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 11 - 초한쟁패, 엇갈린 영웅의 꿈 춘추전국이야기 11
공원국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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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다닐 때, 중국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 때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사람들의 삶을 잘 살피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많이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춘추 전국 시대가 두 가지 점에서 오늘날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저마다 생존과 정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무한 경쟁 시대라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타고난 태생이 아니라 개인이 가진 능력이 모든 것을 좌우했던 시대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면면을 잘 살피고 헤아리면 분명 그와 비슷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꽤 많은 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당시 나는 춘추 전국 시대를 그저 공자가 유세를 하던 때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의 그런 말씀은 꽤나 흥미로웠고 그 때부터 춘추 전국 시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기란 어려웠다. 교수님은 사마천의 '사기'를 훌륭한 텍스트로 추천해 주셨지만 '사기'를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특히 열전은 인물 별로 나열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라 얼른 명쾌하게 정리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춘추 전국 시대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은 바람은 못 다 이룬 꿈으로만 남았다. 그러다 사는 게 바빠 그 미련조차 깡그리 잊고 있을 무렵, 불현듯 인터넷 서점 광고로 한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공원국 작가 '춘추 전국 이야기'였다. 



 제목을 보자마자 예전의 열망이 삽시간에 환기되면서 그 책을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요모조모 살펴보니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집필한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가 찾고 있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2010년에 첫 선을 보인 이 책은 시리즈로 계속 나오다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러 드디어 올해 11권으로 대단원의 막까지 내린 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어떻게 이 책의 존재를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가진 바람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관심을 타박하면서 난 얼른 이 책으로 뛰어들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11권, 그러니까 마지막 권이다. 부제는 '초한쟁패'로 진이 망할 무렵에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중국의 패자를 두고 자웅을 겨루었던 때를 담고 있다. 나는 '초한지'를 언젠가 꼭 한 번 읽어봐야지 마음 먹고 있을 정도로 항우와 유방에게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목구멍 아니 호기심이 포도청이라 이 책부터 만나기로 했다. 


 사실 11권이 담고 있는 시간은 엄밀히 말해 '춘추 전국'이 아니다. 춘추 전국 시대는 진나라의 통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저자도 그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듯 하다. 책 머리에 왜 이 책을 써야만 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원래는 진나라의 통일로 춘추 전국 이야기가 끝났어야 하지만 굳이 이처럼 한 권의 책을 더 더하면서 그것도 진나라가 갈가리 쪼개지고 유방에 의해 다시 한으로 통일되는 시대의 이야기를 하게 된 연유엔 사실 한 인물이 있었다. 첫 권의 주인공인 관중에 필적할만한 인물이 이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하는데, 작가는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인물이야 말로 자신이 왜 춘추 전국 이야기를 썼는지, 그 주제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춘추 전국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보이고 싶었던 이상적인 군주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고 그가 세운 나라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체제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야 그는 꼭 그 이야기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 인물이 바로 유방이다. 본디 결말이란 작가의 주제가 한껏 드러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권에서 이렇게 유방과 한 나라를 통하여 8년 간 계속해온 춘추 전국 이야기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는지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라 할만 하며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가진 영웅과 체제 그리고 역사에 대한 시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찍어 본 사진입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읽고 '사기'를 읽었는데 '사기'의 내용을 훨씬 더 쉽고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책은 진시황의 둘째 아들 2세가 이사와 조고의 음모로 장자인 형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진나라 말기의 시간으로 시작의 문을 연다. 나라는 하늘이 정해주지 않은 자가 간사한 무리의 협잡으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인지 국운은 쇠퇴하여 당장 내일 멸망한다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되어 있다. 무릇 나라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해서 따지고 보면 결국 그 자리에 있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온갖 간사한 꾀와 아첨하는 세치 혀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조고가 그랬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왕위의 정당한 후계자를 죽음으로 몰았으며 덜 떨어지고 조고만큼 자기밖에 모르는 2세를 왕위에 앉혔다. 위가 그러니 아래 또한 어떻게 바르겠는가? 똥에 똥파리가 꼬이듯 대저 꾀와 아첨으로 흥한 자 곁에는 그와 비슷한 무리가 모이게 마련이다. '회남자'에게 이르기를 나라가 망하기 가장 손쉬운 길은 상 받을 자가 벌을 받고 벌 받을 자가 상을 받으면 된다고 했는데, 이 때의 진나라가 그와 같았다. 이러한 나라는 백성의 신뢰를 금방 잃게 되니 곧 진승과 오광 같은 자들이 나왔다.


 진승과 오광. 그들은 정말 가진 것 하나 없는 무지렁이 백성이었다. 죄마저 지어 진나라 수도로 압송되어 가던 도중, 진승과 오광은 어차피 죽을 거 이름이나 남겨 보자면서 사람을 모아 난을 일으켰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일으킨 봉기 임에도 불구하고 삽시간에 많은 사람이 호응하여 그 아래로 모인 것을 보면 나라가 백성에게 얼마나 신망을 잃었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진승이 사람을 불러 모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이 말을 우리들 대부분은 국사 교과서를 통해 고려시대 노비 만적이 난을 일으키며 했던 것으로 알고 있을 테지만 실은 그 말의 원래 저작권은 진승의 것이었다. 진승의 난은 결국 성공하여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 진에게 커다란 위기를 안긴다. 그러나 옛 초나라 사람들이 진승을 왕으로 추대하자 그는 그만 안주하고 더이상 전쟁 선봉에 나서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을 진승의 대단한 패착으로 평가한다. 신념이 아니라 더이상 이대로 못살겠다고 일어난 난이요 사람들이 모인 이상 그 마음이 변질되지 않고 바라는 세상이 올 때까지 지속되기 위해선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구심점이 필요한데 그래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되어준 진승은 전장의 선봉이 되어야 했다.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따를 수 있도록. 하지만 큰 눈으로 천하를 도모하기 보다 자기 잇속에 빠져버렸고 그 때문에 모처럼 평범한 백성에 의해 타올랐던 혁명의 불길 또한 중원 모두를 불태우진 못했다. 진승이 자기 잇속만 챙기자 그를 따르던 이들 역시 진승의 명을 받아 정벌하러 나갔던 무신이 진여와 장의의 간계로 진승의 명을 어기고 조나라 왕이 되었듯 자기 잇속만 챙겼던 것이다.


