래 도로까지 내려온 K는 숨을 헐떡이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뱀이 말을 건 그 무서운 산에서 더 멀어져야 했다.

시내는 이십 여 리 전방에 있었다.

한참 걷다가 시내버스가 오는 소리를 들었다.

K는 버스에 탄 뒤에야 공포감이 다소 진정되었다. 버스 안의 아무나 붙잡고 그 기괴한 뱀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운전하느라 바빴고, K를 제외한 다른 승객이라야 연세가 팔십 돼 보이는 노인 두엇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건을 얘기한다면 귀들이 어두워뭐라고? 뱀이 말을 잡아먹었다고?’같은 엉뚱한 반문을 할지도 몰랐다.

그럼, 집에 가서 식구들한테 털어놓을까?’생각했지만 날마다 산을 다니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된가 보네.’하는 의심이나 받을 것 같았다.

‘2단지 주공 아파트앞 정류장에 버스가 당도했다. K는 뱀이 말을 건 사건을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채, 지친 몸으로 하차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보름쯤 지났다.

다른 산으로 등산을 다니던 K는 또 다른 뱀과 맞닥뜨렸다. 정말 재수 없었다.

먼젓번, 가파른 비탈길이 중턱에 있는 산은 높이가 해발 오백이십 미터였지만 이번 산은 해발 삼백오 미터로 낮은 편이었다. 따가운 땡볕에 연실 흐르는 목덜미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봉우리 가까이 다가간 K는 길게 누워 있는 뱀과 맞닥뜨린 것이다.

하마터면 발로 밟을 뻔했었다. K가 미처 못 본 까닭은, 그 뱀이 봉우리 바로 아래의 길고 좁다란 그늘 속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기어 다니는 뱀한테누워 있었다.’니 표현이 이상하다. 그래도 K는 그 그늘 속의 뱀이 편하게 누워 있다고 느꼈다.

그즈음 K에게 산짐승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겨난 건 아닐까?

그 뱀이 쉴 만한 그늘이 생겨난 건,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조금 기운 오후 시간인 때문이었다.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해야만 등산한 거다.’는 고집을 가진 K였으므로, 그 뱀을 이유로 봉우리 바로 앞에서 뒤돌아설 순 없었다. 결국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뱀과 삼 미터쯤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뱀의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전체 길이는 일 미터쯤 되는데, 뭉툭한 대가리에 갈색과 검은색 무늬가 교차한 몸통이었다. 나중에 집에서 생물도감을 보고 알게 됐지만 먹구렁이였다.

일 이 분은 지났을 것이다. 웬만한 뱀이었다면 사람의 접근을 알아채고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이 뱀은 미동도 않고 K를 뻔히 보며 그냥 누워 있었다. K가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뱀은 눈까풀이 없는 짐승이니 눈을 뜬 꼴로 오수를 즐기던 중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라, 뱀의 처지를.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 그것도 땡볕에 달궈진 후덥지근한 수풀 속을 헤매다가 마침 산봉우리 바로 밑에 시원하게 생겨난 그늘에 다다라, 뜨거워진 체온도 식힐 겸 꿀맛 같은 오수를 즐기는 참이었다. 어디, 뱀이라고 해서 온 종일 쉬지 말고 헤매라는 법이 있던가? 뱀도 사람처럼 당연히 쉴 권리가 있다.

이런 뱀의 오수에 대한 생각들은 K가 나중에 해 본 것이고,‘주위에 자신 말고 아무도 없는 한낮에, 눈앞의 그늘에서 팔자 좋게 쉬고 있는 뱀과 맞닥뜨린 당시K는 참 난감했었다.

K는 생각다 못해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땅바닥에 쿵쿵 굴렀다.

그제야 뱀은 ‘S’자로 꿈틀거리며 부근의 수풀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불평까지 했다.

젠장! 모처럼 쉬는데…… 짜증나네.”

K는 머리털이 한꺼번에 치솟는 공포를 느꼈다. 보름 전 비탈길에서 만난 뱀처럼 이번 뱀도 말한 것이다! K는 마음 같아서는 뒤돌아서 달아나고 싶었다.

봉우리까지 올라야 등산이다는 자신의 등산 원칙을 그 지경에서도 떠올리며 벌벌 떨리는 두 다리로, 그 뱀이 누워 있었던 그늘진 곳을 건너 봉우리에 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배낭에서 수통을 꺼내 물 한 잔을 마시며 유유자적하게 일대의 풍경도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봉우리에 십여 초 서 있다가, 얼른 그 자리를 떠나 하산 길로 들어섰다.

푸른 수풀 속 어디에서 그 뱀이 어이, 잘 가!”하는 것 같아 걸음을 떼는 K의 두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다.

산에서 가장 주의할 때가 하산할 때다. 마음은 다급해도 조심스런 걸음으로 하산해야 했다. 잘못해서 구르게 되면 수풀 속에서 그 뱀이 얼마나 박장대소할까!

산을 다 내려온 듯해서 방심했던 걸까. K는 산기슭의 소나무 등걸에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픈 어깨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시내 쪽으로, 도로를 힘겹게 걸었다. 한창 걷다가 시내버스를 만났다.

버스에 있는 시골 아주머니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볼 정도로 K는 온통 땀에 젖어 빈자리를 찾은 뒤 털썩 주저앉았다.

 

맞닥뜨린 뱀이 불쑥 말하는사건들을 연이어 겪자 K는 등산을 중단했다.

좁은 아파트에 틀어박혀 지냈다. 등산으로 소일하던 K로서는 참 답답한 날들이었다.

아파트 단지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다. 해발 몇 미터라고 말할 것도 없이 작은 산이지만 그래도 꼭대기까지 다녀오면 삼십 분은 충분히 지나갔다. 땀도 제법 났었다.

K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동산을 다녔지만 퇴직한 뒤로는 갈 수 없었다.

딱 한 번 갔었다. ‘종일 아파트에 틀어박혀 텔레비전이나 보는 생활에 지친, 퇴직 후 한 달쯤 되던 평일이었다. 애써 용기를 내 갔는데 막상 동산 어귀에 다다랐을 때, 애들이 잘 쓰는 말로 쪽이 팔려서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바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라고는 K밖에 없었다.

그 날로 동산 다니기를 단념했고, 생각던 끝에 이삼십 리 근교의 산들로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등산 채비도 하고, 시내버스도 이십여 분은 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근교 산을 다녀오면 하루가 잘 갔다. 땀에 젖은 몸을 찬 물로 샤워하고, 뒤늦은 점심을 차려먹은 뒤 노작지근한 몸을 낮잠으로 푸는 맛이 괜찮았다.

그러기를 이 년째.

평일에 혼자 근교 산을 다니는 호젓한 맛에 빠져드는가 싶었는데 이상한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면서…… 다시 방 안에 죽치고 앉아 텔레비전이나 보며 소일하는, 퇴직 직후의 딱한 꼴로 되돌아온 것이다.

가족 중 누구도 K의 딱한 처지를 알 리 없었다. 가족이라고 해야 아내와 딸뿐이다. 아들은 군대 가 있다.

