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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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이렌'에 이은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이 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이 끝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후속작도 빨리 읽고 싶었다.

(스포일러가 꽤 있으니 작품을 읽을 예정이라면 주의하기 바란다.)

전작의 제목이 피해자 이름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제목이 피해자 이름이지 않을까 예상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얕은 예상은 100페이지를 넘길 무렵 산산이 부서졌다.

아름다운 여성을 중년 남성이 납치 후 감금했다고 하면 보통 성범죄 후 살해되는 시나리오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알렉스를 납치한 범인은 알렉스를 나체로 작은 우리에 가둬놓은 뒤 그저 굶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며 최소한의 물과 쥐 사료를 주고 떠나버린다.

이번에는 베르호벤 사단이 금세 납치범을 추적하는데 성공하지만 납치범은 입을 여는 대신 자살을 택한다.

하지만 이 즈음 이른 반전이 등장하는데, 납치 피해자인 알렉스가 사실은 모종의 연쇄살인을 일으킨 살인범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제기되며 납치범이 알렉스에게 죽은 남성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게다가 납치 후 감금된 상태였던 알렉스가 자력으로 탈출에 성공하면서 베르호벤 사단은 알렉스를 추적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대략 200페이지 정도 되는 1부의 내용이다.

(저자의 작품이 주로 400페이지 이상의 벽돌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초반 내용인 셈이다.)

이후로는 엘렉스의 추가 범죄와 베르호벤의 추적이 이어진다.

그녀는 울면서 웃는다.

그녀로서는 아직 살아 있어서 행복한 건지 혹은

여전히 알렉스로 남아 있어 불행한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pg 247)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환될 때마다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반전이 그녀가 연쇄살인마였다는 사실이라면 두 번째 반전은 그녀가 선택한 최후고 세 번째 반전은 그녀가 죽인 사람들과 그 이면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이다.

즉, '이렌'의 연쇄살인마가 단순한 정신병자였다면 '알렉스'는 철두철미한 복수자에 가깝다.

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읽어가면서 '알렉스'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계속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안타까웠다가 중반쯤에는 끝없이 혐오스럽고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역량 자체가 저자가 가진 가장 큰 힘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 특유의 블랙 코미디스러운 문체는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사건의 묘사가 꽤나 잔인함에도 특유의 서술 때문에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번역 역시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많이 나서 5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분량이지만 금세 읽은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작품은 전작인 '이렌'을 읽지 않았다면 초반부터 흥미를 갖기 쉽지 않다.

이렌도 얇은 두께가 아니기 때문에 책을 보면 덜컥 부담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장담하건대 매우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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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단편선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이랑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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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지만 톨스토이를 대문호라고 부르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의 글을 얼마나 읽었느냐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워낙 많은 판본으로 발행된 바 있지만 산뜻한 붉은색 표지로 발간된 단편선이 나와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250페이지 정도로 두껍지 않은 분량에 총 일곱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글씨도 크고 삽화의 비중도 적지 않아서 책을 잘 읽는 아이라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의 작품들이 삶을 좀 살아보았다면 더 가슴에 와닿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글씨를 이해하는 것과 그 속에 담긴 뜻을 헤아려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테니 성인이 읽기에도 매우 좋았다.

순서대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하느님은 진실을 알지만 빨리 말하지 않는다', '도둑의 아들', '에밀리안과 북', '첫 슬픔', 그리고 '바보 이반'까지 저자의 대표적인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읽으면서 이 작품이 톨스토이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지 생각보다 그의 작품을 꽤 많이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처럼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줄거리는 어땠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책의 포문을 여는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꽤나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불혹을 앞두고 읽으니 새삼 느껴지는 바가 많은 작품이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노력이나 걱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살아가도록 하지만

그들이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사랑으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 예견하는 능력을 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pg 62-6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이어지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욕심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아동용 동화로도 각색이 많이 된 작품이라 익숙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여정에서 한 번씩 되짚어볼 만하지 않나 싶다.

가장 마지막 작품인 '바보 이반' 역시 욕심 없이 '바보'처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결국 좋은 인생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따뜻하게 전해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삶을 살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전에 저작권을 포기했다는 사실 역시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가 무려 열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가 남긴 생애와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정신이 되었다.

