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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7
윤흥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소설인 장마.. 교과서에는 약간의 부분만이 나와 있기 때문에 책을 모두 읽고 싶었다. 이 소설은 순박한 ‘나‘가 화자이다. 교과서 그림에서 나온 것처럼 착하게 생겼다. 꼭 나처럼..순진한 눈을 가진 어린 아이를 전면에 내세워 소설적 효과의 거양을 꾀하면서도 소설의 전모를 통하여 소정의 역사 의식을 내세우려는 작가의 의도가 은영중에 그러한 서술 유형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의 시기는 장마철이다. 난리를 피하여 나의 시골집으로 합류하면서 두 가구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할머니와 고모와 삼촌은 좌익의 성향을 띠고 있고 외삼촌은 우익 성향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외삼촌 길준이 육군 소의로 일선 소대장으로 입대하여 전방에서 전사하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가족을 함께 감싸안아야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지대에 서있다. 할머니가 거처하는 큰 방과 외할머니가 거처하는 건넌방으로 구분하여 살면서 처음에는 그다지 의가 나쁘지 않다.
이 소설 속에서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그래서 제목도 장마인가 보다.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로 시작된 서두에서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고 끝나는 결말까지, 길고 지루한 장마는 이 소설을 통하여 작가가 발화하는 중심 사고를 뒷받침하는 주밀한 장치이다. 전란 후의 장마라 더욱더 지겹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장마비와 빗속을 뚫고 동네 개들이 무슨 군호나 되는 듯이 짖기 시작하는 소리를 동반하며 건넌방의 외할머니에게 기막힌 소식이 전해진다. 아들의 전사 통지서였다. 그런 이후 어느 날 오후 장대 같은 벼락불이 건지산 날망으로 푹푹 꽂히는 험한 날씨에 외할머니는 마루 끝에 서서 건지산의 빨치산들이 벼락에 맞도록 저주한다. 안방의 할머니가 우당탕 문을 열어 젖히며 악담을 퍼부을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전사한 그리고 전선에 나가 있는 아들의 대리자로서 이 두 안사돈이 의절하듯 갈라서는 것은 앞서의 언급처럼 미리 예비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하나의 큰 사건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된다. 형사에게 초콜릿을 얻어먹고 삼촌이 야밤에 집에 다녀간 일을 실토하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읍내 경찰서로 붙들려 가서 일 주일 동안 모진 일을 당하고 돌아오게 된다. 나는 문밖 출입을 금지 당하고 할머니로 부터는 안방 출입도 못할 정도로 배척당한다. 자연히 나는 외할머니 쪽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양쪽 진영을 동시에 그리고 객관적오르 관찰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하나의 주술적 믿음이 이야기의 전반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은 점쟁이가 예언했다는 그 날인데, 그 삼촌이 돌아온다는 날에 대한 할머니의 확신도 없는 것이 나를 궁금하게 했다. 그래서 소설을 끝까지 읽은게 아닐까??
할머니는 식구들을 독려하여 잔치 준비를 한다. 객체적 정황으로 보면 삼촌이 돌아오는 것은 소문내지 아니하고 비밀에 부쳐야 옳을 듯한데,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심지어 형사가 집안을 기웃거려도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그날 집으로 찾아든 것은 살아 있는 아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돌팔매질에 쫓기는 한 마리의 큰 구렁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으로는 구렁이는 수난을 겪은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구렁이를 보더니 혼절하고 외할머니가 나서서 머리카락을 태우고 사정을 하면서 구렁이 즉 삼촌의 화신을 늙은 감나무에서 내려 보낸다. 구렁이가 상징하는 것은 삼촌의 죽음이다. 삼촌이 죽었으니깐 당연히 구렁이로 되겠지.. 외할머니가 나서서 늙은 감나무 가지에서 뒷간을 거쳐 숲이 우거진 대밭으로 구렁이를 인도한다. 그러는 중에 자연스럽게 그 구렁이는 삼촌이 죽어 그 혼령이 모습을 입고 집으로 찾아온 화신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납득되고 있다. 졸도한 지 서너 시간만에 의식을 회복한 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큰방으로 초청하고, 두 안사돈은 손을 맞잡고 흔연한 화해에 도달한다. 자식 사랑에 대한 공감대 위에 함께 섬으로써 아무론 부대 조건이나 유보 사항이 없는 화해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