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책 읽고 번역하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애써보는 공간이지만 

갑자기 생각이 나서 페이퍼에 붙여보는 음악. 

평소에 윤종신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매달 공개되는 신곡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일은 없으나 

매년 출시되는 앨범은 꼬박꼬박 사서 한 번에 몰아 듣는 그런 팬인데 

그게 行步2010부터 시작됐으니 이제는 10년이 넘었다. 

윤종신하면 특유의 찌질함이랄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데서 혼자 드러내는 

인간 내면의 모자람 같은 것을 누구보다 잘 노래한 가수로 정평이 나 있으나 

이제는 그런 특색이 더 깊어져서 그의 노래가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정서까지 어루만지는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이유도 모르게 느껴지는 서글픔, 서러움. 

정말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조용히 툭 하고 터지는 그런 감정이 좋아서 

'몰린'과 '몰린2'를 종종 듣는다. 

물론 윤종신이 직접 쓴 곡들은 아니지만(이규호 작사 작곡) 

그 옛날의 미성과는 다르게 세월이 묻은 현재의 목소리가 

노래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곧 나올 이방인 프로젝트 앨범에도 이런 감성이 한껏 담겨 있기를 바라며...


몰린

코스모스 바람을 타고 하나 둘 물들어가는 내 마음 속 좁다란 오솔길

저 언덕을 넘어 두 점이 되어버린 끝도 없는 그리움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변치않음을 꿈꾸던

꼭 잡고 있던 따듯했던 손

이젠 그 버스 번호는 없어진걸까

마른 잎 떨어지며 차츰 앙상해지다가

땅 속 깊이 뿌리내린 니 모습

시린 가을 하늘 구름 따라 끝도 없이

높아지다가 그러다 우주 밖으로 몰린

아름다운 내 첫사랑

마른 잎 떨어지며 차츰 앙상해지다가

땅 속 깊이 뿌리내린 내 마음

시린 가을 하늘 구름 따라 끝도 없이

높아지다가 그러다 우주 밖으로 몰린

시린 가을 하늘 찬 바람따라 정처없이

헤매이다가 그러다 세상 밖으로 몰린

아름다운 내 첫사랑

짧았던 단 하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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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7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
가사-기타 연주-음색 -멜로디
넘 좋네요.
시린 가을 하늘 구름 따라 끝도 없이

높아지다가 그러다 우주 밖으로 몰린

아름다운 내 첫사랑

마른 잎 떨어지며 차츰 앙상해지다가

땅 속 깊이 뿌리내린 내 마음

시린 가을 하늘 구름 따라 끝도 없이

높아지다가 그러다 우주 밖으로 몰린

시린 가을 하늘 찬 바람따라 정처없이

헤매이다가 그러다 세상 밖으로 몰린

아름다운 내 첫사랑

짧았던 단 하나의 마음

다른달보다 짧은 2월에 넘 잘어울리는 곡
유튭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이라도 했으면 ㅜ.ㅜ

JK 2021-02-09 21:26   좋아요 1 | URL
처음에 앨범 샀을 때는 관심 없이 듣다가 가사가 서서히 귀에 들어오면서 푹 빠져버린 곡이에요. 가을겨울에 조용히 듣다 보면 이리저리 떠오르는 상념에 몇 번씩 반복해서 듣게 되는 그런... 코로나 때문에 모이지도 못하는 데 정말 유튜브 라이브라도 좀 해주면 좋겠습니다. ㅎㅎ
 

마이클 조던 전기에 나오는 웃긴 일화 하나. 



대충 위 시기의 상황이 어땠는지 축약해보자면...


1987년, 마이클 조던이 자신을 보조할 선수들을 간절히 바라던 시기에 스카티 피펜과 호레이스 그랜트가 시카고 불스로 입단한다.


당시 조던은 아칸소 대학 출신의 무명 선수 피펜에게 애초부터 별 기대를 하지 않았고, 클렘슨 대학을 나온 그랜트의 경우는 조던이 늘 바라마지 않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출신의 후배 선수 대신 선발되는 바람에 그에게 '등신' 같은 놈이라며 수시로 욕을 먹게 된다.


