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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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의 텍사스. 거기서 흑인 대런은 텍사스 레인저로 일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란 쉽게 말하면 텍사스 주의 FBI라 할 만하다. 현재 그의 삶은 내딛는 곳마다 진창인 상황이다. 가정에 대해서라면 아내 리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일에 대해서라면 한 흑인이 자신의 주거를 침입했다는 이유로 백인을 쏘아 죽였는데 대런이 그 흑인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정직을 당했다. 그러다 친구인 FBI 그렉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텍사스 주 라크에서 일어난 두 명의 살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해 달라는 것이다. 한 명은 흑인 남성이고 다른 한 명은 백인 여성이다. 라크는 인구가 178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 갑자기 살인이 두 번이나 연이어 일어난 것이 아무래도 사건들 사이에 뭔가 연관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대런은 텍사스는 자신의 고향이지만 여전히 여기서는 흑인 보다 백인의 살인 사건을 중시한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라도 나서서 흑인 살인 사건을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렉의 제안을 수락한다. 




 에드거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CWA 스틸 대거 상과 앤서니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애티카 로크의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의 블루버드는 미국의 블루스 가수인 존 리 후커가 발표한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한 편으론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대런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살해당한 흑인 마이크 라이트를 찾아 라크 마을에 온 아내 랜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두 인물이 소설의 주역이 되는데, 그들은 함께 하면서 살인 사건들에 얽힌 진실과 그 와중에 받게 되는 아픔을 나눠 나간다. 작가가 이 둘을 하나의 관계로 묶는 것은 아마도 같이 부부 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런도 아내 리사와 거의 결별 직전까지 가 있지만 랜디 역시 죽은 남편과 이혼의 위기까지 다다라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런은 아내가 떠날 것을 알면서도 텍사스 레인저를 그만둘 수 없고 랜디 또한 왜 남편이 여기까지 와서 살해당했는지 알기 전까진 라크를 떠날 수 없다. 이건 그대로 왜 대런 같은 흑인들이 얼마든지 텍사스를 떠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인종차별이 심한 텍사스를 떠나지 않는 것인 지에 대한 이유와 그대로 이어진다. 거기에 대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텍사스는 고향이니까요.'


 내가 읽은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현실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관계의 딜레마를 뭉근하게 보여주는 스릴러였다. 그건 라크에서 유일하게 흑인이 출입할 수 있는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제니퍼를 둘러싼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니퍼에게 얽힌 과거, 갑자기 제니퍼와 시작된 사랑 때문에 헌신했던 음악 밴드를 떠나 그녀의 곁에 정착하고야 말았던 조, 그리고 죽기 직전에서야 밴드를 홀연이 떠나버렸던 그를 용서한 삼촌의 뜻에 따라 그의 기타를 돌려주기 위해 라크로 찾아온 죽은 마이크 라이트 하며. 이것은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이야기 임과 동시에 떠날 수 없는 자들이 그것을 숙명의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소설이 문제로 삼고 있는 인종차별 역시 후자와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결국 미국이라는 곳을 백인과 흑인 둘 다 떠날 수 없다면 소설에 등장했던 허다한 죽음과 같은 커다란 비극을 양산하기 전에 전과 같은 차별과 적대의 시선은 거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애티카 로크의 '블랙버드, 블랙버드'는 놀랍도록 세밀하고 생생한 등장인물들과 사회의 묘사를 통해 은근히 거기에 대한 사유로 이끈다. 그렇다고 재미 보다 깊이가 더 뛰어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깊이 천착하게도 만들지만 전개될 수록 밝혀지는 사실들 때문에 확실히 후반으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붙는, 스릴러적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에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릴러적 재미도 살아 있고 현재 미국 남부 사회의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소설을 아무래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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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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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의 발전엔 밝음과 어둠이 있습니다. 원자력에 원자력 발전이란 밝음과 핵폭탄이라는 어둠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나노와 AI의 기술 역시 그 중 하나일 겁니다. 그 기술을 특히 의료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죠. 체내에 주입해 자율 활동으로 몸 안에 있는 병원체라든가 암세포 같은 것들을 분석, 정확한 대응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를 통해 불치병까지 치료할 수 있으리란 전망입니다. 하지만 그 밝음만큼 어둠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오드토머스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장르소설가 딘 쿤츠는 그 어둠에 집중하여 일련의 시리즈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5권까지 발간된 제인 호크 시리즈입니다. 전직 FBI인 여성 제인 호크가 주인공인 시리즈죠. 그 제인 호크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이라 불리는 집단과 단신으로 맞서 싸웁니다. 


