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인생과 그가 거둔 무수한 실패 및 성공을 기록한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평전의 제16장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떠난 뒤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 시절 초기에 조던의 훈련 태도와 습관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고 인생 친구인 조지 콜러와의 만남도 짤막하게 소개된다. 

조지 콜러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인 택시 기사와 마이클 조던의 인연 이야기는 순 뻥이다. 조던이 시카고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 잡을 돈이 없었는데 한국인 기사가 도와줬다더라... 하는 그런 스토리인데, 그때 조던은 불스와 연봉 계약을 이미 한 상태였고 집에 재산이 많지는 않아도 빈곤한 수준은 아니었다. 택시비가 없어서 어쩌구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기사도 한국인이 아니다. 아래 글에서도 나오지만 조던이 시카고 공항에서 만난 사람은 조지 콜러라는, 요리 보고 조리 봐도 미국인인 리무진 기사다. 성이 Koehler인 걸 보면 독일계일 수는 있겠다. 

조던에 관한 가짜 뉴스랄까, 인터넷에 떠도는 순도 100% 뻥인 이야기를 하나 더 짚자면 조던이 어릴 적에 헌옷을 주워 팔면서 깨달음을 얻었느니 하는 것이 있다. 


"그는 흑인이었고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누나 

그리고 여동생 한 명이 있었다.

아버지의 보잘것없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어려웠다. 

그는 가난과 멸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래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일이 없을 때면 그는 낮은 처마 밑에 앉아

조용히 먼 산 위의 석양을 바라봤다.

조용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이하 생략)


대충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마이클 조던이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살던 곳이 빈민가는 결코 아니었고 출생 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윌밍턴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용이 틀렸다. 게다가 조던의 아버지는 공군 제대 후에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은행원이었다. 형제가 다섯이니 생활이 좀 빠듯할 순 있었겠지만 누가 봐도 그 시절 미국의 번듯한 중산층 집안이었기 때문에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이야기 후반에 조던이 헌옷을 팔아서 점점 그 가치를 올렸네 어쩌네 하는데 어린 시절의 마이클 조던은 애초에 일하기를 극히 싫어하는 아이였다. 가령 형들이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돈을 벌 때 조던은 방 청소도 하기 싫어서 동생이나 동네 아이들한테 용돈을 주고 청소를 대신 시킬 정도였다. 아무튼 저 가난한 조던 스토리가 인터넷 여기저기 퍼져 있는데 마이클 조던의 성공 비결이라며 끼워맞춘 거짓말에 속지 마시길 바란다. 조던의 고교 시절 1군 탈락 스토리도 잘못 알려진 경우가 꽤 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올려볼 생각. 


아래 글은 책 제16장의 일부 내용.


제16장 첫인상


조던은 8월 말에 고향으로 돌아와 그간의 공로를 축하받았다. 행사 장소는 올림픽 대회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금메달을 공식 수여했던 윌밍턴의 탈리안 홀이었다. 레이니 고등학교는 이날 그의 유니폼 번호였던 2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한 달 뒤 조던은 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하고자 시카고로 향했다. 


그는 UNC 타르힐스 소속으로 경험한 삶과 시카고 불스 선수로서 보낼 삶이 분명히 다르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감독의 지도 방식부터 달랐다. 그는 이제 딘 스미스나 밥 나이트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없었다. 불스 선수단은 당시 만 44세로 NBA 감독 가운데 젊은 편이었던 케빈 로거리의 지휘를 따랐다. 왕년에 볼티모어 불리츠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무모하고 투박했던 1960~70년대 프로 농구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강한 브루클린 억양과 한쪽 입꼬리만 올려 씨익 웃는 모습은 그의 유쾌한 농구 철학과도 잘 어울렸다. 


불스의 트레이너였던 마크 파일은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케빈은 완전 옛날 스타일이었어요. 당시 리그에는 70년대처럼 노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었거든요. 다들 시합 날이면 경기장에 와서 할 일을 하고, 그다음엔 모여서 술 마시며 시간 보내는 게 주였죠.” 


빌 클린턴을 살짝 닮은 것 같은 케빈 로거리. 마이애미 히트 감독 시절.


