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의학이 사업이나 법률, 공학과 다른 이유는 다른 인간을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라는 부모님의 다소 감상적인 생각과도 일맥상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가치를 내면화했고 내가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일에 대한 기대는 무척 높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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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지만 부질없는 희망의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소녀가 내게 원한 건 오직 집중해서 들어주는 것이었고 내가 솔직하게 내 심정을 털어놓으니 환자도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냈다. 내가 할 일을 매번 훌륭하게 해냈을 리는 없다. 그러나 환자가 견뎠기 때문에 나도 견뎠다. 어떤 아이도 견디지 않아야 할 지옥에 나도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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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재학 중 만난 이런 환자들과의 경험은 큰 깨달음을 주었고 이 깨달음은 나의 필생의 사업이 될 열정을 깨워주었다. 이 환자들과의 일화는 학교에서 받는 수업이나 전공 서적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나를 완전히 변모시켰고, 왜 진료나 간호가 그저 진단과 치료 이상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에게 진료란 질병과 치료 중에 일어나는 모든 시련과 통증, 승리와 실망의 생생한 경험을 같이 나누고 목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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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사로서 치료라는 실용적인 기술과 인간의 서사와 역사를 결합하는 것이 진정 가능하기는 한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환자들, 그들의 인생, 그들의 지역사회를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고, 이 열망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소프트한’ 학문으로 취급되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과 연결해 보고 싶었다. 문화에 따라 다른 생활, 건강, 질병의 사회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인 의료인류학 세미나에 참여해 보았지만 더 깊은 혼란과 좌절에 빠질 뿐이었는데 그 세미나는 사회학 이론과 현장 연구를 통한 의료인의 업무와 공중 보건 전문가의 일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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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보다 경험을 탐구하고 싶었다. 고통, 부상, 통증의 경험을 탐구하고 치료와 돌봄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고 싶었다. 치유자이자 저자로서 이 경험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더 연구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경험이란 사회적 조건과 개인의 상황이 결합된 것이다. 고통은 그저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사회의 결과였고 가장 효과적인 개입은 둘 모두를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 동시에 나는 내면의 치유자로서의 경험도 탐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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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면의 치유자는 번아웃이 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면서 효율과 인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가 다시 질문했다. 개인의 내면적인 경험과 집단적 경험을 어떻게 결합시켜야 더 큰 힘을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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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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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새처럼 고집스럽게 버텼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조앤을 집에서 돌보려 했다. 내가 그렇게 약속했었고 조앤도 내가 그 약속을 지키길 기대하지 않았나. 그렇게나 단순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단순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약속을 했던 여성은 10년 동안 치매를 앓은 여성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그때와 똑같은 간병인이 아니었다.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조앤은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내가 사랑했고 그 사랑의 빚을 갚고 싶었던 조앤이 사라졌다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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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통해 알츠하이머 말기 환자였던 원장의 어머니도 이곳에 거주했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다. 원장은 그만큼 이곳이 환자를 가장 중시하는 기관이라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책임자로서 경영과 관리적 측면보다 윤리 의식을 중시한다고 했다. 치매 간호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정도는 다르다 해도 같은 목적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직원을 뽑을 때도 일을 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장 중점적으로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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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곳을 나오면서 우리 셋은 확실히 기분이 나아졌고 아마 어떤 가족들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전에 방문했던, 시설 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기관보다도 왜 이곳에서 그렇게 긍정적인 느낌을 받고 돌아왔을까? 헌신적인 전문가가 만들어낸 환경은 직원과 입소자 사이의 상호 관계를 가장 중시했고 환자들이 항상 누군가 옆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기 때문이다. 원장부터 비서, 우리가 만난 요리사와 직원 모두 일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애정, 친절함, 양질의 간병을 중시했으며 치매를 비롯해 장애를 가진 노인들이 어떤 커뮤니티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비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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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돌봄의 영혼이란 영혼의 돌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돌봄의 행위는 ? 원한다면 관계에서의 보살핌이라 말할 수 있는 것 ? 관계를 작동시키면서 자아를 다시 만들어간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은 서로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면서 감정과 의미 사이의 단단한 끈을 형성한다. 이 끈이 돌보는 사람의 에너지를 끌어내면서 행위의 목적과 열정을 다시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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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갖는 실존적 의미다. 우리가 대표하는 것, 우리가 하는 일이다. 돌봄은 영혼이 하는 일과 관련되고,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의 영혼이 개입된다. 