 미국의 정재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소수의 인물들로 이뤄진 그 집단은 어둠 속에 숨어 자신들이 가진 나노 기술로 자신들이 우두머리가 되는 전체주의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노 로봇들을 호박색 액체 상태로 사람들 체내에 주입하여 그들의 두뇌에 오로지 복종하는 것만이 전부인 노예로 만드는 세뇌 프로그램을 부팅시키는 것이죠. 이러한 '나노웹 기술'을 통해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똑같은 노예 사회가 다시 도래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아르카디언이라 부르는 것이죠. 아르카디아는 고대 그리스가 생각했던 유토피아의 이름이니까요. 오로지 그들의 성적 환락만을 위해 멀쩡한 여성들은 나노 기술로 성노예로 만든 곳도 소설엔 등장하는데, 거기 이름은 '아스파시아'입니다. 이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따온 것이죠. 아시다시피 당시 아테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생이자 페리클레스의 정부인 여성의 이름이니까요. 이처럼 이들은 그리스를 동경합니다. 철저하게 신분이 계급화된 사회를. 한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진술에 따르면 이미 16,000명이 그런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들 역시 평민, 가축 등등의 계급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군요. 


 


 그 분류에 따라 그들은 테크노 아르카디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례로 '아스파시아;에서 성적인 봉사만 하거나 그들의 시설이나 자택을 지키는 충실한 경비견 노릇만 하는 것이죠. 때로는 단지 재미를 위해 자살을 당하기도 하며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목적으로 평화적 집회에 숨어들어가 자폭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한 평화적 집회에선 노예가 된 이들의 자폭으로 300명이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한 머디로, 노예가 되면 자신의 삶은 없습니다. 오직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이익과 재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뿐입니다. 이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구부러진 계단'에서 나노웹 기술의 새롭게 희생자가 된 타누자와 산자이 남매처럼.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오직 제인 호크뿐입니다. 이제 FBI도 아니라 일개 평범한 시민에 지나지 않는 제인 호크만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토안보부뿐 아니라 FBI, 경찰력까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테크노 아르카디언과 홀로 맞서고 있는 것이죠.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할만합니다. 그것도 타노스 급의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형국인 것이죠. 게다가 그녀는 커다란 약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아들 트래비스 또한 아르카디언의 마수로 부터 지켜야 하는 것이죠. 이토록 약점이 많은 제인 호크이지만 그들과의 대결에 있어서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아니, 전적만 보면 아르카디언의 완패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녀의 돌팔매는 지금까지 골리앗의 약점들을 제대로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음모를 알아냈고 보다 상층부의 인물들을 하나씩 찾아 처리할 수 있었죠. 이것이 '사일런트 코너'와 '위스퍼링 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인 호크는 이제 보다 더 윗선에 이르렀습니다. 사이먼과 헨드릭슨 형제에게 말입니다. 하지만 아르카디언 역시 손을 놓고 있진 않습니다. 그들은 제인 호크를 잡으려면 아들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추적을 개시한 것입니다. 은밀하게 미국 권력을 장악한 그들답게 마수는 순식간에 트래비스에게 뻗쳐오고 제인 호크의 부탁으로 트래비스를 보호하고 있었던 군인 출신 부부, 개빈과 제시카는 트래비스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리즈 세 번째 작품, '구부러진 계단'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돌아가며 전개되는 셈이죠. 하나는 타누자 - 산자이 남매 이야기, 다른 하나는 제인 호크의 추적 이야기 또 다른 하나는 트래비스의 도피 이야기.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리 '구부러진 계단'만이 가지는 이채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타누자 - 산자이의 이야기에서처럼 나노웹 기술이 어떤 식으로 사람의 의식을 완전히 바꿔놓는지 마치 1인칭 시점으로 그걸 목도하듯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타누자 - 산자이 남매뿐만 아니라 후반에 이르면 아르카디언 주요 인물의 내면을 통해 더욱 보강되어 나오기도 합니다.(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목의 '구부러진 계단'은 이것의 정점에 있습니다. 그건 아르카디언을 탄생시킨 하나의 태고적 장소임과 동시에 나노웹 기술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기반으로 사람의 이식을 형성하는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건 제인 호크를 '구부러진 계단'으로 이끄는 인물이 혼잣말처럼 떠드는 다음과 같은 말에 집약되어 있지요.


