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일을 소설로 풀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 작가인, 츠지무라 미즈키이죠. 이 말은 제가 그의 작품을 아직 딱 하나밖에 읽지 못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네, 저는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만 읽었는데요, 거기에 묘사된 십대 아이들의 일상이나 심리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서 아무래도 작가가 직접 겪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라 이름을 뇌리에 새겨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작품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그것이 바로 '거울 속 외딴 성'입니다.


 2018년 서점 대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서점 대상은 점수제로 운영되는데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 도저히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더군요. 표지까지 예뻐서 더욱 소장 욕구를 높였구요. 




제목에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과연 설정은 판타지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거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외딴 성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와는 결이 좀 달랐어요. 외부의 적을 물리치거나 세계를 구원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고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상처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고코로란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현재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거의 집단 따돌림에 맞먹는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예민한 나이에 타인에게서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다 보니 세상이 잔뜩 무서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매일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신 거울에서 빛이 나는 걸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거울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거울에 손이 닿자마자 그만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립니다. 거울 속으로 들어와버린 고코로 앞에 나타난 것은 늑대 가면을 쓴 여자 아이. 그 아이로 인해 고코로는 외딴 성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 똑같이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성 깊은 곳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소원의 방'이 있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소원을 이루는 자는 한 명 뿐이야. 빨간 모자들."

 "빨간 모자?"

 "(...) 너희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빨간 모자들이지."(p. 51)


 그렇게 일곱 명 중 한 명이 성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을 때까지 내년 3월을 기한으로 계속 성으로 오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찾고 싶을 때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에 있는 동안은 뭘하든 자유입니다. 굳이 열쇠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다만 밤에는 올 수 없습니다. 성에 올 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외딴 성은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있을 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들은 성에 와서 게임을 하고 이런저런 수다도 떱니다. 그러면서 혼자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또래와의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타인을 대하는 법,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 등등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란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배워나가죠. 인용한 말에 나왔듯, 이 소설은 그림형제의 유명한 '빨간 두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빨간 두건 소녀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하다가 길을 잃고 그만 늑대에게 희생당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늑대는 길을 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변형이 재밌게 여겨지더군요. 아, 그러나 무서운 늑대도 있습니다. 금지된 시간에 성에 있게 되면 정말로 무시무시한 늑대가 나타나 아이를 잡아가 버리니까요. 어쨌든 환경의 변화로 별안간 세상의 거센 공격을 받아 자신만의 외딴 방에 갇혀버린 아이들이 외딴 성을 통해 그런 세상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치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함께 한다는 경험이,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이 자신 또한 얼마나 현명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결국 자신의 마음이 강해지지 않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지옥을 만난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 혹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엔 많은 세계와 길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마음 또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나왔듯이 네트(세계)는 광대하니까요.


 이 소설은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게 최고의 독서법 같기에 책에 대한 말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도 요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저 약간 다르게 오늘의 시간을 지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혹시 그런 삶에 상처를 받고 싶다면 위로와 그런 상처따위 전혀 받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픈 마음으로 이 책을 그들 곁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8-10-0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아이들이기에 서로 알았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이나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 해도 자신이 가장 힘들다 생각하지만... 비슷한 사람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아쉬워하지 않고 다들 무언가 아픔이 있겠지 생각하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여러 권 만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듯해요 여자 친구들 이야기, 읽지 못했지만 결혼하려는 사람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도 있고(이건 드라마로 봤군요), 죽은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츠나구, 이건 영화로 만들었더군요), 지난해에는 입양...


희선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보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인 '타락천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극중에서 청부살인업자로 나오는 여명이 아주 늦은 밤의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남자는 오랜만에 만난다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여명은 할 수 없이 인사에 응하면서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가 요즘 무슨 일하냐고 묻자, 곤혹스러움은 더욱 짙어진다. 그러는 가운데 여명의 독백이 이렇게 지나간다.

 '청부살인업자에게도 고교 동창은 있다.'


