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아이 - 제11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136
장성자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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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관계, 우리는 서로를 몰라요

 

 

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슬픈 사건들을 많이 겪어 왔다. 아주 짧은 시간 속에서. 특히, 광복 이후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말이다. 어쩌면 일제강점기 때보다 더 힘들고 혼란을 겪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왜 우리는 그렇게 힘들고 슬픈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던 것일까? 어른들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이 묻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주 4.3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아직도 제대로 분석되지 못하고 있는 사건 중 하나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이지만 제주 4.3 사건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더 많은 민간인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아무리 이데올로기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결국은 우리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한 마을의 친구나 이웃 사촌을 죽여야 한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 모든 게 이데올로기를 가장한 인간의 탐욕이 아닐까 싶다.

 

제주 4.3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은 아이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연화는 어느 날, 어머니와 어린 동생인 민구와 함께 덤불숲에 숨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찾아와 마을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왜? 소위 산사람들과 소통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였다. 대체 산사람들이 누구길래? 우리의 사회 체제와는 맞지 않는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들이다. 결국은 모든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어려운 이데올로기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죽고 어머니까지 죽은 상황의 충격을 겪은 연화는 자신에게 남은 민구를 위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한다. 게다가 민구는 정신적으로 불안을 겪는 아이여서 연화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연화는 민구를 데리고 아빠의 친구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해녀의 물질을 배우며 지내게 된다. 하루하루 마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언제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나서 붙잡혀 죽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동생인 민구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어린 나이의 연화는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수영을 못하는 데도 매일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잠수 훈련을 한다. 나중에는 결국 물속에 잠수해 작은 전복을 따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을 마을에 들이지 않기 위해 마을 외곽에 돌덩이를 쌓으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외부 사람들을 받아 들이려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막으려는 사람들,,, 그러한 갈등 속에서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권력자가 등장한다. 그 권력자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자중지란에 빠지길 원한다.

 

그리고 결국 연화는 자신의 신분이 들통 난다. 그리고 자신의 오빠일지도 모르는 산사람을 불러내는 데에 이용 당한다. 그때 자신과 만나게 되었던 마을 사람들과 마주 서게 된다. 서로를 알고 있냐는 권력자의 질문! 고민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결국,,,

 

한민족끼리 서로에게 총을 겨눈 슬픈 현실 속에서 어린 아이는 엄청난 슬픔을 겪는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대체 '연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겠냐고 말이다. 어른으로서 이런 슬픈 일을 설명해 주기가 얼마나 난감한지,,, 게다가 그 슬픈 일이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씁쓸할 뿐이다. 하지만 이 동화책을 통해서 그 당시의 슬픈 사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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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 민주화운동은 잘못 왜곡돼서 전달되고 있어서 문젠데, 제주 4.3 사건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바람향 2016-05-30 18:58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우리나라의 역사인데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잊혀진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 걸까요? 우리의 현대사는 너무나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ㅠ
 
돌 씹어 먹는 아이 -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1
송미경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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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동화집

 

 

내가 동화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 읽은 동화책 중에서 보면 이런 내용의 동화를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 동화책을 읽어보면 독특한 세계관이 돋보인다. 그래서 동화집이지만 정작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이 그 독특한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힐링을 주목적으로 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는 없다.

 

얼마 전에 이 책의 저자인 송미경 작가의 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본인의 경험담을 살린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송미경이 동화 쓰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시기의 얘기였다. 그녀는 등단을 하고 난 이후에 몇 년 동안 자신의 글 세계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족할 만한 동화를 쓰지도 못한 시간을 보내며 동화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송미경은 한달 동안 자신만을 위한 동화를 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상을 준다는 의미로.

 

거의 하루에 한 편 가까이 쓰면서 고통스럽고 힘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까스로 자신만을 위한 20편의 동화를 적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작품을 원한다는 전화를 받고 작성한 원고를 정리해서 보낸다. 그 동화집들로 인해서 송미경은 드디어 평단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송미경은 그렇게 동화 창작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들어선다.

 