 '나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놀고, 아무도 내가 혼자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지.'(p. 330)


 아마도 그렇기에 작가는 제인 호크를 엄마로 만든 것 같습니다. '구부러진 계단'은 딘 쿤츠가 왜 제인 호크를 모성의 존재로 만들었는지 잘 알게 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성의 모습이 나오니까요. 제인과 반대되는 모성은 지속적으로 자기 자식들에게 단절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관계란 오로지 지배와 복종밖엔 없다고 말이죠. 하지만 제인의 모성은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녀는 헌신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 하니까요. 제인은 아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반대의 모성은 그렇지 못합니다. 반대편의 자식이 기억하는 모성은 오직 공포와 폭력 뿐이죠. 세뇌 당한 타누자 - 산자이 남매가 마지막에 했던 것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딘 쿤츠가 '구부러진 계단'에서 이토록 모성의 대비를 뚜렷하게 연출한 것은 아마도 다음 편 때문일 것입니다. 네 번째 작품인 '금지된 문'에선 이 두 모성 사이에 전면전이 펼쳐질 것 같으니까요. 나노웹 기술이 주입된 이들이 마치 영화 '킹스맨'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량으로 폭동을 일으킨다고 하니 말이죠. 그런 장애물을 뚫고 제인 호크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미국 대륙을 횡단해 나가야 합니다. '구부러진 계단'은 그 전면전을 위한 징검다리로 나노웹 기술의 끼치는 영향을 상세히 기술하여 네 번째 작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보다 핍진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것도 있구요. 네 번째에서 제인이 직접 아들을 구하게 되는 건 바로 여기 세 번째에서 두드러진 모성의 대비를 자연스럽게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겠죠.


 여하튼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고 네 번째 작품을 잔뜩 기대하게 했습니다. 과연 다음 번에 펼쳐질 제인 호크의 전쟁은 어떤 양상일지 궁금하네요. 무엇보다 대규모 전이 예상되리라 더욱 그렇습니다. 부디 다음 권이 빨리 나와주었으면 좋겠네요. 


['구부러진 계단'의 미국판 표지, 여기선 제인 호크의 모습을 볼 수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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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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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Black Lives Matter'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여전히 활발한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알도록 하였다. 특히 그 시위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금 기억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1992년에 6일 동안 벌어졌던 'LA 폭동'이다. 흑인 로드니 킹을 경찰 여럿이 집단 구타한 것에서 촉발된 그 폭동은 LA 전역을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이것은 그대로 인종차별이 미국 사회를 쉽게 붕괴시킬 수 있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주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미국 사회 모습을 보자면 아직도 그들은 그 사건에서 아무런 교휸을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LA 폭동'을 충분히 되새겨보지 못했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무엇을 남겼고 또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무슨 일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성찰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렇다면 소설을 통해 과거의 그 때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침 그런 기회를 가져다 준 작품을 하나 만났다. 제목은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제목부터 뭔가 오싹한 기운이 풍겨오는 이 소설은 놀랍게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스릴러 소설이다. 작가의 이름은 스테프 차.