 이는 큰일을 도모할 때 자신이 언제 나아가고 언제 물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교훈이 된다. 항우와 유방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항우와 유방은 진승과 달리 자신의 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섰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듯, 항우는 졌고 유방은 이겼다. 전쟁에서 승패란 모두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과연 무엇이 승패를 갈랐던 것일까? 항우와 유방은 태생부터 많이 달랐다. 쉽게 말해 항우는 고귀한 신분에 기골 장대한 육체하며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유방은 미천한 신분에 가진 것도 거의 없었다. 항우는 일찌기 장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유방은 건달로 지내다가 겨우 말석의 벼슬 하나 얻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천하는 끝내 유방의 차지가 되었으니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항우는 결코 하지 못했던 보다 더 큰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기 것을 희생하는 마음가짐이었다. 항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오만했고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인정하지 않았던 반면, 유방은 늘 자신의 장점 보다 결점을 더 많이 생각했고 사람에 대해 항상 겸손하게 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것은 챙기려 하지 않았고 언제나 득실을 따져야 할 때마다 이해 관계 보다 대의를 중시했다. 결국 나 보다 더 큰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유방으로 하여금 천하를 손에 쥐게 했던 것이다.


 이는 진나라의 재상 이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춘추 전국을 끝내고 통일한 뛰어난 재상이다. 원래 그는 장량만큼 현명한 책사였지만 진나라가 통일하고 높은 벼슬 자리에 오르자 그만 거기에 깊이 안주한 나머지 조고의 세치 혀에 어리석게 놀아나 결국 진나라도 패망하고 자신과 가문 또한 멸문 당하게 만든다. 진승도 그랬고, 항우도 그랬듯 모두 자신이라는 따스한 이불속을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은 결과였다.


 오로지 유방만이 유일하게 이불 속을 박차고 뛰쳐 나갔다. 그래서 비록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이라 하여도 더 가까이 보듬어 안으려 노력했다. 궁극적으로 그런 자세가 유방을 천하의 제왕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지략과 무예 모두 유방을 월등하게 앞섰지만 결국 유방에게 배신당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한신 또한 이불 속이 주는 온기에 취해버린 자였다. 그만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헛되이 삶을 잃어버리고 만 것은 괴철의 충고를 깊이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철은 그런 일이 있기 훨씬 전에 한신에게 '토사구팽'을 이야기 하며 너무 뛰어난 사람은 바로 그 뛰어남이 군주에게 위험이 되어 시대가 평안하게 되면 살아남지 못하게 되니 지금 한신의 나라로 항우와 유방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는 쪽으로 나아가라고 권했지만 새겨듣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과 현재 상황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모험 보다 안주의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결국 자신을 얼마나 던질 수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것 같다.

 '11권'의 역사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을 내려놓고 더 멀리 볼 수록 승리의 여신에게 안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아마도 이런 유방의 면모가 저자로 하여금 유방을 관중과 같은 뛰어난 존재로 평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진과 한의 싸움은 인간의 복합성을 재정의 하는 싸움이었고 한과 초의 씨움은 제왕이 되고자 하는 이와 패자로 만족하고자 하는 이의 싸움이었다.(p. 16)


 '춘추 전국 이야기'의 마지막 권은 역사란 궁극적으로 자신을 얼마나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잘 알려주는 책이었다.

 아무리 커다란 나라를 다스리고 또 아무리 천하의 대권을 두고 다퉈도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늘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대할 때 취하는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보다 큰 것을 위해 자신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느냐가 성공 여부를 좌우했던 것이다. 나의 것을 많이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과 더 큰 세계를 품에 안을수록 성공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것은 마치 손을 쥐고 펴는 것과 같았다. 내 것을 지키려 움켜쥐는 손은 주먹 안의 협소한 공간밖에 가지지 못하지만 내주려 손을 활짝 벌리면 하늘 전체를 받칠 수 있듯이 말이다. 이제야 왜 대학 교수님이 오늘을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지혜는 춘추 전국 시대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지 잘 알겠다. 앞에 한 말을 그냥 들었다면 난 전혀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승과 항우, 이사와 한신 그리고 유방의 구체적 삶을 통해 여실히 느끼고 나니 마음에 깊이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유방은 큰일을 본격적으로 도모하기 직전 도망자의 몸이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자신의 길을 가로막은 뱀을 칼로 베어버렸다고 한다. 당시의 사람들은 장차 그가 진을 멸망시킬 계시라 여겼으나 지금 드는 생각으론 유방이 베었던 뱀은 바로 자신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욕망, 이해 관계, 이기심 같은 것들. 진승과 항우 그리고 이사와 한신을 보니 결국 자신의 길을 가로 막았던 뱀은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게도 그런 뱀이 있다. 지금까진 그 뱀을 못 본척 하고 비켜가거나 살살 달래기만 했는데 유방의 이야기를 한껏 겪은 지금 이제는 베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미루는 것도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 역시 책을 통해 똑똑히 보았으니.