 청부살인이라는, 사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우리와 그리 다를 바 없는 한낱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니면 현재엔 비록 청부살인업자라는 괴물이 되었을 지 몰라도 과거의 한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어쨌든 청부살인업자, 그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 문화 속에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는, 특히 주인공인 경우엔 대부분 같은 인간이라는 뜻에서 인간다움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 인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의 청부살인은 주로 범죄자 같은 악인을 표적으로 삼는다. 살인의 정당성을 주어서 주인공이 저지르는 살인이 가지는 부정성(否定性)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라는 연료가 없으면 멀리 갈 수 없는 자동차와 같은 존재니까 말이다.


 청부살인업자가 나오는 영화 중에 가장 유명한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에 나왔던 주윤발 캐릭터를 생각해 보라. 언제나 마피아의 보스만 표적으로 삼고 거기에 휘말려 한 여가수가 불행하게 시력을 잃게되자 죄책감을 느끼고는 곁에서 끝까지 돌보는 것까지 하지 않던가? 보통은 이렇게 묘사한다. '청부살인업자'란 캐릭터는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살인자'란 단편에서 처음 등장시킨 뒤로, 하드보일드 장르에 단골로 등장했다. 그러나 주인공인 경우엔 그런 비정(非情)함이 잘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괴물을 더욱 괴물로 만들 뿐이니까 말이다.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 '사무라이'에 나왔던, 알랭 드롱이 분했던 킬러가 대표적이다.('사무라이'는 '첩혈쌍웅'의 원본과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내내 대사 한 마디 없다. 언제나 굳은 침묵으로 무표정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을 거리낌 없이 저질러 사회의 예외적 존재가 되는 그는 그 외양으로 인해 더욱 그렇게 된다. 침묵과 무표정은 그를 불가해한 존재로 만든다. 그는 인간일까, 괴물일까? 우리는 궁금하다. 거기에 멜빌은 살인하는 그를 목격했지만 고발하지 않는 여인과의 관계를 통해 알랭 드롱이 인간이라는 것을 슬쩍 드러낸다. 비록 지금은 괴물이지만 마음 한 편엔 인간다움이 있어, 언젠가 인간이 되려 하는 괴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그의 죽음이 씁쓸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고독'이라고 제목을 붙였을만큼. 이처럼 비록 일말이나마 인간다움을 품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독자는 그를 끝까지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온통 검게 칠해진 페이지만 있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없듯이.



 이시모치 아사미의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제목에 나와 있듯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청부살인을 한다. 한 번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하면 650만엔이 그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가 직접 의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의뢰를 받는 이는 따로 있다. 그 일은 현재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가 맡고 있는데, 그와 주인공이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중간에서 둘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가 또 하나 있다. 그는 현재 지방 공무원이다. 의뢰를 맡는 사람은 그 중간에 있는 전달자만 만나고, 주인공 역시 그 전달자만 만난다. 이렇게 하면 의뢰를 받는 자와 청부살인을 하는 자 중 누가 체포되더라도 나머지 한 사람은 보호받을 수 있다. 물론 중간 전달자가 체포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그는 의뢰도, 청부살인도 하지 않고 단순히 의뢰 받은 것과 청부살인업자가 살인을 맡을 것인지 말 것인지만 전할 뿐이니 법망에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튼 주인공이 한 축을 맡고 있는 청부살인은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단편집이다. 주인공이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하는 게 주된 줄거리인 단편이 모두 일곱 개 실려 있다. 맞다. 당신은 이 책에서 일곱 번의 청부살인을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주인공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마피아의 보스이거나 범죄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은 냉정하게 살해한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그리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을 보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렇다고 청부살인업자가 어떤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한층 더 불편하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독특한 컨셉의 소설을 가지고 있다. 청부살인업자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탐정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그렇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은 청부살인을 하기 위해 목표 대상을 스토킹 하는데(이런 식으로 보다 잘 죽이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어디까지나 원활한 살인에 맞춰져 있다.) , 그 때마다 목표물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수수께끼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테면 첫 단편에서 타겟인 여성이 밤마다 몰래 나와 검은 물을 버리는 것과 같은. 


