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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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라는 부제가 설명하듯, 신비한 힘을 가진 오하쓰와 약해 보이나 우직한 성품의 우쿄노스케 콤비의 활약을 담은 첫번째 작품이다. 일전에 이은 "미인"의 전작인 셈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자가, 장사 준비 중 문득 깨어나나 그의 이웃은 그가 웬지 낯설고 기이하다.  때마침 벌어진 연속적인 아이 살해사건들.  그리고 밤마다 우는 돌까지, 이들 사건의 중심에 백년 전에 일어났던 '아코 사건'이 있다.

 

무사들 간의 다툼과 충정, 복수, 할복 등 실제 일어났던 이 사건을 다룬 일본의 국민고전 "주신구라"를 모티브로 하여, 백년 전의 원한의 망령이 끈질긴 집념으로 되살아 나서 그의 복수가 현재형으로 진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를 꿰뚫어 본 오하쓰와 우쿄노스케 콤비의 활약이 이 집착어린 복수를 끝내고자 하는데...

 

이 작품의 주 소재라 할 수 있는 "아코 사건"이나 그를 작품화한 "주신구라"를 모른 채 이 작품을 읽어나가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고, 그 부분이 지루하거나 이해가 안 돼서 그냥 넘어가게 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거기에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들'이 현재에 나타나 사건을 끌고 가니 다소 추리소설적인 면이 약해지고, 재미도 반감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우쿄노스케가 가진 사연과 그가 놓인 환경 등을 알게 되었고 ("미인"에서는 모른 채로 읽었는데), 오하쓰와의 만남 등이 묘사된 점이 이 두 콤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같은 억울함과 원망어린 사연을 겪더라도, 누군가는 그를 극복하고 누군가는 그에 사로잡혀 버림을 극명하게 그리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무시무시하게 강한 마음을 품게 된대요.  마치 불을 붙인 향이 다 타서 떨어지기 전에 화악 밝아지는 것처럼.  제가 보거나 듣는 것은 그렇게 남은 ‘마음’이랍니다.”  내게 남은 마음이 뭐가 될 지 두려워진다... 

한편,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 중, '이전의 세 작품 <외딴 집><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괴이>가 에도 시대의 축축한 밤을 그렸다면 <흔들리는 바위>는 활기에 넘치는 에도의 낮을 어느 때보다 경쾌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라는 출판사의 평은,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나고 기발한 분석인 듯 싶다.  확실히 다른 세 작품들에 비해, 좀 덜 어둡고 가벼운 느낌이 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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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스토리콜렉터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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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용은 단순하다.  두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두 피해자인 중년의 남자와 십대 소녀가 서로 사귀는 사이였음이 알려지면서 피해자간에 접점이 밝혀진다.  더군다나 피해자 중 한 명인 중년의 남자가 인터넷에서 '아버지'라는 닉네임을 쓰며 다른 회원들과 함께 소위 '가족놀이'라는 것을 했던 사실을 알아낸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한 덫을 놓고 주변인물들을 취조실로 모은다.  일종의 도박을 했던 경찰은 취조과정에서 범인의 숨통을 조여가는데...

 

작품 내내, 전대미문의 계획, 기발한 발상이라며 경찰의 계획을 언급하고 있으나, 너무 초반부터 뻔하게 범인을 알아챌 수 있다.  결코 반전은 아니며, 미미 여사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좀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다.  다만 현실의 가족을 외면하고, 사이버공간에서 가족을 만들어 '가족놀이'라는 걸 하는 현대인의 섬뜩한 심리와 행태를 다룬 점이 이 작품이 갖는 의미일 수는 있겠다.  점차 붕괴되어 가는 가족제도 속에서,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그 가짜에 기대는 세태를 날카롭게 집어낸 작품이다.

 

다소 실망을 하며 책을 덮으려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에 쓰인 역자 후기에 실린 시 한 편이 눈과 가슴을 끌어당겼다.  우리가 일생을 허망한 것을 쫓으며 허망하게 보내는 것을 참으로 절절하게 벼락같은 가르침을 주는 시다.  이 책에서 내가 건진 너무나 소중한 가르침이면서...

 

나비

             - 사이조 야소-

 

이윽고 지옥에 내려갈때,
그곳에서 기다릴 부모와
친구에게 나는 무엇을 가지고 가랴.

아마도 나는 호주머니에서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그리하여 건네면서 말하리라.

일생을
아이처럼, 쓸쓸하게
이것을 쫓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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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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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 단편 6편을 수록한 작품집.  그녀의 에도 시대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물, 기이한 존재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족자 속 항아리 그림 <스님의 항아리>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수보다 하나 더 많은 그림자의 정체 <그림자밟기>

50개의 눈을 가진 요괴 <바쿠치간> (이 작품은 "혈안"이라는 단편으로 다른 책에 실려 읽었었다.)

뺏긴 것을 되찾고자 환생한 토채귀 <토채귀>

다른 사람의 혼을 먹고 그 몸을 차지하는 의식 <반바 빙의>

고양이 요물의 부탁으로 나무망치 요물을 처치하는 <노즈치의 무덤>

이 여섯 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 내 취향은 미미여사의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짧은 단편 속에도 그녀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있는 점은 참 흐뭇하다.  담담한 듯 하면서도 무서움, 웃음, 슬픔 등의 감정들이 그 안에 다 담겨 있음은 작가의 필력의 힘 뿐 아니라 작가가 갖는 깊은 철학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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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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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이 느껴진 소설이었다.  약간의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밤새 그대로 정주행 해버렸다.  굉장한 흡입력과 속도감을 가졌다.

