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이브스 3 - 5천 년 후, 완결
닐 스티븐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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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종말과 재건이라는 거대한 스케일로 눈길을 끌었던 닐 스티븐슨의 '세븐이브스'의 마지막 3권이 드디어 나왔군요.

 2권을 읽고 뒷 얘기가 너무나 궁금했기에 허겁지겁 집어서 읽어보니, 3권은 2권의 시점에서 무려 5천년이나 지난 뒤로군요. 7명의 이브에서 시작된 인류는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행히 멸종되지 않고 약 30억 명의 인구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1권과 2권의 이야기는 갑자기 달이 폭발하고 그 파편이 지구 위로 마구 떨어지는 '하드레인' 때문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 확실시 되어 소수의 인원을 우주에 보내어 인류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인구가 30억 명으로 늘었다는 얘기에 그렇다면 인류가 다시 지구 위에서 살게 된 게 아니야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인류는 아직 지구 적도 궤도 위에 고리를 이루어 거주지를 형성하고 바로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5천 년이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소수의 인류도 어느덧 분화되어 자신의 모태가 되었던 일곱 명의 이브에 따라 하나의 종족을 이루게 되었죠. 2권에서 인류 재건을 위해 태아를 임신했던 7명의 여성이 진정 이브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한 차례 종말을 경험하고 겨우 재건 되었지만 인류가 가진 습성은 그리 변하지 않아, 5처년 동안 생겨난 일곱 개의 종족은 나뉘고 갈라져, 오늘날의 세계와 같이 많이 적대적인 모습은 아닙니다만 종교와 인종으로 갈라져 있는 오늘날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립이 또 없는 것은 아니어서, 지구 재건을 두고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에 맞도록 지상을 바꾸는 '테라포밍'에 관하여 '빨리 해치우자'는 레드파와 '천천히 하자'는 블루파로 나뉘어, 마치 50년대의 냉전 시대처럼,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3권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멸종된 것으로만 알았던 지상의 인간들이 5천 년 동안 생존해 있었고 우주에 있던 인류가 그랬듯이, 그들 나름대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1권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기서 로봇 전문가로 나왔던 다이나는 하드레인으로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 그녀의 아버지와 마지막 통신을 하는데요, 그 장면에서 다이나의 아버지는 근처의 광산에 사람들이 대피소를 만들어 피해있으며 자신도 그 곳으로 갈 것이라는 말을 하죠. 그렇게 지하 깊숙한 곳으로 대피했던 자들이 놀랍게도 생존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으로 피난하기도 했는데요. 그들 역시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 '디거'와 '핑거'로 불립니다. 3권은 '후생유전학'에 기반하여 늑대의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푸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DNA가 외부 환경 요인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 5천 년 동안 완전히 다른 자연 환경에서 진화해 온 디가와 핑거가 인간과 좀 다른 특성을 가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어쨌든 이 두 종족의 발견이 레드와 블루의 '힘의 균형' 상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상을 자신의 뜻대로 테라포밍 하기 위해서 지상 종족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 두 진영이 각자의 속내에 따라 그들에게 다가간 것이죠. 그런데 디거는 자신의 영토에 기지를 세운 블루 진영을 침락자로 간주하여 레드와 손을 잡습니다. 디거가 레드와 손을 잡음에 따라 균형이 레드 쪽으로 기울게 되자 블루는 핑거와 얼른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일곱이 아닌 아홉이 모처럼 다시 부활의 숨을 쉬기 시작한 지구를 무대로 예전의 냉전시대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맙니다. 과연 이 사태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과연 인류는 1권과 2권의 사태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일까요? 정녕 분리와 대립이 인간 유전자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일까요? 그리하여 공존과 평화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아무래도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죠?