입단 초기에 피펜과 그랜트는 '경기를 뛰지 않아도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며 철없는 소리를 해댔고 또 피펜은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자 너무 슬프다며 훈련장에도 오지 않았다.


그랜트는 그런 피펜을 곁에서 위로하겠다며 어시스턴트 코치인 조니 바크에게 전화했지만 바크는 신입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불같이 화를 냈다.


마이클 조던 역시 아직 프로선수이자 팀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갖지 못한 후배들에게 분노를 느꼈고 결국 훈련 시간에 매번 그들을 '박살' 내버렸다.


그 뒤는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결과적으로 피펜과 그랜트는 '마이클 조던'이라는 극심한 시련 앞에서 훌륭히 성장하여 1990년대 초반의 3연속 우승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원서를 보면 시카고 불스의 단장(GM)인 제리 크라우스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호레이스 그랜트를 뽑았을 때 조던이 그랜트를 dummy 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즘은 영화 같은 데서 해석 없이 그냥 '더미'라고 발음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이 보이는 듯한데 대충 뭔지 감은 오지만 구체적인 의미 전달은 안 되는 편이다. 



책을 번역하면서 이 dummy를 두고 아주 욕처럼 느껴지면서도 사전적 의미를 잘 살릴 만한 게 없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떠오른 게 '등신'이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쓰던 욕인데 의미가 dummy 그 자체더라. 그 순간 정말 무릎을 쳤다.



크라우스의 인터뷰를 보면 조던이 그랜트를 몇 년 동안 코앞에서 계속 dummy라고 불렀다는데, 누굴 얼굴 볼 때마다 등신이라고 부르는 게 정상은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소릴 듣는 사람은 짜증이 날 법도 하겠다 싶고... 그래서 호레이스 그랜트가 삐뚤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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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5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련 곰탱이 ㅋㅋㅋ(멍충이) 더미
미쿡 지인들은 느려터지고 답답한 사람한테 이렇게 부르더군요(아주 친한사이/뒷담화 할때 )
그나마 농구계에서 순한맛으로 부른것 같은데 ,,,,,

JK 2021-02-05 14:15   좋아요 1 | URL
미련 곰탱이란 표현 좋네요. 여기서는 dummy라는 단어를 병기할 필요성이 있어서 의역을 심하게는 못했는데 원어 병기를 안 했으면 미련 곰탱이나 그 비슷한 단어를 써도 될 뻔했습니다. 책이니까 심한 욕 같은 건 안 나오지만 아마 실제로 부딪힐 때는 더 심한 말도 많이 했겠죠?
 


『너의 이름은. Another Side: Earthbound』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보지 않았다면 애초에 읽어볼 필요가 없고 읽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에게는 106분 짜리 본편에 나오지 않는 전후의 사정과 등장인물들의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외전이라 하겠다. 


목차


제1화 브래지어에 관한 고찰

제2화 스크랩 앤 빌드

제3화 어스바운드

제4화 당신이 엮은 것


제1화는 미츠하가 된 타키의 이야기로, 애니메이션에서 휘리릭 하고 지나가는 (몸이 바뀐) 미츠하와 타키의 일상 중 일부를 클로즈업한다. 타키가 미츠하로서 학교 생활을 하며 농구를 하거나 청소 시간에 혼자 춤을 추거나... 그런 일화들을 보여주며 몸이 바뀌기 이전에 미츠하의 삶이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등이 어땠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챕터인데, 이 책만큼 자세히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도 살짝 접할 수 있었던 부분이어서 흥미는 조금 떨어졌다. 몇 번씩 본편을 봤더니 참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달까. 새로운 내용이긴 한데 괜히 설명이 많다 싶어서 읽는 동안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제2화의 주인공은 미츠하의 친구인 테시가와라다. 애니메이션에 이미 나왔지만 테시가와라 입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로 이미 익숙한 장면들이 제시되지만 관점이 바뀐 덕분에 재미있게, 쉽게 읽혔다. 테시가와라가 원작의 후반부에서 왜 그리 미츠하를 적극적으로 돕는지가 충분히 개연성 있게 설명되어 있다. 짧게 설명하자면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중심 인물들에 관한 분노가 그 이유인데, 읽으면서 아름다운 고향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테시가와라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겠구나...하고 수긍이 갔다. (하지만 제4화를 보면 테시가와라가 싫어하는 어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게 나온다) 이 챕터 마지막에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지면서 소설 속 캐릭터들이 안은 씁쓸함과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원작에서는 몰랐던 인물들의 내면을 확인할 수 있어서 역시 곁다리로 나온 이야기가 재미있구나~하고 느낄 즈음 끝나버려서 아쉬웠던 제2화. 