아내는 어느 식당에 주방 일을 다닌다. 재작년 봄에 대학을 졸업한 딸애는하루 종일 여러 가지 알바를 하느라고 바빠 보인다. 대학원 갈 등록금 마련이 목적이라는데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K가 지난 해 봄 직장에서 구조조정으로 퇴직된 후 생긴 가족들의 변화였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조차 재직 때 잘못 선 보증으로 다 날아가자, 각자 알아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대학 일년생이던 아들애까지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집의 생활비를 덜었다.

K는 산에서 겪은 놀라운 뱀들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각기 바삐 사느라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면서 가족 간 대화가 사라졌는데 모처럼 꺼낸 대화가 뱀이 불쑥 말을 건넸다는 이야기라면 어느 누가 화답할까?

어쩔 수 없었다. K는 늘 그랬듯 침묵하며 지내는 게 좋았다. 그러잖아도 가족들은 가장(?)이 재취업 의욕도 보이지 않고 산이나 다니는 데 불만들이 많았다.

 

보름이 지났다.

소나무 등걸에 부딪쳐 멍들었던 어깨도 좋아지자, 답답한 아파트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삼십 분 뒤인, 열시 반에아들애 방에서 나온 K는 혼자 아침밥을 차려먹고 등산 갈 채비를 하였다.

아들애가 자원입대하며 비워진 방에서 K는 혼자 지내는 것이다.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도 그 방에 갖다 놓고 지낸다. 텔레비전을 볼 여유도 없어 보이는 다른 가족들이었다. 안방은 본의 아니게 아내의 독차지가 되었고 딸애는 제 방이 있었다. 남은 가족 세 사람이 방 하나씩 쓰는 셈이었다.

K의 배낭 속에는 냉수를 담은 수통과 건빵 한 봉지가 들어 있다.

오늘은 발코니를 뒤져, 예전에 장만했던 등산용 알루미늄 지팡이도 찾아 들었다. 뱀들과 잇달아 맞닥뜨리자, 호신용으로 챙긴 것이다.

시내버스를 탔다.

더욱 푸르러진 비탈길 산, 아래 정류장에서 내린 뒤 지팡이를 쥐고 등산을 시작했다.

해발 오백이십 미터 봉우리까지 올랐다 하산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설모 다람쥐 까치들이 눈에 띄고, 고라니 같은 게 숲속에서 후다닥 달아나기도 했지만 별 일은 없었다.

그럴 만했다. 산짐승들과 사람이 맞닥뜨리는 일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보름 간격으로 뱀들과 맞닥뜨린 사실은 어떻게 된 것일까? K는 세 가지 원인으로 분석해 보았다.

첫째, 뱀이란 존재는 다른 산짐승들에 비해 움직임이 느린 짐승이었다. 다른 산짐승들은 사지가 있어 사람과 맞닥뜨릴 것 같은 순간 잽싸게 달아날 수 있지만 뱀은 그렇지 못했다. 몸통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이동할 뿐이니, K와 본의 아니게 맞닥뜨리기도 했다는 형태적 시각의 분석이다.

둘째, 뱀과 맞닥뜨릴 때마다 몹시 무더운 날씨였다. 그런 날씨에는 산새들도 지저귀지 않고 나무그늘에서 조용히 쉬었다. K가 이 년째 산을 다니며 깨달은 사실들 중 하나다. 장끼 정도가 까투리들한테 존재감을 과시하듯 꿔엉!’ 하고 울 뿐, 대다수의 산새들은 나무그늘을 찾아 조용히 쉬고 있었다. 새라고 해서, 쉬지 말고 종일 지저귀라는 법이 있는가?

무더운 날씨일 때 변온동물인 뱀은 오죽 힘들까.

먹이구하기도 멈추고 시원한 그늘을 찾아 오수를 즐기거나, 너무 무더운 탓에 제 정신을 잃고 가파른 비탈길로 잘못 들어서거나, 했다가 K와 맞닥뜨린 것이다. 기후변화에 원인을 둔 분석이다.

셋째, K가 산에 오르는 날들이 하필 평일이었다.

주말마다, 전국의 산에는 검은 등산복들을 단체로 맞춰 입은 것 같은 직장인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명산들은 물론이고 도심 근교의 산들까지 주말에는 일주일 간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냄새로 넘쳐났다. 산짐승들이 그런 주말이면 본능적으로 조심해 지내리라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K는 평일에 혼자 조용히 산을 다니니, ‘사람들이 붐비는 날이 아니니까 마음을 놓아도 되겠지.’생각하며 해이해져 있던 뱀들과 맞닥뜨리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이 마지막 분석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K는 스스로 폄하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며칠 후, ‘먹구렁이가 오수를 즐기던 산에 오르다가 꿩 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물론 평일이었다. 주말이었다면 많은 등산객들이 졸지에 고생했을 것이다. 오후 들어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침 K는 시내버스에서 내린 직후여서 정류장 건물에서 소나기를 그을 수 있었다,

비가 그치자 K는 등산을 시작했다. 산길이 질퍽거리고 젖은 풀잎들이 발목에 차여, 다른 등산객이었더라면 등산을 단념하고 귀가했을지도 모른다. 귀가해도 딱히 할 일이 없는 K였기에 등산을 강행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조심스레 산을 오르던 K는 봉우리가 보이는 오솔길에 이르렀을 때 꿩 가족과 맞닥뜨린 것이다.

좁은 오솔길을 어미인 까투리가 막 건넜는데 새끼인 꺼병이들이 미처 뒤따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K가 갑자기 나타난 탓이었다. 하긴, 소나기까지 내린 평일 오후에 등산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안전한 수풀 속에서 새끼들과 잘 지내던 꿩 가족이 마음 놓고 바깥여행에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사람의 등장에 놀라 좁은 오솔길을 넓은 횡단보도인 양 건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꺼병이들과,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까투리. 애타는 장면을 얼떨떨하게 지켜보고 선 K에게 까투리가 불쑥 말했다.

좀 봐 주세요. 우리 애들 길 좀 건너게요.”

흉측한 생김의 뱀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K는 난데없는 까투리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소름끼치지는 않았다. 아무 동작도 않고 장승처럼 서 있음으로써, 까투리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꺼병이들이 부리나케 오솔길을 건너 어미 곁으로 가더니 함께 숲속으로 사라졌다.

예전의 K였더라면 까투리와 꺼병이들을 잡으려고 난리쳤을지 모른다. 잡아 봐야 제대로 요리해 먹을 수도 없으면서, 피 끓는 수렵본능에 피투성이 참극을 저질렀을 게다. 그러나 이 년째 산을 다니면서 K는 자신도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K는 꿩 가족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봉우리에 올랐다. 소나기에 한층 푸르러진 주위 풍경을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빗물에 젖은 하산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지팡이를 짚어가며 한 발 한 발 내려오다 결국 젖은 돌에 미끄러져 진창길에 주저앉았다.

과연, 우천 시에 등산하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뱀들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뱀들은 소나기에 체온이 저하되자, 바위 아래 같은 데 들어가 어서 볕이 쨍쨍 나기만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K는 진흙 묻은 바지와 등산화를 냇물에 닦으며 뱀들의 처지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참 이상한 K의 변화였다.

