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보다 작아진 정브르 10 곤충보다 작아진 정브르 10
강신영 그림, 강민희 글, 샌드박스 네트워크 감수, 정브르 원작 / 겜툰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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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대 유튜버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이 가는 게 요즘 나오는 아이들 책, 특히 학습만화 쪽은 열에 아홉은 유튜버 콘텐츠 기반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 역시 동명의 유튜버가 캐릭터로 등장하는 아이들용 학습만화다.

제목 그대로 '정브르'가 곤충보다 작아져서 곤충들의 세계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곤충의 생태와 습성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구성된 학습만화라고 보면 되겠다.

벌써 열 권이나 나온 것을 보면 인기가 상당한 듯한데 우리 딸과 함께 읽어보게 된 건 처음이다.

이런 종류의 학습만화는 보통 앞의 내용을 몰라도 전혀 지장이 없도록 구성되어 있고,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몇 권부터 시작하던지 앞의 내용을 몰라 재미가 없을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겠다.

이번 10권에서는 '곰개미'라는 종을 주로 다루는데, 명칭이 익숙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개미가 바로 곰개미라고 한다.

개미는 지구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곤충으로 추정되는 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이지만 군집생활이라는 특이한 습성 때문에 다른 곤충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매력이 있다.

군집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여왕 개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와 철저한 역할 분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10권에서는 여왕개미를 낯설게 느끼는 특이한 무리를 만나게 되면서 '정브르'가 그 무리에 들어가 발생하는 문제들을 직접 발로 뛰면서 해결해 주게 된다.

알고 보니 곰개미의 여왕 자리를 차지한 건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습성은 전혀 다른 '사무라이 개미'라는 종이었다.

뭔가 토종 개미를 일본 느낌 나는 이름의 개미가 괴롭히는 것 같아 내심 속이 상하지만, 이 역시 자연의 일부이므로 안타깝지만 개입하지 않기로 한 선택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주요 스토리가 어려움에 처한 곤충들을 돕는 내용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건전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고,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만나게 되는 생물들에 대한 정보도 충실한 편이었다.

간혹 유튜버 기반의 학습만화들은 해당 유튜버가 쓰는 이상한 유행어 같은 것들이 포함되기 쉬운데 이 시리즈는 그런 것이 없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학습만화만 보는 습관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요즘인데, 내용이 좋다면 기분전환용으로 읽는 것을 막을 방법도, 이유도 딱히 없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게 된다.

부모 의도대로 커주는 아이는 없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부모가 생각했을 때 좋은 것들을 권해주고 싶게 마련이므로 만약 아이가 제발 학습만화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모라면 이 시리즈도 선택지로 고려해 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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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언 클레이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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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뭔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저자 이름과 달리 작품은 첨단을 달리는 SF, 그것도 스페이스오페라 장르라고 해서 관심이 끌렸다.

잘 쓰면 대박이지만, 어설프면 유치해지기 쉬운 장르라 여러 수상 이력이 있는 작가가 어떤 세계를 만들었을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되었다.

일단 SF 작품인지라 어떤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성간 이동이 가능해진 미래이며 활동 반경이 넓어진 인류를 통치하기 위해 지구의 메인 스트림은 굉장히 경직적인 독재 체제를 이루고 있다.

당연히 여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 세력들을 잡아다가 외부 행성 개척에 노동력으로 보내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아턴 다데브'라는 생물학자다.

그는 당시 주류 과학계와 입장이 달라 진리의 추구가 곧 체제 저항이 되고 말았고 결국 '킬른'이라 불리는 외계 행성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작품 속 주류 과학계에는 인류의 우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의 끝에는 언제나 인류와 같은 생명체가 탄생하기 마련이라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는데, 사실 생물학적으로 진화에는 방향이 없기 때문에 인류의 존재는 진화라는 과정 중에 발생한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는 그의 견해는 주류가 보기에 불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도착한 킬른에는 여러 생물이 풍성하게 살아 숨 쉰다.

하지만 지성이 있을 것이라 판단되는 생물은 발견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지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건축물의 잔해가 곳곳에 존재한다.

특이한 점은 그것들을 지은 존재의 화석이나 그들이 썼을 법한 도구 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배계층은 우주가 인간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믿으므로 그 역시도 인간과 매우 흡사한 어떤 존재가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인데 그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낯선 외계 생명체의 흔적과 마주한 그는 자신의 생존과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SF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과학적 장치들이 필요한데,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다른 행성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온 생명체 계를 표현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성간 이동 기술이 전제된 작품이지만, 그런 기술은 '어찌 됐든 가능하다'라며 뭉뚱그리는 반면, 토착 생물에 대한 묘사에는 꽤나 공을 들였고 지구 생명체와는 확연히 다른 공생 체계도 잘 구축해두고 있다.