제3화는 미츠하의 동생 요츠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원작에서는 요츠하의 비중이 크지 않아서 언니의 변화를 비롯해 여러 사건을 대하는 이 아이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귀여운 외모와 툴툴대는 표정으로 보는 이에게 웃음을 주는 정도였지만, 외전에서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생각이 깊다는 것(물론 그래도 아이는 아이라는 것) 그리고 역시나 미야미즈 가문의 딸이라서 미츠하처럼 다른 시대, 장소로 가는 꿈을 꿀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챕터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 정도로 여겼는데 제4화를 보고 나니 앞서 나온 배경 묘사와 설명에 다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제4화는 미츠하와 요츠하의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고 그들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말한다. 미츠하의 아버지가 어째서 마을 이장이 되었고 왜 가족과 반목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챕터로, 다 읽고 나니 《너의 이름은》의 거대한 스케일이 새삼 느껴졌다.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인연(무스비)과 운명을 자주 강조하기는 하나 다 보고 나서 주로 기억에 남는 것은 타키와 미츠하의 만남,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 재회, 운명같은 첫사랑(?)... 이런 알콩달콩한 이미지뿐이다. 하지만 이 외전을 통해 원작에서 복선으로 활용된 소재들(마유고로의 큰불, 미야미즈 신사의 과거 모습 등)을 더 상세히 접하고 등장인물들 각자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너의 이름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일련의 작품들이 영상으로 드러낸 것보다 더 커다란 운명과 인연을 이야기하려 했음이 확실히 와닿았다. 타키와 미츠하의 만남은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자 수백 년 전부터 준비된 운명이었고 두 사람은 이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매개체였다는 것, 그리고 소중한 인연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소설 『너의 이름은.』과 『너의 이름은.Another Side: Earthbound』를 모두 읽은 지금 다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본다면 처음 극장에서 볼 때와는 꽤나 느낌이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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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2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애니 안보면 10대들과 대화가 안될정도였어요 ㅋㅋ 영화제 상영할때도 엄청나게 폭발적이였고 원작 책장에 고이 꼽아둔 1人 ^ㅎ^

JK 2021-02-03 12:10   좋아요 1 | URL
개봉 당시에 워낙 화제여서 저도 한참 전에 예매하고 봤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이 워낙 미려하고 실사 같은 느낌이라 감탄하면서 봤는데 오히려 거기에 빠져서 작품이 담은 주제는 조금 소홀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책으로 보니까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가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4월 19일, 우리나라는 5월 11일부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가 방영되면서 마이클 조던에 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진 와중에 출간된 번역서 『마이클 조던』 전기.


2014년 출간된 원서 『Michael Jordan: The Life』를 갖고 2017년 후반기부터 번역 작업에 착수한 책으로 애초에 <더 라스트 댄스>와는 무관하게 진행한 것인데 마무리 작업이 더디게 되어서 넷플릭스 다큐보다 더 늦게 나왔다. 현재 출간일보다 두세 달 정도만 더 일찍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ㅠㅠ



표지가 예쁘게 잘 나왔다. 언젠가 출판사 대표님과 통화하면서 서점 저~~~ 멀리서 봐도 잘 보이게 유니폼처럼 등번호랑 이름을 박아넣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는데 그게 그대로 채택됐음. 그 전에 NBA카드 느낌이 나는 디자인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NBA 카드 사진도 찍어서 보냈었는데 그건 막상 시안을 짜보니 좀 유치해보여서 기각했다고 한다.



