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맨 모중석 스릴러 클럽 45
로버트 포비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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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 맨'이라는 심플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에 시선이 끌렸던 것은 띠지에 나와 있는 '괴물 같은 작가의 악랄한 데뷔작!'이라는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요, 저 팔랑귀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이런 문구에 쉽게 현혹이 되어야 이걸 쓴 사람도 그 한 줄의 문구를 적기 위해 머리를 꽁꽁 싸맨 채 고민한 보람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현혹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악랄한 작품이었으니까요. 시작을 여는 살인 사건부터 그렇습니다. 어떤 저택에 세든 모자가 희생자인데, 글쎄 아이와 엄마 모두의 살가죽이 모조리 벗겨진 것입니다. 그것도 아이를 죽일 때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했다고 하니, 어떻게 악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처럼 처음부터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을 연출하는 작가의 이름은 로버트 포비(ROBERT POBI).

 응, 포비? 만화 영화 '미래소년 코난'에서 코난과 함께 인더스트리아에 맞서 싸우던 동료의 이름이 아니었던가요? 기억하시죠, 이 모습의 소년을? 후후.


 



그래서 친근했고 이름을 기억에 얼른 담아둘 수밖에 없더군요. '블러드 맨'은 놀랍게도 그의 데뷔작이었습니다. 원래는 영국 조지 왕조 양식의 골동품을 거래해서 크게 성공도 한 사업가였다는데, 소설을 너무나 쓰고 싶어 사업을 정리하고 롱 아일랜드의 땅끝 마을로 불리는 몬탁에 칩거, 내내 이 소설만 썼다고 합니다. 옆에는 이제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너무나 유명해진 존 더글러스의 '마인드 헌터'를 두고서 말이죠. 그리하여 배경은 몬탁이고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블러드 맨'이라는 소설이 '짜잔!'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연쇄 살인마가 나온다는 건, 희생자가 모자 둘만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네, 아닙니다. 제2, 제3, 제4, 제5 등등 아주 허다하게 마구 죽어나갑니다. 그것도 처참한 상태로 말이죠. 정말 악랄한 연쇄 살인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존재가 나왔으니, 당연히 그를 추적하고 체포하는 수사관도 등장해야겠죠? 물론 그런 존재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FBI 수사관 제이크 콜입니다. 그는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거기다 현장의 모든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듯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뛰어난 마인드 리딩과 시각적 기억력을 가지게 된 건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제이콥 콜은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엄청난 금액에 그의 그림이 팔릴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그 아버지 제이콥이 집에 불을 지르고 자신 역시 심한 화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유일한 아들인 제이크는 아버지가 계시는 몬탁으로 올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엄마와 아들이 살가죽이 벗겨진 채로 살해당한 사건이 몬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의도치 않게 그는 사건을 맡게 되는데 그건 그에게 아주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도 그럴것이 삼십년 전에 제이크의 어머니가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했으니까요. 아직도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 미해결로 남은 그 비극은 제이크에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였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도 오래도록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로 소원하게 지냈죠. 그런 아버지가 제이크가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다시 나타났어. 그가 널 잡으러 오고 있어."


 이 말은 삼십 년 전에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이 다시 나타났고 그가 엄마와 아들을 살해했으며 이젠 제이크를 해치려 한다는 뜻일까요? 알츠하이머로 그의 의문을 제대로 해명해 줄 수 없는 아버지로 혼란스러운 그의 눈에 병원 복도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피로 그렸다는 그림, '블러드 맨'이. 



