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보이는 일기장
고혜원 지음 / 다이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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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빅피시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미래를 알게 된 순간,

숨겨진 진실이 드러났다

내 미래를 바꾼 게너야?!”

 

미래를 미리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앞서갈 수 있겠지. 그런 하잘것없는 기대에 허풍만 떨게 된다. 결국 출발선은 같고, 신호총의 소리도 동시에 들을 뿐인데.

 

이 책은 단순히 주인공의 일기장에 미래가 적혀 있기만 한 게 아니다. 미래는 그저 보일 뿐이다. 그것을 타파하거나 바꾸고 싶다면, 그에 할당하는 책임 또한 절대 가볍게 짊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주인공 나예윤이란 소녀 또한 일기장에 미래가 보이기 시작하자 제맛대로 이용했다. 예윤의 욕심은 존재였다. 엄마의 기준에 자신이 옳은 딸인지 그른 딸인지를 확실히 하고 싶고,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을 떳떳하게 세우고 싶다. 예윤은 일기장 종이였다. 남들의 비밀과 약점을 기억해주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쉬이 휘말리고 넘겨지고 또 남겨지는 아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녀 곁을 묵묵히 지키고 도와주는 수연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책에서 비밀스럽고도 귀한 존재로 나온다. 어쩌면 예윤의 일기장보다 더.

 

어느 절정 부분을 도래하고 나면 책을 덮어 표지를 다시 보길 바란다. 나는 사실 표지 예쁘네하고 넘겨 내용 읽기 급급했는데, 다 읽고 나자 다시 책을 덮으니 표지 속에 어떤 디테일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의 보석같이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는 어떤 일기가 펼쳐지고 있었을까?

 

내가 청소년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청소년 때야말로 사람과의 관계가 지극히 예민한 시기이므로, 그 안에서 표출하는 억울, 집착, 분노, 애절, 질투, 설렘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은 시기. 친구인지 연인인지 알 수 없는 경계 속 깊은 우물에 자신을 다 털어놓고 있지 않던가. 또래 때문에 울고, 또래 때문에 죽고, 또래 때문에 웃는, 단지 내일 또 똑같이 보는 친구 한 명에 내 인생을 갈아 넣는 그들의 과도한 투기를 보여주니까. 이 책은 특히나 그러한 심리 속 상처받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단순히 먼 얘기가 아니고 분명 내 옆 사람, 혹은 내가 당해보기도 한 그런 현실적 아픔까지. 제목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단순히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어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청소년들이 실제 겪는 고통을 꼬집은 소설이다.

 

당신은 미래를 알게 된다면, 단순히 제 배 불리는데 쓸 건가, 남을 위해 쓸 건가?

알고 싶지 않은 미래를 보게 된다면 체념할 것인가, 바꾸려고 할 것인가?

 

예윤은 과연 이 일기장으로 인해 어떤 생활을 보내게 될까? 어떤 상처를 마주하게 될까?

이 답은, 책을 직접 읽어서 알아보길 바란다.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재밌게 본 사람, 평소 청소년 소설에 흥미가 있던 사람, 우정 관련한 도서를 찾던 사람에게 매우 추천한다. 최근에 읽은 것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재밌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순간이 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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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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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밝은 세상의 임프린트 출판사 든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올 겨울 모든 어른 아이를 위한 러블리 판타지

자신만의 집을 찾아가는 가장 사랑스러운 여정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희망.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우리는 항상 집에 대해서 꾸준히 질문한다. 지리적으로 좋은가? 사는데 불편하지는 않은가? 범죄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곳인가? 어떤 재해에 대하여 안전한가? 이 책은 그 질문들과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나로 살 수 있는 곳인가?’라고. 나 또한 집은 환경조건만을 따졌지 과연 그 안에서 사는 사람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집이란 것은 얼마나 튼튼한지 묻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특히 강조해 알려주었다.

