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바라는 게 있다면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보는 게 진짜 어른 아닐까요?
사는 게 복잡하게 느껴질 땐 써야 합니다. 쓰기만큼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노동이 없습니다. 어른으로 살아내는 피곤함을 느끼는 것으로 이겨내면 좋습니다.
그냥 쓰는 거지요. 그냥 씁시다. 아무도 내 글을 기다리지 않을 테고, 아무도 내 글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씁시다. 그게 어른의 글쓰기입니다. 시켜서 쓰는 게 아니라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글을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그저 시작하는 게 어른의 글쓰기입니다.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 것이 시작이자 전부입니다. 쓰기 시작해야 무수한 글쓰기의 비법이 내 것이 되어 비로소 힘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쓰세요.
좋은 글의 조건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골라본다면 공감과 위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쓰는 것. 분량에 맞추어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며 '잘 쓴 글'로 변화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요. 글을 쓰고 싶지만, 책을 쓰고 싶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단 하나, 초고를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그저 지금, 뭐든 읽고 있으면 잘하는 겁니다. 읽으면 쓰게 되고, 더 읽으면 잘 쓰게 되거든요.
가장 하찮은 것에 대해서 쓰세요.
쓸 거리가 없어 막막할 땐 내 얘기를 꺼내보세요. 괜히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스려다 머리 아플 것 없이 내 얘기로 직진하는 겁니다.
'뭐가 됐든 도움이 되는 글을 쓰자'는 것이 책이 될 글을 쓰는 저의 다짐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체는 아빠보다는 엄마 쪽일 때가 훨씬 더 잦다는 사실을 말이죠.
숨차도록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 '엄마'의 역할은 밥을 지어 먹이고, 문제집을 채점해 주고, 학원 레벨 테스트를 신청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믿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꿈쩍하지 않을 때, 시종일관 따스한 눈으로 지켜봐 주던 어른이 도움을 내밀어줄 거라는 든든함이 있는 아이는 어려운 도전도 기꺼이 시도해 볼 수 있다.
아이가 어떤 꿈을 말하든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 믿는 것, 이루어진다는 전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 그건 세상 오직 한 사람 엄마만이 해 줄 수 있는 자비로움 아닐까?
생각해 보면 하루 중 순전히 내 의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나의 계획과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일에 주의력가 시간을 뺏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갑자기 일정이 변동될 확률이 드물다.
이처럼 새벽에는 생각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을 동안 어떤 사람은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원하는 위치에 이미 도달한 채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들에게 새벽은 수면 시간이 아닌 활동 시간이다.
새벽 기상으로 확보한 시간은 인생의 보너스 타임이다. 회사의 업무나 학교의 과제처럼 이 시간에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없다. 따라서 이 때는 어떤 일을 해도 잃은 것이 없다. 즉, 새벽은 내가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그냥 질러보는 시간이다.
꿈을 이루는데 이르거나 늦은 때는 없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내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언제 자는 지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새벽 기상의 핵심은 '몇 시에 자느냐'에 있다. 새벽기상은 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수면 사이클 전체를 앞당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말 시간이 없는 걸까? SNS를 둘러볼 시간은 있는데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면, 친구 만나서 다른 사람 욕할 시간은 있는데 운동할 시간은 없다면, 할 일은 쌓여 있는데 느긋하게 커피 마시고 쉴 시간은 있다면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다. 시간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여유로운 하루는 시간에 끌려 다니느냐 아니면 내가 시간을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10년 넘게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 '평범한 일상은 지옥보다는 천국에 더 가깝다'라는 사실을 자주 확인하게 된다. '로비에 성당이 있는 건물'에서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하루인지 잠시 시간을 내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하루 앞에 붙는 '평범'이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행복'으로 해석되는 꿈만 같은 단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역할은 '스펙 좋은 악역'이 소름 끼치는 상황을 연출하기 전,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모니터를 통해 눈에 보이게 만드는 도입 부분의 '희망과 위로' 파트를 담당하는 방사선사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환자는 의료진을 믿고 병원을 찾는다. 그 믿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의료진이 늘어나길 바라본다.
"경제적 빈부격차보다 무서운 게 독서 빈부격차이며 삶의 양극화를 만드는 거야"라고 열심히 설명하지만, 그는 조물주가 만들어주신 두 개의 귀를 잘 활용하여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 어떤 아름다운 과거도 현재만 못하다. 과거가 더 아름다운 사람은 그보다 충분히 더 아름다울 수 있는 현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현재를 만드는 건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평범한 하루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소중한 하루였던 것이다. 이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부터 삶에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