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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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세계화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폐쇄적인 국가주의를 강화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자유로이 오간다는 세계화의 기치가 환상임이 드러난 데 가깝다. 코로나19와 씨름하는 과정은 육신과 그것이 속한 장소의 결속이 간단히 초월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위기가 요구하는 거대한 변화의 실마리 역시 한국사회라는 특정 장소의 감각에 충실함으로써만 포착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세계 다른 많은 나라들, 특히 서구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한국은 촛불혁명에서 비롯한 남다른 변화의 기운을 발동하던 중이었다. 팬데믹의 확산과 저지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달렸듯 팬데믹이라는 무시무시한 계기를 대전환으로 돌파할 방도 역시 주어진 맥락과 역량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면, 다른 어느 곳이 아닌 ‘한국’의 길을 모색하는 의의는 한층 크다고 하겠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그러나 배제를 전제하므로 제대로 ‘작동하는’ 공동체란 애초에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저항’ 강박의 또다른 사례일 뿐이며, 배제를 멈추기 위해 공동체 자체를 ‘작동하지 않게’ 만들자는 제안도 당면한 위기에 응답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끊임없는 포함의 운동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며 여기에는 다시 포함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렇듯 전면적으로 공동체를 혁신하려는 담론적 실천으로 ‘커먼즈’(commons,공동영역) 논의가 있다. 이 담론에서 ‘커먼즈’란 단순히 공유지나 공유자원 같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라는 자각 속에서 국가와 공적인 공간을 장악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 그 자체"16를 핵심으로 한다. 그런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소속’된 이들이 아니라 주체임을 자각하고 변화의 노력을 수행함으로써, 다시 말해 ‘커머닝’(commoning)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체를 비로소 생성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여기서도 배제가 야기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의 배제는 억압이 아니며 ‘포함’의 대립물조차 아닌, 실현을 기다리는 대기 상태의 잠재성이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하지만 데리다의 우정론은 늘 그렇듯 공동체와 사회적 유대를 넘어 근본적 비대칭과 이질성에 개방된 우정이라는 문제에 초점이 가 있고 타자를 향한 (무조건적) 환대 개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재구성에 방점을 두는 커먼즈 담론과는 거리가 있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코로나19 이후 한국에서 부상하는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논의는 이제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재평가 없이는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탈성장 논의와 통하는 바가 있다. 김현미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확인하는 진실은 인간이란 돌봄과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개인의 희생이 아닌 협력적 공공의 개입을 통해 돌봄이 이뤄질 때 가장 공평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적 사회 구성은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들의 경험과 희망이 직업의 재설계와 대안적 사회기획에 반영될 때, 인간과 동료 종의 공존, 인간 사이의 평등에 다가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4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돌봄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서는 조안 C. 트론토 『돌봄 민주주의』, 김희강·나상원 옮김, 아포리아 2014 참조. 트론토(Joan C. Tronto)는 돌봄을 ‘가능한 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세상을 바로잡고 지속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종(種)의 활동’으로 정의한다. 그는 이제까지 성별화된 형태로 수행되어온 돌봄노동이 많은 무임승차자를 양산했음을 지적하면서 돌봄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함께 돌봄’(caring with), 즉 정의·평등·자유에 대한 돌봄의 민주적 기여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돌봄민주주의 개념을 문학비평에 활용한 최근의 글로는 신샛별 「불평등 서사의 정치적 효능감, 그리고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참조.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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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 아픈 자 돌보는 자 치료하는 자
김준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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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낙태죄 폐지가 논의의 끝은 아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임신중절의 허용 여부를 다시 살펴야 하고, 만약 임신중절을 특정 기간이나 특정 사유로 인해 허용하진 않을 것이라면 낙태죄 대신떤 방법으로 임신중절을 막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한 생각이나 견해 또한 매우 달라 현재 여러 논의가 부딪치고 있다. 어느수준에서 어떤 방법의 임신중절이 모체와 태아를 보호해줄 수 있는지, 임신중절이 문제가 되는 시점은 언제인지를 세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 P75

임신중절 허용 논의에서 논쟁점은 다양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고려 사항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체의 건강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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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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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세계화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폐쇄적인 국가주의를 강화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자유로이 오간다는 세계화의 기치가 환상임이 드러난 데 가깝다. 코로나19와 씨름하는 과정은 육신과 그것이 속한 장소의 결속이 간단히 초월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위기가 요구하는 거대한 변화의 실마리 역시 한국사회라는 특정 장소의 감각에 충실함으로써만 포착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세계 다른 많은 나라들, 특히 서구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한국은 촛불혁명에서 비롯한 남다른 변화의 기운을 발동하던 중이었다. 