 현재 LA에 거주하고 있는 이 작가는 그곳을 배경으로 한국계 미국인 사립탐정 주니퍼 송이 활약하는 작품으로 2013년에 데뷔했으며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2015년까지 주니퍼 송 시리즈 3부작을 완료한 그녀가 2019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LA 폭동이 일어나기 1년 전에 같은 도시에서 발생한 '라타샤 할린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무려 29년이 지난 뒤 다시 한 번 서로 얽혀드는  상황을 통해 증오와 용서의 상관 관계를 그려나간다. 라타샤 할린스 사건은 일명 두순자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건 15세의 라타샤 할린스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이 바로 한인 두순자였기 때문이다. 라타샤는 두순자가 운영하는 가게에 우유를 사러 왔다가 절도를 의심한 두순자에 붙잡혔고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쓴 것에 격분하여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두순자를 네 차례 가격했다. 그리고 쓰러진 두순자를 내버려두고 가게를 나가려다 뒤에서 두순자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평소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한인에게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흑인들(이것은 스파이크 리가 89년에 발표한 영화 '똑바로 살아라'에도 묘사되고 있다.)에게 대대적인 분노의 불길을 일으켰고 결국 LA 폭동 때 한인 가게들이 대거 약탈당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스테프 차는 그 고통스런 기억을 다시 불러온다. 두 인물을 매개로 하여. 하나는 흑인 숀이고 다른 하나는 한인 그레이스다. 숀에겐 빛과도 같았던 누나가 있었다. 이름은 에이바. 피아노를 너무나 잘 치고 활달하며 자주적인 그녀는 소극적인 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런 누나는 사촌 레이 대신 우유를 사러 한인 가게에 들렀다가 한인 여자가 쏜 총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맞다. 에이바가 바로 라타샤인 것이다. 소설은 29년 뒤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2019년의 LA도 91년의 LA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을 보여주듯 에이바와 비슷한 나이의 평범한 고등학생 흑인 알폰소 쿠리얼이 그것도 자기 집 뒷마당에서 경찰에게 총을 맞아 숨진 것이다. 그저 현관문 열쇠가 없어 뒷문으로 들어가려던 것 뿐인데 범죄자로 오인 받아 사살당한 것이다. 에이바가 살해당한 상황과 똑같이.


 그렇지 않아도 알폰소 쿠리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경찰에게 책임을 묻는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91년에 죽은 에이바의 이름을 외친다. 그들은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 그녀와 똑같은 억울한 죽음들이 이어져 왔으므로. 그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그 시위 현장에 같이 동참했었던 한인 그레이스의 엄마 이본이 장을 보러 나왔다가 그레이스가 보는 앞에서 한 괴한에게 총격을 당한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생명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 이 사건으로 그레이스는 엄마 과거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에이바를 쏴 죽인 한인 여자가 자기 엄마라는 사실. 경찰은 29년 전 사건의 보복이라고 생각하고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스테프 차의 모습과 미국 원서 표지]



 에이바의 죽음으로 한 때 많이 방황하며 갱의 일원이 되어 범죄에 손을 대기도 했던 숀.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생겨 지금은 정신차리고 간신히 얻은 가정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평범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의 일상이 이본에 대한 저격으로 위협받게 되었다. 경찰이 의심의 눈초리를 자신과 가족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얼마 전 감옥에서 출소한 사촌 레이가 문제였다. 자신과 달리 레이는 여전히 마음을 잡지 못하고 범법과 합법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겐 아내와 아들 대릴, 딸 다샤도 있었지만 감옥에 있는 동안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으로 인한 위축된 자존감 때문에 불안하게 흔들린다. 숀은 이본이 에이바를 죽인 바로 그 여자이며 최근 총에 맞았다는 걸 듣자마자 혹시 레이가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피해자는 어느덧 가해자가 되었고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었다. 이런 자리바꿈은 흥미롭긴 해도 사실 좀 위험한 설정이긴 하다. 제대로 묘사하지 않으면 독자에게 꽤 작위적이란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설득력 있는 전개로 그런 위험에서 벗어났다.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제 역할도 잊지 않는다. 과연 이본을 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은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반전도 마련되어 있다. 거기다 그 반전은 작가가 소설을 통해 주려 하는 메세지와 상승 작용을 일으키도록 연출되어 있다.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기 때문인지 작가가 공을 들인 게 역력해 보인다. LA 특유의 분위기는 물론 주요 캐릭터의 묘사도 좋고 이야기 흐름도 유려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러는 가운데 작가는 차별은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걸 슬쩍 내세운다. 차별은 어떤 인종이든, 계급이든, 국적이든 행해질 수 있다고. 타인을 불신하게 만드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레이스가 한 유투버 기자가 쳐 놓은 함정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흑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드러내버렸던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 않아도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어떤 행위를 선택할 때 이성적 판단 보다 자기 내부에  알게 모르게 형성된 편견이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 바 있다. 무관심과 무책임한 증오 속에 축적된 편견이 언젠가는 우리 모두를 불살라버릴 성냥개비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것. 파멸의 화염을 막는 소방수의 물줄기는 거기에서 분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레이스가 대릴의 손을 맞잡고 자신의 엄마에 대해 알려주는 장면처럼. 이러한 노력들이 현재도 여전히 인종차별의 형태로 횡행하고 있는 적개심의 바다를 가르는 기적이라는 것을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로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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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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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각의 함에 가장 먼저 던져지는 건 패배의 기억이다. 