로거리는 직감을 중요시했다. 그는 선수로서 12년간 평균 15.3득점을 기록할 만큼 실력이 좋았다. 조던은 새 감독이 마음에 쏙 들었다. ABA에서 줄리어스 어빙을 지도하며 뉴욕 네츠를 두 차례나 우승으로 이끈 경력 때문이었다. 로거리는 선수 시절에 1965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LA 레이커스의 전설인 제리 웨스트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웨스트는 다섯 경기 평균 46.3득점을 올려 컨퍼런스 결승 신기록을 세웠다. 로거리는 웨스트와 어빙을 겪어본 후, 재능이 특출한 선수에게는 별다른 지시가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불스의 신예 스타는 경기 중에 마음껏 공을 잡을 수 있었다. 


훗날 인터뷰에서 조던은 자기가 거쳤던 감독 가운데 로거리가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로거리 감독님은 저더러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셨어요. 루키 시즌에 감독님이 공을 던져주면서 이러셨죠. ‘어이 신입, 너 농구깨나 하잖아? 나가서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 아마 다른 감독님들 밑에서는 그런 게 불가능했을 거예요.”



코트에 선 조던은 고교 시절로 돌아간 듯 공격적이고 화려한 고공 농구를 선보였다. 물론 그때보다 체격은 더 크고 단단했으며 기술은 훨씬 정교했다. 이제 그는 능력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조던은 프로 첫해에 만난 감독 덕분에 농구 선수로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신감을 얻었다. 로거리는 특정한 틀을 주입하지 않고 조던 스스로 가장 적합한 플레이 방식을 깨우치게 했다. 그는 조던의 거대한 열망을 이해했고 본인의 역할이 그것을 채워주는 데 있다고 판단했다. 딘 스미스와 밥 나이트의 시스템에 줄곧 갇혀 있던 조던에게 제 능력을 발견할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그런 재량을 발휘한 데는 로드 쏜 단장의 도움도 있었다. 과거에 뉴욕 네츠의 코치로서 로거리를 보좌했던 쏜은 그의 지도 방식을 철저히 신뢰했다. 


조던이 불스에서 빨리 자리를 잡는 데는 로거리와의 친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감독님하고 전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에요.”


선수 시절에 조던처럼 가드 포지션을 맡았던 로거리는 갓 프로에 입단한 그가 어떤 문제에 부딪힐지 예상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팀원들이었다. 조던은 젊고 의욕 넘치는 동료로 가득했던 UNC 시절과 다르게 냉소에 찌든 선배들과 함께 뛰어야 했다. 개중에는 술과 마약에 빠진 이들도 있었는데, 그 중심에 선 것은 퀸틴 데일리였다. 그는 유능한 가드였지만 조던이 시카고에 오기 훨씬 전부터 문제아로 명성이 자자했다.


“퀸틴이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었어요.” 마크 파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참 불쌍한 친구죠. 구단에서는 자꾸 문제를 일으키면 내쫓겠다고 겁을 줬지만 그 녀석은 눈도 깜짝 안 하더군요. 도리어 ‘그러다 길바닥에 나앉을 거라고? 내가 나고 자란 곳이 길바닥이야. 난 거기서 살아남았다고. 그런 말로는 날 겁줘봤자 소용없어.’ 이렇게 받아쳤죠.”



노터데임 대학 출신의 2년 차 포워드였던 올랜도 울리지도 재능은 뛰어났으나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으로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최종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사망했다. 당시 불스 선수단은 그들 외에도 문젯거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구단 홍보 책임자였던 팀 핼럼이 설명하기로, 조던은 시합에 이기는 데만 골몰하여 술이나 마약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서는 상대 팀에 약점을 노출하는 그런 짓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로드 히긴스는 불스에서 보기 드물게 착실한 선수였다. 이른바 ‘저니맨’으로서 이후 선수 생활 내내 여러 팀을 전전한 그는 조던보다 세 살 연상이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던 그 시즌에 두 사람은 금방 친구가 되었고 그 우정은 훗날 NBA에서 은퇴한 뒤로도 계속되었다. 나중에 선수 생활 6년 차를 맞을 즈음, 조던은 한 인터뷰에서 옛 팀원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루키 시즌에 함께했던 동료들이 “운동 능력은 뛰어나지만 머리를 쓸 줄 모르던 친구들”이었다며 그 모습이 마치 「루니 툰」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불스의 훈련장인 앤젤 가디언 짐은 문제투성이 팀원들만큼이나 성공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팀 핼럼은 그곳을 이렇게 묘사했다. 