 무협지를 읽는 것만큼 재밌고 흥미진진한 역사서였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이 활약했던 시대보다 더 많은 알게 된 건 바로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역사가 무엇보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알고 싶다면 '춘추 전국 이야기'를 벗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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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타고난 태생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 모든 걸 좌우하던 시대˝가 잠깐 왔다가 끝나버려서 춘추전국시대가 난감해졌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ICE-9 2017-11-28 17:56   좋아요 1 | URL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한나라까지는 이어졌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끝나도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 어떤 시대든 좋은 것들은 자취를 남겨 뒤에 오는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는 것 같습니다. 길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걸어갔기에 길이 되었다는 루쉰의 말처럼.^^

양철나무꾼 2017-11-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1권까지 다 구해놓고는,
지금 앞부분 어디에서 잠깐 멈춤입니다.
제가 이쪽에 대해서 지식이 워낙 얄팍하다보니,
군데 군데 숨은 복병처럼 막혀버립니다.

일단 팟캐스트 방송 들으며 워밍업하고,
다시 내달려야 겠습니다.^^

저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ICE-9 2017-11-28 18:00   좋아요 0 | URL
앗! 양철나무꾼님 너무 반갑습니다. 말씀도 감사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막혀버리는 게 양철나무꾼님의 지식이 아니라 문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게도 좀 편한 문장들은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이렇게 말씀 남겨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기쁘네요. 양철나무꾼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겔 밀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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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래된 질문입니다. 쌓여 있는 시간만큼 많은 대답이 존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것은 도구였습니다.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여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죠. 경험칙상 맞기도 했습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없었으니까요. 이것은 1960년대 제인 구달이 아프리카에서 침팬지가 인간과 똑같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함에 따라 비로소 깨어졌습니다. 그러자 다른 하나가 나왔습니다. 바로 '언어'입니다. 동물은 말할 수 없고 말도 배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오래지 않아 깨어졌습니다. 오래도록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관찰한 로저 파우츠가 '워쇼'라는 침팬지를 통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 언어를 배우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가장 강력한 선 하나가 이렇게 하여 사라졌습니다. 이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라 연속 상의 한 존재라는 게 밝혀진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로저 파우츠의 '침팬지와의 대화'는 바로 그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원래는 아동 심리학을 전공하려 했던 로저 파우츠가 어쩌다 '워쇼'를 통해 동물 행동학에 뛰어들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워쇼와 다른 침팬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워쇼는 동물이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세상, 또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세상으로 나를 데려갔다. 이 놀라운 여행에서 나는 다른 침팬지도 수십 마리 만났는데, 다들 워쇼만큼이나 개성 있고 표현을 잘했다. 결국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우게 되엇다. 인간 지성의 본질, 인간 언어의 근원에 대해서, 또 우리가 어디까지 연민을 느끼는지, 우리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p. 17)


 진실로 이 책은 그가 워쇼와 다른 침팬지를 통해 배웠다고 고백했던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그렇게 우리는 워쇼와 함께 한 로저 파우츠의 기록을 따라서 당시까지만 해도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스키너의 '동물의 행동이란 그저 자연 조건에 따라 형성된 것 뿐이다'라는 <조작 형성 이론>과 노엄 촘스키의 '인간의 언어 습득은 뇌 어딘가에 언어 통사론 규칙이 코딩되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보편 문법 이론>이 어떻게 차레대로 오류로 드러나는가와 이러한 침팬지의 수화 학습 능력이 자폐아와의 소통과 치료에도 응용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과학계에 널리 퍼져 있는 인류 공영을 위해서라면 동물을 기꺼이 실험의 희생자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로저 파우츠가 워쇼와 함께 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혈족인 침팬지에게 그동안 과학과 인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인간들이 저지른 죄악들을 보며 그런 인간의 하나로서 참회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침팬지에겐 달갑지 않은 운명이 닥쳐왔습니다. 미국이 우주 비행을 소련과 경쟁하던 무렵에는 아프리카에서 포획된 60마리 이상의 침팬지가 비행 훈련을 받았습니다. 작은 종 모양의 캡슐을 타고 우주로 돌진할 경우 어떤 위험이 있을지 아직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기에 인간 대신 침팬지를 보내 알아보려는 속셈으로 말이죠. 네, 침팬지는 옛날에 흔히 광산에서 갱도에 혹시 유독 가스가 나오지 않을까 알기 위하여 유독 가스를 맡으면 바로 죽기 때문에 가져갔던 카나리아와 똑같았습니다. 그런 침팬지를 스키너의 조작 형성 이론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하면 바나나가 나오는 보상을 주면서 열심히 훈련 시켰지만 최초로 궤도에 진입하여 지구를 돌았던 침팬지 <에노스>는 기계 고장으로 제대로 조작 했는데도 바나나가 나오기는 커녕 전기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버튼을 잘 눌러서 결국 로켓 결함에도 불구하고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스키너의 이론에 보기좋게 엿을 먹였습니다. 동물이 단순히 조건 반사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에노스>는 비행 1년 후, 비행에 따른 후유증 때문이었을까요? 이질로 죽고맙니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이 끝난 뒤에도 침팬지에게 안식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침팬지는 인간을 대신하여 다양한 실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죠. 특히 의학 실험이 많았습니다. 그것을 위해 엄마 품에서 강제로 떼어내 연구소로 운반되는 어린 침팬지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침팬지도 인간만큼 모성이 강한 존재라 그렇게 아이를 잃어버리면 커다란 상처를 받습니다. 그건 강제로 어미와 헤어진 어린 침팬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AIDS가 본격적으로 알려졌던 80년대엔, 인간처럼 감염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침팬지가 치료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AIDS 바이러스를 투여 받았고 그것으로 죽어갔습니다. 정말 인간의 침팬지에 대한 잔혹한 만행이 끝도 없습니다. 워쇼도 그렇게 실험을 위해 끌려온 침팬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의학 실험체로 쓰이기 전에 앨런과 비어트리스 가드너 박사 부부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가져옵니다. 원래는 캐시란 이름이었는데 가드너 부부는 연구에 쓸 동물에게 사람 이름을 붙이는 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여 거리 이름인 '워쇼'를 붙여줍니다. 그만큼 그들에게 워쇼는 그저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워쇼'에게 플라톤과 데카르트를 거쳐 오래도록 서양 문명에 굳건히 자리잡아온 '인간 중심주의'를 붕괴시킬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이 바로 로저 파우츠였습니다.