 

꿩 가족들을 본 지 두 달이 돼가도록, 산짐승들과 맞닥뜨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초가을로 접어들며 날씨가 쌀쌀해지자, 뱀들이 지난여름처럼무더위에 지쳐 아무 데서 오수를 즐기거나 길을 잘못 들어 비탈길로 들어서는 등의 허점을 보일 리가 없었다. 머지않은 겨울을 대비해 겨울잠에 필요한 영양분을 축적하려고 먹이 사냥에 바쁠 참이었다.

그래서일까, K는 평탄한 산길을 가다가뭘 물고 부리나케 가로질러가는뱀을 보게 되었다. 몸 무늬가 아름다운 작은 화사였다. 놈은 작은 아가리 넘치게 송장메뚜기 한 마리를 물고 있었다. 모처럼 잡은 먹이를 남한테 뺏기지나 않을까, 꿈틀거리며 달아나느라 아주 바빠 보였다.

K는 어처구니없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그깟 송장메뚜기를 탐한단 말이냐?’

놈이 이런 말을 하며 수풀 속으로 달아난 듯도 싶었다.

이거, 내 꺼야!”

급히 스치는 풀잎들 소리에 뱀이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길 가는 행인이 K에게 뭐라고 떠들며 급히 지나간 경우처럼.

다시 며칠이 지났다.

K는 비탈길 산에 올랐다가 이번에는 깃털 화려한 장끼를 만났다.

먼 산부터 가까운 산까지, 밀려오는 파도들처럼 보이는 벼랑 위 넓적한 바위에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이 바위는 봉우리에서 비탈길로 내려가기 직전에 있다.

K가 먼 풍경을 바라보다가 어떤 느낌에 뒤돌아봤더니 장끼 한 마리가 삼사 미터, 싸리나무와 철쭉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었다.

K와 장끼는 서로를 보았다. 장끼는 눈이 대가리 전면이 아닌 측면에 있으니,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K를 보았다. 뱀이었다면 기겁했겠지만 꿩이니까 K는 편안한 마음으로 대면했다.

잠시 후 장끼가 고개는 그대로 두고 몸통만 뒤로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가 보겠습니다.”

마침내 고개까지 뒤로 돌린 장끼가 철쭉나무 아래로 사라져갔다.

K도 고개를 돌렸다. 다시, 밀려오는 파도 같은 산들을 바라보다가 바위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레 비탈길을 내려왔다. 지난여름, 동행하던 뱀이 어줍게 숨던 작은 푸른 수풀더미도 이제는 누런 건초뭉치로 변해 있었다.

나무마다 단풍든 잎들을 점묘화의 점들처럼 조용히 떨어트렸다.

K는 낙엽 지는 가을 속에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높은 나무 위의 까마귀들, 산길에 떨어진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들, 청설모들이 K를 볼 때마다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 사람, 오늘도 왔네.”“그러게 말이야.”“저 사람은 해코지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 걱정할 것 없어.”“맞아 맞아.”“웃기고 자빠졌네. 저러다가도 갑자기 해코지할지 모른다고!”“무슨 쓸 데 없는 소리!”

K는 어이없어 발길을 멈추었다. 산짐승들은 이내 숨죽이고 K의 눈치를 살폈다. 긴장된 침묵의 공간을 K는 지팡이로 가볍게 저은 뒤 다시 산길을 걸었다. 산짐승들이 등 뒤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깊어가는 가을 산을 K는 말없이 다녔다.

주로 비탈길 산을 다녔다.

비탈길 산 등산은 봉우리 아래 넓적한 바위에 앉아 쉬며, 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지팡이의 뾰족한 끝이 닳아 무뎌질 무렵 밤새 찬 서리가 내렸다.

오늘, 웬 일로 이른 아침부터 비탈길 산을 오르는 K였다. 워낙 된서리라 부근 풍경은 뿌옇기만 했다. 서리에 산길 바닥의 낙엽이 축축하게 젖어, 미끄럽기까지 했다.

산길 위로 뻗은 잣나무 가지 위에 청설모 한 놈이 앞발을 모으고 앉아, K를 지켜보았다. 된서리로 뭉개진 주위 풍경 속에서 놈은 마치 연극무대에 혼자 등장한 주인공 같았다.

조심성이 있는 놈이라면 K를 본 순간 다른 높은 가지로 이동해야 했었는데…… 가까이 다가오는 K를 미동도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K는 놈의 검정콩 같은 두 눈알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놈을 때려잡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도 놈은 겁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늘 말없이 지나다니기만 하는 K를 믿은 것일까?.

서로 눈길이 마주치자 놈이 말했다.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어요?”

K는 가슴이 아팠다. 맞는 말이었다. 오전 열한 시는 넘어서 오르던 산길을, 오늘은 여덟 시도 되기 전부터 올랐으니. 된서리에 해가 보이지 않을 뿐 이른 아침이었다.

딸애가 이상해져서 집에 있지 못하겠더라고……

라는 말을 털어놓으려다 창피하단 생각에 K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없이 청설모가 앉아 있는 그 나뭇가지 아래를 지나갔다.

지나간 뒤 생각했다. ‘내가 그 말을 청설모 놈한테 털어놓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랬다가는, 놈이 놀라 다른 나뭇가지 위로 부리나케 달아났겠지. 그 사연에 놀란 게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내 말소리 때문에. 워낙 조용한 산길이니까.’

초여름 비탈길에서부터 듣게 된 산짐승들의 말은 실제가 아니라 이심전심의 현상이었음을, K는 깨달았다.

맞닥뜨린 상황에서나 이루어지는 이심전심의 의사전달. 게다가 항상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오늘 꼭두새벽에 K의 아파트에서 있었다.

노화의 한 증상인지, 오줌이 마려워 잠에서 깨니 새벽 두 시쯤이었다. 화장실로 가려고 방에서 나오던 K는 마침 현관문을 열고 귀가하는 딸애와 맞닥뜨렸다. 빛 감지 센서기능으로 잠시 켜진 현관의 전등불빛에 딸애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겼다. 잔상으로 남은, 난한 눈 화장에다가 새빨갛게 칠한 입술.

한 집에 있어도 오랜만에 대면한 부녀간이었다.

어둠 속이지만 소주 냄새도 났다. K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었는데 그 때 딸애가 말했다.

아빠. 저를 뭐라고 나무라지 마세요.”

사실, 딸애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딸애는 어둠 속에 잠시 서 있다가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 도대체 이 시간에 어떻게 된 건지, 얘기 좀 들어보자.”

하는 말을, 딸애한테 하고 싶었으나 그만 두었다. 부모 자식 간 대화를 잊은 지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대화를 잊었다.

몇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나오는 아들애도 밖에서 술친구들을 만나다가 귀대한다. 그럴 때만 K는 안방에서 아내와 잔다. 아들애 방을 비워줘야 하니까.

아내와 K만 같이 잔다.

K는 심란한 생각들에 더 이상 잠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이른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와 버린 것이다.

지금은 낡은 주공 아파트이지만, 삼십 년 전 K가 육백만원을 주택은행에 납입하고남은 융자금 육백만원을 이십 년에 걸쳐 갚는 조건으로 장만했을 때만 해도 이 도시에서 알아주는 명품 아파트였다. 노총각이지만 성실한 K를 믿고 맞선본 아내가 결혼에 응했다. 신혼살림을 차린 뒤 애들도 낳았다.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이었다. 그렇게 낳으면 백 점 만 점이라며 직장 동료들이 축하주를 내라 해서, 십팔 평 아파트 안 가득히 아내가 술상을 차려놓고 대접도 했었다.