“분위기가 어둡고 음산한 체육관이었어요. 장식 커튼 같은 것도 하나 없었고 마룻바닥은 돌처럼 딱딱했죠. 또 차는 건물 뒤편의 풀밭에다 대야 했고요. 가는 길에 좁다란 보도가 있어서 그걸 넘어가야 주차가 가능했어요. 탈의실은 구식이었고 식당이나 매점도 없었죠. 편의 시설이라고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곳이었어요.”


게다가 그곳은 항상 아이들로 가득했다. 불스의 매표 관리자였던 조 오닐이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우리 팀은 체육관에 도착해서 일단 기다려야 했어요. 먼저 농구 코트를 쓰던 초등학생들이 나가야 연습을 할 수 있었거든요. 우리 선수들이 줄을 서 있으면 그 뒤로 수영장이나 다른 시설을 쓰려는 꼬마들이 복도 여기저기에 쭉 늘어서 있었죠.” 


불스 선수였던 존 팩슨이 설명하기로, 그 체육관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시카고의 악명 높은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범미주 경기 대회에서도 그랬듯이 조던은 훈련 환경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엠피 파크의 야외 코트나 어릴 적에 농구하던 장소들을 생각해보면 앤젤 가디언 짐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대고서 곧장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몇 주간 조던은 훈련장 인근의 링컨우드 하얏트 하우스 호텔에 묵었다. 트레이닝 캠프를 며칠 앞두고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은 조지 콜러였다. 당시 만 29세로 개인 리무진 영업을 하던 콜러는 마침 공항 앞에서 태울 손님을 찾고 있었다. 그는 불스의 신인 선수를 발견하고 실수로 ‘래리 조던’이라 불렀다. 그러고는 25달러에 어디든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조던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사님, 혹시 제 형을 아세요?” 


그렇게 약간의 착오가 있었지만, 이 만남은 이후 아름다운 우정으로 이어졌다. 조던은 리무진이 필요할 때마다 콜러를 찾았고 나중에는 그를 개인 매니저이자 일생의 친구로 삼았다. 


콜러는 그날 홀로 대도시에 도착하여 초조해하던 조던의 모습을 회상했다. 

“백미러로 보니까 어린애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더라고요. 그런 고급 리무진을 처음 타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게다가 시카고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낯선 사람이다 보니 자길 아무 데나 떨구고 갈까 봐 긴장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조던은 곧 활기를 되찾았다. 조 오닐은 그의 훈련 광경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마이클은 연습 시간마다 NBA 결승 7차전처럼 죽자고 달려들었어요. 누구랑 붙든 완전히 박살 내겠다는 식이었죠. 그 덕에 우리 팀 훈련 분위기는 꽤 살벌했어요.” 


로거리는 조던에 관한 소문을 익히 들었지만 그 플레이를 면전에서 보는 것은 또 달랐다고 밝혔다. 

“일대일 연습을 시작하자마자 다들 우리 팀에 대단한 물건이 들어왔다고 느꼈죠. 물론 그때부터 ‘마이클이 역대 최고의 선수다.’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고요. 확실한 건 그 녀석 슛 실력이 꽤 좋았다는 거예요. 그동안 거기에는 매번 의문 부호가 붙었었죠. 돌이켜보면 마이클은 대학 시절엔 딘 스미스 밑에서, 그리고 올림픽 땐 밥 나이트 밑에서 항상 패싱 게임에 주력했어요. 그래서 마이클이 자기 마음대로 공을 다루는 모습은 아무도 못 본 거예요. 게다가 그 녀석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경험해 보니까 진짜 모든 걸 갖춘 선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훈련 둘째 날, 코치들은 자체 청백전을 열어 조던의 기량을 확인했다. 당시에 로거리를 도왔던 빌 블레어 코치가 그날을 이야기했다. 
“마이클은 수비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코트 반대편까지 공을 몰고 갔어요. 그런 다음 자유투 라인에서 뛰어서 덩크를 했죠. 감독이 그걸 보더니 ‘이제 연습 경기는 그만해도 되겠네.’ 그러더군요.”

그때 로거리는 조던의 다재다능함에 놀랐다고 한다. 
“코트를 보는 시야가 굉장히 넓었어요. 발도 빨랐고 힘도 상당히 좋았고요. 그땐 다들 마이클의 힘이 얼마나 센지 몰랐을 거예요. 아무튼 그런 걸 보면 그야말로 토털 패키지라 할 수 있었죠.” 