 특히나 그 주체가 패권을 가진 국가라면.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치를 때, 그들은 북 베트남을 얕잡아 보았다. 국력의 수준이 골리앗과 다윗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랬기애 패전은 더욱 쓰라린 상처였다. 그들은 그 기억을 서둘러 잊고자 했다. 애써 없던 일로 치부하고 미래만 바라보기로 했다. 경마장의 말처럼 그저 앞만보고 질주하기. 과거에 발목을 잡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치부하면서. 이것이 배트남 패전 이후의 미국 분위기였다.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로드워크'는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첫 문장이 그걸 잘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은 끝났고 미국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p. 11)


 주인공은 도스 바튼.

 '블루 리본'이란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현재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고속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자신의 직장도, 집도 옮겨야 할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 둘 모두는 그가 정말 사랑한 것이었다. 물론 회사는 지금 다른 사람에 넘어가 오직 자본의 이윤만 추구하는 속된 곳이 되어버렸지만. 과거의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직원을 부하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동료로 여겼던 사장이 운영했던 그곳은 인간미로 넘치던 공간이었다. 그건 회사만이 아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마을 또한 누구 집에 숫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친하게 지냈고 이웃 사이의 다정함이 넘실거리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 모두가 변했다. 회사는 돈에 팔렸고 마을은 도로 확장 공사로 이제 지도에서 지워지려 한다. 바튼이 아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마을에 남은 건 오직 바튼 집 하나 뿐이다. 그러나 바튼은 옮길 마음이 없다. 그 집은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가정을 이루어 온갖 애환의 기억이 긴 두루마리처럼 집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뇌종양으로 어이없이 이별하고만 아들의 추억이 뿌리내린 장소인 것이다. 그는 그걸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집을 옮기는 건 죽은 아들과의 인연을 송두리째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그를 주위의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쇼핑몰에서 만난 부하 직원 비니가 바튼에게 말한 것처럼 다들 그가 미쳤다고 여길 뿐이다. 심지어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아내 매리조차도.


 매리는 말한다. '과거애 발목 잡혀선 안된다'고. 

 그는 퇴거 기한이 코 앞까지 닥쳐왔는데도 이사할 생각을 하지 않는 남편을 떠나면서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다. 그는 바튼에게 말한다. 이제 자신은 과거에서 자유로워졌고 새 삶을 살 것이라고. 그녀는 바튼에게도 그러라고 말한다. 홀로 된 바튼은 실직까지 당하여 매일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딱 두 가지다. 하나는 그걸 장만하기 위하여 아내와 엄청 노력했던 추억이 서려 있는 테이블 TV로 오래된 옛날 영화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일 밤마다 자동차를 몰고 나가 다른 차가 아무리 클랙션을 울려도 상관하지 않고 제한 속도를 훨씬 초과하여 도로를 폭주하는 것이다. 이건 그대로 그의 마음 속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 상황을 비유하고 있다.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고 싶지만 한 편으론 자신을 오롯이 삼켜버린 과거의 비극적인 기억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스스로 화염병을 만들어 공사 현장을 붙태우면서까지 저항해 보지만 그 모든 몸부림 또한 바다에 빈 병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는 것만 되새긴다.




 그런 그 앞에 두 명의 여자가 나타난다. 

 하나는 밤마다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도와준 히치하이커 소녀이고 다른 하나는 슈퍼마켓에서 보게 된 한 여인이다. 히치하이커 소녀, 올리비아도 바튼처럼 비루한 현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주하지 않고 어딘가에 다른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라스베이거스로 가려한다. 그 곳이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며 거기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찾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바튼은 그녀가 자신과 너무나 닮았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자신과 다르게 그래도 아직 희망을 갖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녀를 대견하게 여기고 기꺼이 많은 도움을 주려 한다. 어쩌면 그녀를 통해 밤마다 고속도로를 폭주족처럼 달리면서도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고야마는, 그렇게 이루지 못하는 꿈을 대리충족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 올리비아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고 바튼은 또 한 번의 씁쓸함만 더 맛볼 뿐이다. 슈퍼마켓에서 본 여자의 이름은 모른다. 그녀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더니 쓰려져 그대로 죽어버렸다.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다만 죽음이었다. 바튼은 그 여자의 죽음에서 삶을 감싸고 있는 허무의 심연을 본다. 자신이 과거에 함몰되어 있든, 내일을 향해 변화를 향유하든 그 무엇을 선택해도 그대로 무채색의 암흑으로 칠해버릴 공허를.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남기려 한다. 