 늘 그랬듯이 이번 3권도 꽤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1권에서도 말했듯이 닐 스티븐슨의 소설은 역시 아주 현실적이고 정교한 SF 설정 때문에 읽는 것이죠.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스티븐슨의 재능은 빛을 발합니다. 인류가 우주 콜로니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하며 이동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까요. 그것도 눈에 그리듯이 서술하고 있어 소설을 읽으며 뭉게뭉게 떠오르는 상상에 쉽게 구체성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5천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긴 했지만 인류 재건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어떻게 매조지할까 많이 궁금했었고 또 스케일이 큰만큼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좀 되었는데 이 정도면 잘 끝맺음 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닐 스티븐슨 덕분에 모처럼 아주 거대한 스케일의 스토리 안에서 마음껏 상상력의 유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것에 한없이 매몰되어 바로 눈 앞의 것만 생각하며 어제와 오늘이 그렇게 다르지 않은 무료한 일상 속에서 이처럼 거대한 규모와 시간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확장이 또 소설을 읽는 맛이겠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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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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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보거나 들은 것은 빠짐없이 기억한다는 특이한 능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 에이머스 데커.

 그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 나왔군요. 제목은 '죽음을 선택한 남자'. 원래 제목은 'THE FIX'. 2017년에 발표되었으니 우리나라에 꽤 빨리 번역 출간된 셈입니다. 그런데 올해 9월 11일에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THE FALLEN'이 출간될 모양이더군요. 2015년에 시리즈 첫 작품이 나왔는데, 벌써 네 권째라니 거의 1년에 한 편씩 발표하는 것 같습니다.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의 방증일까요? 서양의 리뷰 사이트인 '굿리즈'를 보면 모두 4점 이상의 점수를 받고 있어 그런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시리즈 전작과 이채로운 점이 몇 가지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하나는 'WHO DUNE IT?'이 아니라 'WHY DUNE IT?'에 천착한다는 점입니다. 이건 소설 초반부터 범인을 아예 밝혀두고 시작하기에 한층 더 도드라졌죠. 무엇보다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가 살인과 범인 모두를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니까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전작의 활약으로 이제 FBI에 기자 알렉스와 함께 특채되어 미제 사건을 수사하게 된 에이머스 데커가 FBI 거점인 J 에드거 후버 빌딩으로 회의를 위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앞에서 걸어가던 고급 정장을 잘 차려 입은 60대 남자가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애니 버크셔를 갑자기 권총으로 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턱 아래에 총구를 대고 쏘아 자살하고 맙니다.(바로 죽지는 않고 병원으로 실려가 거기서 죽습니다만.) 여기서 제목의 '죽음을 선택한 남자'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게 되실 것 같네요. 네, 자신에게 총을 쏜 60대 남자, 월터 대브니인 것이죠. 그는 그의 외양이 증명하듯이,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리고 재정이나 가정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절대 그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대관절 대브니는 왜 버크셔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일까요? 그건 혹시 피해자 때문일까요? 하지만 피해자 역시 대체교사로 시간이 나면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등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주위의 누구와도 갈등을 일으킨 적 없었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대브니와 버크셔 사이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습니다. 일면식을 전혀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더욱 대브니가 버크셔를 살해한 것이 수수께끼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뇌종양으로 곧 죽음을 앞둔 대브니가 자살을 마음 먹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무차별 살인이었을까요?


 이유 없는 살인은 없다고 믿는 에이머스 데커는 '왜?'라는 질문에 천착합니다.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이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버크셔는 대체 교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유지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몇 백만 달러짜리 호화 주택에다 연봉의 몇 배나 되는 자동차하며 아주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엔 조금도 생활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모델 하우스처럼 말이죠. 거기다 버크셔는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학교에 낡은 포드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을 했고 학교에 기록된 주소는 그녀의 집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에 있는 아주 허름한 집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피해자의 삶이 이상한 것 투성이다 보니 대브니는 어떤 이유로 살인했다는 심증이 더욱 굳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차에 미 국방정보국(DIA)에서 일하는 하퍼 브라운이란 여성이 데커를 찾아옵니다. 그는 데커에게 대브니가 실은 막내딸을 도와주기 위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최고 기밀을 천만 달러를 받고 넘겼다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대브니는 평범한 사업가가 아니라 반역자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버크셔는 대브니의 이런 사실 때문에 살해되었던 것일까요? 그녀는 대브니의 반역 행위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당사자들이 이미 모두 죽어버린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진실만 쫓는 에이머스 데커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바람 부는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일이라 해도 말이죠. 설령 몇 번이나 자신에게 날아드는 총탄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더라도 그는 최후의 진실을 찾을 때까지 내처 걸어갑니다.


