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닷컴
소네 케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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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6년 통계이긴 합니다만, 일본에는 고로시야, 즉 청부살인업자가 약 800명 있다고 합니다. 1년에 일거리는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자 고로시야라고 해도 두 세건 정도. 당연히 경쟁은 치열하고 전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군요. 하여 대부분 고로시야들은 투잡을 뛴다고 합니다. 음식 배달, 편의점 알바, 택시 운전 같은 것들. 그러면서도 고로시야로서의 육체와 감각을 어느 정도 조련시켜 놓는 것이 필요하기에(그렇지 않으면 암살자들과의 경쟁에서 쉽게 도태되고 마니까요.)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시에 죽이는 훈련도 병행해야 한다네요. 예를 들면 음식을 배달시킨 집에 소리없이 들어가 주인에게 들키지 않고 놓아두고 온다든지. 그래서 고로시야에게 라면 배달은 금기 직종이라고 합니다. 불어 터졌다고 손님에게 항의 받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죠. 고로시야로 사는 것은 이렇듯 힘듭니다. 자칫 운이 없어 야쿠자 두목 같은 이를 죽이려다 들키기라도 하면 속절없이 혼과 살이 분리되는 경험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경력이 있는 고로야시들은 그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에이전시 회사들이 있다고 하는군요. 일정한 수수료만 내면 일감을 가져다 주고 신변 보호도 해주며 필요한 암살 도구도 마련해 주는. 이 모든 사실이 얼른 믿기지 않는다구요? 100% 리얼입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사부 감독이 만든 96년도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를 보세요. 거기 그대로 다 나오니까.


 이렇게 몸이 힘들고 벌이가 적은 직업인데도 고로시야가 점점 더 많아지는 사회란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요?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렵고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보아도 좋겠죠. 이것이 바로 소네 케이스케가 그의 소설 '암살자닷컴'에서 그리는 2012년의 세계입니다. 작가가 보는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가 일어난 1년 후의 일본 모습인 것이죠. 그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다만 돈을 받고 타인을 죽이는 것밖에는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진 사회. 에이전시로도 그들 수요를 다 감당할 수 없었는지 이제 그들은 온라인 경매를 통해 고객의 의뢰를 받습니다. 경매를 주관하는 회사가 의뢰 받은 암살 건을 올리면 하고 싶은 암살자 즉 고로시야들이 원하는 수고료를 말하고 가장 적은 금액을 말하는 고로시야에게 낙찰되는 방식이죠. 그런 일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암살자닷컴' 입니다. 암살자들은 오로지 아이디로만 접속하기 때문에 실제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회사는 오직 암살자 조직을 외부에 발설하거나 암살자가 암살을 실패 또는 하지 않아서 암살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신원을 확인합니다. 이 처벌 역시 회사가 특별히 선임한 고로시야에 의해 수행되는데 꽤 잔인하고 그것은 모조리 촬영되어 모든 고로시야들에게 배포됩니다. 한 마디로 니들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인 것이죠.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고서 그것도 아주 적은 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게 고로시야 일인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기에 뛰어든다는 것은 확실히 사회가 지옥이 된 것이나 다름없겠죠. 그들에게 96년 상황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살 의뢰 건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일 년에 고작 두 세 건이었는데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몇 건씩 의뢰가 들어오니까요. 뭐랄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살해가 된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1년 후의 일본인 것입니다.



