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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 똑똑한 사람들은 왜 민주주의에 해로운가
마이클 린치 지음, 황성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주지사부터 하원 의원까지 민주당 일색인 미국 동북부 코네티컷, 그 곳에 소재한 코네티컷 대학 철학 교수 마이클 린치의 2019년 저작이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라는 우리 제목을 입고 번역되었다. 원제는 Know It All Society: Truth and Arrogance in Political Culture 이다. 철학과 교수다운 사상가, 이념 등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 과정을 해설하고 있다. Know it all 제목을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는 5장의 도입 부분을 보면 진보적인 아들 내외와 정치 이야기를 꺼리는 부모 일화가 나온다. 정치 소재 대화는 회피하는 부모께 왜 정치 이야기를 피하냐며 여러 차례 질문해서 답을 받아냈다는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쓴 웃음이 나는데, 이는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자주 겪지 않는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진이 빠질 가능성으로 정치 이야기는 피하는 게(151쪽) 상책이라곤 하나 현실에서 나는 피하면서도 내 속에서는 무언가 말하고 싶고 어쨌든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적 오만함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몽테뉴의 사상을 취하는 저자는 혼란에 대해서라면 우리 시대가 몽테뉴 시대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그때와 확연히 다른 것은 여러분도 먼저 떠올리듯 정보기술로 우리 실생활이 온라인 생활과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진보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무수히 많은 정보를 아주 쉽고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데도 정보와 우리의 의식의 틈은 더 차이가 난다는 것이 린치 교수의 해석이다. 올해 초 코비드 등 드러난 과학적 사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상 가짜 뉴스, 특정인의 뇌피셜 뉴스 등의 SNS내 과다 공유로 시민들이 혼란스러워 했다. 공중파 매체는 온라인에서 퍼지는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뉴스를 다시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코비드는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지는 전문 분야이므로 그나마 사실 여부에 대한 정리는 조금 쉬운 편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 확신 등에 편향되는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고 상대 진영과 대화하는 상황이라면 엄청 힘든 문제가 된다. 이 책은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리 개개의, 혹은 집단의 표현과 의식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몽테뉴, 흄, 니체, 듀이 등 사회, 윤리 시간에 들어본 역사 인물들을 우리 현대 일상에 잘 적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기둥을 몽테뉴가 제공한다고 언급한 저자의 이야기에 몽테뉴만 별도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몇 가지 흥미로운 우리들의 정치적 확신, 태도들을 추려 봤다.
구글링은 우리의 정치적 소신을 더 편향되게 만든다. 구글에서 내 성향을 파악하고 추천한다는 맞춤형 정보는 편협한 정보일 수 있다. 추천 쇼핑 정보만큼 매력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디지털 세상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진실 추구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 인간의 기질을 온라인 세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낸다. 진실 보다는 파벌적인 확신에 더 오만한 태도를 갖게 되고, 오염된 정보 그 이상의 부패된 정보를 보기도 한다.
SNS 상 공유되는 뉴스는 공유하는 이들은 보고 하는 것일까? 60여%나 읽지 않는다고 한다. 뉴스가 다루는 진실이 아니라 뉴스의 도덕성과 관련된 감정을 공유하는 면이 크다.
주로 자유주의자(민주당 지지자)들은 본인이 깨끗하다면 굳이 더러운(?) 말싸움을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 열린 마음,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상대방의 비판(비난)을 듣고 그것으로 끝낸다. 그런 행동이 상대방에게 오만한 자유주의자라는 성향을 더 돋보이게 한다.
전문적 지식이 있는 이들이 오히려 모를 수 있다는 것에 솔직하다고 한다. 오히려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잘 아는 체하는 Know it all이 현실을 지배한다.
과학적 식견이 뛰어난 이들이 맞서는 상대방의 의견에 수긍할 것 같지만, 그들의 전문성을 무기로 상대방 이론의 허점을 찾아내어 공격하기도 한다.
우리가 균형감 있는 정치적 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과학 지식을 더 배우거나, 논리 철학을 익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행하는 이들은 드물다.
믿음, 확신, 전념 등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들은 사회적 정체성과 결합하여 우리 집단의 파벌적 정체성을 나타낸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내가 속한 집단의 (파벌적) 정체성에 의존하여 사는 쪽을 택한다.
21세기 기술 진보에 맞게 우리의 정신 세계도 세련된 수준의 철학적, 심리적 단계를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지적 겸손함을 갖추고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를 우리 기술 진보에 맞게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찰적 실천’으로 이름 짓는 저자는 과학, 교육, 미디어를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를 시민에게 요구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간 이성과 합리성을 핵심어로 저작 활동을 해 온 저자의 수고가 이 책에도 담겨 있다. 내 정치적 소신이 마땅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라면 꼭 필독해야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