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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내가 이 도시로 유학 오면서, 처음 듣는 이상한 단어 중 하나가 이었다. 이 도시의 애들은 그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했으나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즈음 나는 기죽어 지내는 멸건놈이었으니까.

몇 달쯤 지나자 그 낯선 단어의 뜻을 짐작하게 되었다.

배짱과 비슷하지만 다른 구석이 있는 단어였다. ‘섬뜩한 적의를 품은 배짱이라고나 할까?

체구가 좋다거나 힘이 세다거나 하는 것은 과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경우에 있는 존재가 되기 쉬웠다. 아무래도 체구나 힘이 달리니 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날 줄 알라는 섬뜩한 적의를 예비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애라면 누구나 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 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있는 존재가 되려면 다른 있는 존재들과 어울리면서 그 을 자연스레 체득해야 했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중세 유럽의 도제식 교육처럼 말이다.

새끼와 내가 밤마다 공설운동장에서 어울리는 양아치들이야말로 있는 존재들의 전형이 아닐까?

외양부터 드러나는 섬뜩한 적의.

얼굴의 반 가까이 가리는 장발과 걸을 때마다 펄럭소리 요란한 나팔바지. 그러면서 입에 달고 사는 음담, 수시로 쪼아대는 부시기. 게다가 각자 몸에 숨기고 있는 잭나이프나 송곳 같은 흉기들.

누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험한 일을 겪을 것임을 직감케 하는 그 섬뜩한 분위기.

물론 새끼와 나도 걔들을 따라하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런 수준이었다. 감히 긴 장발은 못하고 스포츠형으로 한다거나, 나팔바지라 해도 그저 밑동만 조금 넓힌 교복바지라거나, 잭나이프 같은 것은 엄두내지 못하고 숨기기 쉬운 면도날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여하튼 새끼와 나는, 양아치인 걔들과는 다른 학생 신분이니까.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렇기에 아무래도 새끼와 나의은 조심스런 이었다.

그렇기에 머지않아 정말 깡 있는 놈인지, ‘멸건 놈인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런 날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양아치들이 어느 날 한 번 놔야지, 그럼!’하면서 키득키득 한참 웃었는데 그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며칠 후 다시 한 번 놔야 하지 않겠어?’하면서 다시 킬킬킬 웃는 모습들일 때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빠구리를 놓자는 뜻이었다. 깔치 하나를 구해 집단으로 그 짓을 하자는 뜻.

새끼는 그런 뜻의 말들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부시기를 쫘서 도넛 모양 연기를 띄워 올리기 바빴으나 나는 등줄기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렇다.

그런 말들이 오갈 때부터, 양아치들과 거리를 두고 서서히 멀어져야 했다.

내가 새끼한테 걔들이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리고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며 공설운동장에 나오는 일을 그만 두어야 했다. 물론 기말고사는 한 달 뒤에 치러지지만.

그런데 그러지를 못했다.

내 가우 때문이었다. 새끼 앞에서 내가 멸건 놈처럼 보일 수 없다는 가우.

설마?’하는 마음도 있었다. 양아치들이야 늘 깔치 먹은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데…… 아무래도 심심해서 구라치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러다가 그 날을 맞이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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