그런 때가 있었는데…… 아들딸이 귀여워 주말에는 항상 데리고 놀러 다녔었는데 어쩌다 이리 된 걸까?’

K는 배낭에서 건빵을 꺼내어, 아침식사로 우물우물 씹어 먹으며 비탈길 어귀에 다다랐다.

듬성듬성 선 나무그루들을 마치 타잔처럼, 건너뛰어 잡으며 비탈길을 올라가야 한다. 실수하면 비탈길 아래로 굴러 몸을 심하게 다칠 것이다. 여자들이 이 산을 등반할 엄두를 못내는 까닭이 바로 이 험한 비탈길 때문이다.

딸애는 굴러 떨어지는, 험한 세상살이에 들어선 것일까.

보름 전 일이다. K는 거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비우려다, 캡슐 형 알약 몇 알을 발견했다. 소화제나 아스피린은 아니었다. 이상한 생각에, 나중에 그 알약을 약국에 알아봤더니 피임약이라 했다.

아들애가 휴가 나올 때 여친과 잠잘 생각으로 마련했다가 흘린 거겠지. 휴가를 나와도 집에서 잘 때가 많지 않았으니 말이야. 착한 내 딸애가 흘렸을 리 없어…….’

늘 오르던 비탈길이라, K는 습관적으로 나무그루들 사이를 건너뛰며 이런저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순간, 나무그루를 놓친 K는 아래로 구르다 바위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까마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일 년 전 이맘때였다. K가 예전의 직장 동료를 만나 저녁 식사 겸 술 한 잔을 나누려고 식당가를 함께 돌아다니다가 아내를 본 것이다. 아내는 어느 식당 앞에 서 있었다. 동료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 둘과 서쪽에 있는 건물들 사이로 비치는 한 줄기 저녁 햇볕을 쬐려는지 식당 문 앞 가에 서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저녁 날씨였다.

늦가을은 초겨울의 문턱이다. 아내는 흰색의 얇은 종업원 옷차림으로 쭈그리고 서서 두 손을 비비고 있다가 K와 눈길이 마주쳤다.

K는 고개를 돌려 다른 식당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순간 아내가 내뱉는 말이 K의 귀에 들렸다. 아니, 귀에 들렸다고 K는 생각했다.

무능한 작자!”

그 날부터 K의 별난 이심전심 현상이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식당 앞에 춥게 서 있던 아내 모습이 잠깐 떠오른 뒤 K는 아득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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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한테 그 여자 얘기를 하려 하네. 오해는 말게, 내가 그 여자와 무슨 썸씽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야. 단지 그 여자의 죽음에 대한 얘기이지.

물론 내가 죽인 것은 아니야. 그런데도 그 여자의 죽음에 내가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망설이다가, 자네한테 얘기하기로 마음먹은 거네. 그러니까 혹 지루하더라도 다 듣고 나서 자네의 의견을 말해 주었으면 하네. 그뿐이네.

 

그 여자와 나는 한 동네에 살았네.

아니, 아무래도 부족한 표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다시 표현하겠네.

그 여자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한동네에 살았네.

여기서, 우리 동네에 대해 잠깐 설명해야겠네. 우리 동네는 50여 채 집들이 들어선 단독주택단지라네. ‘근린생활시설이라는 규정 아래 건축을 허용했기에 3층 집들을 지어서 1층은 상가나 사무실로 세를 주고 2, 3층에 주민들이 살지. 그 중 2층은 대개 둘로 나눠 두 가구에 전세를 주고 3층은 집 주인이 혼자 쓰는 형태가 대세야.

우리는 3층에 살아. 그러니까 집주인이지. 그 여자네는 어느 집 2층에 사는 세입자이지.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느 집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네. 그 여자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없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한 동네에 산다는 것을, 그 여자네가 어느 집 세입자라는 것을 아느냐고?

그 여자네 아들과 우리 아들이 친한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알게 된 거지.

지금은 대학생들이지만 우리가 이 동네에 집을 짓고 이사 오던 때만 해도 두 아이는 인근의 같은 초등학교 어린이였지. 우리 아들이 3학년 때 전학 와서 배정된 학급에 그 아이가 있었던 거야.

한동네에 사는데다가 성격도 맞았던지 둘은 금세 친해진 듯싶더라고. 시험기간이 닥치면 서로의 집에 번갈아 묵으며 함께 밤새워 공부하기도 하는데, 부모 된 심정으로는 괜스레 장난치며 시간을 낭비할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런 일도 없이 둘 다 상위권 성적을 보였어. 말하자면 둘 다 양순한 모범생 단짝인 거지. 그러니까 우리 아들도 그 집을 스스럼없이 다녔고 친구 애 역시 우리 집을 가족처럼 드나들었나 보네.

그런 어느 날 그 애 집을 다녀온 아들 녀석이 문득 이러는 거야.

아빠, 걔네 엄마가 이걸 묻던데? 너희는 3층을 혼자 다 쓰느냐고.”

다소 이상한 얘기라 나는 귀 기울였네.

그래서?”

그렇다고 답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내쉬는 게 무척 부러운 모양이시더라고

그런 말을 전하면서 득의양양한 녀석의 얼굴 기색이라니……. 녀석은 뒤늦게 우리가 3층을 넓게 다 쓰는, 잘 사는 건물주란 걸 깨달으면서 어린 마음에 신이 났던 거야.

그 때 내가 처음으로 그 여자란 존재를 의식하게 된 듯싶으이.

우리 집 형편을 부러워하는 여자로구나, 그래서 짐작되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물어 봤지.

걔네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라더냐?”

초등학교 선생님이래. 먼 시골에 있는 학교라서 차로 날마다 장거리 통근 하신다던데.”

걔네 엄마는?”

아무 것도 안 하셔, 그냥 집에서 지내시는 것 같아요.”

짐작이 맞았지. 여자네는 혼자 버는 집인 거야.

자네가 알다시피 우리 집은 맞벌이로 자리 잡은 경우이지. 내가 성장과정에서 워낙 궁핍하게 살아왔기에 결혼하면 반드시 맞벌이해서 잘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같은 교사인 아내를 중매로 만나 결혼한 것이거든. 한 사람 봉급은 없다 치고 몽땅 저금하면서 부부교사 13년 만에 3층 집을 지은 것이니, 성공한 셈이겠지.

집을 짓고 입주한 직후에 툭하면 한밤중에 밖으로 나와, 높이 선 어둠 속 우리 3층 집을 여러 번 올려다보며 건물주라는 것을 실감하려 애쓰던 기억이 있네. 화장실이 두 개나 있고 방이 세 개나 있는 34평 한 층을 우리 네 식구가 다 사용한다니 꿈만 같았지.

비좁은 서민 형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막 벗어났거든.

그래서…… 17평 정도의 방 두 개에 세 들어 사는 그 여자는 우리 집에 대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더구나 여자네도 우리처럼 아들 하나, 딸 하나까지 네 식구라니 말일세. 공교롭게도, 한동네에 살면서 식구 수도 같으니 비교가 되면서 그 여자는 한숨까지 내쉬었나 보네.

