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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장례식
박현진 지음, 박유승 그림 / 델피노 / 2022년 3월
평점 :


어떻게 보면 멈춘 것은 화백의 시간인데 꼭 그만 힘차게 달려나가는 것 같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살아서 그를 기억하고 그를 기록하고 그 기록물을 읽고 숨 쉬는 것들이 그의 그림 앞에 멈춰있다. 이 책을 통해 잠시 모두의 시간이 천국 미술관 앞에 멈춘다.
에세이라기엔 소설 같고 소설이라기엔 현실의 민낯이 너무나 낱낱이 느껴지는 책이다. 남들과 눈물을 흘리는 지점들이 달라서 잘 울지 않는데 문장을 읽으면서, 그림의 한편을 보면서 울컥했다. 우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지만 당황스러웠다. 타인의 이야기가 나를 비 오는 제주 하늘 아래 세워두는 경험이었다.
내용 구성 또한 이 한 편의 이별이 가진 존재감을 극대화해주었다. 화가의 아들인 작가가 현재를 견디면 그 뒤로 박 화백이 남긴 글들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거기서 부자가 꼭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들의 고백이 제주 땅 위에서 마침내 영글어지는 순간이었다.
박 화백이 남긴 글들을 읽으면서 그림으로 남은 그처럼 더 많은 글들로 남았을 그도 궁금해졌다. 문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재능이 물려졌는지 <<화가의 장례식>>으로 삶과 이별이 글을 쓰는 이, 박현진의 손과 마음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어떤 삶들로 인해 우리는 매우 무거운 숫자의 이별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화가의 장례식>>의 진행하는 과정에 내가 머리가 아픈 듯이, 마음이 저린 듯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한 화가의 삶에 나의 나라, 대한의 날 선 조각 하나가 뼈저리게 박혀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총탄들이 이 가족을 관통하여 오늘의 나에게까지 왔다.
가족 간의 애증과 이해, 다시 외면, 그리고 재회를 진공 상태에서 나열하면서 그 순간들이 건조되어 마른 소리를 내는 종이 위에 살아남아 독자에게서 녹아내린다. 내 곁의 삶에 대한 사랑을 늦게 깨닫지 않기를 소원하며.
또 다른 달력이 3월로 넘어간 날, 읽고 남김.

본 게시물은 출판사 #델피노 로부터 #화가의장례식 을 제공받아 스스로 읽고 자율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