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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0월의 신간 추천 시간이 도래했다.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른다. 9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기억이 희미하다.

 그러고보니 9월엔 남긴 리뷰도 별로 없네.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지 한번 헤아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9월의 신간들을 추천해보려 한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다.

 비록 작품은 접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름은 알고 있다.

 의외로 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있어서 꼭 일본 소설을 이야기 할 때는 그 작가의 '일식' 좋더라며 한 번 읽어보라는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러 서점의 매대 위에서 그의 책을 보노라면 '이 작가가 그토록 유명한 작가였나' 생각하며 한 번 만져보기는 했지만 그게 실제 읽기로는 잘 연결되지 않았는데 그 때는 아무래도 유명세엔 어느정도 허세가 끼어 있겠거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엔 일련의 추천 받은 작가들에 대한 실망의 경험들이 쌓여있기도 했고...

 그러다 문득 이번에 이 작품을 봤다.

 '결괴'라는 제목도 제목이려니와 인간의 악의와 심연을 명징하게 그려낸 소설이라고 하니 요즘 '악'만큼 내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또 없어서 이제라도 한 번 만나볼까 싶어진다. 듣기에 히라노 게이치로는 꽤나 현학적인 작가라는데 그런 작가가 그려내는 악의와 심판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고백한 바 있지만 일본 지식인들의 태도를 한 순간에 바꿔버린, 소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가져온 사건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옴 진리교 사건이다. 저번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Q&A'도 바로 그 옴진리교를 새로운 소설적 상상력으로 다뤘던 작품이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괴'도 바로 그 사건의 자장 안에 있다고 한다. 2008년에 나온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온다 리쿠와 비교해 읽어보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

 

 

  김대현 작가의 '홍도'는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시놉을 읽어보니 아무래도 '홍도야 우지마라'의 그 홍도인 듯 하다. 그런데 그 홍도가 소설에서는 불사(不死)의 몸이다. 현재 그녀의 나이 무려 433살이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자 노래인 홍도이 사연을 가지고 이렇게 불사의 존재가 헤쳐온 이야기로 만들다니.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홍도 그녀의 몸엔 조선과 일본제국강점기 그리고 한국의 현대사가 그대로 체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 역사가 체화된 몸이 여인으로서 살아온 수백 년에 걸친 절망과 이별 그리고 아픔을 이야기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여인 잔혹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노래의 익숙함 속에 쉽게 가리워져 버렸던 그녀의 아픔, 눈물, 목소리... 그렇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아픔과 눈물 그리고 목소리들이 지워지고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읽어보고 싶다.

 

 

 

 증오만큼 지속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분노만큼 오래  간직하기가 힘든 것도 없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분노도, 증오도 오래 가지고 가자면 그만큼 품이 든다.

 그냥 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아궁이가 활활 타오르게 하려면 끊임없이 마른 장작을

  넣어줘야 하듯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내내 시퍼렇게 날이 선 칼로 산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 예리한 칼을 접을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온 것일까?

 이 책의 소개글은 과연 사과의 소설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생경한 풍경을 전해주고 있다.

  도약인가? 전향인가? 그 뚜겅을 열어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이렇게 한 책의 소개글을 쓸 때마다

  정말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은

  내 머리를 사정없이 벅벅 긁는 일이다.

  내가 긴다이치 코스케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쩍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느끼는 요즘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 소설의 자매편인 '요리코를

 위해'가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 것일까?

 정말 아무리 해도 도통 생각이 안 난다.

 완전 백지다.

 

 분명히 읽었고 으음, 괜찮네 까지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이 1의 비극은 그 '요리코를 위해'의

 안티태제와도 같은 소설이라고 한다.

 그러니 읽어보고 싶다.

 내 팔랑귀는 이런 말에 혹하기 마련이다.

 그건 그렇고 기억하는 책보다 잊어버리는 책이 더 많은 것 같다.

 꾸준히 리뷰를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여름의 맛'은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하성란 작가의 소설이다.

 표지의 복숭아가 참 맛나게 보인다. 작가의 이름과 표지에 이끌려

 소개글을 찾아 들어갔는데,

  헉!

  아무런 정보가 없다.

  대신 이런 말만 덩그마니 놓여있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부족하여 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1 상담을 이용해 주십시오.

 

  행여 문지의 직원도 나처럼 연일 술판이라 쓰러지신 건 아닌지 상상하면서 '그렇다면 직접 찾아보지 뭐' 하면서 검색 신공에 들어갔다.

 

 

  언론 보도가 하나 나왔다. 설정이 재밌다. 주인공이 일본의 금각사로 관광을 갔다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발음상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해 은각사를 금각사로 오해하고 찾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반쯤 껍질이 벗겨진 복숭아를 받게 되고 그 때 먹은 복숭아의 맛과 당신은 복숭아를 정말 좋아하게 됩니다라는 남자의 저주의 말 때문에 계속 그 맛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총 10개의 단편은 바로 그 남자의 여정을 하나씩 담고 있는 셈이다.(여기엔 올해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인 '카레 온 더 보더'도 실려 있다.)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이 소설이 감각으로 충만해 있음은 상상할 수 있는 듯 하다. 과연 그 감각들이 어떤 소설적 세계를 만들어갈 지 궁금하다.

 

 얼마전에 읽은 구병모 작가의 '파과'도 과일이라면 과일일 수 있는데 이렇게 과일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작품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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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0-11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라노 게이치로 소설 예전에 <일식> 읽어봤는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 잘 썼다는 말은 들었는데... 자료 조사를 아주 잘해서 썼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달도 읽어봤군요 이번에 나오는 <결괴>는 조금은 알기 쉬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성란 소설 설정이 재미있군요 한번 맛본 복숭아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라니,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겠군요

책을 읽고 써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려요 그래도 글을 남겨두고 나중에 보면 어렴풋이라도 떠올릴 수 있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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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새벽 2시를 넘었다.

 오늘은 지인들과 만나 왕가위의 '일대종사'를 보고 왔다.

 같이 본 이들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좋았기에 지금까지 남은 일도 처리하고 영화의 여운에 빠져 있다가 (뒤풀이 자리에서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해 개탄하느라 정작 영화 이야기는 못했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려하자 문득 오늘이 신간 추천 마지막 날이라는 게 생각났다.

 

 해서 부랴부랴 일단 집계부터 하고 추천 페이퍼를 쓴다.

 아직 모든 분이 다 올려주신 건 아닌데 아무튼 현재까지로는 위화가 단연 앞서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받은 추천수가 무려 10표다. 압도적인 표 차이라 아무래도 1위는 위화의 '제7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화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니 새삼 놀랐다. 2위도 외국 작품이다. 얼마전 부천 영화제에서도 이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상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작품으로 원작도 읽어봤는데 감수성이 뭐랄까 상당히 독특했다. 일단 사물을 독특한 감각으로 인지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읽으면 '청춘'이랄까, 그런게 좀 물씬 느껴지는데 그래서 인상 깊었다. 이번에 소개된 '누구'는 그에게 최연소 나오키 수상작가라는 타이틀을 준 작품이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내놓은 작품마다 잇달아 상을 받았으니 꽤나 상복이 있는 작가이다.

 

 위화의 '제7일'도, 아사이 료의 '누구'도 가지고 있다. 둘 다 되면, 으으음...

 

 그렇다고 해서 이번의 추천 페이퍼가 거기에 영향 받은 건 아니다. 원래 추석 연휴도 있고 하니 이번 추천은 좀 가볍게 나가려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장르물로만 채우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검색 도중 편혜영 작가의 소설이 눈에 띄었다. '옷!' 이건 또 빼먹으면 안되지. 이번 추천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실제 보니 표지가 아주 멋졌다.