(요런 느낌을 살리면 어떨까 해서 출판사에 NBA 카드 사진을 몇 장 보내봤더랬다.)


(번역서 표지에는 원서와 같은 사진이 들어갔다.)


(유력한 표지 사진 후보였던 것. 불스 유니폼을 입은 조던 사진은 일단 NBA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별도로 원작자와도 접촉해서 라이선스 비용을 내야 한다. 아무튼 사진 작가와 연락이 안 돼서 이 사진은 못 썼음.)


현재 내부 표지에는 원서와 같은 이미지가 들어갔는데 원래는 좀 더 젊고 밝은 마이클 조던의 표정을 넣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일 끝에 해당 사진의 원저작자와 결국 접촉하질 못해서 원서 이미지를 그대로 썼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조던의 삶은 마냥 순탄하지 않았다. 슈퍼스타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크나큰 부를 누렸지만 그로 인해 짊어진 짐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런 느낌을 살리는 데는 젊고 생기 넘치는 조던의 모습을 넣기보다 다소 힘이 들어보이는 원서 표지 이미지가 더 나아 보인다.


지금까지 평가를 보면 빨간 겉표지에 대한 칭찬이 많은데 그걸 벗긴 상태도 꽤 멋지다. 두꺼운 검정색 무광 표지가 고급스러워 보이고 더 깔끔하기도 하고.


책 중간에는 사진이 일부 들어가 있는데 읽으면서 가끔 펼쳐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큐멘터리에서 거대한 악(惡)처럼 묘사된 시카고 불스의 제리 크라우스 단장. <더 라스트 댄스>는 현재 생존한 인물들의 인터뷰만 담아서인지 크라우스를 마냥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운 경향이 있다. 그는 2017년에 사망했기에(조던 전기에서 인터뷰를 통해 자주 등장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감독 딘 스미스와 불스 코치였던 조니 바크및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아버지인 텍스 윈터도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해 다큐멘터리에는 나오지 못했다)육성으로 그 시절 자신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변론할 수 없었다. 사실 크라우스는 영상에서 묘사된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보기보다 자존심과 고집이 셌고 비즈니스 마인드에 충실하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은 무척 서툴렀던(혹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딱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책에는 오히려 그가 심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인터뷰까지 담겼는데, 당시에 소속팀 선수들을 잘 다독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불스 구단의 임원들 입장에서는 시킨 일을 척척 해내는 크라우스가 누구보다도 좋은 단장이었으리라. 



번역 중에 책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내가 느낀 진짜 나쁜 놈은 시카고불스의 구단주인 제리 라인스도프다. 세상 모른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상에 등장한 걸 보니 정말 가증스러웠다.



조던의 야구 선수 시절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오해가 많은데 궁금한 분들은 책을 한 번 읽어주셨으면...



마이클 조던의 인생역정은 이미 수많은 영상물로 소개되어 너무나 잘 알려졌고 굳이 새로울 것이 있겠느냐 싶을 정도지만, 사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내가 그동안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1990년대 초반에 일었던 농구 열풍 속에 농구대잔치와 드라마 마지막승부 , 만화 슬램덩크 를 즐기며 농구공을 잡게 되고, 또 95년에 조던의 복귀를 본 뒤로 수많은 자료를 보고 듣고 읽고 수집해오면서 '이쯤 되면 조던에 관해서는 꽤 안다'고 자신했는데 이 책에는 진짜 생소한 정보가 많았다. ㅠㅠ


알려진 것과 달리엉망이었던 가족 관계라든가 대중 앞에서는 호인 중의 호인으로 통했던 그의 아버지 제임스 조던이 일으킨 온갖 문제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신감 없고 어설펐던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이전의 조던, NBA 입성 후 크고 작은 경기들 이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그의 사생활과 워싱턴 위저즈 시절에 겪었던 좌절까지... 책에는 이 모든 것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가 97~98 시즌을 중심으로 그의 어린 시절부터 은퇴 시기까지 많은 정보를 다뤘지만, 그건 정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 담긴 생소한 일화들을 비롯해 조던의 영웅적 행적을 우리말로 차근차근 옮겨가며 농구 코트의 절대자로서 그가 표출했던 강인함을 많은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스타가 남 모르게 짊어졌던 짐과 그 세월 동안 느꼈을 깊은 슬픔 때문에 무엇보다도 안타까움이 컸다.