나는 돌봄이 자아와 관계를 가꾸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여기서 가꿈은 노동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노동은 다른 사람에게 집중되고, 그 노동이 우리가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과 나를 조정해 나가는 방식에 힘을 보탠다. 그 노동이 잘될 경우 우리를 성숙시키고 연마하며, 잘되지 않을 경우 우리를 고갈시키고 부담을 지운다. 마치 음과 양처럼 증가와 약화는 서로 반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이며 인간이 돌봄을 경험할 때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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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동안 하수도에서 일한 다음 스탠퍼드로 돌아가 의대생으로 첫 해를 맞았다. 의대 수업이 요구하는 방대하고 지루한 기초 과학 수업을 견디기 힘들 때마다 빌에게 구구절절 감상적인 편지를 쓰기도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그처럼 육체 노동자가 된 다음에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맞춤법과 문법이 잔뜩 틀린 사투리 문장으로 답장을 써주었다. "그럼 니는 평생 동안 나같이 노새처럼 일하고 싶다는 거시냐?" 그는 소중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으며 이렇게 편지를 끝냈다. "짜식, 의사 공부 포기한다는 소리만 했담 봐라. 내가 가서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놓을 테다!" 그의 거칠지만 애정이 담긴 답장은 유익한 회초리가 되었고 덕분에 다시 정신을 다잡고 학과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조건 없이 베푼 애정은 이후 내가 인생을 한참 더 산 후에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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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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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돌보던 몇 년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규칙적으로 운동했고, 더 오래 깊이 잤고, 진정한 자아 성찰의 순간들을 맞이했다. 서로 상충하는 수많은 의무들을 처리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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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보라고 했으나 그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본 적이 없었기에 도와달라고 부탁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존심 세고 지나치게 독자적이고 통제적인 이 아버지에게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솔직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고백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다시금 떠올렸다. 나는 친구에게 한계를 인정하고 자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직접 요청해 보라고 말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자녀들은 내가 기대한 대로 반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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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족들은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무너지기도 한다. 재정적으로, 관계적으로, 감정적으로, 도덕적으로 무너진다. 가까스로 버티긴 하지만 하루하루 위태롭다. 죄책감과 체념 사이를 수시로 오가기도 하고 괴롭지만 감수하기도 한다. 불안정하고 어려운 관계의 이야기, 말하지 못한 역사, 반은 묻고 사는 아픔은 이런 이야기의 숨겨진 스토리 라인이다. 부족한 자원(1차적으로는 재정적 자원이고, 궁극적으로는 인지적, 감정적, 사회적 자원)은 질병과 간호라는 폭풍우를 헤쳐나가기 어렵게 한다. 어디에도 간단한 결론은 없고 보편적인 정답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각각의 질병 경험을 깊이 파고들어서 개인에게, 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소중히 여기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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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더 큰 사고 없이 인터미션까지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진땀을 흘리며 당황하고 있었지만 조앤의 얼굴은 베르디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감동으로 빛났다. 나는 불평하던 사람들에게 아내가 치매가 있어 그러는데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했다. "치매라고요!" 그들은 소리쳤고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빨리 내보내요. 치매 환자를 이런 데 왜 데려옵니까?" 그들의 무례함과 냉정함에 화를 내고 싶었지만 사실 나 또한 갈등했다. 그들이 잔인할 수는 있지만 어쩌면 맞는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녀를 이런 일에 노출시키면 안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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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실로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아내가 기억을 상실한다 해도 아내를 향한 내 사랑이 변치 않는다 말하는 건 쉽지만, 나를 갑자기 낯선 사람으로 대하고 나를 보며 공포에 떨고 피해망상적인 불신을 갖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의학적으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했지만, 내 존재적으로는, 마치 지난 반세기 동안 함께하며 강철처럼 단단해진 우리 사이의 유대가 몇 초 만에 툭 끊어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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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정 간병을 내가 버틸 수 있는 한 유일한 선택지로만 생각했다. 마지막 해 혹은 18개월은 나에게나 조앤에게나 지옥이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우리가 그 지옥 같은 시기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초기부터 요양원이 대안이 되어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인지 치료 병동은 내가 더 이상 가정 돌봄을 못 한다고 결정했을 경우에는 대안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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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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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예상대로 약물 치료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앤이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했다. 일을 줄인 것이다. 조앤과 더 많은 시간 보낼 수 있었고 점점 늘어가는 요구를 들어주고 아내를 위해 돌봄의 일상을 마련해 나갔다. 질병과 간병의 몇 안 되는 진실 중 하나는 유일하게 지속적인 건 오직 변화뿐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이 안정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병은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을 던져주고 사회적 또는 재정적 요인이 변하면서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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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 혼자서 이 모든 돌봄 노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갔다. 