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 꼿꼿하고 당당한 털의 역사 사소한 이야기
커트 스텐 지음, 하인해 옮김 / Mid(엠아이디)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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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집사로 사는 일은 한 편으론 털과의 전쟁이다. 검은 옷은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잘 입지 못하게 되고, 냄비 뚜껑은 잘 덮어놓아야 하며, 탁자 위에 둔 컵에 물을 따를 때에도 한 번은 들여다 보아야 한다. 목구멍에서 뭔가 묘한 이물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인간에게서 나오는 털도 그 양을 무시하지 못하는데, 동물에게서 나오는 털까지 숟가락도 아니고 주걱으로 얹어 놓고 있다 보니 치우고 또 치우다가 절로 이런 원망과 푸념이 뒤섞인 질문을 하게 되는 걸 어쩔 수 없다.

 '신은 왜 하필 이런 털을 만든 것일까?'


 아마도 이런 질문을 '헤어'의 저자 커트 스텐이 들었다면 내게 '뭘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있어?' 하면서 바로 역정을 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겐 '털'이 자기 밥그릇이니까 말이다. 그는 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다. 그것도 무려 30년이나. 얼른 '헤에? 털만 연구하는 학자도 있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만 그랬나? 하긴 별로 신기할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학자들은 바닷 속 물고기처럼 많고 다들 별의별 것을 다 연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런 반응이 그리 별나진 않은 모양이다. 털만 연구한 그가 30년이 지나 비로소 털의 역사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런 반응이었으니까. 그 일은 그가 자주 다니는 이발소에서 일어났다. 어느 날 이발사가 머리를 깎다가 우연히 몇 년동안 다녔는데도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그의 직업을 물었다. 그가 털을 연구한다고 하자, 이발사는 재밌는 농담을 들은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암묵적으로 '그런 걸 연구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는 반응을. 그것으로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털에 대해 아주 '협소하고 근시안적인 시각에 갇혀 있다(p.15)'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사람들을 해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털의 전체적인 그림과 털이 인간의 삶에 이제까지 해온, 그리고 앞으로 기여할 역할에 대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p.15)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의 대상인 '헤어'는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이 책엔 정말 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일단 털은 진화의 과정 중에 태어났다. 털이 주로 포유류에게만 있다는 점에서 털의 기원과 역할은 아무래도 파충류와 비교해봐야 할 것 같다. 그랬을 경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포유류는 파충류와 달리 태양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내부의 신진대사를 통해 스스로 열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포유류는 파충류와 다르게 야간과 추운 지방에서도 사냥 활동이 가능했는데, 피부는 그런 체내의 열을 보존할 수 있게끔 진화했다. 털 역시 바로 거기에 맞춰 생겨났고 진화해왔다고 한다. 털이 가진 역할이란 무엇보다 모든 종류의 열이동의 차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단열이야말로 피부와 털 모두에게 있어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때문에 포유류에겐 한가지 습관이 생겨났다. 개라면 더우면 혀를 길게 내밀며 헐떡거리고, 고양이라면 혀로써 털을 닦는 행위 말이다. 이 모든 게 사실은 몸을 식히려는 몸짓이었다. 그동안 고양이를 키우며 '그루밍' 하는 것이 단순히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행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체온을 떨어뜨리는 행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새삼 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인간은 털을 없애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것일까?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가 인류를 '털 없는 원숭이'라고 부를만큼 포유류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몸에 거의 털이 없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바로 두뇌의 온도 때문이었다.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면서 털이 있는 인간에겐 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두뇌가 열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털은 단열 효과로 체내의 열을 유지하거나 증가시킬 뿐 감소시키지는 못한다. 점점 커져만 가는 두뇌에겐 굉장히 걱정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류는 지금처럼 털을 가급적 없애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진화론적 경험이 그대로 DNA의 기억으로 남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털 없는 것을 털 있는 것보다 더 우월하게 여기도록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구약성서에서 털이 없는 야곱이 사냥에 능하고 털이 많은 에서를 속여 그 시대 가장 중요한 권리인 장자권을 가져왔듯이, '성경에서 털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선택받은 자(p. 87)'로 나오고 17~21세기 제국시대 말기의 중국철학자(책에는 이렇게만 나와 있는데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21세기는 지금이므로 현재의 중국을 제국이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기원전이라는 말이 빠진 것이 아닐까 싶고, 여기서의 제국은 중국 최초 통일 국가인 진나라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에 말할 내용은 당시 유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들도 인간다움은 몸에 자라는 털의 양과 반비례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헤어'는 이런 이야기를 자세하고도 쉽게 들려준다. 생물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까지 아울러 세세하게 짚어주기 때문에 커트 스텐의 야심처럼 아무래도 털을 새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모발 관리는 중요한 건강 관리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발사가 외과 의사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20세기 이전 미국에서 이발소는 주로 흑인들 차지였다는 것은 몰랐다. 흑인 노예들 중 일부 주인의 치장을 담당했던 이들이 나아가 주인들이 경영하는 이발소를 맡아 일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1860~80년 사이 흑인은 전국의 이발소를 독점하고 결국 19세기 말부터 흑인 고객까지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를 기점으로 흑인의 이발소는 흑인들 커뮤니티의 아주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해왔다. 미국 영화 중에 '바버샵'이라는 게 있는데, 그 이발소 역시 흑인 공동체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것이 현대와 생겨난 게 아니라 실은 오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가발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프랑스 혁명 전에 가발은 유럽 전역에서 귀족 신분과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털이 많은 것은 야만인으로 취급받는데, 머리카락이 많다는 것은 왜 교양과 권력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것은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시대까지 상투를 틀어서라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금기시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엔 당시 널리 유행했던 신비주의 사상 때문에 머리카락에 영혼이 깃든다는 생각까지 퍼져 있었다고 한다. 다른 털과 달리 머리카락은 건강과 매력 그리고 성적인 메시지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성경 속 삼손의 이야기는 아마도 이것에 대한 가장 뚜려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헤어'는 인간의 털을 넘어 동물의 털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재밌고도 흥미로운 책이다. 늘 매만지거나 뽑고 얼른 치우기만 했지 깊이 헤아려보지는 않았던 털에 대해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면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것 같다. 그렇다고 고양이 털을 좀 더 기분좋게 치우게 되지는 않더라만... 하아... 나는 또 고양이 털을 쓸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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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 - 28인의 과학자, 생물학의 지평을 넓히다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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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 반가웠다. 그동안 유전자에 대한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생명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하지만 너무나 어렵고 방대한 영역이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선뜻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그것과 만나게 해 줄 길잡이 같은 것이 있었으면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나타난 것이다. 강석기 작가의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바로 그 장본인인데, 이 책은 생명과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는데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논문 28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작점을 찾아야 한다. 생명과학의 현재 지형도를 가늠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의 모든 성과는 그것의 시작이 되는 논문을 밑거름으로 하여 성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생명과학을 보다 수월하게 이해하게 만들 최적의 안내서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 떨어졌다.