각박해져가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 속의 정신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인생 길잡이가 되고 있다.

더운 날씨에 지나가는 사람과 살짝만 부딪혀도 극도의 짜증이 느껴지는 요즘, 시원한 곳에서 머리를 식히며 다시 톨스토이를 만난다면 따뜻한 이야기가 주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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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이산화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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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품들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국 SF에 대해서는 큰 기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 한국 SF 작가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작가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고, 단편집이어서 한 권으로 저자의 스타일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아 읽어보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한 명 더 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봐서는 당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상이 쉽지 않아 출판사의 책 소개를 봤는데, 우주선에서 잃어버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찾는 스토리라고 적혀 있었다.

책 소개를 읽고 나니 도대체 그런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더 궁금해졌다.

총 10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고 표제작이 첫 포문을 연다.

말 그대로 우주선이 불시착을 하는데 선적된 품목 중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사라진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소 황당한 소재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갈수록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만 습득하길 원하는 현재 인류의 모습을 제대로 포착한 작품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조안나'나 '위즐'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빙과류 이름이라는 점도 재미를 더해준다.

이어지는 '아마존 몰리'라는 작품은 단성생식을 하는 물고기처럼 인간도 단성생식을 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표제작보다 더 재미있었다.

물론 '클론'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친숙한 소재지만 이를 단순히 복사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의 개입 없이 스스로의 복사본을 잉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작품인 '전쟁은 끝났어요'도 상당히 독특하다.

SF 작품들이 대부분 디스토피아를 그리게 마련인데, 이 작품에서는 인간이 가진 공격성 자체를 호르몬으로 변화시켜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해결하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발상 자체가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하는데, 작품의 전개 역시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꽤나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잘 표현되어 좋았다.

그 밖에도 '롯데월드'가 멸망한 사이버펑크 테마파크로 변해버린 시대를 상상한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 학창 시절 과학상자를 가지고 놀던 추억이 떠오르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결말을 선사했던 '과학상자 사건의 진상',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한 모종의 힘이 끝없는 타임 루프를 걸게 만드는 '재시작 버튼' 등의 작품들도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여 인상적이었다.

4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분량이라 그리 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록된 작품들이 모두 분위기도 다르고 소재도 중복되지 않아서 읽는 중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말'에 작품을 쓰게 된 계기나 배경 설명이 있으면 뭔가 저자와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은데 이 작가 역시 비슷한 생각인지 '작가의 말'까지도 굉장히 신경 써서 수록해 두었으니 이 책을 집어 들 사람이라면 꼭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미 단편집 한 권, 장편 두 권을 낸 작가라고 하니 조만간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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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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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분류된 책이라서 얼핏 제목만 들으면 AI 이야기인가 싶은데, 실제로는 생물학에 가까운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생물학으로 본 인류의 역사'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인류의 진화 과정에는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화의 과정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랜 역사에 걸쳐 그 특질이 유용했을 시기가 이미 지났지만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시각을 보다 넓혀서 우리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우리의 역사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즉, 우리의 결함과 능력은 모두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진행되었다.

(pg 14)

먼저 인류는 개체로서의 생존 기회를 늘리기 위해 이기적인 방법 대신 이타적인 방법을 택했다.

어리거나 나이 든 개체를 공동체가 함께 보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습성이 문화가 되면 자신 또한 아이를 낳았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 공동체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다 큰 규모의 집단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타 집단과의 갈등을 가져오기도 하고, 기술력의 발달에 따라 지리적으로 먼 곳까지 침략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미난 것은 인간 사이의 힘 차이보다는 미생물과 바이러스라는 전염병, 풍토병이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열강들이 앞다투어 식민지를 늘리려고 했던 제국주의 초기 단계에서는 식민지에 파견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풍토병으로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죽어갈 사람들을 보낼 수 있었던 강대국만이 식민지의 수탈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도시에 군집하여 살게 된 인류는 전염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도 놀라운 점은 팬데믹으로 인류의 상당수가 죽어나간 시기마저도 인류의 문명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 심각한 사망률 위기는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력이 귀해지면 실질 임금이 상승해,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pg 167)

그런가 하면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물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불안정성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물질은 크게 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아편 등 4종이다.

