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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과 우리는 강을 사이에 두고 맞선다.

강폭은 그들의 얼굴이 노란 콩알처럼 보일 만큼 넓다. 그래도 그들을 늘 보게 되자 특유의 동작이나 몸집이 눈에 익으면서 구별이 가능해졌다. 그 쪽에서 활 잘 쏘는 놈이 나서면 곧바로 우리 쪽에서도 그런 자가 나서서 응사할 수 있는 게 그 때문이다.

그들과 우리는 자기 편 강나루를 지킨다.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갈 수 있는 강나루는 전략적 요충지일 수밖에 없다. 본래는 사절들의 왕래를 위해 만들어졌다지만 유사시엔 피비린내 나는 첫 장소가 될 것이다. 삼십 년 전의 전란도 그들이 우리의 이 강나루를 야습하며 비롯되었다. 노략질하러 쳐들어온 그들을 다시 강 건너로 패퇴시키기까지 일 년이나 걸렸단다. 그 후론 정기적인 사절들의 왕래마저 단절되고, 증강된 병력으로 강나루를 지킨다.

우리는 밤낮으로 경계를 선다. 환한 낮은 물론, 밤에도 횃불들 밝혀놓고 강 건너 나루를 경계한다. 그들도 매한가지다. 밤마다, 우리와 거의 같은 수의 횃불이 시뻘건 눈초리들처럼 떠 있다.

날이 밝으면 그들이 먼저 요상한 피리를삐리삐리분다. 우리는 북을쿠당쿠당쳐서 대응한다. 그들이 화살을 쏘면 우리도 비슷한 수의 화살을 쏜다. 심지어, 우리가 엎어놓았던 배들을 바로 놓고 손질하면 그들도 덩달아 자기네 나룻배들을 갖고 법석 떤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지루하다.

당장이라도 배타고 건너가 창칼 한 번 부딪치고 싶다. 복무연한인 이 년 내내 적을 지켜보다 끝날 것만 같아서다. 그래도 쳐들어가라!’는 임금님의 명이 없는 한 어쩔 수 없다. 삼십 년 전, 일 년 간의 전란이 끝난 뒤 그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십 년 가까이 고생한 뒤로는 임금님은 이 강나루를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보루로 여기는 것이다. 그들이 먼저 쳐들어온다면 모를까 이 지루한 경계가 쉬 해제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삼십 년 전 도발한 전란의 보복이 반드시 있을 거라 판단했는지 강 건너 우리에게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자기네가 먼저 피리를 불고 활을 쏘고 욕을 퍼부음으로써 긴장을 조성해 간다. 그렇다고 강을 건너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전쟁의 사전 방지에 주안점을 둔 게 아닐까.

강물은 검푸르게 흐른다. 그 모습이, 엄청나게 큰 검푸른 구렁이가 꿈틀거리며 가는 것 같다. 바람이 불어 허연 물결이 일면, 마치 구렁이의 비늘들이 허옇게 서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봄에서 가을까지는 강나루를 지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지만 겨울 들어 강이 얼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엄청나게 고생해야 한다. 물가라 별나게 춥기도 하고, 언 강 위로 그들이 쉽게 걸어서 쳐들어올 수 있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지난겨울만 해도, 수만 개의 표창들처럼 온몸을 찌르는 추위 속에서 우리는 털가죽 한 장씩 두르고 강 복판을 지켜보아야 했다. 강 복판이 국경선이라, 그곳을 그들이 넘어온다면 전쟁이 시작되는 신호인 거다. 천만다행으로, 양 강가에서부터 형성되던 얼음장이 복판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봄이 되자 양 강가에 얼어붙은 것들마저 다 녹아버렸다.

지난겨울 그리도 우리를 괴롭혔던 강이 지금 눈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 뚝 떼고 유들유들 흐르고 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강물이 줄어들고 있다!

그 동안 안 보이던 물속 바위가 그 등을 보이는 것만 봐도 분명한 현상이다. 하긴, 지난겨울 눈 한 번 제대로 내리지 않고 춥기만 했다. 올봄 들어서도 비 내린 날이 몇 번 없었다. 이 여름 들어와선 빗방울 비슷한 것도 떨어지질 않는다. 가뭄이 시작되려는가?

그렇다면 국경은 어떻게 되는 건지, .

 

삐리삐리삐리

그들이 아침부터 요상한 피리를 분다. 두 놈이 나란히 서서 그런다. 우리도 질세라 둘이 나서서 북채를 잡았다.

둥당둥당둥당!”

강물이 더 줄어들었다. 등을 보이던 물속 바위가 이제는 허리까지 보이고 있다. 가뭄의 징조가 분명하다. 어제 군량을 타러 성에 다녀온 동료들의 소식에 의하면, 성내에서는 벌써 식량 배급제를 실시하더란다. 오가며 본 많은 논밭도 금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란다. 우울하다. 가뭄이 장기화되면 우리가 후방의 다른 이들과 교대하는 일이 무기한 연기될지도 모른다.

삐리삐리삐리

그들의 피리소리도 약해진 게, 전만 못 한 것 같다. 그들도 우리처럼 양이 준 식사를 공급받는 걸까.

하늘 한복판으로 옮겨간 해가 따가운 햇살들을 아래로 내리쏜다. 엄청 큰 구렁이 같던 강물이 이제는 가느다란 줄뱀 닮은 개울이 돼, 따가운 햇살 아래 겨우 흐른다.

휘익 탁! 휘익 탁!’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몇 발자국 앞 자갈밭에 떨어졌다. 대부분 저쯤에 떨어지지만 우리가 서 있는 데까지 날아오기도 한다. 몇 년에 한두 건씩 저런 화살에 맞아 몸을 다치거나 죽은 일이 생긴다.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아직 그런 일이 없는데, 그들이 피리로 호들갑을 떨다가 느닷없이 활을 쳐들고 나설 즈음에 이미 우리는 바위 뒤나 나무 뒤로 몸을 피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응사한다.

얼마 후, 그들 중 하나가 방패로 화살을 막으며 강 쪽으로 나와 고래고래 욕한다. ‘을 담당하는 놈이다. 목소리가 제일 크기 때문에 그 놈이을 맡았을 게다. 물론 우리 쪽에서도 목청 큰담당이 방패 들고 나서서 같이 욕한다.

그들의 욕은 대체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들의 말이 우리가 듣기에는 심한 사투리 같기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에 그들과 우리의 시조가 한 형제였다는 전설이 있다.

한동안 오가던 욕설은 점심 먹는 때가 다가오면 그친다. 무언의 약속이다. 그 때부터 이상한 정적이 존재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식곤증에 창을 부여잡고 졸기 일쑤다.

날이 갈수록 강바닥이 더 드러나고 있다. 검푸르던 강물 대신 하얀 자갈밭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자갈밭에서 반사된 햇살들에 눈이 시다. 나무나 바위 뒤에 기대어 서서 꾸벅꾸벅 졸게 된다. 코골고 자는 놈도 있다. 그들의 화살이 이런 때 독사처럼 날아들기도 하더니 요즈음엔 사라졌다. 그들도 밥 먹고 나면 졸린 생리를 존중하게 된 걸까.

어두워지면 횃불을 밝힌다. 밤의 근무가 낮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따가운 햇살도 없을뿐더러 대개 낮잠들을 자 놔서 졸리지도 않다. 컴컴한 밤에도, 개울처럼 됐지만 어쨌든 강물이 흐른다.

그러더니, 계속된 메마른 날씨에 개울처럼 흐르던 것조차 멈춰버렸다. 국경이 증발해 버린 거다. 우리는 망연히, 말라버린 국경강 복판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을 담당하는 놈이 강기슭에서 멍하니 강 복판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이런 가뭄은 오십 년만이라 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오십 년 전 큰가뭄 얘기. 나라 안 우물이 반 이상 말라붙고 작물들까지 다 시들어버리면서 온 백성이 나무껍질이라도 벗겨 먹겠다며 산과 들을 헤맸다 했다. 그 큰가뭄이 다시 돌아온 건가?

이젠 우리 나루의 샘에도 물이 고이지 않아, 십 리 떨어진 후방 마을의 물을 길어다 먹는 판국이다.

야아!”

우리 쪽 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 그러자 건너편 이 놀라서 후딱 방패를 쳐들고는 먼저 욕을 고래고래 퍼붓기 시작했다.

왜 그러니 썅놈아!”

 

강물이 흐를 때에는 밤마다 횃불도 밝히고 강물소리에도 귀 기울였다. 그들이 몰래 배 타고 오거나 헤엄쳐 오는 소리가 나지 않나 해서. 그런데 강물이 다 말라 버리자 이제는 발자국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다. 그들이 강바닥으로 쳐들어온다면 자갈들 밟는 소리를 안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바닥 자갈들에서 나는 소리가 간단치 않았다. 쥐 같은 작은 짐승들이 오가는 달가닥소리, 부는 바람에 작은 자갈들이 내는사그락소리, 그 외도 규명하기 힘든 갖가지 소리들.

낯선 강의 변화 탓에 밤 근무가 고되어졌다. 날이 새면 그 때부터는 눈 따가운 햇살들의 난무를 견뎌야 한다. 강바닥의 흰 자갈밭이 푸르스름해지다가 붉어지는 어지러움에 눈이 멀 것 같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몸을 땀으로 젖게 하는 무더위, 그런 와중에 악을 쓰며 피리를 부는 그들, 우리의 북 소리, 화살들, 거친 욕들.

가뭄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지쳐갔다. 어둠은 언제나 동녘 빛에 사라져갔고, 날씨는 무덥기만 하고, 한낮의 욕들이 오가면 멋쩍은 정적이 자리 잡았다. 모든 게 변함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다. 강물이 말라버린 것은 상황의 변화일 뿐 사건이 아니었다. 특별 경계는 평상근무로 환원되었다. 그들도 강물이 말라 버린 날부터 별스럽게 며칠 간 바락바락 악쓰더니 이젠 다시 예전처럼 적당히 그런다.

비상은 일상으로 환원되었다. 긴장했던 며칠 동안이 쑥스러워지면서 습관적인 신경전만이 무더운 날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다.

삐리삐리시작되던 그들의 피리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뒤따라 북을 치려던 우리는 긴장해, 강 건너편을 주시하였다.

흑갈색의 거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흑갈색 털의 큰 멧돼지였다. 그 놈이 산에서 강나루로 내려오다가 그들과 맞닥뜨린 것 같았다. 놈은 송곳니를 하얗게 빛내며 강바닥으로 달음질쳤다. 그들의 창이 날았으나 잽싼 놈을 맞추지 못했다.

놈이 강 복판을 지나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도 급히 창과 방패를 들고 나갔다. 두 아름은 될 포식거리를 놓칠 수는 없었다. 식량보급이 제대로 되질 않아 개구리까지 잡아다 먹는 판이다.

자갈들을타다닥!’튕기며 멈춰 선 놈은 양쪽에서 협공 당한 꼴이 됐다. 놈의 뒤로는 그들이 허겁지겁 창을 주우며 달려오고 있었고 앞쪽에서는 우리가 창을 치켜들고 던질 참이다. 놈은 째진 눈매로 휙 둘러본 뒤 상류 쪽으로 내달린다. 우리는 창도 던져 보지 못한 채 방패 들고 뒤를 쫓았다. 그들도 그 쪽에서 쫓아갔다.

강 한가운데로 달리는 놈의 뒤를 그들과 우리가 경주하듯 나란히 따라가는 셈이다. 소리치며 방패를 두드리며 자갈들에 넘어지기도 하며, 창을 꼬나 쥐고 달린다. 창들이 놈을 맞추지 못해, 자갈들 새에 꽂히거나 퉁겨지거나 촉이 부러져버리거나 한다.

달아나던 놈이 지쳤는지, 뾰족한 주둥이로 홱 돌아서서 칼 같은 송곳니로 달려든다.‘와악!’우리와 그들이 흩어진다. 놈이 휭 하니 그 틈으로 다시 내닫는다. 그 때 창들이 날아가서 그 중 하나가 놈의 엉덩이에 꽂혔다.

꽤애액!”

놈이 강바닥을 뒤흔들듯 비명 지르며 날뛰자 그 창이 떨어지며 핏방울이 튀었다. 주춤대며 멈춘 놈의 째진 눈에 시퍼런 불길이 서렸다. 그들과 우리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방패에 몸을 가린 채 조심조심 물러났다. 놈은 앞쪽으로 나아갈 듯하다가 확 돌아 돌진한다. 그 쪽에 선 이들이 창도 못 던지고 방패를 떨어뜨리며 피하자, 놈은 송곳니로 방패 하나를 콱 찔러 마구 윽박지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방에서 창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꽤애액!”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창들에 고슴도치 꼴이 돼 숨을 가쁘게 쉬며 버드럭거렸다. 몸뚱이에 꽂힌 창들도 같이 흔들거렸다. 모두 조심조심 다가서다가, 놈이 다시꽤애액!’하자 곤두박질치듯 물러섰다. 놈은 마침내 신음마저 약해지며 죽어간다. 부근 자갈들에 물감처럼 붉은 피가 번졌다. 송곳니도 붉게 물들어갔다. 모두 땀에 젖어 놈의 주위를 에워싸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와 그들은 엉거주춤 일어나 두어 발씩 물러났다. 새삼스럽지만 적과 함께 앉아있었던 거다. 창들은 모두 멧돼지에 꽂혔거나 부러져버려,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칼자루에 손댔으나 체력이 다한 상태였다. 힘겨운데다가 적개심을 되살리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 역시 칼자루에 손대고 있을 뿐 뽑지 못했다. 햇살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서로 상대편을 말없이 보았다. 멀리서 구별되던 그들이 생생한 얼굴로 코앞에 있었다. ‘담당의 비쩍 마른 얼굴생김도 구체적이었다. 우리와 다를 게 없는,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피식피식 웃었다. 우리도 따라 웃었다.

사실, 삼십 년 전 전란은 옛날 일이고 지금의 그들과 우리는 단 한 번도 창칼을 맞부딪친 적이 없었다. 관념으로만이었다. 노려보며 지내다가 오늘 처음 만난 것이다.

강 한복판 지점이라, 경계선의 검붉은 표식처럼 멧돼지가 쓰러져있었다. 꽂힌 양쪽 창의 수는 거의 같았다. ‘반으로 나누자고 우리 쪽에서 제의하였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각기 한 사람씩 나서 칼로 멧돼지의 숨통을 끊고 창을 뽑으며 살코기를 나누었다.

그 후 그들과 우리 사이는 달라졌다. 그들의 화살이 엉뚱하게도 먹다 남은 멧돼지 뼈다귀를 매단 채 날아왔고, 우리는 응답으로 멧돼지 꼬리를 화살에 매달아 쏘았다. 그들의 피리 소리가 요상한 곡조 대신 흥겹게 바뀌는가 하면, 우리의 북은 반주가 돼 주었다. 그들의도 약해져서 아예 나타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멧돼지 고기를 나누어 먹은 뒤로 확실히 사이가 달라졌다.

강물이 말라버리면서 경계심과 적개심까지 말라버린 걸까. 이제는 경계하는 모양들만 유지할 뿐이다.

그런 어느 날이다.

자갈 밑의 새우라도 주우려고 강바닥에 나간 우리 편과 그들의 부식 담당자끼리 멧돼지 쓰러졌던 그 중간지점에서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부식거리를 바꿔 먹기로 합의가 되었다.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늘 같은 부식에 질려 있었다. 다음 날부터퍼붓는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뜸해지던 이 결국 사라진 것이다.

해가 하늘 한복판에 이르면 그들이 먼저 피리를 불었다. 우리가 북을 쳐 응답하면 양쪽에서 한 사람이 바꿔먹을 부식거리를 들고 나갔다. 우리는 뒤쪽에 수목이 우거진 산이 있어 열매가, 그들은 바위투성이 산이라 새알이 주였다.

가뭄이 길어지고 있어서, 형편없는 식량 보급을 탓할 수도 없고 이제는 식량을 자체 조달해야 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처지인지 연실 강바닥을 뒤지고 산을 오르고 하는 모습이다. 우리처럼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경비를 서고 다른 한 패는 식량 구하기로 나선 듯했다.

지난 번 멧돼지 고기는 얼마나 맛있었나! 사흘이나 푸짐하게 먹은 얘기를 지금도 꺼낸다.

햇빛이 눈부신 강바닥을 지켜보다보면 뭔가 시커먼 게 강 복판에서 아른거린다. 멧돼지인가 놀라 눈 비비고 보면 그들과 우리 쪽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부식거리를 교환하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 위 아득히 높은 하늘에는, 그 죽어가던 멧돼지의 눈동자에 담겼던 샛노란 해가 발광하고 있었다.

 

 

***

 

오늘은 내 차례다.

삐리삐리소리가 들려오고, 우리 쪽 북이둥당둥당울리자 나는 칼을 풀어놓은 뒤 강바닥으로 나아갔다. 어제 합의대로 불쏘시개 관솔을 싸 들고 자갈밭 위를 걸어갔다. 그들 쪽에선 부싯돌을 가져올 것이다. 이처럼 바꿀 물건의 내용은 전날에 합의된다. 바꿔먹을 부식거리가 마땅치 않게 되면서 물물교환으로 발전된 거다. 어제는 우리의 질그릇과 그들의 모피가 바꿔졌다.

자그락자그락

자갈들이 내 발에 밟히며 나는 소리다. 건너편 쪽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며 가까워졌다. 그런데 상대는 지난번에도 만난 녀석이다. 녀석은 뚱뚱한 몸집으로 웃으며 내게 부싯돌을 건넨다. 나도 불쏘시개 관솔을 건네며 말했다.

내일 우리 쪽은 칡 끈을 한 뭉치 가져올 테니 너희는 장식용 새 깃들을 두 묶음 가져오는 게 어때?”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의가 된 거다. 돌아서서 가려는데 어이!’하고 나를 불렀다. 뒤돌아섰더니 녀석이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리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젓고는 자기가 돌아선다.

별 싱거운 녀석. 나는 목덜미의 땀을 소매로 닦으며 우리 강나루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강바닥의 자갈들이 매섭게 햇빛들을 반사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조심조심 왔다.

 

열흘이 지났다.

다시 내 차례다. 오늘은 가죽부대를 메고 가 그들의 우물물을 받아오는 일이다. 대신 그들한테는 과일을 몇 알이나마 건네기로 돼 있다. 그들은 먹을거리를 조금씩이나마 공급받고 우리는 십 리나 되는 마을의 물을 길어다 마시는 고역이 사라진 셈이다. 그들한테서 식수까지 공급받다니, 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다면 예전에 흐르던 강물은 든든한 국경도 됐지만, 이처럼 서로 도와가며 편히 살 수 있는 걸 가로막은 장애물도 됐던 게 아닐까?

따가운 자갈들에, 나는 발바닥의 통증을 참아가며 강 복판에 다다랐다. 그랬더니, 열흘 전 그 녀석이 나를 맞는 게 아닌가. 그들이나 우리나 바꾸러 나서는 인원이 한정돼 있어 생길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래도 녀석을 또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녀석도 같은 기분인지 멀겋게 웃는다. 과일을 건넨 뒤 녀석이 가져온 가죽부대의 물을 우리 가죽부대에 받아 채우고서 돌아섰다.

어어이.”

녀석이 나를 불렀다. 돌아서니, 먼젓번처럼 어색하게 서서 머리를 긁적거린다. 주변의 반사된 햇빛들에, 뚱뚱한 그의 몸이 사라져 없어질 것 같았다. 나는 무거워진 가죽부대를 멘 채 서 있었다. ‘왜 자꾸 그래?’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몸도 주변의 어지러운 햇빛들에 사라질 것 같아 땀만 흘렸다. 녀석이 마침내 말했다.

오늘 밤에 놀러오지 않을래? 우리 후방 마을에서 기우제가 있거든. 볼 만해. 여기서 상류 쪽으로 오 리쯤 올라가면 집채만 한 큰 바위가 강 복판에 있는데, 거기서 내가 기다릴게.”

놀란 내 표정이 녀석의 눈동자에 비쳐있었다. 나는 가타부타 말 못하고 뒤돌아서 걸어갔다. 녀석의 생각지도 못한 제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세 달째로 접어든 가뭄에 녀석의 정신이 이상하게 된 건 아닐까. 아니, 진심일 수도 있지. 이젠 친해지고 싶은 게지. 모르지. 어떤 음모일 수도 있어.