 그는 타겟들이 그러는 이유를 죽여 놓고 난 뒤 추리 한다. 이처럼 소설은 주인공이 의뢰를 받고, 타겟을 따라다니다 수상한 행동을 목격한 뒤 처리하고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 추리한 것을 중간 전달자에게 말해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미스터리가 소소한 것이기에 흔히 말하는 일상 미스터리 계에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청부살인업자가 탐정인 일상 미스터리 계 소설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두 가지가 조합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시도는 매우 신선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그리 성공적이진 않다. 오로지 돈을 위해 별로 죄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 살인에 비하자면 하찮은 것에 불과한 수수께끼를 목숨보다 더 비중을 두고 생각한다라? 잘 납득되지 않는 설정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타겟에게 절대 감정이입 하지 않으려고 의뢰인의 신원도, 그 동기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사소한 행동에는 왜 의문을 품는 것일까? 그것을 헤아리려면 상대의 입장에 서야 하니, 그 또한 감정이입의 요소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모순으로 보인다. 그저 미스터리를 가져오기 위해 설정된 호기심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무리한 설정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걸 설정했다는 자체에서 난 작가의 윤리 의식 역시 조금 꼬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작가의 모습은 내게 마치 잠자리 날개를 뜯으면서 왜 잠자리에겐 날개가 네 개밖에 없고 이렇게 쉽게 뜯겨나갈까 궁금해하는 아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주인공에게 애인이 있는데, 그 애인이 주인공이 청부살인업자라는 걸 알면서도 사귀고 있다는 점이다. 뭐,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소설에 대놓고 나오니 상식적인 견지에서 얼른 납득이 안 된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평범한 제목처럼 소설의 주역들은 대부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계기나 뚜렷한 동기 없이 어쩌다 청부살인업계로 흘러든 사람들이다.(주인공이 과거를 술회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라 하는 느낌이다. 소설은 지속적으로 살인청부업계가 그리 먼 세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치과의사, 공무원, 중소기업 경영 컨설턴트, 만화가가 이들의 직업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렇게 소설은 평범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살인청부도 그런 평범한 세계 속에 속한다고 알린다. 주인공의 애인이 그러하듯, 우리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이들이 살인청부를 쉽게 용납하는 것처럼.


 과연 여기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돈 때문에 이토록 쉽게 사라지는데도 모두들 그걸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타인의 삶을 하찮게 바라보는 곳.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허다한 갑질 사태를 볼 때 드는 마음 그대로 바로 그런 곳이 지옥은 아닐까? 타인에 대하여 정작 궁금해하고 헤아려야 할 대상은 삶이라는 것이건만, 본질이 되는 삶은 홀연히 사라지고 삶에 견주자면 한없이 사소할 행동의 의미에만 천착하는 건 그저 내게 흥미 있는 것만 취하려는, 그렇게 타인을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소설은 바로 여기서 재미를 주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대로 남의 삶을 하찮게 만드는 것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니 이런 태도가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소설에도 어느 정도 윤리적 틀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윤리적 틀의 주된 축은 타자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한 청부살인업자 주인공들이 가졌던 인간다움도 근본엔 그것이 있었다. 타자의 삶이란 결코 나만을 위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장르 소설이라 하여도 그러하다. 이 소설은 2017년에 나왔다. 이런 소설의 등장이 당시 일본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공기와 어쩌면 관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것을 느꼈기에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모리미 도미히코. 참 독특한 작풍을 보여주는 소설가죠. 현실과 환상, 일상과 비일상을 자연스럽게 뒤섞는 그의 재능 때문인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참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온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비롯하여 뒤이어 나온 '유정천 가족' 그리고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와 '펭귄 하이웨이'까지 무려 네 작품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거든요.('펭귄 하이웨이'는 개봉 예정입니다만.) 분명 독자의 상상력을 한없이 자극하는 그의 이야기가 영감의 텃밭을 만들어준 까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한 번 들으면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그러한 작가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인 것 같습니다.


 한 남자(이름은 나오지 않고 내내 '선배'로만 불립니다.)가 대학 동아리 선배 결혼식 뒷풀이 자리에서 거기에 참석한 '검은 머리 아가씨'(소설은 여주인공인데 남자처럼 역시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를 우연히 보고는 첫 눈에 반해 그녀를 뒤쫓아 교토(작가가 쓴 모든 소설에 배경이 되는 도시입니다.)를 밤새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선배'는 '검은 머리 아가씨'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게 그와 비슷하죠. 한 편, '검은 머리 아가씨' 또한 이제껏 알았던 세상과 전혀 다른 것을 만나게 됩니다. 럼주에 빠져 있는 그녀는 좋은 술을 찾아 밤의 거리로 나섰다가 세상의 과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야말로 '환상 속 세계'를.




