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정신이 강한 헌터는 더러 끔찍한 일화를 남겼으나 그로 인해 외과의학은 떠돌이 이발사의 짧은 경험과 기술이 아닌 명실상부한 과학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실험을 통한 관찰과 경험에서 귀납법으로 추론한 몸의 진실이 바로 외과의학의 기반이 된 것이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헌터에게 몸은 거대한 실험실이며 다양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생물학 기계였다. 베살리우스와 하비와 모르가니도 몸을 열어젖혔지만 헌터처럼 교환 가능한 부분들의 집합으로 보지는 못했다. 헌터에 의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의 흐름이 외과의학에서 만나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이후 가스 흡입을 통한 전신마취는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아무리 큰 수술도 초창기 흡입마취의 위험과 불쾌감 없이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육체의 통증은 싸워서 없애야 할 대상이라는 데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무척 중요한 신학 논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출산에 따른 고통을 없애기 위해 클로로포름을 흡입해도 되는지에 관한 논쟁이 오갔다. 이 논쟁은 1853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드 왕자를 낳을 때 마취제를 흡입함으로써 일단락된다. 신학과 철학의 논쟁이 한 유력인사의 고통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이로써 출산에 따른 고통은 원죄를 저지른 데 대한 대가라는 기독교에 바탕을 둔 사유의 전통이 무너지고, 인간의 고통은 다양한 삶의 실존 맥락을 잃게 된다. 고통은 그저 신경섬유에 대한 자극이며 어떤 인간다운 의미도 없는 하나의 스캔들일 뿐이다. 마취제의 발명으로 우리는 무척 복잡한 수술도 아무 고통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의 몸은 삶의 뜻과 맥락을 상실하고 물질로 이루어진 욕망의 덩어리로 변해갔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그 이유는 산욕열로 죽은 산모를 해부한 다음 손도 씻지 않은 채 바로 살아있는 산모를 진찰하는 의사들의 관행에 있다고 주장한다. 산파는 안전하고 의사는 위험하다? 이 생각은 당시 의학의 중심이던 빈 종합병원과 의사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이후 그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무시당한다. 1847년부터 1년 동안, 부검이 끝난 의사에게 반드시 염소용액으로 손을 씻도록 한 결과 사망률이 18.3%에서 1.2%로 급락했다는 사실을 발표했지만 주류 의사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제멜바이스는 이 발견으로 인정을 받고 승진을 하기는커녕 빈 종합병원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가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한다. 의학사에서 이 일은 과학에 따른 발견의 우연성과 새로운 발견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주류사회의 보수성, 그리고 경험이 이론에 앞선다는 일반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유전자에 대한 이런 생각은 사람의 몸이 유구한 세월동안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으며 그 결과 가장 적합한 형질만 살아남았다는 진화론의 사유양식과 겹쳐지면서 그 폭력성을 드러낸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논리는 유전 또는 사회에서 약한 자는 도태되어 마땅하다는 논리로 비약한다. 그래서 1930년대에는 세계 각국에서 우생학優生學(eugenics)과 유전위생遺傳衛生에 관한 법을 만들어 많은 유전병 환자, 정신질환자, 술꾼, 노숙자, 동성애자, 노동회피자 등 유전자가 열등해 보이는 사람들은 단종 수술을 받거나 살해당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가장 우수한 형질만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례가 나치가 저지른 학살극이지만, 사실 이 운동을 앞장서 이끈 나라는 나치의 반인륜 행위를 응징한 미국이다. 20세기 초, 우생학은 나치의 만행을 기점으로 지탄을 받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우리 몸과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모두 어떤 사회관계의 소산이다. 몸에서 사회로 열린 문을 걸어 잠가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와 관계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알라딘 eBook <몸의 역사 : 의학은 어떻게 몸을 바라보았나 - 살림지식총서 274> (강신익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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