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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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가 김영하.  데뷔한 지 이미 19년이라는데, 이상하게 내게는 여전히 젊은 작가, 신예라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의 화려한 작품 이력을 아는데도 그동안 접해보지 않았던 그의 작품세계를 이번에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독특하고 신선한 제목에 이끌려 처음 접해보게 되었다.

 

치매에 걸린 70세의 연쇄살인범이 점점 잊혀져 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노리는 또다른 연쇄살인범과의 대결을 준비한다는 내용.  이 흥미로운 서사를 마치 잠언집을 읽듯 짧고 강렬한 문체로 서술해 나가는 방식이 무척 신선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시골에 사는 치매 노인의 생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잠언 수준의 그의 생각은 읽는 이를 주인공 노인의 마음 속으로 깊이 끌어당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을 관통하는 건, 악은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비껴갈 수 있도록 기도하라며, 무서운 건 악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그건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기승전결의 관점에서 보면 나름 반전이라고 할 결말 부분이 처음엔 이게 뭔가 싶기도 했지만,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처음부터 분명했던 게 아닐까 싶다.  주인공 김병수가 수시로 읊조리던 금강경, 반야심경처럼,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무지가 걸림돌인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른 작품들이 격하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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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3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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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야미스' (일본사람들 말 만들어내는 센스란 참,,,;;), 의 대표주자, 미나토 가나에의 단편소설집이다.  참으로 불편하고 서늘한 진실을 참으로 깔끔하고 시크하게 서술하는 그녀의 장기에 매혹된 나로선, 단편집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갔다.

 

이 작품을 접하면서, 그녀가 섬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됐고 (사실 일본 전체가 섬나라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녀만이 쓸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책소개에 어느 정도 기대가 컸다.  거기에, 그동안 그녀의 장기로 다뤄왔던 인간의 어둠뿐만 아니라 빛도 찾아낼 수 있는 넓은 시야와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심도를 갖추게 됐다는 거창한 문구는 다소 오바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름 그녀의 특색과 실력이 단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섬에 사는 주인공 6명을 설정하여 섬과 관련된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집.  그중에서도 난 첫번째 작품인 '귤꽃'이 가장 좋았다.  가장 그녀답고, 가장 반전의 강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모든 소설이 시라쓰라지마라는 섬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망향"이라는 작품집 제목의 의미가 와닿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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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쓰카사키 시로 지음, 고재운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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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소 추리소설스러운(?) 번역본 제목과는 달리 원제가 "게놈 해저드 (Genome Hazard)"라는 걸 보면서 다소 의아해했다.  거기다가, 과학기술적 도움을 받은 누구에게 감사드린다는 작가의 서문을 보면서, 이거 추리소설이 아니라 SF소설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첫장을 펼쳤다.

 

시작하자마자 전개된 사건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주인공 남자가, 거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고, 잇달아 걸려온 전화는 바로 아내로부터 걸려온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일로 출발한다.  때마침 집으로 찾아온 두 형사, 그들을 피해 달아나던 주인공을 향해 발사된 총알, 영문도 모른 채 사면초가에 빠진 그 앞에 나타난 한 여성.  이렇게 사건은 정신없이 연달아치며 시작되고,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기억 속에 다른 이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기억이 자신의 뇌에 이식되었다는 설정은 다분히 SF적이기는 하나, 어쩌면 미래의 사실일 수도 있겠다.  자신이 '나'라고 믿고 있던 존재가, 나의 현실, 나의 과거, 나의 주변이라고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실제로는 타인일 수 있고, 타인의 현실, 타인의 과거라는 경악스러운 사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모든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이고 모순된 현실을 설명해주는 길이다.  죽은 아내의 옆에서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는 이 엄청난 모순으로부터 시작되는 사건이 흥미롭다. 

 

처음에는 모든 게 비현실적이고 SF적이라고만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막판에 몇차례의 반전 끝에 드러난 진실은 추리의 성격을 짙게 띈 점이 인상적이었고, 어쩌면 처음부터 철저히 추리소설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만, 그 강렬한 SF적 설정에 잠시 눈이 흐려젔을 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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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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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미미 여사의 시대물, 2권짜리의 소설이다.

 

동일한 범행수법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2건 일어나고, 이를 해결하고자 헤이시로와 유미노스케 콤비의 활약이 이뤄지는 게 커다란 줄기이다.  그러나 단순히 추리소설에만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농도짙은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이면에 놓인 사랑이라는 감정과 연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외모가 남녀 사이에 끼치는 영향이라던가, 에도 시대에 장남이 아닌 남자들의 삶의 모습 등도 다루고 있다.  오히려 살인사건과 그의 해결이라는 큰 줄기 보다는,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성격, 모습, 삶의 철학, 감정 등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설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작품의 주를 이룬다고까지 여겨졌고, 그 점도 참 좋았다.  각자 특성과 장단점을 지닌 그네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며, 인간에 대한 미미여사의 깊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과 연애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달콤함과 아름다움 같은 면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갖는, 본질적인 잔혹함과 허무함을 이야기 속에 녹아내는 미미여사의 공력은 분명 대단하다.  그 점 만으로도 높이 평가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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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저어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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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추리, 호러 소설을 쓰던 작가의 작품이라 읽어봤다.  

 

일본 고위 정치가 중에 '침저어(sleeper)'라 불리는 중국의 스파이가 있다는 정보를 접한 경시청 외사2과 형사들과 중국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미국의 정보기관 간의 정보 전쟁을 다룬 첩보물이다.

 

대 중국의 정보를 다루는 부서 소속의 후와 형사는, 부서의 베터랑 형사인 고미와 그를 따르는 부서원들과 원만치 못한 관계를 이루나 개의치 않는다.  후와에게는 역시 고미 일가와 어울리지 못하는 와카바야시라는 후배가 있는데, 그와 함께 중국의 스파이로 짐작되는 인물의 행동을 확인하던 중 고교 동창생인 이토 마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녀는 차기 수상으로 유력한 젊은 정치인 아쿠타가와 겐타로의 말단 비서로서, 그를 존경하고 열렬히 따르는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망명한 중국 정치인으로부터 아쿠타가와가 침저어라는 정보를 접하고 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맥베스 작전을 수행하던 중, 이토 마리가 실종되고, 경찰은 서로를 내부에 잠입한 스파이인 두더지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후 계속해서 입수되는 정보 사이에서 사실과 거짓 정보를 가려내야 하는 처지의 후와도 역시 동료를 의심하고 자신도 의심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며, 정보전은 점점 긴박함 속에 오리무중으로 들어서는데...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정보의 미궁 속에서, 각국의 첨예한 정보전쟁이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첩보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단한 흥미를 느꼈겠지만, 나는 역시 그쪽 체질은 아니라 그냥 막 헷갈려하며 읽었다...^^;  역시 난 본격추리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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