여하튼, 적한테서 놀러 오란 제의를 받은 이 믿기지 않는 일을 우리 편 그 누구에게도 나는 얘기할 수 없었다. 오늘밤은 마침 내가 경비를 쉬는 차례였다. 나는 갈등하던 끝에 한번, 녀석이 기다린다는 데까지 일단 가 보기로 결심했다. 갔다가 분위기가 이상하면 되돌아올 생각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비수 하나를 품속에 숨겼다.

경비 맡은 패가 횃불들을 지피느라 부산한 틈을 타, 벼랑 밑으로 몸을 근접시킨 채 상류 방향으로 갔다. 양쪽의 강가가 험한 산벼랑으로 길게 이어진 지형이라, 강나루 부근만 경비가 엄하다.

오 리쯤 가자, 녀석 말대로 집채만 한 바위가 강 복판에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주위를 살폈다. 초승달빛이라, 바위 빼고는 다른 사물들은 흐릿하다. 침침한 어느 곳에 그들이 숨어서 나를 잡으려고 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뒤돌아서 달아나기엔 이미 늦었다. 하는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품속의 비수로 자결하는 수밖에.

하하하……

웃음소리가 나면서 녀석이 바위 뒤에서 나타났다. 내게 옷 뭉치를 안겨주며 갈아입으라 했다. 그들의 복장이었다. 녀석이 앞장서 걸어갔다. 강 복판 건너 그들의 강바닥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마을에 다다랐다. 기우제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시조신을 모신 사당에 노루 한 마리를 바치며비를 내려주십사수십 명이 엎드려 기원하고 있었다. 나도 녀석을 따라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뒤 함께 절하고 주문도 외웠다. 나눠 주는 음식도 받아먹었다. 기우제가 절정에 다다랐다. 제관이 노루의 목을 칼로 베어 쳐들며 뭐라 외치자 옆에 선 자들이 시조신의 화상 앞에 피운 불에 나뭇가지들을 얹었다. 불길이 하늘로 올라가는 용처럼 치솟으며 훨훨 타올랐다. 순간 나는 그들 시조신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았다. 불빛에 훤히 드러난 그 모습은 우리 시조신과 많이 닮아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며, 거친 턱수염에 장대한 기골이 그랬다. 우리 쪽이 칼을 쥔 데 반해 활을 들었다는 것, 머리에 쓴 관과 옷의 모양이 다른 것 외에는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전설은 사실이었다. 아득한 옛날, 우리 시조와 그들의 시조가 한 형제였는데 무술이 용호상박으로 맞서면서 결국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갈라서야 했고……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는.

기우제가 끝나고 녀석과 나는 다시, 강나루를 피해 산의 벼랑으로 해서 조심조심 강바닥으로 내려왔다. 밤이라 강바닥의 자갈들이 식어 있었다. 이윽고 강 복판의 그 큰 바위에 다다랐다.

조심해 가게.”

그래.”

응답하고 돌아서려다가 녀석을 불렀다.

이것 받아.”

품에 지녔던 비수를 건넸다. 녀석은 놀라서 말했다.

내가 가져도 돼?”

기우제를 보여줘서 감사하단 뜻이야.”

내가 우리 강나루로 돌아왔을 때는 꼭두새벽이었다. 경비를 선 패들이 횃불을 새로 가느라 분주한 틈에 슬그머니 들어왔다. 떠날 때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잠자리를 꾸며 놓았었는데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나는 잠자리에 눕자마자 이내 곤한 잠에 빠졌다.

눈을 뜨니 늦은 아침이었다. 강 건너에서 삐리삐리피리 소리가 들려오고 이어서 우리 쪽에서 둥당둥당북을 쳤다. 잠시 후면 화살이 날아올 거며 한낮이 되면 강 복판에서 물물교환이 이뤄질 게다.

모든 게 변함없었다. 지난 밤 적국에 몰래 다녀온 일이 꿈같았다. 나는 품속의 비수를 정말 녀석에게 선물했는지 확인해 봤다. 비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젯밤 일은 사실이었다. 아무한테도 어젯밤 일을 얘기해서는 안 되었다. 적의 안내로 적국에 들어가서 기우제까지 보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얘기를 그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이 여름에 우리는 그들을 매일 만나 물까지 받아 마시지만, 마시기 직전에 항상 은덩이로 그 물에 독이 있는지 검사한다. 이젠 장난처럼 화살이 오가지만 여하튼 항상 상대편을 향해 화살을 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매일 만나지만 강 한복판 중간 지점 그 이상을 넘지 않는다.

강물은 말라 버렸지만 경계는 여전했다.

아득한 옛날, 그들의 시조와 우리 시조 사이로 흐르기 시작한 경계의 강. 오랜 세월 깊게 파인 적개심의 강을 어떻게 내가 쉬 넘어갔다 왔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이상야릇한 감정. 적을 친구로 두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 여하튼 이런 감정과 모순은 절대 녀석과 나만 남몰래 간직해야 한다.

 

오늘도 그들과 우리의 물물교환은 순조로웠다. 피리소리와, 뒤이은 북소리, 그리고 우리 쪽에서 한 명이 과일 몇 알을 들고 강 복판의 지점에 가 그들의 물을 받아 왔다. 우리는 그런 광경을 지켜보다가 대부분 졸고 있었다.

그런데 담당자가 받아온 물에 은덩이를 담그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반짝이던 은덩이가 시커먼 사색을 띤 것이다. 들쥐를 잡아 그 물 몇 방울을 찍어 먹이자 파르르 떨다 죽는다. 독을 탄 물이었다.

영문을 알 순 없지만 차가운 살의였다. 비상경계령이 내려져 모두 허겁지겁 무기를 찾아 들고 제 자리를 찾았다. 낮잠 자던 두엇은 호되게 맞고서 얼떨떨한 채로 경계에 임했다. 벌써 그들의 화살이 싸악허공을 날카롭게 찢으며 날아든다.

뒤이어, 건너편 강나루에서 누군가 방패로 몸을 막으며 강바닥으로 나섰다. 오랜만의담당이었다. 쌍욕을 냅다 퍼붓고 나서 말했다.

너희가 포섭해 놓은 첩자가 여기 있으니 데려가라!”

그런 뒤 그들 서넛이 누군가를 질질 끌어다가 강 복판에 내팽개쳤다. 우리는 무슨 짓거리를 벌이는 거야?’수군거리며 지켜보았다. 햇볕에 뜨거워진 자갈밭 위에 누군가 산발이 돼 피범벅 몸뚱이로 내팽개쳐 있었다. 순간 하늘이 시커메지는 전율이 나를 휩쌌다. 그것은 녀석이었다. 뚱뚱한 녀석의 몸이 갓 잡은 짐승처럼 핏덩이가 돼 꿈틀거렸다.

우리 편 욕 담당자도 앞으로 나서 쌍욕을 냅다 퍼붓고는 말했다.

싸우고 싶으니까 별 짓을 다 꾸며대는구나!”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저께 밤, 그들 땅에 다녀온 일이 잘못된 거다. 그 날 밤 나는 녀석을 따라다니며 우물이니 사냥터니, 그들의 숙소까지 몰래 구경했다. 그리고 돌아오다가 강가에서 녀석의 동료와 마주쳤다. 너무 뜻밖이라 피할 수도 없었다. 횃불은 안 들었으나 달빛이 밝았다. 나는 둘러보는 양 고개를 돌리며 지나쳤지만 지나친 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는 듯했다. 나는 태연히 걸어가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상류의 그 바위 부근에서 녀석과 헤어질 때 내가 말했다.

아까 어떤 사람과 마주친 게 마음에 걸리네.”

걱정 마라. 자네는 신경과민이야.”

그런 뒤 어제, 오늘 한낮까지도 별 일이 없기에 나는 안심했었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첩자로 몰려 온갖 고문을 받았을 테고, 그들이 보복 차원에서 우리에 대한 독살 음모가 마련돼 오늘 한낮의 식수 공급 때까지 평화로운 상황을 위장한 것이다.

이 여름에 뭔가 달라지던 것들이 모조리 독살되었다. 메마른 강바닥엔 햇살이 범람한다. 어쩌다 불어오는 바람도 뜨겁다. 우리는 바위나 나무 뒤로 몸을 피한 채 건조해진 목구멍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화살촉에 독즙을 발랐다. 다시 칼날을 갈고 창끝을 바로 잡았다.

하늘은 해의 큰 덩어리처럼 변해 그 뜨거운 열기에 지상의 모든 게 침묵 당했다.

눈가로 흘러드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나는 다시 강 복판을 지켜보았다. 화살을 쥔 손이 푸르르 떨렸다. 뜨거운 자갈 위에서 녀석은 언젠가 그 멧돼지처럼 피투성이로 꿈틀거린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피로 물들어 같이 흔들린다. 이따금 쳐들려다 다시 가슴으로 떨어뜨리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쓰디쓴 신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뜨거운 하늘이 가루로 부서져 내리며, 녀석을 제외한 강바닥에 하얗게 쌓여갔다.

나는 화살의 오늬를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이 무거운 적막을 향해, 세 달째나 된 물기 없는 가뭄의 심장을 향해녀석의 시뻘건 고통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쏟아지는 햇살들을 가로지르며 비수처럼 날아갔다. 녀석의 몸뚱이가 순간 경직됐다가 크게 흔들리더니 서서히 고꾸라졌다. 핏빛 몸뚱이에 꽂힌 화살은 마치 가는 흰 뼈 하나가 삐죽이 솟은 것처럼 보였다.

 

까마귀들이 지난밤의 부서진 조각들처럼 점점이 날아들었다. 녀석의 몸뚱이 주위, 너더댓 발 떨어진 부근에서 가늘고 긴 부리들로 깍깍거렸다. 제각기 딴전을 부리다가 슬금슬금 시체 가까이로 간다. 그 중 한 놈이 날개를 까닥거리며 다가가 시체를 콕콕콕 쪼다 물러나더니 다시 접근한다. 맞은편 놈도 따라한다. 두 놈이 마침내 거침없이 시신을 쪼기 시작하자 다른 놈들도 달려들어 그 군집(群集)이 흉측하게 꿈틀거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악취가 풍겼다. 시신 썩는 냄새인지, 다른 곳에서 나는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나는 역해져서 입술을 깨물며 참다가 끝내는 질펀하게 눈물 흘리며 토했다. 긴 내장 같은 걸 길게 문 놈을 선두로 까마귀들이 다 날아가 버린 날, 하늘 한 편에서부터 그을음 같은 구름들이 소리 없이 몰려들면서 강바닥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며칠째 계속되는 긴장에다가, 무겁게 가라앉는 날씨에 탈진할 것 같았다.

그 날 밤, 별 하나 안 보이더니 후두두둑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위 밑에 앉은 채로 들이치는 찬비에 몸을 떨었다. 빗소리 자욱한 캄캄한 강 쪽을 바라보다가, 시커멓게 흐트러진 녀석의 머리칼들이 내 발에 닿은 것 같아 소스라쳐보면 비에 젖은 긴 풀잎들이었다.

동이 터도 빗줄기들은 그 무수한 햇살들처럼 쉬지 않고 쏟아졌다. 강 복판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귀 기울이면 자욱한 빗소리뿐. 폭우는 닷새나 쏟아졌다. 상류에서부터 누런 황토 빛으로 흘러내려오기 시작한 강물은 그 긴 혀로 녀석의 흔적을 핥아버리고, 흐릿하게 풍기던 악취까지 삼켜버리며 잔뜩 불어난 무서운 꼴로 변해버렸다.

강물은 거대하게 다시 찾아들었다.

지쳐서, 지켜보는 우리와 그들 사이로 거대한 장벽같이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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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심이 이 소설을 쓴 시기는 1980년경이다. 이십 년쯤 지나 2000'공동경비구역 JSA’란 영화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영화와 작가의 이 소설이 줄거리가 흡사하다. 작가의 소설이 시기적으로 앞섰으므로 결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영향을 받거나 표절한 게 아니다. 단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염려된다. 그 자세한 사연을 '가뭄"의 창작배경에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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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가구나 되는 마을이 아침부터 산그늘에 있다가 밤을 맞는다. 햇볕 한 번 쬘 일 없이 어둡게 지내는데도 뜻밖에 유원지로 자리 잡은 이 이상한 마을. 그 내력은 이렇다.

이 마을 앞으로 맑고 얕은 하천이 흐른다. 가족 단위로 물놀이하며 놀기 좋은 이 하천이 홍수만 나면 마을을 덮쳤다. 홍수를 피해 마을의 집들이 뒤로 물러나 뒷산 기슭으로 붙었다. 이 뒷산도 묘하다. 높이가 해발 사백구십 미터밖에 안 되지만 가파르면서 북향이니까, 마을은 종일 산그늘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여가를 즐기는 바람이 불었다. 이 마을이 물놀이하기도 좋고 등산하기도 재미난 곳이라고 소문이 나면서 외지 사람들이 주말마다 몰려들었다. 본래 열다섯 가구이던 게 두 배로 늘어나면서 마을은 유원지처럼 되었다. 대부분 민박집이거나 가게들로 바뀐 것이다.

내 사랑 닭갈비집은 이 마을에서 별난 존재이다. 다른 집들은 모두 산기슭에 자리 잡았는데 이 집만 하천 가에 제방을 쌓고 남았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이차선 도로를 사이로 두고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 이 집은 그래서, 혼자만 햇빛을 받는다.

 

내 사랑 닭갈비집 박 사장이 산그늘에 깔려 있는 어둑한 마을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낮인데도 등을 켜놓고 손님들 기다리고들 있지만, 그러면 뭐하나? 강아지 한 마리 안 지나가는데……. 이럴 때는 우리 식당이 그만이지, 전등 하나 켜 놓지 않아도 햇빛이 잘 들어서 이렇게 밝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손님이 없을 수가 있나. 이맘때면 대학생들부터 오티니 엠티니 찾아와서 우리 마을 모두들 정신없이 바빴는데…… 올해는 이렇게 썰렁하니, 나 참.

속으로 그러고 있을 때 웬 낡은 경차 하나가 도로에 나타났다. 방향지시등도 깜빡이지 않고 천천히 이 쪽으로 방향을 틀어 들어왔다. 산그늘이 도로까지 드리운 때라서 그 차는 무거운 자주색이었다가 이쪽으로 들어서면서 햇빛을 받아 밝은 색으로 바뀌었다. 예전 같았으면 박 사장은 이럴 때 문을 열고 나가 그 손님을 맞는 시늉이라도 했다. 지금은 그냥 실내에서 지켜보기만 한다.

식당 옆 주차장으로 들어서더니 멈춰서는 경차. ‘우리 식당 주차장에 차 세워놓고 딴 데 일을 보러갈 사람이다.’고 박 사장은 단정했다. 한적한 도로라 해도 도로변 주차는 단속대상이니까 남의 주차장을 슬그머니 이용하는 모습이겠다. 검은색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잿빛배낭을 등에 메는 것을 보고 박 사장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남자는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 쪽으로 걷는다. 다니는 차들도 없으니까 지팡이로 천천히 아스팔트 도로를 탁 탁 짚으며 간다. 등산복에 묻은 햇빛들을 떨어내며 도로를 가로질러 어둑한 산그늘의 마을 쪽으로 가는 남자. 박 사장은 그런 뒷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금 시각이 오후 두 시 반이다. 이런 시간에 혼자 산을 간다고? 보름 전에 내린 눈이 산에 적지 않게 남아 있을 텐데 등산한다고? 어디 눈뿐인가, 산의 곳곳이 얼음판으로 변해서 위험할 텐데. ……아는 민박집이라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오늘은 그 민박집에서 자고 내일 오전에 산에 올라갈 계획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여자와 함께 민박집으로 가는 게 보통인데 저 남자는 뭐야? 하긴 저런 낡은 경차에 동승할 여자는 없겠지. 쪽팔리니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나 하며 박 사장이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그 남자김 과장은 구멍가게 앞에 섰다. 가게 간판이 짧은데 그나마도 왼쪽 부분이 떨어져나가 니슈퍼이다. 여닫이문이 덜그덕 소리를 내며 열리니까, 담요를 두른 채 졸고 앉았던 구멍가게 주인이 화닥 깨어 눈을 떴다. 이런 가게는 말하지 않고 손짓으로도 충분하다. 김 과장은 진열장의 먼지 덮인 위스키 한 병을 손으로 가리켜 그걸 넘겨받은 뒤 만 원 한 장을 건네고는 거스름돈을 받았다. 배낭 속에 위스키 병을 집어넣고서니슈퍼를 나섰다.

이제 준비는 다 되었다.

구멍가게 옆으로 비좁은 골목이 나있다. 무질서하게 들어찬 민박집들 사이로 생겨난 이 골목을 빠져나가야, 산으로 오를 수 있다. 김 과장은 좁고 퀴퀴하기가 사타구니 같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다른 데는 몰라도 골목길은 다니는 사람들 발길에 지난 번 내린 눈이 다 녹았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걸레쪼가리 같은 꼴들로 추하게 남아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살짝 얼어 있기까지 해서, 하마터면 김 과장은 미끄러질 뻔했다. 옆의 담벼락을 잡지 않았더라면 몸을 다칠 뻔했다. 왜 이리 이 골목이 다른 데보다 싸늘한 거야?

그늘진 산기슭에 있어서 다른 데보다 기온이 낮은 게 아닐까?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골목 모양이 긴 굴뚝같은 역할을 하면서 바깥의 찬 공기를 잘 빨아들이니까 다른 데보다 한층 낮은 기온을 유지한 것일 수도 있겠지.

김 과장은 오늘 이 산을 찾은 음울한 목적에 어울리지 않게 과학적인 추리도 해 보며 골목길을 오르는데 ! !”어느 집에서 종이봉지를 찢는 소리로 개가 짖기 시작했다. 다른 집의 개까지 합세해서 짖는다. 민박집들이니까 사나운 개는 없다. 대부분 복날에 잡을 수 있는 종류들인 데다가 찾아들 민박 손님들의 안전을 위해서 목에 줄까지 매어 놓았으니까 전혀 걱정할 게 없다. 작년까지 여기를 자주 지나다닌 김 과장이었으므로 그런 개들의 처지까지 잘 알고 있다. 괘념치 않고 골목길을 가면 되는데 다만 한 군데 신경 쓰이는 데가 있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민박집의 개다. 그 놈은 얼토당토않게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고급 견종이다. 그 놈은 별로 짖지도 않고 허연 눈길로 지켜보는데 그게 여간 무서운 게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각 철장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겁먹을 필요도 없이 그 앞을 그냥 지나가면 될 텐데 김 과장은 그러질 못한다. 바닥을 탁 탁 찍던 지팡이까지 들어 올려 두 손으로 쥐고는 조심스런 걸음으로 골목을 올라간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험한 겨울 산을 올라가서 음울한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이 그깟 철망에 들어 있을 개 한 마리에 신경이 쓰이다니.

그 민박집 앞에 다다랐다. 허연 눈매로 자기를 지켜볼 그 개를 예감하고서 앞만 보며 지나치려다가 언뜻 눈에 들어온 마당 풍경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철망 안이 텅 비어 있고 마당에 세워 두던 민박이라고 먹물로 굵게 쓴 목재 입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난 가을부터 산에서 날아들어 자리 잡았을 낙엽들이 즐비하다. 낙엽들만도 아니다. 과자 봉지들,‘단체 오락에 쓰이는 플라스틱 막대’, 터진 빨간 풍선 조각, 검은 비닐봉지 따위도 널려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물론 김 과장은 이 집 주인이나 가족들을 알지 못한다. 다른 민박집과는 다르게담장이나 대문도 없이 마당 한가운데에 민박이란 입간판 하나 세워 놓는 풍경으로 골목의 끝자락을 점하고 있어서 기억할 뿐이다. 게다가, 사납게 생긴 시베리안 허스키까지 있으니까.

일 년 사이에 이 집이 망했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골목을 빠져나왔는데 그러고 보면 좀 이해가 안 되는 마을 풍경이었다. 작년 이맘때눈 한 번 내리지 않은 겨울이었다.도 혼자 이 마을로 등산을 왔었는데 그 때는 대학생들이 넘쳐나서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기가 변비 걸린 것처럼 여간 힘들던 게 아니었다.

북적대던 이 마을에도 불경기가 찾아들었나? 김 과장은, 길게 산 위 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면서 불경기 걱정도 해 보았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렇게 쓸데없이 남의 걱정을 하며 산기슭을 오르던 게, 벌써부터 흔들리는 결심이었다.