 밤이라는 것이 몽환의 시간이기에, 거기다 그 몽환을 더욱 부추기는 술이 있기 때문에 '검은 머리 아가씨'와 '선배'가 히구치와 하누키(이 두 인물은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에도 등장합니다.)를 만나고 '가짜 전기 부랑'이라는 환상의 술을 찾아 '이백'(당나라 시인인 그 이백일까요? 술 하면 떠오르는 시인이긴 한데.)이 모는 3층 전차에서 '술 마시기 시합'을 벌이기까지의 이야기는 사전 설명 같은 게 하나도 없더라도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개연성이나 현실성을 많이 따지는 독자들은 이러한 작가의 전개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달테지만 작가는 시침을 뚝 때며 '이 세상 어딘가에는 진짜 이런 장소와 존재들이 있을지도 모르잖느냐'라고 말하듯 잘도 현실과 환상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갑니다. 일본은 사면이 바다인 섬 문화의 성격 상 애미니즘적인 전통이 우리나라보다 강하고 '교토'라는 도시 또한 다른 데보다 전통적인 게 많이 살아있는 장소이기에(작가가 이 소설에서 일부러 옛날 투의 문장을 쓰는 것도 이 '교토'라는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게 아닐지) 작가가 소설에 이백을 비롯하여 '헌책 신'이라든지 하는 기이한 존재를 마구 등장시켜도 독자들이 별 위화감을 느끼지 않으리라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 소설엔 5월에서 12월까지, 사계절에 얽힌 네 개의 에피소드가 있으며 구성은 '선배'와 '검은 머리 아가씨'가 차례를 번갈아가며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누군가를 뒤쫓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검은 머리 아가씨'를 뒤쫓는 '선배'의 모습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이백'이 모는 커다란 3층 전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오르게 하는군요. '하울'이 2004년에 나왔고 이 소설이 2006년에 나왔으니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선배가 '아가씨'를 뒤쫓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하진 않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던, 곤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과도 비슷한 설정이군요.


 이제야 왜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이 애니메이션으로 자주 만들어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인물과 이야기가 그야말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에 딱이거든요. 소설이 그 어떤 고정틀도 없이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  전개되는데 알고 보면 애니메이션이야말로 그러한 비현실적인 환상성을 한껏 표현 가능한 미디어이니까요. 그만큼 이 소설엔 '식상함'이란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상식과 현실이 가진 중력은 모조리 휘발되고 마치 소설에 나왔던 회오리 바람에 휘말린 잉어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선배의 활공처럼 상상력이 달아준 날개로 모든 구획과 경계를 뛰어넘어버리니까요.


 모리미 도미히코가 능청맞을 수 있는 것은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를 구속하는 현실과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 환상은 주먹을 쥘 때 엄지 손가락을 밖으로 빼느냐, 안으로 넣느냐의 별거 아닌 차이일 뿐이라는 믿음 말이죠. 아마도 그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소설 처음부터 '친구 펀치'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성인 군자는 그야말로 한 줌, 남은 건 썩은 못된 놈이든가 멍청이든가, 아니면 썩은 못된 놈이면서 멍청이야. 그러니까 때로는 그러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철권을 휘두르게 되지. 그럴 때는 내가 가르쳐 준 친구 펀치를 써. 굳게 쥔 주먹에는 사랑이 없지만 친구 펀치에는 사랑이 있어. 사랑이 가득 찬 친구 펀치를 구사하며 우아하게 살아갈 때 아름답고 조화로운 인생이 열린단다.(p. 9)


 저는 이 '조화'라는 말에 주목하게 되네요. '삶은 현실이라는 하나에만 주목해선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 이면에 있는, 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환상도 껴안을 수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라며 작가가 방점을 찍는 것 같아서. 그런 믿음이랄까, 마음이랄까 그런 것이 향신료처럼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미각까지 높여주지요.


