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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평점 :
정유정 작가의 좌충우돌 안나푸르나 종주기이자 그녀가 쓴 최초의 에세이. 내용 특성 상 에세이라기 보다는, 기행문, 여행기라 할 수 있다.
여행 경험이 전무한 그녀가, '28'을 탈고하고 지독한 무력감에 휩쓸린 무렵 결심한 최초의 여행지가 바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다. 편안한 여행지들 다 두고 험난한 산행을 택한 데는, 방전된 그녀가 재충전을 위해 택한 그녀만의 힐링 방법인 것일까.
후배 작가 김혜나와 함께 출발한 여행은, 현지 가이드 검부와 포터 버럼과 함께 애초에 목적한 환상종주가 아닌 환상방황이 되어 버린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여행이야기는, 허세나 단순한 고생담이 아닌, 진짜 리얼한 일상과 험난한 여정에서 깨닫는 범속하고 하찮은 인간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낸다. 간간이 섞여 들어간 그녀의 과거 이야기가 현재의 여행에 오버랩되면서 소설같은 느낌도 나고, 등장인물에게 친근감도 느끼게 하고, 내가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생생한 실제감도 부여한다. 20일 가량의 안나푸르나 종주일정 속에서 가감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짓게 하고 때로는 같이 힘들어하고 그러면서 육체적 고통과 한계를 이겨내는 그 강인함에도 찬사를 보내게끔 한다.
이에 절대적인 도움을 준 검부와 버럼의 이야기 또한 내게 깊은 울림을 줬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돌보고 생을 이어나가야 했기에, 열악한 네팔의 환경 속에서 포터가 되고 셰르파가 되고 마침내 전문 가이드가 된 검부는, 나약하고 나태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어린 나이에 그러한 결심을 하고 고난을 이겨내며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생을 성실하고 묵묵하게 수행한 성숙한 한 인간의 모습 앞에 겸허하게 나 자신을 반성하며 돌아보게 했다. 버럼도 언제가는 셰르파가 되고 검부같은 가이드가 되겠지. 히말라야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들을 꼭 구해 찾아볼 일이다. 정유정 작가 또한 에베레스트를 꿈꾸며 그때 또 함께 하자고 하지 않았던가.
여행 전반에 걸쳐 그녀가 던지는 물음, 다시 세상에 맞설 수 있을지, 나 자신과 싸울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여행이 끝나면. 그녀가 그 거친 쏘롱라패쓰를 통과하여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겼을 때 들었던 그 대답은, '죽을 때까지'란다. 그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검부가 마지막에 그녀에게 했던 말, "유 아 어 파이터"라고 했듯이. 그녀를 응원하며 다음 행보를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