 

산기슭의 빽빽한 민박집들을 빠져나와 시멘트 길을 밟으며 천천히 산을 오르는 남자가 여기 내 사랑 닭갈비집에서도 보인다. 저 부근은 경사도가 사십도 쯤 된다. 시멘트 길이 휘지 않고 곧게 났기 때문에, 여기서 바라보기에는 남자가 조금씩 위로 이동하며 작아지는 전자게임의 사람처럼 보인다.

저 남자가 절에 가나? 시멘트 길은 백여 미터쯤 나아가다가 오른편으로 꺾이면서 절로 들어간다. 절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나 향나무들을 울타리 삼아 가득 심어놓아서, 여기서는 검푸른 색깔뭉치로 보이는 데에 절이 있다. 그 곳을 빼놓고 일대는 낙엽송들뿐이다. 잎들을 다 떨기고 선 낙엽송들 풍경이, 산에 긴 꼬챙이들이 꽂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낙엽송들 사이로 난 시멘트 길에서 우회전하지 않고 그대로 사라지는 남자. 시멘트 길을 벗어나서 그대로 산으로 오르려는 모양이다. 거 참, 눈도 있고 얼음도 깔렸을 텐데.

내 사랑 닭갈비집 박 사장은 그런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걱정하다가, 쳐들었던 오른손을 내렸다. 눈부시게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막느라 쳐들었는데 이제 저리기 때문이다. 갈증이 난다. 주방 쪽을 향해 소리친다.“아줌마아!”

아줌마는 주방 바닥에 앉아 김장하다가 박 사장이 부르는 소리에 두 손을 물에 씻은 뒤 냉장진열장부터 향한다.

아줌마, 그거.”

뭐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그녀는 안다. 진열장에서 소주 한 병과, 오이무침을 꺼내어 쟁반에 담아 들고 박 사장이 죽치고 앉아 있는 출입문 가까운 좌석커다란 둥근 쇠판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판에 갖다 놓는다.

술을 쪼금만 하세요.”라는 당부를 잊지 않던 그녀였는데 그냥 주방으로 되돌아온다. 박 사장이 소주라도 마시면서 속상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그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에서다. 글쎄, 같은 여자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박 사장 사모님이었다. 여기 장사는 불황이지만 도시에 아파트를 두 채나 가진 부자인데다가 남편도 착하겠다, 애들도 서울에서 명문대학을 다니겠다, 모실 시부모도 없겠다…… 그런데 뭐가 아쉽다고 바람이 나? 그것도 단골손님으로 들르던 산악회 총무라는 연하 남자와 말이다. 여섯 살이나 어리다니, 그 남자는 고작 서른여섯 살이겠다. 우리 큰아들 나이밖에 안 되는 철부지 남자와 눈이 맞다니, 그건 다 너무 걱정 없이 살다 보니까 쓸데없이 걱정거리를 만든 경우가 아닐까.

아줌마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방에서 김장을 다시 할 때 박 사장은 소주를 마시기 시작한다. ……. 목구멍을 넘어가자 위벽을 통해 온몸으로 퍼지는 알싸한 소주 맛. 저물녘에 저 산 위로 노을 지는 그 맛이겠다. 불그레하게 사방으로 번져나가다가, 끝내는 어둠으로 사라지는 노을의 맛.

박 사장은 아직도 오후의 햇살이 여전해서 두어 시간은 지나야 볼 수 있는 그 산의 노을을 잔으로 따라 마시는 듯, 취흥에 잠긴다. 사는 게 무어람. 이렇게 소주 몇 잔으로도 불콰해지면 되는 거지.

박 사장이 그러고 있을 때 산 중턱의 김 과장은 낙엽송 지대를 벗어나 생강나무와 아카시나무들이 많은 지대로 들어섰다. 이 부근은 산 위에서 굴러 내려온 바위에 맞아 꺾이거나 밑동이 눌린 나무들이 적지 않다. 눈도 곳곳에 남아 있다. 바위 밑이거나 나무 밑동의 그늘진 곳에 남은 건조한 눈들. 등산화에 밟히면 푸석 하고 속 빈 붕어빵 꺼지는 소리를 내면서 납작해진다.

이윽고 비탈이다. 수직에 가까운 비탈이니까, 겁먹은 여 등산객들은 오를 생각을 포기하고 갖고 온 김밥이나 까먹고 다시 하산한단다. 이 비탈은, 중간 중간 서 있는 참나무들을 타잔이라도 된 듯 잽싸게 잡아가며 올라야 한다. 그런 나무 잡기에 실수했다가는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험한 비탈 때문에 이 산을 오르는 게 재미있단 소문이 나고 그래서 등산객들이 몰려들면서 산그늘 마을이 번창하게 된 게 아닐까?

김 과장은 배낭끈을 다시 한 번 조이면서 잠시 쉬었다가, 마침내 비탈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를 때 손으로 잡는 참나무들 밑동에는 바위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굴러 떨어지다가 나무 밑동에 걸린 것들이다. 그런 바위들도 조심해야 한다.

나 참, 자살하려는 놈이 이런 조심까지.

어찌 됐건 이런 어수선한 비탈에서는 죽고 싶지 않은 김 과장이다. 정신없이 비탈을 다 올라왔다. 땀도 나고 기진했으므로 쉬어야 한다. 두 평 넓이의 너럭바위가 하나 있다. 김 과장은 배낭을 벗어서 그 바위에 놓고 앉았다.

돌이켜보니까, 뜻밖에 비탈에는 눈이 없었다. 경사가 심하니까 내린 눈이 쌓일 수가 없었거나, 동쪽 비탈이라서 아침마다 햇빛을 받으면서 다 녹았을지도 모른다.

7부 능선에서 8부 능선 사이가 될 이 너럭바위 부근에는 눈이 허옇게 남아 있다. 비탈을 오르기 전에 만났던 건조한 눈도 아니다. 얼음처럼 된 단단한 눈이다. 이런 눈밭에 싸리나무, 철쭉나무들이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몸체들로 남아있다. 김 과장은 배낭을 연다. 그 속에는 아까 니슈퍼에서 산 위스키와 음울한 목적을 위해 준비한 밧줄이 꽈리를 튼 꼴로 들어 있다. 계획은 다 서 있다. 우선은 위스키로 만취한 뒤에 부근의 벼랑 위에서 몸을 던지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든든한 나무그루를 찾아서 가지에 밧줄을 건 뒤 목을 맬 계획이다. 두 가지 자살 방법을 설정해 놓았으니 이제는 선택만 남았다.

벼랑은 여기서 삼사 미터를 나아가면 나타난다. 벼랑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게 산기슭이 보인다. 술김에 눈을 감고 벼랑을 뛰어내린다면 까마득한 허공으로 몸이 떨어지면서…… 산기슭의 바위들에 부딪치며 산산조각이 날 테다. 그게 내키지 않으면 그냥 이 부근에서 나무를 찾아 목을 매면 될 것이고.

이 일대는 키 작은 관목들이 대부분이지만 제법 큰 소나무도 두엇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이 곳으로 장소를 정하기도 간단치 않았다. 최소한도 집에서는 결행하고 싶지 않은 김 과장이었다. 결혼해서 십오 년째 살아온 지긋지긋한 공간이란 점도 그렇고, 아내가이 인간이 나가서 뒈지지 않고 이게 뭐야하며 자기 시신을 타박할 것 같은 우려에서였다. 동네 야산을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많은 거기서 남의 이목들을 피해 결행한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았다. 더구나 요즈음은 봄방학이라고 학생들까지 야산을 놀러 다니고 있었다. 결국 김 과장은 지난 번 내린 눈이 여태 남아 있을이 산을 결행 장소로 정하고 오후를 기다려 차를 몰고 온 것이다. 이 산을 전에 다녀본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오전에 등산하지, 오후 들어서 하는 경우가 없었다. 오후 시간에 이 산 아래로 차를 몰고 온 이유는 그러했다.

김 과장은 위스키 병마개를 딴 뒤 우선 한 모금 맛을 본다. 왜 이리 써? 소주처럼 달착지근하게 쏘는 맛도 아니고, 이건 그냥 쓰다. 소주 사 올 것을 그랬나? 죽는 첫 번째 순서를 밟으면서도 이렇게 생각이 많다.

 

내 사랑 닭갈비식당 안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길어졌다. 안 쪽의 냉장진열장까지 닿았다. 오후 네 시는 되겠지. 박 사장은 벽시계를 본다. 역시 오후 네 시 오 분이다. 도로 건너 산그늘 속에 있는 가게들의 불빛이 이 무렵에는 유난해 보인다.

기우는 햇살이 산의 서쪽에 강하게 달라붙으면서 산그늘의 어둠이 더욱 부각되니까 가게 불빛들이 유난하게 보이는 게 아닐까. 그건 산그늘 밖의 서녘 햇빛과 만나려고 몸부림치는 모양 같다.

내통하려고.

아내가 그 놈과 대낮에 도시의 모텔에서 만나 껴안고 뒹굴고 그러다가 시치미를 떼고 식당으로 돌아오고 그러는 줄은, 박 사장은 몰랐었다. 아내는 은행 일 따위를 본다고 정기적으로 도시를 다녀왔고, 박 사장은 그런가 보다 하고 식당만 지키고 있었다. 주인이 가게를 비우는 횟수에 비례해서 매상이 떨어지게 마련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온 마을 사람들에게 다 퍼진 아내의 바람소문인데도 혼자만 까맣게 몰랐던 건 이 식당만 도로를 건너 혼자 있는 탓이다. 웬만해서는 도로를 건널 일 없이 지내는 박 사장이니까.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 할 것을, 식당의 품삯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아내를 끌어들인 게 잘못이었다. 지금, 주방 아줌마는 모르고 있지만 박 사장은 이 식당을 도시의 아는 복덕방마다 부탁해 놓았다. 가격대가 맞으면 팔아 버리고 이 마을을 떠날 것이다. 애들 이름으로 사 놓은 도시의 아파트 두 채 중에서 한 채도 팔고 그러면 다른 데 가서 무슨 장사인들 뭣하겠나.

박 사장은 소주병이 다 비워졌으므로 다시 한 병을 갖다 마시려고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콰당 넘어졌다. 주방에서 김장을 마쳐가던 아줌마가 허겁지겁 달려온다.

괜찮아요.”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비틀대며 일어나는 박 사장이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오후만 되면 술타령인 사람이니, 딱하다. 쯧쯧쯧. 아줌마는 혀를 차다가 말한다. “고만 마시지요.”

괜찮아요.”

하면서 박 사장은 그예 냉장 진열장으로 가서 소주 한 병을 집었다.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웠는데도 왜 이리 정신은 말똥말똥한 거야?

이거 중국산 짝퉁 위스키 아니야?”

하고 산 위의 김 과장은 혼잣말로 떠들어보는데 짝퉁 위스키는 아닌가 보다. 자기가 지금 떠드는 말이 라디오 방송처럼 귀에 들리니 말이다. 취한 것은 분명하다. 일어서려니까 사방이 어지럽다. 다시 너럭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몸은 휘청거리고 정신은 말똥한 이 기괴한 분리 현상이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몸으로는 벼랑까지 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나무를 찾아 밧줄을 걸어놓기는 더욱 힘들 것 같다. 그예 걱 걱 울기 시작한다.

어떻게 내가 사 년 만에 폐인이 된 걸까? 사 년 전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이제 마흔임에도 나이 많다고 받아주는 곳 없는 취업현실에다가,‘집안의 생계를 맡을 수밖에 없다며 어딘가를 다니기 시작한 아내, 낮잠 자기나 텔레비전 보기로 소일해야 하는 날들의 무료함 등은 나를 이 지경으로 내몰았다. 특히 아내의 변화. 최소한의 잠자리도직장 일로 피곤하다며 거부한다. 대학 후문 부근의 카페에서 주방 일을 새벽까지 보고 오느라 피곤하다는데, 얼마 전 알았지만 아내는 노래방 도우미를 다니고 있었다. 그건 사실상 매춘이다. 나는 창녀의 기둥서방이 되었다.

한 때, 여기서 멀지 않은 도시의 자동차 판매 대리점의 과장이던 사내가 지금 찬 기운이 들이치는 산의 8부 능선에 앉아 울고 있다. 이십 여 분은 울다가, 일어서서 산 아래 쪽을 내려다보니까 뜻밖에 마을 풍경이 훤히 보인다. 전에는 푸른 숲이나 무성한 나뭇잎들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풍경이, 겨우내 잎들이 떨어지니까 그렇게 훤히 보인다.

문득 오줌이 마렵다. 허연 김을 날리면서 흰 눈밭에 검은 구멍을 송송 만드는 오줌줄기. 더하는 한기에 몸을 떨고서 김 과장은 바지춤을 여몄다. 여유를 갖고 경이로운 눈길로 산 아래 마을 쪽을 내려다본다. 산기슭의 많은 집들이 지붕이나 옥상을 보이며 어둑한 산그늘 속에 있는데 오직 도로 건너 한 집만 햇빛을 받고 있다. 차를 두고 온 그 식당이다. 그 옆의 검붉은 한 점처럼 보이는 그 차. 서쪽에서부터 긴 땅거미가 깔리고 있어서, 그 식당이 혼자서 받는 지금의 햇빛도 한낮처럼 밝고 투명한 빛이 아니다. 불그레한 게 왠지 불길하다. 어둑한 산그늘 속의 집들보다, 지는 햇빛을 받는 그 식당이 오히려 음울하게 보이는 이 기괴함이라니.

지금 몇 시나 됐을까? 폴더에 시간이 나타나는 휴대폰을 바지주머니에서 찾았는데, 없다. 어떻게 된 걸까? 분명 바지주머니에 있었는데…… 차에서 내릴 때 떨어트렸나? 이럴 때가 종종 있다. 무슨 생각에 골몰하면서 차에서 내리다 보면 휴대폰이 자기도 모르게 운전석 밑에 떨어져 있었다. 이따 내려가서 찾아 봐야지. 결국 김 과장의 음울한 목적은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 되었다. 하긴 다부지게 자살할 사람이었다면 오직 죽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 산을 올랐어야 하지 않을까? 아까 민박집들 골목을 빠져나올 때부터 이런저런 것들에 신경을 썼으니, 솔직히 그 때부터 김 과장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하산하느냐이다. 취해서 휘청거리는 몸에, 가파른 비탈길에, 어두워지는 시간에, 휴대폰도 없는 처지에.

김 과장은 취기가 빠지느라 그런지, 아니면 해가 지느라 그런지 더욱 오싹한 한기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서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생각해 본다. 그렇다. 술이 더 깰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 때 내려가자. 갖고 온 밧줄을 이용해서 참나무에 걸었다가 풀기를 반복하면서 비탈길을 내려가면 되지 않을까? 괜히 서둘렀다가는 참나무들에 부딪치며 굴러 떨어질 텐데 중상을 입기 십상이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 서두르지 말자. 깨끗하게 죽느니 만도 못한 몸의 꼴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김 과장은 민망하게도 자기 목에 걸려고 준비했던 밧줄을 믿고 이 험난한 비탈길을 내려갈 참이다.

 

아줌마는 박 사장한테 퇴근을 허락받았다. 경기가 좋았을 적에는 늦은 밤에도 손님들이 찾았지만 요즘 같아서야 어디. 그녀는 만일 손님이 드시면 연락 주세요.”라는 말은 남기고 식당 문을 나선다.

사실, 박 사장은 소주를 세 병째 마시고 있는 중이라 종업원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부터 끄덕일 것이다. 그런 주인을 두고 종업원이 먼저 퇴근한다는 것은 안쓰럽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해서 그녀는 그렇게 먼저 퇴근한다. 막냇동생 나이 되는 주인이지만 남녀가 유별하지 않나. 좁은 이 마을에서 부인이 바람나서 홀아비가 된 남자와 단 둘이서 밤늦게까지 있기는 좀 뭐하다.

그녀가 도로 쪽으로 발걸음을 뗄 때 무슨 고상한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도로 건너 카페에서 나는 쿵쾅거리는 음악은 아니다. 뭐에 갇혀 있는 듯 답답한 느낌이 있는 음악. 그녀는 멈춰 서서 둘러보다가 옆의 주차장 구석에 있는 경차에서 그 소리가 나고 있음을 알았다. 다가가서 차 안을 살펴보니까 역시 운전석 아래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이 그런 음악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발길을 되돌렸다.

저녁을 지나면서, 일대는 어둠을 뒤집어쓰고 있다. 해가 떠 있을 때에는 햇빛을 받는내 사랑 닭갈비집과 그렇지 못하고 산그늘 속에 있는 가게들로 양분된 마을이었는데이렇게 밤이 되면 그런 구별이 없어지면서 모두가 한 어둠 속에서 불들을 밝히며 지내는 다정한 풍경이다.

아줌마는 가로등 불빛과 가게들 불빛이 서로 겹치거나 엇갈리느라 어지러운 도로를 건넌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그녀는 집에서 민박을 치면서 살았다. 술을 즐기던 영감이 추운 날 뇌졸중으로 마당에서 쓰러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영감은 두 달 만에 세상을 떴지만 남은 것은 빈한한 살림과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괴상한 양놈 개 한 마리. 개 사료 대기도 어려운 판에 뜸해가던 민박손님들마저 끊긴 불경기. 그녀는 그 양놈 개를 도시의 사람에게 헐값에 팔아치우고 민박 일도 닫아 버렸다.

닫고 말고도 없었다. 벌써부터 들지 않는 손님이었으니까. 그냥 고인이 소싯적 익힌 붓글씨라며 쓴 민박이란 입간판을 뒤꼍에 갖다 놓는 것으로 십여 년 된 생업을 접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와서 주방 일을 거들어 달라고 연락을 준 박 사장님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런 착하고 좋은 분이 저렇게 폐인이 되어가고 있다니……. 사모님도 나쁜 분은 아니었는데. 인물도 고운데다가 마음씨도 상냥해서, 사모님을 보러 식당 단골이 되었다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는데.

아줌마는 니슈퍼옆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비좁고 어두운 길이지만 수 십 년 간 다녔으니까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이웃집 할미도 지난 가을에 산으로 땔감 하러 갔다가 발목을 삐끗한 게 여태 낫지 않아 절룩이는데.

자기 집에 다 다다랐을 때다. 골목 위쪽에서 누군가 멈춰서는 모양이면서 독한 술 냄새.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몸을 가자미처럼 옆으로 돌려 담벼락에 바짝 붙인 꼴로 한 발 한 발 올라간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만난 사람 역시 그녀처럼 몸을 담벼락에 바짝 붙이고 지나쳐 내려갔다. 지나갔는데도 여전한 술 냄새.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도 나는 듯싶다. 늙었으나 냄새 맡기에 관한 한 그녀는 아직도 젊었다.

감이 잡힌다. 눈도 덜 녹은 이 때 겁 없이 산에 올라 술까지 마신 사람이 하산하다가 비탈길에서 구르면서 어디를 다친 모양이다. 전에 민박 일을 할 때에는 저런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불러서 집의 옥도정기라도 발라주고 보냈었다. 안 됐으니까. 이제 그녀는 그런 마음도 다 사라졌다. 먹고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되니까 마음씨도 팍팍해졌다.

아줌마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서 세수부터 하고 있을 때 김 과장은 경차 안에 앉아 있었다. 비탈길을 거의 다 내려와서 마음을 놓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며 굴러 떨어졌는데…… 얼굴 오른 쪽도 까여서 피가 나다가 멈춰 있고, 발목도 시큰거리는 게 여간 아픈 게 아니다.

그래도 살아 내려오지 않았나. 역시 운전석 바닥에서 찾은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어서 수신하라며 깜빡이고 있고 부재중수신이라는 표식도 하나 있다. 먼저 부재중수신부터 확인해 보니까 중학교 일학년인 딸의 번호가 뜬다. 문자메시지도 딸이 보낸 것이다. 메시지는아빠 지금 어딨어?’이것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런 문자메시지도, 부재중수신번호도 찍혀있는 게 없다. 아내한테서도 오지 않았다. 아내는 지금쯤 화장을 떡칠처럼 하고 노래방에 나갈 채비가 아닐까? 아내와의 대화는 김 과장이 직장에 사표내고 나온 지 딱 일 년이 되던 날의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대화다운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사표 내고 나온 지 딱 일 년이 되던 날 저녁에 아내는 김 과장한테 말했다. “그래, 과장들은 맡은 과에서 한 명씩 줄일 직원을 알아서 적어내라 했다는데…… 그래, 고민 고민하다가 자기 이름을 적어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당신은 여하튼 너무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아내는 그런 말을, 설거지를 하면서 내뱉었다. 음식 찌꺼기를 싱크대 바닥에 버리듯이 내뱉었다. 대화도 아니고 독백이나 같았다. 그 후로 부부는 더 이상의 대화를 끊었다. 아내의 당신은 여하튼 마음이 약해서 탈이다는 말이 맞다. 나는 오늘도 눈 덮인 산까지 올라갔는데 결행하지는 못했다.