 책은 28편의 논문을 주제 별로 모두 7개의 파트로 나눠 4편씩 담는다. 그 파트란, '현대 생명과학의 탄생', '유전자 사냥', '진화의 진화', '생리학의 재발견', '발생의 미학', '떠오르는 신경과학' 그리고 '상식의 벽을 넘다'이다. 생명과학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많아서 실린 논문 모두가 흥미로웠는데 그 중 가장 내 눈을 빛내게 만든 것은 1957년에 발표된, 조지 윌리엄스의 '노화진화이론' 논문이었다. 노화는 죽음과 함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두려움을 준다. 거기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노화는 현재 더욱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노화란 무엇일까? '늙는다'는 것은 생명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다윈에 따르면 사실 이런 노화는 오래전에 퇴화되어 사라져야 했다. 정신과 육체 모두 쇠약을 가져오는 노화는 진화의 절대 명령인 생존과 번성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화란 다윈의 자연 선택에 대한 중대한 반대 증거일까? 31세의 젊은 나이로 막 미국 미시건 주립대 교수가 된 조지 윌리엄스는 오히려 노화가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그것이 노화에 대한 생명과학의 이해 방향을 확 비틀었다. 그는 사람들이 생명의 노화를 사물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노화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노화는 자동차 부품이 닳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조지 윌리엄스에 따르면 노화는 그렇게 마모의 과정이 아니다. 노화는 다만 '인체를 조절하고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정밀도가 떨어지는'(p. 119) 현상이다. 그래서 노화는 늙었다는 말과도 다르다. 나이가 젊어도 조절과 유지 메커니즘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득 '노안'이 생각났다. 노안은 눈을 오래 써서 그 능력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초점을 맞추는 정밀도가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니 조지 윌리엄스의 노화에 대한 이야기가 꽤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피부도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것도, 조지 윌리어슴에 따르면, 피부가 닳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젊었을 때만큼 피부를 통해 체온을 유지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게 덜 효율적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한 마디로 노화는 생명이 시간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정밀도의 약화는 오히려 반 자연 선택적이지 않나? 여기에 대해서도 조지 윌리엄스는 설명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노화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다면 발현 유전자인데, 주로 성적인 징후를 만들고 번식하는데 유용한 유전자들이 이에 속한다. 다면 발현이란, 유전자가 한 쪽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도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성적 유전자들이 그랬다. '개체가 성장해 성적으로 가장 왕성할 때 발현돼 번식 확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유전자가 훗날에는 정밀한 대사 조절 능력을 잃게 해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 당뇨병 같은 병을 일으키는 등 노화를 촉진'(p. 120)했던 것이다. 즉 노화란 자연 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결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부머랭 같은 것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관점이 워낙 독특하고 글 또한 설득력 있어 이것만으로도 노화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기엔 충분했다.


 이 책엔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노화에 대한 앞서의 이야기는 이 책이 내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 대표적으로 밝히기 위해서였다. '스트레스'라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한스 셀리에, '페로몬'의 존재를 처음 거론한 마샤 맥클린톡의 '월경 동기화 현상' 논문들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밝혀졌던가 알려줘서 흥미로웠고, DNA의 특정 서열을 독립적으로 복제하는 기술을 처음 개발하여 생명과학의 지평을 확 넓혀버린, 허버트 보이어의 재조합 DNA 실험이 29살의 한 실직자 청년에 제의로 어마어마한 자본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밌었다. 역시 성공은 두 가지, 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눈 그리고 그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용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 일화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저자가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 대부분은 소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전문 용어들에 대해서 별도의 검색을 통해 알아야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나는 이 책을 통해 전보다는 훨씬 더 가까이 생명과학의 대지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생명과학이 어디까지 왔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대충은 가늠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는 나처럼 초심자라 하더라고 생명과학이 무엇이고 그 얼개나마 알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각 논문에 대한 글의 분량이 길지 않고 재미도 있어서 더욱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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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2-0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체가 아니라 종의 개념으로 보면 노화는 진화의 필수 요소죠. 비정한 말이긴 하지만 노화로 쓸모없는 개체는 빨리 사라져 주고 젊은 유전자 개체가 번식을 담당하는...할머니 이론이 말해 주듯이 성적인 필요성이 사라져도 번식에 필요한 존재론적 가치는 여전히 확보되고 있지만.... 과학 기술이 더 발달해 아무도 늙지 않는다면 이런 구조적 상황은 어찌 달라질까 싶죠. 육아는 사회가 맡는 시스템이 더 확산될테니 안심일까 하면....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 같은^^;

헤르메스님 서재를 웹으로 보고 있는데 고양이 가득ㅎㅎ.... 즐겁게 글 읽을 수 있는 벽지네요^^
새해 인사 안 드렸던 거 같은데... 새해 건강히 평안히/