 소설 처음부터 주인공이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는 점과 단순한 살인인 줄 알았지만 그 뒤에서 드러나지 않는 더 커다란 흑막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작가의 데뷔작 '앱솔루트 파워'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뭐랄까요, '에이머스 데커'와 '앱솔루트 파워'가 믹스된 느낌? '죽음을 선택한 남자'가 전작보다 스케일이 훨씬 더 커져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앱솔루트 파워'도 개인이 체제와 싸우는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시간대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앱솔루트 파워'의 주인공인 대도 루터 휘트니가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 한 번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여하튼 이번 편은 첩보 장르를 취하여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무대가 넓혀졌는데, 주인공인 에이머스 데커에 한해선 초점이 더욱 좁혀진 것 같습니다. 그에게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아내와 딸의 죽음이라는 과거에서 그가 벗어나 다시 새롭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초점이죠.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가 이 소설에 스파이와 두 가족을 가져온 것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파이는 두 세계 사이에 끼어 있는, 경계의 존재죠. 그건 과거의 상처와 새로운 삶의 출발 사이에서 오고가는 에이머스 데커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대브니와 버크셔의 이중 생활 마찬가지 입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아예 이런 말까지 하죠. 얼마전까지만 버스정류장에서 골판지를 집 삼아 살던 자기가 이제는 번듯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작가가 이 소설에서 데커가 살 집을 마련해 준 것은 버크셔가 가지고 있었던 두 개의 집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버크셔가 두 개의 삶 중 그 어느 것에서도 자신의 삶으로 선택할 수 없었듯이 데커 또한 그럴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구요. 하지만 주저하는 데커에게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외부 상황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두 가족의 등장이죠. 데커가 사는 집에 세입자로 있는 에이야마 부자와 대브니 가족이 그것입니다. 그 두 가족은 그 때 아내와 딸이 죽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의 삶이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묻는 에이머스 데커에게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데커가 그토록 찾는 안식은 없었을 것이란 걸 보여줍니다. 위협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때로는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밝혀져 커다란 배신의 상처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두 가족의 모습은 데커에게 과거의 상처에 연연하지 말고 새출발 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치 그와 보조를 맞추듯, 작가는 데커와 재미슨을 룸메이트로 동거하게 만들고 '썸'을 자아내는 것과 동시에 데커의 가장 친한 친구인 멜빈 마스와 DIA 요원 호프 브라운도 '썸'을 타게 만들죠.


이것은 데커에게 작가가 어떤 충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데커는 자신이 삶에 떠밀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딸이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는 자신에게 다른 선택따윈 없었다고 재미슨에게 말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묻습니다. 과연 달리 선택할 수 없었을까 하고 말이죠. 그것이 바로 대브니의 삶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의 삶을 두고, 또 그에게 어떤 선택을 하도록 한 이들을 두고 데커의 일행들은 자주 말하죠. '그들은 달리 선택할 수 있었어'라고. 그건 그대로 작가가 데커에게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 선택이 데커에게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재미슨과 마스 그리고 브라운이 새로운 관계를 엮어나가는 것이죠. 삶은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해 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과연, 데커가 작가의 충고를 받아들였던지 소설 마지막에서 데커는 이런 말을 하죠.

 나는 어둠을 받아들일 거야. (p. 566)