 어차피 언제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렉킹볼을 맞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것에 머리가 깨어지기 전까진 최선을 다해 자기 존재의 증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 증명을 위해 과거를 택한다. 남들이 기피하는 과거에 나서서 발목을 내어주고 자신과 같은 자들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려 한다. 한 곳만 보고 달려가는 이들은 결코 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산화해서라도 그들을 보게 만드리라 작정한다. 바튼은 그렇게 성장하고 자신의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바튼의 발걸음은 동시에 상처를 헤아리기 보다는 어설픈 봉합으로 서둘러 잊어버리기에 급급한 미국에게 강한 비판이 된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양산한다. 참전한 이들은 누구든 영혼을 깊이 옥죄는 고통의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 이들은 집이란 곳이 정말 필요하다. 그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라도. 그러나 패전 후의 미국은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발전이란 환영을 위해 도로 확장 공사로 있던 집들도 없애버리고 그들을 더욱 올리비아와 같은 집 없는 떠돌이 히치하이커로 만들었을 뿐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올리비아는 그런 미국의 훗날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절망과 환멸의 계속된 집적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바튼은 최후의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이 남을 비추는 빛이 되어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다들 스스로 되새길 수 있도록.


 이처럼 스티븐 킹의 '로드워크'는 패전 후 미국인 영혼에 깊은 탐침을 드리우는 작품이다. 

 가장 비판적이지만 또 가장 사려깊게 오늘의 미국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를 모색한다. 1983년에 나온 '부적'은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로드워크'는 1981년에 발표되었다. '부적'이 괜히 그랬던 게 아닌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킹을 그저 선정적인 소재로 재밌는 작품을 쓰는 작가로만 여긴다. 그런 이들에게 '로드워크'는 결코 거기에만 그치는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부적'과 더불어 '로드워크'는 그가 얼마나 동시대의 문제에 민감하여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대화하기를 애쓰는가를 감응하게 하여 그가 여전히 거장의 반열에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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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4-21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나라나 안 좋은 건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듯해요 어떤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전쟁은 더 그렇겠습니다 그런 일을 겪지 않았지만, 한번이라도 겪으면 힘들 듯합니다 바튼은 아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집을 떠나지 않는군요 그런 일은 한국에도 있었을 법하기도 하네요

스티븐 킹이 다른 이름으로 낸 소설이군요


희선
 
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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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사막으로 되고 있다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오아시스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가 누군가의 소유라면 그리고 그가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고 싶으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오직 자기가 명령한 것만 철저하게 수행하는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존이 얼마나 절박하느냐에 따라 선택의 양상을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오아시스의 일원이 되어 그렇지 못한 자들 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기계가 되기로 결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정치부 기자를 역임했으며 정치 경력도 있는 미국의 스릴러 작가, 롭 하트의 '웨어하우스'는 이런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드론을 통한 택배로 엄청난 부를 거머쥔 회사라는 설정은 실제 그런 서비스를 준비 중인 아마존을 얼른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튼 이 소설에 나오는 '마더 클라우드'는 그 정도의 대기업이다. 창업자 깁슨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 보면 된다. 소설은 그 깁슨의 말로 시작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마더 클라우드로 성공했는지 밝히는데 그러면서 췌장암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리는 것도 아울러 고한다. 뒤이어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명은 남자 팩스턴. 다른 한 명은 여자 지아나