ICE-9 2017-02-05 23:1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고 더욱 느꼈는데, 정말 생물학적 관점은 상식적인 관점과 많이 다른 점이 있더군요. 아갈마님 말씀대로 노화가 사라진 세상은 과연 어떠한 사회적 혹은 윤리적이거나 실존적인 문제에 직면할지 궁금해집니다. 요즘엔,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나라야마 부시고‘가 긍정적으로 묘사했듯, 고려장이라는 것도 그 사회에선 나름 합리적인 제도였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 속 할머니가 어린 세대들을 위해 일부러 건강한 이를 스스로 빼면서까지 기꺼이 고려장을 당했듯 노년 세대들도 뒷 세대에 대한 관용과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제가 고양이 집사라 서재를 온통 고양이들로 채워봤습니다. 너무 단순한가요?^^
어쨌든 아갈마님 새해 인사 감사합니다. 아갈마님도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는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하네요^^;
 
바퀴, 세계를 굴리다 - 바퀴의 탄생, 몰락, 그리고 부활 사소한 이야기
리처드 불리엣 지음, 소슬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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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비단 철만은 아니다. 철 보다는 좀 소음이 나겠지만, 바퀴 역시 철만큼 오늘 우리의 세상을 움직인다. 아마도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바퀴. 출퇴근 때도, 여행 갈 때도 그리고 마트에서도 우리의 바퀴의 힘을 빌린다. 그런 바퀴는 어떻게 세상에 태어나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만화나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바퀴는 정말로 석기 시대부터 있었을까? 그런데 문득 우리나라 조선 시대 사극 드라마가 생각난다. 사극 하면 흔히 보게 되는 가마. 고관대작들도, 양반집 규수들도 모두 네 사람이 드는 가마를 타고 다닌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그  때 분명 소가 끄는 우마차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바퀴의 효용성을 충분히 알려진 것 같은데, 어찌하여 바퀴의 힘을 이용한 교통 기관이 발달하지 않고 계속 사람의 힘에만 의지한 것일까? 혹시 드마라를 보면서 이런 궁금증을 가져 본 적 없었는지? 나는 가졌다. 같은 시기, 유럽에선 말이 끄는 마차가 등장했다. 그런데 유럽보다 문명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 발달했을지도 모를(오로지 과학적 잣대로만 문명의 발달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조선에선 마차가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서양의 과학 기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뒤라 할 수 있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했던 것은 사람이 끄는 인력거였다. 인력거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을 감안한다면 동물을 사용한 교통 기관은 동아시아에서 자리 잡은 적이 별로 없다. 도대체 이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바로 그 궁금증을 한 권의 책으로 모조리 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리처드 불리엣의 '바퀴, 세계를 굴리다'이다.



 이 책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퀴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아주 논쟁적이다.

 왜냐하면 바퀴의 탄생과 흐름에 대한 기존의 학설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퀴의 탄생에 있어서 결정적인 학설은 고고학자 스튜어트 피곳의 것이었다. 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바퀴가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컬럼비아대에서 중동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바퀴를 사용했던 가장 초기 흔적은 원래 동시대 유럽과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모두 발견되고 있는데, 피곳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바퀴의 창세기로 삼은 것은 연대를 측정하는 '탄소-14 연대측정법'을 적용할 때, 비슷한 수명을 지닌 나무의 '탄소-14' 감소 수준을 측정해 비교하는, 흔히 말하는 '나이테 조정'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아 일으키게 된 착오라고 꼬집는다. 그리고 나이테 조정까지 감안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아니라 유럽, 그것도 카르파티아 산맥의 구리 광산이 바퀴가 최초로 사용된 곳이라 주장한다. 그의 근거는 꽤나 설득력이 있는데, 그것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라고 여기서 비로소 그의 진짜 의문은 시작된다. 왜 하필이면 여기일까? 이 질문은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술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고정관념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술과 환경.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이 환경을 이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에디슨이나 벨의 허다한 발명 스토리처럼, 한 천재의 영감과 노력 속에 기술이 태어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기술이 자연을 리드하고 환경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퀴를 매개삼아 펼치는 리처드 불리엣은 그 생각과 반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이 기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던 토인비처럼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한계를 부여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려는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결실을 맺게 된 것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구리 광산이 그렇다. 기원전 5,500년 전 당시 사람이 굳이 지하로 굴을 파고 구리를 캐냈던 이유는, 그런 구리라야 비싼 값에 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기술로는 아주 적은 구리밖에 못 캐냈고 많은 인부를 이용하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국 적은 인원으로 보다 많은 구리를 캐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이 등으로 져 날라야 하는 구리의 양이 또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소와 같은 짐승을 이용하면 되지 않ㅇ아 생각하실 것 같은데, 그 때의 기술로는 넓은 굴을 파는 게 어려웠기에 짐승은 굴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저기를 막으면 또 여기가 터져 나오는 문제에 대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퀴를 이용하게 된 것이었다. 토인비 말대로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였다. 이 때, 사용된 바퀴는 윤축이었다.


 바퀴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윤축, 독립 차륜 그리고 캐스터다. 이런 말이 생소하게 다가오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윤축은 바퀴와 양 바퀴를 연결하는 축이 일체라 바퀴와 축이 함께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바퀴의 가장 초창기 형태로, 구리 광산에서 쓰던 바퀴도 윤축이었다. 독립 차륜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축은 움직이지 않고 바퀴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윤축에서 독립 차륜으로 발달되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사륜 마차는 이런 독립 차륜이다. 캐스터는 차축과 바퀴가 모두 다르게 회전하는 것을 말한다. 마트에서 흔히 사용하는 카트의 바퀴가 이런 '캐스터'라 할 수 있다. 카트를 이용한 경험을 떠올려 보면 독립 차륜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금방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하다. 카트는 우리가 방향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독립 차륜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서부 영화를 보면 마부가 마차의 방향을 급히 바꾸면 마차가 쓰러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독립 차륜이라 그렇다. 바퀴는 이렇게 크게 세 단계로 발달되어 왔다. 우리는 바퀴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생각하는데, 리처드 불리엣은 실은 그게 근대에 들어와 새로 생겨난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퀴의 역사는 비록 오래되었을망정 근대가 될 때까지 문명의 무대 변방으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바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널리 사용 되지 못했다. 지형 때문이었다. 길은 좁고 험했다. 방향도 바꾸기 어렵고 옮기는 데 인간의 근력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바퀴 보다는 그냥 사람과 짐승이 옮기는 게 더 편했다. 사용이 별로 없으니 바퀴의 발달은 느렸고 그래서 독립 차륜이 생겨난 것은 그로부터 5백년이 지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남부 지방인 흑해 북부의 평야 지대였다.