 워쇼가 수화를 통해 사람과 소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말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전공과 꿈마저 바꿔버렸습니다. 그러나 워쇼가 열어 준 길은 그에게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 길은 학계의 주류와 정면으로 싸워야 하는 길이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노엄 촘스키의 <보편 문법 이론>이 그랬습니다. 언어 통사 문법 자체가 인간의 뇌 어딘가에 코딩되어 있다는 그 이론은 언어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런 해부학적 구조를 가지지 못한 동물은 언어를 가질 수 없다고 아예 배제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워쇼는 언어란 모방과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으며 창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렇게 언어 또한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몸짓의 발전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로저 파우츠는 자신이 워쇼에게 본 것을 믿고 저널에 발표했고 제인 구달의 도움까지 받아 노엄 촘스키 이론에 짙게 투영된 인간 중심주의를 허물어갔습니다. 당시 유명한 동물 행동학자이던 롬 하레도 원래는 촘스키 이론을 지지했는데 어느 날 워쇼가 잡지를 보며 수화로 혼잣말 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며 바로 그 입장을 철회해 버렸습니다. 워쇼가 로저 파우츠에게 심어준 신념은 침팬지와의 소통이 자폐아와의 소통에도 그대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한층 더 확고해졌습니다.



 사진은 제인구달과 함께 있는 로저 파우츠의 모습. 안고 있는 침팬지는 '타투'로 가드너 부부가 지원금이 끊어지자 더 이상 키우지 않고 동물원에 넘기려고 하는 걸 로저 파우츠가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맡아 키웠습니다. '타투'는 꽤 얌전한 성격으로 별로 말썽을 부리지 않았으며 자기가 갖고 논 장난감은 항상 제자리에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가 계속해 온 워쇼와의 대화는 외부만 무너뜨린 게 아니었습니다.

 로저 파우츠 자신도 많이 변하게 했습니다. 결정적으로는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 것입니다. 워쇼를 비롯한 많은 침팬지들이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는 로저 파우츠로 하여금 인간과 동물을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인간>이란 <존재>의 한 형태일 뿐임을, 나에게 나의 본질은 인간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워쇼였다. 세상에 인간이라는 존재, 침팬지라는 존재, 고양이라는 존재가 있다. 나는 한 때 그러한 존재들 사이에 그었던 선 - 어떤 종은 가두고 어떤 종에게는 실험을 하도록 허락하는 선 - 을 더 이상 도덕적으로 옹호할 수 없었다.(p. 404 ~ 5)


 하여, 로저 파우츠는 제인 구달과 함께 적어도 침팬지만큼은 실험하지 않도록 하는 규약을 마련하려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류를 위해 동물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 주류 과학계는 오히려 로저와 제인을 비합리적이라 비난하고 결국 규약 정립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편협과 냉담을 경험했으니, 로저 파우츠가 책에 이렇게 쓰고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는 과학이 항상 객관적 지식을 고결하게 추구하면서 진실을 향해 전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자기 시대의 편견을 체화한다. 그리고 과학자는 무지를 지식인 척 포장할 수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사실>이 윤리적 경계를 세우고 뒷받침하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편협한 일반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불행히도 역사가 증명하듯 무지와 오만이 결합하면 해당 문화의 윤리적 우주 바깥의 존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p. 452)

 

 그러므로 우리는 로저 파우츠가 했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아무래도 숙고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간의 고통이 침팬지의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인간의 생명이 왜 침팬지의 생명보다 더 소중할까? 우리는 윤리적 원칙이 아니라 기껏해야 노골적인 자기 이익 때문에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내가 이웃의 심장을 꺼내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웃과 나는 다르지만 무척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가 나의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우리는 공동의 선조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사촌이다. 내가 우리 사이에 긋는 유전적 경계는 임의적이며, 나는 이웃을 죽여서 내 아이를 살리고 싶다는 자연적인 생각을 꺽어야 한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침팬지의 심장을 꺼내는 것은 옆집으로 걸어 들어가서 이웃의 심장을 꺼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침팬지가 내 딸만큼 나와 가깝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고통의 조상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침팬지는 내 이웃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촌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원칙을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에게만 적용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개와도 공동의 선조를 가지고 있다. 개들에게까지 권리를 확장해야할까? 쥐는 어떨까? 어디서 멈춰야할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덜 바람직한> 동물들까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윤리적 우주의 빗장을 걸어 잠글 수는 없다. 시간은 계속 전진하고 우리의 윤리적 영역은 계속 확장될 뿐 축소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p. 457 ~ 9)

 

 하나의 빗금은 안과 밖을 나눕니다.