 소네 게이스케. 저는 그를 살풍경의 작가라 부릅니다. 단 두 작품만 가지고 그를 이렇게 불러서 좀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튼 2009년에 나온 그의 단편집 '열대야'와 이번의 '암살자닷컴'을 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네요. 하긴 그의 데뷔작 '침저어'부터 좀 그런 경향이 있긴 했습니다. 일단 작품의 제목만 봐도 이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는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침저어'는 바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물고기고, '열대야'는 답답한 더위로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며 '암살자닷컴' 역시 오직 죽음만이 해결책으로 그 어떤 희망도 구원도 없는 상태이니까요. 그는 늘 이렇게 현재 일본 사회에 대한 낙담과 절망을 자신의 작품 속에 누벼왔습니다. '열대야'와 '암살자닷컴'은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소설은 편의상 연작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살자닷컴'에 소속되거나 그것에 관련된 이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네 개의 단편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반전에 관련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는 하나의 에필로그로 이뤄져 있지요. 이 사회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은 첫 단편부터 드러납니다. 거기서 암살자로 나오는 인물은 원래 경찰이니까요. 그러니까 낮에는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로 밤에는 그것을 위반하여 함부로 사람을 해치는 암살자로 살아가는 인물인 것입니다. 꼭 반전된 배트맨의 모습 같네요. 무너지는 사회의 최후 보루라 할만한 경찰이 이 모양이니 이 사회가 어떤 지는 충분히 감이 잡히시겠죠?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아직 경악할만한 일이 두 번 더 남아 있습니다. 첫 단편 안에서만 말이죠. 이러니 더욱 달리 볼 수 없겠죠? 소네 게이스케는 일본을 한 마디로 'PAINT IT BLACK' 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한 인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처음 그 인물은 언뜻 일말의 희망 같은 존재로 보이는데 소설이 진행될 수록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진실을 확인합니다. 유일하게 앞에서 길을 비추던 반딧불이 홀연히 사라지고 마주하는 것은 막막한 어둠. 광기가 아니고서는 그 진실을 버텨낼 수 없는 상황. 저는 이것이 바로 '암살자닷컴'이 우리들에게 재현하는 세계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후쿠시마 대참사 이후의 일본의 모습으로 말이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현재와 미래는 밝다면서 온갖 매체들을 통하여 긍정과 '간바레~'를 주입하려는 일본 정부와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요? 정직하게 응시하고 용감하게 발언한다는 점에서 전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이야기 자체도 재밌어서 더욱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대야'과 같이 읽어보시면 소네 게이스케가 어떤 작가인가 하는 게 보다 더 감이 잡히실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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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5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06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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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약 ~ 했다면 어땠을까?'
 살면서 한 번쯤 꼭 떠올려 보는 질문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삶이란 수많은 선택의 집적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서 언제나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 선택할 당시엔 좋은 선택 같아 보여서 했는데 막상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도 많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으로 넘쳐 나고 그것을 모조리 다 파악해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재간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정확히 내다 본 것처럼 아직 사람에겐 허락되지 않은 탓이다. 그런 우리에게, 또 그런 우리를 잘 아니까 '가지 않은 길'은 늘 미련이 되어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 다닌다. 물론 과연 그 길을 걸었다면 정말 좋았을지 어땠을지는 알 수 없다. 사람 일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이라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무작정 지금보다 더 좋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미국의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에서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이런 생각 혹은 미련에 한 번쯤 푹 잠겨 본 적이 있다면, '종이달'로 자신의 이름을 아주 인상 깊게 새긴 가쿠다 미쓰요의 '평범'에 실린 이야기들이 결코 남의 이야기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 분명 소설 속 누군가의 내면에서 자기와 아주 많이 닮아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 '평범'은 단편집이다.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6편의 단편이 여기에 실려 있다. 단편마다 나오는 인물이 다르고 그리는 사건도 다르지만 그러나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만일'이다. '또 하나의 인생'에서 그리스로 남편과 함께 여행간 고즈에도, '달이 웃는다'에서 갑자기 이혼을 요구한 아내가 실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야스하루도, '오늘도 무사태평'에서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버림을 받은 후,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별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주부 사토코도, '주방 도라'에서 은근히 프로포즈를 바라는 여자 친구에게 미적지근하게 굴었다가 이별 통보를 받고 훗날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게 되는 뎃페이도, '평범'에서 이제는 방송계의 유명 인사가 되어 버린 고교 단짝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문득 너무나 평범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기미코도 그리고 마지막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에서 이혼 한 날, 마치 자신의 독립에 대한 상징처럼 입양한 고양이 키치를 한 순간의 실수로 잃어버려 애타게 찾고 있는 니와코도 한 번은 떠올리는 것이다. '만약 그  때 내가 A를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B를 선택했다면 지금보다 더 괜찮았을까?'하고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막연히 다른 선택한 삶을 꿈꾸거나 지나간 선택을 반추하게 되는 것은 현재의 삶이 그닥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때다.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 때, 매장에서 내려 놓은 다른 옷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슬그머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선택은 미련의 군불로 피어 오른다. 소설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더러는 지금 삶에 까닭모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또 더러는 평온한 일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았는데 실은 그것이 정작 삶을 붕괴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과거의 상처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해 현재의 일상이 늘 부족과 공허로 가득차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어떤 존재나 상황을 계기로 문득 자신의 삶이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닌가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순간 그들은 돌연 자신을 둘러싼 '평범'에 의혹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쿠다 미쓰요가 '평범'에서 사람들을 내몰기 위해 이 단편들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실은 그것을 통해 일상이 가진 새롭고 다양한 의미들을 다시금 깨닫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일상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마련한 단편들인 것이다. 