 

가족이라는 것. 단순히 싸우지 않고 화목하다고 좋은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야말로 가족일지 모른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여섯 명의 아이들은 제각각의 아픈 사연을 안고서 이곳에 도래해 살고 있다. 그 아이들이 잘 사는지 고아원의 환경은 어떠한지를 검사하러 라이너스 베이커라는 마법관리부서 DICOMY의 사례연구원이 이곳에 한 달간 머무는 이야기다. 당장에 라이너스마저도 외로운 과거를 껴안으며 집은 그저 머무는 곳. 회사는 그저 가야만 하는 곳. 가서 나의 일을 하고, 집에 와 쉬는 것뿐인 단순 반복 생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며 그렇게 타협하고 지내던 그에게 파견 나간 이 마르시아스 고아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정말 새롭고 또한 사랑스러우며, 그야말로 생기발랄한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정말 읽으면서 웃고, 또 울었다. 600 페이지가량 장편을 자랑하면서도 읽으면서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듯 신비로운 일상과 또 그 속에서 녹아드는 감동, 작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우울과 다시 거대한 해협처럼 몰아치는 극복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진심으로 사랑스러운 책이었다. 단순히 서평이라 좋은 말을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이 책은, 누구라도 읽어주길 바라고 있다!

 

생동감 있는 묘사와 판타지적인 배경에 대한 놀라운 표현이 좋았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인물들의 따뜻한 대사 또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메시지가 많이 들어있을뿐더러 그것은 응원이며, 그리고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애정이었다. 이 책은 집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는 동시에 암울한 현실로 가로막힌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 집이 그리운 사람. 탈속을 바라는 사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정말 체리 향이 나는 핑크빛 바다 같은 책이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짜지 않고 달달한 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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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댄 모든 것 -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마쓰모토 도시히코.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송태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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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김영사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우리의 인생에서 숨구멍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그저 그 숨구멍이 지극히 작아 몸을 욱여넣다 망가진 거잖아.

 

이 책은 간단명료하게, ‘의존증이란 주제를 다루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서로 다른 구역에서 발을 딛고 있는 두 사람이 각자 가진 의존증이란 공통분모로 상대와 편지를 써 심도 있게 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집필돼있다. 사실 담배나 술, 마약, 도박과 같은 범죄와 아주 밀접해지는 중독만 사회에서 치료 정책을 내놓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으로 보지, 사실 중독의 종류는 우리가 모르는 영역까지 더해 더 다양할 수 있다. 중독이란 단어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들린다면 의존은 어떨까? 의존이라고 붙이면 조금이라도 자신이 처한 사태가 덜 무섭게 되나? 그렇게 합리화해도 되는가? 나는 막론하고 모든 중독과 의존증을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을 막연히 나쁜 것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것들을 방치 해둬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통제해서도 치유가 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한다. 그것에 동의하며 나는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에 꼬집히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반성했다.

 

나 또한, 지금은 덜하지만, 이십 대 초에는 니코틴 중독이었다. 연초를 줄이고자 전자담배로 갈아탔지만, 그냥 연초도 피우고 전자담배도 피운 인간이 되어 있었다. 주변에도 나 같은 사람이 정말 많더라. 어느 순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자연스레 하루에 한 갑 피우던 게 현재는 전자담배 한두 모금으로 끝이다. 어느 날은 아예 안 피우기도 했다. 대학교 생활이 힘들었나?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담배가 유일한 도피처로 생각하며 피운 것도 아니었고, 시작은 호기심이었으며, 단지 입이 심심해서 사탕 대신 구름과자를 문 것뿐이었다. 아마 대학교 생활하는 동안은 자취로 인해 집에 아무도 나를 통제하는 이가 없었으니 더 많이 피운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파친코와 같은 도박장에서 도박 중독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도, 그 공간에선 자신을 감시하거나 통제하고 압박하는 이가 없기에 그 자유에 매료되어 중독을 느끼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 게임에서 캐릭터 뽑기로 한 번에 백만 원을 꼬라박은 적이 있다. 지금은 그 게임 접었다. 아직도 돈 아까워 죽을 지경이다. 결국 남는 건 허무함밖에 없는데 말이야.

 

아마 분명 누구나 하나쯤은 중독이 있을 것이다. 담배, 술을 안 하면, 과연 스마트폰은 얼마나 보는지. 특히 릴스, 숏츠 따위의 짧고 강렬하게 끝나는 영상은 하루에 몇 개 보는지. 요즘은 젠지 스테어라고, Z 세대의 빤히 쳐다보는 태도를 부르는 단어가 있다. 스크린을 많이 보다 보니 대면하여 이루는 대화의 인지도가 약해지고 능력 형성이 어려운 상태란 것이다. 나도 요즘 이런 걸 많이 느낀다. 내가 당해본 적도 있고, 내가 하고 있던 적도 있다. 릴스, 숏츠 같이 짧은 영상을 보고 하트를 찍으며 소통을 종료하니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을 때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뇌정지가 와 대답을 제대로 못 한다. 이것 또한 스마트폰 중독의 폐해일 것이다.