 그래서 더욱 읽고 싶은,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 그 세번째로 소개되는 작품,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는 이전에 모두 두 편이 나왔는데 요시키 시리즈를 열었던 해문에서 나온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세작품 모두 공통점이 있다. 사건이 언제나 열차를 중심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북의 유즈르'는 '유즈로 호'라는 열차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시간도 마침 설 연휴이다. 그래서 추석 연휴때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읽으면 더 안성마춤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순수하게 본격의 재미를 추구한, 그래서 가볍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니 더더욱.

 

 

  이번 신간평가단에 만일 장르물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다면 꼭 올라오지 않을까 했었던 두 작품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래리 니븐의 '링월드'였고

 또 하나는 이 '시간의 습속'이었다. '링월드'는 뭐, SF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다 알만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헌책방을 떠돌게 만들었던 책이고 '시간의 습속'은 그 유명한 '점과 선'의 후속편이기 때문이다. 도리카이 주타로와 미하라 가이치가 다시 한 번 재회한다고 한다니. '점과 선'을 읽었다면 안 읽을 수 없는 작품이라는 말씀. 그런데 으음, '링월드'는 겨우 한 표. '시간의 습속'은 '두 표'다.

 예상이 이렇게 거침없이 빗나가니까 세상이 더욱 재밌어지는지도...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로 소개되었던 유시 아들레르 올센이 같은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코펜하겐(올센은 덴마크 작가다.) 경찰서에서 미결 사건만을 담당하는 특별 수사반 Q가 이번에는 20년전에 한 여름 별장에서 일어난 오누이 살해 사건을 맡는다. 이미 재판까지 끝나 범인이 곧 출소마저 앞두고 있는 종결된 사건인데 한 익명의 제보자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온 것이다. 단독범이 아닌 여럿이 한 공동정범이 있다는 것을...

 그런데 거기에 연루되었다고 알려온 사람들 모두 재판받은 범인을 제외하고는 현재 덴마크의 사회 지배 계층이 되어 있다. 당연히 수사를 재개하자 온갖 외압들이 들어온다. 이제 수사관이 싸워야 하는 것은 사회다. 비슷한 도살자들을 사회 지배 계층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수사관들의 싸움을 그래서 더욱 와 닿을지 모르겠다. 부디 통쾌한 이야기가 되어주길 빈다. 마음껏 대리만족이라도 해 보게.

 

 

  잭 리처의 인기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인 것일까?

  아직 한 표도 얻지 못했다. 혹 다들 가지고 계셔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도 가지고 있는 책은 추천 페이퍼에 올리지 않으니까. 하하...

  그래서 사실 최고의 추천작이라 할만한 윌리엄 렌데이의 '제이컵을 위하여'도 뺐다. 링월드도 마찬가지고. 딴 이야기만 계속 했는데 아무튼 일단 출간되면 보지 않을 수 없는 잭 리처 시리즈. 원티드 맨도 좋다고 하니 역시나 읽어보고 싶다.

 

 

 

 

 

 

 

 

 

 편혜영의 네번째 소설집이다.

 2010년부터 2013년 최근까지 발표된 작품을 묶었다고 한다.

 저마다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그렇게 속에 '밤'을 품고 사는 여덟 명의 이야기다. 그 밤이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지나가고 있을 것일까? 아니, 어떻게 지나가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런 대답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여 읽고 싶게 만든다. 그러면 조금쯤 내 마음에 자리한 이 밤도 내어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소설 중 일부는 3.11에 빚졌다고 하고 있는데 그 편혜영에 보여진 3.11은 또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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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9-12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는 책이 되면... 아쉽겠습니다^^
표가 많은 책이 되는 것인가요 표와는 상관없기도 한가요
요시키 형사의 세번째 이야기, 요시키가 나오는 것은 거의 열차가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것도 나온다면...^^ '점과 선'도 열차와 관계 있는 거였죠,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형사가 같은 사람이군요

'도살자들' 제목은 좀 무섭기도 합니다 앞에 나온 Q는 특별수사반을 나타내는 거였군요 통쾌할지, 어떨지...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말이 멋있습니다 찻잔 속에서 나올 수 있을지... 우리나라 작가인데 3.11에 빚을 졌다니, 어떤 밤이 지나고 있을지... 이름은 아는 작가인데 책은 한권도 못 본 것 같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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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데 아파트 관리소에서 긴급 방송이 흘러나온다.

  "아파트 전기 관리부입니다. 지금 당장 에어콘 사용을 중지해 주세요. 전력이 과부하 상태입니다. 위험합니다. 당장 에어콘을 꺼주세요."

  몇 번이나 말한다. 에어콘을 꺼달라고...

 

  오늘의 현실도 이런 절박한 경고가 필요한 것 같다.

  특히나 UPPER CLASS들에게...

  그들의 탐욕, 독선, 거짓과 협잡 그리고 오만으로

  시스템이 잔뜩 과부하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들끓고

  과부화된 시스템은 그 하중을 견뎌낼 여력이 없다.

  이러다 곧 블랙 아웃이 올지 모른다.

 

  이번의 신간 추천은 특히나 그런 경고를 담은 작품들을 골라본다.

 

 

 

 피에르 르메트르가 돌아왔다. 

 이미 신간평가단으로 두 번이나 만나본 작가이기도 하다.

 그간 소개된 '알렉스'와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는

 그가 현재 생존하는 유럽 스릴러 작가들 중에서 재미와 깊이

 두 마리 토끼를 가장 잘 잡고 있는 작가로 여기게 해 주었다.

 그는 특히 동시대의 현안들을 스릴러로 잘 버무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래서 더욱 이번에 나온

 '실업자'에게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현재 전 지구를 뒤덮고 있는 가장 불길한 그림자는 '실업자'이다.

 해마다 높아지는 실업률, 그만큼 더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는

곳곳에서 갈등의 폭발을 불러 일으키는 뇌관이 되고 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실업자'는 바로 그 시한 폭탄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그것도 정면으로.

이 소설은 유럽미스터리소설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 심사평이 인상적이다.

"직장인들이 겪는 절망과 위기감,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잔혹하고 지독하게 묘사해냈다" "소름끼치는 것은 주인공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데 앞서 만났던 두 작품에서 르메트르의 심리 묘사가 얼마나 치밀한지 여실히 맛보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이 작품에 더욱 큰 기대를 가지게 한다.

 어쩌면 피에르 르메트르가 보내는 절박한 경고일지도 모를 이 소설을 다시금 만나고 싶다.

 

 

 신간평가단 파트장이 하는 일중 하나는 월초에 이루어지는 신간 추천을 집계하는 일이다. 이 페이퍼를 쓰기 전에 이미 한 번 집계를 내봤는데 한국 문학쪽에선 유독 두 작품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나는 구병모 작가의 '파과'이고

 다른 하나는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두 소설엔 공통점이 있다. '파과'는 60대의 여성 청부살인업자를 다룬 이야기이고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은퇴한 연쇄살인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구나 그 처지 역시 비슷하다. '파과'의 여성 청부살인업자는 한 때 킬러계의 대모라고 불리었으나 지금은 제목 그래도 남들에게 팔 수 없는 '파과'의 존재이고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 역시 알츠하이머로 전성기 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다. 노쇠와 결함으로 전성기 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한국 자체의 알레고리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론 이건 이번 대선으로 전면에 드러난 이 땅의 50대 이상에 대한 조롱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 아무튼 동시에 이렇게 연쇄살인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게 내겐 심상치 않게 보인다. 딱히 팔릴만한 이야기라서 나온 건 결코 아니다. 생각해보면 징후는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니까 MB 이후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맹공으로 부터 우리의 살이가 심각하게 격침당한 뒤로 한국 문학은 과격한 경향을 때때로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제 여유롭게 사회의 현실을 담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때부터 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의 단면을 문학이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왔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보자면 현 시대의 소통법이란 폭력이고 생존법은 살인이니까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두 작품 모두가 다 내 관심 대상이다. 이미 '파과'는 가지고 있기에 이번 신간 추천에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올린다. 