 '만약'으로 헤어진 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 하지만 그곳에 있던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나와 똑같이 나이를 먹고, '만일'을 극복해 지금에 다다른, 이따금 과거를 추억하며 그 당시 헤어진 또 하나의 '나'를 그리워한 여자였다. ('오늘도 무사태평', p. 137)
 
 평범한 것만큼 요즘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도 또 없다. 누구나 평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얼굴 아니면 마음 한 구석을 찡그린다. 삶이 평범하기에 권태롭고 우울에 빠지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가구타 미쓰요는 말한다. 평범한 삶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단편이 잘 보여주듯이 오늘의 평범은 과거의 수많은 선택들이 낳은 결과였다. 어느 게 정말 옳고 자신에게 좋은 지 모르면서도 했던 선택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대견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삶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인생'에서 고즈에는 이미 결혼한 몸이지만 그토록 사랑해서 불륜까지 감행했던 친구 연인들이 막상 그들이 소망했던 여행을 하자 별 것도 아닌 일로 자주 티격태격하는 것을 본다. '달이 웃는다'에서 야스히루는 아주 어릴 때 한 아주머니 택시 운전사가 운전하는 택시에 치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용서한 것 때문에 한 사람의 일생이 바람직하게 변한 것을 목격한다. 우리의 삶이 이렇다. 과거의 선택이 정말 자신에게 좋았는지 당시에 알수 없었듯이, 오늘의 이 일상 속에서 수없이 내리는 선택도 어떤 의미가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평범을 못 견뎌 하는 것은 내 삶에 대해 느끼는 부족함이 만들어낸 열등의 허상인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할수록 평범하다든가 특별하다든가 하는 것은 더이상 의미없게 될 것이다. 삶이란 의외로 많은 것이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는 법이다. '평범'은 그것을 은연 중에 깊이 깨닫게 하는 좋은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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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니 2017-03-23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관심가는 책이네요.
메모해놔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ICE-9 2017-03-28 01:23   좋아요 1 | URL
앗, 쭈니님 말씀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데
쭈니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고양이라디오 2017-03-23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ICE-9 2017-03-28 01:25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도 말씀 감사합니다. 쭈니님도 그렇고, 이런 기쁜 댓글은 빨리 확인해야 하는데, 감사의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하네요^^;
 
가상가족놀이 스토리콜렉터 6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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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품 경제의 허망한 잔해와도 같이, 짓다가 버려둔 건축 현장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몸에 무려 20번의 칼을 맞아 잔혹하게 살해된 남자의 이름은 도코로다 료스케. '하루에'라는 아내와 '가즈미'라는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견된 두 가지 물증 때문에 이 살인 사건은 연속 살인으로 밝혀진다. 사흘 전, '주얼'이란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던 이마이 나오코라는 21세의 여대생이 교살 당했는데, 거기서도 료스케 살인 현장에 있었던 '밀레니엄 블루' 색의 화학 섬유와 하얀 페인트 자국이 발견된 것이다. 동일인의 범행이라는 게 증거로 뚜렷해진만큼 경찰은 료스케와 나오코의 접점을 확인한다. 그러다 나오코에게 애인을 빼앗겨 원한을 갖고 있었던 'A코'의 존재를 확인하고 주요 용의자로 삼는다. 료스케는 나오코와 불륜 관계였고 'A코' 앞에 함께 나타나 훈계를 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경찰 내부에서 료스케 쪽 인물에게도 살인 동기가 있는 사람이 없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결국 료스케가 인터넷 상에서 '요시에'라는 이름의 아내와, '미노루'란 이름의 아들 그리고 실제 딸과 같은 이름인 '가즈미'라는 딸과 함께 '가상 가족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료스케는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 모임을 가지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살해되었다. 그들은 인터넷 상에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나누었고 언제나 따스한 위로를 보냈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그들 중 누구는 료스케에 대해 속으로 어두운 생각을 품고 있었을 수도 있다. 료스케의 친딸 '가즈미'가 사건 얼마 전, 우연히 아버지가 낯선 사람과 함께 차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혹시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경찰은 그들 모두를 경찰서로 불러 모은다. 친딸 '가즈미'가 매직 미러를 통해 지켜볼 수 있는 방으로. 그리고 그런 가즈미 옆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전작 '크로스 파이어'의 주인공 형사 이시즈 치카코가 함께 한다.



 '가상 가족 놀이'는 '화차', '이유' 그리고 '솔로몬의 위증'으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가 200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원래 제목은 'R.P.G'. 역할 놀이 게임이라 풀이할 수 있는 'ROLE-PLAYING GAME'을 뜻한다. 바로 료스케가 인터넷에서 가상으로 즐겼던 가족 게임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 제목인 '가상 가족 놀이'는 그것을 좀 더 풀어낸 것이다. 제목은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의 놀라운 반전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진짜 가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짜 가족이었다는 것은 98년에 나온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치카코가 활약한 '크로스 파이어'도 98년에 나왔다. '가상 가족 놀이'에는 '모방범'에서 서류 작업만 하고 있지만 놀라운 통찰력으로 범인이 우연을 가장한 증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 다케가미 에쓰로도 등장한다.