 『Michael Jordan: The Life』의 저자인 롤랜드 레이즌비가 출간 당시에 방송에서 책 소개를 하는 영상. 자막은 없으나 발음이 또렷해서 알아듣기에 많이 어렵지는 않다. 번역 관련해서 이 할아버지와 직접 연락을 해본 적은 없으나 그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조던과 관련된 온갖 자료를 조사한 열정에는 정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분이 없었으면 애초에 번역서를 못 냈을 테니까. 후속작으로 코비 브라이언트 전기도 쓰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 지금 나온 책이 좀 팔려야 검토라도 하든가 말든가... ㅜㅜ 아무튼 좋은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요. 


(1년 넘게 붙들고 보느라 너덜너덜해진 원서. 그동안 고마웠다!)


끝으로 넋두리를 좀 덧붙이자면... 나는 농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지난 10년간 마이클 조던을 주제로 한 서적을 번역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번번이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조던이 얽힌 책은 잘 팔리질 않아 온갖 출판사에 기획서와 원고를 보내도 반려되기 일쑤였는데, 다행히 1984 출판사와 접촉하면서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ㅠㅠ (그간의 과정이나 우여곡절에 관해서는 언젠가 잘 정리해서 한 번 글을 남겨보고 싶다.)


원서 분량은 약 700쪽, 번역 출간된 책은 약 860쪽으로 보통 책보다 한참 두꺼운 만큼 작업 과정에서는 힘도 더 들고 애도 닳았지만 그래도 그의 삶을 더없이 깊이 들여다보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의 우상,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웅을 떠나보내고 그를 한 인간으로서 마음에 담을 수 있게 된 데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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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0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번에 나온 이책 이거 원서가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번역 작업하는데 엄청 고생하셨을것 같네요 넷플릭스 다큐에서도 시카고불스의 구단주 제리 라인스도프 사악한놈 돈독에 올른 놈인데 1년동안 jk님과 함께 한 원서 손때묻은 책이 조던을 향한 엄청난 팬심이 느껴집니다 고생하셨어요 나중에 번역일지 포스팅 정리해서 올려주시면 조던 팬들이 몰려올것 같아요 ^.^

JK 2021-01-20 16:34   좋아요 1 | URL
처음에는 이 책 말고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다른 조던 관련 책들을 기획하기 시작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 엎어지고 최종적으로 선택된 게 700쪽짜리 원서였습니다. 판권 계약이 됐다는 말 나오는 것도 오래 걸렸고 번역 작업 자체도 분량 때문에 오래 걸려서 너무너무 힘든 책이었네요. T-T 일지처럼 상세히 기록한 건 없지만 언젠가 책을 슬슬 넘겨보면서 작업 중에 있었던 일들을 한 번 적어보고 싶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1-20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멋진 책을 번역하셨군요. 멋지십니다^^ 마이클 조던 전기도 읽어보고 싶네요 ㅠㅠ

