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씹어 먹는 아이 - 제5회 창원아동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61
송미경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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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세계관이 돋보이는 동화집

 

 

내가 동화책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 읽은 동화책 중에서 보면 이런 내용의 동화를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 동화책을 읽어보면 독특한 세계관이 돋보인다. 그래서 동화집이지만 정작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이 그 독특한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힐링을 주목적으로 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는 없다.

 

얼마 전에 이 책의 저자인 송미경 작가의 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본인의 경험담을 살린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송미경이 동화 쓰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시기의 얘기였다. 그녀는 등단을 하고 난 이후에 몇 년 동안 자신의 글 세계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족할 만한 동화를 쓰지도 못한 시간을 보내며 동화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송미경은 한달 동안 자신만을 위한 동화를 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상을 준다는 의미로.

 

거의 하루에 한 편 가까이 쓰면서 고통스럽고 힘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까스로 자신만을 위한 20편의 동화를 적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작품을 원한다는 전화를 받고 작성한 원고를 정리해서 보낸다. 그 동화집들로 인해서 송미경은 드디어 평단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송미경은 그렇게 동화 창작의 세계로 본격적으로 들어선다.

 

무엇이든 끝까지 매달리고 난 후에야 달콤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리는 내 자신이지 않았을까 반성해 보았다. 30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한 사람도 있듯이, 무슨 일을 하든 '늦은 나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8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사하라 사막을 걷는 할머니를 만났다.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준다는 의미로 사막을 횡단하는 할머니가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송미경은 미술을 배운 적이 있어서 동화를 쓸 때 그림 그리기를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그림 한 장에는 글로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 듯 하나의 장면을 눈에 보이 듯 서술할 수 있다면 글을 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동화집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처음으로 나오는 <혀를 사왔지>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시원이는 무엇이든지 파는 시장에 갔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자신이 태어난 해의 동전을 내야 한다. 그 시장에서는 각종 표정에 맞는 눈썹이나 귓속말을 듣는 귀나 안에 넣는 순간 무엇이든 사라지는 지갑, 다양한 동물 꼬리 등을 팔았다. 시원이는 그곳에서  무슨 말이든 시원하게 할 수 있는 혀를 사왔다. 신기하게도 그 혀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 착 달라 붙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시원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폭력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들은 평소에 얼마 만큼 속엣말을 꺼내서 하고 있을까? 속엣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속엣말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나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혀가 있다면 나도 잠깐 사용하고 싶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향해 "그러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고양이가 진짜 부모라고 나타난 아이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따뜻하고 미지근한 돌을 씹어 먹는 아이의 이야기 외에도 신기하고 다양한 이야기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든 이 동화책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일러스트와 독특한 세계관의 동화를 재미나게 읽어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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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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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이뤄지길,,, 그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는 꿈을 꾼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서 나의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 <알라딘>의 마법 램프에서 '지니'가 내게도 나타나기를 얼마나 소원했던가. 어른이 되어서야 '지니'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알게 된 이후에는 더 이상 지니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로또'를 사서 대박의 꿈을 꾼다. 돈이 많으면 나의 소원은 무엇이든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행복해지게 될까?

 

'위저드 베이커리'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었을 만한 공간이다. 평범한 빵이나 쿠키를 먹었는데, 그것을 통해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게 되다니 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가와 사랑하고 싶기도 하고, 나를 못살게 구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공간은 온,오프라인에서 꼭 있을 만한 공간 같다. 마법을 사용해서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을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나를 못살게 구는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붓고 싶기도 하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정말로 이뤄지면 어떻게 될까?

 

<위저드 베이커리>는 소원이 이뤄지고 난 이후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그리고 어떤 일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장난으로 일을 벌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일의 결과를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렸을 때 엄마에 의해 지하철 역에서 버려졌다.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일반 시민들에 의해 역무원으로 인계 되었다. 병원과 경찰서로 옮겨지면서 일주일 만에 아버지를 찾게 된다. 엄마는 뭔가 힘든 상태였다. 결국 엄마는 자살을 하게 된다. 그 이후 아버지는 교사인 배 선생과 재혼하게 된다. 그 배 선생에게는 무희라는 딸이 있었다. 주인공은 낯선 가족들과 친해질 수 있었을까?

 

주인공은 집에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매일 집 앞에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빵집에서 빵을 사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무희의 옷에서 피가 묻은 걸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학원 상사를 고발하며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진다. 학원 강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오히려 배 선생을 고소한다. 수세에 몰린 배 선생은 무희를 닥달하는데, 무희는 얼떨결에 옆에 있던 주인공을 가리킨다. 그리고 주인공은 집을 뛰쳐나가 위저드 베이커리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마법의 빵'을 만나게 된다.