물론 이런 분석도 지금에야 해 본 것이지,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네. 그리고 이쯤에서 내가 두려운 것은, 혹 자네가 내 얘기를 듣다가 이 자식은 삶의 수준을 오직 평수로만 계산하는 저질이구먼!’하고 실망할까 두렵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네. 단지 그 여자의 죽음에 대한 내 입장을 해명하려다 보니 그렇게 얘기가 전개되고 만 것이네. 깊은 양해를 바라네.

 

그렇게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전하는 말로써 그 여자를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여자를 보지도 못했고 어느 집에 사는지도 알지 못했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내가 워낙 고된 인문계고교 교사생활을 하니까 그럴 심적 여유가 없었다고 봐야지. 격일로 야간자습 지도까지 하느라 밤 11시에나 귀가하는 생활이었으니 말일세.

아내는 비교적 시간의 여유가 있는 중학교 교사이지만 집안 살림까지 하느라 도통 쉴 새가 없었고.

그러니 초등학교 4년 동안(우리 아들이 3학년 때 이사 왔으니까) 아들들끼리 수시로 오가는 사이인데도 우리 부부는 그 여자네 집이 어디인지 몰랐던 거야. 같은 동네의 어느 집 2층일 거라는 인식은 있었으면서도 말이지. 각자 바삐 사는 시대라 하지만 우리 부부가 너무 무심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제 뒤늦게 드는구먼.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생활수준의 차이가 나니까 집안끼리 왕래하기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네. 맞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여자네 집과 우리 집이 집안 간 왕래를 갖지 못한 것은 알게 모르게 그런 생활수준의 차이가 벽으로 작용했던 것일 거야.

우리 쪽만 무심한 듯 지냈던 게 아니라 그 여자네 또한 무심한 듯 단 한 번의 방문도 없었으니 서로가 암묵적으로 그런 벽을 시인하고 지낸 게 아닐까?

 

얼마 후 아들들이 인근의 중학교까지 함께 진학하게 되었지.

선지원 후 추첨을 해서 중학교를 배정하는 방식이라 운이 나쁘면 먼 데 있는 다른 중학교로 배정받을 수도 있었거든. 그래서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스레 두 아이는 인근의 같은 중학교로 배정되었던 거야.

아들이 가까운 학교로 계속 다니게 되었다는 것만도 복 받은 일인데 양순한 모범생 단짝과 변함없이 등교한다니 정말 이 동네에 자리 잡기를 잘 했다는 자찬이 절로 나오더군. 그렇게 중학교에 입학한 지 보름쯤 지나서인가 아내가 신입생 학부모회의에 갔다가 그 여자를 처음으로 만났다는 게 아닌가.

아내가 다른 건 몰라도 첫 학부모회의는 꼭 가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간신히 수업을 돌려놓고 가서 참석했는데 거기서 그 여자를 만났다는 게야. 내게 전하는 아내의 말은 이랬어.

전체 학부모회의가 끝난 뒤 반별 모임으로 흩어질 때 어떤 여자가 다가와서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시냐고 묻더라고. 그렇다고 답했더니 자기가 바로 같은 동네 단짝 친구의 엄마라고 밝히는 거야. 얼마나 반가웠던지! 내 얼굴에 낯익은 모습이 서려 있어서(웃음) 그럴 거라 짐작하고 인사 왔다는 거야. 우리는 각기 반이 달라서 긴 얘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언제 한 번 꼭 시간을 내어 부모들끼리 만나자고 약속을 했지.”

그 엄마는 아들을 닮지 않은 모양이지?”

그래, 그 아이는 가냘픈 얼굴이지만 엄마는 수더분하고 둥글둥글한 게 맏며느리 생김이었어.”

그렇게 모처럼 한 번 꼭 시간을 내어 부모들끼리 만나자던 약속은 3년 뒤에나 이루어졌다네. 그러니까 한동네에서 산 지 7년여 만에 부모들끼리 얼굴을 봤다니깐.

 

글쎄, 얘기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우리 부부가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네. 우리 부부는 그 여자네를 무시한 적도 없을뿐더러 그냥 살기 바빴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싶네. 지나간 세월을 한 번에 묶어서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런 문제점이 응축되어 나타난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비유하자면 넓은 바닥에 희미하게 서린 습기를 손바닥으로 한 번 쭉 훑자 보이지 않던 물방울이 축축하게 잡힌 식이라는 거지.

아니, 더 이상의 변명은 하지 않겠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제 아들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이번에는 영수학원도 같이 다니게 되었네. 밤낮으로 함께 공부하는 사이가 된 거지. 초등학교까지는 가끔씩 학습 준비물을 마련할 때나 푼돈이 드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매학기 등록금에다가, 매달 학원비까지 제법 돈이 들기 시작하는 거였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 도시에서는 명문고로 손꼽히는 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고입경쟁이 치열하지 않은가. 그러니 성적 상위권의 중학생들이라면 학교 공부와는 별도로 과외를 받거나 영수학원이라도 다니는 게 일반화되어 있지.

우리 집은 아들 위로 제 누나가 이미 고등학교를 다니는지라 학비가 두 배로 들기 시작했지만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생활해 나갔는데 그 여자네 집은 아무래도 생활비 부담이 컸을 것 같네. 게다가 여자 네는 딸애가 아들애의 한 살 아래였으므로 1년이 지나자 중학생이 둘인 집이 되었던 거야. 그러니 무척 힘들었을 수밖에.

그런 상황을 짐작케 하는 일이 그 즈음에 있었네. 아내가 외출했다가 우연히 그 여자를 보면서 벌어진 사건이지. 아내의 말로는 잠깐 은행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거리로 나왔는데 그 여자가 있었다는 거야. 아내의 말을 옮기자면 이런 내용이었네.

거리 모퉁이에 무슨 시제품인가 준다며 파라솔 하나 펼쳐놓고 서서 행인들한테 상품을 홍보하는 웬 직원들이 있었어. 내가 그 쪽으로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여직원 하나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 길가 건물로 들어가 버리더라고. 언뜻 옆모습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걔네 엄마더라니까. 사실, 그 엄마가 그냥 그 자리에 다른 직원들과 있었더라면 나는 몰라보고 그냥 지나쳤을 거야, 워낙 평범한 얼굴이니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눈에 띄게 움직이니까 알아본 셈이지.”

괜히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니야?”

아니야 분명해, 내가 눈썰미가 있거든.”

우리 부부는 더 이상 그 얘기를 진행하지 않았네.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날이 갈수록 서민들이 살아가기 힘든 경제난의 시대가 아닌가. 우리 동네도 이른 바 학군 하나는 좋은 동네이지만 상 경기는 싸늘해져서 1층에 있는 상점이나 사무실들이 하나 둘 망하는 바람에 1층을 빈 채로 두는 집들이 늘어가는 판이거든. 남편 혼자 벌어서 애 둘의 학원비까지 대며 살기에는 너무 힘든 시대인 게 분명해.

나는 묵묵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이런 한 마디를 아내한테 했던 기억이네.

걔네 엄마를 그렇게 봤다는, 이런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마.”

당신도 참, 내가 그렇게 생각이 좁은 줄 알아? 그런데 말이야, 걔 엄마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세상인데 왜 그리 놀라서 숨고 그러지?”

