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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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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의 매'의 샘 스페이드 나 '빅 슬립'의 필립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 장르의 사립탐정들은 일단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그리고 홈즈나 엘큘 포와로 처럼 그리 명석한 두뇌도 없다. 

그들이 내세울만한 건 오로지 튼튼한 다리와 끈기 그리고 두둑한 배짱 정도? 그렇게 그들은 아무리 작은 단서라도 있으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제대로 사태를 파악할 때 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탐문과 추적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 역시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누적된 반복과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문제도 아니다. 그들을 진짜 힘들게 하는 건 바로 그들에게 아무런 권한이나 권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어 보일 뱃지도, 경찰수첩 같은 것도 없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문전박대를 감수해야만 하며 그나마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선의' 이거나 아니면 슬며시 손바닥에 쥐어주는 '돈의 힘' 뿐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경찰에겐 통하지 않는다. 경찰은 같은 범죄자를 쫓고 있어도 그를 협력자로 여기지 않는다. 그를 따돌리거나 적대시할 뿐. 그렇게 그는 언제나 핵심정보에서 배제되고 방해물 취급을 받거나 어떤 땐 용의자가 되기도 한다. 

 힘도 지혜도 내세울 권위도... 사립탐정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다 그는 언제나 혼자다. 

 고독은 그가 가지고 다니는 권총만큼이나 뗄레야 뗄 수 없는 동반자다. 그가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육체 뿐이다. 그래서 그가 집요하고 끈기가 있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그것 밖에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는 가진 것 하나 없이 홀로이다. 마치 자신을 벽처럼 둘러싼 세상 속에서.... 

 세상은 콘크리트 벽처럼 단단하다. 너무나 단단해서 사립탐정이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 타운'

 사립탐정은 세계라는 벽 앞에서 단독자이며, 마주한 세계는 그렇게 바로 그의 한계로서 존재한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차이나 타운"은 이러한 세상 앞에서의 단독자로서 사립탐정이 가지는 한계를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인 사립탐정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사건을 해결하지도 못했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막지 못했다. 거기다 사랑하는 이를 죽인 범인조차 고발하지 못한다. 그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고 그가 가진 건 오로지 자신의 무력함과 가득한 비참함 뿐이다. 사립탐정으로서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일은 단지 세상의 진실을 확인한 것 뿐이었다. 대낮의 밝은 세상이 숨기고 있었던 어둡고 치욕스런 진실을... 그것을 보게 된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도 없었다. 세상은 그가 알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하지 않았고 자기가 구르고 싶은대로 굴러갔다. 그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공룡 같은 세상 옆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 공룡의 발 아래 짓밟히는 가여운 영혼들을 목격한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구 짓밟고 지나가는 세상이 더럽고 치사하고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짓밟히는 자들에게 안타까운 연민이 들고 뭔가 돕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자기 힘으론 저 거대한 공룡 같은 세상의 발가락 하나 들어 올릴 수 없다는 무력감이 가득 찬다. 그런 비참한 심정으로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탐정 제이크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기는 차이나 타운이잖아." 

 차이나 타운. 그건 단단하고도 거대한 세상의 한 이름이다. 사립탐정이 아무리 진실을 알아도 끄덕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상징하는 일종의 라벨이다. 거기서 사립탐정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 즉, '관찰자'가 되는 것 뿐이고 그건 바로 사립탐정의 '레종 데뜨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한계. 그 지켜볼 수 밖에는 없다는 그 한계가 오히려 사립탐정에게는 역설의 신념을 가지게 한다. 마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처럼, 세상을 마주한 단독자, 세상의 추악한 진실을 목도한 자로서의 사립탐정에게 개인적인 도덕적 신념을 관철시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세상이 감추고 싶었던 그 이면의 추악한 진실을 보아 버렸으니, 어떻게 그것을 깡그리 잊고 세상과 한데 섞여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인가? 보는 게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는 법인데... 

