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궁전. (스포포함입니다)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득 이런 삶의 속성을 아주 인상깊게 담아낸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6rrbWrmWL_g
˝우린 살아가면서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우연이든 고의든,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많은 생각을 준다.

실제로 현실은 소설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물흐르듯 흘러가는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이며 각 사건들은 대부분 큰 개연성이 없다.
즉, 삶은 수많은 변수와 우연성으로 잔가지를 치며 뻗어나간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의 탄생만 보더라도 내가 잉태되던 날 우연히 부모님의 시간과 상황 몸컨디션 장소적조건등이 맞아떨어졌고
수많은 돌발적 장애물들과 남북한 인구수를 모두 합친것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나서야 기적적으로 내가 태어났으며 이중에서 단 하나의 조건만 달랐더라도 난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나의 이름을 가진 내가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공간을 점유하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레비나스는 이런 맥락에서 미래의 외재성을 설파했을것이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에서 삶은 필연적 요소인 ‘인‘과 우연적요소인 ‘연‘의 수없이 얽히고 섥힌 우연의 연속과 조합으로 이루어졌고 세상만사는 ‘공‘하다고 하였다.
필연적 요소에만 집착하면 ‘상견‘에 빠지고 우연적 요소에만 집착하면 ‘단견‘에 빠지며 이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 하였다.
둘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것이 지혜로운것이라 한 것이다.
한 개인이 상견에 빠져 낙관주의 성향을 갖고있다면 (인중유과)우리는 그의 과거에서 노력들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많았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어느 누군가가 인생의 우연성을 강조한다면(인중무과)그의 성향은 비관주의 혹은 허무주의라고 유추해 볼수 있겟다.

지금 소개할 소설 「달의궁전」의 저자 폴 오스터는 ‘우연성‘을 작법의 지론으로써 강력히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쓸모있는 스토리라고 평가받으려면 실화기반스토리의 경우 믿기힘든 우연성이 있어야 특별하고 픽션이라면 개연성이 있어야 올바르다.
즉 소설가인 폴 오스터는 우연성을 소설의 작법으로써 되도록 배제하여야 할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내에서 우연성을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이는 폴 오스터가 비관,허무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도 들며 그의 삶과 경험이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페이지 결말에 가면 결국 허무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긴 한다.)
이런 특징은 작품감상의 관점에 따라 심각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폴 오스터는 이를 차분히 잘 극복하여 힘있게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달의궁전은 지인의 추천으로 뒤늦게 읽게된 작품인데 참 독특하고 느껴지는것이 많은 소설인것 같다.
본작은 일반 소설과는 다르게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처음과 끝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지 않고 여러 액자소설들이 개별적 작품으로써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스토리의 측면에서 방대하고 장황하며 각기 다른장르의 성격들이 다채롭게 묻어난다.
또 초반이 지루하다는 말들이 많은것 같은데, 그것은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른것 같다.
초반부는 스토리적 전개위주가 아니라 상황과 사사로운 에피소드들의 나열이다.
스토리의 전개가 스펙터클하지않아서 스토리를 중점으로 보는 독자에게는 지루하게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처음에도 지루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독성이 좋다는 느낌까지도 받았다.
시각적인 그의 표현들은 또다른 의미의 스펙터클로써는 스펙터클하다.
즉 이 작품은 스펙터클한 표현력과 스펙터클하지 않은 스토리를 갖고있다.

그리고 주인공 스탠리포그는 폴오스터 자신과 겹치는 부분이 일정부분 보인다.
즉 자전적 성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자전적 내용인지를 분간하기는 힘들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음 기준에서의 메타포를 종합적으로 조합하여 바라봐야 할 것 같다.
1. 정복 이전의 달을찾아 헤메는 마르코의 여정 2. 미국역사와의 연계성 3. 작가가 되어가는 마르코의 성장과정

소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이는 곧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사건을 뜻하는데 이 사건은 인류가 태초로부터 달을 보며 가졌던 온갖 상상력이나 신화성이 한번에 무너지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즉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셀레네나 아르테미스는 죽었고 우리의 상상력과 신화는 해체되었다.
이는 리처드도킨스가 「무지개를 풀며」에서
상상력과 신비함의 상징이었던 무지개가 빛의 스펙트럼으로 해체되듯 과학기술로 인해 우리의 상상력과 감성은 점점 해체되는 중이라는 언급과 같은 맥락이다.
즉 작품내에서 등장하는 달 이라는 상징성은
‘정복 이전의 달‘‘정복 이후의 달‘으로 나누어 생각하여야 한다.
소설의 시작부는 달 착륙 이라는 과학기술의 가시적 성과가 달성된 시점에서의 고무적인 사회분위기와는 반대로 주인공 ‘ 신세다.
마르코는 당장 하루를 버틸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절망에 빠져있는데, 달착륙으로 들떠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그리 썩 달갑지는 않았을테다.
작중 마르코는 끊임없이 정복 이전의 달의 모습을 찾아 헤메며 키티우를 처음만난 파티에서는 달의 신화성을 설파하기도 한다.
정복당하여 베일이 벗겨져 버린 달의 실체를 인정하고싶지 않는듯한 모습을 작품내내 보인다.