 이 때엔 짐승이 끄는 우마차가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우마차에 싣고 다녔던 것이 바로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흑해 북구 평야 지대의 사람들은 마차 위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다. 유목민이라서가 아니라 홍수의 공포 때문이었다. 기원전 5천년, 빙하기가 지나고 얼음들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해 해수면이 올라갔다. 그래서 흑해 해안의 광대한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겼다. 더구나 그것은 한 번도 아니었고 시시때때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주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독립차륜으로 된 우마차에서 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독립차륜 역시 환경의 역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바퀴는 그렇게 필요에 의해 우리 앞으로 도래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마차 역시 근대에 들어와 더욱 발전하게 된 교통의 발달이 가져온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이것이 과학 기술이 가져온 수혜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리처드 불리엣에 따르면 심리적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더구나 마차가 발달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마가 발달하게 된 이유와 놀랍도록 흡사한데,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 억압과 관계가 있다. 당시 남성 중심 문화는 여성을 가급적 이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성들은 그것으로 여성과 차이를 만들려 했고 또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남성은 말을 타고 멀리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여성은 가마나 마차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격리된 가운데 오직 짧은 거리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마차가 처음부터 먼 거리를 이동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남성들은 마차 타는 것을 아주 수치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란슬롯이 선언했듯, 남자라면 마차를 똥을 피하듯 해야했다. 그것은 오로지 미천한 신분과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남성들도 마차를 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분명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가 타는 태양 전차라든가, 영화 '벤허'에서의 경주 전차처럼, 남자들이 말이 아니라 바퀴 위를 타는 것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랬다. 사실 바퀴는 실용적인 면보다 과시적인 면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왕과 여왕이 백성 앞에서 행진할 때처럼 말이다. 그럴 때 바퀴는 타고 있는 사람의 신분과 권위를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들과 확실히 구별하기 위해 크기도 더 커지고, 외양도 화려해졌다. 요컨대 '바퀴살'은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바퀴살이 하나의 나무에서 깍은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것은 여러 판자를 덧대어 만들어졌다. 꽤나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기에 장인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런 바퀴는 누구나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가지고 있는 자의 권위를 수월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바퀴엔 이런 점이 있었다. 우리는 실용성이 바퀴를 지금처럼 발달시켰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로 이런 과시 효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 때문에 바퀴가 발달해 온 것이었다. 남자들이 16세기에 이르러 마차에 타게 된 이유도 거기 있었다. 당시 '후스파 전략'이란 게 있었다. 전차를 이용한 전략인데 곳곳에서 승리를 거둬 남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 원래 전차는 조그만 장애물에도 걸려 넘어지는 등 전쟁에서 별 가치가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후스파 전략은 전차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제 전차는 용맹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용맹이야 말로 여성과 구별되려는 남성이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것이었다. 마차의 탑승이 자신의 남성성 과시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바퀴는 환경을 이끌기 보다 환경에 의해, 실용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면 때문에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대한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어떻게 보면 스티브 잡스는 이런 기술의 모습을 보다 일찍 알아차린 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애플의 매력을 구매자의 심미적인 면과 심리적인 면에 보다 호소하도록 하고, 아예 구매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만든 것은 여러 면에서 16세기 이후 유럽 남성들이 마차를 타게 된 이유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인력거를 애용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술은 그 자체의 효용성 보다 환경이나 사용자의 욕구 혹은 욕망에 맞아 떨어졌을 때 더 많이 발달했다. 스티브 잡스도 강조했듯이, 우리가 과학만큼 인문학도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기술의 수명 또한 인간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를 더 많이 원할수록 우리가 인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진리를 이 책은 바퀴의 운명을 통해 충분히 납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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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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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독일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나라 꼴이 하도 비이성적인 것들이 만연하다 보니 좀 더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이 커진 탓이다. 메르켈 총리 집권 이후 독일 사회에 대한 이런 저런 미담이 많이 전해진 탓에 오늘의 우리들에게 독일은 더없이 이성적으로 보인다. 이런 독일이 불과 70년 전에는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무려 6백만명의 유대인을 홀로코스트했다니(당시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모두 9백만명이었다고 한다. 즉 나치는 전체 유럽 거주 유대인의 3분의 2를 학살한 것이다.) 얼른 믿겨지지 않는다. 이런 충격은 과거의 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는 죄르지 루카치가 있다. 만년에 그는 독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시간을 많이 들여 연구했고 한 권의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이성의 파괴'였다. 그것은 루카치가 2차 대전까지 이르는 독일 역사에 대해 내린 단적인 정의이기도 했다. 철학사를 살펴보면 대단한 철학자들은 모두 독일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은 체제를 만들고 역사를 이끌어가는 이념의 궤적을 마치 인간의 등뼈처럼 떠받치고 있는 중심이라 할 수 있는데,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처럼 그토록 비이성적이고 광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파시즘이 나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성의 파괴'였고 그 말말고는 달리 부를 만한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죄르지 루카치가 주로 철학적인 시각에서 독일 파시즘이 탄생하게 되는 궤적을 추적했다면, 바로 전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을 통해 히틀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더욱 새롭고 넓게 만들어준 바 있는 독일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역사적인 시각으로 동일한 궤적을 훑는다. 지금까지 루카치나 빌헬름 라이히 그리고 에리히 프롬을 비롯하여 독일 파시즘의 출현에 대해 많은 이들의 분석이 있었지만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역사적으로 접근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한층 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들을 듣는 것 같았고 덕분에 더 깊이 알고 깨닫게 되는 바가 많았다. 비단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만이 아니었다. 사실 비스마르크 시대에서 독일 파시즘까지 이어지는 시기는 현대 독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아주 필수적인 부분이다. 헌법만 공부해도 숱하게 듣는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우리나라 헌법이 독일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주마간산으로 스치듯 만났던 게 내가 이 시기를 접했던 전부였다. 이 책을 읽고서야 이 시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고 보다 더 선명하게 헤아리게 되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비단 독일 파시즘뿐 아니라 현대 독일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면 꼭 이 책을 만나볼 것을 추천드리고 싶다.