 그 초상화는 아버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온 거예요. 아버님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계세요. 그 두려움이 꿈과 절규로 터져나오고 있어요. 아버님은 그걸 끄집어내서 세상에 보여주려고 하세요. 마룻바닥에 산다는 그 피의 남자, '블러드 맨' 얘기도 그렇고.(p. 305)

표지의 그림은 바로 그 '블러드 맨' 초상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크는 그 그림이 살인자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열쇠라고 직감합니다. 그러는 동안 혼자 있는 남편을 염려하여 아내 케이와 아들 제러미가 몬탁으로 찾아옵니다. 사실 제이크는 그게 탐탁치 않습니다. 두 가지 상황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연쇄 살인마가 가족까지 해할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몬탁으로 지금 몰려오고 있는 롱 아일랜드 역사상 최고로 강한 허리케인 딜런 때문입니다. 자연도, 문명도 공히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이크는 자신 앞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모든 위기를 모두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삼십 년 전과 다르게 이번엔 자신의 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품은 가운데 소설은 정말로 충격적인 반전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배경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흥미로운 설정을 지닌 이 소설은 반전까지 더해 참으로 끝까지 눈을 떼기가 힘든 작품입니다. 덕분에 500 페이지의 분량도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연쇄 살인마는 인간의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악행 때문에 늘 괴물의 외피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예외적 존재인 괴물로 여겨져야 독자가 자신을 끝도 없는 공포감에 젖게 했던 픽션의 세게에서 안심하고 빠져나올 수 있기도 하구요. 이와 같이 괴물은 인간이 아닌 형상으로, 타자의 자리에 서 있어야만 했는데, '블러드 맨'은 괴물을 전혀 다른 자리에서 발견하도록 합니다. 전 그게 좀 놀랍더군요. 이를테면 아버지 제이콥 말입니다. 연쇄 살인마가 등장하는 많은 소설을 즐겨 읽어 본 분이라면, 제이콥이야 말로 그동안 보아왔던 연쇄 살인마의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반사회적이며 극단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누구와도 자기의 내면을 공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유대 자체도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으니까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케이와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는 제이크와 대비되어 소설에서 더욱 뚜렷이 부각됩니다. 소설 또한 은연 중에 아버지가 블러드 맨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독자에게 주기도 하지요. 아마도 이러한 연출은 사회가 괴물을 생산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괴물로 정의 내리는 것에 어떤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정작 그 존재가 정말로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보려 하기도 전에 보여지는 인상이 어느 정도 부합하면 괴물로 낙인 찍는 어리석음을 자주 범하죠. 온갖 혐오와 적대의 표현 역시 그런 편견의 ctrl c와 ctrl v의 돌림노래일 뿐인 괴물 만들기의 산물이구요. 그렇지만 정작 괴물은 누구일까요? 그렇게 쉽사리 타인을 괴물로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괴물은 아닐까요? '블러드 맨'은 이런 질문을 압도적인 흡인력 속에서 진중하게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미도 재미지만 추천의 말을 아니 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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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30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로 보면, 클릭해서 읽기 전에는 딱 포비의 머리카락 윗 부분만 노출이 되거든요?? 이마도 안 보이는데, 근데도 바로 그 아래 이목구비가 포비일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아놔 나 너무 늙은이같다......-_-

헤르메스 2018-12-18 10:40   좋아요 0 | URL
너무 댓글이 늦었네요. 최근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직 정리조차 못 끝내서 12월이 온 게 언제인데 아직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있네요 ㅠ ㅠ
syo님도 코난을 즐겨보셨군요. 요즘은 코난하면 미래소년 코난보다 명탐정 코난이 더 유명하지만. 그렇지만 우리 윗 세대는 코난이라는 말에 미래소년 코난보다 로버트 하워드의 야만인 코난을 먼저 떠올리겠죠? 하하

희선 2018-12-0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던 일을 그만두고 소설을 썼다니 대단하네요 처음 쓴 게 잘됐나 봅니다 사람을 많이 죽이는군요 방법이 무척 잔인하군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아이를 죽이다니, 그 범인은 왜 그랬을까 싶습니다 어쩐지 겉에서 보면 멀쩡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좀 다른 자리에서 괴물을 찾게 한다니...


희선

헤르메스 2018-12-18 10:41   좋아요 1 | URL
그만큼 열정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작가가 글을 정말 쓰고 싶었나 보더라구요^^
정말 범인의 동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작가가 그 동기를 그리 잘 설정하지는 못했더군요. 그거 하나는 이 소설의 결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첫 작품이니 다 좋을 수는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