 사실 전 이 작가를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애니메이션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2010년에 '노이타미나'로 편성되어 방영한 애니메이션인데 높은 작품성을 인정바다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습니다.(그 애니메이션의 감독이 이번에 개봉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감독했습니다.워낙 작품이 좋다보니 당연히 원작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죠. 이번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어보니 이 소설이 그의 작품 세계의 원점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집니다. 밤이 가진 몽환의 동경, 환상의 포용으로 더욱 풍요롭게 되는 현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들이 굳건히 배인 그의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소설 속 주인공과는 다르게 거의 회색빛에 가까운 제 대학 생활이 절로 후회되면서 왠지 앞으로의 시간만은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하게 되네요.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또 내일도 그대로일 것 같아서 심드렁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면 어떨까요? 환상의 향과 맛으로 가득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한 잔을 살짝 음미해 보는 것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트너' 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2000년부터 방영을 시작하여 현재 16번째 시즌으로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명실상부한 일본 형사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등극한 작품이죠.




 이번에 나온 '범죄자'는 드라마 '파트너'의 각본가(8번째 시즌부터 참여)인 오타 아이가 2012년에 발표한 데뷔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오른 바 있었던 '잊혀진 소년'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입니다. 공교롭게도 주인공들이 같아요. '잊혀진 소년'에서 인상 깊었던 활약을 보여주었던 소마 형사와 청년 슈지 그리고 전직 방송국 PD였던 야리미즈가 두 작품 모두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저처럼 '잊혀진 소년'을 읽고 '범죄자'를 읽는다면 그들의 과거를 읽게 되는 셈입니다. '잊혀진 소년'에서 찰떡 같은 팀 플레이를 보여주던 그들이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나를 바로 '범죄자'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아직 '잊혀진 소년'을 읽지 않으셨다면 '범죄자'부터 읽을 것을 권해드리고, '잊혀진 소년'을 읽으신 분들도 마찬가지로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이 '도원결의'를 하게 되는 계기인 사건이 무척이나 흥미롭거든요.


 '범죄자'는 시작이 아주 강렬합니다.



 슈지가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아렌이란 여성에게서 메일 하나를 받습니다. 내일 오후 2시까지 진다이지 역 남쪽 출구에 있는 역 앞 광장에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처음 만났던 그 날은 다짜고짜 메일 주소를 달라고 해서 준 것이 인연의 전부였기에 열 일곱살 때부터 건설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던 슈지는 근무까지 빼먹고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갑니다. 평일 오후의 한산했던 역 앞 광장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상인 풍모의 남자와 노부인 그리고 주부로 보이는 여자와 자신보다 뒤늦게 도착한 여대생까지 합해 다섯 뿐. 그런데 여대생이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나타난 다스베이더와 함께 무차별 칼부림 학살이 시작됩니다. 눈 앞에서 다섯 사람이 순식간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것을 본 슈지는 그 자신도 살인마에게 희생당할 뻔 했지만 기지를 발휘해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한 편, 현장으로 출동한 소마 형사는 원래 무차별 칼부림 범죄는 동기도 없고 용의자 특정도 어렵기 때문에 해결에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것인데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범인의 신병이 확보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놀랍니다. 범인은 근처 공용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다량의 헤로인을 투약하여 이미 숨져있는 상태였습니다. 주변엔 학살에 썼던 흉기며 복장이 있어 그가 범인이란 걸 말해주고 있었고 결국 약에 취해 그토록 엄청난 학살을 벌인 것으로 충격적인 사건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살아남아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슈지에게 낯선 남자가 나타나 이런 말을 함으로써 사건은 중대한 변화의 계기를 맞습니다. 슈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그는 자기 얼굴을 알아보았고 달려와서는 다른 네 사람은 무사한지 물었고 죽었다고 대답하자 절망에 빠진 남자가 쥐어짜낸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 달아나.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p. 57)

 "앞으로 열흘. 열흘만 살아남으면 안전해. 살아남아. 네가 마지막 한 명이야."(p. 58)