주인공 ‘마르코 스탠리 포그‘는 사생아로 아버지없이 어머니의 손에서 길러졌다. 어머니도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게된다.
이후 마르코는 외삼촌 빅터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빅터삼촌은 마르코의 이름속에서 기발한 의미를 찾아내어 그럴듯하게 부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것들은 이후 마르코의 작가수업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무살이 되던 해 삼촌이 죽어버려 외톨이가 된다.
마르코는 삼촌이 준 양복과 약간의 돈 그리고 수십개의 상자안에 담긴 책들을 쌓아올려 침대 식탁 의자등의 가구로 사용한다.
하지만 마르코는 곧 돈이 떨어져 궁핍해지고 삼촌이 물려준 책을 조금씩 팔수밖에 없게된다.
마르코는 삼촌의 책을 파는것에 죄책감이 들어서 책들을 읽고나서 팔기위해 닥치는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마르코는 여기서 삼촌이 남겨준 1492권의 책들을 모두 읽으며 삼촌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계승한다.
여기서 1492의 숫자는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해이다. 미국이 1492년에 유럽의 문명을 고스란히 계승함을 의미하는것일까?
주인공 마르코는 삼촌의 책으로써 정신적 위안을 얻고 삼촌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마르코는 곧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데 굶주린 상태로 절친인 짐머를 찾아 그의 집으로 가게된다.
하지만 짐머는 이사를 간 상태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파티를 하고있다.
그 사람들은 즉석에서 마르코에게 파티에 참석할 것을 권하고 굶주린 마르코는 파티에 참석하여 많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다 먹은후 멋쩍어진 마르코는 사람들 앞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달의 정복으로 인해 달의 신비로움이 낱낱이 벗겨진 이 시점에서 마르코는 이미 해체된 달의 신화성을 회복하려는 듯한 한물간 이야기만을 늘어놓는다. 마르코를 모두가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키티 우 라는 여자는 마르코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여기서 키티우는 첫 인상에 대한 외형묘사에서 인디언 부족의 악세사리를 착용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에는 미국역사와 관계된 여러가지 암시가 등장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코와 키티우는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블레이크록의 문라이트를 감상하는 장면에서 인디언의 탄압에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나온다.
해당 그림을 검색하여 집접 감상하며 읽으시기를 추천함.)
여기서 마르코는 운명의 여인 키티우를 만나서 힘든시기를 극복한다.

이후 마르코는 전단지에서 일자리를 하나 얻게 되는데 그 일은 에핑이라는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는것 그리고 말벗과 수발이었다.
에핑은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인물이고 한번도 보지못한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무용담을 전기로 정리하는 작업을 마르코에게 시키게된다.
이것은 마르코에대한 아주 훌륭한 작가수업이 되었으며 폴 오스터는 마르코의 입을 빌려 본인의 작법에관한 지론을 내비치기도 한다.
마르코는 이 작품 내에서 좋은 작가가 되기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경험한다.
다독(삼촌으로 부터 물려받은 책), 고통(노숙자생활), 시각의 전환과 묘사훈련(에핑의 수발), 여러 방식의 작문(에핑의 이야기 작성), 경험(서쪽 바다를 향한 여정)
다음은 마르코가 에핑에게 꾸지람을 듣는 장면의 한 구절이다.
˝
˝나는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보이는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세상은 눈을 통해 우리에게로 들어오지만, 우리는그 이미지가 입으로 내려가기 전에는뜻이 통하게 할 수 없다. 나는 그 거리가 얼마나 먼 지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얼마나 멀리 여행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 거리는 6,7 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손실이 생겨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구에서부터 달까지의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
이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이다. ˝지각된 풍경은 그 자체로써 순수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와 상통한다.
이 것은 작가가 되는 길을 달까지의 여행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핑은 세상을 떠나고 마르코는 에핑의 아들 솔로몬 바버를 찾아 수소문하여 만난다.
그런데 알고보니 에핑의 아들 솔로몬은 바로 마르코의 아버지였다.
결국 에핑에게는 단한번의 동침으로 생긴 한번도 보지못한 아들 솔로몬이 있었고
솔도 에핑과 마찬가지로 단한번의 동침으로 생긴 한번도 보지못한 아들 마르코가 있었던 것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에 연속성을 부여 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작가의 의도 일테다.
즉,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중 하나는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보통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나 현실에 맞닥뜨렸을때 운명론적 자세를 취하곤한다.
즉 운명론적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중 하나는 정신적 도피처의 효과다.
그것은 마르코에게 있어서의 문팰리스 중국집이고 정복 이전의 신화성을 간직한 허상의 달이다.
마르코가 동경하던 문팰리스 중국집은 아파트의 창 밖으로 보이는 평범한 중국집 이름이다.
마르코는 그 중국집의 간판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헤테로토피아의 설정같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같이살 집을 구하자는 절친인 짐머의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만의 아파트를 택한 결정을 후회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합리화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곳은 마치 마르코가 빅터삼촌의 옷을 입고 삼촌에게 보호받는 느낌을 가졌던 것 처럼, 심리적으로 의지하고싶은 감수성을 지닌 신비로운 표상의 장소이지만 현실의 그곳은 사실 그냥 식당일뿐 허상의 달이다.
실제로 마르코는 하루의 할당된 양식인 달걀2알을 실수로 깨먹고 현실적 절망에 빠졌을때 정신적 도피처인 문팰리스로 가서 남은돈을 모두 탕진한다.
그리고 마르코는 작품 내내 신비성을 잃어버린 달의 감수성을 회복하려 애쓰고 합리화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마르코는 이후 에핑이 살던 동굴을 찾아 ‘물속의 달‘ 이라는 뜻을 가진 ‘올제토‘에서 수소문을 하였더니 에핑이 살던 동굴은 이미 물에 잠겨버렸다.
(물속의 동굴은 물속의 달이고 그것은 마르코가 찾던 허무한 문팰리스이다.)
결국 마르코는 서쪽끝 태평양에 다다르고 이렇게 말하며 끝이난다.
˝
˝나는 세상의 끝에 온 것이었고
그 너머로는
바람과 파도 중국해안까지 곧장 이어진 공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엇다.˝
˝
마르코는 자신이 쫒던 달의 궁전이 결국 공허함 이었다는것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끝까지 달을향해 전진함으로써 진정한 어른과 작가로 거듭났음을 표현한 이중적 은유가 아닐까?
마르코는 한없는 공허함을 느낀 서쪽끝에서 내 삶이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다짐하며 소설은 끝이난다.
달이 비워지면 다시 차오름을 비로소 깨달은듯이..