 소설은 에쓰로와 치카코가 료스케 살인 사건 때문에 차출되어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두 소설을 읽은 사람에겐 꽤 반가운 장면으로 다가올 것 같다. 다케가미는 여전히 범죄 수사에 직접 뛰어드는 것을 싫어하고 당연히 용의자를 직접 심문하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데, 소설에서 원래 심문을 맡아야 할 형사가 병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그 일을 대신 떠맡아버려 입이 밖으로 비죽 나와 있는 상태다. 치카코는 '크로스 파이어'에서의 일 때문에 본청에서 관할청으로 강등되어 순찰이나 도는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전에 가즈미가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 하고 있다고 신고를 했는데 그 때 치카코가 한동안 그 집을 경호한 적이 있어, 가즈미가 아는 얼굴이라는 이유로 차출 되었다. 그녀는 아직 '크로스 파이어' 때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 때의 범인과 비슷한 연령대의 가즈미와 미노루를 보는 게 심적으로 영 편치 않다. 그들, 에쓰로와 치카코가 싫은 일을 맡아 억지로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잔재미다. 료스케의 용의자들이 가짜로 가족 연기를 한 것처럼, 잡아야 할 그들 역시 연기를 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소설에서 이중의 연극이 펼쳐지고 있는만큼 연극은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다. 바로 그것을 통해 미야베 미유키는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우리에게 그렇게 좋기만한 것일까 의문을 제시한다. 이런 마음은 '가상 가족 놀이'에서 어머니 역할을 했던 요시에의 말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라나는 인간관계에는 현실 사회의 인간관계와 비슷한 가치도 있고 온기도 있어요. 허위와 거짓말만 횡행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야말로 얼굴을 맞대지 않기 때문에, 자기 모습이나 입장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 있는 본심도 있고, 거기에서 자라나는 친애의 감정도 있는 거예요."(p. 241)


 요시에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숨막히도록 그녀를 가두고 있었던 현실 때문이었다. 나이가 많은데도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받아야했던 온갖 비인간적인 시선들.


 "뭐가 욕구불만이라는 거야. 그렇게 여자를 바보 취급하는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불쾌한 일을 겪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이제 젊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남편이 없다거나 아이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데, 그런 소리를 듣는 여자 심정 네가 알아?"(p. 241)


 이런 요시에의 절규는 문득 '화차'의 여주인공 '신조 교코'를 떠올리게 한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사채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하여 타인의 신분을 훔쳐, 그녀에겐 가상의 신분인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 그런 그녀에게 가짜의 삶이 구원이었듯이, 우리 역시도 가상에서 진짜보다 더 커다란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가를 밝히기 이전에 어쩌다 그 혹은 그녀가 가짜의 것에서 위안과 힘을 얻을 생각을 했는지 헤아려봐야 하지 않을까? '화차'에서 '가상 가족 놀이'까지 이어서 생각하면, 미야베 미유키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영화 '화차'에서 사라진 그녀를 찾았던 이선균이 그녀의 진짜 삶을 목도하면서 비로소 그녀의 신분을 상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것처럼. 소설의 비극이 그렇게 된 연유 보다 보이는 현상을 더 중시하는 바람에 일어난 것을 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꼭 이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은 이들이 있다. 바로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가짜라고 믿는 사람들, 그게 가짜이면 최순실의 모든 국정 농단과 박근혜의 책임이 면책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 이런 그들이야말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진실로 봐야할 전체 그림을 놓치고 마는, 청맹과니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아닐지. 지금 우리 주위엔 그렇게 우리의 시야를 좁히려 하고 본말을 전도시키려 획책하는 가짜 뉴스들이 너무나 많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개의 꼬리로 개를 흔들려는 저열한 술책들이. '가상 가족 놀이'는 이런 것에 쉽게 휘둘리는 이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어줄 것 같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손톱에 때가 끼어 있는지 없는지에 마치 모든 것이 거기에 걸려있는 듯 천착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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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0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7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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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뜩하고 잔혹하며 믿을 수 없다. 오랜만에 돌아온,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혼다 테쓰야가 선보인 '짐승의 성'을 읽고난 느낌이다. 어디에나 흔히 있는 평범한 맨션인 선코트마치다의 한 집에서 일어난 감금 학대와 일가족 살인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사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섬뜩했고, 가족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혈육에게 무참히 살해 당했을 뿐만 아니라 토막 나는 것도 모자라서 살은 모조리 믹서기로 갈려지고, 피는 패트 병 같은 것에 채워지며, 뼈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고와져 모조리 버려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잔혹했으며 이 모든 비극이 머리도 능력도 별로 뛰어날 것이 없는 한 남자에게 세뇌 당하고 몸과 마음 모두 지배 당하여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짐승의 성'은 제목 그대로 인간미 하나 없는 짐승 같은 존재가 다른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자신의 성으로 삼아 가족을 점령하고 가족을 깡그리 파괴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소설엔 아직도 더욱 충격받을 사실이 하나 더 남아 있으니, 소설에 있는 이 모든 이야기가 놀랍게도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라는 것이다. 이른바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이다.