이곳에는 밀폐된 존재가 없다. 하지만 생물이란 원래 그렇다.

우리는 그것을 분류하고, 두 개의 라틴어 이름과 정기준 표본을 부여한 뒤

그것이 같은 뿌리를 가진 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pg 317)

스토리 전개적인 측면에서도 '낯선 행성에서의 생물학 탐구'라는 재미없어 보이는 주제를 계급독재 사회에서의 저항 운동과 접목해 상당히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중반까지는 억압적인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밀고자 이슈가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낯선 환경이 주는 고난에 인간관계적인 고난을 더해준다.

후반부의 결말은 '아바타'라는 걸출한 SF 영화를 이미 접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예상 밖의 전개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아바타'의 세상이 과거의 인류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문명을 발전시켰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한 것에 가깝다면, 본 작품 속 세상은 아예 다른 종과 관계 맺는 방식부터가 다른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적자생존'이라는 말 때문에 우리는 진화를 권투 시합처럼 상상한다.

링에 최후까지 남는 선수가 벨트를 차지하는.

타자보다 더 크고 강하다고 '적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타자보다 주어진 일을 더 잘 해서도 아니다. 그 모든 타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은 그렇게 움직인다.

모든 세포는 다른 세포를 필요로 하고, 모든 기관은 다른 기관을 필요로 하며,

모든 유기체는 다른 유기체를 필요로 한다. 생물의 기본 단위는 모든 생물이다.

(pg 323)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문장이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그네'라는 삼인칭 대명사가 자주 쓰인다는 점도 그렇고(이는 성별로 구분된 인칭대명사를 최대한 피하고자 함이었을 것 같긴 하다.), 국어로 읽기에는 다소 어색하게 끝나거나 순서를 도치해서 쓰는 문장들이 많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SF 버전의 독재 사회 타파를 보여줄 것 같았던 초중반이 지나고 킬른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동안 누적된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쾌감이 상당히 좋았고, 결말 역시 깔끔하고 인상적이었다.

또한 저자가 만든 세계가 우리의 현실과는 굉장히 다르면서 독창적인데, 그러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고 있는 트럼프 시대에 모두가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굉장히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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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짭짤 모두의 파스타
도모리 시루코 지음, 기무라 이코 그림, 후지타 사유리 옮김 / 라곰스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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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독신으로 아이를 낳아 화제가 되었던 방송인 '사유리'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직접 번역하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초등학생용 동화책이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이야기라니 과연 어떤 내용일지, 나도 딸아이와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작품의 주인공은 '미리'라는 여자아이다.

미리는 학교에서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고 만다.

친구가 기분 나빠했지만, 바로 사과하지 못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하굣길에 나선다.

그런 미리 앞에 신비롭게 생긴 거대한 빨대가 나타나고, 그 안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파스타로 이루어진 '파스타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다른 세계에 떨어져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쿠스쿠스'라는 남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쿠스쿠스를 통해 파스타 나라의 구성원들을 알아가게 되면서 미리는 긴 파스타와 짧은 파스타가 서로 전쟁을 벌이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파스타인 쿠스쿠스는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쪽에서 비난을 받고 있었다.

사소한 오해가 부른 갈등을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미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파스타들이 등장한다.

모양과 식감이 다르기는 하지만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 소스에는 반드시 이 파스타를 써야만 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들에도 정답이 꼭 하나여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무엇이든 딱 하나의 정답만 있는 건 아니야."

"정답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정답이 별처럼 수없이 많을 땐 도리어 아무것도 안 보일 수도 있어."

(pg 74-75)

또한 친구에게 바로 사과하지 못했던 미리나 사소한 오해가 쌓여 전쟁이 일어나고 만 파스타 나라의 사례처럼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바로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않는다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고, 사과하기도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전문 번역인이 아닌 방송인이 한 번역이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읽었는데 어린이 눈 높이에 잘 맞으면서도 어색하거나 이상한 부분 없이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었다는 말이 마케팅용 문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귀여운 그림체와 감동이 있으면서도 재미난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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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몸은 과학이 된다 - 죽음 이후 남겨진 몸의 새로운 삶
메리 로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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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지만 그럼에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음이라는 것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시체'나 '사체', '시신'과 같은 단어들은 되도록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은 육신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우리가 죽은 육신을 통해 어떤 과학적 이익을 얻고 있는지를 취재한 결과물이다.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책이 상당한 재미를 준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재미 삼아 해마다 연말이 되면 그 해에 읽었던 책 중 재미있었던 책들을 몇 권씩 선정해 보고는 하는데 이 책이 올해의 목록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강력한 확신이 든다.