 이렇게 보자면 왜 이 소설의 원제가 'THE FIX'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절망적인 순간에 있다 하더라도 삶을 다시 재건할 기회는 있다는 것이죠. 삶이 우리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스케일이 커지긴 했습니다만 저는 '죽음을 선택한 남자'가 데커 개인의 드라마로 더 많이 보였습니다. 뭐, 어쨌든 이것은 '죽음을 선택한 남자'를 바라보는 저만의 관점일 뿐입니다. 그것을 제쳐두고 총평 같은 걸 해보자면, 이번의 작품 역시 전작이 그랬듯이 페이지 터너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초반엔 궁금증을 한껏 유발시키고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만들죠. 그리고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총격 장면도 나오고 말이죠. 로맨스와 유머까지 가미되어 있어 한 마디로 즐길 요소가 많습니다. 그런 까닭에 599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인데도 쉽게 읽을 수 있더군요. 기존의 에미머스 데커를 재밌게 읽으신 분이라면 이번 작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빨리 네 번째 작품을 만나고 싶네요. 거기서도 데커는 연쇄 살인을 수사하게 되는데 사건 발생 장소가 글쎄 알렉스 가족이 사는 곳이랍니다. 데커와 알렉스 재미슨이 함께 그의 가족을 만나게 된다고 하네요. 가족을 만난다는 건 관계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과연 데커가 지금까지의 방황을 끝내고 정착하게 될 지 궁금하군요. 그런데 스릴러 소설에서 가족의 형성은 시리즈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잘 될런지... 하여간 4부가 얼른 나와 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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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02: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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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유령함대 세트 - 전2권 - 미중전쟁 가상 시나리오
피터 W. 싱어.오거스트 콜 지음, 원은주 옮김 / 살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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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학자이자 사이버 보안 및 사이버 전쟁 전문가인 피터 W 싱어와 '월 스트리트' 신문의 국가안보 및 방위산업 전문기자 출신인 오거스트 콜이 함께 쓴 '유령 함대'는 우리나라에선 이제야 출간되었지만 실은 2015년에 나왔다. 그 때부터 입소문이 대단했다. 특히 군대 쪽에서 지휘관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 많아 나와서 팔랑귀인 나는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그러나 싶어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현재 한창 개발중인 군사 기술을 토대로 밀리터리 스릴러를 쓰는 건, 이제는 작고한 톰 클랜시의 전문 분야였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잭 라이언 시리즈는 첫 선을 보인 '붉은 10월'부터 '공포의 총합'까지 많은 소설들이 다시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가 미친 영향은 게임도 못지 않아서 '레인보우 식스'나 '스프린터 셀' 혹은 '고스트 리콘'등, 게임 좀 해 본 사람이라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게임들이 그의 시나리오와 감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톰 클랜시의 소설도 아닌데 삼천포로 빠진 것처럼 이런 얘길 하는 것은 '유령 함대' 역시 그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톰 클랜시 소설에 대한 향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사후, 오래도록 끊어졌던, 흔히 '테크노 스릴러'로 불리기도 하는 그 장르의 맛을 '유령 함대'에서 다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중국과 미국의 전면전을 다루지만 현재는 아니다. 때는 2026년. 세계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바뀌었다.

 일단 주요 에너지가 더이상 석유가 아니다.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란에 떨어진 '더티 밤'이라 불리는 방사능 폭탄 때문에 몰락했다. 그 여파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자체가 무너져 더이상 석유를 채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여파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붕괴되었다. 오일 사태로 인한 경제적 혼란의 가중으로 도시 노동자가 정부에 대해 거센 저항 운동을 일으켰는데 시진핑 정권이 예전 '천안문 사태'처럼 폭력으로 진압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은 예전 천안문 사태 때의 중국이 더이상 아니었다. 그런 폭력적인 진압을 보고 시진핑 정권에 대해 희망을 잃어버린 산업 자본가와 군부 장성들은 반란을 획책, 시진핑 세력들을 모조리 숙청하고 정권을 잡는다. 그들은 예전의 시진핑처럼 한 개인에다 권력을 귀속시키지 않고 '위원회'란 집단에게 권력을 귀속시킨다.




 이런 위원회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하나는 외부의 것으로, 정권의 바뀜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인접한 러시아가 언제든 침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러시아와 비밀리에 협약을 맺어 이 돌발 위기 변수를 제거한다. 또 하나는 내부의 것으로, 에너지 문제가 정권의 변화를 가져온 만큼 그들 역시 시급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갑작스런 석유의 퇴출은 전세계에 혼란을 가져왔고 각국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 에너지원은 전쟁마저 불사하게 만드는 새로운 화약고였다. 그러던 차에 중국은 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에서 천연 가스가 대량으로 매장된 것을 발견한다. 중국은 이 에너지 자원 확보에 두 번째 동티모르 분쟁으로 인도네시아가 몰락하고 말레이시아가 다시 독재국가로 돌아간 시점에서 태평양의 안보와 자원 확보에 위기를 느끼고 있는 미국이 가장 커다란 방해물이 되리라 내다봤다. 미국을 선제적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중국의 '위원회'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러시아와 거짓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척하여 미국의 눈을 딴 데로 돌린 다음, 원래는 미국과 러시아가 함께 운영하던 우주 정거장을 장악(이것이 소설 프롤로그의 내용이다.)하여 GPS를 무용지물로 만든 후, GPS 없이 핵 추진 선박들을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는 '체렌코프 방사선'을 이용하여 미국 함대를 추적,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동시에 자신들이 미국에 수출하여 이제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중국산 마이크로 칩들을 매개로 미국 전역의 컴퓨터 시스템을 바이러스에 감염시켜 혼란을 초래한다. 이는 사회적 혼란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응 공격도 무력화시켰는데, F-35 라이트닝을 비롯하여 많은 미국의 첨단 무기들이 중국산 마이크로 칩을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원회의 공격은 아주 효과적이었고 그들은 화와이를 침공한다. 2026년, 또 한 번 아시아의 진주만 공격이 개시된 것이다.


