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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욘 - 친구 감시자
딜게 귀네이 지음, 이난아 옮김 / 안녕로빈 / 2025년 11월
평점 :


피욘 친구 감시자 / 딜게 귀네이
딜게 귀네이의 피욘 친구 감시자는 인간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감시의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독자로 하여금 ‘친구’라는 가장 가까운 존재조차 감시의 시선 속에서는 어떻게 낯설고 위태로운 관계로 변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일상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삼지만 그 안에 흐르는 공기에는 항상 작은 긴장과 불안이 깃들어 있으며, 이 불안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동시에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 얽혀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피욘과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시의 행위는 노골적이지 않고, 오히려 무심한 관찰과 사소한 행동들이 반복되며 관계를 미세하게 뒤틀어 놓습니다. 작품은 그 과정에서 감시가 얼마나 쉽게 ‘배려’나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피욘은 친구를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친구의 행동을 해석하고 규정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가며 관계의 균형을 잃는데, 이러한 흐름은 독자로 하여금 감시의 본질과 그 파급력을 본능적으로 체감하게 만들어줍니다.
딜게 귀네이의 서술 방식은 잔잔하지만 매우 정교합니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짧은 대화와 행동 묘사를 통해 관계의 미세한 균열을 드러내는 방식은 독자가 스스로 그 간극을 읽어내게 합니다. 이 점은 작품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며, 감시라는 주제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성의 깊은 층위를 탐구하기 위한 도구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SNS, 데이터 추적, 관계 속 정보 공유가 일상화되었다는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개인의 사적 공간이 얼마나 쉽게 침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이 작품은 감시의 문제를 거창한 시스템이나 사회 구조의 차원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개인 관계’라는 좁은 무대 위에서 조명함으로써, 감시의 시작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사소한 마음에서 비롯되는지를 강조합니다. 읽고 난 뒤에는 ‘나는 누군가를 감시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누구에게 감시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고, 일상의 친밀함과 감시의 폭력성이 교차할 때 인간성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가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여운이 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