김 과장은 참담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이제 문제는 어떻게 집까지 가느냐이다. 이 차자동차 판매 대리점에서 근무할 때, 전시했던 것을 헐값으로 불하받았다.를 몰고 갈 수는 있다. 도시의 아파트까지 삼십 리 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몰고 갈 수 있다. 운전경력이 십오 년이다. 다만 술 냄새가 걱정이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가는 면허정지에다가 벌금이 대단하다는데……. 백 만 원 이상은 기본이란 말을 어디서 들었던 듯싶다. 힘들게 산을 내려왔나 했더니 여전한 돈 문제. 살아 있는 한, 돈 문제를 벗어날 길은 없는가?

김 과장이 경차 안에서 그러고 있을 때 약 사 미터 거리의내 사랑 닭갈비식당 박 사장이 일을 벌였다. 식당 한 쪽 벽 위에 장식용으로 걸어둔 등산용 밧줄에 자기 목을 질끈 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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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들 대부분이 불 꺼져 있는 데다가 보안등까지 고장 난 게 많아 아파트 단지는 어둠의 단지가 되었다.

철지난 검은 동복 차림에 뒤축이 반쯤 닳은 운동화를 신고서 어둠의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온 아이. 삼십여 분 전에 돌발사건을 겪어서 경황없는 정신상태다. 이상한 것은, 그런 정신상태가 되자 아이는 이곳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아이가 걸어올 때 도로 변 전주에 있는 불법주정차 단속카메라나 상점들의 방범카메라, 심지어는 지나가던 차량들의 감시카메라에도 그 모습이 잇달아 찍힐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면 돌발사건 현장에서 부근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 골목은 감시카메라 하나 없이, 비좁고 긴 터널 같은 길로 이어져서 도피 로로써는 최적이었다. 아이는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넓은 보도를 걸어서…… 어둠의 단지 앞 정문으로 들어온 것이다. 정문이라고는 하지만 기둥 구조물들만 남은 열린 공간이다. 게다가 양쪽 기둥 구조물에 설치한 등 두 개도 그 중 하나는 아예 켜지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제 촉광을 잃고 일대의 어둠에 눈치 보듯 아주 흐릿하게 켜져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들어서는 아이를 아무도 보지 못한 까닭이다.

정문을 지나자마자 왼편으로는 단지 내 상가가 있다. 열 개 점포 중‘2단지 슈퍼마켓하나만 전등불을 켜놓아서 단지 내 상가임을 겨우 알리고 있었다. 그 옆을 지나서 어둠 속 보도를 이십 미터쯤 걷던 아이는 문득 멈춰 섰다. 긴 밤을 노숙하려면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든 때문이다. 아이는 동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 한 장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학교에 잠깐 들른 형이 비상금 하라며 쥐어 준 돈 만 원이다. 형은 시내 독서실에서 총무를 맡아 그곳에서 먹고 자며 한 달에 사십 만원 받는다는데, 아이와 함께 지낼 십 평 원룸의 전세 보증금 오백만 원을 목표로 그 돈 대부분을 예금하고 있다 했다.

아이는 방금 지나친 상가 쪽으로 되돌아 걷는다. 어두운 바닥의 보도블록도 깨지거나 파인 것들이 많아서 걷기가 편치 않다. 아스팔트가 깔린 차도로 내려와 걷는데 그 때, 정문 쪽에서 웬 차 한 대가 전조등 불빛을 두 눈처럼 부라리며 들어왔다. 아이는 경찰차가 아닌가 싶어서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차는 전조등 불빛을 쏘면서 아이 가까이로 다가오더니, 휘발유 태우는 시큼한 냄새를 남기고 옆으로 지나쳐 갔다. 아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다시 상가 쪽으로 걷는다.

지린내 가득한 상가로 들어섰다. 문 닫은 점포 개수만큼이나 공허한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2단지 슈퍼마켓’. 무덤덤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앉은 주인 영감은, 아이가 소주 한 병과 오징어 구운 것 하나를 고른 뒤 만 원을 건네자 잠시 갈등했다.‘까짓 거, 학생복을 입었다고 해도 부모 심부름으로 온 줄 알았다 하면 되는 거다고 속으로 다짐한 뒤 돈을 받았다.

아이는 상가를 나와서 다시 걷는다. 105동 아파트를 향하는 걸음이다. 그 몇 분 사이에 더욱 무거워진 어둠.

일 년 전만 해도 아이는 105동의‘3-4’현관을 향해 늦은 밤마다 이 길을 걸어갔었다.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 오느라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항구에 닻을 내리는 배처럼 안온했었다. ‘우리 집에 다 왔으니까. 아버지가 105403호 안방에 혼자 해골처럼 누워 있어서, 썩어가는 몸 냄새로 십팔 평 공간이 진동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왔다는 생각에 아이 마음은 안온했었다.

지금 아이는 그런 안온한 닻 하나 내릴 데 없이 사는 삶이다. 오늘 105동 아파트의 밤 풍경이 생소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까? 일 년 전보다 불 꺼진 빈 집들이 더욱 늘어난 탓도 있겠지만.

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105동의 ‘3-4’ 현관이 코앞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와 예전의 꿈동산 유치원건물 사이다. 공중전화 부스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유치원은 현대 재활용 센터로 간판이 바뀌었다. 재갈대던 유치원 꼬마들 대신에 빈병과 폐휴지 따위가 와글거리며 모여 있는 걸까?

아이는 주공 2단지 아파트 열 개 동 중 가장 전망 좋고 양지바른 곳이라던 105, 그 중의 403호를 어둠 속에서 올려다본다. 예전에 중간고사라도 치르고 일찍 귀가하면 아이는 저 403호의 발코니에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한낮의 전경을 즐겼다. 멀리 단지 앞 차도를 느릿느릿 지나가는 시내버스들, 단지 내 상가의 다양한 간판들, 그리고 바로 앞의 꿈동산 유치원 꼬마들이 병아리들처럼 재갈대며 귀갓길을 서두르는 모습들…….

덥수룩한 머리에, 뒤축이 반쯤 닳은 운동화에, 철지나서 땀내 풀풀 나는 동복 차림으로 잠시 회상에 잠겨 있는 아이. 누가 아이의 지금 외양을 봤다가는 고등학생이기는커녕 밤거리의 노숙자인 줄 알고 기겁했을 게다. 하긴, 기숙사의 사감 선생이 오늘 낮에 아이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노숙자냐?”

사감 선생이 보기에 아이는, 당신이 기숙사 일을 맡은 지 세 달 만에 처음 보는용의 및 복장 상태가 100% 불량인 학생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식이 내 눈길을 피해서 기숙사에서 지내왔지?’하는 험한 눈빛으로 다시 아이한테 이렇게 물었었다. “그래, 너는 부모님도 없냐? 용돈이라도 타서 이발하고 운동화도 사 신고 그래야 되지 않겠어?”

아이는 답했다.“네에…… 부모님이 없는데요.”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쾅 맞은 듯했던 사감 선생의 표정을 떠올리면 아이는 우습다기보다 캄캄한 나락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는 심정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게 다, 일 년여 전에 우리 집안이 해체된 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조금 전의 돌발사건도 그렇다. 그 여자는 내가 어쩐 게 아니었다. 그 여자는 나와 마주치자 제풀에 놀라 차도 건너 편 보도로 달아나다가, 그 때 마침 달려오던 시내버스에 치인 것이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버스가 뭐에 부딪힘과 동시에 급정거하는 소리를 내며 섰고 순식간에 일대가 소란스러워질 때 나는 그냥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냐면…… 그냥 가는 길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가는 길이었는데 그렇듯 그 여자는 보도에서 나와 맞닥뜨리자 제풀에 놀라서 달아나다가 그랬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 자리를 떠나 보도를 걸어 올 때 구급차가 경광등을 희뜩이며 내 옆의 차도로 허겁지겁 지나갔다. 그 여자를 수습하려고 가는 건지, 다른 일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바가 아니니까. 솔직히 나는 그 여자가 모르는 여자였다면 그 자리에 남아서 사건을 수습했을 테다. 여자가 숨이 붙어 있었다면 택시라도 잡아서 응급실이 있는 종합병원으로 갔을 테고, 그것도 아니라면 하다못해 그 자리에 남아서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한테 전후 사정을 진술했을 테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여자였으니까. 그냥 나는 내 갈 길을 걸어갔다. 오가던 차량들이 일제히 급정거하고 행인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어수선한 사고 현장을 나는 그렇듯 담담하게 벗어났다. 그때가 만일 대낮이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행인들이 사고 현장에서 나를 붙잡고는 멱살을 쥐고 난리 치지 않았을까? 정말 어둡고 어수선하기가 천만다행이었다.

햇빛 환한 대낮은 내게 늘 두려운 시간이었다. 오늘 대낮만 해도 그렇다. 평상시였다면 교실이나 기숙사의 방 같은 그늘진 데서 편히 지냈을 대낮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연휴를 맞아 기숙사에서 ‘12일 전원 귀가'를 실시하니까, 갈 데가 없는 나는 대낮에 잘못 나온 박쥐처럼 거리를 헤매다가 결국 이 지경에 다다랐다.

기숙사 친구들이 인디언처럼 끼호끼호소리까지 지르며 신나게 귀갓길로 나설 때 나는 사감실을 찾아가 이번 연휴 동안에 혼자 기숙사에 남아 있으면 안 되냐고 말씀 드리려 했다. 말씀드리기도 전에 사나운 얼굴로 내 용의복장의 불량부터 지적하던 사감 선생님. 급기야는 내가 부모님이 없다고 말씀 드리자 놀라서 입을 떡 벌린 그 표정이라니. 내 얘기를 듣고 나서 하는 그분의 대답이란 게 이랬다.“어찌 됐건…… 예외는 없다. 여하튼, 이 기숙사를 나가서 하루 지내고 내일 오후 다섯 시까지 귀사 하는 거다. 이상 끝.”

일은 그렇게 꼬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이번 사감 선생님이다. 먼젓번 사감 선생님은 달랐다. 작년 연휴 때 내가 그런 사정까지 다 말씀 드리자, 참 안 됐구나 하는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씀해 주었었다.“그렇다면 말이야, 다른 애들한테 절대 말하지 말고 너만 혼자 남아 있어라. 다만, 내가 기숙사의 철문을 닫고 전원도 내려놓고 갈 거니까, 그런 불편은 참고 지내야 해. 웬만해서는,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그 동안 밀린 잠이나 열심히 자두는 게 어떻겠니?”

그 때가 작년 추석연휴 때였다. 그런 분도 있었는데 올해의 사감 선생님은 영 아니다. 교장선생님보다도 더 늙어보여서인자한 할아버지일 거라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까다롭기가 여간 아니다. 일이 그래서 꼬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하룻밤 잠자리를 얻고자 힘겹게 찾아간 아는 교회마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일 년 전까지도 고등부 활동에 빠지지 않은 나였으니까 그것을 믿고 찾아간 것인데 그 모양이 되어 버렸다. 닫힌 교회의 문짝에는 이런 글이 A4 용지 한 장에 적혀서 달랑 붙어 있었다.‘연휴를 맞아 12일로 산상기도회를 갑니다. 연락처 011-’

교회 문 앞 층계에 맥이 쭉 빠져 주저앉아 있을 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햇살은 얼마나 무겁던지. 그래, 나는 한 마리 박쥐였다. 잘못돼서 대낮에 나온 박쥐. 환한 대낮이 그토록 끔찍할 줄이야.

, 내 책가방? 지금 내 손에 들린 것은 소주병과 구운 오징어뿐이다. 그럼, 기숙사를 나설 때부터 들었던 책가방을 내가 어디에 놓았지? 연휴 중에도 풀어야 할 문제집만 골라서 담은 책가방인데. 나 참. 여하튼 그 여자와 아까 마주친 것 하나만 봐도 오늘은 재수에 옴 붙은 날이다. 인구 이십만을 넘었다는데도 그 여자와 보도에서 딱 마주쳤으니 아직도 좁은 도시다. 그 여자나 우리 형제나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며 살아왔을 텐데, 오늘 참, 일이 더럽게 꼬여 버렸다. 나야 항상 교실이거나 기숙사에서 지냈고, 형은 독서실을 밤낮으로 지키면서 사는데 어떻게 내가 오늘 그 여자와 보도에서 맞닥뜨리는 재수 없는 일이 생겨났을까?

이게 다 늙은 사감 선생 새끼 때문이다. 개새끼. 기숙사에 빈대 붙어 사는 내 처지를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 준다면 길어야 아홉 달 뒤에 수도권 대학에입학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합격하면서 이 도시를 영영 떠날 것인데…… 그거 하나 봐 주지 않아 내가 대낮부터 헤매다가 책가방도 잃고 이 고생이다. 에에 개새끼 퉤퉤퉤.

아이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분무되는 빛들에 몸을 반쯤 적시고 서서 침을 욕처럼 뱉다가, 105동의 ‘3-4’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웬 인기척 때문에 이루어진 행동이다. 아이는 방문할 집이라도 있는 양 바삐 걸어 ‘3-4’현관으로 들어갔다.

노인 한 분이 폐휴지 가득한 수레를 끌고 나타난 것이 웬 인기척의 정체였다. 공중전화 부스의 빛들에 모습을 드러낸 노인은현대 재활용 센터건물 앞에 수레를 세워놓고서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박 선생은 화장실 좌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집에 와서 불고기를 많이 먹은 게 체한 듯싶다. 나 참, 그 아이가 그런 기막힌 사연으로 기숙사에 맡겨진 줄을 몰랐다. 삼월 인사이동으로 이 학교로 전근 오면서 맡은 기숙사 사감 일이다. 세 달째로 접어드는데 팔십 명 되는 기숙사 애들 중에 그런 애가 끼어있을 줄은 나는 정말 몰랐다. 진작부터 애들의 신상을 파악해 두었어야 하는데, 낮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밤에는 기숙사를 지켜야 하니까 바빠서 그럴 사이가 없었다. 직접 드릴 말씀이 있다면서 사감실로 찾아온 그 아이. 처음 보는 얼굴에 복장까지 아주 불량해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야단치려는데 그 아이가 하던 말. “네에…… 부모님이 없는데요.”

그런 충격적인 존재한테 무슨 꾸지람인가? 그 아이의 용의나 복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고,‘연휴에 혼자 기숙사에 남아서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이나 묵살해 버렸다. 괜히 이런 이상한 자식을 남겨 두었다가, 전기도 내린 기숙사 방에서 무슨 사고라도 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촛불이라도 켜놓고 지내다가 잘못돼서 기숙사에 불이라도 낸다면 그건 정말 수습할 수 없는 사고다. 사감인 내가 책임을 지게 되면서 최소한 교감으로 승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하루아침에 무산될 게 뻔하다. 내 나이가 어언 오십육 세. 교장보다는 두 살 아래이지만 교감보다는 다섯 살 위다.

아이를 박정하게 처리해서 내 보냈는데, 뒤늦게 께름칙한 마음이다. 오갈 데 없는 그 아이가 그 꼴로 거리를 헤매다가 무슨 사고를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면서 생겨난 쓸 데 없는 노파심인가? 아니다. 아무래도 불길하다.

!

하고 힘을 주는데도 편치 않은 아래뱃속의 것이 나올 기미가 없다. 꾸럭꾸럭 속이 편찮은 대로 더 기다려 봐야 하나? 결국 일을 못 보고 화장실을 나왔다. 거실의 아내는 오전에 목욕탕에라도 다녀왔는지 허벅지 속살을 언뜻언뜻 보이며 이심전심의 욕정을 전한다. 제기랄, 보름 만에 서울 집으로 올라와 편히 쉬려도 아내 욕정을 달래줄 의무가 기다리고 있다니. 그 아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뱃속도 시원치 않은데 그런 의무가 가능할까?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는 있지만 그 아이 걱정뿐이다.

아비가 위암으로 삼 년이나 앓다 죽고, 그 바람에 집안이 거덜 나면서 엄마마저 다른 남자와 재혼해서 산다는 막장 가정의 아이. 몇 안 되는 친척들도, 아이 아비가 사업할 때 보증 선 것이 잘못되면서 남만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아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라고는 독서실에서 총무를 한다는 형 하나. 그 형도 집안이 해체되자 숙식을 해결하고자 그 곳에 가 있단다.

기가 막힌 아이 사정이 학교에 파악된 게 작년 삼월 학기 초에 학급 별로가정환경조사 자료를 걷으면서였다고 했다. 그 때부터 학교에서는 아이를 기숙사에 넣어 숙식을 해결해 주는 한편으로학업성적은 우수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까지 주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 아이가 학교 측의 후의를 단단히 입게 된 것은,‘서울대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업성적 우수 학생이라는 사실이 적극 고려된 때문이라 했다. 이런 사실들을 나는 오늘 오후에야 알았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아이여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담임한테 전화를 걸어낮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의견을 구했더니 그렇게 그간의 사연을 일러주었다.

담임은 이런 말을 덧붙이며 통화를 마쳤다. “너무 염려 마세요. 요즈음 날씨가 더워졌으니까 아무 데서 잔들 얼어 죽기야 하겠습니까? 하하하. 애들은 말입니다, 야영가면 밤새 한 잠 안 자고 잘 놀잖아요? 그런 애들이니까…… 부장님, 전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럼 이만 끊습니다.”

담임은 사십 대 초반의 사내이다. 그런 나잇대 사람이니까 말을 쉽게 하는 것이지, 어디 나처럼 세상의 이런저런 풍파를 보거나 겪으면서 살아온 나이의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지금 어느 곳에서 헤매고 있을 그 아이.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그 아이가 안전하게 오늘 밤을 보낼 수 있을까.

그렇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내가 지갑 안에 접어서 넣어둔 유인물 한 장이 있지 않나. ‘기숙사 학생회 임원 명단 및 전화번호’.

회장 녀석의 휴대폰 번호를 찾아 통화를 시도한다. 녀석은 뭔 바쁜 일이 있는지 일 분 넘게 있다가 전화를 받으며 내게 한 첫 마디가 이랬다. “, 누구니 새끼야?”

기가 막히지만 화를 억누르고 답한다. “나다, 사감 선생이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는 제 친구가 건 줄 알고!”

괜찮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하나 물어볼 것이 있거든.”

예예 말씀하십시오.”

멋모르고 전화 받은 죄를 씻고자 회장 녀석은 아주 어조가 공손하다. 휴대폰을 들고 연실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싶다.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대며연락할 일이 있는데 혹시 휴대폰 번호라도 알지 않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 걔요. 걔는 휴대폰 같은 것도 없어요. 그냥 밤낮으로 공부만 하는 애에요. 왜 그러세요, 선생님?”

내가 꼭 연락할 게 있어서 그러거든.”

걔는 기숙사에 남아 공부하지 않나요? 작년 연휴 때도 걔는 특별히 봐 주는 것 같더라고요. , 걔는 엄마가 쌩까서 그렇게 된 애잖아요? , 안 된 애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쌩깐다는 말은 일부러 모른 척 한다거나 도망갔다는 뜻이 아닐까? 애들도 다 아는 그 아이의 가정사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굳이 조심스레 얘기할 것도 없겠다. 솔직하게 말하자.“그러면 너를 믿고 말하겠다. 다름이 아니고.”

하면서 낮에 그 아이가 사감실을 찾아와서 벌어진 일을 대강 말하고서, 내가 지금 걱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회장 녀석이 반문했다.“무슨 걱정이세요?”