 결국 화와이는 중국에게 점령된다. 우주 정거장의 체렌코프 방사선과 사이버 공격 때문에 더이상 과거의 전략과 전술로 중국을 상대할 수 없게 된 미국은, 핵 추진을 하지 않는 예전의 구축함(바로 이렇게 이미 현역에서 오래전에 퇴역한 구축함을 '유령 함대'라 부른다.)으로 중국을 타격하려 한다. 그러나 함포 사격은 또 중국에게 탐지될 것이었으므로 절대 탐지할 수 없도록 전자기력을 사용해 포탄을 날리는 레일건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 사정거리가 거의 4000km나 되고 음속의 6배로 포탄을 날릴 수 있기에 적들이 탐지하기도, 대처하기도 어려운 레일건을 장착한 '줌월트'는 화와이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한다.


 여기까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상황과 이야기를 대체적으로 소개해 보았다. 물론 이 소설엔 내가 앞에서 한 얘기만 나오지 않는다. 소설은 수 많은 인물들에게 저마다 목소리를 부여하면서 전개되는데, 여기엔 점령 당한 화와이에서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또 중국 쪽의 시선도 나온다. 많은 목소리가 시점을 달리하며 병행되고 있기에 이야기 되는 상황의 전체를 가늠하기가 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이해한 것을 발판으로 그 전체적인 맥락을 말해 본 것이다.


 둘 다 현대 군사 기술과 안보 체제에 전문가라 그런지 소설에 나오는 기술이나 병기들이 현실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레일건에 대한 것은 진짜 그대로다. 그러나 2015년에 나왔다는 한계 때문에 레일건에 대한 그들의 예언은 어쩔 수 없이 빗나가게 되었다. 그들이 소설을 발표한 2015년만 해도 레일건은 줌월트 급의 구축함에 장착하여 실전 배치될 예정이었지만 2018년 현재는 레일건이 전기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을 비롯한 비용 상의 문제로 실전 배치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한 편, 중국은 실제로 배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레일건을 개발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현실감이 넘치기에 소설 속 내용이 좀 오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미군 함대가 저렇게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바야흐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예전엔 핵탄두와 같은 병기였지만 이제는 사이버 공격으로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는 거란 걸 실감하게 되었다. 소설이 잘 보여주듯,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체제라도 아주 작은 요소로도 파국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자신을 너무 과신하여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는 것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로 평화 체제를 더욱 굳건히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이런 실감은 만일 내가 2015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더욱 소름으로 다가왔으리라. 올해 초만 해도 북한의 핵실험이 얼마나 동아시아에 어마어마한 긴장을 가져왔던가? 그러나 내일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고 종전의 가능성이 넘쳐나고 있다. 갈등으로 얼어 붙었던 겨울이 가고 화합의 따스한 봄날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소설 또한 편안한 기분으로 읽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이 결코 SF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겐 SF로 보일 정도로. 후후. 그래서 이런 말까지 덧붙여 두고 싶다. 대체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지만 아무래도 중국과 미국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을 다루는 지라 드라마에 구멍이 다소 있으며 인물의 처리도 매끄럽지 않은 약점도 있다고. 때문에 인물들에게 비중을 두기 보다 전략이나 전술 또는 정치적인 면에 더 많이 비중을 두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든다는.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보는 톰 클랜시 스타일의 소설이라 예전의 추억도 생각나고 해서 재밌게 읽었다. 나처럼 그런 소설에 향수가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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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션 - 그녀의 립스틱
사라 플래너리 머피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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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작가 사라 플래너리 머피의 데뷔작, '포제션'은 제목에서 이미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빙의(憑依)입니다.