 2002년 3월 6일.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꽤나 오랫동안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손녀였다. 모처럼 걸려온 전화에서 손녀는 급박한 목소리로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을 알리며 감금 당하고 있으니 얼른 도와달라고 전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할아버지는 바로 경찰에게 알렸고, 경찰은 그리로 출동하여 손녀를 감금하고 있었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체포했다. 그러나 손녀의 아버지인 줄 알았던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었고, 손녀의 아버지는 그에게 살해 당했다는 게 밝혀진다. 그러나 그것이 그 집에서 일어난 범죄의 전부는 아니었다. 더 엄청나고 놀라운 범죄가 있었으니, 그것은 체포된 여자의 일가족 6명이 모두 그 집에 감금 되어 살다가 남자에게 재산을 뺏기고 그의 전기 고문과 학대를 받아 죽거나 자신의 딸과 사위에게 살해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살해된 이들 중엔 당시 10살인 딸과 5살인 아들도 있었고, 이 딸은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까지 살해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었다. 희생자가 가족 전원이라는 점과 아무리 세뇌와 고문이 자행되었어도 가족이 가족을 죽였다는 점 그리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가족이 가족의 시신을 낱낱이 조각내고 흔적도 없이 처리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금기와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이 범죄 앞에서 일본은 오롯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짐승의 성'은 그것을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진실이 드러날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울 정도로 어둡고 으스스하다. 누구나 이 소설을 읽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아마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이렇게 멀쩡한 사람들이 이토록 손쉽게 한 남자에게 자신의 더없이 소중한 가족에게 그런 참혹한 짓을 저지를 정도로 지배당해 버렸던 것일까? 얼른 '이런 일이 가능하긴 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일본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니 아무래도 가능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고, 거기다 작가가 실제 사건에서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 잔혹해서 소설에 그대로 담는 것은 무리라 독자를 위해 그 수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많은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가 한탄한 것처럼 정말 현실은 인간의 상상력을 가볍게 뛰어넘는구나 생각되는 한 편, 짐승과 인간의 차이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의 두께처럼 얇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희생된 이들이 평범한 가족이고, 더구나 한 사람은 경찰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게나 짐승으로 추락하는 일이 그렇게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어쩌면 인간성을 포기한다는 것이 그토록 쉬운 일이기에 인류는 온갖 사상과 제도를 두텁게 만들어 짐승으로의 퇴로를 두텁게 차단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세상이 불안하고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가족에게 기댄다.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혈연으로 만들어진 유대라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하기에 가장 강고하고 신뢰할만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은 그 가족이란 것마저 너무나 손쉽게 붕괴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식이 부모를 감시하고 학대하며 고문에 살해까지 서슴없이 한 것을 보노라면 가족의 그런 강한 유대도 어쩌면 그저 우리의 상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절로 드는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이 일본에 가져다 준 충격과 공포가 너무나 컸기에 작품으로 사건을 다룬 게 혼다 테츠야의 '짐승의 성'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논픽션과 픽션으로 만들어졌다.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도 세 권에 걸쳐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혼다 테츠야는 왜 이 사건을 소설로 만든 것일까?


 소설을 흔히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소설이 동시대와 조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떤 소설이든 나름대로 그 시대상에 대한 상념과 발언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이야기를 짓고 나눈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에 일차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 본질적인 마음은 지금의 소설가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들역시 경험의 형태를 가진 외적 자극이 글을 촉발 시켰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성'도 현재 일본의 어떤 모습이 혼다 테츠야로 하여금 쓰게 만든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수긍이 가능하다면, 과연 현재 일본의 무엇이 '짐승의 성'을 쓰도록 만든 것일까? 이것은 소설의 내용을 보면 어느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바로 갈수록 우국화 되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높아져만 가는 일본 국민의 지지율 상황이 혼다 테츠야로 하여금 '짐승의 성'을 배태하도록 한 것이라고 말이다.


 아베 정권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영국의 브렉시트를 가져 온 마음 그리고 미국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현재 어렵고 불안하게 살게 된 이유를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족속들' 탓이라 여기고 있으며 그것들을 내 눈 앞에서 치워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지지를 한 것이다. 이 모든 경향들이 하필이면 한 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국가들에게서 더 현저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향수에 빠진 자들과 똑같이 화려했던 과거의 옛 영광을 회복하여 보다 더 강대한 국가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영락한 현재의 처지를 상상적으로 잊고자 하는 마음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인 조나스 쿠아론이 감독한 '디시에트로' 영화는 이런 심리를 잘 보여주는데, 거기서 멕시코 밀입국자들을 총으로 마구 학살하는 미국 백인은 집도 없이 사냥개 하나만 데리고 낡은 차 하나를 타고서 황야를 떠도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한없이 전락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멕시코의 밀입국자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치유한다. 그것이 치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멕시코 보다 우월한 미국인이라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도 살인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정당화 된다. 일본도, 영국도 그리고 미국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는 근본엔 바로 이런 자의 초상이 있는 것이다. '짐승의 성'은 바로 그런 일본인의 초상을 재현하고, 그 근원에 있는 저열한 심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 부분은 아직 식구들이 본가와 마치다를 오갈 때 이야기라서 저는 그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모르지만.... 어머니가 직접 말씀하셨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요시오 씨와 이어지는 일이 자신의 서열을 우위로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어머니 나름 생각해서 그러신 게 아닐까 하고..."