 일단 하프너가 이렇게 역사에 집중하는 것은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을 특이점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가 그토록 비이성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해도 특정한 상황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로 여기지 않는다. 이미 '도이치 제국'의 출현 시점이라 할 만한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발아되어 있었던 것이 그때에 이르러 비로소 개화한 것으로, 그렇게 일종의 필연적인 결과처럼 생각한다. 적어도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는 '도이치 제국의 역사'라는 바퀴가 잘못 들어선 경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이대로 구르게 된다면 가게 될 가능성이 많았던 곳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찬찬히 알려주는 책, 그것이 바로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이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것을 기념하여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가 베를린 장벽에서 개최한 '더 월' 공연 현장을 배경으로 책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원래 이 책은 독일 통일이 되기 전에 발간되어 통일 독일에 대한 것은 책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독일 통일 후에 나온 90년 판의 후기에서 하프너는 독일 통일을 통해 다시금 부활한 거대한 도이치 제국이 이제 정말 독일이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진실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과연 과거의 도이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지 아니면 새로운 도이치 문제를 야기할지 미지수라고 하면서. 과연 지금의 독일인들은, 현재의 독일을 바라보는 타자인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이 점에서 이미 하프너의 관점이 대단히 독특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을 분석했던 대부분의 책들은 필연 보다는 우연 쪽에 더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하프너가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흥미롭게 되는데 그러나 그만의 새로운 관점이 이것 하나만은 아니다. 그는 도이치 제국의 탄생 시점부터 모두가 잘 아는 1870 ~71년 사이가 아니라 실은 184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도이치 제국'은 무엇보다 근대 들어와 거세게 성장하기 시작한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 민족주의가 거세게 터져 나와 이전까지 연방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도이칠란드를 '도이치 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때가 1848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폴레옹 때문에 본격적으로 발흥하게 된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도이치 제국'은 시작부터 많은 불안 요소가 내재된 봉합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군주제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들과 민족주의로 새로운 체제를 가져오려는 세력들 사이의 대립이 팽팽했고, 외적으로는 이제 하나의 국가가 되는 바람에 유럽 중부에 거대 국가가 출현하여 자신의 나라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 주변국들의 견제가 팽배했다. 그런 안팎의 상황 속에서 비스마르크는 중재를 위한 통합과 당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던 제국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모처럼 태어난 도이치 제국을 이루고 유지시켜 나갔다. 


 비스마르크는 국내에서 보수주의 진영과 민족주의-자유주의 진영 사이의 타협에 기반하여 제국을 건설했다.(p. 55)

 비스마르크는 도이칠란트를 유럽의 주도적이고 지배적인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갖지 않았다.(p. 49)


우리는 비스마르크를 흔히 철혈 재상이란 별칭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아주 카리스마 넘치고 냉혹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만 하프너가 보여주는 비스마르크는 전혀 달랐다. 하프너의 비스마르크는 독일이 내외적으로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잘 헤아리고 그 존속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취하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타자 존중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비스마르크의 새로운, 아니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커다란 보람이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조심해도 남이 잘못하면 속절없이 일어나고마는 교통사고처럼 이런 비스마르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이치 제국의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유럽 중부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시멘트 벽'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 주변 강대국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언제든 무슨 이유든지 간에 도이치 제국이 위협이 된다싶은 행동을 조금만 해도 압박해 왔다. 이에 대해 비스마르크는 그들의 생각이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여 장차 있을 분쟁을 막았으나, 도이치 제국이 점점 형체를 갖추고 민족의식이 성장하여 독일인들 스스로 자긍심이 높아지자 이후의 체제는 이런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빌헬름 황제 시대에 와서 그것이 오만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프너는 강조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빌헬름(2세) 황제 시대는 결코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오히려 비스마르크 시대보다 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시대였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내적 안정과 풍요가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원래 비스마르크 시대 전만 해도 독일인들은, 하프너의 말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소박하고 겸손한 민족이었다.(p. 89)'. 하지만 빌헬름 황제 시대에 들어와 나라가 더욱 성장하자 민족주의의 힘을 받아 독일인들은 '모든 계층을 막론하고 갑자기 원대한 민족적 전망, 민족적 목적을 눈앞에 그리게(p. 90)' 되었다. 동시에 그들의 애국심 또한 이전과 다른 성격의 것이 되어 이제 스스로 아주 특별한 존재, 미래의 강대국이라는 생각이 그저 느낌이 아니라 아예 확고한 의식(p. 90)으로 되어 버렸다. 이제 비스마르크가 추구했던 겸허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기서 결론을 말하자면, 바로 이런 의식이 하프너는 독일 파시즘과 히틀러를 낳게 한 궁극적 원인이라고 본다. 하프너에 따르면, 이 의식은 결코 독일의 상황과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독일의 현실이 긍정적인 쪽으로 한껏 부풀려진 것이었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 물든, 한 마디로 과장된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독일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었다. 끔찍한 자만심과 자기 숭배. 단언컨대, 오만이었다. 결국 그 오만이 1차 대전을 가져왔고, 그런 것을 겪었으면서도 반성되지 않아 끝내 히틀러와 독일 파시즘까지 낳고 말았다고 하프너는 보고 있다.