JK 2021-01-20 16:43   좋아요 1 | URL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__) 농구를 어릴 적부터 늘 해와서 조던에 관한 건 어지간하면 다 안다고 자부했는데 저는 정말 모르는 게 많더라구요.... 재미있는 일화도 많고 농구를 잘 모르는 분들도 편히 읽으실 수 있게 최대한 쉬운 글로 옮겼으니 언젠가 시간 되실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1-20 17:03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전기나 자서전을 보면 정말 재밌는 이야기들이 한가득이더라고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JK 2021-01-20 21:10   좋아요 1 | URL
전기나 자서전이 당장 도움되는 팁은 없지만 웃음을 주거나 나중에 곱씹어보고 내 삶에 대입해볼 만한 일화들이 많아서 좋은 것 같습니다. 친구 신청 받아주셔서 감사드리고 좋은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체 제목은 《형태 분석 비교 코퍼스에 기반하여 다학문적으로 고찰한 국어 번역문과 번역 글쓰기》이다. (여기서 코퍼스(corpus)란 우리 말로 '말뭉치'에 해당한다.) 나는 서점을 가면 습관적으로 국문학이나 국어 관련 코너로 가서 읽어볼 책이 없나 살펴보는데 이 책 역시 그러던 중에 발견한 것이다. 2010년에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번역 일을 막 시작한 당시에 슬쩍 페이지를 넘겨본 바 아무래도 읽어볼 가치가 있을 듯하여 비싼 가격(22,000원)에도 곧장 집어서 구매했다.


제목에도 보이듯이 다루는 소재는 국어 번역문이다. 애초에 책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쓴 글이 아니라 논문을 책으로 펴낸 종류인데 두께가 얇지 않다. 본문 내용만 해도 380쪽에 달한다.


책 뒷표지에 나온 서문의 발췌문을 보면 이 책의 목적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의 의의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동안 번역문의 특성과 문제점을 논의한 연구는 그 자료가 일부 텍스트에 한정되었던 데에 반해 본 연구는 대규모 코퍼스를 대상으로 하여 비번역문과 번역문을 비교분석함으로써 번역문의 특성과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와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번역 보편소와 국어 번역문의 언어적 특성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둘째, 번역학은 통합 학문의 성격을 띠므로 인접 학문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데, 본 연구는 국어학뿐 아니라 작문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그동안 번역학에서 소홀하였던 번역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번역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존 번역문의 문제점을 집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번역 또한 '글쓰기'라는 점에 착안하여 더욱 한국어답고 자연스러운 번역문을 쓰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우선 논고의 연구 방식을 설명하고 '번역 글쓰기'의 개념과 원리를 제시한 후 수많은 기존 번역문에서 방대한 자료를 추출하여 현대 국어 번역문의 공통적인 특성을 밝혔으며, 이를 토대로 번역 글쓰기의 과정과 좋은 번역문을 위한 전략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또한 대학과 대학원에서 필요한 번역 글쓰기의 교수-학습 방안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안을 제시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부분은 2장에 나오는 '번역 글쓰기의 개념과 원리' 그리고 4장 '번역 글쓰기의 과정과 전략'이다. '번역도 글쓰기다.'라는 생각이 특별히 참신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저 두 챕터에서 번역가가 이론적으로 알아둬야 할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을 직접 해봤기에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은 실제로 어디에서 이렇다, 또 저기에서 저렇다.'라고 수긍하면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번역을 업으로 삼기 전이라도 미리 알아두면 실제 번역 작업을 할 때 계획을 세우거나 시행 착오를 막는 데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국어 번역문의 특성을 어휘, 구문, 담화 수준에서 직접 수많은 자료와 함께 소개한 3장은 너무 길어서 꼼꼼이 읽지 않았다. 사실 내용이 길다기보다, 용언, 체언, 조사, 부사 등 문장 구성 요소 수준으로 쪼개어 번역문과 비번역문의 차이점을 대조한 챕터라서 어떤 동사가 번역문에 많고 어떤 부사는 비번역문에 많다느니 하는 단순한 설명만 가득한 탓에 굳이 자세히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긴 까닭이다. 그러나 번역문에서 전반적으로 자주 나타나는 번역투라든가 상투적인 번역 형태에 대해 아주 자세히 분석한 장이므로 결국은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책의 마무리 부분에서 저자도 나름대로 논문에서 다 다루지 못한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텍스트 분석을 위해 사용한 번역서가 주로 1990년대 책이라는 점, 그리고 번역투와 상투적인 표현을 문제점으로 들면서도 저자가 논문 자체에 종종 그러한 표현을 썼다는 사실이 다소 아쉽다. 

