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처럼 얽힌 정치적, 경제적 힘과 심지어 사회심리적인힘들이 이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기에, 이것들을 자각할 때만이해체 작업도 시작될 수 있다. 이 모든 이유에서 나는 건강 분야가 오늘날의 정체성 위기-나는 누구이며 나는 장차 무엇이 될것인가의 위기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라고 확신한다. 사실이 분야는 전쟁터로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위협도 압제자도 없으며, 있더라도 거의 눈에 띠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의 관점 - P90
의 관점, 의료 지식들과 도구들, 의료 실행자들과 여타 전문 조력자들이 본질적으로 사악하기보다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서운 점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매우 곤혹스럽게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험은 이 경우가 더 크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기술적이고 과학적인 객관성을 가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일이라고 위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건강지상주의 사회로 난 길은 겉보기에 좋은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을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 P91
필요에 대한 전문가적 정의가 낳는, 인간을 불구화하는 두 번째 효과는 결핍의 소재를 고객 개인에게 두는 전문가적 관행에서볼 수 있다. 현대의 전문가들 대다수는 개인의 문제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막상 치료에 들어가서는 개인을 맥락으로부터 떼어내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런 개인화 효과는 전문가들 자신이 가진 맥락상의 이해마저왜곡시킨다. 필요를 이처럼 개인적 사안으로 해석하는 까닭은 전문가들이 가진 치료 도구와 기술이 대체로 개체화된 상호작용들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도구를 정의하는게 아니라,도구가 문제를 정의하는 셈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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