 문득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 반지'가 생각난다. '절대 반지'는 궁극의 힘을 가져다 주지만, 누구든 그것을 손가락에 끼는 사람은 한없는 집착과 타인에 대한 불신을 가졌다. 힘을 얻는만큼 그는 오만했고 스스로 고립되었으며 타인과 자신마저 파괴했다. 힘에는 그림자처럼 그런 오만이, 숭배에 가까운 자기애가 따라 붙는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일찌기 힘을 가질수록 경계하고 겸손하라고 말씀하셨고, '스파이더맨'은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하는 지도 모른다. 힘은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욕망을 갖는 자신을 억제하고 타인을 돕는데 써야 한다는 뜻으로 말이다. 독일은 분명 힘을 가진 민족이었다. 그 사실은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대외적 여건 속에서나 1차 대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의 틀을 유지하고 다시금 번영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힘은 '절대반지'였다. 힘이 가진 의미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고 '힘이 있다'는 사실에만 집착하다 보니 그만 오만에 물들고 그것에 취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시대가 올바른 것인가 사유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히틀러에게 1인 독재의 자리까지 허락하고 말았다.


 하프너는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독재를 허용한 것에 대해 이런 분석을 내놓는다.


 1914년 8월의 분위기와 똑같이 1933년의 분위기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런 분위기 전환이야말로 앞으로 나타나는 총통 국가의 진짜 권력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감정, 민주주의에서 구원되고 해방되었다는 감정이다.(p. 226)


나 자신 아직 분명히 기억하는데 (히틀러가 촉발한) '민족주의 봉기'는 두 가지 뿌리에서 자라 나왔다. 첫째는 1933년 이전 몇 해 봉안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대한 피로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자기가 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자 했고, 확고한 손길과 확고한 의지를 지닌 한 남자가 정상에 있기를, 질서가 잡히기를 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도이칠란트가 1914년처럼(그러니까 빌헬름 황제 시대처럼) 다시 하나가 되고, 위대하고 강력해지기를 원했다.(p. 227)


 다시 말해, 이 시기 독일 민중들은 왜소한 자신을 잊을 수 있도록 강한 무언가에 속한 존재라는 것 느끼길 원했다. 내가 강하고 위대한 것에 종속되어 '호가호위'하듯 자신의 존재를 실상보다 격상시킬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시대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한 개인의 존재 가치가 한없이 줄어들수록 그 개인은 자신보다 보다 더 높은 권위, 커다란 존재에 종속되어 자신의 존재 가치가 과장 확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의 독일 민중들이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내 미천함을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를 좀 더 강하고 위대한 나로 느끼게 해 주기만 한다면 어떠한 비이성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도 용납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마음이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든 것이었다. 히틀러는 민의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신의 정당만 제외하고 모조리 없앴고,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이들을 수용소에 가두거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독일인들은 눈을 감았다. 당시 독일의 목사 나틴 뇌묄러가 쓴 그대로였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프너에 따르면 히틀러의 총통 국가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그것은 바로 테러와 선전이라고 한다. 테러는 히틀러가 돌격대를 비스 호수 온천지에서 모조리 학살한 뒤에 만든 친위대가 자행했고, 선전은 괴벨이 맡았다. 이 두 가지가 히틀러에게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여기서 또 하나, 하프너의 이 책만이 알려줄 수 있는 독특한 분석이 드러나는데, 당시 독일 국가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대로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프너는 강조한다. 히틀러 때의 독일은, 도이치 제국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국가 속 국가들이 있었다고 말이다. 다른 한 쪽에 독일 시민들에 대하여 테러를 태연하게 자행하는 폭력 국가가 있었다고 한다면, 다른 한 쪽엔 친위대조차 법을 어기면 벌을 받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민사 재판에 따라 배상해야 하는 엄격한 법치 국가가 있었다. 그렇게 독일은 서로 모순되고 갈등하는 것들이 양립하는 아주 기묘한 체제였다. 하프만은 이것을 내면에 카오스를 가지고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는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한 상태라면 어떻게 만인 지상의 1인 총통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 테러와 선전이었다. 히틀러는 이것을 통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의 일상을 통제했다. 친위대는 일상에서 독일 국민들이 사소한 잘못을 해도 영장없이, 재판없이 바로 태형을 가했다. 사람들은 예측 불허로 쏟아지는 폭력 앞에서 자신의 일상을 주관하는 국가의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분명 이미 공화국 국민으로서 민주적 경험이 오래된 독일 국민에게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상황을 정상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것이 괴벨의 선전이 해낸 성과였다. 괴벨은 자신을 반대하던 자들까지 자신이 만드는 영화, 연극에 끌어들였고 큰 틀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되도록 검열 없이 대중들이 바라는 영화, 연극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덕분에 독일 국민들은 아직도 지금이 정상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괴벨이 독일 국민에게 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당신의 일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는 환상이었고, 독일 국민은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는 한 그것에 별 비판 없이 탐닉했다. 히틀러는 그렇게 테러와 선전으로 국민과의 공조 체제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 확립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비스마르크의 유산이었다. 하프너는 비스마르크가 독일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고 말한다. 바로 '천재적 지도자를 향한 갈망'과 '정당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다.(p. 258) 


 이것이 그대로 이어져 마침내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히틀러를 선택하게 했고, 히틀러의 반민주적인 체제를 용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독일의 파시즘과 히틀러의 출현은 던져진 주사위의 눈처럼 어쩌다 맞이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비스마르크 시대부터 발아되어 언제든 분명 오고 말 것이었다. 