 

마법의 빵은 생각보다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별 생각 없이 혼내주는 빵을 먹여서 친구를 자살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 그 사태를 바꿔보고자 했지만 자신이 만든 결과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랑을 이뤄주는 빵을 먹였다가 상대방이 집착을 하게 되어 도리어 떼어내기 위한 저주의 빵을 사려고 했다. 그 빵을 사지 못해서 결국 몸을 다치게 된다.

 

이 외에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빵이 있지만 그것은 세상이 흘러가는 인과율에 반하기 때문에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먹으면 입 속에서 톡톡 터지며 말을 하는 신기한 빵도 있었다. 이런 빵들을 우리 현실에서 진짜로 만날 수 있다면 막상 더 많은 고민을 하며 힘들어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나오는 상황들은 의외로 현실적이다. '마법'이라는 말이 있어서 환상적이고 달콤할 것 같지만 책 속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잔인하게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그 선택에 의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왔다.

 

마지막 결말이 씁쓸했다. 우리 현실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상황이라서 더 할말이 없지만 말이다. 이런 현실을 청소년 성장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했어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가끔은 내가 다른 선택을 하면 다른 결과가 되었을 것 같은데,,, 막상 더 나쁜 상황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최선을 다한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그 결과 자체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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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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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전설

 

 

모두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어린 시절에 듣던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커다란 나무나 건물,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 아니면 동네에 있던 어떤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얼마나 무섭고 재미있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했다. 그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이나 TV를 통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언니나 누나, 오빠나 형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나서 어린 동생이나 아는 아이에게 전해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내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무서워 하거나 재미있어 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을 때보다 한 두가지 이야기를 부풀리며 첨삭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예전과 비교해서 요즘 아이들은 선배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학원 등 아이들이 많이 모인 공간을 통해서 자기들끼리의 정보를 공유하겠지만 예전처럼의 비중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전해 주는 '구연 이야기'의 맛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짧은 이야기나 플래쉬가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것처럼 '귀로 듣는 이야기'만의 재미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동화책은 이러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었다. 어느 날 준영의 가족은 복숭아 과수원이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준영은 시골로 가는 게 불만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준영이는 마을 아이들과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준영이는 아직 그 아이들과 친하지 않아 혼자 행동하려고 했다. 그때 마을 아이들은 준영이를 붙잡고 '우리 동네의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왜 학교가 끝나고 마을 아이들이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득산리 마을과 학교 사이에 있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가운데 길에는 방앗간이 있었다. 이 방앗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사기 바둑에 쌀을 판 돈을 모두 잃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동네 뒷산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한 방앗간 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아들에게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집을 나가 버렸다. 그때 할머니는 병을 얻었는데, 어린아이들의 싱싱한 간이 필요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였다.

 