 그러나 빗금이 딱 하나만 그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 번 빗금을 허용하면 두 번, 세 번도 가능하게 됩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인류와 동물 사이에 놓인 빗금이 흑인에게도 긋게 했으며 제국주의 때는 식민지 백성에게도 긋게 했고 사회주의가 유포될 때는 다른 이념을 가진 자에게 그었으며 우리나라에선 지역마다 빗금을 그었고 지금은 이주자에게 긋고 있듯이 말이죠. 이처럼 하나의 선은 복제되고 확장됩니다. 이것을 통해 빗금이 그어지는 결정적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저 파우츠의 말대로 자기 이익 때문에 그어진다는 것을 말이죠. 보다 많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경쟁자가 보다 많이 줄어들어야 할테니까요. 빗금을 통해 잠재적 경쟁자들을 아예 경쟁자들을 배제해 버리는 것만큼 경쟁에 유리한 것도 또 없고 말이죠. 타자를 고려하고 배려하면 할수록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쾌락은 적어지는 법이니 빗금에 대한 욕망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달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빗금이 실은 이익보다 고통을 더 많이 가져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어 놓은 차별과 배제의 빗금은 언젠가 내게도 그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빗장은 이익에 따라 임의로 그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저 파우츠 말대로 윤리적 영역의 확장은 좋은 일입니다. 물론 그것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에 대해선 신중한 고민과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하겠죠. 그 고민과 논의의 시작을 이 책, '침팬지와의 대화'와 더불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식의 전환과 그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게 만드는 책이니까요. 분명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며 그 여운 속에서 동물의 권리와 나 아닌 다른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 정립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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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17-10-27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금에 관한글이 인상적입니다

2017-10-31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7-11-0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팬지뿐 아니라 많은 동물을 실험에 이용했죠 그런 걸 처음 할 때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걸 아예 생각하지 않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동물도 권리가 있죠 사람이 마음대로 이용하면 안 될 듯합니다 말도 사람과 다른 말을 쓸 뿐 같은 동물은 서로 말하겠죠 사람보다 간단할지라도... 사람은 그런 것을 알게 되고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는군요


희선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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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라고 창비에서 나오는 책이 있다.

 한 나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는 책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 방면에서 최고의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시리즈를 중국 편을 통해 처음 만났다. 중국으로 여행 가게 되어 읽어봤던 것인데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재 정치 상황을 망라 하면서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어 중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래서 시리즈에 신뢰가 생겼는데 이번에 프랑스 편이 나오니 손에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프랑스의 대선은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기존 정당이 하나도 대선 결선 투표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모두 보수 우익만 참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정황으로 비록 그들의 지지율이 그리 압도적이지 못하였다고는 해도 확실히 프랑스의 정치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어쩌다 이런 프랑스가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새삼 내가 프랑스에 대해 뭘 알고 있는가에 생각이 미쳤고 이번 기회에 프랑스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있던 차에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가 나와 준 것이다.



 당장 들여다 보았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노동 역사를 전공으로 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있는 박단이 책을 썼다.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장 하나가 프랑스의 사회, 정치, 지리, 정치경제, 문화, 한불관계를 각각 다룬다. 쉽게 한 나라의 모든 부분을 고루 살펴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국 편이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 편도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했다. 첫 부분에 나오는 언제나 하나의 공화국을 지향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선 다문화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부터 그랬다. 프랑스 하면 톨레랑스라서 다문화 정책이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니 놀라웠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 중요한 것은 톨레랑스 보다 연대를 뜻하는 '솔리다디테'라고 한다. 그렇게 자신이 또 하나의 프랑스 자체라고 여기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평등에 대한 생각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커서 사회 보장 제도가 일찍 자리잡았고 적극적으로 펼쳐졌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인물 하나를 만났는데, 바로 '아베 피에르'다. 2차 대전 때문에 프랑스에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집이 없어 겨울에 얼어죽는 사람이 많았는데, 당시 빈민 운동을 하고 있던 아베 피에르는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것보다 얼어죽을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면서 주인의 허락 없이 빈집에 들어가는 운동을 벌여 프랑스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시리아에는 사람이 없는 빈집이 있으면 누구나 들어가 제 집처럼 살 수 있는데 프랑스에도 그런 것을 추구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솔리다디테가 강했던 프랑스가 여성에겐 어찌된 일인지 야박하게 굴었다. 페미니즘이 프랑스에서 처음 생겨난 말이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1870년 경에 생겨난 이 말은 원래 여성적 특징을 보이는 남성 환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답게 여성이 들고 일어난 것도 가장 빨랐다. 프랑스 혁명 때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봉기하여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1789년 10월, 파리 시장에 있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베르사이유 궁까지 걸어가 왕을 접견하기도 했었다. 이런 일들이 당시 프랑스 남성에게 여성을 새로이 보게 만들었으나 여성에 대한 처우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혁명을 주도했던 급진 세력들은 오히려 여성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고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주도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오직 남성만을 위한 것이며 여성에 대한 것은 빠져 있다고 비판하면서 스스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올랭프 드구주는 프랑스 혁명 때 남성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활약한 유명한 혁명가였으나 결국 로베스피에르와 마라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렇게 여성 혁명가의 입을 막은 혁명 세력은 아예 여성에겐 인간이 타고난 권리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아내는 자기가 번 돈 조차 남편의 허락 없이 쓸 수 없는 등 여성을 철저하게 남성의 소유물로 만들어 버렸다.