 남자가 슈지의 얼굴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왔다는 것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슈지는 자신이 당한 사건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뭔가 다른 흑막이 있다는 걸 예감하고서 그의 말대로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구 집에서 한동안 기거 하기로 합니다. 소마 역시 사건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느낍니다. 범인이 정말로 약에 취해 무차별 살인을 하기로 작정했다면 겨우 다섯 밖에 없는 한적한 역 광장이 아니라 사람으로 북적한 거리를 고르는 게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부 고발로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소마의 의혹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결국 소마 혼자서 사건의 진실을 쫓게 됩니다. 그러다 슈지가 며칠이 지나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면서 집에 들렀다가 암살자에게 죽을 뻔하게 된 걸 구해주면서 소마는 역시 자신이 의심했던 대로 사건엔 다른 진실이 있으며 그것이 온전히 밝혀질 때까지 슈지를 자신의 친구인 야리미즈의 집에서 보호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해서 소마와 슈지 그리고 야리미즈가 한데 만나게 된 것입니다.


 과연 슈지가 자신도 모르게 연루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아무런 접점도 없고 죄를 짓지도 않은 다섯 명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빼앗은 것일까요? 241 페이지 분량의 티저북이지만 그 내막을 짐작케 할 단서는 어느 정도 나와 있습니다. 한 방송국의 오래도록 장수한 다큐 프로그램을 폐지시켜 버린 '멜트페이스 증후군'이 그 중 하나죠. 얼굴이 녹아내린다니,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이 증후군은 '원인 불명의 고열이 나다가 안구를 포함한 안면 조직이 차례차례 괴사하는 무서운 병으로, 괴사 조직을 절제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에 심각한 손상이 남는다.(p. 169)'고 합니다. 이토록 끔찍한 증후군은 특히 갓난 아이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는데 그것이 특정한 시기의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갓난 아이들이 감염으로 마구 희생되었다고 하니까 얼른 얼마 전 우리나라의 이대 목동 병원에서 일어난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이 떠오르는군요. 주사제를 무려 25년 동안 나눠쓰는 등 환자 위생을 위한 비용을 아끼려는 병원의 탐욕과 그만큼 환자 위생에 관심이 없었던 의료진의 무책임이 불러온 참사였죠. 아마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이것에서 어떤 분들은 저처럼 소설 '범죄자'가 1960년대 초에 독일에서 일어난 유명한 약물 사건 떠올리지도 모르겠어요. 캐나다의 영화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영감을 받아 '스캐너스' 란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콘테르간' 말이죠. 



 산모의 입덧을 완화시켜준다고 하여 독일을 비롯하여 일본까지 꽤나 팔린 이 약은 탈리도마이드 성분 때문에 이 약을 복용한 산모들이 사지가 아예 없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기형아를 낳게 만들었죠. 그 수가 전 세계적으로 1만 2천명 이상이라 현대 의학이 가져온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일본에도 이 사건이 일어났던만큼 오타 아이가 그 사건에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소설 초반부터 등장하는 국회의원이자 정치 실세인 이소베 미쓰타다가 사사키 구니오란 인물로 인해 위기를 느끼고 있고 그의 수행비서이자 최측근인 핫토리 역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열흘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데다 그것이 이소베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제약 회사 때문인 걸 보면 허무맹랑한 상상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과연 '파트너' 각본가가 쓴 소설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트너' 역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무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잇속만 밝히는 사회 권력층을 비판하는 면모가 강하게 나타났던 작품이었으니까요. 일본 미스터리는 흔히 미스터리 풀이에만 집중하는 '본격파'와 사회 비판을 위해 미스터리를 빌려오는 '사회파'로 나뉘는데, '범죄자'는 티저북만 읽고 이렇게 결론내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아마도'란 단서를 굳이 달고 말한다면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합니다. '잊혀진 소년'은 온전히 '사회파' 쪽이었기에 이런 심증이 더욱 굳어지는군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읽고계신 분들은 티저북에 꽤 많은 정보가 나온 것처럼 여길 수도 있으실 것 같네요. 그러나 실은 '범죄자'가 두 권으로, 그것도 1권은 656페이지이고 2권은 536페이지인 방대한 분량이라 티저북의 내용은 고작 20%에 불과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80%에서 이 이야기가 또 어떻게 뒤집어질지는 알 수 없는 것이죠. 그건 그렇고 20%만으로도 이렇게 흥미를 돋구는데, 80%는 또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쟁여져 있을지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네요. 