그 아이가 잠자리도 없이 길거리를 헤매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지. 그 아이한테 하나 있는 형이란 사람도 자기 몸 하나 해결하기 바쁜 처지라니…… 아이가 형한테 들를 것 같진 않고. 그래서 내가 그 아이와 연락이 닿으면, 거 뭐야, 학교 수위실에 딸린 방에서라도 하룻밤 잠을 자라고 일러주려는 거지. 그 방이야, 내가 수위 아저씨한테 전화 한 통 걸어주면 되니까.”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제가 만일 그 애를 만나거나 연락이 닿으면 그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바쁜 어조로 봐서 회장 녀석은 뭐 이런 시시한 일로 전화를 다 하시나?’하는 표정인 게 역력했다. 어찌 됐건 이만 하면 됐다. 내가 아이한테 여기 멀리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 그러면…… 가만 있자, 우리 아내가 어디 있나? 이제야 한 번 안아줄 마음이 생겨나는데 말이야.

 

앞뒤바퀴의 바람이 다 빠진 낡은 자전거가 105‘3-4’현관의 왼쪽 벽에 기대어 있다. 그 위쪽에 있는 각 호별 우편물 수취함.

아이는 수취함에서 403호 칸을 본다. 오래 되어‘403’이란 페인트 글씨는 흔적도 없고 이삿짐센터 스티커들만 겹겹이 붙어 있지만 아이는 403호 칸인 것을 안다. 그 칸 아가리에 무슨 유인물이 물려 있다. 아이는 아가리 덮개를 쳐들어 그것을 꺼내어 본다.‘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 고시

다른 칸의 아가리들도 같은 유인물을 물고 있다. 어떤 것은 상품 광고 전단들까지 물고 있어 구토하는 모양 같다.

일 년 전, 403호 칸의 아가리에는 기분 나쁜 우편물들이 끊임없이 물렸다.‘채무변제 3차 독촉’‘법적처리 통보’’신용불량자 등재를 예고함’‘파산신청 안내 등등. 해골이 다 되어 누워 있는 아버지를 대상으로 날아들던 기분 나쁜 문서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아니 그 여자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줄어들어갔다.

아이는 재개발 사업 시행 인가 고시유인물을 수취함 아가리에 다시 쳐 넣고서 층계에 발을 디딘다. 사 년 전인가, 일 층의 103호에 살던 귀여운 꼬마가 층계 벽에 그려놓은 그림이 여태 남아 있다. 빨강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꽃 한 송이. 그 즈음부터 이 아파트는최소한의 관리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이 층.

삼 층.

사 층으로 오르는 층계에서 아이는 가슴이 떨린다. 그럴 리가 없지만 이제 층계를 다 올라서 403호 문을 열면 멀리 안방의 아버지가 희미한 기척으로 자기를 맞을 것 같다.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지내면서 힘이 다 빠져버려, 머리맡의 물병을 손으로 쓰러뜨려 소리 내거나 부스럭거리는 이불 소리로 당신의 반가운 마음을 알렸다. 그러면 아이는 아버지, 저 왔습니다.”하면서 현관으로 들어섰다. 책가방을 거실바닥에 내려놓고서 여기저기 창문들부터 활짝 엶으로써, 십팔 평 실내에 가득한 역한 냄새부터 환기시키는 첫 번째 집안일을 했다. 두 번째 집안일은 아버지의 병 수발이다. 병 수발이랬자, 아버지 샅에 채워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죽 그릇을 설거지한 뒤 새 죽을 끓여 담아 놓는 일이다. 죽도 그냥 방치하면 곰팡이가 퍼렇게 껴서 내버려야 했다.

아이가 당신 샅의 기저귀를 갈 때 눈을 꾹 감고 마른 장작개비처럼 움직여지던 아버지 모습. 아이는 그 아픈 기억을 지울 듯이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403호의 문 앞을 지나 오 층으로 향한다. 밤 열 시도 안 되었을 텐데 무덤처럼 어둡고 조용한 통로다. 텔레비전 소리나 어느 집 말다툼 소리 같은 것도 없다. 아까 공중전화 부스 옆에 서서 올려다봤을 때 열 가구 중 두 가구가 불을 켜고 있었는데…… 불 꺼진 가구들은 모두 다른 데로 이사 간 걸까?

이제 오 층이다. 층계가 끝났다. 여기서 벽에 있는 쇠사다리로 삼 미터쯤 오르면 자물쇠로 채워진 정사각형의 철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옥상이다. 그 열쇠가 아직도 있을까? 관리소 아저씨가 그 자물쇠의 열쇠를 층계 벽의 작은 환기창에 몰래 놓고 다니던 것을 아이는 기억해 냈다. 높은 환기창이라 아이는 발끝을 곧추세우고 오른팔을 바짝 올려 손바닥으로 더듬어 본다. 있다, 먼지 속에. 아이는 차가운 그 열쇠를 입에 물고서 쇠사다리 틀을 하나하나 잡으며 오른 뒤, 자물쇠를 따고 철문을 연다. “삐이이걱

낮에 달궈진 옥상의 더운 기운이 아이 얼굴을 공격한다. 아이는 철문을 열어놓은 채 다시 쇠사다리로 오 층까지 내려와 동복 상의를 벗는다. 팔소매들을 서로 잡아매자 상의는 광주리처럼 되었다. 그 안에, 아까 바닥에 놓았던 소주병과 오징어 구운 것을 담은 뒤 목에 걸고 조심조심 쇠사다리를 오른다.

지상은 어둠에 깔리면서 낮의 열기가 식었는데, 옥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뜨듯한 옥상 바닥에 주저앉은 뒤 소주병 마개를 따고서 꿀꺽꿀꺽 소주를 마신다. 점심은 기숙사 식당에서 먹고 나왔지만 저녁은 먹은 게 없어, 목구멍 너머로 들어간 소주는 이내 독한 기운으로 내장에 퍼진다. 아이는 벌써 흔들리는 눈길로 오징어를 찾아 두 손으로 뜯어 먹다가, 다시 소주병을 들어 마신다.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하게 보여야 할 옥상인데 그렇지 않다. 백여 미터 거리를 두고 지어진 이십오 층 고급 아파트의 휘황한 전등불빛들이 여기 옥상까지 날아오면서 밤하늘을 허연 그물처럼 막은 탓이다. 그 여자가 산다는 저 이십오 층 아파트의 어느 집. 그 여자는 아버지 화장한 재를 강물에다 뿌리고 돌아온 날 저녁에 우리 형제한테 이런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나는 네 아버지와 이혼해서 벌써부터 남이었다. 인제는 너희끼리 잘 살기 바란다.’

그 때부터 엄마는 그 여자가 되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한 사실은 우리도 아는 오래 전 일이었다. 아버지의 부채가 넘어오는 것을 피하기 위한 문서상의 위장이혼이라 했는데…… 그것을 실제로 적용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음료 판매사업이 그럭저럭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 여자는 엄마였었다. 아파트 관리비니 전기료니 하는 것들을 꼬박꼬박 잘 내고 살 때는 좋은 엄마였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래도 오늘 밤, 예전에 십 년 넘게 살았던 105403호 가까운 위에서 지내게 되지 않았나. 403호 안방의 아랫목처럼 따듯한 옥상 바닥이라니……. 소주에 취한 탓일까, 아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진 채로 앉아 있다가, 벗었던 상의를 이불처럼 뒤집어쓰며 옥상 바닥에 누웠다. 밤잠을 청한다. 뒤집어 쓴 상의가 검은색 동복이니까,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르려다가 쳐 놓은 빛 그물에 걸려 추락해 버린 꼴 같았다.

 

다음 날.

오후 다섯 시까지 학생들이 기숙사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박 선생은 서울 집에서 오후 세 시쯤 학교가 있는 지방 도시로 출발해도 될 텐데 오늘은 점심을 먹자마자 한 시에 바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그 아이가 마음에 걸려 집에 있느니 기숙사에 일찍 가 있는 게 나을 듯싶었다. 오후 세 시도 되기 전에 학교 내의 기숙사에 도착한 박 선생.

이 층 건물인 기숙사의 일층 출입구 옆에 전원박스가 있다. 그것을 열어 기숙사에 전기가 들어오게 하고, 이어서 출입구를 가린 철제문의 잠금장치를 풂으로써 기숙사는 정상이 되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기숙사 내부. 박 선생은 뚜벅뚜벅 걸어 사감실로 들어가서는, 벽에 붙은각 실 별 명단부터 살핀다. 일 층에는 101호실부터 110호실까지 있고, 이 층은 201호실부터 210호실까지 있다. 그 아이 이름은 210호실에 들어 있었다. 이 층 맨 끝 구석방이다.

그 아이가 그 동안 내 눈에 뜨이지 않았던 게 맨 끝 구석방인 때문이었나? 그보다는 그 아이가 내 눈길을 피해 생활했을 개연성이 더 크겠다. 각 호실마다 네 명씩 배정되어 있는데, 애들은 기숙사를 수학여행 온 여관방처럼 여기는지 쉬지 않고 들락날락거리며 떠들어댄다. 그 아이가 그런 소란 속에 숨어 있으면 내가 몇 달 정도는 모르고 지낼 수도 있지.

박 선생은 사감실을 나와 어둑한 복도를 걸어 210호실에 다다랐다. 문을 열자,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한 악취. 한창 크는 애들이라 수컷의 냄새에다가 안 빤 양말 냄새, 땀 냄새 등이 뒤섞여 남아있다. 방의 왼쪽에는 사 단으로 설치된 침대가 있고 오른 쪽에는 네 조의 책걸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네 조의 책걸상 중 가장 구석에 있는 그 아이의 자리. 책상 앞 벽에는 아이가 형으로 보이는 청년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과, ‘서울대 합격!’이라고 검은 매직으로 굵게 쓴 종이가 나란히 붙어 있다.

박 선생이 놀란 것은 책상 밑에 가득한 책들이다. 어둑해서 미처 못 봤었는데 의자에 앉아 두 발을 뻗기 힘들게 책상 밑에 꽉 찼다. 극빈이라는 아이가 웬 책이 이렇게 많아?

궁금해서 책 하나를 꺼내 환한 창가에서 보니까 영어 문제집이다. 들쳐보자 지저분한 밑줄 긋기도 많은데다가, 책 표지에 적힌 이름도 그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 이름이다. 그제야 감이 잡혔다. 아이가 문제집을 살 돈이 없자 학교 쓰레기장에서 주운 것이다. 요즈음 애들은 학년이 오르거나 졸업하면 그 동안 보던 책들을 미련 없이 다 쓰레기장에 내다 버린다. 조금 풀다가 말아서 새 것이나 다름없는 문제집도 그냥 다 내버린다. 여하튼 공부 하나는 열심히 하는 아이이구먼.

그런 아이를 기숙사에 남겨놓는다면, 내가 전기를 꺼 놓아도 양초라도 구해 밤새 공부했을 게 뻔하다. 그건 안 돼지. 이렇게 책들도 많고 좁은 방에서 그랬다가는, 자칫 양초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기숙사 전체로 불이 번져 대형화재가 될 텐데. 안 됐지만, 내가 어제 아이한테 나가서 자고 오라 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암 그렇고말고.

박 선생이 사감실로 돌아와 텔레비전의 재방 드라마를 보는 중에 오후 네 시가 되었다. 그 때부터 아이들이 와글와글 기숙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다섯 시. 박 선생은 사감실의 방송장치를 켠 뒤 마이크를 잡고서 각 방의 대표들에게 현재인원을 즉각 보고하도록 알린다. 잠시 후 이십 명의 대표 모두 사감실 앞에 모여 101호실부터 보고하는데 210호실에 이르도록 단 한 명의 결원도 없었다. 일부러 210호실의 대표에게 재차 확인했으나 전원이 입사했단다.

그럼 됐구나. 어제 오후부터 편치 않은 박 선생의 마음이 확 풀렸다. 그 아이가 여하튼 들어왔으면 되었다. 박 선생은 기숙사 구내식당을 인터폰으로 불러기숙사생들의 여섯 시 저녁식사에 차질이 없도록당부해 놓고 다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갈등이 본격화될 때 그 아이가 왔다. 부은 듯한데 겁먹은 얼굴이다. “기숙사 학생회장 애가,(콜록) 사감 선생님이 어제부터 저를 찾으셨다고 해서, 왔습니다.(콜록)”

내가 말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너를 학교 수위실 빈 방에 재울 것을 그랬나 싶더라고. 그래서 찾았지. 그래, 간밤에 잠은 어디서 잘 잤냐?”

.”

기침하는 것을 보아, 어디 공원 벤치 같은 데에서 잠잤을 듯싶다. 박 선생은 캐묻지 않았다. 이제 그만 가 봐도 된다고 손짓해서 보냈다. 그래놓고 생각해 보니, 녀석이 여전히 땀내 나는 동복 차림에다가 덥수룩한 머리인 게 어제처럼 용의복장 불량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런 녀석을 방치해서는 집단의 질서를 잡을 수 없다는 게 지론이지만 이번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이고, 이놈의 기숙사 사감 짓도 못할 짓이다. 밤새 들락날락하며 떠드는 놈에다가, 배탈 났다고 찾아오는 놈, 물건 잃었다고 찾아오는 놈, 다른 호실에 들어가 잠자는 친구를 후려치고 도망 오다가 잡힌 놈 등등. 어디 그뿐인가? 수시로 막히는 화장실의 변기, 수시로 갈아주어야 하는 형광등, 수시로 시내 기술자를 불러들여 고쳐야 하는 고물 세탁기. 게다가, 화장실에 비치하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하루나 이틀 만에 거덜 난다. 다섯 칸이나 되는 화장실에 비치되는 것들이 거의 동시에 그런다. 학교의 행정실장은 나만 보면 투덜거린다.“두루마리 화장지 비용으로 올해 기숙사 운영비가 다 나가겠습니다!”

객지의 하숙비도 아낄 겸, 교감 승진이 되기 위한 평가 하나 잘 받아보려고 자원한 고생치고는 고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사감이란 짓은 올 한 해로 끝이다. 내년에는 학교 부근에서 하숙하며 설렁설렁 출근하다가…… 교감 자격 연수로 들어가야 되겠지. 어쩌다가 마누라를 안아주는 일도 버거운 늙은 놈이 이제 무슨 낙이 있나. 교감, 교장이 되는 것, 그 낙밖에 없지.

박 선생이 신세타령을 속으로 하고 있을 때 누가 문을 노크한다. 문을 열자 이번 주 화장실 청소를 맡은 녀석이 서 있다. 이 녀석은 지난주에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걸려 이번 주 화장실 청소 전담이라는 벌을 받았다. 이 녀석은 왜 왔나? “무슨 일이냐?”

선생님, 변기 구멍이 하나 막힌 것 같은데요.”

다음 날 오전.

학교 교무실로 형사 두 사람이 찾아 왔다. 한 사람은이 학교 동복을 입은 아이가 웬 여자를 시내버스 쪽으로 세차게 밀치는장면이 찍힌 감시카메라 사진 한 장을 손에 쥐었고 다른 한 사람은 헌 책가방을 들었다. 헌 책가방을 든 형사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사고현장에서 이 책가방을 채증해 왔기에 그 안의 책들을 보고 용의자를 특정하려 했는데 책마다 적힌 이름이 다 다르니, 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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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이라고까지 할 건 없었다. 그 친구와 내가 같은 도내에서 나이 오십이 넘도록 교단에 서다 보니,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됐을 뿐이다. 그래도 한 때 절친한 사이였다가, 소원하게 지낸 오랜 세월 후에 이뤄진 만남이라 그 느낌은 운명의 장난 같았다. 더구나 둘 다 아직도 평교사라니…….

그래서일까, 우리는 학교 현관에서 마주친 순간 어허, !’ 하며 악수를 나누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노 교사들에 대한 학교 측의 배려로 업무가 한가한 편인 환경부로 함께 배치된 후에도 우리끼리의 별도 만남은 없었다. 물론 학기 초가 원래 바쁜 시기이므로 사적인 시간을 내기 어렵긴 했다. 그래도 환경부에서 환영회를 연 날 밤에 회식이 끝나자마자 각자 귀가하기 바빴다는 사실은 무심함을 넘어 상대를 무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튿날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게 먼저 말했다.

, 어제 우리끼리 따로 술 한 잔이라도 하고 헤어질걸 그랬어!”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나중에 했지. 그럼, 적당한 날 퇴근길에 술 한 잔 하자고.”

그래도 술자리를 갖지 못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친구는 몸이 편치 않아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느라 퇴근 후 시간 내기 바쁜 사정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 명예퇴직에 대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한창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어느 한 쪽이 능동적으로 나섰더라면 술자리가 만들어졌을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그러지를 않고라고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 그냥 지냈다.

공문이 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술 한 잔 나누는 일 없이 몇 년을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 공문명예퇴직 신청공문이 마침내 온 것이다. 교무실을 시작으로 우리 환경부사무실까지 회람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마침내 올 게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감격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이 닥친 데 대한 두려움이었다. 공문은, 명예퇴직 신청을 일주일 내로 받겠다는 내용을 전제로 신청서 양식이 첨부돼 있었다. 나는 우선 한 부 복사했다.

아무래도 남 보기에 민망한 공문이라 여겨 서랍에 넣을 때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명퇴를 생각하니? 나도 생각중이거든.”

뜻밖이면서 반가웠다. 나 말고도 명퇴를 생각하는 이가 있다니, 그것도 친구라니……. 마침 사무실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공문을 한 부 더 복사해 친구에게 건네며 난롯가에 앉아 의견을 나누었다.

자네는 왜 명퇴를?”

내가 몸이 아프잖아. 두어 달째 한의원을 다니면서 침을 맞고 있지만 별 차도가 없어.”

무슨 병이야?”

병명은 분명치 않은데 하반신, 그러니까 발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고.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감각이 없는 게 마치 남의 다리 같다니까. 아무래도 제대로 치료하려면 요양하면서 치료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지……. 그런데 자네는 왜?”

나는 더 이상 근무하기 싫어서 그래. 갈수록 수업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교감이 될 가능성도 없고, 그러니 이런 좋은 기회에 나가려고 그래.”

나야 승진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지만, 순탄하게 지냈을 자네가 그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

그렇게 됐어.”

집사람이 동의하냐?”

동의고 뭐고 없어. 내가 하도 명퇴 얘기를 했더니, 지쳐버렸는지 당신 좋은 대로 하라고 하네.”

나는 그 정도만 말했다. 먼젓번 학교에서 비롯된 교직에의 모멸감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커져 나는 명퇴 생각밖에 없었다. 교직이 싫어 나가고 싶은데 마침 명퇴금까지 준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반기면서도 마음 한 편은 두렵고 번민이 많은 날들이었다. 친구가 제의했다.

오늘 퇴근길에 어때?”

술 한 잔? ……좋아.”

마침내, 한 달여 만에 우리는 생맥주 집에서 따로 만난 것이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명퇴를 결심하게 된 사연을 밝혔고, 친구는 부부관계마저 여의치 않은 몸의 심상치 않은 증상에 대해 늘어놓았다. 늦도록 마시다가 헤어졌지만, 고교 시절에 친했다가 절교했던 사건 얘기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긴 모처럼의 술자리에서 굳이 지난날의 가슴 아픈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

 

고교 시절에는 어떤 성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친구는 확실히 외향적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 난롯가에 서서 걸쭉하게 한 마디 던지기를,

명퇴들 안 하슈? 관련 공문도 왔는데.”

순간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교직사회에 불어 닥친 명퇴 바람이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실제 학교 현장은 말없이 차분하게 근무하는 중이었다. 그런 분위기라, 명퇴 여부를 고민하는 내 자신 침묵하고 있는데 친구가 걸쭉한 어투로 그 침묵을 깨버린 것이다.

놀라운 것은, 환경부 사무실이 이내 명퇴 얘기로 떠들썩해졌다는 사실이다. 2년 후배인 환경부장부터 선배님, 공문 좀 봅시다하며 나서는가 하면, 1년 선배가 될 교련선생 역시 침통한 낯으로 그러잖아도 생각중인데……하며 끼어들었다.

환경부장은 날이 갈수록 수업하기도 싫고 힘든 나이를, 교련선생은 교련 대신 다른 과목을 상치로 가르쳐야 할 처량한 처지를 각기 사유로 댔다. 과연 분장업무가 한가한 환경부 사무실은 승진을 포기한 퇴물 노 교사들의 집합소였다.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별실이기에, 하루 종일 명퇴 신청에 대한 고민들을 토로하느라 바빴다.