※문 팰리스의 포츈쿠키 안에는 이런 말이 씌여있었다.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이것은 사람마다 각기다른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폴 오스터는 독자들의 여러가지 해석을 유도하기위해 이런 문구를 넣은게 아닐까 한다.

※번외로 아래는 그동안의 주변의 인간관계들을 빗대어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준 인상깊었던 문장이다.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공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나 같다.
쓸만한 상대방은 공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짐으로써 여간해서는 놓치지 않게 하고
그가 받는 쪽일 때에는 자기에게로 던저진 모든 공을,. 아무리 서툴게 잘못 던져진 것일지라도, 능숙하게 다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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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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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무조건 맹신하는 사람들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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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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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탁견이 여러곳에서 돋보인다.
정체성 정치의 발달과정과 그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즘의 뿌리부터 날카롭게 뒤흔들어 놓는다.
읽고나면 페미니스트의 꽉막힌 공격을 받았을경우 반격용 총알이 무수히 장전되지만 다만 염려스러운건
그들이 과연 이런 고급 총알의 내용을 알아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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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종 인간
팻 시프먼 지음, 조은영 옮김, 진주현 감수 / 푸른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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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큰 침입종 이라는 간단한 내용을 서론에서부터 자원낭비 수준으로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인간이 지구단위에서 생태계 파괴의 일등공신 이라는 것은 이미 누구나 인지하고는 있다.
결국 도입부의 맥락은 단지 인간을 생태계 구성의 일원으로써 동물의 범주에 넣느냐 예외로 규정 하느냐의 시각의 차이일 뿐 크게 새로울게 없는 내용이다.

한국내에서는 배스, 블루길,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꽃매미 등이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되었으며 악으로 간주되어 말살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생태 교란종들이 나쁜 녀석들 이므로 맘껏 죽여도 된다는 인간 본위의 잣대로써 죄책감 없이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악으로 간주하는 세계 100대 최악의 침입종을 다 모아놓아도 인간 한 종의 힘에 비할바가 못된다 우리는 반성하고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침입족 개념으로부터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사례와 통계를 들어 방증한다.
사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관한 가설중에 현생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설이 유력한데 이 책은 이미 잘 알려진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뒤통수를 때리는 기발하고 흥분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지는 않으며 내용이 전체적으로 다소 평탄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물리적 질량에 비해 텍스트의 무게감은 다소 가벼운 느낌이고 동류의 도서들과 비교해 보았을때 제법 속도를 낼 수 있는 정도의 속독이 가능 할 정도로 쉽게 읽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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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독스의 문화
류승호 / 녹두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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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온지 20년이 넘었지만 저자의 넓은 시야에서 비롯된 시대를 관통하는 탁견과 미래를 바라보던 저자의 통찰이 담겨있다.
세월이 흘러 현재 사회의 모습은 출판 당시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책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여 살펴 보아도 그 내용에 있어 대부분의 내용은 크게 위화감이 없다.
당시 저자가 예측하던 미래사회의 모습을 이미 변화한 현대사회의 모습에 견주어 읽어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당시 저자는 먼 훗날 다가올 인터넷 시대에서의 민주주의와 정치판의 모습을 예측한 파트가 있는데
현대 정치계에 난무하는 온갖 비열한 꼼수들까지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요즘들어 한국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남녀문제에관한 현상의 본질탐구의 시각을 독자에게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오히려 요즘 출판되는 왠만한 책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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