 물론 무차별 학살 사건의 진실과 희생자들이 가진 접점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여기에 더하여 과거에 자신의 실적을 위해 친한 친구를 비극에 빠뜨렸던 경찰관을 만나 경찰에 대해 불신을 가득 가지고 있는 슈지가 소마에게 어떻게 마음의 문을 여는 지도 궁금하고 '잊혀진 소년'에 나왔던 것처럼 야리미즈와 슈지가 어쩌다 합심하여 흥신소를 열게 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카야마 시치리.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일본 미스터리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년엔 벌써 몇 번째 만나는 그의 작품인지조차 얼른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나왔으니까요. 어쨌든 나카야마 시치리는 2009년, 48세의 나이로 '안녕, 드뷔시'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받으면서 일본 미스터리 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는데, 실은 그 때 또 다른 그의 작품 하나가 최종 본선에 올랐더랬습니다. 다시 말해 데뷔한 그 해, 시치리는 두 작품을 발표했고 모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놓고 다투었다는 것이죠. 해마다 많은 작품이 출간되는 일본 미스터리 세계에서 하나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두 작품이나 오른 것도 모자라 결선에서 치열에서 경쟁했다니 이 정도면 '대단한'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별 상관 없을지 않을까 합니다.

 그 작품이 바로 이번에 나온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안타까운 게 뭔지 혹여 아실까요? 그건 제가 아직 '안녕, 드뷔시'를 읽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시치리의 두 작품 중 과연 어떤 것이 대상을 받을만 했는지 나름 평가할 수 있었을 텐데요. 여하튼 '안녕, 드뷔시'가 만일 대상을 받을만 했다면 그 작품은 분명 엄청난 걸작일 게 틀림 없습니다. 경쟁작 '개구리 남자 연쇄살인마'를 읽어봤는데, '와우!' 정말 뛰어난 작품이었거든요. 올해도 많은 일본 미스터리를 읽어봤습니다만, 근래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 최고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저번에 읽은 '속죄의 소나타' 보다도 훨씬 더 좋네요. 그리고 이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개구리 남자 연쇄살인마'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세계에서 하나의 근원이 되는 소설입니다. 지금 그의 소설 중 대부분은 바로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 파생된 게 분명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아직 '안녕, 드뷔시'를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만.


 만일 당신이 잔혹한 연출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면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는 단언컨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최상의 만족감을 줄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높은 퀄리티를 가진 미스터리 소설에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가의 모든 것들이 들어 있으니까요. 공감이 가며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에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충격 속에서 몇 번이나 거듭되는 반전 등등. 반전이 마구 펼쳐지는 후반부의 페이지는 불길에 타들어가는 마른 종이처럼 거침없이 넘어가 버립니다. 덕분에 '속죄의 소나타'를 읽었을 때도 못 느꼈던 것을 '개구리 남자 연쇄살인마'를 통해 하게 되네요. '이제라도 이렇게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말이죠.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만 가족과 연인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작품의 배경이 크리스마스 시즌이거든요. 현실적 시간과 비슷하다면 소설 속 이야기가 뭔가 더 실감나게 다가올테니까요. 모두 네 명의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소설을 그 때 읽는 게 참 어울리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또한 이걸 자꾸 강조하면 그렇다면 1년 가까이 기다려서 이 소설을 읽으란 말이냐 나무라실테니, 얼른 이렇게 정정하겠습니다. 아무 때나 시간 나실 때, 아니 나지 않으면 만들어서라도 꼭 읽으시라고 말이죠.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기에 이렇게까지 호객 행위를 하느냐구요? 그럼, 줄거리부터 간단하게 소개해 볼까요?


 인구 8만의 한노시(city). 소설은 마치 꺼져버린 부동산 거품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점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한적하고 고요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합니다. 거기 13층에서 거대한 도롱이처럼 매달린 시체가 발견되는 것이죠. 한 오라기의 실도 걸치지 않은 나신의 여성 시체가. 거기엔 범인이 남긴 다음과 같은 쪽지도 놓여 있었습니다.


