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필요 없다
베른하르트 아이히너 지음, 송소민 옮김 / 책뜨락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어린 나이에 장의사 일을 하는 양부모에 의해 억지로 장의사 일을 배우게 된 블룸.  처음에는 그 끔찍했던 일이 어느덧 손에 익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장의사 일을 능숙히 해내게 된 그녀는 20대가 되자, 부모와 함께 나선 요트 여행에서 양부모를 살해한다.  자신에게 사랑은 베풀어주지 않고 오로지 가업을 잇기 위한 도구로만 이용했다는 이유로, 양부모를 바다에 던져놓고 그녀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하기 시작한다.  경찰 마르크에 의해 바다 한 가운데서 발견된 블룸.  이제 그녀는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도 되고,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칙칙한 장의 시설을 산뜻하게 개조하고 점차 번창해 가는 장의업에 만족해 하는 그녀 곁엔, 언제나 다정하고 믿음직스러운 남편 마르크와 두 딸이 있다.  아울러 사이좋은 시아버지 칼과 가족이나 다름없는 장의사 조수까지.  그녀의 삶은 완벽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레 블룸의 눈앞에서 뺑소니차에 치여 즉사한 마르크.  그의 죽음을 슬퍼할 사이도 없이, 그가 혼자서 은밀히 조사해오던 사건과 마주하게 된 블룸.  그건 복수의 시작이었다.  사진사, 사제, 요리사, 사냥꾼, 어릿광대라 불리며 가면을 쓰고 불법노동자 3명을 납치하여 강간, 고문, 사육한 일당의 범죄를 쫓고 있었던 마르크.  그의 죽음 조차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이들에 의한 살해 임을 깨닫게 된 블룸은, 이제 홀로 그 잔혹한 복수의 서막을 열어 간다.

 

특징적인 단문으로 인해 몰입도가 뛰어나고, 어느덧 그녀의 감정에 이입되며 가독성 있던 작품은, 중반 이후, 그녀의 복수가 차례차례 이어지며 의외로 너무나 쉽게 너무나 우연히 이뤄지는 걸 보며 좀 맥이 빠지고 현실감이 결여되는 느낌이 든다.  특히 가장 나중에 밝혀지는 마지막 범인의 정체는 초반부터 파악되는 통에 반전의 묘미는 느끼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래도 작가의 문체가 나름 신선했고, 그러나 그 느낌을 잘 살리지 못한 완연한 번역문이 많이 거슬렸다.  문득 든 생각, 작가는 다양한 이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우리나라 번역자들은 하나같이 고학력, 고스펙의 사람들이구나.  근데 어째 번역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는 아쉬움은 어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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