 내세울 능력도 머리도 권위도 없는 가난한 사립탐정에게 그의 타협없는 자신만의 도덕적 신념은 그나마 자신을 자신답게 지탱하게 해 줄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관찰자로서의 사립탐정이 세상의 추악한 진실을 보기는 하였으나 바꿀 수는 없는 그 한계 때문에 그나마 추악한 이면을 보게 된자로서 가지게 되는 책임이 그러한 도덕적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진실을 아는 자는 그 책임 또한 느끼기 마련이지만 세상 앞에서의 자신의 무능은 그를 좌절시킨다. 그렇다고 이미 본 것을 안 봤다고 할 수도 없으니 책임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 그러한 조건 위에서 사립탐정이 그나마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일은 남들이 뭐래도 세상이 아무리 부정해도 끝까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지키는 일 밖에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그렇게 도덕적 신념이란 사립탐정의 본질 자체가 아닐까? 그렇게 보면, 사립탐정이란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도 같다. 악에 찌든 세상을 홀로 떠돌며 세상의 타락을 목청껏 외쳤던 고독한 선지자들 말이다. 그렇게 어두운 시대 아주 작은 빛이 나마 되고자 했었던 사람들 말이다.

시대가 너무 어두우면, 사람들은 자그마한 빛이나마 찾고 싶어지는 법이다. 

 더쉴 해미트의 사립탐정 '샘 스페이드'가 최초로 그의 모습을 드러내던 1930년대의 미국은 이른바 '대공황기'였고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칠흙 같은 밤이었다. 조금의 돈만 준다면 대놓고 사람들에게 총질하던 무렵이었고, 조금의 돈만 준다면 기꺼이 법률도 도덕도 내던져버릴 수 있었던 무렵이었다. 시장, 판사 같은 저 사회 지도층에서 부터 마피아의 똘마니 같은 저 하위 계층까지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몇 푼의 돈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헌신짝 처럼 집어던져 버리고 기꺼이 괴물이 되기를 택했다. 샘 스페이드는 바로 그 무렵에 나왔다. 

 그건 여기 '빅 슬립'의 필립 말로도 마찬가지였다... 

 시대가 아무리 그렇게 어두워도 모든 사람들이 돈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겨도 사립탐정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꿋꿋하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도덕적 신념을 관철시켜 나갈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호할 수 밖에 없었다. 시대의 거대한 어둠에 비하면 아주 미약하기 그지없는 빛이었다 해도, 애타게 빛을 바라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눈부신 태양과도 같았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 빛으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었나? 

 몇 푼 안 되는 돈에 자신의 영혼을, 명예를 팔아넘기는 일에 점점 더 부끄러움을 느꼈던 사람들이었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조금의 희망이라도 찾고 싶어 헤메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빛을 필요로 했었다. 어떻게 보면 사립탐정은 바로 이 사람들의 구원을 향한 열망이 요청한 존재일 수도 있다. 더쉴 해미트의 샘 스페이드도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도 그렇게 그 시대의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요청한 존재였고 조금의 희망이라도 바랬던 사람들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들의 타협하지 않는 도덕적 신념은 세상에 마구 휩쓸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앞에 홀연히 떠오른 구원의 빛이었다. 

 해서, 사립탐정은 아무리 어둡고 비정한 시대의 현실 속을 걸어도 그 존재 자체가 인간에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징표가 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눈 앞에 사립탐정이 나타났다는 것은 바로 나만이 이 치욕에서 벗어나 좀 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나말고 또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이 세상의 현실에 절망과 그렇게 속절없이 타협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무언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립탐정은 아무리 홀로 거닐어도, 우리는 그의 존재 자체로 인해 맺어지고 함께하게 된다. 이 광막한 어둠의 장막 아래 어디에선가 홀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며 우뚝 걸어가고 있는 사립탐정을 응원하고 있을 그 누군가와 말이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섞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 말처럼 사립탐정은 홀로 섞고 우리들은 그의 고뇌와 비통을 함께 하며 자라난다. 그리고 그렇게 고뇌하고 희망이 있는 한 아무리 암흑같은 시대라도 변화 역시 찾아올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 역시 우리들의 동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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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12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등 당첨되신거 축하드립니다. 이벤트 결과 덕분에 헤르메스님 서재를 알게 되었네요^^

헤르메스 2011-02-12 00:42   좋아요 0 | URL
CYRUS님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석진 서재 첫 댓글이네요^ ^

이프리트 2011-02-1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전에는 '빅 슬립'이라는 소설을 잘 알 수 없었지만..... 헤르메스 님의 멋진 리뷰 덕분에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에 관심이 가네요.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삽하나 2011-02-1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만간 알라딘에서 놀랍니다 ㅋㅋ
그런 의미에서 자주가는 서재 추가. 꾸욱. ㅇㅅㅇ

헤르메스 2011-02-15 18:31   좋아요 0 | URL
앗! 삽하나님이다.
여기서 보니 왠지 더 반가운데요.^ ^
자주가는 서재로 등록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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