 

 

 새로나온 책 리스트에서 '개의 심장'을 봤을 때,

 난 이 책이 가장 압도적인 추천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헌책방을 뒤지면서 오매불망 찾았던 책,

 그토록 새로 발간되기를 기다렸던 책 중 하나였으니까.

 (설마, 나만 목빠지게 기다린 건 아니겠지?...)

 

 예상만큼의 추천수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현재 순위가 4위니

 역시나 나만큼 이 책을 기다린다는 사람들이 있었던 셈이다.

 아무튼 미하일 불가꼬프의 이 걸작은 개에게 사람의 생식기와 뇌를 이식한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개가 점점 사람으로 각성하는가 싶더니 나중에 가서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나섬으로써 갈등을 일으킨다.

 

 개에게 사람의 생식기와 두뇌를 이식한다는 것은 이념 주입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고 그 개가 사람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서 대립관계가 되는 것은 혁명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작품을 통해 늘 소비에트 사회를 풍자함으로써 독재로 나아가는 사회에 경고를 보냈던 그이니만큼 이 작품엔 어떤 그의 목소리가 투영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전부터 가장 보고 싶었던 책이니 당연 추천이다.

 

 

 현재 집계에서 외국문학쪽 선두는 바로 이 책이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여름, 거짓말'

 시공사에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데 이 책은 '사랑의 도피'에 이은 두번째 단편집이다. 개인적으로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장편보다 단편을 더 좋아한다. 어떤 평론가는 그를 두고 '감정의 고고학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오랜 시간 내재해온 인간 보편의 감정들을 잘 파헤치고 복원해낸다는 의미다. 난 그런 섬세한 발굴과 복원의 붓 터치가 단편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느낀다.

 그래서 단편을 더 좋아한다. 아직 국내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은 단편들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러므로 당연히 관심 대상이다. 앞서 말한 그 인간 보편의 감정들 중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이 대표적으로 형상화하는 건 죄와 책임에 대한 것이다. 사실 그의 소설들은 바로 그것을 중심으로 늘 공전하는 궤도라 할 수 있다. 그는 아주 어릴 때 소포클레스의 '오디이푸스'를 감명깊게 읽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범 국가 독일인이라면 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감각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시점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 좀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시대란 죄는 있으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무리들로 가득한 시대가 아닌가.

 일본의 아베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저 UPPER CLASS들 하며...

 남들에겐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만 예외가 되려는 존재들을 칸트는 '악마'라고 단적으로 정의내렸다. 정말 그런 악마들이 너무나도 많이 출몰하는 세상이다. 참으로 진저리날 정도로...

 이런 시대적 상황이 다시 한 번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들을 호출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읽고 싶다.

 

 여기까지 저녁에 썼고

 지금은,

 

 새벽 세시가 좀 넘었다.

 덥고 덥고 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내가 앉은 의자의 절반을 고양이가 누워서 차지하고 있다.

 지금 난 엉덩이를 거의 의자에 살짝 걸친 채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까부터 계속 자판 위로 돌아다녀서 쓸 수 없게 만들더니

 (제발 손가락은 깨물지마! 발가락도!...)

 이제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포즈로 글을 쓰게 하는구나...

 

 다시 신간평가단 활동이 시작되었다.

 늘 시작할 땐 이번엔 진짜 제대로 활동해보자 마음먹는데

 끝날 때 되새겨보면 항상 도루묵이었던 것 같다.

 이번엔 그렇게 안되도록 좀 채찍질을 매섭게 가해봐야겠다.

 

 

 아무튼 13기 소설 신간평가단 여러분들 정말 반갑고 환영합니다.

 앞으로 더불어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 마음으로 노래 하나를 선물할까 합니다.

 좀 오래된 밴드인 RENAISSANCE의 'CLOSER THAN YESTERDAY'란 노래입니다.

 

 

 

As morning leaves the night
Opening my eyes
I feel that you are close to me
And yet your heart is time away
But I can't hold a dream
That sleeps within my yesterdays
And so coming very close now
I see my destiny
Is to make you part of me
And to hope that you might be
Pure and free

[Chorus:]
Leave memories on the wind
To spend moments in endless flight
Held over by all you mean
I feel you nearer the darkest night
Closer now, than yesterday

Hoping for a chance
To find you loving me
In the distance searching there I'll be
In time

you may come to me
To fall into the world
That once we left so far behind
To learn

with each passing moment
As tomorrow comes for me
In the shadow of my life
For eternity to find
The light I see

 

[Refrain]

Make believe, Life is just a story.

you may live in wonder,

Of all that's been before

You are all, all that I believe in,

All I really need,

Inside for ever more.

 

 가사에 나오듯이

 이 신간평가단 활동을 통해 인생의 그늘에서 영원히 찾아 다니던

 그 빛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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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달부터 망가진 몸에다 5월은 정말 여러모로 바쁜 일들이 겹쳐서 정말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6월은 어떻게든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고 마음먹고 있었죠. 마침 현충일과 주말 사이에 샌드위치 데이도 끼어있더군요. 그래서 요 시간을 무조건 활용하기로 했지요.

 

 그러다 비채 카페에서 나냥님이 올리신 이벤트 글을 봤습니다.

 이번에 나온 한승원 작가님의 신작 '겨울잠, 봄꿈'을 기념하여 마련된,

 

 '한승원 작가와 함께 하는 역사의 현장 걷기' 이벤트 !!

 

 

 


 

 

이번에 나온, '겨울잠, 봄꿈'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되고 처형되기까지의 마지막 나날들을 다룬 작품이죠. 

 

 

 

 오래전 부터 꼭 한 번 가봐야지 했었던,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 정읍이 답사의 대상이더군요.

 거기다, 날짜도 6월 7일!

 

 오호! 머릿속에서 왠지 저 위로부터 신탁이 내려오는 것 같았어요. '놓치지 말라'는.

 그대로 예스24로 '슝'하고 달려가 신청을 했고, 과연 의식 속에 둔중이 울렸던 그 울림은 역시나 신탁이었던지 덜커덕 당첨되고 말았습니다.

 해서, '룰루랄라~' 드디어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만 먹고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남역으로 아침 7시 30분까지 모이기로 되어 있는지라 저는 6시에 출발했습니다. 전날 새벽에 잠이 든 탓에 혹시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서 알람까지 맞춰놓고 잤는데 왠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버리더군요. 어찌, 이런 일이! 이런 일은 여간해선 제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 역시 그것은 신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또 잠깐 했습니다.

 

 좀 일찍 갔는데도 오늘 스텝으로 오신 분이 벌써부터 나와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처음엔 스텝인지 몰랐습니다. 적어도 대학원생처럼 보이셔서 같이 답사가는 일행으로만 생각했죠. 하하^ ^ 그렇게 오늘 함께 가시는 분들이 하나 둘 모이고 버스는 8시 좀 넘어서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한 세 시간 정도 밖에 못 잔터라 버스에서는 휴게소 잠깐 갔다온 거 말고는 거의 졸았기 때문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정읍에 와 있더군요. 처음 온 정읍은 일요일의 학교 운동장처럼 조용하고 차분해 보였으며 어디로든 활짝 열려 있는 풍경 때문에 왠지 느릿한 거북이의 걸음이 연상될 정도로 넘치는 여유로움마저 물씬 느껴지더군요. 바로 이 곳에서 구한말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생명력으로 활활 타올랐던 동학농민혁명이 태어났다니! 어쩐지 새삼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정읍에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송참봉 조선 동네'라는 곳이었습니다.