 모든 암컷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한 마리의 강한 수컷에게 붙으려고 한다. 그 경쟁에서는 부모자식이나 자매라는 관계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인간사회의 구도일까.

 이게 짐승의 무리와 다른 게 뭐가 있을까.(p. 193)


 이렇게 내가 달라 붙으려는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강한 무엇에 달라 붙어 스스로를 상상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여기고 싶은 게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현재 일본의 적나라한 초상이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 혼다 테츠야는 다시 한 번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살인 사건'을 세상 속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실제 사건에는 없었던, 그리고 이야기를 선코트마치다와 양분하고 있는 '신고의 가정'에서 나타난다. 소설은 아주 단란한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는 신고와 세이코 가정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불쑥 세이코의 아버지가 동거하게 되는데, 신고는 이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세이코의 아버지인데도 자기가 보기엔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게 영 보기 싫은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쫓으려 한다. 나는 이것이 그저 미스터리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나온 설정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런 신고의 반응은 현재 일본 내로 유입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제 3 세계 사람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선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에게 그들은 불쑥 들어와 원래는 자기 자리여야 했을 곳을 빼앗은 사람들이고, 자기보다 훨씬 못한 일들을 하는 주제에 감히 자신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신고의 생각 그대로다. 그래서 신고가 그랬듯이, 인권이든 뭐든 필요없고 그저 내 눈 앞에서 얼른 치워주기를 원한다. 이런 마음들이 아베를 지지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그런 마음들이 점점 주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다 테츠야는 여기에 커다란 반전을 가져 온다.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들이 '훼방자가 아니라 실은 구원자였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짐승의 성'은 혼다 테츠야의 경고로 들린다. 그런 식으로 저열한 욕망에 기대어 자꾸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방치하고 불합리한 행위를 방조하며 비이성적으로 거들고 나서기까지 하면 결국 당신들도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사건'의 희생자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다음의 부분에서 그 마음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장기간에 걸친 감금이라면..."

 "'학습성 무력감' 이야긴가요?"

 그렇다. 바로 시마모토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장기간 감금되어 폭력을 당하게 되면 사람은 점차 빠져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도망칠 기력조차 빼앗기게 된다는 학설이다.(p. 164)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모든 범죄에 이유를 밝힐 가치가 없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람은 범죄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범죄가 발생하는 정신적, 사회적 구조를 해명하고 범죄자를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인간은 무서운 것이 아닐까.

 자신이 피해자가 되는 건 당연히 무섭지만, 가해자가 되는 것도 똑같이 무서운 일이다. 자기 안에도 범죄의 싹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괜찮더라도 언제 자신도 범죄자가 될 지 모른다. 그래서 알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자신과 범죄자는 뭐가 다른가. 범죄자가 되는 사람과 되지 않는 사람과의 경계선은 어디에 있는가.

 가장 무서운 일은 그 경계선이 없는 것이다. 우메키 요시오를 체포하고 범행 이유를 자백시켜서 그의 지난 인생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들과 요시오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p. 204)


 소설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이 소설이 더 공포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학습성 무력감'은 그대로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악의 본질이라고 보았던 '무사유'와 다를 바 없다. 20세기 이후, 인류 최대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유태인 학살은 바로 이런 독일 인민의 무사유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에서 잘 보여줬듯이 당시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독일 인민의 마음은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인민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때 독일 인민이 자신의 무사유 때문에 자신도 희생자가 되었듯이, 일본도 같은 운명의 길을 걸을지 모른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다른 이의 고통을 못 본 척 할때, 시대가 날로 나쁘게 전락해 가는 것을 모르쇠 할 때, 무사유 속에 드리워져 있는 비극, 다시 말해 그런 자들 역시 반드시 희생자가 된다는 불길한 운명 역시 점점 현실화가 된다는 것을 역사는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것은 '기타큐슈 일가 감금 살인 사건'의 과정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집약된 모습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앞에 나와야 했던 것이다. 나의 상상적 우월감에 도취하기 위하여 타인에 대한 적대와 학대가 날로 증가되고 있는 이 시기에 하나의 준엄한 경고처럼 말이다. 비단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박사모'라든가,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난리났네' 하면서 웃은 당시 청와대 대변인 하며 지금도 여전히 구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나 청와대의 7시간에 대해서 철저히 모르쇠 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맞장구 치는 사람들을 보면 기타큐슈 일가의 참극은 그리 우리와 멀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자를 볼수록 우리는 더 많이 샤유해야 하고, 약하고 아픈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광화문 광장의 백만 촛불이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타인을 구하는 것이 곧 나를 구하는 일이다. '짐승의 성'이 아니라 '인간의 광장' 되는 길은 이리도 단순하다. 진리는 단순하다.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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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 2016-12-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사건을 다룬 게 혼다 테츠야만이 아니었군요. 이 작품은 너무 잔인해서 두번 다시 읽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읽어내신 글을 보니 언젠가 한번더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ㅎㅎ