 히틀러가 없었어도 1933년 이후에 아마도 일종의 총통 국가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가 없었어도 두 번째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다만 수백만 유대인 학살만은 없었을 것이다.(p. 262)


 아무리 히틀러 통총 체제가 도이치 제국의 유산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프너는 유대인 학살만큼은 본래부터 없었던 오로지 히틀러만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다시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는 사실이 또 하나 등장하게 된다. 바로 '수정의 밤'이다. 1938년 11월 7일과 13일 사이 나치 친위대는 400명에 가까운 유대인을 공공연하게 살해하거나 자살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3만 명의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었다. '수정의 밤'은 바로 이런 만행을 일컫는 명칭이다. 그런데 여기에 히틀러의 숨은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하프너는 사실 이 '수정의 밤'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며 그 목적이란,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유대인 박해에 스스로 참여하도록 선동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일 국민이 아직 그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던지(이 점에서 관동 대지진 때 유언비어에 홀려 서슴없이 조선인 학살에 나선 일본인들과 너무나 대비된다.) 그런 그들의 저의와 달리 독일 국민들은 전혀 동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 박해가 독일인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리라 예견하고 독일인들이 유대인 박해에 대한 정보를 쉽사리 얻지 못하도록 유대인 수용소를 독일에서 먼 지역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하프너는 당시 독일인들이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과연 당시에 유대인 학살을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대한 것은 아마도 오직 그 개인만이 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 학살에 대해 독일 국민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프너도 그렇게 말한다. 이미 히틀러의 독일이 비스마르크 시대의 유산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서 그런 시대적 유산을 용인하고 제대로 된 성찰없이 승차해 온 독일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민 책임'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엔 사실 독일의 역사나 과오 보다 더욱 내게 살갑게 다가오는 내용이 있다. 바로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책임이다. 비스마르크의 시대나, 빌헬름 황제의 시대나, 바이마르 시대 그리고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까지 포함하여 거기 살았던 독일인들은 한 가지 점에서 지금이 나와 전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바로 '사회가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과연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때의 독일인들은 시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냉정하게 파악하여 그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행동을 통해 실천하기 보다는 개인적 바람과 욕망에 더욱 치중하여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낙관 속에 그만 방관과 순응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가지게 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그들의 바람과 욕망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으니 결국엔 자유의 억압이자 박탈이었으며 전쟁이자 유대인 홀로코스트라는 자신들이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할 오욕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모습을 여실히 보다보니, 지금처럼 사회가 잘못 되어간다고 느낄수록 근거 없는 낙관이나 막연한 기대를 품지도 말고, '다음에'라는 말로 미루지도 말며, 남이 먼저 나서주기를 바라지도 말며, 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실천할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원하는 사회란 결코 절로 입 안으로 뚝 떨어지는 감 같은 것이 아니며, 부단한 관심과 성찰 그리고 실천으로 스스로 경작해야 하는 토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지금 히틀러 집권 초기만큼이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 갈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타산지석'이란 말도 있듯이, 때로 그 고민을 이런 상황을 먼저 경험한 이들을 통해서 한 번 풀어보는 것도 좋지않을까 생각된다. 분명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얻는 게 있을 것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체제가 어떻게 나타났고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비스마르크 이후의 독일의 현대 역사에 관심 있다면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는 정녕 놓쳐서는 안되는 책이다. 오늘의 우리 나라 상황을 보면서 제대로 된 시대에 대한 고민을 품게 된 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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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선언 -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
한우리 기획.번역 / 현실문화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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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지금까지의 페미니즘 역사를 크게 3 단계로 구분한 바 있다. 1단계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로 대표되는 이른바 '평등 페미니즘'으로 보부아르의 유명한 말, '여성은 제 2의 성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성으로, 그렇게 오로지 부정과 결여의 존재로만 있어왔던 것에 반기를 들고 남성과의 동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이라면, 2단계는 그런 평등의 추구가 실은 여성을 중성적인 주체로 만든다는 것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남성과 독립적인 여성만의 가치, 문화를 지향하는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이런 여성 혹은 여성성의 강조도 그것을 너무 본질로 또 실체로 간주하다 보니, 그조차 남성과 남성성의 대비에서 나온 것으로 그 근원엔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고 또 이런 이분법적 구도 자체가 오히려 페미니즘이 진화하는데 족쇄가 된다는 이유로 아예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구도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페미니즘이 뒤이어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주장한 제 3 단계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단일하지 않고 이 속에도 종적으로는 겹으로 쌓인 여러 시대적 지층들과 횡적으로는 저마다 다양한 주장을 하는 지형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런 지층과 지형들을 무시하고 페미니즘을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잘못을 피하고 페미니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크리스테바도 언급한 바 있지만 역사적인 접근은 유용한 도움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의 개념과 주장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빚어졌으며 또 어떠한 반박과 재정립을 통해 진화했는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념은 무에서 바로 툭 생겨나지 않는다. 개념들도 저마다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온갖 갈등들을 통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마모되고 형태를 잡아가는 것이 개념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차원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 현실 속에서 매일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자신이 서 있는 진지를 방호하기 위해 이론적 무장을 했어야 했던 페미니즘은 더욱 그랬다. 그러므로 우리는 페미니즘이 걸어온 저 과거의 발자취도 마땅히 돋보기를 들이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 그것에 도움이 되는 책이 하나 나왔다. 제목은 '페미니즘 선언'. 부제가 재밌다.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년들의 목소리'. 페미니즘 역사에 대해 지식이 많으신 분들은 이 부제가 모두 페미니즘에 중요한 분기점들을 이루거나 페미니즘 진영을 들끓게 만들었던 선언들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이다. 이 책은 부제가 말하는 대로 그런 선언문들을 모은 책이다. '레드스타킹 선언문'부터 메갈리아 남성 혐오 발언에 치를 떠는 분들이라면 더욱 기겁할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까지 모두 9편의 선언문이 담겨 있다. 이 책은 60년부터 79년 사이에 미국에서 발표된 선언문을 모은 것이지만 원서가 있어 번역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직접 선별하고 번역해 모은 것이다. 저자가 이 시기에 주목한 것은 래디컬(급진적) 페미니즘이 폭발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뿌리부터 파헤쳐 바꿔내려고 시도한 거대한 운동'(p. 18)이었다. 그만한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아직 그 시기만 천착해 다룬 책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당시 래디컬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핵심을 가장 잘 담아낸 9편을 선정하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을 지금 우리들 앞에 가져온 것일까? 거기엔 한 때 엄청 뜨겁게 타올랐던 메갈리안 논쟁이 있었다. 저자는 메갈리안을 '한국적 맥락에서 태어나 자생적으로 성장한 래디컬 페미니스트'(p. 21)로 보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기에 메갈리안의 미러링이 증오를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메갈리안의 미러링이 별종이 아니라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도 했었던 보편적인 것이라는 걸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려고 이 책을 발간한 게 아닐까 싶다. 적어도 한국의 자생적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이 그냥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 역사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한국 페미니즘 계보에 어떤 형태로든 남겨두기 위해서.(p. 21)