  오늘 개구리를 잡았다. 상자에 넣어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지만 점점 싫증이 났다. 좋은 생각이 났다. 도롱이 벌레 모양으로 만들어 보자. 입에 바늘을 꿰어 아주아주 높은 곳에 매달아 보자.(p. 12)


 이제 왜 하필이면 제목이 '개구리 남자'인지 아시겠죠? 살해당한 시신이 발견되는 장소마다 범인이 살해한 정황 그대로 개구리에 대한 글을 놓아두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모두 5장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장의 소제목은 '매달다', '으깨다', '해부하다, '태우다' 등으로 모두 범인이 살해한 방식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범인은 두 번째는 70대의 노인을 폐차장의 차량 압축기로 시신을 으깨버렸고 세 번째는 일곱 살의 아이를 낱낱이 해부했으며 네 번째는 40대의 변호사를 불에 태웠습니다. 이렇게 계속 연속 살인을 저지르는데도 수사는 난황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희생자들 사이에 아무런 접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별도, 연령도, 직업도, 거주지도 모두 다양합니다. 소설에서 한 형사는 그냥 살인보다 연속 살인이 훨씬 더 잡기가 쉽다고 말합니다. 그건 살인이 거듭될 수록 단 한 번 이뤄지는 살인과 달리 희생자들 사이에 공통점이 발견되어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더 수월해지는 까닭이죠.


 그러나 '개구리 남자'의 연속 살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도대체 어떻게 희생자를 고르는 지조차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무차별 살인'이라는 게 확산되어가고 때문에 '한노시'에 사는 모든 시민들은 패닉에 빠져 버립니다. 언제라도 나나 내 가족이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용의자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경찰서로 몰려가 거센 폭력 시위를 하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 사건의 한 가운데에 우리의 주인공 '고테가와' 형사가 있습니다. 아마도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을 읽어본 분이라면 이 이름이 친숙하지 않을까 싶네요. '속죄의 소나타'에도 조연으로 등장했던 형사니까요. 물론 '속죄의 소나타'에서 놀라운 추리력을 보여준 와타세 형사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개구리 남자' 이후로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 '와타세 - 고테가와 형사 콤비'를 자신의 작품에 계속해서 출연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제가 '개구리 남자'를 그의 작품 세계 원형이라 보는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개구리 남자'에서 주역은 고테가와 형사입니다. 그는 이제 막 부임한 초짜 형사로 아직 형사의 의무가 무엇인지 또 정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개구리 남자' 사건을 통해 그것들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실은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에게 부여한 임무인 것이죠.


 '스스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인 단어를 하나 꼽는다면 바로 이 말이 될 것입니다. 누가 알려주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답을 찾아가는 게 이 소설에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소설 후반에 폭발적으로 표출되는 대중의 공포와 혼돈과 연결되어 있지요. 그렇게 한노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인 두려움 속에서 급기야 중세의 마녀 사냥과 다름없는 폭동을 벌이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순전히 스스로 답을 찾으려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대서만 그 답을 구하려 했던 데 있었으니까요. 이 소설은 언론에 대한 비판도 많이 담겨져 있는데, 언론이야 말로 이제는 국어 사전에도 올라야 할 것 같은 '기레기'란 말 그대로 제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모르는 이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호도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아니었던가요? 이처럼 이 소설은 타인에게 기생하여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많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를 당신도 보신다면 분명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이제야 확연히 깨닫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체성'이라는 걸. 내 삶은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니, 삶을 대하고 살아가는 태도 역시 오로지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나카야마 시치리가 작품을 통해 내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죠. 사실 요즘처럼 온갖 가짜 뉴스들과 댓글 부대가 활개치는 때엔 더욱 필요한 태도이기도 해서 그 마음까지 오롯이 전해지니 더욱 추천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오늘은 눈이 내렸고 한파도 다시 찾아온다 합니다. 이런 시간엔 따뜻한 방구들에서 흠뻑 빠져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 소설만큼 좋은 피한(避寒)도 없을 듯 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는 거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