물론 논문은 정보 전달을 위해 쓰는 글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막상 문제점으로 지적한 부분이 본문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번역문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자 원문과 기존 번역문을 제시하여 수정문을 보여주는 사례에서도, '실제로 번역서에 저런 식으로 나와 있단 말인가?'하고 의구심이 드는 번역문이 가끔 보였다. 사례문이 이따금 표현 면에서 지나치게 어색해서 마치 번역문의 일반적인 문제점을 소개하려고 일부러 기존 번역문을 어색하게 고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정말 예시대로 기존 번역서에 나온 표현이 그렇게나 국어답지 못하다면, 이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 번역만 해도 고민하고 책임질 게 산더미 같아서 국내의 전반적인 번역 수준까지 걱정하는 건 월권(?) 혹은 사치, 또는 시간 낭비란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번역문이든 뭐든 글은 독자가 읽기 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색하고 읽기 불편한 글들이 넘쳐난다니 내 마음이 괜히 불편할 지경이다.


'-에 의해' '만들다' '가지다' '-를 통해' '대하다' 같은 이른바 영어 번역투를 쓰지 말고 조금 더 자연스럽고 한국어다운 표현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는데, (물론 이런 내용은 다른 번역 기술서나 번역학 책에도 자주 나온다.) 그렇다면 번역투에 속한 여러 가지 표현이 '영어가 들어오기 전인 옛날에는 우리 말에 아예 없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국어 단편 소설집을 보면서 50년대 소설부터 표현 면에서 약간 차이가 생긴 걸 느끼긴 했는데 비번역문에 침투한 혹은 기존에 존재한 '이른바' 현대어 번역투를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질 않아서 그때부터 이 점은 계속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번역가가 결국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공부 삼아 읽어볼 가치가 있다. 논문인 데다가 어찌 보면 번역학 책에 속하기에 아무런 재미도 찾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 딱딱하지만 '번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어느 정도는 답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다. 막바지에는 번역 글쓰기 교육에 대해서도 다루기에 번역 교육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고, 이 책 자체를 교본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번역의 공격과 수비》처럼 번역가의 필독서로 생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두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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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의해‘ ‘만들다‘ ‘가지다‘ ‘-를 통해‘ ‘대하다‘]지적하신 이문장들 제가 자주 쓰고 있는데 ㅋㅋ제대로 된 문장 구문 어법이 정확한지 모르고 쓰고 있어서 고치고 싶어도 어떤 문장이 정확한지 모르게되었네요.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로 논문쓸때 영어로 썼던거 한국어로 초록 할때 사전 찾아가면서 나에 한국어 어휘가 이정도인지 이렇게 엉터리 국어 문법으로 쓰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항상 국어사전 어법 활용서 끼고 살수도 없고 국에 이런책 아니면 순수 한국문학을 많이 읽어야 할까요?

JK 2021-01-20 11:01   좋아요 1 | URL
‘-에 의해‘ ‘만들다‘ ‘가지다‘ ‘-를 통해‘ ‘대하다‘ 이런 표현을 번역계에서는 영어 번역투이므로 우리말스럽게 바꿔 써야 한다~라고 말을 하고는 있는데, 이미 구어 쪽으로는 일상 표현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고 문법적으로도 딱히 틀리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저는 그냥 개인의 선택에 따른 차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간 학습한 게 대부분 저런 지식들인지라 제가 책을 번역할 때는 가급적 번역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에 의해, -를 통해, -대하다‘ 같은 것들은 참 걸러내기가 어렵더라구요. 효율적으로 대체할 만한 표현도 많지 않고... 번역투나 어법 오류는 글을 쓸 때마다 자각하면서 고치는 수밖에 없는데 제 경험으로는 관련 정보를 습득하는 데 안정효 번역가(겸 소설가)의 책들(‘가짜 영어사전‘ ‘번역의 공격과 수비‘)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유토피아 출판사에서 나온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 시리즈도 어휘와 문장 공부에 도움이 되는데 지금 찾아보니 절판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