레드스타킹 심벌


 이런 의도로 모인 9개의 선언문은 크리스테바의 구분에 따르면 모두 제 2 단계에 속한다. 남성과의 단순한 평등이 아닌 여성만의 독립적인 가치, 문화를 강조하고 구현하는 흐름에 있는 것이다. 9개의 선언문은 연대기 순이 아니다. 순서가 왜 이렇게 되어있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으므로 나도 모른다. 그냥 내 생각엔, 가장 온건한 것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순서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있는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제목에서 받는 인상 그대로 정말 가장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레드스타킹 선언문'은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선언문 중 하나다. 이 선언문을 발표한 레드 스타킹 단체 자체가 래디컬 페미니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들이 스스로를 '레드 스타킹'이라고 했던 것은 당시 남성 지식인들이 글을 쓰는 여성 지식인들에 대해 조롱의 의미로  '블루 스타킹'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강하고 혁명의 색깔이기도 한 '레드'를 그녀들은 들고 나왔다. 사실 그들은 혁명을 지향했다. 그들은 현 사회가 모든 권력이 남성에게 집중된 남성 지배 사회라고 규정했고 모든 제도와 물리력을 동원하여 여성들을 열등한 자리에 묶어두기 위해 억압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단적으로 '여성들은 억압받는 계급이다'라고 선언했다. 지금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은 모두 남성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들은 그런 개인 경험이 모두 정치적인 것이며 그런 경험들을 여성들 모두가 공유하여 여성의 계급 의식을 고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남성 지배 사회를 전복시키기 위해 그런 계급 의식을 지양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여성은 더이상 남성보다 부족하거나 남성이 결여된 존재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았다. 그보다 그런 자기 검열까지 강요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부당한 권력 관계에 더 주목했다. 이렇게 '레드 스타킹 선언문'이 하나의 계급으로써의 여성을 확고하게 정립했다면 뒤이어 나오는 '드센년 선언문'은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 본 여성성이 아닌, 여성 고유의 여성성을 강조하고 정립하는 선언문이다. '드센년(bitch)'은 남성 지배 질서에 편입되지 않는 모든 여성을 일컫는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남자들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는 모든 여성의 면모가 실은 가장 여성적인 것(true woman)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드센년 선언문'인 것이다.


 드센 년은 여성을 노예로 부리는 사회 구조를, 여성은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적 가치를 위협한다.(p. 58)

 드센 년은 여성이기전에 인간이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사회적 압박에 굴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솔직하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아웃사이더가 된다.(p. 59)


 '드센 년 선언문'은 남성의 시각에 종속되지 않은 여성, 남성 문화가 길들일 수 없는 여성 문화를 구현하려고 한다. 그렇게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 이전에 고유하고 독립적인 인간 존재로써의 여성을 강조한다. 이어서 나오는 '강간 반대 선언문'과 '미스 아메리카 대회를 멈춰라' 선언문은 모두 이와 연장선 상에 있다. 뒤이어 나오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제 2 단계 페미니즘에서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로 '레드스타킹'이 선언한 것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페미니즘 운동은 본질적으로 억압받고 차별받는 존재들의 해방을 지향한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동성애, 인종 차별과도 맥이 닿는다.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과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이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한 때, 페미니즘 진영에서 레즈비언과 흑인은 거기서도 차별 받는 존재들이었다. 아무리 같이 페미니즘을 주장하고 있어도 레즈비언이나 흑인은 거부당하기 일수였다. 보다 더 열등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시야는 오히려 더 넓어졌고 그들 때문에 페미니즘은 좀 더 넓게 확장될 수 있었다. '자유로운 사회라면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범주는 사라진다.'는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문'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분을 점차 완화시켜 나갔고, '흑인 페미니즘 운동'은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흑인 남성 역시 차별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 차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더 넓게 포용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앤디 워홀을 총으로 쏜 것으로 유명해 영화까지 만들어진 바 있는 밸러리 솔래너스의 '남성거세결사단 선언문'은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선언문들 중 남성들에게 가장 논쟁을 불러 일으킬 것 같은데, 그것은 아예 남성 자체를 여성 보다 열등한 존재로 재정립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솔래너스는 단적으로 남성이 실은 여성이 되기를 원하는 존재로, 남성이란 정말은 불완전한 여성이라고 정의한다.


 불완전한 여자로서 남자는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즉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일생을 보낸다. 끊임없이 여성을 찾고, 여성과 친하게 지내며, 여성에게 녹아들어가기를 원한다.(p. 176)


  그러므로 여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운명이며, 현재의 남성 중심 사회를 모조리 전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신랄하게 설명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읽어보면 이 선언문이 얼마나 급진적인지 이내 알 수 있을 것이다.


밸러리 솔래너스의 삶을 그린 영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이렇게 대략적으로 선언문들을 소개해 보았다. 글이 다소 길어졌기에 여기서 총평을 해 보자면, 저자가 의도한 대로, 당시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혐오는 편견에서 비롯되고 오해는 고정관념이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혐오와 오해를 피하려면 무엇보다 대상이 되는 존재를 제대로 알고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오랜 시간 종으로 횡으로 참으로 많은 변화와 다양한 맥락이 여기엔 존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선언'은 분명 그 변화와 맥락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한층 더 넓히도록 만든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면 지나칠 수 없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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