 책엔 올 컬러의 사진 자료와 'Q&A'가 있어 더욱 이해를 돕고 부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는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그림으로 그림 속 여인 마리안이 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혁명의 상징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란 걸 밝히고 있다. 여성을 그만큼 천시했으면서도 왜 상징은 여성으로 삼은 것일까? 혁명 주도 세력은 당시 공화국 개념이 생소한 민중에게 그들이 세우고자 하는 공화국이 좋은 것이라고 알릴 필요가 있었고 민중의 문맹률이 높았던 상황에서 이미지로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공화국 이미지를 민중에게 친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프랑스 국가는 여성으로 지칭하는 게 언어 관습이었으므로 혁명의 상징을 여성으로 한 것이라 한다.


 계몽 사상의 가장 밝은 빛이던 프랑스 혁명에도 이런 어둔 그늘이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는 이렇게 온전히 밝지만은 않은, 빛과 어둠 사이를 일렁이는 나라였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바로 그런 면모를 깊게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바로 그 불안한 일렁거림이 오늘의 극우 마리 르펜과 마크롱만의 대선 결선 투표를 자아낸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 편이 그랬듯, 프랑스 편도 프랑스에 대해 전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게 만들었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진다. 나는 이 책을 가급적 청소년들이 봤으면 좋겠다. 청소년이 읽어도 이해에 전혀 무리가 없게끔 쉬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교과서나 신문 보도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폭 넓고 상세한 내용 때문에 한 나라를 훨씬 깊이 이해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누구나 오늘날의 세계를 너나 없이 연결되는 글로벌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다른 나라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우리나라에 일어나는 일만큼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고 강 건너 불 구경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한 나라의 일이 마치 나비 효과처럼 다른 나라로 파급 되는 것을 우리는 참 많이 목격한다. 그런 면에서 다른 나라의 일도 나의 일처럼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제 우리 일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일을 이해하는데 있어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무엇보다 그 나라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만큼 좋은 것도 또 없다. 거기에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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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살아남기 - 우리가 몰랐던 신기한 전쟁의 과학
메리 로취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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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과학 하면 얼른 뭐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부분은 확증 파괴대량 살상이 주된 목적인 병기 제작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메리 로치의 책, '전쟁에서 살아남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전쟁 과학의 면모를 보여줍니다적을 무찌르고 승리해서 살아남는  아닌정말로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전쟁 과학의 모습을 말이죠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접해보지도 못했던 분야를 열어주는 책이라 읽으면서 사실 놀랐습니다. '아니이런 것까지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단 말이야그것도 오직 병사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으로?' 하고 말이죠그야말로  책은 좁은  시야를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늘의  연구와 실험이 전쟁에서 하나의 목숨이라도  살릴 것이라 믿으며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을 보면서 세계가  생각보다는  희망찬 곳이라는  믿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전쟁 과학의 분야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여러 과학적인 지식마저 습득하도록 하며 어느덧 세계와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달리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바로 '워싱턴 포스트지가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로 평가한 메리 로치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인 것입니다.



 과연 저자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지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책은 피부와 온도 그리고 감각과 설사  여러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망라하고 있지만 결코 어렵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마다 들어차 유쾌하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중간에 덮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 같네요. 왜냐하면 책에 담긴 내용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것들로 가득이라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거든요. 진정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런 기막히는 연구가 행해지는 것을 몰랐을 것이며 우리가 무심히 여겼던 것들이 의외로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그런 것을 수시로 던져주니 아무래도 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더군요. 


 너무 칭찬만 하는  아니냐구요하지만 과장이 아닌  어쩌죠감히 법정에서 선서도   있을만큼 제겐 좋은 책이었습니다올해의 가장 좋은 책으로 뽑을 수도 있을  같습니다.

 

  페이지부터  책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립니다여러분 대포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닭을  대포입니다. 물론 죽은 닭이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불쌍한  가지고 무슨 만행이야?' 하면서 삿대질을 하기 전에, 왜   대포가 필요한지  이유를 얼른 말씀드리도록 할게요혹시 영화 '인디아나 존스' 3 보셨나요 코네리와 해리슨 포드가 부자지간으로 나오는 영화 말이죠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인디아나 존스 부자가 해변에서 전투기에게 공격을 받습니다주인공에겐 달리 대항할 수단이 없는 상황   코네리가 우산을 활짝 펼치고는 갈매기 무리에게 달려가 하늘로 날아오르도록 합니다마침 전투기가 다가오는 시점이었습니다갑자기 전투기는 비상한 갈매기 무리에 둘러싸이고 많은 갈매기들이 전투기에 부딪힙니다수많은 갈매기와의 충돌로 결국 전투기는 추락하고 맙니다이건 절대 영화적 과장이 아닙니다실제로 새들에게 부딪혀 비행기가 추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는 더 그렇구요. 그래서 비행기를 새떼들과 부딪혀도 추락하지 않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강도의 실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대포인 것입니다몸무게 1.8킬로그램의 닭을 시속  65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쏘아 과연 비행기가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죠하하그런 닭대포라니. '정말 희한한   있구나!'  만하지 않습니까? 세상 어딘가엔 지금도 죽은 닭이 펑펑 날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닭 대포의 실제 모습.