 '포제션'이 가진 뜻 중엔 어떤 다른 이의 혼에 의해 육체가 소유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 빙의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역시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인데요. 거기서 영매 역할을 맡았던 우피 골드버그가 자신의 육신을 이미 죽어 영혼이 된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내어주죠. 그렇게 해서 연인 데미 무어와 직접 만나게 합니다. 우피 골드버그는 이 연기를 너무나 잘해내어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여성으로는 두 번째 조연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포제션'의 주된 설정은 바로 그 영매가 기업화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주인공 여성 에디가 일하는 기업인 '엘리시움 소사이어티'는 죽은 영혼을 불러와 '바디'라고 불리는 직원 몸에 빙의시켜 그를 보고 싶어하는 산자들과 만나게 합니다. 어째서 이런 것이 가능한가라고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바디'들이 진짜 영매처럼 무슨 주문을 외우거나 수정 구슬을 쓰다듬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영혼을 불러와 빙의를 가능케 만드는 '로터스'란 약이 있습니다. '바디'가 고객을 만나 만나고자 하는 영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은 뒤에 영혼이 생전에 지니고 있던 물건을 가지고 '로터스'를 먹으면 영혼을 소환해 빙의되는 것이죠. 물론 빙의가 되면 '바디'는 의식을 잃습니다. 빙의된 영혼에게 자신의 육체를 온전히 내어주는 그릇이 되는 것이죠. 주인공 에디는 이 '바디' 일을 무려 5년 째 해오고 있습니다.




 남에게 자신의 육신을 내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이 하다보면 정체성의 혼란까지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디'의 경우 대개 1 ~ 2년을 넘지 못합니다. 에디의 5년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인 것이죠. 어째서 에디만이 그것이 가능했는가? 그건 자신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디는 자신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예 자기를 텅 비우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나'라는 게 없었기에 남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오래 지속해도 될만큼 힘들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데 한 남자 고객을 만나고 그런 에디의 삶에 균열이 생깁니다. 그 남자는 '패트릭 브래독'으로 최근 아내 실비아를 사고로 잃었습니다. 친구 부부와 함께 리조트로 놀러 갔다가 아내 혼자 호수 한 가운데서 익사 당한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어째서 패트릭만이 에디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빙의한 실비아의 영혼이 강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에디는 겉잡을 수 없이 패트릭에게 빠져 듭니다. 그녀의 입술에 남은, 실비아가 자주 바르던 붉은 립스틱처럼 어떻게 해도 그를 향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규정마저 어기고 직장이 아닌 사적 공간에서 비밀리에 로터스를 습득, 패트릭을 위해 실비아가 되고자 합니다. 산 자신을 포기하고 죽은 아내가 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조차 쉽지 않은데요, 실비아 죽음에 얽힌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은 사고가 아니라 살해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죠. 과연 에디가 찾아내는 진실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진실을 알고도 에디는 패트릭의 죽은 아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요? 이렇게 말하면 스릴러가 가미된 로맨스 소설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포제션'은 주체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소설이니까요. 그렇게 자신의 삶에 한 번도 주체가 되어보지 않았던 에디가 패트릭에 대한 사랑과 실비아의 존재로 점점 주체가 되어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빙의와 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타자에 대한 열림이라는 점에서 공통되기 때문입니다. '엘리시움 소사이어티'에서 일하는 '바디'에는 엄격하게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든 고객과의 감정적인 접촉을 피하고 절대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 즉 타자에게 자신을 꼭꼭 잠궈두는 게 규율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지요. 회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키고 싶으면 빙의 하는 대상과 확실하게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하지만 에디가 그랬듯이, 그 규율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자아는 빈 그릇이 되어가니까요.