 

하지만 고치고 싶다고 해서 고치게 될까? 일단 이에 대한 심각성을 본인이 깨닫는 게 먼저인데, 보통 사람은 그걸 인지하기 힘들다. 이 책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가족이 피해를 받아 치료를 위해 병원에 데려가려고 해도 본인이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을 안 하는데 입원이 되겠냐고. 중독 치료는 항상 중독자 본인이 자발적으로 치료할 의지가 있어야만 시행할 수 있다고.

 

책에는 단순 의존증에 대한 정의, 피해 사례, 치료 사례 등을 다루지 않는다. 이 의존증이 나타나기 위한 개개인의 환경, 처한 상황, 가치관 등도 함께 고민하며 다룰뿐더러, 특히 자조모임의 효과성을 자주 언급한다. 결국 중독, 의존증도 사람의 심리로 발병한 일이니, 그 심리를 알아주고 들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꽤 강조한다. 우리도 금연 캠프 같은 치료 시스템이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도 이 중독 치료에 대해선 누구보다 심리 상담을 중요시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치료 방법을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아빠도 술과 담배에 미쳐 살던 아저씨였는데, 배에 복수가 차고부터 하루아침에 둘 다 끊어버렸다. 그렇게나 겉으로 몸에 이상까지 나타나야 사람들은 이것을 끊는다는 게 안타깝다. 심각성을 깨닫고 그제야 고치려 든다. 이미 몸은 죽어가고 있는데.

 

사회에서도 이 문제점들을 중요시해 많은 정책과 방안을 내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이러한 중독을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이 가장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바란다. 어릴 때부터 손에 스마트폰을 붙들고 살아 온 청소년들까지도.



지금 이 책을 손에 든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의존증 치료와 지원 분야의 전문가? 연구자? 의존증 당사자 또는 그 가족인가요?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니고 그저 의존증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인가요? 아니, 어쩌면 의존증 같은 것에는 털끝만치도 관심이 없으나 이상한 표지 디자인과 별나게 긴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와 무심코 이 책을 집었을 뿐인 지나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 P5

간단히 말하자면, 의존증이란 ‘그만둘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것을 자신이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 P6

생각건대, 그들을 약물로 몰아넣는 것은 쾌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쾌감이라면 금방 싫증이 날 테니까요. 아마도 그것은 쾌감이 아니라 고통의 완화가 아닐까요? - P37

생각건대, 중독과 죽음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독 자체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현재‘를 살아남기 위해 ‘죽어서 해방되는‘ 것을 일시적으로 연기하고 우회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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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 영국 - 인류 역사와 문화의 새로운 발견 박물관을 빌려드립니다
손봉기 지음 / 더블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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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더블북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세계 최고의 컬렉션을 마주하는 특별한 순간

200만 년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나는 환승 투어

베테랑 도슨트의 뮤지엄 시리즈

 

내가 영국을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비행기 표 끊고 갈 수 있나? 아니, 살면서 영국에 갈 날이 오긴 할까? 영국에 가더라도 박물관까지 찾아서 들를 수 있을까? 이 책은, 펼치자마자 그런 거리감만 느껴졌던 박물관과 한순간에 밀접하게 붙어있게 된다. 영국에 있는 세계 최고 박물관 대영박물관그리고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 이 책 한 권에 나를 가이딩한다

 

사실 나는 책을 읽기 전까진 이 책에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봤자 그림이나 동상밖에 없겠지. 대충 그림에 얽힌 귀족, 왕족 찬양이나 치정 이야기나 한가득 적혀 있겠지. 그러나, 이 책은 딱 우리가 알고 보이는 그 수준의 역사를 뛰어넘어 더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이야기와 작품을 설명한다. 크게 대영박물관에는 중동,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작품들이 구성돼 있는데, 특히 나는 이집트 섹션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예전에 이집트 신화를 기반한 만화를 몇 번 본 적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또 새로운 지식을 불어넣으니 정말 재미가 없을 수 없다작품마다 어디 전시관인지 동선까지 체크해준다.