 이런 것들이 여기엔 잔뜩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영화에서 전투 중에 위생병이 너무나 당황하여 부상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왕왕 있습니다. 관객들은 그걸 보면서 인지상정을 여길 뿐, 놀랍게도 그런 것을 막는 훈련이 실행되고 있는 것은 모르겠죠. 영화 감독까지 데려와 무대와 각종 특수 효과 장치로 실제에 버금가는 치열한 전투 상황을 연출하여 위생병이 그런 상황에 심적으로 내성을 가지도록 만드는 훈련이 말이죠. 그리고 또 전쟁 과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연구되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의 설사라는 것도 알 수 없을테죠. 역사적으로 전쟁 중에 적군의 총알에 맞아 죽는 병사 보다 이질이나 설사로 죽는 병사가 더 많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1848년 멕시코 전쟁 때 미국인 1명이 전투로 사망할 때마다 7명이 병으로 죽었으며, 대부분은 설사 때문에 죽었다. 미국 남북 전쟁 때 설사나 이질로 죽은 병사는 95,000명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 입원한 군인보다 설사병으로 입원한 군인이 4배가 더 많았다.(p. 178)


 세계보건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연간 220만명이 설사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질질 싸는 것도 허투루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설사 근절에 여념이 없는 한 학자는 오늘도 군대의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있는 병사들의 테이블을 돌며 "왜 설사를 참고 견디나?"고 묻고 다닌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지사제를 사용하면 4~12 시간 정도면 설사가 멈춰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걸 사용하지 않고 평균 3~5일 동안 설사를 참기 때문이죠. 그럴수록 안 좋은 것도 모르고 말이죠.


 냄새 폭탄은 또 어떻습니까? 2차 대전 때 미국은 일본 장교들에게 사용할 냄새 폭탄을 만드는데 꽤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일본인은 소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아무데나 눌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데 유독 대변에서는 그런 걸 많이 느낀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런 대변 냄새가 나는 소형 분무기 같은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주로 일본 장교에게 뿌려 냄새 때문에 부하들이 장교를 기피하게 만들고 장교 역시 부하들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 작정으로 말이죠. 네, 이런 것도 미국은 아주 진지하게 연구했습니다. 그것도 엄중한 기밀 프로젝트로 말이죠. 이름도 있었습니다. <누구, 나?> 폭탄이라는. 


 뭐든 깊이 들어가면 진지함과 개그의 차이 같은 건 없어져버리나 봅니다. 이런 내용들이 연타로 나오니 어떻게 중간에 덮어버릴 수 있겠어요? 거기다 메리 로치는 실제 그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현장 체험기가 또 재밌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냄새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냄새를 잘 판별하여 병사가 스트레스를 받기 전 개입할 것을 목적으로 스트레스 냄새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인데, 여기에 메리 로치도 일조를 했습니다. 자신의 겨드랑이 냄새를 기부한 것이죠. 이러한 생생한 체험기까지 도처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욱 '큭큭' 하면서 읽었습니다. 


 바야흐로 명절이 코 앞입니다. 선물처럼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 중이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가진 정보가 남달라서 지식의 범위를 확장시켜 줄 뿐 아니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재미도 충만하기 때문에 연휴의 편한 시간을 보내기에 딱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야말로 한 번 거닐어 볼만한 지식의 신세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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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 0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5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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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만이다. 그러고 보니 리베카 솔닛의 책은 꼭 2년 주기로 만났던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뇌리에 각인시켰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읽은 2년 뒤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킨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만났고 또 그 2년 후에 이렇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와 해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리베카 솔닛의 책이 그것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나오기 전에도 창비에서 '어둠 속의 희망'이 나와 있었고 민음사에선 '걷기의 역사'(이 책은 계속 절판이었다가 리베카 솔닛이 인기를 얻자 '걷기의 인문학'으로 제목을 바꿔 재간되었다.)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책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널리 알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결이 참 달랐다. 넓게 보자면 모두 환경에 대한 책으로 지금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대표적으로 인식하는 '페미니즘'은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 이 환경 분야가 리베카 솔닛이 전력을 기울이는 쪽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왜 지금은 페미니즘 투사가 되었을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바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2014년 5월 23일. 미국 아일라비스타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2세의 남성 엘리엇 로저가 칼과 총 그리고 차량으로 모두 6명을 살해하고 13명을 부상입힌 것이다. 저지른 짓도 저지른 짓이었지만 그 동기가 더욱 충격이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여성들과 그 여자들과 즐거이 어울리는 남자들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대학 여학생 사교 모임 회원들을 대량 살인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제 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것이었다. 한 마디로 동기의 핵심엔 '여성 혐오'가 있었다. 많은 주류 언론은 그러한 동기를 무시하고 그저 한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정리해버렸지만 개인들, 특히 여성들은 그럴 수 없었다. 적의와 살해의 대상이 바로 자신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목소리들을 분출시켰다. 주류 언론의 한결같은 침묵이 그 목소리들을 더욱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발달된 SNS를 통하여 '#yesallwomen(여자들은 다 겪는다)'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그것은 거세게 흘러나왔다. 저마다 여성으로 살면서 당했던 고통, 가졌던 불안과 공포를 고백하는 물줄기였다. 