'사체의 사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은 역시나 의학적인 목적의 해부실습이나 장기 이식 등이 떠오를 것이다.

이 책 역시 의대에서 활용되는 카데바부터 시작하고 있다.

카데바는 의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나 가족의 시신을 기꺼이 기증한 결과물이므로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며, 사용 후에도 기증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해부 실습에 사용된 시신들을 기리는 행사에서 한 여학생이 남긴 인사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글만 읽으면 다소 섬뜩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 누가 한 말인지를 떠올리면 꽤나 애틋하게 느껴질 것이다.

해부학 도감의 그림에는 손톱의 매니큐어가 나와 있지 않답니다. 색깔은 당신이 골랐나요? 그 매니큐어를 제가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당신의 손 안에 대해 말해 주고 싶었답니다.

제가 환자를 볼 때마다 언제나 당신이 거기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길 바라요.

복부를 진찰할 때에는 당신의 장기를 떠올릴 거예요.

그리고 심장 박동을 들을 때에는 당신의 심장을 손에 들고 있던 기억을 떠올릴 거고요.

(pg 46-47)

물론 이렇게 사체에 예우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기나긴 시신 활용의 역사 속에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전에는 인체를 연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의사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체를 손에 넣었다.

심지어는 몰래 무덤을 파내 의사들에게 파는 행위로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사체가 부족한 까닭에 시체를 파내려는 해부학자들과 시체를 파내지 못하게 하려는 대중들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세태가

거의 한 세기 동안이나 이어졌다.

대체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은 가난한 계층이었다.

(pg 61)

사체의 활용은 의학적인 목적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동차의 안전성 개선과 같은 산업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범죄를 더 잘 추적하기 위해 다양한 환경에서 어떻게 부패하는지를 연구하기도 한다.

후반부에는 우리가 생을 마감한 후 어떻게 하면 지구에 덜 해로운 방식으로 처리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사체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역시 매장 문화에서 지금은 화장 문화로 완전히 바뀌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좁은 나라에서 이 정도의 변화도 상당한 발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나라들에서 사체를 보다 환경에 덜 해로운 방식으로, 심지어는 사체를 자연에 온전히 돌려보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의 신체 역시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훌륭한 비료가 될 수 있다.

이런 물질들을 그저 태워 없애기 위해 화석 연료를 사용해가며 대기를 오염시킬 이유가 딱히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인만큼 다시 자연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관념의 동물인지라 종교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아직은 유족들이 이러한 방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수목장도 결국은 화장 후에 하는 것인지라 오염물질의 발생은 물론이고 유기물질의 순환 측면에서도 아주 자연친화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꽤나 실리적이기 때문에 화장을 굳이 하지 않고서도 수목장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심지어 그 방법이 화장보다 비용 측면에서도 저렴하다면 이를 선택할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마사크와 마찬가지로 그는 가족들이 심은 나무가 죽은 사람이나 동물의

세포를 흡수하면 살아 있는 기념물이 된다는 구상을 하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과학으로서는 이게 부활에 최대한 근접하는 겁니다."

(pg 352)

위에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사체가 인류의 발전 혹은 지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이 꽤 많다.

저자 역시 자신이 죽은 뒤에는 소개한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처리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밝히지 않을 생각이므로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물론 사체의 처리는 온전히 유족의 희망에 따라야 한다는 대원칙에는 저자도 동의하고 있으므로 너무 거부감을 갖지는 않아도 좋겠다.

전체적으로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과학 이야기지만 금기시된 주제를 다루고 있고, 과학자가 아닌 저널리스트로서 취재한 바를 쓴 글이라 전혀 현학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사체라는 주제를 이렇게 유쾌하게 다루어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서 읽다가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꽤 많았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야 하고, 또 자신도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기에 죽은 뒤 내 육신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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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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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때 남녀 간의 성향 차이를 비롯한 개인의 특성 차이들이 강력한 사회화의 증거라는 이론이 득세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전학을 비롯한 생물학 전반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그러한 주장은 점차 힘을 잃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생각보다 타고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 충실하게 이 책 역시 우리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려주고 있는 과학 교양서다.

저자는 초반부터 우리가 '유전적으로 타고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유전의 양상이 과학적인 사실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부터 짚고 넘어간다.

예를 들어 쌍꺼풀이 없는 부모에게서 쌍꺼풀이 없는 아이가 태어났다면, 우리는 눈의 생김새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정해져 있어서 이것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유전자가 그렇게 개별 형질에 일대일로 대응되어 전달되는 경우는 눈 색깔처럼 비교적 단순한 외형적 특징에나 적용되는 특수한 케이스라고 하며, 뇌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관은 특정 형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들의 수도 많고 그 유전자들의 작동 방식 역시 굉장히 복잡하다고 한다.