이 물질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한데, 생각해 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무역 활동의 초석도 이 물질들의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물질에 대한 인류의 중독적인 소비가 곧 우리의 농업과 상업의 지도를 바꾸어놓은 셈이다.

책에서는 이처럼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가지는 신체적, 정신적 이점과 약점이 우리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어마어마한 양의 예시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후미의 참고문헌을 제외하면 400페이지 정도로 그리 얇지 않은 두께에 전달하는 정보의 양도 굉장한데 그러면서도 읽는 재미가 탁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원문도 깔끔하게 잘 쓰였을 것 같지만 번역의 퀄리티도 매우 훌륭한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자연과학으로 분류해야 할지, 역사로 분류해야 할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두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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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렌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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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저자의 책을 꽤 읽은 편인데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 늘 비치되어 있었지만 왜인지는 모르게 손이 잘 가지 않았었는데(솔직히 워낙 두꺼운 데다 3부작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읽을거리가 떨어진 참에 집어 들게 되었다.

그리고 50페이지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그가 추리소설로 작가를 시작했었다는 사실이 생각났고, 그의 명성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오르부아르'를 비롯한 그의 최근작들이 대체로 프랑스 역사에 기반한 인간미 넘치는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미치광이 살인마가 등장하는 잔혹하기 그지없는 추리소설이다.

단순히 시체 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조각내는 것이 아닌,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마치 자신의 잔혹함을 전시하듯 조각낸 시체들이 시작부터 미스터리를 안겨준다.

'잔혹하다'라는 수식어를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이유는 이 책의 범인이 주로 고전 추리소설 중 피해자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장면을 골라 그대로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 나간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인 '카미유 베르호벤'이라는 인물이 작품을 이끈다.

왜소증이 있어 키가 145cm밖에 되지 않는 그는 작은 키라는 핸디캡을 명석한 판단과 예리한 직감으로 극복한 인물로 상사나 부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범인이 워낙에 꼼꼼한 정신병자여서 추적이 쉽지 않아 난항을 겪으며 범인이 저지른 사건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난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실들과 마주해 있다.

그건 완강할 정도로 실재하는 사실들이니만큼 이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그 사실들 속에 극도로 괴이하고 범상치 않은 광기가 서려 있다면, 경찰은

사력을 다해 무조건 체포해야만 하는 어느 미치광이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셈이다.

(pg 248)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하지만 곧 혐의가 벗겨진다거나, 범인의 전말이 작품 후반까지도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 주인공의 측근이 위기에 빠지는 점 등 기존 추리소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개가 이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저자 특유의 인물과 상황 묘사가 작품에 몰입감을 상당히 높여준다.

인물들의 사소한 습관까지 설정해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등장인물들이 그 상황에 맞게 했을 법한 생각들이 부족함 없이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힘도 여전했다.

총 530여 페이지 정도 되는데 작품의 2부가 무려 471쪽부터 시작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즉 전체 분량의 90%가 1부라는 의미다.)

더욱 놀라운 점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때의 반전이다.

반전이 있다는 점을 알고 봐도 찾아내기 힘들 정도의 반전이니 기대하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제목이 다소 스포일러성이라는 점이 약간 아쉽다.

주인공의 아내 이름인데 작품 중반까지 신변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조만간 뭔가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을 안고 읽어가게 되고,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부터는 카미유의 초조함을 똑같이 느끼며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이다.

번역도 조금 호불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여태까지 접했던 저자의 작품과는 번역가가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 책이 현대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현지화가 잘 된 것 같은 번역이라 읽으면서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배경도 프랑스고 인물들도 다 프랑스인인데 말투가 너무 한국인 같아서 느껴지는 어색함이라고 보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읽는 재미를 더해줬다고 생각하는데, 외화풍의 진중한 어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궁금해져서 저녁에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가며 읽었을 정도로 재미나게 읽었다.

이어지는 '알렉스'와 '카미유'까지 총 3부작으로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가 이어진다고 하니 바로 이어서 읽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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