침묵하던 나도명퇴 신청 고려중이라고 처지를 밝힐 수밖에. 하긴, 친구가 내게자네 서랍에 둔 공문 좀 꺼내 봐했으므로 더 이상 침묵할 수도 없었다.

나까지 모두 네 명이 신청 접수 마감 전 날까지 며칠 동안, 수업이 없는 빈 시간마다 난롯가에 앉아 명퇴 얘기로 지내게 된 시작은 그러했다.

 

이번에 한해 명퇴 신청자 전원을 받아들인다는 장관의 언급’, ‘각자의 경력에 따른 명퇴금의 추정 액수’, ‘타 시도의 명퇴 신청 분위기등의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지내는데 떠들썩한 말소리만큼이나 두려운 기색임을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퇴직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며, 얼마 안 될 연금으로 생계 규모를 줄여 살 수밖에 없게 되며, 게다가 딱히 할 일마저 없다면…….

속으로 하는 한심한 고백이지만, 상대적으로 나는 명퇴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내가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으니 명퇴 후 닥칠 생계 규모 운운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도 있고……. 그래도 명퇴 신청은 여전히 두려운 선택이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다가, 어쩌면 내가 일시적 감정으로 이러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마침내 명퇴 신청 마감 날이다.

머리가 텅 빈 듯 건성으로 1교시 수업을 마친 나는, 교실을 나오자마자 행정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좁은 복도에서 나와 부딪힌 학생이 뭐라 죄송하다는 뜻의 말을 해도 귀담아들을 새 없이 바삐 걸었다. 내 손에 든 서류봉투 속 명퇴신청서를 제출할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근 전 집 현관에서 아내가 내게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했었다. 물론 그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나는 행정실에 들어가자 담당자한테 말없이 서류봉투부터 건넸다.

그는 안의 신청서를 꺼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내시는 겁니까?”

……. 살펴보시고요, 혹 잘못 적은 게 있으면 연락주세요.”

행정실을 서둘러 나왔다. 1교시 수업 때의 교재를 여전히 옆구리에 낀 채 환경부 사무실로 돌아오니 난롯가에 친구가 서 있었다. 친구 역시 예의 신청서를 손에 쥔 채 내게 물었다.

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섰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전날과 달랐다. 전날만 해도 난롯가에 앉아 명퇴 얘기로 종일 보내던 후배 환경부장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교련선생은 술이 덜 깬 얼굴로 자기 의자에 등기대고 앉아 자고 있었다. 왠지, 자는 체하며 우리 둘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친구가 말없이 골몰하는 낯이더니 결심이 선 듯 신청서를 한 손에 쥐고 휘적휘적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만 해도 서류봉투 속에 넣어 들고 가던 것을 친구는 마치 주운 삐라처럼 가벼이 취급했다.

30여 분 후 친구가 돌아왔다.

그 때부터 사무실에는 이상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나와 친구는 전과 다름없이 비는 시간마다 난롯불을 쬐지만 서로 말 한 마디 건네는 일이 없었다. 후배 환경부장은 오후의 청소시간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청소시간에 학교를 둘러보는 게 환경부장의 주요 업무이므로 결근인가 했는데, 그의 책상 서랍이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았다. 이튿날 그가 밝힌 바로는 전 날 감기 기운이 승해 숙직실에서 종일 누워 지냈다했다. 맡은 수업은 자습하도록 실장들한테 미리 지시를 내려놓고 지냈다는데, 감기 기운이 여전하다며 기침을 별나게 할 뿐 명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교련선생은 종일 의자에 파묻혀 덜 깬 술기운을 가라앉히는 모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도 수업시간이 되면 그 반의 실장을 불러다가 자습하며 조용히 지내도록 지시하는 모습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난롯가에 모여 앉아 명퇴 신청 얘기로 떠들썩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절간처럼 가라앉은 것이다.

나야 내성적인 성격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친구까지 별 말 없이 침묵에 잠겨 지내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며칠간 떠들썩하던 명퇴 담론들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심지어, 우리끼리 퇴근길에 술 한 잔 또 할 수 있는 날임에도 친구 먼저 말없이 먼저 퇴근해 버렸다.

 

이튿날.

출근했으나 별 일 없었다.

그 말뜻은, 출근하자마자 교감이나 교장선생이 나와 친구를 불러다 앉혀놓고 명퇴 신청 여부를 확인한 뒤 신청 철회를 종용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교내에는 벌써 소문이 다 돌았는지, 오래 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후배 선생이 나를 찾아와 부장님, 정말 명퇴 신청하셨어요?’하고 매우 안타까운 낯으로 묻기도 했다. 그는 예전의 시골 학교에서 내가 연구부장을 할 적에 문서 담당이었는데 지금의 학교에서는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다른 별실을 사용하는 3학년 담임인 그가 내 명퇴 얘기를 듣고 왔다는 것은 전 직원에게 소식이 다 퍼졌다는 뜻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명퇴 신청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부장님. 너무…… 이른 게 아닙니까?”

……나중에 얘기해 줄게.”

환경부 사무실은 다시 평상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난롯가에 모여 명퇴 얘기로 떠들썩하는 일 없이, 청소시간이 되자 환경부장은 막대기 하나 들고 청소 지도에 나섰고 교련선생은 명심보감 책을 펴놓고 숙독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가 평소에 보여주던 마음을 수양하는자세였다. 다른 젊은 교사들이야 변함없이 컴퓨터를 켜놓고 무언가를 찾거나 작성하고 있었다. 단지 나만 난롯가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어떻게 된 게, 명퇴 신청서를 내면 가라앉을 것 같던 내적 갈등이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한 때의 일시적인 감정으로 섣부른 선택을 한 게 아니었을까?’ 하다가 무슨 소리야. 이런 기회는 정말 모처럼이야. 잘한 선택이야!’ 하다가 에라, 까짓 거 신청했으니 더 이상 생각 말아야지……하는 독백들이 내 속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제는 난롯가에도 오지 않고 복도로 나가 담배를 피우다 들어오는 게, 왠지 나를 피하는 듯했다. 명퇴 신청서를 낸 우리끼리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전날부터 건네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다음 날.

1교시 수업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오자 책상 위에 메모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교장실에 잠깐 다녀가시랍니다. 김양.’

김양은 교무업무를 보조하는 처녀다. 내가 어제부터 기다린(?) 연락이 온 것이다. 같은 연락을 받았나, 친구를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2교시 수업이 시작되어 일시에 교내 소음들이 가라앉은 긴 복도를, 나 혼자 걸어 교장실 문 앞에 다다랐다. 노크한 뒤 들어가니 교장선생이 창가의 햇살 한 움큼을 머리 뒤에 묻히고 집무책상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를 안경 너머로 넘겨보고는 당신이 먼저 실 가운데에 놓인 탁자 옆 소파로 옮겨 앉더니, 내게도 맞은편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왜 명퇴 신청을 했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나는 할 말이 없어 눈길을 아래로 낮추었다. 교장선생이 다시 조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먼젓번 학교에서 편치 않은 일을 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네. 그러나 승진이란 게 늦을 수도 있지 않나?”

아닙니다. ,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명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알겠네. 내가 염려하는 것은…… , 자네가 한 때의 언짢은 감정에 휘말려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거든. 명퇴 신청 공문은 내일까지 보내면 되니까, 내일 퇴근 전까지 내가 기다림세. 만일 자네 생각이 바뀌면 나를 찾거나, 교감선생한테라도 말해 주게.”

뜻밖의 따듯한 말씀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정중히 드리고는 교장실을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친구가 환경부장과 난롯가에 있다가 나를 보고 대뜸 물었다.

그래, 교장선생이 뭐라고 말씀하셔?”

, 명퇴 신청을 재고해 보라는…….”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친구는 그러면서 환경부장의 어깨를 손으로 탁 치는 게 무슨 내기라도 건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복잡해진 머리로 자리에 앉았다. 그 때, 친구가 이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마누라도 버니까 명퇴 신청해도 되지만 우리야 어디 그럴 수 있나?”

그제야 알아차렸다, 친구가 명퇴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마도 어제, 그 신청서를 삐라처럼 손에 쥐고 가다가 화장실에 들러 찢어버리지 않았을까?

 

결국 나는 명퇴 신청을 철회했다.

나도 몰랐던 또 하나의 내가 주도한 번복이었다. 왠지 억울하기 짝이 없는, 나쁘게 말하면 나만 사기당한 것 같은 느낌이 역력해지면서 밤새 잠을 설치며 생각던 끝에 아직은 명퇴 신청을 할 때가 아니다. 좀 더 있어 보자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잠을 설친 탓에 어지러운 걸음으로 교무실의 교감선생을 찾아갔을 때 눈치 빠른 그는 이내 감을 잡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위로하며 격려까지 했다.

그래, 한 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좋아, 이제는 마음 다잡고 근무하는 겁니다.”

나는 머쓱해져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복도의 창가에 멈춰 서서 교정을 내다보니 탐스런 하얀 꽃들이 허공에 가득 떠 있었다. 백목련 꽃들, 얼마나 꽃송이들이 많은지 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에 몰두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하게도 한동안 머리가 텅 빈 듯 건성으로 수업했으므로 미흡한 부분들은 다시 보완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때 난롯가에서 쉬던 친구가 한 마디 하였다.

아니, 얼마 후면 나갈 사람이 무슨 교재연구야?”

그러자 사무실에 있던 동료들이 뭐가 팍 깨진 듯 와하핫!’ 웃었다. 물론 내가 방금 전 명퇴 신청을 철회하고 왔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를 것이다. 나는 화끈거리는 낯으로 답했다.

나갈 때 가가더라도 할 건 해야지.”

그래? 그것도 참.”

친구는 담배개비를 하나 꺼내어 물다가 젊은 여선생이 금연구역입니다.’고 한 마디 하자 복도로 나갔다. 나는 오랜만에 교재연구에 몰두하였다. 정말이지 나갈 때 다가더라도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게 기본 책무가 아닌가. 그 놈의 되지도 않을 명퇴 소리는 이제는 듣기만 해도 진저리쳐지는 심정이었다.

그런 심정은 다른 명퇴 관심자들도 같았나 보다. 며칠 후, 청소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를 하는데 후배인 환경부장이 쥐고 있던 막대로 바닥을 땅 쳐서 자기를 쳐다보게 한 뒤 이런 말을 했으니.

형님, 이젠 명퇴 소리는 지겹지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다시 교재나 보려는데 그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잘 하셨어요, 철회하신 거. 나는 마누라가 난리쳐서 신청도 못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난롯가의 친구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 지금 나가면 뭣하나? 그저 봉급 타며 사는 게 제일이지.”

모두들 내 명퇴 철회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신중해야 할 신변 문제에 대해 이랬다저랬다 한 내 꼴이 전 직원에게 알려진 셈이니, 학생들이 잘 쓰는 말로 쪽팔리는상황이지만 의외로 담담한 심정이었다. 하긴 여러 명이 동시에 교감으로 승진발령을 받을 때 탈락한 놈에게 무슨 자존심이 남아 있겠나.

나는 교재를 보다말고 눈을 감았다. 교원 정년이 갑자기 축소되면서 노 교장들이 한꺼번에 퇴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빈자리를 채우려는 무더기 승진발령이, 하필 내가 그 학교를 떠날 즈음에 터질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별나게 교감승진자격자 지명권이 부여된 그 특별한 학교에서 말이다.

오늘, 술 한 잔 할까? 우리끼리 말이야.”

친구의 제안이었다.

그래요, 우리끼리 기념으로 한 잔 합시다.”

환경부장이 우리의 범주를 넓혔다. 그렇다면 교련선생도 포함시켜야 했다. 그를 봤더니 역시 명심보감 책을 펼쳐놓고서 혼자만의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친구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 양반, 아무래도…… 조는 게 아닐까?”

 

그 날의 술자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오늘 야간자습 감독입니다라는 3학년부장의 메모가 뒤늦게 전달된 탓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야자 감독이라 다른 날과 바꾸거나, 아니면 순해 보이는 젊은 교사를 찾아 잘 부탁하면 온전하게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우리끼리의 술자리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에이, 내가 몸이 안 좋다고 말했는데도 여전히 감독을 시키네. 에라 그놈의 감독, 오늘 그냥 해 치워 버리지 뭐. 그러니…… 자네들끼리 한 잔 하게!”

자기가 먼저 제의해 놓고 빠져버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자 환경부장 또한 , 그럼 다음에 날을 잡지요하였다. 결국, 굳이 술자리를 같이할 마음들도 아니면서 건성으로 술자리 얘기를 꺼내고 동의했다는 게 드러났다. 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퇴 관심자들의 유대(紐帶)라는 게 그런 수준이었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리끼리의 술자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환경부 차원에서 중간고사 기간을 이용한 회식도 있었으나 따로 남아 술 한 잔 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명퇴 관심자 모두가 쓸데없이 골치만 아프게 했던 명퇴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간고사가 끝나고 정상수업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친구가 출근하지 않았다. ‘이 친구 뭔 일이 있나?’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환경부장이 말했다.

제가 어제 밤 전화를 받았는데요, 서울에 있는 모 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으러 오늘 하루 결근한다 했어요. 교감 선생한테는 어제 미리 말씀 드려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친구는 환경부 회식 중에도 혼자서 술잔만 기울였었다. 다른 때였으면 부부간 대화는 잘들 이루어지고 있수? 아랫도리끼리 나누는 대화 말이야!’ 따위의 걸쭉한 음담도 늘어놓으며 회식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친구였는데 말이다.

친구는 그 날 하루 결근하는가 싶더니…… 아예 한 달 병가로 들어가 버렸다.

환경부장이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뇌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신경이 경추 뼈에 눌려 하체의 감각을 잃는 병으로 진단이 내려지는 바람에, 경추를 교정하는 수술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고 했다. 뒤늦게 친구의 심각한 상황이 짐작되었다. 뭔지 모를 심상치 않은 몸의 증세에 한동안 한의원의 침술에 기대해 보았다가, 차도가 없자 급기야는 전문 병원을 찾아 경추 수술이라는 중한 수술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10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이라 누가 결근한다고 그 빈자리가 표 날 것 같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복판의 난로까지 철거된 후라 그런지 사무실은 냉기와 함께 허전함이 컸다.

친구가 한 달 병가로 들어가면서 우리 사이가 사실은 소원한 사이라는 게 드러난 셈이었다. 위급한 병에 대한 소식조차 남을 통해 전해 들었으니 말이다. 30여 년 전 고교 시절에 너희 둘이서 동성애하는 게 아니냐?’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절친했던 우리 사이였는데…….

고교 시절, 어느 날 밤이었다. 방과 후에도 붙어서 돌아다니던 우리는 어두운 골목에서 대여섯 명의 낯선 패거리와 맞닥뜨렸다. 각목을 든 걔네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붙잡혀 망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 풀려났는데, 사흘 뒤 나는 친구에게절교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 지경에서 서로를 챙겨주지도 못하고 당할 뿐인 친구사이라면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보름 정도 지난 밤, 친구는 자정이 머지않은 시간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교복 차림에 소주냄새가 진동했다. 다시 전처럼 친구사이를 회복하고 싶다고 흐느끼며 말했으나 나는 달리 답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친구한테 학생이 무슨 술을 !’ 하며 대문 밖으로 떠밀 듯이 내보냈다. 찬바람이 스산하던 초겨울 밤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춘기는 막을 내렸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위기 때 서로를 챙겨주지 못하는 친구사이라면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은 권태감이 주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싫증날 만큼 3년 가까이 붙어 다닌 게 원인이었다. 또는, 어처구니없게 몰매를 맞고도 꼼짝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정리하는 심정일 수 있었다. 친구에게 절교선언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나 할까.

어느 것이 주된 원인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 후로 우리는 정말 사이가 멀어졌으니까. 그 후로 나는 더욱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고 친구는 그에 반해 외향적이 되는 식으로 행동양태까지 멀어져 버린 게 아닐까?

가지들만 엉성하게 남은 백목련나무의 배경 하늘이 누런빛이었다.

환경부장이 복도를 총총히 걸어 다니며 열린 유리창들을 닫고 있었다. 황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머나먼 중국 땅 고비사막에서 비롯되었다는 누런 모래알들의 바람이.

 

황사 바람이 부는 일요일 오후.

나는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섰다. 친구가 서울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지 열흘만이다.

초여름임에도 아득한 북녘 어디선가 날아온 모래바람에 늦가을처럼 싸늘해진 거리였다. 다니는 차량들도 뜸하고 행인도 보기 어려웠다. 나는 친구가 산다는 변두리 동네에 다다르자 차를 세워놓고 근처 슈퍼에서 건강 음료 한 박스를 샀다.

이 도시에 오래 살았어도 직접 와 보기는 처음인 동네. 골목이 좁아 차를 차도 변에 두어야 했다. 찾아오기 전에 친구 아내와 통화했는데 ‘3층 연립주택의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으니까 집 주인의 문패를 일러주겠다김용석이란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김용석, 김용석……

되뇌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모래바람에 희미해진 햇빛으로 골목 안은 그늘마저 흐릿하게 뭉개져 있었다.

알루미늄캔 나이트클럽전단지 컵라면 빈 용기 등이 한 무더기로 몰려 있는가 하면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강아지처럼 달아나기도 했다. 나는 바람에 눈앞을 가리는 머리카락들을 손등으로 넘기며 김용석이란 문패를 찾았다.

마침내 일러준 3층 연립주택을 찾았다. 철 대문이 열린 채, 반쯤 무너진 시멘트 담장의 벽돌 건물이었다. ‘김용석플라스틱 문패 아래에 초인종 세 개가 세로로 나란히 달려 있기에 두 번째 것을 누르자 아침에 통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정말 오셨네. 어서 올라오세요.”

건물 외벽에 붙은 녹슨 쇠다리 층계를 밟고 올라가자, 친구의 아내가 바람에 흔들리는 문짝을 부여잡고 있었다. 살림들이 구석구석 널린 방에서 친구는 부은 얼굴로 이부자리에 앉아 나를 맞았다.

학교는 별 일 없지?”

그럼. 그래, 몸은 어때?”

아주 조금씩 감각이 살아나는 듯해.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나아지겠지.”

그럼, 나아지겠지.”

그의 아내가 컵 두 잔에 음료수를 담아 내왔다. 우리는 각기 컵을 잡고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친구는 입만 대다 마는 듯했고 나는 반쯤 마셨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술자리가 아니라서 그럴까, 별로 떠오르는 말도 없고 딱히 더할 말도 없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그래서 친구는 텔레비전의 음량을 조금 높였다.

우리는 무슨 드라마를 10여 분 넘게 보았다. 주인공들이 신나게 불륜을 저지른 뒤 앞날을 고민하는 스토리였다. 나는 그의 아내가 깎아서 내온 사과들 중 하나를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갈께.”

아니, 더 있다 가지 그래.”

아니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래, 내가 출근한 뒤에 날 한 번 잡아서 우리 둘이 술 한 잔 하자구.”

그래.”

나는 다시 쇠다리 층계를 조심스레 밟으며 내려갔다. 바람 때문인지 삐걱삐걱 소리가 심한 층계였다.

20여 년 전인 80년대 말 겨울 어느 날. 친구가 교육현장의 모순을 뜯어고치자는 모임을 준비하면서 내게 창립 취지문을 하나 써서 보내 달라는 부탁을 은밀하게 인편으로 전해 왔었다. 나는 며칠 고민하던 끝에 사양하고 말았는데…… 그 때 그 부탁을 받아들였더라면 우리는 고교시절처럼 친한 사이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글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뒤 친구가 해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안됐어 하면서도 나의 선택에 안도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오랜 실직으로 어렵게 살아온 성장과정의 내력은 그렇게 나를 옭아매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 시절 거센 바람의 한가운데 섰다가 해직, 복직의 험로를 걸은 친구마저 이젠 그런 활동도 다 지나간 일이고 그저 늙고 병든 몸만 남았을 뿐이라며 지난봄의 술자리에서 실토하질 않던가.

 

여름방학이 끝나자 2학기 인사발령이 났다.

교감선생은 시골 학교의 교장으로 나갔고 그 후임으로 온다는 신참 교감은 우리에게 1년 후배 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나 친구는 그를 알고 있었다. 나한테는 대학교 국문과의 후배였고 친구한테는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형, 동생하며 지냈던 사이라 했다. 환경부장이나 교련선생도 모두 다 이렇고 저런 관계로 알 만한 교감이었다. 모두들 30년 가까운 교직 경력이니 말이다. 친구가 예전의 명퇴 관심자들을 둘러보면서 한 마디 던졌다.