 아, 동학농민혁명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것이었죠. '금강산도 식후경'은 황금률이니까요^ ^

 저는 몰랐지만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1박 2일팀도 다녀가고 런닝맨도 거기서 촬영했다고. 송참봉이라는 분이(물론 실명은 아니에요.) 그의 조부모를 기리기 위해 당신들이 살았던 당시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대지 만여평 정도를 구입해 각지의 옛날 물건들을 모아 조성한 곳이라더군요. 그렇게 초가집 여러 채와 지금은 흔히 볼 수 없는 옛 물건들이 가득한 그 곳은 마치 옛날의 마을이 현재로 타임 슬립한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그 대략적인 모습이에요.

 

 


  이렇게 각 초가집마다 문패가 하나씩 붙어있더군요. 그래서 더욱 한 마을 같았습니다.

 



 우웃! 지게... 오랜만에 보네요^ ^

 


 

 


 이것 저것 많이 찍은 것은ㅠ ㅠ,

예정된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한동안 기다려야했기 때문이에요.

혼자 간 터라 별 다른 할일이 없는 저는 이렇게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시간을 떼워야했죠. 하하하^ ^

 

 

  그렇게 한동안 싸돌아 다니다 보니 오늘의 주인공 한승원 선생님께서도 어느덧 도착하시고 드디어 비채가 통크게 쓴 점심도 먹게 되었죠. 전라도 하면 역시나 넘치는 반찬의 갯수가 떠오르는데 거기도 그랬습니다. 찬거리가 정말 많더군요. 나중에 운영하는 송참봉 주인도 오셨는데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한 번 밥을 먹을 때 반찬도 한 꺼번에 입에 많이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밥을 먹으며 말을 할 수 없었던 거라 농을 하시더군요. 입담이 좋은 재미있으신 분이었습니다.^ ^

 

  이제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동학농민혁명 답사를 할 차례...

 보다 내실있는 답사를 위해 정읍시청에서 담당자분께서도 오셨습니다. 정읍시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로써 이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 발전과 계승을 위해 아예 따로이 전담 부서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오신분은 그 부서에 계신 분이었습니다.(성함과 직위는 제가 잘 못들어서 자세히는 말 못하겠네요. ㅠ ㅠ) 그 분이 오늘 저희들과 함께 다니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더 자세하고도 충실한 설명을 해 주신다고 하더군요. 오늘의 답사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이 분이 그 담당자분입니다. 정말 하나하나를 아주 자세히 열의있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가장 처음 들른 곳은 바로 '동학혁명 모의탑'

 동학농민혁명을 처음 의논하고 사발통문을 작성한 곳으로 그야말로 동학농민혁명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이었죠. 그 곳이 바로 '대뫼마을'이라는 곳인데 지금은 '주산마을'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답니다. 대뫼란 말 그대로 '대나무 산'이란 뜻으로 원래 이 마을에는 산처럼 많은 대나무가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지금은 다 사라져 그 정경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대뫼'란 예쁜 우리 말을 두고 '주산'이라는 이상한 명칭으로 바뀌게 된 것은 일제시대 때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담당자 분께서 이 사실을 설명하시면서 참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아무튼 바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이 바로 '동학혁명모의탑' 입니다.

 

  바로 이 탑입니다.

 

 

 지금은 '동학농민혁명'이 정식 명칭인데 이 탑에는 '농민'이란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이 탑은 1968년에 사발통문의 후손들이 사비를 털어 세운 탑인데, 그 때는 '동학혁명'만이 정식 명칭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정식 명칭이 된 것은 2004년이었죠.

 

 

  나머지 탑의 삼면에 이렇게 사발통문이 새겨져 있더군요. 

 

 

  바로 이 곳이 1893년 1월, 동학농민혁명을 도모하고 사발통문을 작성한 역사적 현장입니다. 지금은 개인 소유의 집이 된 터라 옛 자취는 남아있지 않지만요...



  이 집이 사발통문을 작성한 곳임을 알려주는 그 집 앞에 있는 안내판.

사발통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어 담아봤습니다. 

 

 역사적 현장들이 동네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가기 위해서는 동네를 가로질러 가야 했습니다. 가끔씩 컹컹 개 짓는 소리를 들으며 낮은 담장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대낮의 한적한 동네길을 삼삼오오 모여서 걸어가노라니 어쩐지 소풍 가는 듯한 기분도 들더군요.^ ^ 

 

 그렇게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역시나 같은 대뫼 마을에 있는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입니다.

 


  여기가 바로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입니다.

 

 이름없이 산화한 무명의 동학 농민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시민단체가 3년 동안(94 ~ 97) 주관하여 세워진 탑입니다. 계획하고 세우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만큼 무명동학혁명농민군을 기리기 위한 그 뜻이 제대로 들어가 있습니다.(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나중에 보게 될 황토현 전적기 기념관의 차이 때문입니다.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은 당시 한 대통령에 뜻에 따라 급조 되었는데, 그로 인해 기념하려고 하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탓에 잘못 형상화하여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그 때 가서...)

 

 

 

 

 


  보시다시피 왼쪽(위)에서 오른쪽(아래)까지 무명 동학 농민군을 기리기 위한 탑들이 이렇게 조밀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보통의 위령탑 하면 높기 마련인데 여기의 위령탑들은 보시다시피 조금도 높지 않습니다. 담당자분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하나의 평등한 개체라는 걸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대개 위령탑들은 그 영웅됨을 과시하기 위하여 웅장하게 세우는 법입니다만 여기의 탑들은 그 영웅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여기 이름없이 묻힌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같이 그저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고 한끼 밥을 위해 하루종일 노동을 해야했던 보통의 평범한 한 사람이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승원 선생님의 '겨울잠, 봄꿈' 에서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던 것도 한 끼 밥을 위해서였죠. 왜 봉기를 일으켰느냐는 이토 겐지의 질문에 전봉준은 어릴 때 침묻은 강정 때문에 자신과 아버지가 겪었던 고초를 기억해 내고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짓습니다.

 '부잣집의 높은 문턱과 그 부잣집의 맵고 짠 밥 때문에 봉기를 한 것이다!(p. 88)'라고. 

 

 그렇게 이 한 그릇에 담긴 밥은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전봉준은 기꺼이 형장의 이슬이 되기 위해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 한 끼 밥의 소중함을 우습게 알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빼앗으려 드는 위정자들에게 바로 이렇게 외치기 위함입니다.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밥을 만들려고 산다. 밥을 쟁취하려고 싸운다.

더러운 밥이 있고, 깨끗한 밥이 있고, 떳떳한 밥이 있고, 부끄러운 밥이 있다. 내가 일어선 것, 고부 사람들이 관아로 몰려가 사또에게 대든 것, 아버지가 사람들의 소두로서 항거하다가 곤장을 맞고 장독으로 죽은 것, 호남 일대의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 선 것이 다 이 밥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조선에 들어온 것도 조선 사람의 밥을 빼앗아 가려고 온 것이다.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그 슬픈 밥에 대하여 모두 말하고 나서 죽어야 한다.(p. 216)

 

 어쩐지 저 한 그릇의 밥이 새겨진 위령탑을 보고 있으려니 그렇게 울부짖었던 전봉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담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위령탑을 뒤로 하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전봉준의 고택.

 태어난 집이 아니라 그가 어릴 때 부터 봉기할 때까지 내내 살았던 집입니다.

 

 

 

 사진은 그 고택으로 가는 초입에 있는 길입니다.

 왠지 소설 속 한 장면이 생각나서 담게 되었습니다. 바로 위에서 전봉준이 말했던 그 '밥'의 의미와 얽혀있는 일화입니다. 전봉준이 그토록 밥의 소중함을 깨달은 계기이기도 하죠.