 둘은 같은 날 '긴급 고용'에 뽑히기 위해 마더 클라우드에서 면접을 본다. 원래 팩스턴은 자기 사업이 있던 사람이었다. '퍼펙트 에그'라고 달걀을 안에 집어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원하는 모든 요리를 만들어주는 기계를 발명해 사업을 했다. 그러나 주 고객이었던 클라우드가 자꾸만 낮은 단가를 원해 거기에 맞추다가 그만 사업이 망하고 말았다. 사업을 하기 전에 교도관이었던 팩스턴은 그 일을 하다가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자꾸만 상실하는 것 같아서 그걸 보존하기 위하여 사업을 한 것이었는데 이제 그것 또한 실패하여 다시 거대한 기계와도 같은 마더 클라우드의 부품이 되려 하고 있었다. 지니아는 처음부터 수상쩍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에겐 뭔가 비밀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유능한 산업 스파이이다. 그녀가 마더 클라우드에 입사하는 건 오직 의뢰인이 높은 자릿수의 금액을 입금하고 회사를 망칠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자 다른 이유로 입사하게 된 이들은 우연히 팩맨이란 고전 게임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팩스턴은 교도관 이력 때문에 보안 업무를 맡게되고 거기서 마더 클라우드에서 유통되고 있는 마약 오블리비언의 입수 경로를 찾아내라는 임무를 받는다. 지니아는 해킹 프로그램을 심을 컴퓨터 단말기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접근 하기가 쉽지 않다. 마더 클라우드의 모든 고용인은 손목 시계를 차도록 되어 있는데 그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 철두철미하게 감시하는 기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계를 풀고서는 방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이토록 천라지망과도 같은 감시망 아래에서 지니아는 과연 비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꽤 다채롭다. 일단 이야기 전개가 세 사람을 중심으로 번갈아가며 행해진다. 언제나 시작을 여는 것은 깁슨이다. 그의 말은 대체로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통해서 독자에게 제시된다. 다른 둘은 물론 팩스턴과 지니아이다. 깁슨이 말할 때는 그가 말을 다 할때까지 도중에 시점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지만 팩스턴과 지니아에선 때로 수시로 시점이 이리저리 바뀐다. 말하자면 항구적 존재 하나와 유동적인 존재 둘. 이런 인물의 전환 외에도 팩스턴의 것은 마약이 소재고 그것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라 범죄 수사물처럼 보이고 지니아의 것은 첨단 감시 체제를 교묘하게 피해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션 임파서블' 같은 스파이 물처럼 보여 이야기 자체도 서로 달라진 장르적 분위기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한층 더 그렇게 다가온다. 게다가 팩스턴과 지니아, 이 둘 사이의 로맨스도 이뤄진다. 이러니까 이거 뭐, 장르 소설의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마저 난다.


 아무튼 난 앞서 팩스턴과 지니아를 유동적인 존재라 불렀는데, 그건 이 둘의 로맨스와 많이 관계가 있다. 경험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잘 변화시키는지. 지니아가 그렇다. 그녀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입사했다. 그녀는 오로지 임무 완수만 생각하고 다른 건 일절 관심 갖지 않는다. 팩스턴과의 관계도 실은 자기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접근한 것이었다. 둘은 만나게 한 것은 '팩맨'이란 게임이었는데, 지니아야말로 그 팩맨이었다. 조라가 쫓아오든말든 경마장의 말처럼 뒤를 조금도 돌아다보지 않고 죽어라 도트만 먹어치우고 다니는.



 



 그렇게 주변을 전혀 둘러볼 줄 모르는 이였으나 팩스턴과의 관계를 통해 점점 바뀌어 간다. 해들리란 소녀가 릭이란 사내한테서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하자 그를 혼내주고 급기야 그토록 중요했던 자신의 임무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끼는 사람을 구하려고. 그렇다고 팩스턴에게도 변화가 없는 건 아니다. 그도 바뀐다. 처음엔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잠시만 회사에 몸을 의탁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점점 남들의 인정을 받게 되는 기쁨과 자신의 존재가 차츰 더 중요해진다는 즐거음 때문에 그는 마더 클라우드에 온전히 정착할 생각을 한다. 자신을 몰락시킨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런 결정을 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니아였다. 그는 지니아와 함께 하기 위해 안정된 기반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마더 클라우드가 믿을만한 사람들이 질서 체계를 잘 정립한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물론 오블리비언 같은 사소한 결함이 없진 않지만 그런 건 자신이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는 문제라 여겼다.


 하지만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마더 클라우드 때문에 망해버린 도시의 폐쇄된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자신을 저항군이라 소개하던 앰버는 이런 말을 한다.