먼저 교감선생은 나이라도 많았지, 이제는 동생뻘을 상사로 모시게 됐으니 폐인이 다 된 거야!”

나는 맞장구 칠 마음이 아니라서 그냥 웃고 말았지만 후배 환경부장은 자기보다 1년 선배 되는 교감이라 그다지 불편한 심정은 아닌 듯했다.

, 형님도 무슨 폐인은? 교감이라 해도 봉급 타긴 마찬가지잖아요?”

무슨 소리야? 평교사보다 무슨 수당이니 뭐니 해서 더 타는데?”

그런가요?”

시시한 대화들을 나누는데 교련선생은 좀 달랐다. 1학기 때에는 명심보감을 보다가 여름방학 후에는 장자란 책으로 바뀌었는데 뜬금없이 이런 말을 뇌까리던 것이다.

세상사, 달팽이 머리끝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을……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며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신임교감이 출근하였다.

그는 교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환경부 사무실부터 찾았다. 교직의 선배들이 포진한 곳임을 미리 파악하고서 직접 인사차 들른 듯했다. 역시 나이 50이 되기 전에 시내 중심가의 큰 고등학교에 교감으로 오는 사람은 뭔가 달랐다.

먼지 하나 안 묻은 새 양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며 나와 첫 번째로 마주쳤다. 내게 먼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요즈음도 시를 쓰십니까?”

나는 그냥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는 대학시절에 시로 각종 상을 휩쓸던 나를 여전히 기억했다. 내 옆에 선 친구한테는 잘 부탁드립니다. 혹 제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먼저 일러 주십시오 하고는 허허허 웃었다. 친구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 뒤에 선 환경부장을 보고는 그냥 미소 지으며 악수만 나누고 마는 게, 부장선생들과 미리 상견례 모임이 있었던 것 같았다.

뜻밖인 것은 교련선생이었다. 지나치다 싶게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이런 말을 했으니.

잘 부탁합니다. 제가 나이만 많았지 아는 게 뭐 있습니까?”

교감이 사무실을 나간 뒤 교련선생은 다시 장자 책을 펴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글쎄, 그의 지나치게 겸손해 보이는 행동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

후배 교감이면 어떠하리, 내가 알아서 굽히면 되지라는 생각에서 그랬을 거라는 해석과, ‘곧 닥칠 과목 조정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신임 교감에게 잘 보이자는 생각에서 그랬을 거라는 해석.

어쩌면 두 가지 생각이 합쳐진 결과로 나타난 행동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후배를 교감으로 모셔야 한다는 현실은, 아무리 넓게 이해한다 해도 처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교감.

특별하게 교감승진자격자 지명권을 가진 먼젓번 학교에서…… 지명을 받고자 한 동료들 간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했다. 교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그 정당성이나 진실성을 떠나 오직 교장 교감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느냐?’에 국한돼 있었다. 명절날이라도 오면 누구는 교장 관사를 찾아가 무슨 뇌물을 썼느니 뭐니 하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들로 흉흉하였다.

나는 그 이상한 학교로 전근 간 첫 달부터 질려버렸다. 그 동안 여러 학교를 근무해 봤지만 정말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잘못 들어온 이상한 학교였다. 때가 되면 멋진 시집 한 번 내 보자는 소박한 꿈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런 경쟁의 대열에서 처음부터 스스로 빠져 버렸다. 솔직히, 교감승진자격자를 1년에 한두 명씩 지명한다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던 게 학교 만기로 나오던 지난 2월에 여러 명이 지명 받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

 

신임 교감은 역시 사무도 잘 처리하고 60여 명의 많은 직원들도 잘 통솔하는 능력자였다. 하긴, 선배 되는 노 교사들이야 사무도 별로 없는 환경부 사무실에 다 있으니 불편하게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10월 하순이 되면서, 친구와 내가 같이 주번교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김으로써 불가피하게 교감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 자체의 주번교사 내규에 따르면 평교사 중 만 53세 이상이거나 부장교사는 주번에서 면한다로 되어 있었다. 나이가 50세이면서 부장도 아닌 친구와 나는 꼼짝 못하고 주번교사를 해야 하는 내규였다. 어디 그뿐인가, 둘씩 짝을 지어 하게 되어 있는데 전입 순으로 순번명단이 작성되었으니 우리 둘이 같이해야 했다.

참 공교로웠다. 나는 그런 사태도 모르고 있었지만 친구는 진작부터 알고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느라 전전긍긍했던 모양이다. 내가 컴퓨터를 켜놓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뉴스를 보는데 친구가 불쑥 주번계획서를 내 책상에 팽개치듯 놓더니 먼저 이런 제안을 했으니.

우리 둘이 다음 주에 주번교사야. 모르고 있었어? 나 원 참, 무심한 친구라니까. 우리 둘 다 노털들이니까 젊은 교사하고 짝을 이루어야 편하게 지낼 수 있거든. 그래서 내가 젊은 애들과 순서를 바꿔 짝지어 보려 했는데 그게 안 됐어.”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번교사 문제를 늘어놓는 것에 나는 놀랐다. 지난봄의 명퇴 신청 때 못지않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이까짓 주번교사 하는 것 가지고 뭐 그리 법석이냐싶었다. 친구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나지막한 어조로 제안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주번계획서 결재라든가 주훈 발표 같은 것을 맡게. 나는 청소시간마다 주번 애들을 데리고 교정 청소하는 일을 맡을 테니까.”

사실상 제안이라기보다는 통보였다. 언뜻 듣기에 자기가 힘든 일을 맡고 내가 편한 일을 맡는 식으로 업무를 나눈 듯싶지만, 그게 아니었다. 후배 교감 앞에 나아가 결재를 받은 뒤 모든 동료 교사들이 참석한 회의실에서 주훈 발표를 해야 하는 남세스런 일이었다. 동료 교사들 중에는 예전 학교에서 부장할 때 계원이었던 후배들도 있고 심지어는 제자들도 있으니 한 마디로 말해 공개적으로 쪽 팔리는 일이었다.

나는 주번계획서를 받았다.

사실 우리는 소원한 사이이지만 이런 일로 낯을 붉힐 수는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는가, 주번계획서에서 3주 전 것을 펼쳐 놓고 그대로 베낀 다음에 결재 받기에 나섰다. 첫 번째 결재는 학생부장의 순이었다. 물론 4년이나 아래인 후배였다. 마침 그가 자리에 없어서 나중에 들를까 하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는가.

학생부의 다른 선생한테 양해를 구한 뒤 학생부장의 책상 서랍에서 도장을 찾아 해당 결재 난에 찍었다.

교감선생은 공문을 보고 있다가 내가 주훈계획서를 들고 그 앞에 서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뺏듯이 받아 쥐고는 내용도 안 보고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아이고 선배님, 고생 많으십니다. 아무래도 우리 학교의 주번교사 내규를 바꾸어야겠어요. 50세 이상은 면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결재를 마친 뒤, 월요일 직원회의 시간이 되었다.

제가 금주 주번교사입니다. 이번 주 주훈은……

주훈 발표도 마쳤다. 그게 내가 맡은 주번 업무의 전부였다. 후배 교사 몇몇이 나를 보고 아니, 아직도 주번 하세요?’ 묻기도 했으나 웃고자 하는 말이지 놀리는 어조는 아니었다. 놀린다 한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는가.’ 나는 이미 무능한 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의외로 내 심경은 담담했다.

청소시간이 되었다. 환경부장이 별스레 사무실 청소에 나섰으므로 나는 복도로 나왔다가, 창밖의 친구를 보게 되었다. 친구가 교정에서 주번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청소 지도하고 있었다. 무수히 떨어진 은행나무 잎들을 수레까지 동원해 쓸어 담도록 하고 있었다.

딴 짓하는 주번 애들을 뭐라 나무라기도 하면서 청소를 지도하는데 은행잎들이 얼마나 쉴 새 없이 떨어지는지, 치운 직후에도 다시 교정에 쌓였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다 떨어진 사나흘 뒤에 치우는 게 현명할 듯도 싶은데…… 친구는 분담한 주번교사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은행잎 몇 개가 친구의 허옇게 센 머리 위에 떨어져 얹히니 마치 부분 염색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10월이 지나갔다.

그 무렵에 ‘2학기 말 명예퇴직 신청공문이 왔으나 그조차 의식 못하고 아니 모른 척 지나쳐도 될 만큼 바삐 지나간 10월이었다.

 

백목련 꽃송이들이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교정에 주번 애들이 서 있었다.

꽃송이들을 쓸어 담는 애들이 아니었다. 주워서 눈싸움하듯 던지는가 하면 발로 밟아 뭉개는 애들도 있었다. 그냥 빈 수레를 끌고 다니며 노는 애들도 있었다.

교감선생이 주번교사를 찾고 있었다.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험악한 표정으로, 행방불명인 주번교사들을 찾고 있었다. 복도에서 내다보던 나는 도대체 이 친구가 어디 간 거야?’ 원망할 뿐이다. 내 손에 주번계획서가 들려 있으니 바깥 청소는 친구 담당인 게 분명했다. 친구가 어딘가로 숨어 버린 것이다. 교감선생이 씩씩거리며 복도 안으로 들어설 때 나는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어 친구의 이름을 냅다 부르는데, 꿈이었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낮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이 목덜미고 가슴이고 가득했다.

제기랄, 명퇴한 놈이 무슨 주번은…….’

명퇴한 뒤로도 1년에 두어 번 꼴로 학교 꿈을 꾸는데 그렇게 흉한 꿈을 꿀 줄 몰랐다. 교직을 떠난 지 벌써 4년이다. 친구는 아직도 시골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남한테 들어서 알고는 있다. 물론 우리는 같이 있던 학교에서 헤어진 뒤로도 특별한 만남은 갖지 못했다.

서로가 바쁘니까.

그런데 친구의 하반신 감각은 제대로 살아나고 있을까?

친구한테 안부전화라도 걸어볼까, 망설인다. 통화라도 이루어진다면 왠지 꽉 막힌 시상이 풀릴 듯싶다. 누런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이윽고 수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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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02-0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 선생님, 남 얘기 같지 않아 눈을 흡뜨고 읽었습니다. 평교사가 존중받는 풍토는 요원한 것 같군요.

무심이병욱 2017-02-0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 한자에 능통한 찔레꽃님. 님의 해박한 지식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황사주의보는 명퇴한 지 4년째 되던 해에 썼습니다. 교직을 그저 교장 교감 되는 경쟁의 장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에 질려서 명퇴했지요. 그 후 벌써 9년이 흘렀군요. 삶이 너무 빠르고 덧없는 것 같아, 저는 작품을 쓰는 일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만 적습니다.
 

     

 

(1)

 

나는 월남에서 돌아왔다.

커다란 군함을 타고 비둘기 태극기 풍선 날리는 조국의 항구로…… 환영의 플래카드 속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비행기로, 중상자 후송 비행기로 사월 어느 날 조국의 남부지방 어느 적막한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내 가슴에도 훈장은 걸렸다.

한쪽 발과 한쪽 눈은 영영 내게서 달아나고, 몇 십 그람 무게를 가진 훈장 하나가 가슴에 걸렸다. 온통 붕대에 싸인 채로 나는 한쪽 남은 눈으로 후송 비행기 창을 통해 조국의 거뭇거뭇한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아아 일 년 만의 조국이었다.

나의 한쪽 남은 눈에서, 그래도 눈물은 흘러나왔다.

내가 탄 비행기가 내린 모 공군기지. 거기에 비행기의 엔진이 멎고, 부상자들이 차례차례 들것에 실려 내려질 때 나를 감싼 붕대의 섬유조직 틈새로 밀려들던 조국의 냄새. 매캐한 비행기 연료냄새 너머 밀알이 움트는 냄새, 구수한 흙냄새…….

그리고 공항의 가득한 적막. 적막은 조국에서도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쪽 면으로 검푸른 바다의 출렁임이 보일 뿐 나머지 삼면은 초록빛 야산뿐인 공항, 엔진을 끄고서 졸고 있는 비행기들, 무료한 표정의 관제탑, 군복무의 임무 속에서 세월의 나사를 매만지는 정비병들, 역시 세월의 들것을 무료하게 나르는 의무병들.

후송병원 침대에 누웠을 때는 유리창을 통해 만발한 벚꽃들이 보였다.

벚꽃들은 절정이었다. 병원 둘레 가득히 벚꽃들은 웃고 있었다. 연분홍, 연분홍 웃음들…….

병원은 벚꽃의 소리 없는 웃음들만 있었다. 일정한 시간으로 들르는 간호장교들의 거동밖에는, 심심하기만 했다. 내 침대머리에 걸린 훈장도 심심해 보였다. 나는 그런 훈장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심심함을 문질러버리는 동작으로 그 병원의 시간들을 걸어 나갔다.

애매한 훈장.

내 한쪽 눈과 한쪽 다리가 달아난 곳은 전쟁터 아닌 전쟁터였다.

나는 사단본부의 안전한 장소에서 복무했다. 내가 작성하는 서류에 의해 수많은 전우들이 월남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였다. 내 펜대에 의해 부상당하거나 포로가 되거나 승리하거나, 혹은 어느 땅굴에서 베트콩과 부둥켜안고 싸울 거라는 상상이나 하면서 월남파병의 세월을 끄적끄적 보내고 있었다.

외출 나간 병사들이 납치될 뻔한 사건이 잇단 뒤로 사단본부의 근무자들은 모두 안전한 영내생활로 제한됐던 그 즈음이었다.

물론 나도 처음 월남에 상륙했을 때에는 전투부대 소대원이었다.

매복 작전.

거미줄 같은 인계철선의 크레모아가 깔린 현장에서 숨죽여 주위를 살피던 긴장 속 나날들. 그런데 매복 작전이 네 달째 이어지면서…… 나는 아무 데로나 총을 갈기고서 영창에라도 가고 싶었다.

끝없는 매복 작전. 숨은 적이 먼저 드러나거나 숨어서 기다리던 우리가 먼저 드러나거나, 어느 쪽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드러내느냐에 전투의 승패가 달린 그 지루한 작전. 성가신 숲 모기들을 견디며 오줌도 매복한 채 누어야 했다. 땀에 젖다가 마르다가를 반복하며 소금기마저 배던 내 몸.

한 번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보겠다는 나의 참전지원 의사는 착각이었다. 후회가 막급한 매복생활 다섯 달째 나는 느닷없이 사단본부로 전출되면서 그 지루한 전투부대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안전한 사단본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그 날사건은 터져버렸다.

그 날, 엄폐된 막사에서 책상의 일들을 끝내고 기어 나왔을 때 하늘은 푸르렀다. 비가 그친 직후였다. 월남의 날씨는 늘 그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이내 화창해지는 게, 돌아서면 베트콩이 된다는 그곳 민간인들의 표정 같았다.

나는 푸른 하늘 아래, 본부의 연병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태양의 무수한 조각들이 땅바닥과 야자수의 푸른 이파리들과 쇳덩이 포신들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는 걸어가고 있었다.

월남의 태양은 강인했다. 철모를 부술 듯 하늘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영내 가득히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걸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꿈틀대는 게 역력했다. 밀림의 모기들처럼 군복을 사정없이 꿰뚫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 땀이 흘렀다. 영내는 넓었다. 적막은 넓었다.

적막 속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내 발끝에 무엇이 걸렸다. 나는 눈을 거의 감은 채로 그것을 걷어차 버렸는데…… 고막의 한계를 넘는 폭음과 함께 미쳐 날뛰는 한쪽 다리와 태양을 보았다. 걷어찬 것은 수류탄이었다. 적막은 찢어졌고 찢어진 틈새로 태양의 비늘들이 가득 퍼부어졌다.

그리고 내게도 훈장이 수여됐다.

정말 애매한 훈장이었다.

내 손아귀에 들어가는 그 쇳덩어리의 면적은, 내 한쪽 다리와 한쪽 눈알을 보상해주기엔 너무 좁아 보였다.

그리고서…… 나는 다시 이 적막한 공간에서 심심함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통증을 호소하는 신음들이 끊이지 않지만 왜 이리 후송병원은 적막한 곳으로 여겨질까? 게다가 판에 찍은 듯 반복되는 일상의 심심함까지. 어쩌면 이런 풍경은 또 다른 전투 풍경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친 몸을 갖고서 통증을 견뎌 나가야 하는, 지루한 날들에 대한 매복 작전?

유리창 밖으론 벚꽃들이 웃는데 온종일 쑤시는 상처. 내가 남자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유일한 낙인 간호장교들의 몸매와 움직임. 금빛 광택뿐이던 훈장에는 꼬질꼬질한 손때가 묻어갔다.

 

경자를 만난 건 초가을이었다.

벚꽃이 다 떨어져버리면서 끊임없이 등창()과 싸워야 하는 여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 덧 선선한 가을바람일 때 경자가 우리 병실에 들어섰다. 경자는 세 번째 바뀐 담당 간호장교였다.

경자는 광대뼈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추녀였다. 모래밭의 개미떼 같은 주근깨들.

그 경자가 가을이 지나가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 날, 내 침대 옆 유리창에 사랑합니다란 글씨를 손가락으로 썼다. 흰 성에가 가득 핀 유리창이 사랑합니다란 글자들로 파이면서 밖의 겨울풍경이 새어들어 왔다. 무거운 잿빛 하늘, 벚나무 가지마다 핀 눈송이 꽃들.

사랑한다니?

몸의 절반이나 잃은 꼴인 나를 사랑한다는 뜻인가? 점심식사 후 낮잠들 자느라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고서 나는 소리 낮추어 반문했다.

정말입니까?”

경자는 정말입니다고 다시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써보였다. 곤혹스러웠다.

경자가 사랑합니다란 글씨를 쓴 것은 그녀가 시월에 오고서 세 달 만의 일이었다.

세 달.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와 체온을 재고 주사를 놓았었다. 가끔씩 내 침대 맡에 머물며 얘기를 건네기도 해서 말동무가 생기나보다 했는데 그렇게 느닷없이 사랑한다 했다.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으로 그런 글씨를 쓸 나이가 아니었다. 서른이란 노처녀 나이. 넙적한 얼굴에 가득한 개미떼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더 많은 나이, 결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닌 고백, 세 달이란 시간.

나는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기의 손목을 내밀어 내 손으로 쥐게 만들었다. 곤혹스런 내 외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랑합니다’ ‘정말입니다의 글씨들로 벗겨진 유리창의 성에 틈새로 보이던 겨울의 풍경들도 얼룽얼룽해졌다.

그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도시의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정작 친지들보다 더 많은 잡지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식장으로 달려왔다. 취재의 화살은 나보다도 경자에게로 퍼부어졌다. ‘어떻게 몸이 불편한 분과 장래를 약속하게 되었습니까?’

경자는 간단한 대답으로써 기자들의 호기심을 일축하였다.

저는 이분을 사랑합니다.”

그 이상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부모님부터 고모 이모네까지 참석한 우리 쪽에 비해, 경자네 쪽에선 같이 일하던 간호장교 두셋이 가족처럼 왔을 뿐이라 양가 어른들의 인사 차례도 생략하고 간단히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나중에 경자가 해명하기로는, 어머님 한 분이 살아계시지만 노환으로 누운 데다가 친척도 별로 없는 자기 집안이라 했다.

기자들은 결혼식장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피고서 요란뻑적지근한 판단을 내렸다. ‘신부네 집에서 극심한 반대가 있었는데도 결국은 한 여성의 진실한 사랑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기자들은 경자의 이름을 필두로 자기네 감정까지 듬뿍 발라가며 기사를 써갈겨댔다. 우리의 결혼은 그렇게 뉴스거리가 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나흘간의 불국사 신혼여행.

신혼여행을 마치자마자 경자는 신문들에서 우리 관련 사진과 기사들을 찾아 따로 스크랩해놓느라 바빴다.

나는 그런 경자를 지켜보면서 방구석에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경자의 몸은 돌덩이였다. 아무리 껴안아도 변화가 오기는커녕 오히려 소름 돋는 피부로 나를 맞는 불감증…… 경자는 석녀(石女)였다. 나흘간의 신혼여행은 초등학교 아이들의 수학여행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한 따분하고 쓸쓸한 여행이었다.

어떻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묻진 않았다. 그녀와의 약속, 결혼식을 올리기 전 날의 약속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그 약속이 나는 내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알고 또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상호쌍무적인 약속이었다.