그런데 그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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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담했던 고도로 전문적인 신경과 의사들이 알츠하이머란 병의 실체를 알긴 하는 건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이 병의 원인과 병리생리학에 대해서 밝혀진 바가 적기도 하고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 방법도 나와 있지 않다. 그나마 우리가 잘 다룰 수 있는 것, 완전히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과 사회의 돌봄 네트워크 아닌가. 이 무시무시한 질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료인들은 그들 자신이 보다 직접적으로 간병에 가담할 필요가 있다고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의 다른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알츠하이머의 고통과 일상생활 속의 파문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경험, 조언, 통찰이 절실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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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나도 다루기 힘들어진 시기가 찾아왔다. 조앤은 점점 불쑥불쑥 화를 내는 예측 불가능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조앤 자신은 나를 향한 감정의 변화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나는 바로 알아챘다. 어쩌면 본인도 알았을지 모른다. 차분해 보이다가도 그 상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한순간에 갑자기 공포를 느끼며 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에게 설명할 수 없었고 그저 어지럽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치매가 악화되면서 자신의 기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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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담에 과일자?日子라는 말이 있다. 한 가족의 행운을 지키기 위해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성숙하고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초년에는 이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앤이 사는 방식과 조앤이 나와 우리 가족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배워나갔다. 조앤에게서 배운 교훈은 내가 아내를 돌볼 때 유용하게 쓰였다. 나는 실제로 돌봄을 실천하면서 돌보고 살피는 법을 배웠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전환을 가장 간단하고 진실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내가 조앤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알츠하이머란 병에 잠식되기 전의 조앤을 이루고 있는 많은 특징들을 내가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조앤의 페르소나에서 좋은 부분만을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남을 돌보는 마음, 달래는 마음, 세심한 관심 등을. 그녀처럼 타고난 우아함을 갖진 못했지만 그녀와 목적의식은 공유하며 나의 일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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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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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성들은 당연히 남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문화적 기대 속에서 자란다. 그렇다고 해서 돌봄이 언제나 여성에게 더 자연스럽고 쉬울까? 아니다. 여성들 또한 서서히 돌보는 사람으로 변하고 성장한다. 돌봄은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돌봄을 주고받는 일은 우리가 평생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관심, 애정, 실질적 도움, 감정적 지지, 도덕적 유대를 주고받는 일이며 그에 따라오는 의미는 인생의 수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미완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돌봄은 행동이고 실천이고 수행이다. 대체로 어떤 일에 대한반응이기도 하다. 각자가 처한 조건과 맥락에서 타인의 욕구와 나의 욕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돌봄이다. 돌봄은 불의의 사고와 부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일이다. 보필하고 보호하고 앞으로의 위험까지 준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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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핵심은 옆에 있음,현존presence이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 생생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서로의 곁에 존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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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 의사는 ‘원칙상’ 조앤에게 직접 전해야 하고 경험상 남편이 아내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앤과 나는 입을 모아 우리 부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의사는 확고했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무실에서 나왔고, 우리를 가족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으로만 보려는 전문가에게 어떻게 상담과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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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리 삶에 들어왔다가 떠났다. 오래 믿고 의지하던 친구들과 연락이 끊겨서 실망했으나 이들은 이후 더 힘든 시기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가볍게 알았던 지인들이 기대하지 않았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밀물과 썰물처럼 몇 년간 계속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시간과 관계의 변화를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항상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가족인 피터, 앤, 우리 어머니 마샤로 거의 매일 연락했다. 우리는 함께 이 비정한 병증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엄마와 특히 각별했던 우리 아들은 한번은 엄마를 가족의 일상 안으로 들이기 위해 아빠가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서 나에게 성을 냈다. 나는 아들을 비난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조앤의 침묵을 방치하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는 많은 주 간병인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내 나름대로는 나만의 시간이 거의 없어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들의 공격이 정당했다고,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조앤이 내게 해준 그 모든 일을 생각해 보라. 나는 이기적이었다. 아들과의 말다툼은 더 커졌다. 이때 딸이 우리 사이에 들어와 중재하려 했다. 나는 무너져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아들과 딸은 내게 다가왔고 우리 셋은 한참을 비통하게 울었다. 아이들은 나날이 나빠지는 엄마의 상태가 우리 부부 관계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수많은 압박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들과 딸에게 더 많이 의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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