방앗간을 지나면 작은 아기 무덤이 있었다. 옛날에 아기를 못 낳던 새댁이 겨우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매일 동네 잔치를 벌일 정도로 좋아했다.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댁은 혼자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새댁은 아기를 뱀산에 묻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동네를 떠났다. 그래도 아기가 죽은 날에는 영혼이 되어 아기 무덤에 찾아 온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다른 길에는 밤밭을 지나 상엿집이 있었다. 그 상엿집에는 돼지 할아버지라는 염꾼이 살고 있었다. 돼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 명이나 있던 자식들이 모두 어린아이였을 때 죽어서 돼지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 튼튼하게 잘 키우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준영이는 동네 아이들에게 무서운 전설을 듣다가 그들과 친해지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모두 함께 다니면서 위험을 피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더라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과 함께 아이들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들이 섞인 전설들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학교에 있는 화장실이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었다. 화장실의 잠긴 문만을 보고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홍콩할매가 화장실에 나타났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무서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이 이제는 인터넷에 무수하게 있고 더 먼 지역까지 넓게 퍼지게 되었다. 동네의 다양한 전설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남으며 쌓이고 있는데, 이러한 '흔적'이 나중에는 어떤 '화석'으로 발견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처음 부분에 나오는 '우리 동네의 전설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그 이야기들을 구연으로 말해주면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막상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무섭고 자극적인 면이 다소 약하다고 하는데, 옛날 세대의 어른들에게 더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책으로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특히, 연극으로 연출해도 좋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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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두의 우연한 현실 사계절 1318 문고 54
이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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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의 현실 속에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주의 신비를 거의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우주 이론 등이 등장하였다. 평행우주나 초끈이론과 같은,,, 그 이론들을 하나 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이론들의 바탕 생각이 예술 작품에 반영 되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큰 흥행을 기록한 <인터스텔라> 등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이론에 관한 그 어려운 영화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흥행을 기로간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여러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이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평행우주 이론이 담긴 <영두의 우연한 현실>일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고도의 과학자료와 가설에 근거해 성립한 다중우주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포함하여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평행우주, 즉 다중우주는 '나'의 다양한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말은 곧 무수히 많은 양자적 다중우주에는 '나'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다른 역사와 다른 운명, 그리고 다른 결정 속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공상만화에나 나올 법한 황당무계한 가설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현실성 있는 현대 우주론의 하나라고 한다. 이러한 현대 우주이론이 문학 속에서 담긴 예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전에 읽은 <프랙처드, 삶의 균열>도 이러한 다중우주 이론이 반영된 문학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 그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사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불행한 상황 속에 있다면 우리는 다른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소망이 반영된 책으로,,, 현실과 환상이 시간의 틈새로 혼재되어 간다. 대체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옛날 장자는 자신이 꿈을 꿔서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자와 나비는 결국 생명의 근원으로 살펴보면 결국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다중우주 이론은 결국 어느 시공간에 존재하는 '나'도 결국 '나'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기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이지만 서로 다른 '나'가 된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 속 영두도 아파서 자고 일어났는데, 자신의 현실과 다른 '자신'의 삶이 겹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우연히 알게 된 '편의점의 뒷문'은 그 시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통로였다. 하지만 그 뒷문이 어느 시공간으로 연결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면서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험의 통로였다. 만약 내가 그런 통로를 알게 된다면 그 통로를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바로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의 삶을 버려두고 또 다른 선택으로 인해 다른 삶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작품 외에 <빨간 신호등>은 한 청소년 남자 아이의 시선으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자신은 사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남자 아이의 환상에 기대어 그려내고 있었다. 성폭력 문제는 대부분 여성의 입장에서만 다루게 되는데, 남자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청소년 남자 아이들이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야동만 볼 게 아니라 이 단편집을 보면서 여성, 상대방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연애라면 이론에만 뛰어난 한 여고생의 소심한 연애를 담은 <어떤 실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가 가족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그가 남긴 것>, 외계생명체의 출현으로 지리멸렬한 일상을 탈출하게 되는<로스웰주의보> 등이 실려 있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청소년소설에서 다양한 소재를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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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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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에게 민감한 털문제_누구를 위한 털인가?

 

 

'털'은 청소년들이 아닌 그 누구라고 해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털! 그것은 누구를 위한 털인가? 많은 사람들이 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기도 했다. 대체 털이 무엇이기에 그랬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열일곱 살의 털'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듣고 사람들은 많은 상상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이성에 관심을 갖는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털'이라고 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자기만의 털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막상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내용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다는 감상을 듣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은 9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그리운 추억을 선사할 만한 책이었다. 요즘의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올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말 옛날보다는 학생들의 인권이 많이 높아진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10~2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는 '두발 규제'란 것이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고 여자들은 귀밑으로 가까운 단발머리를 유지해야 했다. 머리를 기를 거라면 학교의 허락이 필요했고 반드시 머리를 묶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인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고, 최근에는 머리를 염색하거나 파마하는 것도 조금씩 허용해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다.

 

어른들은 학생들의 머리를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지금 들으면 정말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때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야 하는 것이 학생들의 본분이었다. 머리를 어떻게 하든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다른 길을 찾은 아이들은 그것에 몰입해서 열심히 할 것이다. 그때가 지난 지금에 돌이켜 보면 그것은 모두 어른들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일호는 개화기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발소 손자이다. 일호가 다니는 오성고에는 바리깡을 들고 학생들의 두발을 단속하러 다니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있다. 일호는 처음에는 머리를 아주 모범적으로 자른 학생이었지만, 우연히 학생의 머리를 불로 태우려는 체육 선생님을 보고 폭발하고 만다. 그때부터 일호는 두발 규제 폐지를 위한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학생들 몇 명을 모아 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바로 발각되고 만다. 그리고 정학을 맞게 되는데, 집을 나가 20년 만에 들어온 아버지와 조금씩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일호는 학교 앞에서 1인 피켓 시위까지 하게 되는데, 결국,,,

 

우리나라에서 100년 된 가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래된 전통보다는 새로움을 더 추구해 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옥이나 음식, 생활 방식 등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에게 '역사'는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겠지만 많이 씁쓸하고 아쉽다,,,

 

옛날 개화기 시대에는 '단발령'이 내렸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부모님들에게 받은 신체를 훼손할 수 없다며 그 명령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며 저항했다. 개화기 시대에는 그런 머리털을 자르려고 했던 이발소에서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는 머리털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손자를 보면서 뭔가 인생의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우리에게 '털'은 그냥 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위해 반드시 지켜내어야 할 '그 무언가'가 있을까? '그 무언가'를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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