ICE-9 2016-12-23 16:01   좋아요 0 | URL
일본 사회에 안긴 충격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평범했던 사람들이 그것도 가족에게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니 읽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아마도 생각이 사회적인 걸로 나아간 것 같아요. 이런 사건이 일본인 특유의 권위 순종적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체면을 중시하는 특성 탓인지, 아직도 이들의 행태가 잘 이해 안됩니다. 그래서 저 역시 또 읽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2016-12-24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4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5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7-01-01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었군요. 그냥 추리 소설이라고 지나쳤는데.
제 직업 때문에 이런 관련해서 생각이 점점 많아집니다. 인간을 극단으로 모는 것들에 대해.

헤르메스님, 너무 오랜만에 들리네요.
새해에는 종종 들리겠습니다, 평온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2017년 되세요.
변함없는 애정을 보냅니다~ (라고 말해도 되는 사이죠, 우리?)

ICE-9 2017-01-18 15:02   좋아요 0 | URL
와, 마녀고양이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댓글은 따로 남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녀고양이님이 글을 올릴 때마다 들러서 읽었었는데 많이 바쁘신 것 같더군요. 새해엔 좀 여유가 많이 생기셔서 마녀고양이님 글을 많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 역시 변함없는 애정을 보냅니다^^
 
유리 갈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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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책이 있다. 한 번 읽게 되면 굉장히 재밌는 것은 아닌데 어쩐지 중도에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책이.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가 그랬다. 왜일까? 끝까지 읽으면서도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뭔가 독특한 분위기 탓일까? 어쨌든 이 소설 상당히 음습하다. 세인의 상식 같은 것은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제 갓 서른이 된 여성 세쓰코는 고다 기이치로라는 육십대 노인의 아내다. 머릿속으로 남편과 아내의 나이차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놀라운 사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다 기이치로는 원래 세쓰코 엄마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엄마의 정부로 있었던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와 관계를 가졌다. 그렇다고 세쓰코가 남편에게만 충실한 여자도 아니다. 다른 남자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첫 직장이었던 회계 사무실의 운영자 사와키. 그녀는 자주 사와키에게 안긴다. 하지만 남편에게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문득 유하 감독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떠오른다. 세쓰코는 그 영화에서 엄정화가 분했던 캐릭터와 비슷하다. 그녀는 불륜의 상대인 감우성이 분한 남자가 이렇게 두 집 살림 하는 거 괜찮은 거야? 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아. 그냥 조금 더 바쁘게 산다는 느낌 뿐이야." 세쓰코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남편과의 관계도 사랑이 아니라 돈을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남편 기이치로가 뭔저 권했다. 스물 셋의 세쓰코에게 평생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도록 해 줄테니 자신과 결혼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는 객실이 열 두 개인 모텔 '호텔 로열'의 사장이었다. 세쓰코는 결국 노인의 아내가 되었고 그 대가로 여유와 안정을 얻었다. 세쓰코에겐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있다. 바로 단가다. 그녀는 마을의 단가 짓는 모임에 다니고 있다. 남편의 종용에 자신이 지은 단가를 모은 책도 하나 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유리 갈대'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유리 갈대'란 제목을 가진 단가는 이러하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p. 44)


 단가의 앞 부분은 그대로 소설의 비유 같다. 세쓰코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이야기의 세계란 정말로 축축한 땅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음습하게 축축하다. 일단 남편이 세쓰코가 사와키에게 안긴 날, 교통 사고를 당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다. 내리막길 커브를 직진으로 달렸다고 한다. 세쓰코는 남편을 병문안 온 엄마를,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까지 데려다 주었다가 거기서 실은 남편이 여기서 엄마를 만나고 돌아가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추궁하자, 엄마 리쓰코는 세쓰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와 결혼한 뒤에도 우리 사이는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어!'