 

 언젠가 전봉준은 굶는 가족들을 위해 어렵게 변통한 보릿자루를 가지고 돌아가다가 길에서 강도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 강도는 그냥 나쁜 강도가 아닌 너무나 굶어서 부황에 걸려있는 불쌍한 자식들을 위해 강도짓을 해서라도 먹이고 싶은 불쌍한 가장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전봉준은 그에게 가지고 있는 보릿쌀 반을 나누어 주고 가는데 또 한 명의 그와 비슷한 처지의 강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모두가 한 끼 밥이 없어서 처절한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 그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한 끼 밥이야 말로 바로 하늘인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 일이 어쩌면 바로 이 길에서 일어난 일이지 않을까 싶어서 담아 봤습니다.


 전봉준의 고택으로 가고 있어서 그런지 이번 한승원 선생님의 '겨울잠, 봄꿈' 이 지금까지 나온 동학 소재의 소설과는 다르게 무엇보다 전봉준 개인의 내면에만 천착하여 혁명가로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내려 했다는 점이 더욱 떠오르더군요.

 

 사실, 한승원 선생님이 가는 도중의 버스에서 직접 밝히시기도 하셨죠. 당신은 이번 작품에서 최대한 전봉준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데 중점을 두셨다고. 그래서 소피를 보지 못함으로 인한 안절부절,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벼룩 같은 것의 물림에 대한 귀찮음 등등 혁명가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면 도려내 버렸을 그러한 하잘 것 없는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전봉준의 모습을 우리는 이 소설에서 참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겨울잠, 봄꿈'에 와서 비로소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작품이 한승원 선생님이 동학에 대해 처음으로 쓰신 것도 아니죠. 버스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이 전봉준에 관한 '겨울잠, 봄꿈'의 이야기는 일전에 나온 작품에서 전봉준 이야기만 빠뜨린 것에 어떤 부채감 비슷한 마음에서 쓰여진 것입니다.(이제부터는 존칭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바로 그 전작이 1994년에 나온 '동학제'라는 소설입니다. 발간 연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갑오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것입니다. 고려원 출판사에서 모두 7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동학을 다룬 작품이 10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송기숙의 '녹두장군'입니다. 공교롭게도 송기숙과 한승원은 고향이 같습니다. 모두 장흥 출신입니다. 얼마전 타계한 이청준도 같은 장흥 출신이죠. 아마도 그래서 동학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칠 수 업었을 것입니다. 장흥은 전봉준과 같은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된 후 다시금 동학 농민 3만명이 모여 항전을 계속하다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었던 동학농민혁명전쟁사상 최대이자 최후의 격전지였으니까요. 그 '석대들' 벌판에 깊이 새겨진 역사적 상흔이 있는만큼 동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송기숙과 한승원이 보여주는 동학의 모습은 많이 달랐습니다. 송기숙은 동학농민혁명의 그 혁명적 모습에 더 중점을 두고 보여주려 한 반면, 한승원은 동학도 그저 보통 사람들의 삶이었음을 보여주려는 듯,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죠. 그건 제목에서 부터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한승원은 이미 제목에 제사를 나타내는 '제'를 써놓고 있으니까요. '제'는 그가 태어난 어촌에서 늘 행해지는 것입니다. 거기엔 풍어와 무사귀한을 바라는 모든 인간적인 간구들이 집약되어 있지요. 그렇게 '동학제'는 인간들의 애욕, 욕망들을 한껏 보여주었습니다. 겁간이 나오고 불륜이 나오며 관능이 나옵니다. 그러한 모습은 전봉준이나 김개남 같은 지도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죠. 그렇게 한승원은 역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숨겨진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그들이 삶에 대한 강한 집착, 애욕이야말로 그들의 생생한 생명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도 '음식남녀', 즉 성욕과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 말한 바 있죠. 제가 보기에 한승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것. 그것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인간다움, 그 생생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입니다. '겨울잠, 봄꿈'에서 전봉준이 그토록 강조하는 '밥'은 아마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겨울잠, 봄꿈'은 사실 '동학제'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승원의 생각은 동학 사상에 비추어봐도 그렇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동학은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한울님'으로 저마다 모두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또한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 또한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답사 후기에 어울리지 않게 객쩍은 소리를 많이도 늘어놓았습니다만, 왠지 전봉준의 고택에 간다고 하니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전봉준의 고택에 도착했습니다.


 

 

 고택의 외관입니다. 제가 가지고 간 게 단렌즈라서 마당에서는 집을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깥으로 나와 담았습니다. 저렇게 토담이 둘러싼 집에는 보는 방향에서 가장 오른 쪽에 부엌 하나가 있으며 그 왼쪽으로 방이 세 개 있습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방에 전봉준의 사진이 걸려있고 책상이 있는 걸 보면 아마도 그 방이 전봉준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책을 읽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한 날로 심해지는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을 개탄했을 것이며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어떻게 하면 도탄에 빠진 농민들의 삶을 구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원래는 마당도 작은 그야말로 평범한 농민의 집인데 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옆의 대지를 사서 잔디밭을 조성해 놓아 첫인상은 꽤나 부유해 보입니다. 관람자가 많으니 그 편의를 위해서일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더군요.

 

 

 사진은 바로 그 잔디밭에서 찍은 고택의 모습입니다. 맞은 편에는 마침 딸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계시는 한승원 선생님이 서 계셨습니다. 어쩌면 한 강 작가에게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려 한 것 같습니다. 담당자 분이 초가 지붕을 때마다 갈아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몇 겹이나 쌓여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거기서 전봉준의 삶을 들었습니다. 원래 농촌은 배척 성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타관살이 하기가 사실은 매우 힘들다고 하는군요. 전봉준도 타관살이였습니다. 아버지 때 다른 고장에서 여기로 이사온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봉준 가족은 전혀 그런 배척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그런 경우는 타관 살이하는 사람의 인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라는군요. 그것으로 우리는 전봉준의 아버지와 전봉준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을 지녔는지 유추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고택의 뒷쪽 모습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전봉준이 사랑했던 아내가 아마도 가장 많이 이 뒷편을 걸었겠죠?

 

 고택의 바깥에는 전봉준이 생전에 길어다 마셨던 우물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택의 맞은편에도 역시 초가집이 있는데 이 고택보다 크고 깔끔해서 처음엔 그게 전봉준의 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니더군요. 그 초가집은 고택을 관리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고택의 답사를 마친 다음, 우리들은 다음 목적지 '만석보터'를 찾아 떠났습니다.
 


  여기가 바로 '만석보터'입니다.

 


   이것은 만석보를 기리는 비석입니다. '만석보 유지비'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비문은 강암 송성룡이 썼는데 왜 '지비'가 아니고 '유지비'를 썼을까 혹 의문이 들지 않나요? 그 해답은 바로 이 비석 옆에 있는 안내판에 나와 있습니다. 그 이름이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한 것이라서 사진도 올리지 않습니다만 아무튼 '만석보유지비'에서 '유'자와 '비'자를 빼고 읽으면 바로 그 안내판에 쓰여져 있는 이름이 됩니다. 그런 이유로 강암 송성룡은 특별히 '유'자를 넣은 것이죠. 그냥 '터'를 넣어도 될텐데 왜 굳이 '지'를 넣어 이렇게 공개적으로 발음하기 어렵게 만든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담당자 분께서도 그 안내판을 맡았던 직원에게 왜 그렇게 썼냐고 물어보셨다고 하는데 그냥 아무 이유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합니다. 행정편이주의가 드러나는 씁쓸한 사례죠.