경자는 첫날밤부터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는 자기는 본시부터 그랬다면서 쿡쿡쿡 울었다. 나는 술만 마시다가 새벽녘에야 녹아 떨어져 잠이 들었다. 나흘간의 신혼여행은, 내가 경자한테서 사랑합니다란 유리창 글씨를 받던 순간 곤혹스럽던 무엇을 처음으로 헤아리게 된 여행이었다.

어쨌든 단칸셋방에서 우리의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상이용사와 사랑에 빠진 간호장교 출신 여인을 격려하는 전국 각지의 성금과 물품들이 답지하기를 보름여, 더 이상 답지할 게 없는 즈음이 되자 경자는 물품들을 모두 반값에 내다팔았다. 성금에다가, 병원을 퇴직할 때 받은 자기 퇴직금은 물론 내게 지급되는 상이군인 연금까지 자기 통장으로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경자는 큰 가방 두 개로 짐을 꾸렸다. 무슨 짐이냐고 묻자 경자가 답했다.

당신은 그저 따라오기만 해요. 시골로 가는 거니까.”

어리둥절한 내게 그녀는 그곳에 직장과 살 집도 얻어 놨으니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나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다 낯선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포장이 안 된 도로 탓에 심히 덜컹대는 버스로 가길 두어 시간. 마침내 버스에서 내렸다. 허허벌판에 우리 둘만 서 있었다.

큰 가방 두 개를 양손으로 나누어 든 경자와 목발을 짚은 내 그림자가 흙먼지 이는 벌판에 드리워졌다.

경자는 앞장을 서서 벌판 끝 산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쩔룩쩔룩 뒤따라가다가 힘겨워 멈춰 섰고 그러면 경자는 그걸 모르고 얼마만큼 가다가 멈추어 서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늦봄의 햇살은 비스듬한 각도로 들이쳐서 나는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고 풀풀 날리는 경자의 발걸음 흙먼지를 주시하며 뒤따라야 했다.

조금도 지치는 기색 없이 손에 쥔 두 가방을 앞뒤로 엇갈려 흔들며 앞장서가는 경자.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 길로 들어섰다. 옆으로 다가서는 산들로 점점 좁아지는 하늘, 십 리쯤에 한 채씩 보이는 민가, 요란해지는 계곡의 물소리.

저녁나절에 어느 낡은 너와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내 목발이 부러져나가, 긴 나뭇가지를 대신 짚어야 했다.

너와집은 화전민이 사는 집이었다. 머리 한 번 감은 적이 없어 보이는 봉두난발 화전민 내외가 우리를 맞았다. 비어 있는 옆방이 우리가 며칠 묵을 방이라 했다. 빛바랜 신문지들로 도배된 벽, 가마니 두 장이 장판 대신 깔려 있는 방바닥. 보리밥 저녁을 얻어먹자마자 나는 물먹은 솜처럼 쓰러져 잤다.

사흘 후.

경자가 어디서 구해온 목발 하나. 나는 다시 경자 뒤를 따라 나서야 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또 다시 산길. 긴 뱀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로지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괴기한 새 울음소리. 웬 사마귀가 경자의 머리카락에 붙었다가 날아가기도 했다.

쩔룩쩔룩, 경자를 따라 굽이굽이 산길을 갔다.

산 위의 태양은 엄청난 소리로 맴돌며 땀에 젖은 내 몸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나는 앞으로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목발을 짚었다.

한나절 걸려 도착한 곳은 조그만 학교였다. 교문도 없는 운동장 저 편에 자리한 교실 한 칸짜리 분교.

돌투성이 운동장은 잡초들까지 무성했다. 나는 목발을 내던지고 운동장 어귀의 포플러나무 등걸을 부여잡고 섰다. 겨드랑이 살갗이 벗겨지고 문드러져서 피가 웃옷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어지럽기까지.

빈혈 증세.

분교의 빛바랜 유리창들마다 한 개씩의 태양이 담겨져 운동장을 내다보는 한낮. 나는 가쁜 숨을 가누면서 어질어질한 채로 서 있었다.

경자는 건물 한쪽 끝으로 달려가더니 종을 치기 시작했다.

땡 땡 땡 땡……

종소리들이 유리창의 널린 태양들과 함께 내 지친 신경을 후려치고 있었다. 나는 옷 속의 훈장을 만지며, 그 차가운 촉감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빈혈증세와 싸우고 있었다.

  

 

(2)

 

화전민 아이들 일곱 명이 전교생인 분교.

척박한 오지라 의무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했다. 우리가 오기 한 달 전에도 어떤 청년이 일 년을 근무하다가 황황히 사표를 내고 떠났다 했다. 그런 식으로 배운 아이들이라 제대로 배운 게 없었다. 전교생 일곱 명 중 항상 두어 명은 결석하는 교실. 나는 그런 애들을 썰렁한 교실에 앉혀놓고 국어, 산수, 자연, 도덕, 미술 등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했다. 뺄셈도 제대로 못하는 애들한테, 주워온 도토리들을 들고서 수십 번 나눗셈을 반복설명하다 보면 오전이 다 지나가면서 끝나는 수업이었다.

내가 교실에서 수업할 때 경자는 밖에서 돼지새끼들에게 매달렸다.

양돈축산의 미래란 책자를 방바닥에 펴놓고 수시로 메모하며 양돈 연구에 전념하는 경자. 경자는 여기 오기 전부터 양돈사업을 계획했던 게 분명했다. 주변 산에서 나무 등걸들을 주워 일정한 길이로 잘라 직사각형 돈사를 만들고, 삼 십여 리 떨어진 읍내에 나가 실한 돼지새끼 두 마리를 사 오는 등…… 경자는 혼자 몸으로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제자리인 애들에 비해 대견스럽게도 잘 크는 돼지들. 잡식성 동물답게 인근 개울의 가재들부터 산기슭의 도토리들, 주변의 잡초들, 우리가 먹고 남기는 음식찌기까지 모두 다 좋은 사료였다. 돼지들의 성장이 기대 이상이었으므로 경자는 돈사를 새로 더 짓기로 했다.

일요일이었다.

경자는 읍에서 불러온 인부들을 데리고 개량식 돈사 짓기에 나섰다. 반듯한 슬레이트 지붕, 환기가 잘 되는 울타리 구조, 일정하게 사료가 나오는 급식장치, 분뇨가 잘 빠지는 바닥 시설……. 외진 골짜기에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돈사였다.

그럴 때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학습지도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각 과목별로 작성해야 하니 그 분량은 만만치 않았다. 물론, 학습지도안의 작성교사 이름은 박경자였다.

나는 고용직으로, 경자는 교사로 채용된 신분이었다. 정작 초등 준교사 자격증을 가진 경자는 돼지를 기르는데, 아무 자격증 없는 나는 애들을 가르치며 학습지도안도 짜는 교사 역이었다.

양돈으로 대성해 보겠다는 경자.

경자는, 아무 거나 잘 먹고 번식력도 왕성한 돼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몇 년 안에 양돈축산계의 혜성으로 떠오를 계획이라고 내게 털어놓았다. 돼지의 약점이라고는 오직 전염병에 취약할 뿐인데 이곳은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나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주 안전한 청정지대라 했다.

얼마나 치밀한 경자의 사업 계획인가.

경자는 우리의 첫 만남부터 양돈사업까지, 모든 일을 철저한 계획 아래 이끌어가고 있었다.

산골짜기는 비좁은 하늘 때문에 하루해가 짧았다.

동쪽 산등성이에 가려 오전 열 시경에 떴다가 오후 네 시경만 되면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 그 때부터 골짜기는 서늘한 산그늘에 들어 있다가 별들이 뜰 때부터는 적막한 밤에 파묻힌다.

바람결에 흩날리듯 들리다 말다 하는 라디오 방송. 코 골며 자는 경자. 석유램프 불을 끄면 그런 소리들 이외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방. 그럴 때 또 하나의 소리로 보태지던 나의 수음 소리. 죽지 않고 살아나는 젊은 성욕을 수음으로 달래는 그 쓸쓸한 어둠. 어쩌다가 경자를 깨워 관계를 시도하지만 필경은 딱딱한 돌덩이를 안은 느낌에 제풀에 죽던 그것이었다. 반쪽짜리 내 몸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질긴 어두움, 깊은 골짜기.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낮이 더욱 짧아지면서 찬바람도 자주 불어쳤다. 개울의 가재들도 바위 밑으로 깊숙이 숨고 갈참나무 낙엽들이 무더기로 분교 주위에 쌓여갔다. 경자는 바빠졌다. 김장을 담그고, 숙소 곳곳을 비닐로 감싸고, 가마니들로 돈사를 겹겹이 둘러주고…….

마침내 암퇘지 놈이 발정하였다.

밤의 골짜기를 뒤흔드는 야릇한 울음소리를 듣고 플래시를 들고 나간 경자는 희색이 만연해져 들어왔다.

이제 접 붙여야지! 그게 벌겋게 변했더라고. 책에 적힌 그대로이네.”

그 날 밤 경자는 돈사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는데 나는 느닷없이 저리며 쑤셔오는 왼쪽다리에 방바닥을 구르면서 어쩔 줄 몰랐다. 월남에서 떨어져 나간 그 다리가 아픈 것을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 없기 때문에 달랠 수도 없는 허공의 통증.

나는 부엌에서 소주를 찾았다. 그 소주는 경자가 음식 간을 맞출 때 쓴다고 남겨 둔 큰 병 소주였다. 2/3정도 남은 그것을 다 들이켰다. 그래도 없는 왼쪽다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급기야는 사라진 왼쪽 눈알까지 함께 쑤시기 시작했다.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경자가 끓여놓았는지, 머리맡에 놓인 미음을 떠먹었으나 쓰린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없는 다리 쪽을 만져보았다. 덜렁거리는 바지가닥이다. 어둑한 방안에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기진한데다가 숨 막힐 것 같은 좁은 방안. 나는 목발 없이 기어서 밖으로 나섰다. 태양이 좁은 골짜기의 하늘 안에 비집고 들어와 있었다.

무거운 햇빛들.

나는 숙소 외벽에 기대고 섰다가 풀썩 쓰러졌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버린 듯한 빈혈 증세. 뒤통수부터 휘몰아치는 어지러움.

운동장 어귀 쪽에서 덜커덩 소리가 들려온 게 그 때였다. 경자였다. 수레에 무언가 잔뜩 싣고 돌투성이 많은 운동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고가의 양돈 사료들이 반입되고 있었다.

 

늦봄에 돼지새끼를 열두 마리나 얻으면서 꿈에 부풀던 경자였다.

일 년 만에 돼지 마릿수가 열네 마리가 되었으니 몇 년 안에 백여 마리 돼지에 달할 듯싶었다. 사료도 몇 번씩 사 나르고 개량식 돈사도 세 채나 추가로 지으며 몇 년 안의 대성공을 눈앞에 둔 듯한 경자가…… 허무하게 쓰러져 버릴 줄이야!

가장 가까운 민가가 십여 리에 있는, 아주 청정한 골짜기라 믿고 지내왔는데 돼지 전염병에 열네 마리 돼지 모두가 차례차례 죽어 자빠질 줄은 몰랐다.

돼지콜레라라고 했다. 돼지들은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뒤늦게 읍내 수의사까지 모시고 왔으나 소용없었다. 죽은 돼지들을 수레에 싣고 나가더니 저녁이 다 되어 경자는 들어왔다. 술 냄새가 독하게 났다.

이런 데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폐인이 된다며 내가 마실, 숙소의 술병들까지 내다버린 그녀가 술주정뱅이 꼴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레는 어디다 팽개쳐두고 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두고 경자는 방에 틀어박혀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며 폐인처럼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경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밥상 위에 원고지들을 펴 놓고 앉았다. 골짜기 개울의 찬 물에 세수하고 들어오더니 그런 모습으로 방 가운데에 자리 잡은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사랑하는 그이와 큰 꿈을 품고서 도시를 떠났다-……로 시작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기였다. 몸의 절반을 잃은 상이군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체험 이야기. 경자가 두 달 가까이 밤잠까지 설쳐가며 매달린 끝에 완성된 수기의 제목은 나의 사랑, 절망을 딛고.’

수기 작성에서도 얼마나 치밀한 경자인가. 돼지들을 치다가 절망에 빠지는 사람은 그이였고 아내인 자신은 학생들을 맡아 가르치는 교사로서 분교 교육에 헌신하면서 장애자 남편 일도 돕는 얘기로 수기는 꾸며져 있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사람은 문서상으로 박 경자였으니까. 어차피 그 누구도 들여다본 적 없는 수업들이었으니까.

경자는 읍내에서 사진사까지 모셔 와 피투성이로 남은 절망의 현장들을 사진 찍게 했다. 돼지새끼들이 죽어버린 돈사 앞에 목발 짚고 선 내 독사진과 교실에서 열심히 수업하는 자기 모습의 사진들. 어리둥절한 아이들을 야단쳐서 저요! 저요!’ 손들고 발표하는 동작들까지 만들어낸 경자. 수기 원고에 증거자료로 첨부한다고 했다. 이백 자 원고지로 천이백 매. 모 잡지사에서 창간기념 생활수기를 거금을 걸고 공모한다 했다.

우리는 분교를 떠나기로 했다.

경자가 묵직한 수기 원고를 소중하게 천으로 싸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3)

 

짐 가방 두 개로 정리된 우리의 분교생활.

스크랩북의 결혼식 사진까지 증거자료로 첨부된 수기는 읍내의 우체국에서 잡지사로 발송되었다.

밖에서 경자를 기다리며 서 있던 나는 길옆 가게의 유리창에 비쳐진 내 몰골을 보았다. 산그늘 속에서 살아온 1년 반 동안 창백하게 말라비틀어진 몰골. 목발로 기울어진 체형.

머리가 사정없이 핑 도는 빈혈증세가 되살아났다. 후송병원에서부터 링겔로 부축되던 빈혈. 그 빈혈은 내게 컴컴한 그 무엇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은밀한 목소리였다. 나는 호주머니 속의 훈장을 만졌다. 훈장은 매끄럽고 찼다.

우체국 밖으로 나온 경자는 다시 가방들을 들고 앞장을 섰다. 시골 읍에서도 가장 싼 여인숙을 찾아 가방 둘을 앞뒤로 흔들며 가는 경자. 그리 오래 걷는 게 아님에도 나는 수시로 지쳐 멈춰 서곤 했다.

짐을 푼 허름한 여인숙 방.

며칠간 하품만 하며 누워 지내던 경자는 문득 제안을 했다.

우리 여행을 가요. 여기서 오십 리 남짓한 산 너머에 갈대가 무성한 초원이 있는데, 풍경이 꽤 좋다거든요. 거기에서 하루나 이틀 야영을 해 보는 거지요. 어때요, 내 생각이?”

생활수기 당선작 발표를 사흘 앞둔 날의 늦은 오후였다. 느끼한 햇살이 쥐틀만한 유리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자의 제안에 나는 처음으로 내 의견을 말했다.

그럼, 거기서 사냥도 하자고.”

 

버스를 타고 그 산의 아랫마을에 도착한 뒤 갈대밭 초원을 찾아 길을 나섰다.

분교를 찾아갈 때처럼 짐들을 양손에 들었는데도 지치지 않고 앞장서서 굽이굽이 산길을 가는 경자. 쩔룩쩔룩 뒤따르다가 멈춰 섰다가를 반복하며 뒤를 쫓는 나.

마침내 갈대밭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다다랐다. 붉은 황혼 빛에 흠뻑 물든 초원 앞에서 경자는 환호성을 질렀다.

야아호 야아호……

환호성은 끝없이 메아리쳤다.

우리는 그 자리에 텐트를 쳤다. 저녁밥을 지어 먹고서 배낭 속 포도주 병을 꺼내 나누어 마셨다. 행복에 겨운 경자의 표정. 경자는 자신하고 있었다. 이틀 후 야영을 끝내고 여인숙으로 돌아가면 수기 당선자임을 알리는 통지가 와 있을 거라고. 그 날을 미리 자축하는 밤이었다.

밤중에 승냥이의 울음이 들렸다.

경자는 내 몸을 잔뜩 끌어안고 떨었고, 나는 엽총에 탄알을 넣고 승냥이를 기다렸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았다. 초겨울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가 서서히 풀리며 훤하게 동트던 새벽.

동녘에서 태양이 떠오르자 갈대밭은 일시에 금빛으로 젖었다. 금빛 바다, 그 바다로 우리는 아침 밥 짓는 연기를 푸르게 날려 보냈다.

아직도 싸늘하게 남은 새벽추위에 벌벌 떨며 밥을 먹을 때 경자는 일부러 냠냠 소리를 내면서 자기가 한 입, 남편에게 한 입 하는 식으로 장난스런 숟가락질도 하였다.

태양이 하늘 가운데로 옮겨가자 갈대밭은 아침 금빛들을 낟알처럼 털어내고 퍼렇고 누런 제 모습을 찾아갔다. 경자는 점심 반찬을 마련해야겠다며 야아호 야아호 소리 지르며 갈대밭으로 내려갔다.

나는 텐트 속에 누워 갈대밭을 내려다보았다. 키 작은 경자는 갈대밭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그 움직임은 갈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태양은 흰 이빨들로 웃기 시작했다. ‘낄낄낄웃음소리들이 갈대밭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배낭을 뒤져 소주를 꺼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마셨다.

적막이 내게 눈짓을 했다. 빈혈도 은밀하게 말을 건넸다.

끝내버려.’

우체국 부근에서 본 내 퀭한 몰골이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나는 엽총을 들었다. 갈대밭을 겨누었다. 빈혈이 가늠쇠 구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여러 장면들이, 땀에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끊임없이 부침했다. 캠퍼스 시절 다방탁자에 가득 쌓이던 성냥개비들…… 내 동정을 삼킨 창녀의 하품…… 치열한 전투를 각오한 참전 지원…… 사단 연병장, 찢어진 적막의 햇살…… 사랑합니다’, 벚나무의 눈꽃들…… 산길, 목발…… 돼지새끼, 아이들, 생활수기 공모……

 

경자가 마침내 나타났을 때 나는 내 목발을 던졌다. 흰 선을 그으며 목발은 갈대밭 속 경자 부근에 파묻혔다. 얼떨떨한 표정의 경자에게 큰 소리로 일러 주었다.

경자야! 빨리 도망가. 도망가야 산다니까.”

그리고 타앙한 발을 허공에 쏘았다. 총소리는 타앙 타앙 타앙 초원을 흔들며 퍼져나갔다. 경자의 앙탈 섞인 목소리가 이내 기어 올라왔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 입술로 흘러드는 땀의 짠맛을 느끼며 나는 답했다.

무슨 소리냐고? ……더 이상 경자의 남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소리야. 경자. 경자는 이제 빨리 도망가서 다른 남주인공을 찾으라구. 양 다리가 달아나고, 양 눈이 다 달아나간 멋진 주인공 말이야.”

나는 다시 타앙 타앙 타앙 세 발을 그 주위로 쏘아 갈겼다. 악에 받친 앙탈의 소리가 다시 나오르려다가 경자는 허겁지겁 갈대밭 속으로 몸을 낮추어 숨었다. 경자의 모습 대신 갈대의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엄습하는 졸음과 현기증을 고개 흔들어 깨우면서 갈대밭의 움직임을 조준해 한 발 한 발 쏘아갔다. 갈대의 움직임은 한참씩 안 나타나기도 했다.

경자가 갈대밭 속에 웅크리고 앉아, 불감증의 손으로 주근깨의 얼굴에 뒤범벅인 땀과 눈물을 닦으며 핵핵 떨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갈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겨냥해 쏘았다.

마침내 연거푸 두 발을 쏘았을 때 짧은 신음소리가 튀면서 갈대밭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풀과 나무와 바람과 하늘은 숨을 죽였다.

태양은 숨을 죽였다.

하늘에서 쏟아지던 태양의 파편들도 그대로 공중에 얼어붙었다. 갈대밭 초원에는 그 파편들 대신 적막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엽총을 목발 대신 짚고 그 적막을 내려다보았다.

넓기만 한 초원.

! 하는 소리와 함께 훈장이 발 주위에 떨어졌다.

무공에 관한 찬사의 글씨들이 다 닳아버린 훈장, 거기에는 바짝 얼어붙은 태양이 숨죽이며 들어 있었다.

자아 어디로 가야하나.

초원은 넓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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