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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에 이어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다. 탐정 사와자키는, 내가 아즈마 나오미의 스스키노 탐정과 함께 제일 좋아하는 일본 하드보일드 탐정이다. 명석하고 치밀한 두뇌회전을 자랑하는 '낭만 마초'의 전형.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도, 역시 하라 료는 천재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1년 간 도쿄를 떠나있던 사와자키가 돌아온 날, 자신의 사무실에 침입한 노숙자로부터 사건의뢰를 전달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 의뢰자와 연락을 취하려 하나 쉽지 않았고, 마침내 의뢰자를 만나게는 되나, 의뢰를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통보받는다. 한때 고교야구의 혜성과 같았던 아키라는 십여 년 전 승부조작에 휘말렸다가 혐의가 벗겨지기는 했으나 야구 인생이 끝나게 되는 불행을 맛봤고, 그로 인해 누나 유키가 자살을 하고 가정이 풍지박산이 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모두가 자살이라고 믿는 누나의 죽음을, 홀로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괴로워하는 아키라. 결국 사와자키는, 십여 년 전 일어난 자살 사건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맡아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다. 자살이 아니라는 반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사건의 진위를 재구성하고 추적해가는 동안, 사와자키는 피해자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감춘 거짓을 간파해 나간다. 결국 사와자키가 오랜 여정 끝에 밝혀낸 진실은 전혀 예상 밖의 결말로 이어지고, 아플 수 밖에 진실이었다.
정말 예상못한 진실을 꿰뚫어 보는 부분들마다 전율이 일고 가슴이 철렁하며, 아, 그랬던 거구나, 하면서 새삼 작가의 천재성에 놀라게 된다. 그런 추론이 전혀 억지스럽지도 않고 불공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사와자키가 이끄는 대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건, 이 작품의 지극한 재미이다. 촘촘히 이어진 구성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인물들에 대한 탐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묘미이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 버린, 그러나 여전히 멋있는 사와자키 탐정의 후속 활약이 너무나 기다려지는데, 우리 나라에는, 안 그래도 과작 작가인 하라 료의 작품 중 3권만 출간된 점이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