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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평점 :
오래간만에 접한 한국 추리소설. 웬지 한국 추리소설은, 좀 낯간지럽고 계면쩍고 설익음이 더 잘 느껴지고 하는 건, 아무래도 낯익은 배경, 무대, 인물, 사회 등의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마치 가족에게 느껴지는 그런 쑥스러움 같은 걸까...
출판사 평에 따르면, 작가 송시우는 정교한 트릭과 범인 찾기를 중시하는 본격 미스터리보다는 범죄의 동기와 인물들의 내러티브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사회파 미스터리를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법과 가치의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을 제대로 반영한 작품이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이고.
대중문화 평론가이자 인기 강사인 수빈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담은 칼럼을 신문에 연재하고, 1980년대 당시의 시대상을 서민의 일상을 통해 풀어놓는다. 여러 세대가 '라일락 하우스’라 불리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살아가던 이야기를 전개하며 가난했지만 정겨울 수 밖에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던 그녀에게, 과거 형사였다는 노인이 찾아와, 당시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옆방 오빠의 죽음이 어쩌면 살인사건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시절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온전히 사실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그립고 정겹기만 하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분열하기 시작한다. 당시 같은 집에 살았던 동갑내기 우돌과 재회해 어느덧 연인사이가 된 수빈은 그와 함께 과거의 진실을 캐기 위해 당시 라일락 하우스에 살았던 사람들을 하나씩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선남선녀로 많은 이들의 선망을 자아내던 신혼부부, 20대 꽃다운 나이의 세 처녀들, 아픈 막내를 둔 우돌네, 그리고 옆방에 살던 조용한 청년 조영달 등의 인물들이 함께 했던 그 시절을 되짚어가면서 수빈이 발견하는 사실은, 그녀가 기억하던 대로만의 아름다운 추억 뿐이 아니었다. 사실 어찌 아름답고 정겹기만 할까, 현실이.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보았을 때나 그렇지, 더군다나 누구나 그렇듯 유년 시절의 기억은 아릅답고 그립기만 한 것이지 않은가. 그 이면에 숨겨진 악의와 잠재된 불행은, 이제 성인이 된 수빈의 잠재기억 속에서 되살아 나기 시작한다.
추리 자체보다는, 어렸웠던 시절의 생활상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인 전반부는 살짝 지루하긴 했다. 그나마 비슷한 세대로 당시의 모습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지만. 주인공 수빈에 대한 묘사도 좀 낯간지럽고 별 대단할 것 없는 그녀의 칼럼이 그리 인기를 끌고 그녀의 성공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이면에 숨겨진 악의적인 진실을 캐낸다는 발상은 신선하고 흥미롭게 느껴진 작품이었다. 일상의 배경에 깔린 색채의 향연을 통해 당시의 향수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도 재밌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