무엇이든 끝까지 매달리고 난 후에야 달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내 자신이지 않았을까 반성해 보았다. 30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한 사람도 있듯이, 무슨 일을 하든 '늦은 나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8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하라 사막을 걷는 할머니를 만났다.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준다는 의미로 사막을 횡단하는 할머니가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송미경은 미술을 배운 적이 있어서 동화를 쓸 때 그림 그리기를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그림 한 장에는 글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 듯 하나의 장면을 눈에 보이 듯 서술할 수 있다면 글을 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동화집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처음으로 나오는 <혀를 사왔지>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시원이는 무엇이든지 파는 시장에 갔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자신이 태어난 해의 동전을 내야 한다. 그 시장에서는 각종 표정에 맞는 눈썹이나 귓속말을 듣는 귀나 안에 넣는 순간 무엇이든 사라지는 지갑, 다양한 동물 꼬리 등을 팔았다. 시원이는 그곳에서  무슨 말이든 시원하게 할 수 있는 혀를 사왔다. 신기하게도 그 혀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 착 달라 붙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시원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폭력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들은 평소에 얼마 만큼 속엣말을 꺼내서 하고 있을까? 속엣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속엣말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나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혀가 있다면 나도 잠깐 사용하고 싶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향해 "그러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고양이가 진짜 부모라고 나타난 아이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따뜻하고 미지근한 돌을 씹어 먹는 아이의 이야기 외에도 신기하고 다양한 이야기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든 이 동화책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일러스트와 독특한 세계관의 동화를 재미나게 읽어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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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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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원이 이뤄지길,,, 그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는 꿈을 꾼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서 나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알라딘>의 마법 램프에서 '지니'가 내게도 나타나기를 얼마나 소원했던가. 어른이 되어서야 '지니'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알게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지니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로또'를 사서 대박의 꿈을 꾼다. 돈이 많으면 나의 소원은 무엇이든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행복해지게 될까?

 

'위저드 베이커리'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었을 만한 공간이다. 평범한 빵이나 쿠키를 먹었는데, 그것을 통해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게 되다니 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가와 사랑하고 싶기도 하고, 나를 못살게 구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공간은 온,오프라인에서 꼭 있을 만한 공간 같다. 마법을 사용해서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을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나를 못살게 구는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정말로 이뤄지면 어떻게 될까?

 

<위저드 베이커리>는 소원이 이뤄지고 난 이후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장난으로 일을 벌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일의 결과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 엄마에 의해 지하철 역에서 버려졌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일반 시민들에 의해 역무원으로 인계 되었다. 병원과 경찰서로 옮겨지면서 일주일 만에 아버지를 찾게 된다. 엄마는 뭔가 힘든 상태였다. 결국 엄마는 자살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아버지는 교사인 배 선생과 재혼하게 된다. 그 배 선생에게는 무희라는 딸이 있었다. 주인공은 낯선 가족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주인공은 집에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매일 집 앞에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빵집에서 빵을 사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무희의 옷에서 피가 묻은 걸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학원 상사를 고발하며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진다. 학원 강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오히려 배 선생을 고소한다. 수세에 몰린 배 선생은 무희를 닥달하는데, 무희는 얼떨결에 옆에 있던 주인공을 가리킨다. 그리고 주인공은 집을 뛰쳐나가 위저드 베이커리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마법의 빵'을 만나게 된다.

 

마법의 빵은 생각보다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별 생각 없이 혼내주는 빵을 먹여서 친구를 자살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 그 사태를 바꿔보고자 했지만 자신이 만든 결과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이뤄주는 빵을 먹였다가 상대방이 집착을 하게 되어 도리어 떼어내기 위한 저주의 빵을 사려고 했다. 그 빵을 사지 못해서 결국 몸을 다치게 된다.

 

이 외에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빵이 있지만 그것은 세상이 흘러가는 인과율에 반하기 때문에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먹으면 입 속에서 톡톡 터지며 말을 하는 신기한 빵도 있었다. 이런 빵들을 우리 현실에서 진짜로 만날 수 있다면 막상 더 많은 고민을 하며 힘들어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나오는 상황들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마법'이라는 말이 있어서 환상적이고 달콤할 것 같지만 책 속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잔인하게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그 선택에 의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마지막 결말이 씁쓸했다. 우리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상황이라서 더 할말이 없지만 말이다. 이런 현실을 청소년 성장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했어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가끔은 내가 다른 선택을 하면 다른 결과가 되었을 것 같은데,,, 막상 더 나쁜 상황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최선을 다한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그 결과 자체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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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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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전설

 

 

모두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어린 시절에 듣던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커다란 나무나 건물,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 아니면 동네에 있던 어떤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얼마나 무섭고 재미있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했다. 그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이나 TV를 통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언니나 누나, 오빠나 형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나서 어린 동생이나 아는 아이에게 전해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내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무서워 하거나 재미있어 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을 때보다 한 두가지 이야기를 부풀리며 첨삭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예전과 비교해서 요즘 아이들은 선배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학원 등 아이들이 많이 모인 공간을 통해서 자기들끼리의 정보를 공유하겠지만 예전처럼의 비중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전해 주는 '구연 이야기'의 맛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짧은 이야기나 플래쉬가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것처럼 '귀로 듣는 이야기'만의 재미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동화책은 이러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었다. 어느 날 준영의 가족은 복숭아 과수원이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준영은 시골로 가는 게 불만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준영이는 마을 아이들과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준영이는 아직 그 아이들과 친하지 않아 혼자 행동하려고 했다. 그때 마을 아이들은 준영이를 붙잡고 '우리 동네의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왜 학교가 끝나고 마을 아이들이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득산리 마을과 학교 사이에 있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가운데 길에는 방앗간이 있었다. 이 방앗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사기 바둑에 쌀을 판 돈을 모두 잃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동네 뒷산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한 방앗간 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아들에게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집을 나가 버렸다. 그때 할머니는 병을 얻었는데, 어린아이들의 싱싱한 간이 필요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였다.