 

 아무튼. 이 만석보가 동학농민혁명 답사 코스 중 하나가 된 것은 바로 이 만석보가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을 당기는데 일조를 했기 때문입니다.  만석보는 배들평야(현재 명칭은 이평)로 들어오는 두 개의 큰 하천, 그러니까 동진천과 정읍천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이 만석보를 만든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원흉 조병갑인데 아시다시피 '보'를 만드려면 농민들에게 부역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에 그는 몇 년치 물세를 탕감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부역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기꺼이 부역에 나섰는데 '보'가 완성되자마자 조병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물세를 거두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될 부역은 부역대로 하고 물세 또한 저번 보다 더 많이 받으니 농민들이 가만있을리 없죠. 결국 이 만석보의 만행으로 인해 농민들은 봉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진은 만석보유지비 맞은 편에 있는 배들평야의 모습입니다. 보시는대로 정말 광활하죠. 이렇게 넓은 평야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들바람이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사실 그 날은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이미 만석보터에 이를 때만 해도 저마다 지쳐있었죠. 하지만 만석보터의 시원한 들바람 덕분에 더위로 인해 몸에 달라붙은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는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모르실 것입니다. 담당자님도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여기에만 오면 피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겨울에는 정말 오기 싫은 곳 중에 하나라고. 별다른 뒷말이 없었어도 이내 그 이유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만한 바람이 겨울에 불면 그것은 그대로 재앙에 다름아니겠죠. 

 

 

 그렇게 만석보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마음껏 만끽한 다음 우리들은 다음 목적지로 떠났습니다.


'만석보터'를 지나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바로 말목장터였습니다.

만석보터에서 말목장터까지는 그리 멀지 않더군요. 하지만 담당자 분이 없었다면 정말 찾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말목장터에는 이렇게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말목장터'임을 알려주는 요 안내판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죠. 제가 듣기엔 여기에는 원래 두 가지가 더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동학혁명의 최초 시발점으로써 전봉준이 말목장터에서 일장 연설을 할 때 그 옆에 있었던 감나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세웠던 '말목정'이라는 정자죠. 하지만 이제 그 두가지는 없었습니다. 감나무는 지난 태풍에 쓰러져 결국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옮겨졌고 '말목정'은 농민이 주축이 된 혁명에 양반 문화의 소산인 정자로 기념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라는 비판에 철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렿게 말목장터임을 알려주는 안내판만 남게 된 것이죠. 이 말목장터는 아시다시피 동학농민혁명의 최초 집결지로 그 불길이 처음으로 타올랐던 곳입니다. 말목장터는 부안, 정읍 그리고 태인으로 모두 갈 수 있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그야말로 사통팔달 지역으로 근방에선 가장 큰 장터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기엔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죠. 여기서 1894년 혹한의 1월. 전봉준은 봉기를 촉발시키는 연설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역시나 조병갑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조병갑은 고부군수로써의 임기를 다하고 익산군수로 발령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도 드디어 학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배들평야와 같은 너른 평야가 있어 익산 보다는 빼앗아 먹을 것이 더 많다고 여긴 조병갑은 익산으로의 부임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로비와 획책으로 고부로 부임한 신임군수마저 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다시 고부 군수 자리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제 겨우 빛이 보이는가 했는데 다시금 암흑을 마주하는 것만큼 분노하게 되는 일도 없죠. 더구나 그것이 오로지 불법 로비와 허용되지 않는 꼼수 때문이라면 더욱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동학 혁명의 불길은 그렇게 당겨졌던 것입니다. 먼저 바꾸기를 염원해서가 아닌, 상황자체가 혁명이 아니고서는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동학농민혁명은 말목장터의 도화선을 타고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해 갔습니다. 그리고 관군과 맞서 최초의 대승리를 이루어냅니다. 그 곳이 바로 '황토현'입니다. 한자로 하면 도대체 이 곳이 어떤 곳인지 감이 잘 안 오는데 순 우리말로 풀어보면 여기서 '현'이란 '재'의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이르는 말인 것이죠. 황토현이라 부르지 말고 황토재 혹은 황토고개라고 하면 더 의미가 확실히 전달될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렇게 한자말로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사실 '배들평야'도 지금 공식 행정구역 명칭은 '이평'입니다. 뜻을 알고 보면 정말 웃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평'을 풀이하자면 배나무가 많은 평야란 뜻이 됩니다. 하지만 저번 사진에서도 보셨듯이 거기엔 배나무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배들평야'란 원래의 이름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배들평야란 배가 드나드는 평야란 뜻인데 일제 시대 당시 이 행정 구역 이름을 담당했던 사람은 그걸 단순히 배라는 과일이 나오는 평야로 생각했던 것이죠. 그래서 배나무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평'이란 이름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더구나 지금까지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구요. 사정을 알고나면 코미디가 따로 없는 셈이죠. '만석보터'가 차마 이름을 공공연히 부를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배들평야'와 '이평'과의 관계는 사실 동학농민혁명운동을 기념하는 사업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래의 의미를 되살려 기리는 작업이 아닌 그저 어떤 정권의 기호에 따라 급조되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그 본래적 의미를 흐리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바로 이 '황토현전적지'가 그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황토현 전적지에는 그 승리를 기리기 위하여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황토현 전적지 기념탑이고 또 하나는 거기서 두시 방향으로 내려가면 있는 황툐현전적지기념관입니다. 황토현 전적지 기념탑은 비교적 오래전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963. 10월 3일에 건립되었죠. 동학혁명운동을 기리는 작업이 꽤나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개막 행사엔 당시 대통령 후보로 한창 선거운동 중이던 박정희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웃기는 건, 그 때 전봉준 장군의 친 딸이라고 80 넘은 할머니 한 분이 나와서 꽃다발도 받고 기념 사진도 찍고 했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은 전봉준 사후 3년 뒤에 출생한 분이였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꼼수를 부린 것 같은데 이런 눈가리고 아웅하는 해프닝이 공식적으로 벌어졌다니 요즘에도 많이 보게 되는 모습이기도 해서 어쩐지 침울해 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황토현전적지기념탑은 그런 우여곡절을 안고 지금도 이렇게 서 있습니다.

 

 


 기념탑의 윗 부분 모습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기치였던 '제폭구민 보국안민'이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보'의 한자가 틀렸습니다.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보'자는 지키다의 '보(保))'가 아니라 '돕다'의 보(
輔) 자죠. 서체도 너무 유려해서 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원래 기리고자 하는 동학농민혁명의 분위기와 맞지 않습니다. 탑을 건립할 때 원래 기리고자 하는 것을 그다지 잘 헤아리지 못했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아닐까 합니다.

 



 탑의 아랫부분입니다. 단렌즈로는 전체가 다 안들어가서 할 수 없이 이렇게 나눠서 찍었습니다.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라는 이 탑의 정식 명칭이 저렇게 중앙에 새겨져 있습니다. 

 



  탑의 (보이는 방향으로) 오른쪽에 있었던 황토현 싸움을 나타낸 부조. 그 뒷 부분엔 사진으로는 안 찍었습니다만 '겨울잠, 봄꿈'에도 나오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들이 함께 불렀다는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라는 노래 가사와 전봉준을 기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 가사를 볼 수 있습니다. 황토현은 높은 고개답게 내려다 보는 풍광이 정말 좋습니다. 날이 좋으면 동학농민혁명에서 첫 무장 봉기가 일어났던 장소인 '백산'도 보인다는군요. 그 때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모였는지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겨울잠, 봄꿈'에도 나오는 말이죠. 말인즉슨 당시 농민들이 모두 죽창을(첫 글에 나온 '대뫼마을' 기억하시죠. 그렇게 대나무나 많은 고장이었으니 대나무로 만든 죽창도 많았을 것입니다.)들고 모였는데 그래서 앉으면 손에 들고 있는 대나무 밖에는 안 보인다 해서 '죽산', 서면 입고 있는 흰 무명옷 밖에는 안 보인다 해서 '백산'인 것이죠.

 


  그래도 전체적인 탑의 모습을 담아보자는 생각에 꽤나 멀리까지 가서 간신히 찍은 사진입니다. 마침 한승원 선생님이 걸어오시다 딱 찍히셨네요^ ^

 

 이렇게 기념탑을 둘러보고

2시 방향에 나 있는 길을 따라서 바로 가까이에 있는 '황토현전적지기념관'에 들렀습니다.