 

     

오시리스가 두 번의 죽음 끝에 부활한 저승의 왕인데, 고대 이집트 사람 중에 죄를 짓지 않고 살다 죽은 이들은 오시리스가 부활시켜 더 좋은 삶을 보내게 해준다. (65p) 이 점에서 미라를 만드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미라, 라는 건 그저 무섭고 우리가 화장하듯 그들이 시체를 보관하는 방법이 미라로 만드는 것뿐만 기억할 텐데, 이런 재미난 유래가 얽혀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죽고 나서는 염라대왕이 우리가 죄가 있는 인간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것처럼, 이집트에선 그러한 역할을 저승사자 아누비스가 한다는 점에서도, 어느 나라든 죽고 나서의 세계에선 항상 생전의 죄를 중요시하게 본다는 점이 유사해 신기했다. 무엇보다 이집트 사람들이 의미하는 죽음이 머릿속을 꿰찬다. 그들은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과 반복되는 밤낮의 변화를 보며 죽음이란 그저 낮에서 밤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73p) 우리 또한 죽음을 애써 아무렇지 않게 흘러오는 거로 보고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두려워하고 있지 않은가. 죽고 나서의 길은 미지의 길이라, 미지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우리에겐 죽음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 싶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순순히 믿는 것 같았다. 그 점이 굉장히 내게 큰 위로가 됐다. 말고도 이집트의 역사는 정말 재밌으며, 이 책에 여타 종류의 역사와 작품이 한가득하니 꼭 읽길 바란다.

 

이 책이 좋은 건 거의 한 페이지 당 작품 사진이 하나씩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역사를 말로만 설명하나. 그 당시에 남긴 기록물을 보여주며 이목을 끌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절대 지루함이 없다. 이야기가 긴데…… 싶으면 작품 사진이 딱 알맞게 관심을 끌어줘 도로 집중을 향상하게 한다. 내가 이 책을 정말 사랑했던 건 그런 선명한 사진을 아낌없이 넣어주면서 내 손을 아주 쉽게 박물관으로 이끌어줬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박물관에 정말 한 번은 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으로 넘어갔을 때 가장 눈에 이끌린 건 그 박물관 입구의 디자인과 샹들리에 사진이었다. 박물관 이름만 들었을 때도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내부는 작은 사진만으로도 그 근사함이 압도된다. 이럴 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대영박물관은 역사의 흥미를 돋우게 한다면,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예술의 흥미를 돋게 한다. 작품 하나하나 매혹적이었다. 흔히 우리가 아는 다비드상부터 블레셋인을 죽이는 삼손, 삼미의 여신, 롯의 아내, 시스티나 성당 내부…… 등등, 아름다움이 하나의 중심부로 서서 여러 방향으로 뻗은 가지들마다 유혹으로 열띤 예술의 과실이 맺혀있다. 읽는다는 말도 웃기다. 나는 그 작품들을 탐미하는내내 숨을 참을 정도였다.

 

좋은 기회로 이렇게나 재밌고 교과서적인 책을 읽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다.

영혼은 누구보다 박물관으로 향해 있는 자들이여, 꼭 이 책을 읽길 바란다. 나는 다른 시리즈까지 구매하여 읽을 의향이 가득하다. 너무너무 잘 읽었다!



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런던과 파리 그리고 로마에 있는 유명한 박물관을 방문했다. - P5

친구의 죽음은 길가메시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사람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언제든지 명예롭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을 직접 본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무리 명예가 높고 재산이 많다 하여도 죽음 앞에서는 그 모두가 허무할 뿐이었다. - P23

옛날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정이 없고 마음은 탐욕스러워져 서로의 재산을 뺏으려 한다. 사회에는 더 이상 정의가 없고 나라는 악한 이들에게 넘어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며 죽음은 마치 환자가 병에서 회복되는 것과 같다. - P64