 여자들은 자신이 겪은 희롱, 위협, 폭력,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목소리를 보강했다.(p. 130)


 계기가 우리나라와 참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벌어진 한 살인 사건이 다시금 페미니즘에 주목하도록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물줄기가 아일라비스타에서 일어난 비극이 결코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며 실은 여성이 처한 현실의 적나라한 진실이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걸 사방에 외쳤다. 봉기의 함성 그대로였다. 리베카 솔닛은 말했다. '2014년은 남성의 폭력에 항거하는 페미니즘 봉기의 해(p. 120)'라고. 


 이것이 환경 쪽에 머물러 있던 그녀의 발걸음을 바꾸었다. 환경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대한 열정과 똑같은 크기로 페미니즘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이 순간을 몇십년이나 기다리고 있었고(p.124) 마침내 타오른 그 불길을 언제까지나 타오르게 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이번에 나온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그런 마음의 산물이었다. 보다 인문학적이었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달리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더 많이 다룬다. 앞의 책이 총론이라면 이번 책은 각론 같은 느낌이랄까?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1부, '침묵이 깨어지다'와 2부, '이야기를 깨뜨리다'로 이뤄져 있는데, 제목 그대로 1부는 2014년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침묵이 깨어진 것과 관련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고 2부는 그동안 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남성의 이야기에 맞서 2014년에 출현하여 이제 하나의 점이 된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남성의 이야기 못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보다 구체적인 차원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오직 이 책을 위해 리베카 솔닛이 쓴 '모든 질문의 어머니'가 서문 격으로 나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무엇인지 부각시켜 준다.


 아무래도 이 책의 중핵이라 할 부분은 '모든 질문의 어머니'와 1부 맨 처음에 나오는 '침묵의 짧은 역사'가 될 듯 하다. '침묵의 짧은 역사'에서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에게 가해 온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여성들이 그 침묵을 적극적으로 깨뜨려야 하는지 알려준다.


 당신이 여자로서 어떤 노선을 취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분야로 진출한 경우 괴롭힘은 어차피 따라붙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 당신이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괴롭힘을 끌어들인다.(p. 90)


 이런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거부하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었던 여성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지금은 과거에 말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는 등 변화를 일으켜 왔다. 특히 여성과 관련하여 오늘의 세상이 진전한 게 있다면 모두 그 목소리들이 만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힘 닿는 데까지 진실을 말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일, 특히 과거에 침묵당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거나 갈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혹시 우리가 가진 특권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특권을 없애거나 그 범위를 넓히는 일. 이 모든 일이 우리가 각자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만든다.(p. 117)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태도를 '모든 질문의 어머니'는 말해준다. 그것은 현재 상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상식으로 굳어진 것도 진리는 아니며 아직은 잠정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베카 솔닛은 행복도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은 무엇보다 질문이 없는 상태인 까닭이다.


 요즘 우리의 행복에 대한 집착은 이런 다른 질문들을 던지지 않으려는 방편일 지도 모른다. 우리 삶이 얼마나 광활할 수 있는지, 우리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 우리 사랑이 얼마나 넓을 수 있는지를 모른 척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p. 27)


 그렇지 않아도 원래 낙원이라는 단어의 어원 또한 산크리스트어로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정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행복이든, 낙원이든 실은 누군가 '여기까지다' 하고 한계를 지어놓은 것 안에서의 안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 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라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질문은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하나는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사실 낙원의 벽과 같다. 질문 받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고유한 주체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여성을 사회가 규정한 규격화된 정체성에 채집한 곤충처럼 고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이 흔히 받는 질문으로 들고 있는 '아이는?'  못지않게 여성이 반복적으로 받는 질문이 또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일을 하면서 육아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이 질문은 오직 여성에게만 행해진다. 왜 남자는 그런 질문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또 그런 것이 당연시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엔 합당한 이유가 없다. 당연히 의심을 하고 질문이 되어야 하는 사항인 것이다. 이렇게 질문은 다르게 사용된다. 여성이 받는 질문은 간접적인 정체성의 강요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 스스로 제기하는 질문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벽을 초월하려는 탈주인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이러한 의심과 질문을 소중히 한다. 모두 여성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을 형성하며 지속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2부에 나오는 소설 '롤리타'와 영화 '자이언트'에 대한 글은 그 의심과 질문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모습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읽어보면 바로 느낄 터인데,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후속작 느낌이 강하다. 그 책과 똑같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들의 모음이며 페미니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책이 아나 떼레스 페르난데스의 그림들을 실었듯이 여기에도 리베카 솔닛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빠스 데 라 깔사다의 그림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그러니 아직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참에 둘을 같이 묶어서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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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9-12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에서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서양의 세계 제패의 힘은 ˝질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매우 의미심장한 말인데 우리는 흔히 퉁쳐 ˝이성˝의 힘을 강조하지만 좋은 질문, 의문을 갖고 제시하고 행동에 담지 않는다면 이성도 고약한 똥덩어리일 수밖에 없다는 걸 공감하게 되죠.

ICE-9 2017-09-13 20:53   좋아요 0 | URL
앗, AgalmA 님도 그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읽었답니다.^^ 전 알쓸신잡이 한창 방송할 때 읽어서 그런지 책에서 자꾸 알쓸신잡이 연상되더라구요. 아무튼 꽤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질문과 의문에 대해 하신 말씀, 적극 공감합니다. 살아가면서 더욱 정답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