 

방앗간을 지나면 작은 아기 무덤이 있었다. 옛날에 아기를 못 낳던 새댁이 겨우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매일 동네 잔치를 벌일 정도로 좋아했다.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댁은 혼자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새댁은 아기를 뱀산에 묻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동네를 떠났다. 그래도 아기가 죽은 날에는 영혼이 되어 아기 무덤에 찾아 온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다른 길에는 밤밭을 지나 상엿집이 있었다. 그 상엿집에는 돼지 할아버지라는 염꾼이 살고 있었다. 돼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 명이나 있던 자식들이 모두 어린아이였을 때 죽어서 돼지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 튼튼하게 잘 키우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준영이는 동네 아이들에게 무서운 전설을 듣다가 그들과 친해지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모두 함께 다니면서 위험을 피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더라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과 함께 아이들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들이 섞인 전설들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학교에 있는 화장실이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었다. 화장실의 잠긴 문만을 보고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홍콩할매가 화장실에 나타났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무서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이 이제는 인터넷에 무수하게 있고 더 먼 지역까지 넓게 퍼지게 되었다. 동네의 다양한 전설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남으며 쌓이고 있는데, 이러한 '흔적'이 나중에는 어떤 '화석'으로 발견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처음 부분에 나오는 '우리 동네의 전설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그 이야기들을 구연으로 말해주면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막상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무섭고 자극적인 면이 다소 약하다고 하는데, 옛날 세대의 어른들에게 더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책으로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특히, 연극으로 연출해도 좋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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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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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결혼의 관념

 

 

<결혼은 미친짓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 책을 원작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래 예전부터 인간들은 '결혼'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해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저술가이며,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한 버트런드 러셀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를 이 책으로 내놓았다.

 

버트런드 러셀은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로서 강의와 집필에 몰두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나갔다. 러셀은 전쟁 중에 징병에 대한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지만 납부를 거부해 대학의 강의권을 박탈 당하기도 했다.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니, 그가 얼마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열심히 사회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결혼과 도덕>은 1929년에 출간되었지만 그 당시 금기시되던 도발적인 성 담론인, 결혼과 외도, 성매매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러셀은 1940년 뉴욕시립대학교의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29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결혼관에 대한 현재 우리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어서 러셀의 필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삼포, 오포, 칠포 세대라고 부른다. 스스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던지는 농담은 우리의 가슴에 씁쓸한 무언가를 남긴다. 이러한 '포기' 세대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은 연애와 결혼, 출산의 포기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누군가와 결혼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룰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녀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고 또 다른 흙수저 계급을 양산할 뿐인 현 상황에서 어느 누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겠는가?

 

버트런드 러셀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회문화적인 결혼과 성 문제를 분석하고 있었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모계 사회가 중심을 이루는데, 그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보다는 외삼촌에 대한 의지가 더 높았다고 한다. 아버지와도 관계를 맺지만 외삼촌에 의해 가족과 부족의 문화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종교적인 문제로서 순결과 일부일처제가 받아 들여지면서 오늘날의 결혼과 가정 생활의 책임감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군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처녀의 순결이 중요했고, 결혼 이후에도 여자의 외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 졌다. 1929년에 버트런드 러셀은 이 책을 출판하면서 우리의 결혼 문화가 예전의 모계사회 때로 다시 돌아가는 양상이 보인다고 분석하였다. 러셀의 분석이 현재 우리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어서 그의 예측력에 혀를 내둘렀다.

 

현재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결혼'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즐기다가 죽고 싶다는 사고방식을 조금씩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러셀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경우라면 누구나 결혼을 무효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법 조항에서 살펴보면, 상대방에게 사기와 같은 큰 잘못이 없다면 결혼 무효는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인가? 상대방의 외도를 처벌할 수 있는 간통죄가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겨우 폐지 되었다. 성 자체는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을 더 높게 인정한 결과일 것이다.

 

성 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결혼 제도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왜 우리는 그 힘든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직도 난리인 것일까? 사회문화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종족 보존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100세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40년 넘게 한 사람과만 결혼 관계를 유지하여 가깝게 지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도 하다.

 

'결혼'은 대체 무엇일까? 러셀은 '행복한 결혼'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의 정수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될 때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인생의 동반자'일 것이다. 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혼도 '교육과 상담'이 필수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배워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만남은 우주의 신비다. 그 신비스러운 행위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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