내 연기가 볼 만했습니까?
내 인생의 연극이 마음에 들었다면
박수를 쳐주시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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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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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제공해준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돌이켜 보면 같은 삶은 없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나눠서 읽으려던 찰나에 이미 다음 장을 넘겼고, 벌써 책장을 덮어버린 만큼 후루룩 읽어내고 말았다. 이럴 수가. 벌써 다음 권을 읽고 싶어졌어! 이 책은 정말 뭐랄까. 영화나 만화로 나온다면 정말 재밌을 거라고 감히 확신한다! 우리의 설화와 신화가 기반으로 깔린 판타지 장르인데 어찌 한국 사람이 돼서 모른 척 넘길 수 있을까, 어찌 재미없다고 할 수 있을까! 환웅이 범과 곰에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로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지내라고 하자, 범은 얼마 못 가 도망갔지만 곰은 인내 있게 버텨 끝내 인간 웅녀가 되어 환웅과 혼을 맺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단군이라고 하는 신화를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 여우도 있었다는 재밌는 발상을 끼워 현재까지 전개된 게 이 소설의 핵심이다. 우리가 단순히 알고 있던 역사를 살짝 꼬았을뿐더러 오백 년이나 살아도 여전히 열다섯인 주인공의 성장 서사까지 합쳐 더더욱 흥미진진하고 감동이 실린다. 오백 년이나 살아도 결국 열다섯의 감정, 열다섯의 몸, 열다섯의 이성을 지닌 주인공이 특히 귀여웠다. 사실 우리도 나이를 어느 기준까지 먹고 나면 그 이후는 오히려 더 어리게 돌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주인공은 더 어려졌다기보단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있다.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여전히 교우 관계에 예민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뭔지 모르며, 제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자주 느낀다.

 

그저 주인공 가을이는 나이가 고정되었을 뿐, 나는 그 아이가 영원히 산다고 보지는 않았다. 삶 또한 그저 정지된 걸로 보였다. 그러나 그 멈춰있던 흐름을 다시 연결해 준 인물이 나타나 점차 가을이가 어떤 시련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걸 지켜보던 나는 뜨거운 눈물을 가슴 안에 흘렸다. 이게 청소년 소설의 장점이다. 3 자는 그것을 유치하다, 오글거린다고 표현할지 몰라도 나는 읽는 내내 가슴이 뜨거워져 죽는 줄 알았다. 무엇보다 청소년 소설은 좀 유치해야 제맛이다. 전개가 지루해선 안 되고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소설 구성 5단계를 짜 맞춰야 하며, 주인공과 공감할 수 있도록 정말 청소년처럼 보이도록 작가가 애를 써서 디자인해야만 한다. 그 시대 인터넷 소설이 한창 유행했을 때, 지금 읽어보면 얼마나 유치하고 오글거리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제맛이다. 그 시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달콤함이다.

 

마지막까지 달려와 감동을 머금은 채 책장을 덮고서도 여운이 짙다. 그리고 내게도 자발적으로 질문하게 된다. 영원히 산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는 사실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짧고 굵게 살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건강 지켜가며 맛없는 걸 먹느니 맛있는 걸 먹고 빨리 죽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길의 문장들이다. 만약 나도 가을이처럼 영생을 갖게 된다면, 나는 전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주 짧게 지나간 행복에 매달려 스스로 메말라갔을 게 분명했다. 사랑했던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 맛있게 먹은 것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물가에 허덕이며 또 돈을 벌기 위해 평생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라도, 나는 영생이 절대 축복이라고 볼 수 없겠다.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게 해준다면 모를까. 로또 번호라도 외우고 가게. 하하.

 

그런데도 나는 가을이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일단 함께 평생 있어 줄 가족이 있으니까. 능력 있는 엄마가 있고 맛있는 밥을 차려줄 할머니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평생 공부해야 하는 학생의 삶을 살고 싶다. 내 나이 스물 중반 넘어가지만, 아직도 내 가장 재밌던 시기는 우습게도 고3 때였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졸업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진 친구를 생각하며 나는 그 시절이 그립다. 이래서 내가 도피성으로 청소년 소설을 집착해 읽나 보다. 아이의 불안정한 감정과 삶을 항상 동경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 신화와 설화에 관심 있으면서도 판타지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난 이제 남은 책은 밀리의 서재에서 찾아 읽을 생각이다.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가을은 봄과 여름과 함께 새로 다닐 학교에 전학 수속을 마치고 교문을 나섰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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