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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심판 1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속삭이는 자"로 데뷔작을 내놓은 도나토 카리시의 두번째 작품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성당, 사제, 종교화 등을 매개로 하여 연쇄살인범과 그를 쫓는 프로파일러 신부 간의 숨막히는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동시에 번갈아 가며, 또한 마르쿠스 신부와 산드라 형사의 시점을 교차해가며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방식을 통해 더욱 더 긴박감과 생생한 묘사를 이뤄내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날 밤, 구급차를 타고 응급환자의 집에 출동하게 된 병원 인턴의사는 그가 연쇄살인범이자 자신의 쌍둥이동생을 죽인 범인임을 알게 되고 이 자를 살릴지를 고민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의 진범과 피해가족들이 조우하는 일들이 연달아 생기고, 이는 피해가족들의 복수를 도와주는 숨은 인물이 계획한 일임이 밝혀진다. 한편, 기억을 잃은 사제 마르쿠스는 바티칸의 도움으로 납치된 여대생 라라를 찾는 과정에서 악을 감지할 수 있는 자신의 특출난 능력을 느끼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연달아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의 범인을 쫓는 프로파일링을 해나간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밀라노의 여형사 산드라는 인터폴의 연락을 받고 그동안 미뤄왔던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남긴 메세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의 죽음과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추적하면서 인터폴 형사 샬바와 마르쿠스 신부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이렇게 다중의 사건과 많은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면서 도대체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조종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이들이 쫓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과 긴박한 사건 전개, 악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뛰어난 묘사 등이 이 작품을 이루는 주요 얼개이다. 여기에 특이하며 흥미로운 소재들을 매개로 하여 작가가 가공한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점도 탁월하다.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주변 인물로 위장하여 살아가는 천부적 카멜레온 살인범, 선악의 경계에서 서서 그 경계를 뚫고 악의 세계로 들어가버린 인물들, , 고해성사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악의 기록을 보유한 바티칸이 그 중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범죄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단죄를 한다는 영혼의 심판, 바라카조의 '성 마태오의 순교' 등의 종교화에서 읽히는 살인의 현장 등이 그것이다. 가장 무서운 건, 악 그 자체라기 보다는, 선과 악의 경계, 그 경계를 뚫고 악의 세계로 들어가 버릴 그 위태로움이라는 시각이 의미있게 와닿았다.
다만, 너무나 꼬아버려 산만함을 지울 수 없는 게 다소 흠으로 느껴졌다. 중요 인물 묘사에 대한 의도적인(?) 축소 등이 조금 불만이었고, 두 권에 걸쳐 기나긴 미로를 걷다가 막판 몇 페이지에 몰아치는 반전의 결말이 조금 버겁다는 느낌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가졌던 의심이 종반에 확인되면서, 이럴 줄 알았는데 뭘 그리 꼬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약간은 허망한 느낌마저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비교하자면 작가의 전작이 더 좋았던 것 같으나, 그래도 이 작품도 역시 대단하긴 했고, 드물게 보는 유럽(이탈리아) 스릴러 장르의 수작이라 여겨진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 지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