팬데믹의 확산과 저지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달렸듯 팬데믹이라는 무시무시한 계기를 대전환으로 돌파할 방도 역시 주어진 맥락과 역량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면, 다른 어느 곳이 아닌 ‘한국’의 길을 모색하는 의의는 한층 크다고 하겠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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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 취약함을 가능성으로, 공존을 향한 새로운 질서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 동아시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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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돌봄 없는 의료가 가진 문제와 그로 인한 고통이 마냥 지속할 거라고 비관하기는 이르다. 나는 고령화로 인해 의료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 인구 감소 지역에서 ‘의료시장’이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회로 본다. 새로운 돌봄체제를 향한 동력은 더 이상 의미, 가치, 윤리 또는 복지와 권리 등에 머물지 않는다. 의료가 돌봄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그 자체로 완전히 다른 사회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돌봄은 새로운 사회의 물적 토대가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돌봄이 상품이 아닌 형태로 공급되는 비시장적 공급재가 되면서, 그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저평가 또는 미평가된 돌봄노동이 누군가의 그림자노동으로 묵묵히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봄노동의 무가치화가 필수적이다. ‘돌봄’을 하찮은 일로 폄하해 온 것은 여성을 비롯해 돌봄을 수행하는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오랜 역사 동안 지배계급이 사용해 온 방식이지만, 자본주의 이후 이러한 ‘무가치화 전략’은 여성과 자연을 통제하고 그들의 노동을 무상으로 전유하기 위해 훨씬 더 정교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팬데믹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필수노동’의 사회적 가치에서 알 수 있듯이, 돌봄노동은 그 자체가 하찮고 중요하지 않아서 무가치해진 것이 아니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돌봄교실정책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그때, 나 역시 학업 단절, 경력 단절의 위기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 맡길 곳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밤 10시~12시까지 문을 여는 돌봄교실을 만들겠다는 말이 반갑지는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관료들은 "아이는 국가가 맡아줄 테니, 여성들도 맘껏 일하라"라고 선심 쓰듯이 말했지만, 안심이 되기보다 불안이 더 컸다. 아이들이 무슨 수화물 보관소에 짐 맡기듯 맡길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이도 어른도 그렇게 밤늦도록 일해선 안 되었다. 그것은 어린이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정책이었고,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정책이었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일터와 삶터와 배움터의 분리는 삶과 노동을 통해 사회 속에서 익혀왔던 돌봄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교육과정은 엄청난 자원과 노력을 투입해서 학교 교육을 마치고도 자기도, 타인도 돌보지 못하는 존재로 세상에 나와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장기 성장 지체 과정’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유년기는 1318을 거쳐 2030으로 점점 연장되고 있지만, 기나긴 교육과정을 거치고도 미성숙한 존재로 사회에 나와 자라지 못한 어른인 채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제 ‘학교 돌봄’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일터와 삶터와 배움터의 분리는 삶과 노동을 통해 사회 속에서 익혀왔던 돌봄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교육과정은 엄청난 자원과 노력을 투입해서 학교 교육을 마치고도 자기도, 타인도 돌보지 못하는 존재로 세상에 나와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장기 성장 지체 과정’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유년기는 1318을 거쳐 2030으로 점점 연장되고 있지만, 기나긴 교육과정을 거치고도 미성숙한 존재로 사회에 나와 자라지 못한 어른인 채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제 ‘학교 돌봄’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앞에서 살펴보았듯 보살핌 윤리는 인간의 개체성, 자율성 개념이 성별화된 과정을 통해 구성되었으며, 자율성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 우리는 보살핌 없이 삶을 지속할 수 없다. ‘나’와 대상과의 관계 자체가 삶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 보살핌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보살핌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성별 분업의 영역이었지만, 대상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만 다를 뿐, 모두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을 갖는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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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 아픈 자 돌보는 자 치료하는 자
김준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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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의료윤리를 이야기해야 하는가?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최근의 보건의료 이슈들을 떠올려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2014년 요양병원 화재 사고와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 사건,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발생, 2017년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태, 같은해 소위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대책과 관련한 이슈,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2019년 헌법재판소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해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가위 기술 개발자 노벨화학상 수상.…………. 그동안 발생한 수많은 보건의료 사건들은 사회경제에는 물론 일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질병과 돌봄, 치료는 우리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 P7

그러므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다.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이 결정은 그저 삶의 길이를 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나‘를 소외시키던 의료화의 물결에서, ‘나‘를 객체로 만들던 의료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결단을 의미한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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