 "내가 클라우드에 대해 한 말씀 드리지. 그건 우리의 선택이야. 우리가 그들에게 통제권을 줬어. 그들이 식료품점을 다 인수하기로 했을 때,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이 농업 운영권을 인수하기로 했을 때도 우린 가만히 있었어. 그들이 언론, 인터넷 제공업체, 휴대 전화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그 때도 우린 그러라고 했어. 클라우드는 고객만 신경 쓰니까 보다 나은 가격에 동일한 상품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얘기를 들었지. 고객은 가족이라는 말도 들었어. 하지만 우린 가족이 아니야. 우린 대기업이 크게 성장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에 불과해.(p. 396)"


 마더 클라우드가 드론 택배로 오늘의 자리에 오른 건 '블랙 프라이데이' 사태 덕분이었다. 블랙 프라이데이 때, 쇼핑객들을 상대로 한 학살 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오프 라인 쇼핑을 꺼려한 탓이었다. 앰버는 그 사건 또한 마더 클라우드가 조장했을 것이라 말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치료약을 준다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 자신들의 독에 더 중독되게 만드는 마약일 뿐이었다. 팩스턴이 훗날 찾아낸 오블리비언 유통의 진실과 똑같이. 앰버의 말 그대로 마더 클라우드의 사람들은 회사의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나중에 지니아가 충격 속에 발견했던 것처럼 그들이 맛나게 먹던 클라우드 버거의 쇠고기는 사실 그들의 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마더 클라우드는 직원의 대변마저 돈을 받고 팔아 다시 그 입에 처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짓을 해도 마더 클라우드가 태연자약할 수 있는 건, 팩스턴 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그렇게 당하고 사는데도 조금의 먹을 것과 온기에 스스로를 속이며 착취와 굴욕을 용납하고 사니까. 그런 팩스턴에게 지니아는 자신도 각성을 하게 했던 어슐러 르 귄이 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준다.


 "어떤 장소에 대한 얘기였죠. 유토피아. 거기엔 전쟁도 없고 굶주림도 없었어요. 모든 것이 완벽했죠. 대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한 아이가 아두운 방에서 끊임없이 방치된 채 갇혀 있어야 했어요. 아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게 작동하는 방식이었던 거죠. 빛도 없고 따뜻함도 없고 친절함도 없는 곳에서.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조차 그 아이를 무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였구요. 그게 그곳이 작동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마법의 규칙 같았죠.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 한 아이가 고통받는 대가로 모든 훌륭한 것들을 얻었으니까요. 수십억의 삶을 위해 한 사람쯤 희생하는 게 그리 대수겠어요? (...) 그 이야기는 나를 항상 화나게 했어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식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아무도 그 아이를 도와주지 않는 걸까요? 난 항상 그 이야기의 결말을 새롭게 쓰는 상상을 하곤 했죠. 내 상상 속 결말에서는 몇몇 용감한 사람들이 쳐들어가서 그 아이를 안고 나와 그간 누리지 못했던 사랑을 줬어요.(P. 506)



 


 이건 팩스턴이 지니아에게 물었던, 스포일러 상 밝힐 수 없는 일을 감행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귀한 인간의 존재를 하찮은 똥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걸 눈으로 분명하게 확인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내버려둔 채 오멜라스를 그냥 떠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팩스턴 또한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마더 클라우드가 가진 허다한 비인간적인 처사들을 묵과해선 안된다고 말이다. 그 모두는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돌봐주지 않는 한없이 약한 해들리란 소녀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기에.


 이처럼 '웨어하우스'는 단순히 재밌는 스릴러를 넘어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로 집중화되는 현상이 점점 가속화 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한 매서운 비판도 담겨 있는 작품이다. 앰버나 지이나의 말에서 왠지 마음 저 밑바닥에서 치솟는 뜨거운 감정을 느낀다면 그런 당신 또한 지금의 자본주의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문제 의식이 있다면 소설이 더욱 잘 읽히게 될 것이다. 결말이 그리 시원하지 않아서 조금 불만이긴 하지만(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고 하는데 거기서는 결말이 좀 바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살짝 첨부해 둔다.) 그래도 재미와 메시지가 그걸 상쇄하고도 충분히 남기에 좋은 스릴러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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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3-18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론이 택배를 배달하다니... 언젠가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배달 같은 걸 한다고도 하던데, 그게 잘 될까요 잘 못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누군가 한사람만 희생해야 한다고 하면, 자신만 아니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도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기도 하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야 할 텐데...


희선

ICE-9 2021-03-19 02:27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실현시키려 작업하고 있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때로 이기심이란 절박함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선한 사람에 한해서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