 

졸업식 전날 한 고등학교에서, 평소 눈에 띄지도 않던 중년의 여교사 곤도 아야코가,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 스물아홉 명 전원을 인질로 삼고 피의 계엄령을 선포한다.  평소 극심한 문제아들로 이루어진 이 반에는 조폭과 연계된 학생들도 있고, 아야코 말에 의하면 21세기가 낳은 '괴물'들이다.  온갖 끔찍한 비행과 범죄를 태연히 자행하며 그 죄도 받지 않던 아이들은, 아야코의 경악할만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실제로 눈앞에서 살인이 일어나자 동요하기 시작한다.  아야코는 더 이상 그들이 평소 알던 '아줌마'가 아니었다.

 

경찰 역시 발빠르게 대처하며 '특경반'까지 투입되지만, 아야코의 치밀한 계획 앞에 오히려 희생자만 속출할 뿐이다.  무장한 다수의 경찰병력의 제압시도에서 전혀 동요하지 않는 아야코과,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아야코에게 휘둘리는 경찰과의 대치 상황은 교차되는 시점 속에서 정말 실감나게 묘사되었다.  무서우리만큼 침착한 아야코는, 학생들의 도발에 의해 우발적으로 한명씩 학생들을 죽이는 것 같지만, 이 또한 다 계획된 전개였다.  상황이 전개되면서 한 사람씩 죽이게 되고, 그들의 죄상을 나즈막하게 읊어대는 아야코의 모습은, 이 모든 것에 원인이 될 만한 아픈 과거가 있고, 피의 복수를 위해 주도면밀하게 이 경악스런 참사를 준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사람을 죽여나가는 아야코에게 감정이입되어, 그녀의 행보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읽었다.  만만치 않은 일진 학생들에게 당하면 안 되는데, 경찰에게 도중에 이 계획이 차단 당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말이다.  끝까지 그녀가 세웠던 계획을 다 이룰 수 있게 되길 빌면서 내리 읽어나간 작품이었다.

 

더우기, 단순히 폐쇄된 교실에서 학생들 하나하나를 전부 사살하는 게 다일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아야코는 계속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계획을 펼치며 교실 밖 상황도 다 통제한다.  그녀의 계획은, 그야말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이다! ^^  마지막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강렬한 흡입력은 최고였다.  끝에 이르러서 밝혀지는 의외의 반전도 흥미로웠고, 아픈 현실을 직시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도 맛보게 하는 작품이다.

 

일본에서 제1회 호러 서스펜스 대상(2000년)을 받은 작품이란다.  호러는 모르겠고, 서스펜스는 확실하다!  일견 설정이 다소 과하고 억지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막상 소설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장면이 눈앞에 보이듯 영상으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화해도 좋을 듯 하다.  글로 영상을 재현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것 같다, 이 작가는.  이런 의미에서 그의 다음 작품도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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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의 섬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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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귀"의 작가로 유명한 오노 후유미의 추리소설, "흑사의 섬."

 

책소개에는 오노 후유미의 본격 호러미스터리라고 소개하지만, 사실 호러의 요소는 없다.  다만, 폐쇄적인 성향의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사교로 여겨지는 미신을 믿는 섬사람들의 이질적인 신앙과 어우러져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했을 뿐인데...


줄거리는, 조사 사무소를 운영 중인 시키부가 지인인 작가 카츠라기 시호가 행방불명되자 그녀의 행적을 쫓아 카츠라기의 고향 야차도로 향한다.  거기서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이 섬에 왔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려는 섬사람들에 의해 오히려 섬 밖으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이에도 불구하고, 카츠라기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그녀의 행적을 캐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그녀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사실을 밝혀내고, 마을 사람들은 이게 악인에게 벌을 내리는 마두님의 형벌이라며 살인을 합리화한다.  미신적 신앙 뒤에서 살인행각을 벌인 살인범을 추적하는 시키부는 20년 전 이 섬에서 일어났던 또다른 살인사건을 접하게 되고, 이 모든 게 광기어린 동일범의 짓임을 알아채고 범인을 쫓는다.

 

마을 전체를 감도는 기묘한 마두 신앙,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불길하고 음습한 분위기로 실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더 기괴하게 만든다.  여기에 작가는 민속학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무장하고 독자에게 이를 알려주려 하나, 이국의 전승적 전설이나 민속학의 유래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적어도 나는.  그래도 결말 부분은 꽤 흥미로웠다.  작품 내내 시키부의 지지부진한 수사과정은, 오히려 현실적이라 좋았지만 (천재적인 명탐정이 그리 흔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덕분에 나 역시 같이 오리무중에 빠져 엉뚱한 사람을 의심하며 헤매고 있었는데, 결말에서 진정한 명탐정(?)이 나와서 이를 깔끔하게(?) 해결해주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스포라서 밝힐 수는 없지만, 작품 전반부에 걸친 다소 작위적인 분위기보다, 오히려 결말 부분에서 대부분의 점수를 얻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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