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평점 :
주인공 훌리아의 이야기는 언니 올가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엄마의 외모를 쏙 빼닮고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던 착한 언니의 죽음을 기점으로, 엄마는 죽은 첫째 딸 올가를 대신하여 자신의 희망을 둘째 딸인 훌리아에게 투영하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 비춰지는 (특히 어른들의 눈에 비친) 훌리아는 무례하며 어른들의 말에는 무조건 반항부터 하고보는 불만 가득한 10대 소녀다. 그러나 그 성향의 기저에는 그녀의 자율성, 주체성을 옥죄는 환경이 그녀의 발 아래 덫처럼 깔려있다는 사실은 다들 보지 못한다.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며 잔소리하고 통제하려는 부모는 없겠지만 훌리아의 엄마는 딸의 주체성에는 관심이 없고 딸의 모든 부정적 언행의 이유를 본인을 제외한 주변 환경에서만 찾는다. 그녀는 본인이 제시한 틀 안에서만 딸이 '평범하게' 살기를 희망한다. 마치 '내가 말하는 인생을 살면 너는 안전할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올가가 가족 모두에게 숨겨온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그런 '평범한' 삶은 온전히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그것이 진정 자식이 일구려 했던 인생일 수 없다.
소설은 요조숙녀를 지향하는 고전적인 여성의 역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일상처럼 보고 듣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등장인물과 배경이 아시아권이 아님에도 깊은 공감을 끌어올렸다. 정체성을 지키고 싶지만 외부 환경 때문에 심적으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10대 소녀의 절박한 시선이 사실적으로 와닿았다. 훌리아처럼 현실에서 외롭게 현실과 싸우며 마음을 다치는 10대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켠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청소년을 그저 보호와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어른들이 조금만 더 그들의 주체성을 존중하고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성장 과정은 무시한 채 그들이 원하는대로만 아이들의 자아에 통제를 행사하려 해도 본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완벽한' 딸/아들의 인생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