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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쟁쟁한 추리소설로 유명한 우타노 쇼고, 그의 추리소설 같지 않은 추리소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쟝르의 경계를 넘었다는 출판사의 소개평대로였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끌렸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과거의 상처를 안은 채 쇼핑센터 보안부장으로 일하는 고독한 남자, 히라타 마코토. 일상적으로 대하는 좀도둑들과의 대면 중 하나인 스에나가 마스미와의 만남이 뜻밖에도 그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이유는, 뺑소니차에 치어 목숨을 잃은 그의 외동딸과 출생연도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딸을 사고로 잃고 자책감에 아내까지 자살을 하여, 홀로 남겨진 채 분노와 자책, 후회와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폐암이라는 병마까지 찾아오고, 그는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한 채 죽음을 향해 조용히 한걸음씩 다가가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같이 사는 양아치 요타의 구타와 학대에 자신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마스미가 조금씩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상처입고 외로운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와 과거에 대해 모든 걸 털어놓고, 히라타는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삶 속에서, 마스미에게 좋은 일을 한 가지 하고 떠나자고 결심하고, 그녀의 독립과 자생을 돕는다. 그의 충고에 결국 자신을 소중히 하고 돌보기로 결심한 마스미는 그의 도움의 손길을 잡고자 결심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마스미는 엄청난 사실을 밝히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파국의 끝으로 치닫게 되나, 히라타의 주치의이자 학교 후배인 오제키의 노력으로 안타까운 진실이 밝혀지며 또 한번의 반전을 이룬다.
서로에게 상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서로의 상처를 보듬던 두 사람에게 찾아온 진실은 그야말로 너무 안타깝고 안쓰럽다. 딸의 사고로 가정이 파괴되고 자신도 파괴되어 버린 남자에게 남은 마지막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 자신도 몰랐던 그 응집된 분노의 크기는 어마어마했고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 터지고 만다. 자신을 학대하며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여자에게 찾아온 따뜻한 도움의 손길, 그 손을 잡으려는 순간 여자는 중대 결심을 하고 자신에게 찾아온 이 유일하고도 마지막 기회를 내치고 비극적 결말을 자처한다, 그 결과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어그러진 운명이 교차하는 순간, 진실은 비껴가 있고, 그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오제키의 고뇌는 비단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닐 것 같다.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라는 작가의 말 대로, 인생 역시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툭툭 튀어나오는 미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에 도달하는 인생 여정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