 

그게 아마도 아들들이 중학교 2학년 적의 일이지. 1년여 후에 마침내 우리 부부들은 만나게 되었다네.

아들들이 무난하게 이 도시의 명문고에 합격한 직후의 일이었지. 만남의 시작은 여자네 남편 분이 우리 집으로 전화를 한 거였어. 그날은 내가 마침 보충수업(겨울방학 중 보충수업)도 없어서 집에서 쉬는데 전화벨이 울린 거야. 수화기를 들었더니 약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인사하더군, 이렇게.

전화로 불쑥 인사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그 집 아드님 단짝 친구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아이구, 반갑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 드렸어야 하는데…….”

아이고, 말씀 좀 낮추세요. 제가 한참 어린 사람이거든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 아버님도 교사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장거리 통근을 하신다면서요? 무척 힘드시겠어요.”

뭐 찻길이 좋아져서 다닐 만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전화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용건인즉 이러했다. ‘이제 3월부터 아들들이 다닐 고교가 우리 동네에서 먼 데 있어서 그게 문제다. 그냥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보면 몸도 지치고 공부에도 손해를 볼 것 같다. 그래서, 아들들을 자가용차로 실어 나르는 통학에 대해 논의할 겸 만나 뵈었으면 한다.’

그래서 부모들끼리 정식으로 인사도 나눌 겸, 근방의 가까운 생맥주 집에서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한 거지. 눈이 녹아 얼어붙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서 그 생맥주 집을 찾아갔더니 여러 손님들 중 어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흔들어 아내를 맞더군. 그 여자였지. 과연 둥글둥글하고 수더분한 생김이더군. 물론 남편 되는 그도 함께 일어나서 나에게 몸을 숙여 악수를 청하는데 어쩜, 그 아들이 고대로 늙으면 이런 생김일 거라는 모습인 거야. 가냘픈 턱의 선에다가 선한 눈웃음까지…….

우리는 아들들의 명문고 합격부터 자축한 뒤 생맥주잔을 비우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나누었다네. 나는 다른 술은 못 마셔도 생맥주 하나는 좋아해서 500cc 너덧 잔은 기본이었는데 그 여자 또한 그렇게 잘 마시더라고. 자기 남편이 고작 반잔에 벌겋게 취하자, 그 때부터 술에 약한 남편을 내조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남편 술잔부터 갖다가 비우더라니까.

역시 술을 한 방울도 못하는 아내가 그런 나와 그 여자를 보고서 두 분이 따로 다른 테이블에서 마셔야겠네요.’해서 모두 한바탕 웃기도 했지.

그가 나를 교직의 대선배 되실 거라 하여 나이를 따져보니까 딱 15년 차이가 나더라고. 그럼에도 동기인 아들들이 있는 것은 내가 만혼이었고 그는 조혼인 때문이었어. 33살 만혼에 37살이란 늦은 나이에 얻은 게 우리 아들이라면 그는 21살에 결혼하여 22살에 얻은 첫아이가 아들인 거야.

교육대학이 2년제일 때 졸업과 동시에 초등교사 발령을 받았고, 발령받고 나가자마자 결혼했다는 거야. 그러니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생맥주 한 잔도 다 못 비우고 수줍게 웃기만 하는 그와, 거침없이 술잔들을 비우며 환담을 이끌어가는 그 여자는 언뜻 성별이 뒤바뀐 착각마저 주었지. 그러나 뜻밖에도 두 사람의 매우 이른 결혼을 주도한 것은 그였으니, 정말 놀랄 일이지.

다소 길 수 있지만 그 여자가 생맥주에 취해서 늘어놓은 결혼에 이른 얘기를 이제 전하겠네. 그 얘기는 이상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3년여 뒤 그 여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놀라던 밤에 다시 선하게 떠오르더라니까. 마치 다큐멘터리 영상에 깔리는 해설처럼 말일세. 그 얘기는 이러했네.

이 이가 이렇게 숫기도 없고 여려 보여도 끈질기기가 보통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시작해서 만 5년간을 저를 따라다닌 셈이에요,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말이지요(웃음).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내가 사실 그리 이쁜 얼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나를 보기만 하면 좋아서 말없이 마냥 따라 오더라니깐요. 정말 이상한 남자 아이였어요. 산골에서 나와 자취하며 학교를 다닌다는 남자 아이가 그런다니, ……. 작은 읍이지만 남 고등학교와 여 고등학교로 따로 나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을 통해서 알아 봤더니 공부도 아주 잘하는 애라는 거예요. 거의 톱이라 하더군요. 그러니까 싫지는 않더라고요(웃음). 그렇다고 좋았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그랬어요. 남자애가 뭐 박력도 없고 그저 말없이 따라다닐 뿐이니, 내가 딱히 무슨 감정을 가질 수도 없잖아요? 그러다가 졸업한 뒤 교대를 갔다는 소문만 들리고 2년인가 통 소식이 없더니 불쑥 3년째 되던 해 봄날 저희 집을 찾아온 거예요.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제가 현재 국민학교 교사입니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라는 거지요. 그러니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사전에 나와 무슨 약속이 있었거나 만났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여자 마음이라는 게 묘해서 그제야 이 이가 박력 있는 남자로 보이더라니까요. (웃음) 그래서 곧바로 결혼하게 되었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즈음 집안 농사일을 거드느라고 무척 힘들었거든요(웃음). , 우리 결혼 얘기만 잔뜩 늘어놓았네. 그래, 두 분은 어떻게 결혼하게 되셨어요?”

그렇게 엉뚱한 결혼 얘기들이나 나누다가, 헤어질 무렵에 가까스로 아들들의 자가용차 통학 문제를 논의했지. 그 여자가 맥주 마시며 얘기하는 품을 보면 두어 시간은 가능할 술자리였지만 그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급히 그 문제를 논의하고 헤어진 거야.

 

마침내 3월이 되면서 아들들의 자가용차 통학이 시작되었네.

아빠들이 한 학기씩 교대로 맡기로 했는데 먼저 여자네 남편이 시작했지. 그가 장거리 통근 길에 아들들 통학을 돕는 것이므로 새벽이나 다름없는 시간대에 움직여야 했는데 다행히(?) 그 명문고가 새벽같이 조조자율학습을 시행하니까 별 어려움이 없었지. 운전자들이 시계바늘처럼 움직이는 생활이 몸에 밴 교사들이니까 오죽했겠나, 단 하루도 자가용차 통학에 차질을 빚은 적이 없었다네.

그렇게 날마다 아들들을 통학시키는 사이까지 되었지만 다시 부부들끼리 만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네. , 각기 바삐 사는 가운데 생활방식도 다르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앞에서 말했듯이 두 집 사이에는 생활형편의 차이라는 이 있어서 그것을 넘기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

그 여자가 다른 먼 동네에서 통닭구이 집을 한 것도 그러한 의 맥락에서 봐야 되겠지.

그 또한 아내가 우연히 그 동네에 갔다가 그 여자와 마주치면서 알게 된 일이라네. 아내의 말을 옮기자면 이러했네.