조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 훈련을 마치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다른 수준의 경기가 펼쳐지겠죠. 전 아직 배울 게 많아요.” 

블레어는 조던의 훈련 태도를 설명했다. 
“마이클은 참 남달랐어요. 매일 정해진 훈련 시각보다 45분 정도 일찍 나왔거든요. 늘 슛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했죠. 정규 훈련이 끝난 뒤에는 꼭 코치들한테 자기 연습을 도와달라고 했고요. 그 뒤엔 계속 슛 연습이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이 없었죠. 또 마이클은 연습 경기 중에 좀 쉬라고 벤치로 불러들여도 곧장 코치들한테 와서는 코트에 나가고 싶다고 보챘어요. 저는 그런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더군요. 그 녀석은 농구하는 것 자체를 정말 좋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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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05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 슛 연습,,,,농구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조던은 즐기고 노력하고 즐기며 농구의 황제가 된,, 조던 뒤에는 훌륭한 코치들까지,, 노력하는 삶에 이렇게 행운까지 뒤따르는 조던의 삶, 부럽 ,부럽 ^0^,

JK 2021-04-05 20:27   좋아요 1 | URL
노력한다고 꼭 운이 따르진 않는데... 생각해보니 조던은 노력하고 즐긴 만큼 인생이 잘 풀린 것 같아서 부럽긴 하네요. 물론 그 반작용도 그만큼 크긴 했지만 그래도 대업을 이뤘으니...
 


오래 전에 산 책인데 최근에 읽게 됐다. 번역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모은 번역 관련 서적 중 하나. 내가 갖고 있는 건 2013년도판이어서 표지 디자인이 다르다. '출판번역가'에 관한 개론서 정도로 볼 만한 책이고 저자는 번역 에이전시인 '바른번역' 대표 김명철 번역가다. 

출판번역가가 어떤 직업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될 수 있고 현황, 생활 등을 이야기하는데 전반적으로 내용이 좀 짧다. 이 직업을 잠시 소개하는 수준에서 끝내는 느낌이고 그 외에는 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에세이 형태의 글과 번역 노하우 파트가 있다. 

그래도 도움이 되는 내용은 있다. 번역을 하려면 무엇보다 논리력이 중요하다는 조언과 150쪽의 '명사를 깨야 문장이 산다' 부분은 좋은 팁이라고 생각한다. 문장의 논리성은 내가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인데 마침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정보가 적은 편이고 에세이와 번역 기술을 다룬 파트가 섞여서 아쉬움이 많다. 이 직업에 관한 소개는 소개대로,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번역 기술은 번역 기술대로 분량을 확실하게 늘리거나 별도의 책으로 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처음 봐야 할 자료로는 번역 이론이나 기술이 첨가된 것보다 정보 위주의 책이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는 김우열 번역가가 쓴 『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 같은 책을 먼저 보고 번역가들의 에세이로 흥미를 돋운 뒤 이론/기술 관련 서적을 보는 것이 좀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 아무튼 『출판번역가로 먹고살기』는 번역 일을 고려하는 사람이 관련 서적을 두세 권 정도 보고 가볍게 읽기에 적합한 책이 아닌가 싶다. 

아래는 번역 관련해서 읽어보면 괜찮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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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를 기웃거리다 책을 주제로 한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이 읽고 싶어졌고 조금 더 기웃거리다 보니 작가님이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시는 걸 알았다. 여긴 참 신기한 곳이다. 책을 밥 먹고 차 마시는 것보다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서평을 매일 같이 쓰고 그 안에는 작가도 있다. 다들 한가득 그러모은 책 때문에 집 바닥이 꺼지는 것은 아닐지, 살짝 걱정이 될 정도다.

아무튼 관심이 가던 책이어서 일단 찜을 해뒀다. 그러고는 책장을 볼 때마다 하는 공상, 즉 '독서를 미뤄둔 저 책들만 읽고 나면 사서 보리라!' 이런 생각을 또 하던 즈음에 작가님 서재를 들른 것이 계기가 되어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독서를 미뤄둔 저 책들'의 우선순위(맨날 어떤 걸 먼저 읽을지 상상만 함)와는 무관하게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내 손안에 들어왔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어떤 도서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주로 그 책에 얽힌 역사와 뒷이야기, 책의 물성(외형적 요소), 책이 태어나기까지 관여한 인물 등을 다루는데, 저자인 박균호 작가님의 일상 경험도 곁들여져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전집 세트나 북케이스에 집착하는 저자의 에피소드는 무언가를 모으는 수집가라면 영역이 다르더라 할지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챕터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책 사냥꾼, 북케이스에 집착하다' - 수집가의 근성!!