 


  그 길로 내려가는 이렇게 기념관의 전경이 나타납니다.

 

  기념탑과는 달리 기념관은 전두환 정권 때 세워졌습니다. 세워지게 된 까닭도 알고보면 좀 기가 막힙니다. 전봉준 장군이 전두환과 같은 천안 전씨라서 사실은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고 싶은 마음에 위의 주도로 만들게 된 것이라더군요. 그러니까 이 기념관은 전적으로 윗분의 기호에 부합하기 위한 관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타나게 된 결과물도 원래 기리고자 하는 동학농민혁명 본래의 뜻과는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한 마디로 '황토현전적지기념관'은 제대로 된 성찰없이 오로지 선전효과만 기대하면서 만들게 되면 얼마나 어이없는 결과물이 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문은 전봉준 동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기념관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문입니다. 이렇게 안에 문 하나를 더 두는 것은 보러 오는 자들이 좀 더 엄숙한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보이는 현판은 이 문을 '보국문'이라 하고 있습니다. 현판의 한자를 보면 기념탑의 한자가 어떻게 틀렸는지 바로 알 수 있죠.


 

 

 

 

  안에 있는 전봉준 장군의 동상입니다. 담당자분의 말씀에 따르면 이 동상도 사실은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장군의 위엄을 나타내는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맨상투를 함으로써 그 위엄을 스스로 깎아버리고 있다는 것이죠. 아무래도 전봉준 장군이 압송되는 그 사진을 모델로 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봉준 장군의 위엄을 기리기 위한 것이 본래의 뜻이었다면 좀 더 숙고해서 격에 맞게끔 형상화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셨습니다.

 

 

  사진은 동상의 뒤에 양쪽으로 서 있는 부조 중 하나를 찍은 것인데 이 부조는 더욱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형상화된 농민들의 모습이 원래 동학농민혁명에 나섰던 농민들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말목장터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동학농민혁명은 절박함 끝에 나온 혁명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조엔 그런 농민들의 고통, 절박함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라인드로 매끄럽게 갈아버린 탓에 농민들이 표정과 모습은 한없이 부드럽기까지 합니다. 유홍준 선생님은 혁명운동이 아니라 '소풍 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는군요. 너무나 그 본래적 의미와는 동떨어진 상태로 형상화된 탓에 '20세기 최대의 문제작'이라고도 하셨답니다.


 


   대뫼마을에 있었던 무명동학농민위령탑에 새겨진 농민들의 얼굴과 비교해 보면 왜 그 부조가 문제인지 제대로 드러납니다. 이 위령탑은 무려 4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세워졌죠. 하지만 이 기념관의 동상과 부조는 한 정권자의 지시로 빠른 기간에 세워졌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차이가 그와 같은 문제점을 낳게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동상과 부조는 그 외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무엇보다 제작자 때문입니다. 김경승이란 사람으로 일제 시대 때 친일 미술인들이 주축이 된 관변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의 입맛에 맞는 미술품을 만들어 온 친일 행적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국회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일본도를 차고 있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동상 역시 김경승의 것이었죠. 동학농민혁명은 무엇보다 항일 운동이었기 때문에  친일 인사가 전봉준 장군의 동상을 만들고 동학농민혁명의 부조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동학농민혁명의 고귀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김경승은 해방 이후 이승만 동상이나 맥아더 동상을 만드는 등 언제나 정권과 친화적 태도를 보여왔는데 이 전봉준 동상도 그간의 그런 이력 때문에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가가 친일 인사인지라 그가 제작한 것은 모두 철거되는 게 옳은 일이지만 이미 한 번 세우는 것을 허물고 다시 세우는 것은 그만큼 재정이 드는 일이어서 이 또한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러한 재정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아무래도 보다 많은 이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주는 수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이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일에 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동상에서 (보이는 쪽으로) 왼 편에 있는 전봉준 장군의 사당입니다. 늘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날은 문이 잠겨져 있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동상에서 물러나 다음으로 들어간 곳은 기념관이었습니다. 기념관을 들어가면 정면에 이렇게 전봉준 장군의 초상화가 있습니다만 이 또한 꽤나 문제가 많은 '문제작'이었습니다. 일단 농민혁명의 주축이었던 사람에게 양반의 모습, 그것도 대감의 모습을 입힌다는 것이 모순이고 표정 또한 너무나 표독스럽게 그려져 있어 과연 이 초상화가 전봉준 장군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미움받도록 하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저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이 초상화에서는 흠모의 마음 보다는 다가가려는 마음을 억지로 붙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이래저래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은 씁슬한 느낌만 가득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안고 기념관 정문을 나오니 바로 그 정면에 저렇게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이 보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기 위해 특별히 설립된 재단에서 만든 것인데 거리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정면입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기념관입니다. 좀 오래 둘러봤는데 정말 내실이 있더군요. 그래서 안내자 없이 정읍에 와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돌아다녀 볼 생각이라면 먼저 이 기념관부터 들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되더군요. 여기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얻고 유적지를 답사한다면 더욱 내실있는 답사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1층엔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할 당시 조선 백성의 실생활을 보여주는 전시장이 있는데, 거기서 망태를 발견했습니다. '겨울잠, 봄꿈'에서 우금치 전투에선 농민들이 불타는 망태를 굴러서 일본군들에게 대항했다길래 도대체 어떻게 생긴 물건일까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을 여기서 풀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1층에 있던 당시 동학농민혁명을 외세는 어떻게 보았는지 그 자료들을 모아놓은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일본 신문들은 동학농민혁명들은 조선을 깨끗이 하려는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들 혹은 배를 뒤집으려고 달려드는 악어들 이렇게 아주 부정적으로만 묘사했더군요.

 


    동학농민혁명기념관 2층에 올라가면 중앙에 둥글게 커다란 그림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동학농민혁명의 전과정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그 중에서 동학농민혁명과정과 관련있는 것들만 발췌해(그러니까 그 큰 그림 중 관련있는 일부분만 찍었다는 이야기죠.) 찍어봤습니다. 지금까지의 답사 과정이기도 해서 함께 하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그림이라서 혹시 저작권이 문제될지도 모르는데 만일 문제가 있다면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1.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탐관오리들의 학정.

 


 


  2. 엎친데 덮친 격, 고부 군수로 부임해 오는 조병갑... 

 

 

 3. 동학농민혁명의 시작, 사발통문...



 
 4. 말목장터에서의 연설...

 


  5. 백산에서의 봉기



 

 6. 황토현에서의 승리... 


 
 7. 전주성 함락...

 

 

 8. 손병희가 이끌던 '북접'과 전봉준이 이끌던 '남접'이 하나되는 순간...

 

 

 9. 우금치 전투에서의 패배.

 

     이 때 동학농민군과 대치했던 일본군은 모두 200명, 관군은 2,500명.

    동학군은 남접이 1만명, 북접이 1만명, 김개남이 이끌던 8천명까지 해서 도합 2만 8천명이었는데 이 전투에서 거의 수만에 가까운 동학농민군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대부분은 기관총에 의한 학살이었다고 합니다.

