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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09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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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호수는 모든게 멈춘 듯 고요하고 안전하다. 호정의 마음 속에는 그런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호정은 전학생 은기와 가까워지며 마음 속 얼어붙은 호수도 차츰 녹아내리고 마음도 느슨하게 흐르게 된다. 소설 속 묘사되는 호정의 마음은 살랑거리는 봄바람 처럼 읽는 내 마음도 간지러웠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은 앳된 마음도 너무 싱그러웠다.

그러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 성큼 모습을 드러내면서 두 사람은 호수 속에 맥없이 가라앉아 버리게 된다. 재미로 떠들어대는 가십과 생각없이 던지는 시선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회복 불가한 치명상을 안기는지 알 수 있다. 성장하는 모든 존재는 고통을 먹고 자라나는 모양이다. 호정은 호수 아래로 한없이 가라앉다 바닥을 딛고 다시 떠오르면서 고통의 화살이 자신에게만 향하는 줄 알았다가 친구 나래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타인의 고통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얼어붙은 호수는 언젠가 녹겠지만 다시 또 얼어붙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성장이라는 건 호수를 얼어붙지 않게 내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얼어버린 그 마음도 잘 보내고 다시 봄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단단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pp.131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pp.348 어떤 일은 절대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나쁜 일만 그런 건 아니다. 좋은 일도, 사랑한 일도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눈처럼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눈 내리던 날의 기억마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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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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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훌리아의 이야기는 언니 올가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엄마의 외모를 쏙 빼닮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던 착한 언니의 죽음을 기점으로, 엄마는 죽은 첫째 딸 올가를 대신하여 자신의 희망을 둘째 딸인 훌리아에게 투영하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 비춰지는 (특히 어른들의 눈에 비친) 훌리아는 무례하며 어른들의 말에는 무조건 반항부터 하고보는 불만 가득한 10대 소녀다. 그러나 그 성향의 기저에는 그녀의 자율성, 주체성을 옥죄는 환경이 그녀의 발 아래 덫처럼 깔려있다는 사실은 다들 보지 못한다.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며 잔소리하고 통제하려는 부모는 없겠지만 훌리아의 엄마는 딸의 주체성에는 관심이 없고 딸의 모든 부정적 언행의 이유를 본인을 제외한 주변 환경에서만 찾는다. 그녀는 본인이 제시한 틀 안에서만 딸이 '평범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마치 '내가 말하는 인생을 살면 너는 안전할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올가가 가족 모두에게 숨겨온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그런 '평범한' 삶은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것이 진정 자식이 일구려 했던 인생일 수 없다.

소설은 요조숙녀를 지향하는 고전적인 여성의 역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일상처럼 보고 듣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등장인물과 배경이 아시아권이 아님에도 깊은 공감을 끌어올렸다. 정체성을 지키고 싶지만 외부 환경 때문에 심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10대 소녀의 절박한 시선이 사실적으로 와닿았다. 훌리아처럼 현실에서 외롭게 현실과 싸우며 마음을 다치는 10대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켠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청소년을 그저 보호와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어른들이 조금만 더 그들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은 무시한 채 그들이 원하는대로만 아이들의 자아에 통제를 행사하려 해도 본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완벽한' 딸/아들의 인생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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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별은 내가 꾸는 꿈 - 반 고흐 스토리투어 가이드북
조진의 지음 / 텍스트CUBE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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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사랑해 마지않는 비운의 유명 화가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머리 속에 떠올리는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빈센트 반 고흐다. 내 방에는 빈센트가 프랑스에 머무를 적 화폭에 담았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패프릭 포스터가 걸려있는데, 작품의 숨은 의미나 배경 지식 같은 것은 잘 모르나 어쩐지 화려하면서도 고요해 보이는 이 그림을 사랑한다. 그 외에도 빈센트의 몇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문득 화가 빈센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꽃 피는 아몬드 나무> 등 그는 셀 수 없이 저명한 작품들을 세상에 남겼지만, 사는 동안 행복한 순간은 많지 않았던 듯 하다. 어떤 삶이 37살의 그를 그렇게 외롭게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인지, 어떤 배경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했다. 