 그건 그렇고, 세쓰코는 남편이 사경을 헤매게 되자 남편이 죽기 전에 집을 나가버린 전처의 딸 고즈에와 만나게 해주려 한다. 사와키를 시켜 고즈에를 찾고 보니 고즈에는 생계가 궁지에 몰려 대마를 키우고 파는 일을 거들고 있다. 세쓰코는 고즈에에게 당장 그것을 그만두라고 하며 앞으로 생활비 일체는 자신이 담당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아직 축축한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세쓰코의 단가 모임 중에 미츠코라는 여인이 있다. 그녀에겐 남편과 마유미라는 일곱 살의 딸이 있는데, 하루는 미츠코가 세쓰코에게 딸을 맡기고 사라져 버린다. 알고 보니 딸 마유미는 아빠 그러니까 미츠코의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미츠코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세쓰코에게 맡긴 것이었다. 세쓰코는 마유미를 고즈에에게 돌보게 한다. 이런 상황이니 어찌 축축한 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쓰코는 꿋꿋하게 버텨내려 한다. 해야 할 일은 하고 맡아야 할 책임은 도맡으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지 않고 굴러가도록 만든다. 쓰러지지 않는 도도한 갈대처럼. 그래서 유리 갈대는 세쓰코 자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녀를 흔들어대는 바람을 쉬이 그칠 줄 모른다. 더 기막힌 사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은 남편이 6개월도 채 살지 못하는 시한부 생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내리막길의 커브를 직진한 것도 자살하려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붕괴는 이미 막을 수 없다. 마유미의 가족이 그랬듯, 벌써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버린 것이다. 이 소설이 세쓰코가 불에 타 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녀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축축한 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애초부터 그녀의 삶은 그녀가 쓴 단가처럼 끝없는 유리관을 흐르는 모래 소리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그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그녀의 엄마 리쓰코에게 있었다. 엄마 리쓰코는 세쓰코에게 이런 삶을 내내 선사했던 것이다.


 "난 네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처음부터 포기했어. 열다섯 살 나이에 엄마를 떠났기도 하고. 우리 엄마도 멀쩡한 엄마가 아니었거든. 시도 때도 없이 남자 출입이 끊이지 않았어. 동시에 양다리, 세다리 걸치고. 어쩌면 더 있었을지도 몰라. 술집을 하는 건지 매춘을 하는 건지. 내가 집에 들락거리는 남자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못 본 척하는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돈까지 가로챘던 여자야. 딸을 쓰러뜨리는 남자 뒤에서 끝날 때까지 보고 있었어. 그래서 열다섯 살에 바로 집을 나와버렸어. 이런 내가 엄마인 척하면 너도 싫었을 거야."(p. 142 ~ 143)


 이토록 커다란 과거의 상처를 지닌 자가 어떻게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딱 하나, 과거와의 진정한 결별 뿐이다. 정녕 과거를 딛고 전혀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소설의 처음이 그녀의 죽음인지도 모른다. 불새처럼 죽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는. 소설은 그런 순간을 준비한다. 이 소설엔 이상한 연대가 있다. 부모 세대로부터 갖은 상처를 받은 자들이 그 상처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연대가. 자신의 상처를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드러내어 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한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연대가. 그것이 마유미를 떠 안은 고즈에의 집에서, 그리고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는 반전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유리 갈대'는 파격의 소설이다. 이런 내용의 소설에 흔히 나오는 용서라든가 화해 같은 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대신 '유리 갈대'는 '썩은 것은 붕괴되어야 한다'고, '완전히 절멸시킨 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소설엔 당신을 섬뜩하게 만드는 순간이 두 번 존재한다. 바로 그 순간에 소설은 진심을 내비친다. '당신도 이런 삶을 살고 있어? 그러면 끝내! 그 용기를 내가 빌려주겠어.'라고. 이것은 남성과 여성 관계에도 통용된다. 왜냐하면 소설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설 세계에서 남성은 지배자로 군림한다. 여성은 그들의 세계에 종속되어 신체와 영혼에 지속적으로 새겨지는 아픔을 감내한다. 소설 속 남성들은 때로는 자비 없는 폭력을 또 때로는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지만 주체인 여성들을 여전히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똑같다. 여성들은 늘 식민지로 존재한다. 소설은 그들의 독립은 그들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그녀들은 남성들의 식민지를 탈주하여 진정한 주체가 되어 강고한 연대로 독립과 자유의 영토를 만들고 꾸려 나간다. 아마도 내가 끝까지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이 정도로 단호하고 굳건한 의지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리 갈대'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네 번째로 소개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난 이것 말고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만 읽었는데 그 단편집을 읽었을 때도 이 작가 뭔가 심상치 않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유리 갈대'를 읽은 지금은 이 작가가 거의 기리노 나쓰오 급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사쿠라기 시노나 기리노 나쓰오 모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평범한 주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이 가진 파격이나 전복성을 생각하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영유하던 주부가 이력의 전부라는 게 얼른 믿겨지지 않는다. 공포 만화가로 유명한 이토 준지는 언젠가 자신을 가장 무섭게 만드는 것은 일본 여성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기리노 나쓰오에 이어 사쿠라기 시노까지 만나고 보니, 왠지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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