 바로 이런 설정을 통해 소설은 더욱 명확하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드러냅니다. 진정한 주체가 되고 싶다면 타자와 변화에 더 많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이죠. 진실로 나답게 되는 것은 타자와 변화로 부터의 격리가 아니라 오히려 빙의처럼 겹침에 있다는 것을 에디 심리의 섬세하면서도 생생한 묘사를 통해 분명히 합니다. 이 소설은 출간된 그 해에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존 크리시 대거상 롱리스트에 선정되었다고 하는데요, 거기엔 아마도 이러한 심리 묘사가 단단히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하여간 결론은 읽어볼만한 소설이라는 겁니다. 일단 설정이 참신하고 주체가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음미할만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빙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은 잘 나오지 않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흔치 않는 작품이니 색다른 것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만나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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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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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명성을 익히 들었던 작품을 이제야 만나네요. 바로 미국 작가 C.J 복스의 '오픈 시즌'이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입니다만 미국에선 꽤나 유명합니다. '조 피킷 시리즈'의 작가로 말이죠. 스릴러의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죠. 조 피킷은 물론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 사람, 여러모로 특이한 주인공입니다. 일단 직업부터 그래요. 스릴러 소설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수렵 감시관이거든요. 


 형사도 아니고 사립 탐정도 아니며 변호사나 검사도 아닌, 수렵 감시관이라니! 얼른 동물을 함부로 사냥하는 자들 뒤나 쫓아다닐텐데 스릴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듭니다. 이야기가 너무 빤하니까요. 사실 수렵 감시인의 이야기는 스릴러 보다 서부극에 더 어울리죠. 조 피킷이 일하고 있는 와이오밍 주 자체도 그렇구요. 미국에서 10번째로 커다란 영토의 주이지만 인구는 미국에서 가장 적습니다. 남한의 두 배가 넘는 크기인데 인구는 58만 정보밖에 안된대요. 사람이 없는 빈 공간을 대자연이 채우고 있는거죠. 사실 와이오밍은 문명이 아니라 광활한 대지의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곳이죠. 이 곳을 배경으로 한 '브로크벡 마운틴'이란 영화를 보셨다면 이 말을 금방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조 피킷은 그런 곳에서 일합니다. 불법 수렵을 감시하여 야생 동물을 보호하죠. 이러니 서부극과 더 잘 어울린다는 말인데, 그런데 조 피킷은 서부극 영웅다운 면모를 그리 보여주지 않아요. 처음 등장하는 장면부터 불법 수렵을 하는 이를 적발했는데 오히려 그에게 역습을 받아 총을 뺏겨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니까요. 싸우는 능력이 별로 없는 편이죠. 거기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제외하면 가진 것도 쥐뿔도 없고. 그저 우리 주위에 흔한 보통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토록 평범한 조 피킷이란 캐릭터가 그런데 왜 시리즈가 계속될만큼 인기가 있을까요? 능력도 모자라고 흙수저이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는 신념 때문이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고 어려워도 타협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반드시 관철하고야 마는 신념, 뚝심. 바로 그것이 그에게 서부극 영웅다운 면모를 가져다주어 인기를 얻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조 피킷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번에 나온 '오픈 시즌'이죠. 그리고 현재 17권까지 나온 조 피킷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오픈 시즌'은 명불허전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뛰어난 스릴러입니다. 읽어보니 왜 이 시리즈가 이토록 유명한지 잘 알겠더군요. 와이오밍 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릴러에 서부극적인 분위기를 잘 융합시킨 작품입니다. 간단히 줄거리를 말해볼까요? 앞서 말했던 조 피킷이 목숨을 잃을뻔한 일이 프롤로그처럼 지나가면 드디어 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 역시 프롤로그만큼이나 눈길을 확 잡아끕니다. 조 피킷이 아침에 출근하러 집을 나서자마자 자기 집 앞에 놓여져 있는 한 구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프롤로그에서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던 불법 수렵인이었으니까요. 조 피킷이 그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나서 잘못하면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입니다. 누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죽은 사람과 같이 수렵을 하고 있는 일행을 찾아내야 하죠.  그 일행이란 '아웃 피터'란 이름의 수렵 그룹으로 지금 죽은 자와 빅혼 산에 있는 '엘크 캠프'에서 함께 야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절친한 동료 웨이시 그리고 보안관 부관인 매클라너핸과 함께 거기로 찾아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한 남자가 텐트에서 나오며 총을 쏩니다. 그에게 대응하다 어디서 날아온지 모를 총알까지 얼굴에 스친 조 피켓은 결국 동료와 함께 그를 제압하고 텐트 안을 들여다 보니 '아웃 피터'의 나머지 일행은 모두 총을 맞고 죽어 있습니다. 그것도 이틀 전에.