        

 

 

 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답사 일정은 공식적으로 모두 끝났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말이죠. 기념촬영까지 끝내고서 마지막이 늘 그렇듯이 왠지 모르는 아쉬움을 입가에 조금은 쓸쓸히 머금고 있을 무렵 뜻밗의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비채에서 저녁을 쏘겠다는! 마침 출출할 무렵이라 그 소식은 더욱 반가웠고 벌써 예약까지 되어있다는 식당으로 우리는 '슝~'하고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저는 육회 비빔밥을 먹었는데 비빔밥만 나오지 않고 여럿이서 같이 떠먹을 수 있도록 세수대야 같은 커다란 그릇에 미역국까지 같이 나오더군요.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

 


 

 나중에 들었는데 오늘 갓 잡은 소로 만들었다는 육회비빔밥도 맛있었지만 미역국이 정말로 환상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숟가락이 자꾸만 미역국을 향하더군요. 알고보니 오늘 답사를 담당하셨던 분이 소개해주신 식당이라더군요. 과연, 그래서 맛이 좋을 수 밖에 없었던 걸까요. 아무튼 모두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는 이번 답사의 화룡정점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그런데 그 식당 이름을 미처 뇌리에 새겨두지 못했습니다. 흑 ㅠ ㅠ)

 

  이렇게 유월의 초입을 뜻깊은 시간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동학농민혁명 답사를 마쳤습니다. 더러 사정없이 내리쬐는 땡볕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쯤은 답사를 통해서 얻게 된 것들에 비하면 주저없이 감수할 작은 희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예정에 없었던 저녁까지 마련하면서 끝까지 보다 내실있는 답사를 위하여 모든 수고를 감내해 주신 비채에게 아낌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언제고 한 번 꼭 돌아보고 싶었던 답사를 더욱 풍성하게 맛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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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신간 추천의 시간이 도래했다.

 5월의 내 몸 상태는 4월 때와 별로 다르지 않기에

 더욱 그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

 아무튼 이번 달 내가 추천하고픈 신간들을 꼽아본다. 

 

 

 

 

 

 

 

 

 

 

 

 

 

 

 

 

 

  SF를 좋아한다면 예전에 나왔던 그리폰 북스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5년에 처음 나왔을 때 부터 나는 이걸 사 모았는데 그 때 1번으로 나온 '내 이름은 콘래드'의 뒷 책날개에 실린 리스트를 보고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기엔 정말 이름만 들었던 유명작들이 줄줄 실려 있었는데 새뮤얼 딜레이니의 '바벨-17'도 그 중 한 권이었다. 원래는 8번으로 발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름만 있었을 뿐 영영 발간되지 않았던 작품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애통하게도 거기엔 클리포드 시맥의 '도시'도 있고 루셔스 섀퍼드의 '재규어 사냥꾼'도 있으며 제임스 블리시의 '양심의 문제'도 있다. 퍼넬의 '데이비드 왕의 우주선'은 말할 것도 없고... 흑흑...

 

 그런데 오늘 알라딘을 들어오다 메인에 떡 하니 나와있는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이럴수가! 거의 18년만인가? 아무튼 드디어 그 실물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번역자가 김상훈인 것을 보면 95년에 이미 번역이 다 되어있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출간되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튼 그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어쨌든 이제라도 이렇게 나와주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신간추천 맨 윗자리에 이 작품을 당당히 모신다. 그리고 폴라북스의 '미래의 문학'을 더욱 열렬히 응원한다. 부디 애타는 그리움으로만 남아있는 작품들을 모두 발간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Long live SF~!

 

 

 

 

 

 

 

 

 

 

 

 

 

 

 

 

 같은 이유로 또 응원을 할 수 밖에 없는 작품. 그리고 또 한 번의 호들갑!

 오오! 래리 니븐~!!

 

  이 이름은 SF팬들 사이에서 어떤 안타까움으로 더 많이 회자되었었다. 유명한 게임 헤일로가 영향받았다고 해서 더욱 유명했던 작품 '링월드'가 우리나라에 한 번 출간되었었는데 곧 절판되고 한국에 나온 SF 작품들 중 가장 구하기 어려운 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읽는 건 관두고 제발 한 번 보기라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많이 나올 정도로 SF 팬들을 애태웠던 작품이었고 애태웠던 작가였다. 그러던 래리 니븐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그것도 '래리 니븐 컬렉션'라는 이름으로. 오옷! 링월드를 오매불망 찾았던 이들에겐 더욱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다. '링월드'는 가지고 있지만 내가 그랬다. 래리 니븐은 꼭 한 번 제대로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였기 때문에. 거기다 어렵게 소개된 링월드도 고작 첫 권만 나온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번 컬렉션으로 링월드의 온전한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전하는 새파란 상상을 응원한다. 커다란 깃발이라도 보이는 데서 흔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오옷!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가 다시 출간되었다. 2010년쯤에 서울대 독문과 교수로 있는 고원에 의해 총 3 부 중 1부에 해당하는 1권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 뒤로 오래도록 소식이 없더니 다른 번역자에 의해 다시금 출간되었다. 그 때는 한 권이었는데 이번에는 2권으로 나뉘어 나왔다. 그렇지만 1부 분량이다.('특성없는 남자'는 총 2천 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이다. 고원 번역본도 모두 1,700 페이지로 나오기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원래 고원씨의 번역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이 나오는 이 '특성없는 남자'를 더욱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부디 이번만큼은 3부까지 무사히 다 나오기를! 그래서 온전한 모습의 '특성없는 남자'를 감상할 수 있게 되기를!! '북인더갭' 화이팅이다!!

 

 

 

 

 

 

 

 

 

 

 

 

 

 

 

 

 

 그리고 여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남몰래 또 응원하고 있는 시리즈가 하나 있다. 바로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이다. 내가 이 시리즈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첫 발간한 작품 중에 헬렌 멕클로이의 '어두운 거울속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옷! 이 작품을 첫 발간작으로 내다니!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시리즈에 대한 신뢰도가 확 높아져 버렸다. 헬렌 멕클로이의 이 작품은 도플갱어를 미스터리로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실상은 1950년대 들어 미국에서 날로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던 과학적 합리주의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작품이다. 세세히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드러나는 깊이가 남달랐기에 그 어느 작품보다 인상적이었던 작품인데 그렇게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더구나 기존 동서판의 번역이 작품이 가진 질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었기에 꼭 다시금 번역되기를 원했었는데 마치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사랑이라도 한 것처럼' 제대로 된 번역으로 나와주어서 더욱 반가웠던 작품이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열혈 팬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에 소개된 작품들만 나와서 아쉬움이 컸었다. 새로이 소개되는 작품을 이 시리즈로 만나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나왔다. 그게 바로 이 책, 시릴 헤어의 '영국식 살인'이다. 51년에 나온 이 작품은 우리가 클래식한 미스터리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본격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듬뿍 줄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렇게 새롭게 소개되는 작품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작품과 엘릭시르를 아울러 응원한다.

 

 

 이렇게 이번 신간은 주로 제가 강력하게 응원하고 싶은 작품과 출판사를 중심으로 선정해 본다.

 응원의 한 길을 달리게 된 것은 이번 신간추천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6개월 동안 이어졌던 신간평가단이 어느새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이런 순간에 파트장이라서 그런지 신간평가단을 끝까지 해오신 모든 분들에게 다 감사함이 앞선다. 일부러 흔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많은 것을 나누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나눠받았던 것이 많았던 것만큼 그 모든 분들을 더욱 응원해드리고 싶다. 어디서든 꿋꿋하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바라는 만큼 걸어가시기를... 기원 또 기원 드린다.

 

   모두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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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5-0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월은 다른 때보다 더 빨리 지나가버린 듯합니다 한 것도 없는데...
이것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군요^^
이달에는 헤르메스 님이 나오기를 바라던 책들을 소개해주셨군요
기쁘시겠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된다면 좋겠습니다

헤르메스 님은 거의 모든 책(갈래)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데, 그래서 넓게 못 보는 것인지도...
오월에는 몸이 좀 나아지시기를 바랍니다


희선

Shining 2013-05-07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몸을 이끌고(!) 파트장 역할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꾸벅).
헤르메스님 덕에 항상 마음이 든든했는데 이렇게 아프시다니..
어서어서 회복해서 돌아오세요 헤르메스님-_ㅠ

덧) 선셋파크와 배신당한 유언들,이 선정된 걸 보고 놀랐어요+_+
헤르메스님 짱(쿡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