그 동네에,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한 분 살거든. 그 분 댁을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빈손으로 가기가 뭣해서 눈에 뜨이는 통닭구이 집에 들어갔더니 걔 엄마가 있는 거야. 노란 모자에 노란 제복을 입고 계시더군. 나를 보더니 얼마나 화들짝 놀라던지 내가 다 놀랐다니까. 내가 뭐라 묻지도 않았는데 그냥 집에서 놀기 뭣해서 몇 달 전부터 가게 하나를 맡아 하고 있다하더라고. 통닭이 다 된 뒤 값을 치르려 했더니 한사코 받지 않으면서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으니 들어 달라는 거야. 뭐냐고 그랬더니 내가 장사한다는 것을 우리 애들이 절대 모르게 해 달라는 거지. ‘애들이 엄마가 돈 벌이에 나선 것을 알면 아주 싫어할 거라나? 내가 아니, 뭐 어때요?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지 않아요?’했지만 내 말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도 않고 통닭 든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밖으로 떠밀듯이 내보내더라니까. , 그 엄마도……

나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네. 몇 해 전에도 길거리에서 무슨 상품을 홍보하는 직원들과 있더라 하더니……. 아내는 말을 덧붙였어.

그런데 그 동네에 다른 통닭구이 집들이 두어 집 더 있으니 장사하기가 녹록치 않을 듯싶더라고…….”

아내가 그렇게 통닭구이 집에서 그 여자를 본 때가, 아들들이 고3인 때였어. 마지막 학기인 2학기의 초였을 거야. 내가 자가용차 통학을 맡던 학기였는데 이 녀석들이 별스레 냉전 중이어서 운전하는 나까지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지. 무슨 일인지(하도 시시한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네) 단단히 삐쳐서 서로 외면하며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교문 앞에 다다르면 제 각기 옆문을 열고 내리는 식이었거든. 우리 집 앞에서 차를 출발하여 학교 앞까지 10여 분간, 6개월 동안 아침마다 그러고들 있으니 얼마나 짜증나는 차안이었겠는가. 처음에는 얼마간 그러다가 말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었지만 그렇게 한 달 두 달 석 달로 접어들어도 전혀 달라지지들 않더라고. 글쎄, 10년째 단짝인 녀석들이 그런 속 좁은 꼴들을 보이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수능을 한 달 앞두고도 그런 꼴들인지라 내가 운전하면서 냅다 야단도 쳤다네.

이 한심한 새끼들아!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수능시험을 볼 거냐? 이제라도 어서 악수하고 화해해!”

그랬더니 마지못해 악수를 하더군. 그러나 그뿐이었어. 학교 앞에 도착하자 여전히 상대를 외면하며 교문으로 들어가더라니까. 나 참, 남자애들이 삐치면 여자애들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실감했다네.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나 보네.

그 여자가 통닭구이 집을 했다는 얘기까지 했었지?

아내가 염려했듯이 그 동네에 통닭구이집이 서너 개 있었다니 그 여자의 장사가 뜻대로 풀렸겠는가? 훗날 알게 되었지만, 여자는 그 가게를 1년 가까이 하다가 빚만 떠안고 그만 두었다는 거야.

이제 돌이켜보면 그 여자는 그 가게를 그만두면서부터 방황하기 시작한 듯싶네. 안타까운 일이지. 만일 그 가게가 잘 되었더라면, 아니 그렇게 나서지도 말고 차라리 쪼들리는 살림이라도 붙잡고 버텼더라면 파국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네. 자네가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자기 편한 대로 배부른 소리 한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내가 알기에 여자네 형편이 그런 대로 아껴가며 살만한 수준이었거든. 남편이 술 한 잔 못하는 성품이니 무슨 낭비를 하겠으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골에 있는 시댁에서 철마다 농사지은 것들을 보내주어서 먹는 걱정 하나는 없는 집이었다는데 말이야.

그 여자는 과욕을 부렸던 걸까?

참으로, 세상일은 그 어느 것 하나 사람 욕심대로 순순히 되지 않거든.

아들 녀석들의 공부 또한 그랬지.

3년 동안 아빠들까지 나서서 열심히 자가용차 통학을 시켜주었건만 수능시험에서 형편없는 점수들을 받고 말았으니 말이야. 한 때는 서울대나 연 고대 갈 거라는 애들이 그 모양이 되고 말았으니, 정말 세상일은 사람 욕심대로 순순히 되는 게 아닌가 보네.

아마도 녀석들이 그 이전부터 모의고사의 성적도 잘 나오지 않고 하니까 그렇게 신경들이 날카로워져서 냉전을 벌이고 그랬었나 봐. 녀석들은 중학교 때까지나 상위권 성적이었지, 명문고에 들어와서는 중하위권 성적 수준이었던 거야.

녀석들은 끝내 화해도 안하는 상태로 3학년을 마치고, 이 도시에 있는 지방대학에서 낮은 점수로 들어갈 과들을 찾아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네. 대입 전형과 고교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의 분위기가 그렇게 엉망이었기에 양쪽 집 부모들은 졸업 기념 삼아 한 번 만날 생각조차 갖지 못한 것 같으이. 정확히 3년 전 겨울만 해도 명문고 합격생의 학부모라는 희망찬 표정들로 인근 생맥주 집에서 술잔들을 부딪쳤는데 말이야.

그 맥 빠진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는 아들 녀석이 밝히기도 창피한 그런 과에 합격하고서,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거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만 하고 있었지. 나는 한심해 보이는 녀석의 뒤통수를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난 김에 물었지.

걔는 어느 과로 들어갔니?”

몰라요……그 새끼, 이젠 친구도 아니야. 한동네 산 것 때문에 어울렸던 것뿐인데…… 얼마 전에 딴 데로 이사 갔다니까, 잘 됐지 뭐.”

이사를 갔다고?”

걔 여동생이 다니는 여고 부근의 임대아파트로 이사 갔대. 우리 동네의 다른 애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어. 걔네 부모가, 그 새끼가 대학을 잡치니까 이 제는 딸한테 올인하는 모양이래.”

그런 너는, 대학을 잡치지 않았니?”

…….”

녀석은 내 어조가 심상치 않으니까 컴퓨터를 끄고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 고는 소리라니, 초저녁부터 자빠져 자는 거지. 모든 게 10년 동안의 변화였네. 이 동네에 집 짓고 이사 와서 딱 10년 만에 총명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아들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녀석으로 바뀐 거야. 아아, 인생무상이라더니…….

 

그 한심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아들 녀석은 여하튼 대학생이 되었네.

반년쯤 흘렀을까, 어느 평일에 서울에서 유학하는 딸애가 학교 축제기간이라고 내려왔는데 그 날 마침 내가 근무를 쉬는 날이었어. 개교기념일이었던 것 같네. 아들 녀석도 휴강한 날이라고 집에 있더라고. 그래서 남매를 데리고 오랜만에 도시 외곽의 횟집을 갔다네.

그 횟집에서 그 여자를 본 거지.

나는 사실 그 여자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그 여자가 다가와서 인사할 때 얼떨떨했다니까.

안녕하세요.”

누구……?”

아들 녀석이 얼른 끼어들어 일러 주었지.

