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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평점 :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죽은 자들의 방" 작가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그 작품에 그다지 큰 매력을 못 느꼈기에 또 하나의 잔혹하기만 한 작품 아닐까 싶어 살짝 망설여졌지만 그냥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마치 영화 "쏘우"를 보는 것 같았다. 전직 산악인 조나탕은 잠에서 깨어나보니 어두운 동굴 속이고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다. 잠시 후 얼굴에 철가면이 채워져 있는 거대한 몸집의 사내 미셸과, 자신과 마찬가지로 발에 족쇄가 채워진 아랍청년 파리드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애견 포카라도 함께 동굴에 갇혔음을 알게 된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곳에 갇히게 된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얼굴이 뭉개진 채 죽은 한 남자의 시체와, 당신들은 곧 죽을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각자가 입고 있는 티셔츠 뒷면엔, 누가 거짓말쟁이이고, 누가 도둑이고, 누가 살인자인지를 묻는 글귀가 적혀 있음도 알게 된다.
서로를 의심하며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던 세 사내는, 끔찍한 추위와 싸우며 점점 줄어드는 물과 식량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친다. 극한의 상황에서 점점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은 이들을 잠식해 오기 시작하고, 광기어린 그들의 감금 생활과 탈출 시도가 펼쳐진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은, 내면에 깊이 묻은 과거와 조우하며 끔찍한 반전을 이룬다. 그 순간 탈출과 생존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야수성을 그리며,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이 갖는 깊은 죄의식의 발로가 얼마나 끔찍한 지도 묘사한 작품이다. 결말이 다소 허무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건 인간의 마음 속의 끔찍한 전쟁이 현실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해가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