'유럽 여행을 간다면 이 책들과 함께' - 소개된 책들이 궁금해졌다. 특히 『유럽 도자기 여행』.

'잃어버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의 행방은?' - 독서가들의 추리와 그 결말이 재밌었다. 

'시인 이상이 장정한 시집' - '모던'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다룬 챕터라 그런지 왠지 글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느껴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화집' - 아름다운 책, 갖고 싶은 책이란 이런 것이다.

'북 박스 뒷통수' - 좋은 팁이 담겼다.

'나쓰메 소세끼가 디자인한 책 표지' - 현암사판 전집을 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 돈을 위해서 서평을 쓰다' - 서평가의 고달픔.

'잃어버린 채대치를 찾아서' - 뛰어난 번역가, 짧은 생, 애틋함..ㅠㅠ

'새로운 지리 교과서용 동화' - 이런 교과서가 많아야 할 텐데.

'영안실 청소부, 책방을 차리다' - 내가 바라는 동네 서점의 모습.

'조훈현,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리고 바둑 명인' -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읽어 보자.

'영문학자 피천득의 빛나는 업적' - 예전에 읽었던 수필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목차에서 꼭지 제목만 보면서 골라보자니 열세 개 정도로 추려진 건데, 

다시 책을 죽 넘겨보며 고른다면 더 추가할 것이 많을 듯하다. 

챕터마다 책이 여러 권 소개되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이 생겼다. 책을 다방면으로 보는 편이 아니어서 요즘 들어 틀에 갇힌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소개된 책들이 갑갑한 머릿속을 뚫어줄지 모르겠다. 독서가 재밌고 또 점점 더 재밌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책이 다른 여러 가지 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그런 즐거움을 중계해주는 허브(hub)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작가님도 마지막에 그런 특징을 딱 짚어주셨다. 


한 권의 책은 단지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 또는 읽는 재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인연을 맺어줄지 모른다. 한 권의 책은 사람마다 읽히는 방식도 다르고 느끼는 감상도 다르다. 책은 고구마 줄기처럼 여러 갈래의 인연과 즐거움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이제 또 다른 고구마 줄기를 캐러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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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2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4-02 0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채대치가 누구에요? 혹쉬 러시아 번역가 채수동님?

박균호 2021-04-02 03:29   좋아요 1 | URL
네 동일 인물이에요

JK 2021-04-02 13:13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채대치 챕터는 박균호 작가님이 옛날 동서문화사 책들을 이야기하면서 채수동 번역가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저는 러시아 문학을 전혀 몰라서 채수동 번역가를 몰랐지만 사연을 알고 나니 일찍 돌아가신 게 너무 안타깝네요.

박균호 2021-04-02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저 고맙습니다!!!

JK 2021-04-02 13:22   좋아요 1 | URL
아유 별 말씀을 ㅎㅎ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셔요!
 


영 손에 안 잡혀서 언제 다 보나 싶었는데 마음 먹고 보니 금방 다 봤네. 

마음에 담아가며 읽을 텍스트는 하나도 없지만 정보로 따지면 학창 시절에 공부하듯 전부 외워야 할 것 같은 부담스러운 책인데 뒤로 갈수록 소소한 재미가 생겨서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디 원산이고 국내 어디서 자라고 낙엽인지 상록인지, 활엽인지 침엽인지, 관목인지 교목인지... 그런 정보가 그냥 제끼기는 찜찜하고 굳이 한 자 한 자 꾹꾹 밟아가며 읽자니 머리에 통 안 들어오고 그래서 거추장스러웠는데 매 페이지의 구성이 눈에 익기 시작하니 부담이 좀 덜해졌다. 바꿔 말하면 대강 그러려니 하고 보았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책을 넘겨가면서 점차 각 식물의 특징을 다른 식물들과 비교·대조하며 보게 됐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비교 대상이 적어 사진과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뒤에서 유사한 형태, 같은 과, 같은 속에 속한 식물들이 차츰 등장하면서 앞뒤로 넘겨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를 테면 자두, 앵두, 호두처럼 '두'가 붙는 과실수 이름은 대개 복숭아 도(桃)가 변형된 것이라든가 우리가 흔히 목련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 중국에서 온 백목련이고 한국의 목련은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한다는 사실, 우리가 사는 곳곳에 콩과와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 등을 이리저리 비교해보며 파악하고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듯이 도감인데도 사진이 부족한 것은 흠이다. 나무마다 사진이 한 장씩만 붙어 있고 사진이 아예 없는 것도 너댓 개 정도 있었다. 나무는 계절마다 외양이 달라지므로 정보를 정확히 습득하려면 수관을 포함한 전체 모습과 잎, 꽃, 열매, 뿌리 등을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 골고루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다 읽어보고는 적지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물론 한 번 봐서는 완전한 지식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일단은 이걸로 만족하자... 일부러 두 번 보기에는 책장에서 기다리는 책들이 많으니까.