이것이 체포된 남자가 저지른 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은 전자로 마무리하려 하고 수사에 미진한 부분을 남겨두기 싫은 조 피킷은 혼자 그 사건을 계속 파보려 합니다. 그러던 차에 조 피킷에겐 거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수렵 감시관'이란 자리까지 온갖 난관을 뚫고 마련해준 '번'이 찾아와 이렇게 제안합니다. 자신이 빅혼 산에 천연 가스 수송관을 매설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참인데 수입도 좋고 명예도 높은 확실한 일자리 하나를 줄테니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이죠. 혼자라면 수렵 감시관으로 남겠지만 자기 때문에 늘 고생하는 아내와 딸 때문에 그는 갈등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장모는 앞길 창창했던 자기 딸의 인생이 자신 때문에 완전히 망쳐졌다고 원망하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결국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그는 번의 일자리를 수락하려고 하는데, 그 즈음 사냥 하는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됩니다. 최근 산 일대에서 멸종 위기 종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멸종 위기 종이 발견되면 법에 따라 그 동물을 해할 수 있는 모든 일이 전면 금지됩니다. 사냥은 물론 개발도 말이죠.


와이오밍 주의 빅혼 산 풍경.


 조 피킷은 이번 사건이 혹시 소문의 멸종 위기 종과 관련있지 않을까 하여 그 쪽을 파고 들어 가는데 이게 또 만만하지 않습니다. 지금 피킷이 있는 마을은 몰락을 거듭하고 있는 중인데 천연 가스 수송관이 빅혼산에 설치되면 마을 경기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존재하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멸종 위기 종 때문에 마을의 사활이 걸린 사업이 없어져야 하냐며 해대는 타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보니 절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사건 하나가 떠오르더군요.


 바로 '천성산 도룡뇽' 말이죠. 천성산엔 멸종 위기 종인 도룡뇽이 서식하고 있는데 거기에 한국철도공사가 KTX 터널을 뚫으려고 하자 지율 스님이 천성산을 보호하기 위해 단식 투쟁까지 불사했던 일 말이죠. 그 때도 한낱 도룡뇽 때문에 국책 사업이 좌절되어야 하느냐난 목소리와 인간의 편의 때문에 한 종의 존재 자체가 소멸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목소리로 나뉘어 뜨거운 찬반양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발 이익과 환경 보호. 그 중 무엇을 더 우선시 해야 하는가는 MB 정부의 4대강 산업이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죠. 해마다 만나게 되는 녹조 라떼와 가뭄을 보면 말이죠.


 그러니 '오픈 시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결코 우리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 피킷의 선택에 응원도 하게 되는 것이구요. 사회가 하나로 똘똘 뭉쳐 그에게 반대하고 나서는 데도, 그는 뜻을 굽힐 마음이 없습니다. 그 일을 하면 모처럼 찾아온 안정된 일자리가 날아갈 게 명약관화인 데도 불의에 눈을 감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설은 많은 반전들을 선사하면서 피킷을 정면 대결의 순간으로 데려갑니다. 소설의 후반부는 정말 굉장합니다. 특히 피킷의 딸이 악당에게 쫓길 때의 긴장감은 정말.


 제목의 '오픈 시즌'은 수렵이 허용되는 기간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선 오히려 사람이 사냥 당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죠. 아무리 강한 포식자라 하여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 언젠가는 피식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제목의 '오픈 시즌'은 그런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보다 현명한 포식자는 언젠가 자신이 피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자일 겁니다. 환경 보호도 그런 준비 같은 게 아닐까요? 눈에 보이는 잠깐의 이익을 취하느라 생태계의 섭리를 무시했을 때 오래지 않아 우리가 어떤 대가를 받는지는 이미 많이 보아왔으니까 말입니다.


 '오픈 시즌'의 '오픈'이 타자를 해하는 오픈이 아니라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기꺼이 내 마음을 여는 '오픈'의 시즌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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