아빠, 내 친구 엄마이시잖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니 별 말씀을…… 제가 마침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식사하려고 왔다가 ……

아 네네, 그럼 어서 식사 하십시오. 저희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얼굴은 대낮임에도 벌건데다가 소주 냄새도 나는 것 같더라고. 여자가 내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간 뒤 얼핏 고개를 돌려보니까 웬 얼굴 넓적한 사내와 단 둘이 식사하는 자리이더구먼. 아들 녀석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지.

바람난 거야. 아마 내가 있으니까 소문을 낼까 봐, 그렇게 와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거라고 일부러 말하고 가는 거예요.”

녀석이 이럴 때 보면 어릴 적의 총명함이 여전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녀석한테 조용히 당부했다네.

걔한테 이런 얘기하지 마라.”

걱정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비밀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 놈의 새끼가 별 소리를……(웃음)”

우리 식구가 회를 열심히 먹는데 그 여자는 다시 내게 왔지.

먼저 가 보겠습니다.”

, 네네.”

여자가 사내와 사라진 뒤 아들 녀석이 친구네 집 근황을 얘기하더구먼.

걔가 집을 나와서 따로 자취하고 있어요. 엄마랑 툭하면 싸움이 나는 바람에 집에 못 있겠다는 거지. 엄마가 자주 술 냄새도 풍기며 늦게 들어오고 그런다니, 자식이라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잖아요? , 무슨 가게를 한다고 두어 번 돈만 날려서 걔네 아빠만 고생시켰다는데…….”

, 걔와 친구관계를 끊었다 하지 않았니?”

다시 화해했어. 한 때 있었던 오해는 다 씻자고 술 한 잔도 나누었다니까. 사나이들 세계가 그런 게 아니겠어요?”

듣고 있던 딸애가 한 마디 했지.

"얘는 입만 살았어. 입으로만 대학을 간다면 최소한 연 고대 감인데 너무 아까워요.”

……그 여자는 그렇게 평일 한낮부터 외간남자와 어울리고 있었지. 아내한테 저녁 때 그 얘기를 하니까 이러더구먼.

내가 전에 통닭구이 집 들렀던 얘기를 한 적이 있지? 그 얘기에서 빠진 게 있어. 그 때 그 가게를 들렀을 때에도 그 여자는 소주냄새를 피우고 있더라니까. 통닭 냄새가 진해도 내 코를 속이지 못해요. 글쎄, 장사도 잘 안 되고 하니까 혼자 가게에서 마신 것인지, 아니면 당신이 얘기한 어떤 남자와 마신 것인지는 몰라도 …… 그런 자세로 장사를 하니 그게 오래 갈 수가 있겠어? 딱한 여자야, 자존심만 강해 가지고…….”

이제 그 여자 얘기는 결말에 다가왔네.

낮에 횟집에서 그 여자를 본 지 서너 달 뒤인가, 나는 퇴근해서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거든.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 녀석이 자기 방에서 창백한 낯으로 거실로 나오는 거야. 휴대폰 쥔 손을 부르르 떨면서 말일세.

왜 그러냐?”

나는 놀라서 물었네.

아빠, 걔네 엄마가 돌아가셨대!”

무슨 소리냐?!”

걔한테 전화가 왔는데 지금 도립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좀 와 달래. 내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나 봐.”

그래, 어서 가 봐라. 그리고 다시 집으로 연락을 줘.”

아빠, 택시 비 좀 줘요.”

그렇게 녀석이 허겁지겁 옷을 걸쳐 입고 나간 뒤 나 혼자 다시 소파에 앉아 있었다네. 아내는 회식으로 늦는다고 귀가하지 않았지. 두어 시간은 지났을 거야, 아들 녀석한테 전화가 왔어.

아빠, 아무래도 제가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병원 주차장으로 나와서 전화하고 있어요. 걔네 엄마가 농약을…… 먹고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아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 그러더니

저한테…… …… 잘 해주셨거든요.”

그래, 그래. 너무 속상해 하지 마라. 아빠가, 엄마 오면 같이 갈게.”

통화가 끝나고 나는 텅 빈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네. 아내는 자정이 가까워야 들어오려는 모양이었어. 그 여자는 왜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을까? 아들 녀석한테 전화를 걸어 그 사유를 물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한 가정의 비극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는다는 게.

나는, 아까 아들의 전화를 받느라 볼륨을 죽인 텔레비전의 영상이 제멋대로 혼자 노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네. 이상하게 낯선 느낌이 드는 3층 건물 속에 앉아 있었네. 1층이 빈 채로 몇 달째 사는 때문인가, 나는 아무래도 낯설고 텅 빈 구조물의 맨 위에 혼자 앉아 있는 거야.

그 여자가 어느 겨울에 생맥주 잔을 비우면서 늘어놓던 결혼얘기가 선하게 살아나더군. 그 얘기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생생한 거야. 여자가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할 때의 골목이지.

내가 예전에 시골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골목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거든.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들이 화사하게 피어서 꽃길을 이루는 골목이지. 좁아도 햇살들이 넘쳐나고 벌 나비들이 가득한 그 골목길을 천진난만한 여학생이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네. 그러자 멀리 골목 끝에 숫기 없는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거야. 여학생이 혼잣말로 그러지. ‘왜 날 따라오지? 정말 이상하네. 나는 하나도 안 이쁜데……

그렇게 둘이 꽃길 골목의 양끝에 서 있네.

 

, 이제 그 여자 얘기는 끝났네. 자네가 눈치를 챘겠지만 바로 오늘 저녁 때 그 여자의 죽음을 얘기 들은 거야. 그래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자네한테 전화를 건 것이네. 야심한 시각에 부담스런 전화를 걸어서 미안하기 그지없네.

아무래도 내가 그 여자의 죽음과 무관할 수 없다는, 비논리적인 생각이 자꾸 들어서 자네 의견을 들어보려 했지만 굳이 답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냥 자네한테 전화 걸어서 얘기하고 싶었던 거야. 이제 조금은 가슴 속이 풀린 듯하네.

“띵동,띵동

아내가 이제야 왔나 보네. 심장 약한 아내한테 어떻게 그 여자 얘기를 전하는 게 좋을까? 이거 하나만, 자네 의견을 말해 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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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은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하던 남편이 암에 걸려 병석에 눕자 아내 되는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남편은 세상을 떴고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들 형제와 작은 아파트 한 채. 그나마 아파트는 많은 빚에 저당 잡혀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민 끝에 상식을 넘는 선택을 하였다. 아들 형제를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랑 따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그 남자와 옆 동네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사실이다. 모자간에 길에서 맞닥뜨릴 상황이 되면 그녀는 먼저 다른 길로 피해 감으로써 자신이 원치 않는 만남을 용케 면하며 산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만은 천고불변의 진리인 듯 영원할 거라 믿어온 무심으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실화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형제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애들이 아니라 하나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에 갔다가 막 제대한 청년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형제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인데 그녀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법의 심판을 받았을 테다.

그렇다 해도 무심으로서는 가난 앞에 무너진 모성애라는 차원에서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생각 끝에 지인들에게 과연 그런 비극이 가능할 수 있는지그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경제난이 심화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다수였다. 뜻밖이었다.

결국 무심은 그 이야기를 작품화하여 허구로나마 못된 어미를 응징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를 응징했다고 해도 비극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허구이긴 하지만 개연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재생산에 무심의 가슴은 다시 아팠다.

박쥐가 된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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