나에게 책 읽기는 항상 과거의 나를 따라잡는, 혹은 과거의 내가 입수한 온갖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임무 같은 것인데 이 책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2008년 6월 16일 동대구역에서 산 도감을 다 읽어 옛날 짐을 겨우 하나 덜었지만 책은 수시로(!!!!!!) 늘어난다. 예전에 새 책은 그만 사고 책장에 꽂힌 책부터 다 소비하자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 결혼하면서 아내가 가져온 책이 내 것만큼 있다. 자연히 소비해야 할 콘텐츠 목록에는 아내의 책들도 추가됐는데 일단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언제 손을 댈른지 모르겠다. 일감이 아니라 취미로 보는 책은 늘 반갑고 좋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에 쌓인 짐 같다. 어제도 책이 두 권 늘었다. 미션 완료까지는 갈 길이 계속 멀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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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시리즈,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CNC 미디어 발간. 


소설 『링』을 처음 본 게 언제였을까. 아마 2000년대 초반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첫 권을 읽을 때는 이미 영화 「링」이 한창 인기를 끌고 난 후였다. 공포영화는 좋아하지 않아서 영화 버전은 보지 않았지만 소설은 어떻게 읽을 만한 것 같아 집어 들은 것이 마지막 권인 『링0 -버스데이-』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십 몇 년이 지나 책장을 정리하면서 오랜만에 『링』 시리즈를 다시 펴봤다. 『링3 -루프-』가 내게 안겨줬던 감정 때문에 언젠가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이제야...ㅠㅠ 


시간이 꽤 지나서 다시 보니 굵직한 내용은 기억해도 전반적으로는 새로 접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링』의 기본 설정은 워낙 유명하니 개인적인 감상만 나열해볼까 한다. 


『링 -바이러스-』와 『링2 -스파이럴-』은 지독한 공포물이라기보다 약간 섬뜩한 추리물에 가깝다. 그래서 내 상상력이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고 또 과학적인 설명과 논리적인 흐름이 적절히 버무려져 글이 계속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공포물에 약한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수준이랄까. 


『링3 -루프-』는 『링』 시리즈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본 책으로, 세계관 자체가 아예 뒤집혀서 SF물이 되었는데 이쯤 되어서는 공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책은 『링 -바이러스-』와 『링2 -스파이럴-』의 문젯거리가 어디로부터 왔고 그 근원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나는 앞선 두 권이 안겨주는 어딘가 찜찜한 느낌, 링 비디오 테이프의 장면 묘사가 주는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링3 -루프-』가 해소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단,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과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진짜인가?' 라는 답을 구할 수 없는 의문이 함께 뒤따라왔다. 


『링0 -버스데이-』는 앞서 나온 세 권과 연결되는 이야기 세 편을 담은 외전격(?) 작품인데 궁극적으로는 『링3 -루프-』의 결말을 확인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다. 


DNA, 유전자, 염색체 따위의 과학 용어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인기를 얻었던 20세기 말에 공포물로 호평을 받은 『링』 시리즈지만 공포, 추리, 의학, 과학, SF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결과적으로 마음에 남는 것은 놀랍게도 공포가 아니라 『링 -바이러스-』부터 『링0 -버스데이-』까지 줄곧 등장하는 한 인물의 삶이다. 실천은 좀 늦었지만 언젠가 꼭 다시 읽어보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필시 그를 향한 안타까움과 슬픔, 고마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시 읽어보면서도 나는 그가 안타까웠고 슬펐다. 


링 시리즈는 2018년에 황금가지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4권 세트나 낱권으로 구매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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