유전체는 오히려 조리법이나 실험 프로토콜에 가깝다.

절차를 충실히 따라가면 인간의 뇌를 지닌 인간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조리법이 상세하더라도 시행할 때마다 결과물에 조금씩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완전히 똑같은 케이크를 두 번은 구울 수 없듯이 말이다.

(pg 99)

또한 돌연변이의 발생도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정 부분 돌연변이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유성생식을 하기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다.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다면 유전자에 결함이 없는 완벽한 자기 복사본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이 번성하는 이유는 이 방식이 가진 절대적인 이익 때문이다.

즉 주변 환경이 계속 변화하는 상태에서는 상대와 유전자를 결합할 때 발생하는 돌연변이들이 오히려 적응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태어난 후 일정 기간 성장할 때까지 계속해서 변화한다.

이러한 뇌 가소성은 주변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기에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뇌의 구조가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다고 한다.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집, 같은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시선이 향하는 방향, 듣는 소리, 상호작용하는 타인 등 자극의 종류가 완벽히 겹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우리의 클론을 100개 만들면 그 100개가 다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미키 17'처럼 복제인간을 다룬 SF 영화에서도 클론들의 성격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론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곧 성격과 같은 특성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특정한 유전자가 유전된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어떠한 특징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은 아닐 가능성이 높고, 또한 그 유전자의 발현 정도도 개체마다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즉, 성격이나 지능과 같은 특징을 결정하는 요인들이 유전되는 경향은 분명하지만, 각각이 발현되는 정도나 방향성은 개체마다 다르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전체에 부호화된 프로그램은 발달 규칙만을 명시할 뿐 구체적인 결과를 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변이가 많을수록 결과의 다양성도 커진다.

어떠한 유전자형이라도 다양한 잠재적 결과를 지닐 수 있지만,

그중 실제로 실현되는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세상에 하나뿐인 고유한 개인이다.

(pg 382)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우리가 유전학의 발달을 통해 기대했던 의학 분야에서의 혁신이 아직까지 상용화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전까지는 특정한 돌연변이가 곧 특정한 질환이나 증상의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돌연변이의 보유 여부가 특정 질환이나 증상으로 곧장 연결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만약 단일한 유전자가 중증 질환을 유발한다면, 해당 개체는 성 선택에서 배제될 확률이 높으므로 그 유전자가 자식 세대로 이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개체들에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돌연변이들이 유전될 확률이 높을 것이고, 이는 질병 연구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보통은 해당 돌연변이의 작용을 억제하거나 완화하는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있어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반대로 특정한 방향으로 살짝만 유도하는 돌연변이일지라도 다른 유전자의 영향으로 그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부모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약 70개의

신생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돌연변이는 무작위로 발생하는 데다 우리의 DNA 가운데 실제 유전자는

약 3%에 불과하므로, 대부분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실제로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신생 돌연변이 수는 평균적으로 1개 정도이다.

그러나 운이 나쁘면 그 하나의 돌연변이가 정상적인 뇌 발달이나 기능을 위해

2개의 복사본이 모두 필요한 수천 개 유전자 중 하나에 발생할 수 있다.

(pg 350)

즉, 우리가 가진 창발성이라는 특징은 우리의 선천적 질병에도 적용된다.

누구나 돌연변이를 가지지만 그 돌연변이들의 상호작용이 천재적인 공감각을 만들기도 하고, 자폐나 ADHD와 같은 장애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특정 질환들을 일으키는 유전자들의 목록을 전부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 전부를 제거함으로써 그 질병이 아예 발생하지 않게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아직은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특히 정신질환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뇌의 작동 방식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논의가 자칫하면 새로운 우생학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고려가 지금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도 강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정보의 양이 매우 많은 책이다.

참고 자료 목록을 제외하면 400페이지 정도의 두께인데 모든 장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도 많고 내용 자체도 어려운 편이어서 읽은 뒤에 잊어버리는 내용도 많지만, 읽는 동안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은 정말 많았다. (아버지 쪽 생식 세포의 나이가 젊을수록 아이의 돌연변이 발생 확률이 낮다는 유용한 정보도 습득할 수 있었다.)

약간의 도전의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과학의 힘으로 밝혀낸 '유전'이라는 것을 한 권으로 맛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쉽게 헤쳐 나간다.

그러나 다른 이는 세상에 적응하고, 주위 사람과 잘 어울리거나

정신을 붙들고 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차이를 부정한 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인간 본성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기를 넘어 환영할 수 있어야 한다.

(pg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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