이 책은 빈센트의 생애 첫걸음부터 마지막까지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와 한 평생 함께해온 작품의 이해를 돕는 스토리투어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10년에 걸쳐 직접 먼 나라까지 찾아가  빈센트의 고향인 준데르트에서 출발하여 여러 행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시선으로 느꼈던 순간을 기록으로 고스란히 담았다. 빈센트의 흔적을 찾아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발걸음을 마다 않은 저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단순히 선호할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탐구와 다양한 기획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그의  작품을 알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가이드북에서 만난 빈센트는 한 평생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일찍 다른 장소에서 화가의 인생을 살았더라면, 인간 빈센트는 사는 동안 평온한 시절을 누렸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책의 본문에서 다루지만, 그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절망적인 경제적 고립의 상황에서도 긍정의 끈을 놓지 않았고 1400 여점 이상의 작품을 남길 만큼 그림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삶의 고통까지 그림으로 승화 시키려 했던 그는 진정한 예술가였다. 이 책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책을 읽게 될 다른 독자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책은 빈센트의 인생 여정 투어 가이드의 역할을 충실히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여럿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들까지 소개하며 작품을 조금 더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비록 나는 한 명의 독자로 책을 통해 투어를 간접 경험했지만, 빈센트의 내면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마주할 수 있는 발판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중한 기록을 책이라는 형태로 이렇게 접할 수 있어 기쁘다. 언젠가 자유로운 비행이 허락되는 날이 온다면 이 책을 벗 삼아 빈센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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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수다 떨고 앉아 있네 - 세 혼남의 끝없는 현실 수다
오성호.홍석천.윤정수 지음, 이우일 그림, 명로진 정리 / 호우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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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돈, 친구, 죽음, 일, 사랑, 꿈 등의 주제를 놓고 패션, 외식업, 방송에 몸 담고 있는 40대 싱글남 세명의 진솔한 대화를 써내려간 책이다. 홍석천, 윤정수님은 이미 잘 알려진 방송인이기도 하다. 오성호님은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패션계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국내에 화장품 브랜드도 런칭한 사업가라고 한다. 나와는 성, 나이대가 다르고 하물며 직업적 공통점도 없는 세명의 혼남(혼자 사는 남자)의 이야기에 내가 공감할 수 있을까? 기대반 의심반으로 책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공감되는 점도 꽤 있었고 성과 나이를 떠나 현재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에서 전반적으로 느끼고 깨달은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주제에 대한 생각들을 대화 형식으로 이어가니 마치 나도 그들 옆에 앉아 경청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뭇 부담스러울 듯한 주제도 수다 속에 툭툭 녹아들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유쾌하게 수다 떨듯 툭 내뱉기까지 눈물과 인내의 시간들이 있었을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로 마음 찡해지는 지점도 있었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세 사람의 미래관이 참 멋지다. 지금처럼 행복한 삶을 이어가길.

pp.17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걸 두고 내가 죽으려고 했다니. 내가 죽고 싶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너무 맛있어서 못 죽겠다’ 했어.

pp.44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멋지고 우아하게.” 난 이렇게 살려고 하고 있고, 또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pp.134 난 이제 반 살았다. 남들은 반이나 남았다고 표현하라고 하지만 남은 인생을 아쉬워하긴 싫다. 난 반밖에 안 남았으니 뭐가 합리적이고 좋을까를 고민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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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밀라논나 이야기
장명숙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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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오 아미치~!” 시청자들을 언제나 환한 미소로 맞이하는 멋쟁이 할머니 유튜버가 있다?! 우리에겐 밀라논나님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장명숙님이다. 패션 공부를 위해 머나먼 밀라노에 유학을 다녀온 최초의 한국인이자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 명품 브랜드를 한국에 런칭하신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분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 끙끙앓던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구독자들의 사연을 심심찮게 보고 듣는다. 그 때마다, 밀라논나님은 명쾌하고 무릎을 탁 치는 답변을 들려주신다. 이런 현명한 답변들은 모두 그녀의 깎고 다듬는 삶의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남은 보석들이리라.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가 가득한 페이지를 한장씩 넘겨보면 나 자신과 삶을 대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궁금해지는 동시에, 해답 아닌 조언도 얻을 수 있다.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출 것.' 당연한 말 같지만, 지켜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자꾸 입속에 맴돌아 단어 하나하나 곱씹게 된다. 그녀는 집 앞 슈퍼에 장을 보러 갈 때도, 멋지게 입고 나가신다 한다. 나 자신을 대우한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울적한 기분이 들 때 운동을 하거나 샤워를 하고 청소를 하며 맛있는 음식을 적당히 먹으면서 건강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돌본다는 데에서 모두 일맥 상통한다. 결국, 나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나 자신과 친해지는 행위이며, 행복을 찾는 과정인 셈이다.

pp.106 행복이란, 매 순간 내 오감이 만족할 때 오는 것 아닐까?
자기 몸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갖고 살며,
내 오감 중 어떤 감각이 가장 잘 발달했는지 깨달을 정도로
자신을 관찰하고 사랑해야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머리만 굴리며 살지 않고 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몸을 토닥이고 쓸어주어야 행복해진다.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인상깊은 대목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현재의 내 감정에 집중하고 순간의 느낌을 놓치지 않기를 권하고 있다. 건강한 루틴을 만드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나오는데, 기분이 좋아지거나 정신이 맑아지는 작은 일상의 루틴들이 쌓여 내 하루의 기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마치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하기를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충만한 루틴을 보내고 나면, 아쉬움이나 욕심이 남지 않고 삶에도 의연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나도, 내 인생도 너무 서툴고 불안정하지만 밀라논나님이 전하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라는 내 인생의 중심을 조금씩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친해지는 연습을, 자신을 존중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되길 바란다. 우리 인생은 모두 귀하니까.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서평 작성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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